아홉 번째 한겨례인터뷰특강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를 읽었습니다. 굉장히 좋았습니다. 훌륭한 강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제는 '선택' 입니다. 저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이라서 소개합니다.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읽으니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젠더에 따른 차별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젠더에 따른 차이는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여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힘이 세고 키가 큽니다. 여기서 일반적이란 단어에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셉니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차이들은 인식해야합니다. 여기에서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무엇이 생물학적인 차이고, 무엇이 문화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의 차이인지 혼동스럽습니다. 혹은 '일반적'이라는 단서가 붙는 차이들이 '모든' 상황에 적용됩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작용해버립니다. 아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남성은 좀 더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때문입니다. 여성은 보다 덜 공격적이고 위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어떤 여성은 남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은 일반적, 확률적,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반성때문에 우리는 종종 개별 사례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을 뽑아야하는데, 그 자리는 공격성과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이 때 두 명의 지원자가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젠더의 차이가 아닌 두 개인의 차이에 주목해야합니다. 그래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남성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다고 해서 두 명의 지원자 중에 꼭 남성이 다른 지원여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한다고 여겨져서는 안됩니다. 두 명의 지원자의 성향을 분석해서 누가 더 적합한지 결정해야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손가락을 보시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요. 두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의 비율이 성 기관이 아닌 인간의 기관 중에서 남녀의 차이가 있는 유일한 비율입니다. 보통은 남성이 약지, 네 번째 손가락이 더 길고 두 번째 손가락이 짧은데요. 임신 13주차 때,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많아지면 네 번째 손가락이 길어집니다. 네 번째 손가락이 길수록 위험감수 성향이 강해 로또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여성분들 중에서도 네 번째 손가락과 두 번째 손가락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네 번째 손가락이 더 긴 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분들은 로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보통은 네 번째 손가락이 길면 길수록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굉장히 남성중심사회잖아요. 대개 두 번째 손가락이 길수록 좀 더 여성성이 강화되어 있고, 네 번째 손가락이 길수록 남성성이 강화되어 있다고 지금까지 논문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손가락을 한번 보시지요. 그렇다고 넷째손가락을 잡아 당기지는 마시고요.(웃음) -p222~223, 정재승

 

 

 

 

 

 

 

 

 

 

 

 

 

 

 

 

 정재승씨가 강연에서 소개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입니다. 요즘 <행복의 특권>을 매우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긍정의 힘' 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균형잡힌 사고를 위해 <긍정의 배신>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 분이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소개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자    우리가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말고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도 실로 중요합니다. 구한말 때 친일을 선택한 자들, 구구하게 말할 것 없이 잘못된 선택이죠. 반대로 의로운 길을 택한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자주생각해봐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물론이고,1980년 광주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만해도 그렇습니다. 윤상원은 항쟁 최후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마지막날 도청 2층에서 친구가 그에게 왜 여기 남으려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건 똑같다. 새벽이면 이제 죽으리란 걸 안다. 내가 여기서 죽어야 광주가 영원히 패배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역사적인 순간 그런 선택과 결단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질문 받겠습니다. -p31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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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읽었습니다. 마음산책 '말' 시리즈 입니다. 예전에 <보르헤스의 말>도 읽었는데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도 즐겨보게 될 것 같습니다.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멋진 말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녀는 나치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 정치이론가, 철학자입니다. 그녀의 말들을 이 책을 통해서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의 저작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도전해보겠습니다.

 

 다음은 한나 아렌트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무시무시한 청소년시절을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가우스   당신은 마르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이데거교수와 볼트만 교수, 야스퍼스 교수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철학이 전공이고 신학과 그리스어가 부전공이었죠. 이런 과목들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요?

 

 아렌트     나도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종종 생각해보고는 해요. 내가 장차 철학을 공부할 거라는 사실을 늘 알고 있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열네 살 때 이후로 쭉 그랬어요. 

 

 가우스    왜죠?

 

 아렌트    칸트를 읽었거든요. 왜 칸트를 읽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는데, 내 입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왠지 이런 것 같아요. 내게 그건 철학을 공부하거나 물에 몸을 던지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였다고요. 그렇다고 내가 목숨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앞서 말했듯 나한테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 욕구가 무척 어린 나이에도 있었어요. 우리 집 서재에는 온갖 책이 다 있었죠. 읽고 싶은 책을 책장에서 꺼내기만 하면 됐어요.

 

 가우스    칸트를 제외하고, 특별한 체험으로 남은 책들을 기억하나요?

 

 아렌트    예. 우선, 내 기억에는 1920년에 출판된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이요. 열네 살 때였어요. 그러고는 키르케고르를 읽었는데 그 책이 나하고 너무 잘 맞았어요.

 

 나와는 다른 별 사람같다. 굳이 열네살때 자신이 무엇을 읽었는지는 떠올려보지 않도록 합시다.

 

 다음은 아렌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를 알게 된 충격이 담긴 인터뷰입니다.  P50-51페이지에 수록된 글입니다.

 

 가우스    모어를 망학한 사례들 말인데요. 당신은 이게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 결과라고 보나요?

 

 아렌트    그래요. 그런 일이 대단히 자주 일어나요. 나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서 그렇게 된 사례들을 직접 봐왔어요. 그러니까 말인데, 1933년이라는 해는 결정적인 시기가 아니었어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어요. 결정적인 시기는 우리가 아우슈비츠에 관해 알게 된 날이었죠.

 

 가우스    그게 언제였나요?

 

 아렌트    1943년이었어요. 우리는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남편이랑 나는 나치 일당은 무슨 일이건 저지를 자들이라고 늘 말해왔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얘기만큼은 믿지 않았어요. 군사적으로 볼 때 불필요한 데다 부적절한 일이었으니까요. 남편은 전직 군사학자예요.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한 이해력이 좋아요. 남편은 그런 말에 넘어가지 말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 인간들이 그 정도까지 막갈 수는 없다고요! 그러다 반년쯤후에 우리는 결국 그 얘기를 믿게 됐어요. 증거가 있었으니까요. 충격이 정말로 컸어요. 우리는 그 사건 전에는 "그래, 사람에게는 누구나 적敵이 있게 마련이지" 하고 말했어요. 그건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람이 적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그런데 이건 달랐어요. 정말이지 거대한 심연이 열린 것만 같았어요. 우리는 어느 시점이 되면 정치적으로 만사에 대한 보상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다른 만사에 대한 보상책도 그럭저럭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는 아니었어요. 이건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에요. 단순히 희생자의 규모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런 짓을 자행한 방법, 시신 훼손 등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와 관련해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에요. 거기서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우리 중 어누 누구도 그걸 용납할 수 없었어요. 당시 일어난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라면, 그 시절이 때때로 꽤나 힘들었다고 말해야겠네요. 우리는 대단히 가난했고, 추적의 대상이었고, 도망 다녀야 했고, 어떻게든 상황을 헤쳐 나가야 했어요. 그 시절은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젊었어요. 심지어 나는 그런 상황에서 약간은 재미를 느끼기도 했어요- 그 점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이 사건은 달랐어요. 이 사건은 차원이 완전히 달랐어요.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모두 감내 할 수 있었어요.

 

 

   다소 어렵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읽기가 꺼려지는 책들입니다. 아직 제가 읽기에 어려울 것 같아 두렵습니다. 요즘 너무 쉬운 책들, 흥미 위주의 책들만 읽고 있습니다. 어려운 책들도 도전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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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렌트가 말한 `비판적 사유는 적대적 태도`라는 생각을 다르게 봅니다.

사람들은 비판하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비판하는 일이 공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자신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공격 받을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친한 사람에게도 비판하기를 꺼려해요. 비판적 사유가 적대적 태도와 동일시하면, 비판적 사유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8-22 14:48   좋아요 1 | URL
무엇에 대한 적대적 태도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태도인지, 상대방의 의견이나 주장에 대한 적대적 태도인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비판적 사유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주장에 대한 적대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4대강은 좋은 것이여~˝ 라고 말했을때, 그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일단 그 의견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cyrus님 말씀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아니라는 말씀같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기 때문에, 건전한 토론이나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cyrus님의 의견에 적대적 태도를 취한 것이지 절대 cyrus님에 적대적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닙니다^^ cyrus님도 이 부분을 지적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쌩 2016-08-22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에서는 철학을 전공하려면, 철학외 전공을 복수로 택해야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단일 전공으로 비판적 사유를 기를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수험식공부가 전부인 한국에서 어릴적부터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할수 있는 환경이 가능할까요.
저도 이책을 읽었는데 조금은 지루했어요 ^^

고양이라디오 2016-08-22 21:14   좋아요 0 | URL
한국은 중고등학교는 주입식, 수험식 교육, 대학공부도 다른 과는 모르겠지만, 저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공부는 조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지도 않았지만요. 한국 교육이 많이 바뀌길 바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렌트 읽기가 만만치는 않으실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예루살람.. 권합니다. 셋 중 가장 편한 저작입니다. 읽는데 부담이 없어요..

고양이라디오 2016-08-22 21:12   좋아요 0 | URL
사실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입니다. 읽는데 부담되서 접어두었지만요...ㅠㅋ
이번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읽고나니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고침 - 열 번째 인터뷰 특강 인터뷰 특강 시리즈 10
은수미 외 5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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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고침' 이란 단어 참 잘만든 단어다. 인터넷이 먹통일때, 혹은 현재보고 있는 페이지를 업데이트하고 싶을때, 우리는 새로고침 아이콘을 클릭한다. 마법같이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된다. 변화가 일어난다.

 살다보면 일상의 반복으로 삶이 지겨워질때가 있다. 반드시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 일주일, 한달을 반복한다. 업데이트가 없는 삶, 새로고침이 되지 않는 삶.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그럴 땐 변화가, 신선한 공기의 수혈이 필요하다. 습관을 깨고, 일상을 탈출하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한겨례인터뷰특강시리즈 그 열번째 주제는 '새로고침' 이다. 자신의 삶을 새로고침한 명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뇌과학자 정재승씨는 왜 우리의 뇌는 새로고침이 어려운지 알려준다. 6명의 강연자들은 각각 인권, 노동, 정치, 자아실현, 자유, 공존 등의 개념을 업데이트해준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자극을 싫어하고 안정적이고 통제된 상황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신선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때가 새로고침이 필요한 시기다. 

 한겨례인터뷰특강은 내가 애독하는 시리즈이다. 볼 때 마다 배우는 것, 얻는 것이 많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저자들도 많고, 이 시리즈를 통해 읽게 된 책들도 많다. 이번 시리즈도 훌륭했다. 특히나 내게 새로고침된 것 중 하나는 보수도 정의롭고 올바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표창원, 윤여준 두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자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많이 바꿔주었다. 보수=기득권, 이란 사고방식에 너무 빠져있었다. 이런 보수주의자들이 많다면 한국 정치, 한국 사회는 훨씬 정의롭고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재승, 홍세화씨. 그리고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은수미, 박래군씨, 정의로운 보수주의자 윤여준, 표창원씨. 모두 좋은 강연이었다.

 표창원씨와 홍세화씨는 저서로 다시 만나보고 싶다. 이 책과 한겨레인터뷰특강시리즈를 추천한다. 그대의 지식을, 그대의 삶을 새로고침하는 계기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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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8-19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사상가 후루야 미노루는 작품마다 리셋버튼이란 개념을 넣었어요 ㅎ 새로고침과 비슷한 개념이에요 ㅋ 다시 돌리는 것이죠 ㅎ 저도 항상 새로 고침하고 싶습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16-08-20 10:51   좋아요 0 | URL
주성치사진 정겹네요ㅎㅎ 반갑습니다 루쉰P님 저도 항상 새로고침해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루야 하면 이나중 탁구부 말씀하시는 거죠 ?

루쉰P 2016-08-19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맞습니다 ㅋ
 















 1년 반에서 2년 전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을 읽었습니다. 그당시 제겐 굉장히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돈과 자기자신에 대한 가치관이 뒤바뀌는 듯 했습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은 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매우 오랫동안 미루고 미루다 이제 다시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구체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배울점은 많습니다. 금융지성과 돈과 일에 대한 가치관을 바로잡아 줍니다. 자산과 부채의 차이를 알게됩니다. 봉급생활자, 자영업자.전문직, 사업가, 투자가의 차이에 대해 알게됩니다. 그들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 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냐에 달려있다는 것들을 배웁니다. 좋은 경제교육서입니다. 














마르시아 브라운의 <돌 수프>, 리더쉽에 관한 책입니다. 












 



 

 토머스 스탠리의 <이웃집 백만장자>입니다. 평균적인 미국의 백만장자는 자영업을 하고, 검소하게 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합니다. 그런 삶을 보여줍니다.



 아래 글들은 부자아버지의 조언입니다. 되새겨 볼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부자 아버지는 자신이 늘 사용하는 중요한 규칙을 나에게 설명했다. "너의 수익은 네가 살 때 만들어진다. 결코 네가 팔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p180 


 요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견>으로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실>로 결정하지 않고 말이다. 사람들의 삶이 바뀌려면 먼저 의견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사실들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재무제포를 읽을 수 있으면 기업의 경제적 성공 사실들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개인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즉시 알 수 있다. 자신이나 누군가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사실에 의거해서 말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반드시 나은 것은 아니다. 삶에서 성공하려면, 특히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그런 차이를 알아야만 한다. 어떤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것은 의견에 불과하다. 경제적 무지는 사람들이 숫자를 읽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의 의견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경제적 재앙은 의견을 사실로 사용할 때 일어난다. 사분면의 오른쪽에 있고 싶다면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알아야만 한다. 이것보다 중요한 교훈은 없다. -p185


 요약하면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알고, 사실에 입각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나폴레언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입니다. 저자가 읽기를 권하는 책입니다. 나폴레언 힐의 책도 한 번 읽고 보고 싶습니다. 성공에 관한 책은 보지 말라고 어느 저자가 말했지만, 아직은 보면 배울점들이 많습니다. 

 














 

 다니얼 골먼의 <EQ 감성지능> 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IQ보다 EQ가 훨씬 중요하다는 책입니다. 이 책도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왼쪽 사분면(봉급생활자, 자영업자, 전문직)에서 오른쪽 사분면(사업가, 투자가)으로 이동할 때 우리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경제적으로 자라야 한다. 부모나 아이가 되는 대신에 우리는 성인으로서 돈과 일, 그리고 투자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것을 하는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해도 말이다. -p228 


 















 돈과 위험 관리에 관해서 저자가 추천하는 책입니다. 알렉산더 엘더박사의 <삶을 위한 거래>입니다. 한국어 번역된 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이라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바보같은 책이라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업가, 투자가가 되어 돈과 시간, 경제적인 자유를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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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한나 아렌트 지음, 윤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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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의 말>이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예전에 <보르헤스의 말>을 즐겁게 읽었다. <한나 아렌트의 말>도 역시 즐겁게 읽었다. 허나, 둘 다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다. 특히 <한나 아렌트의 말>이 좀 더 어려웠다. 배경지식이나 개념어 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많은 부분 놓친 것 같다. 초중반부까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중후반부는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내용이 어려워서인지 독해력이 많이 떨어졌다. 후반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인터뷰라서 비교적 쉽고 편하게 읽혔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재판으로 유명해진 정치학자, 철학자이다. 이 인터뷰집은 그녀의 지성이 돋보이는 책이고, 그녀의 삶과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인터뷰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터무니없이 멍청했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의 의견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악의 평범성' 이란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악의 평범성' 이란 악이 평범하다는 것도, 악이 흔하다는 것도 아니다.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본문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심오하지 않다는 뜻이다. 즉, 아무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멍청하다는 말이다. 자신의 행동이 남들에게 어떤 결과로 작용하는지 멈춰서 사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백만명의 죽음을 처리한 아이히만에겐 죄책감이라고는 전혀없었다. 그에게 수백만명의 목숨은 단지 숫자에, 업무상의 처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오히려 미안하게 느낀점은 어느 유대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고 한다. 유대인 여자의 뺨을 때린 것과 600만명의 유대인의 죽음 중 어느것을 더 미안하게 느껴야하는지 그는 끝까지 몰랐다. 


 내가 두려웠던 점은 아이히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해줘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소름끼쳤다. 어느 인문학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한나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나는 속으로 그들이 터무니없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이히만의 행동에서 어떤 잘못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시스템 운운하고, 상대적인 도덕관 운운하는 그들은 내가 보기에 아이히만과 같은 입장에 처하면 똑같은 행동을 저지를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리고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애기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이히만의 행동은 그 사회의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야기했고, 도덕이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먼 미래에는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혹은 승자의 논리에 따라서도) 그들의 말대로 우리의 도덕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도덕은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진 규칙이다. 도덕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침팬지들에게 영아살해는 도덕적이지 않으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칠 수 없다. 침팬지들에게는 그들만의 사회적 규칙들이 있다. 침팬지들에게는 침패지들만의 세계가 있고, 사마귀에게는 사마귀만의 세계가 있다. 인간에게는 인간들만의 세계와 규칙이 있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인간들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일원이다. 따라서 과거나 미래, 혹은 침팬지의 도덕을 현시점의 우리에게 적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도덕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머나먼 훗날에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알 수 없다. 머나먼 미래에는 제노사이드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백번양보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나 과거에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해서 현재 그 행위가 정당화 되지 않는다. 어떤 살인자가 법정에서 "도덕이란 상대적인거요. 100만년 후에는 살인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될꺼요." 라고 말하면 운좋게 정신병원으로 이송될 수는 있겠지만,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 아이히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고, 아니면 죄책감으로 괴로워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무런 사유도 없었다. 사유하지 않음이 그에게 가장 큰 죄다. 


 사유하지 않음이 죄라는 것을, 한나 아렌트만큼 명확히 설명해주는 철학자는 없다. '악의 평범성' 이란, 어리석음이고, 어리석음은 사유하지 않음이다. 악은 사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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