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한겨례인터뷰특강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를 읽었습니다. 굉장히 좋았습니다. 훌륭한 강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제는 '선택' 입니다. 저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이라서 소개합니다.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읽으니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젠더에 따른 차별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젠더에 따른 차이는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여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힘이 세고 키가 큽니다. 여기서 일반적이란 단어에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셉니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차이들은 인식해야합니다. 여기에서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무엇이 생물학적인 차이고, 무엇이 문화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의 차이인지 혼동스럽습니다. 혹은 '일반적'이라는 단서가 붙는 차이들이 '모든' 상황에 적용됩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작용해버립니다. 아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남성은 좀 더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때문입니다. 여성은 보다 덜 공격적이고 위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어떤 여성은 남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은 일반적, 확률적,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반성때문에 우리는 종종 개별 사례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을 뽑아야하는데, 그 자리는 공격성과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이 때 두 명의 지원자가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젠더의 차이가 아닌 두 개인의 차이에 주목해야합니다. 그래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남성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다고 해서 두 명의 지원자 중에 꼭 남성이 다른 지원여성보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한다고 여겨져서는 안됩니다. 두 명의 지원자의 성향을 분석해서 누가 더 적합한지 결정해야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손가락을 보시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요. 두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의 비율이 성 기관이 아닌 인간의 기관 중에서 남녀의 차이가 있는 유일한 비율입니다. 보통은 남성이 약지, 네 번째 손가락이 더 길고 두 번째 손가락이 짧은데요. 임신 13주차 때,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많아지면 네 번째 손가락이 길어집니다. 네 번째 손가락이 길수록 위험감수 성향이 강해 로또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여성분들 중에서도 네 번째 손가락과 두 번째 손가락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네 번째 손가락이 더 긴 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분들은 로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보통은 네 번째 손가락이 길면 길수록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굉장히 남성중심사회잖아요. 대개 두 번째 손가락이 길수록 좀 더 여성성이 강화되어 있고, 네 번째 손가락이 길수록 남성성이 강화되어 있다고 지금까지 논문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손가락을 한번 보시지요. 그렇다고 넷째손가락을 잡아 당기지는 마시고요.(웃음) -p222~223, 정재승

 

 

 

 

 

 

 

 

 

 

 

 

 

 

 

 

 정재승씨가 강연에서 소개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입니다. 요즘 <행복의 특권>을 매우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긍정의 힘' 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균형잡힌 사고를 위해 <긍정의 배신>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 분이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소개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자    우리가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말고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도 실로 중요합니다. 구한말 때 친일을 선택한 자들, 구구하게 말할 것 없이 잘못된 선택이죠. 반대로 의로운 길을 택한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자주생각해봐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물론이고,1980년 광주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만해도 그렇습니다. 윤상원은 항쟁 최후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마지막날 도청 2층에서 친구가 그에게 왜 여기 남으려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건 똑같다. 새벽이면 이제 죽으리란 걸 안다. 내가 여기서 죽어야 광주가 영원히 패배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역사적인 순간 그런 선택과 결단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질문 받겠습니다. -p31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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