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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ㅣ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한나 아렌트 지음, 윤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월
평점 :
<한나 아렌트의 말>이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예전에 <보르헤스의 말>을 즐겁게 읽었다. <한나 아렌트의 말>도 역시 즐겁게 읽었다. 허나, 둘 다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다. 특히 <한나 아렌트의 말>이 좀 더 어려웠다. 배경지식이나 개념어 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많은 부분 놓친 것 같다. 초중반부까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중후반부는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내용이 어려워서인지 독해력이 많이 떨어졌다. 후반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인터뷰라서 비교적 쉽고 편하게 읽혔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재판으로 유명해진 정치학자, 철학자이다. 이 인터뷰집은 그녀의 지성이 돋보이는 책이고, 그녀의 삶과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인터뷰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터무니없이 멍청했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의 의견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악의 평범성' 이란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악의 평범성' 이란 악이 평범하다는 것도, 악이 흔하다는 것도 아니다.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본문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심오하지 않다는 뜻이다. 즉, 아무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멍청하다는 말이다. 자신의 행동이 남들에게 어떤 결과로 작용하는지 멈춰서 사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백만명의 죽음을 처리한 아이히만에겐 죄책감이라고는 전혀없었다. 그에게 수백만명의 목숨은 단지 숫자에, 업무상의 처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오히려 미안하게 느낀점은 어느 유대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고 한다. 유대인 여자의 뺨을 때린 것과 600만명의 유대인의 죽음 중 어느것을 더 미안하게 느껴야하는지 그는 끝까지 몰랐다.
내가 두려웠던 점은 아이히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해줘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소름끼쳤다. 어느 인문학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한나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나는 속으로 그들이 터무니없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이히만의 행동에서 어떤 잘못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시스템 운운하고, 상대적인 도덕관 운운하는 그들은 내가 보기에 아이히만과 같은 입장에 처하면 똑같은 행동을 저지를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리고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애기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이히만의 행동은 그 사회의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야기했고, 도덕이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먼 미래에는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혹은 승자의 논리에 따라서도) 그들의 말대로 우리의 도덕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도덕은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진 규칙이다. 도덕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침팬지들에게 영아살해는 도덕적이지 않으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칠 수 없다. 침팬지들에게는 그들만의 사회적 규칙들이 있다. 침팬지들에게는 침패지들만의 세계가 있고, 사마귀에게는 사마귀만의 세계가 있다. 인간에게는 인간들만의 세계와 규칙이 있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인간들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일원이다. 따라서 과거나 미래, 혹은 침팬지의 도덕을 현시점의 우리에게 적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도덕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머나먼 훗날에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알 수 없다. 머나먼 미래에는 제노사이드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백번양보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나 과거에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해서 현재 그 행위가 정당화 되지 않는다. 어떤 살인자가 법정에서 "도덕이란 상대적인거요. 100만년 후에는 살인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될꺼요." 라고 말하면 운좋게 정신병원으로 이송될 수는 있겠지만,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 아이히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고, 아니면 죄책감으로 괴로워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무런 사유도 없었다. 사유하지 않음이 그에게 가장 큰 죄다.
사유하지 않음이 죄라는 것을, 한나 아렌트만큼 명확히 설명해주는 철학자는 없다. '악의 평범성' 이란, 어리석음이고, 어리석음은 사유하지 않음이다. 악은 사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