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동화는 내 친구 19
미야자와 겐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이종미 그림 / 논장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32

 


맑은 눈빛 숲아이
―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미야자와 겐지,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2000.10.10./7000원

 


  숲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숲노래를 부릅니다. 숲노래에는 숲내음 실리고, 숲빛 감돌며, 숲무늬 어여쁩니다. 숲노래는 숲사람 누구나 듣습니다. 숲노래는 숲벌레와 숲짐승도 함께 듣습니다.


  들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들노래를 부릅니다. 들노래에는 들내음과 들빛과 들무늬 곱게 어우러집니다. 들노래는 들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들벌레와 들짐승도 나란히 듣지요.


  바다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바다노래를 불러요. 멧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멧노래를 불러요. 아이들은 저마다 이녁 삶터에서 노래를 부르지요. 가장 고운 목청을 뽑아 가장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 겐쥬는 항상 새끼줄을 허리에 매고, 싱글벙글 웃으며 숲속이나 밭고랑을 느릿느릿 걸어다녔습니다. 빗속의 푸른 대숲을 보면 좋아서 눈을 깜박깜박하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아가는 매를 발견하면 깡충거리며 손뼉을 쳐서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겐쥬를 몹시 얕잡아보고 놀려댔기 때문에, 겐쥬는 점점 웃지 않는 척하게 되었습니다 … “겐쥬, 오늘도 숲을 지키고 있군.” 도롱이를 입고 지나가던 사람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삼나무에는 짙은 밤색 열매가 열리고, 당당한 초록빛 가지 끝에서는 차갑고 맑은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습니다. 겐쥬는 입을 한껏 벌리고 하아하아 가쁜 숨을 쉬었습니다. 겐쥬의 몸이 빗속에서 김을 내며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  (8, 15∼16쪽)


  오늘날 한국 아이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거의 안 남았습니다. 마을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아요. 호젓한 두멧자락에서 멧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닫고 새벽을 여는 아이가 매우 드뭅니다. 이제, 이 나라 아이들 거의 모두는,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멧골이 들려주는 노래를 알지 못한다 할 만해요. 이제, 이 나라 아이들 거의 모두는, 스스로 숲노래도 들노래도 바다노래도 멧노래도 부르지 못해요.


  그런데, 아이들 어버이부터 숲노래를 안 부릅니다. 아이들 어버이부터 들노래를 잊고 바다노래를 잊으며 멧노래를 잊어요. 어른들 스스로 시골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지 못해요. 어른들 스스로 시골에서 놀고 일하는 웃음꽃 피우지 못해요. 어른들부터 맑은 숨결 누리지 않으면, 아이들은 맑은 숨결 받아먹지 못합니다. 어른들부터 밝은 눈빛 밝히지 않으면, 아이들은 밝은 눈빛 어떻게 밝히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함께 걸어가는 길이에요. 같이 손을 잡는 길이에요.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이지요. 나란히 춤을 추며 노래하는 길입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사랑을 노래합니다. 꿈을 노래합니다. 오직 이 세 가지를 노래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언제나 새롭게 마시는 바람을 고마이 들이켭니다. 늘 새삼스레 내리쬐는 햇살을 따사로이 받아먹습니다. 노상 푸르게 피어나는 풀과 나무와 꽃을 싱글벙글 웃으며 들여다봅니다.


.. 네 명의 농부들은 저마다 저 좋은 쪽에 대고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에 밭을 일구어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숲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집을 지어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숲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네 사람이 또다시 한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여기에 불을 피워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  (81쪽)


  아이들한테 숲소리를 돌려주셔요. 그리고, 어른들 스스로 숲소리를 되찾아요. 자동차에 열쇠 꽂아 부릉거리는 소리 말고, 새벽을 여는 소리를 되찾아요. 아이들한테 자동차 부릉거리는 소리 말고 멧새 소리를 돌려주셔요. 자동차 발판을 꾸욱 밟으며 부릉거리며 달리는 소리 말고 냇물 쪼르르 흐르는 소리를 돌려주셔요. 자동차 끼익 세우는 날선 소리 말고 풀벌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돌려주셔요.


  아스팔트와 시멘트 걷고 흙땅을 되찾아 주셔요. 흙땅에 온갖 들풀 흐드러지도록 돌려주셔요. 흙땅에 나무들 씩씩하게 뿌리내려 오백 해 오천 해 우람하게 자라도록 돌려주셔요. 새벽과 멧새와 개구리와 푸나무 모두,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 스스로 기쁘게 누려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움이에요. 돈으로 사로잡지 못하는 사랑이에요. 돈으로 홀리지 못하는 꿈이에요. 아름다운 삶은 사랑과 꿈으로 일구어요.


  돈으로는 도시를 지어 물질문명사회 이룩하겠지요. 돈으로는 높은 건물 시멘트와 쇠붙이로 척척 올리겠지요. 돈으로는 더 비싸고 커다란 자가용 만들겠지요. 돈으로는 더 커다랗고 번쩍거리는 놀이공원이나 관광단지 짓겠지요.


  그러면, 돈으로 무엇을 누리나요. 돈으로 닦고 세우고 만들고 놓고 지은 곳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누리나요. 수천 억원 들인 길다란 다리를 수천만 원 자가용 몰아 씽 하고 건너면 무엇을 누리나요. 수천 억원 들인 고속도로를 수천만 원 자가용 몰아 쌩 하고 달리면 무엇을 누리나요.


  마음을 기울여 보살핀 숲길을 걸어요. 주머니에 든 것 모두 내려놓고 맨몸으로 아이 손을 잡고 숲길을 걸어요. 숲은 우리한테 돈을 내라 하지 않아요. 숲은 우리더러 신분증이나 졸업장을 보여주라 하지 않아요. 숲은 우리한테 잘생기고 못생기고 따지지 않아요. 숲은 우리더러 사내냐 가시내냐 금을 긋지 않아요.


.. 그 새벽녘 하늘 밑, 낮에는 새들도 가지 않는 높은 곳을 날카로운 서리 조각이 바람에 실려 사락사락 사락사락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희미한 소리가 언덕 위의 한 그루 은행나무한테도 들릴 만큼 맑은 새벽입니다. 은행 열매는 모두 한꺼번에 눈을 떴습니다. 모두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늘은 진짜로 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다들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  (118쪽)


  미야자와 겐지 님 어린이문학을 그러모은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논장,2000)을 읽습니다. ‘숲아이’ 겐쥬가 나오고, ‘숲동무’한테서 노래를 배우는 고슈가 나옵니다. 숲아이 겐쥬는 마을에 없는 숲을 스스로 돌보고 건사하면서 아끼다가 아주 어린 나이에 몸져눕다가 숨을 거둡니다. 숲동무를 만나며 쳇쳇거리던 고슈는 숲동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녁이 억지로 악기를 켤 때에는 왜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지 못하는가를 깨닫습니다. 고슈는 어느새 ‘숲어른’으로 거듭납니다.


  겐쥬도 고슈도, 곧 숲아이도 숲어른도, 마음속에 사랑을 채울 때에 그지없이 사랑스러워요. 마음속에 꿈을 실을 때에 더없이 홀가분히 날갯짓하는 꿈노래 불러요.


.. “다르긴 뭐가 달라.” “그럼, 당신이 모르는 거예요. 우리 뻐꾸기는 뻐꾹 하고 만 번을 울어도, 그 만 번이 저마다 다른걸요.” … 고슈는 처음에는 짜증스러웠지만, 한참 켜다 보니 어쩐지 새의 음이 진짜 도레미파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37, 140쪽)


  맑은 눈빛이 될 적에 맑은 사랑을 합니다. 맑은 사랑을 할 적에 맑은 삶을 가꿉니다. 맑은 삶을 가꿀 적에 맑은 노래를 불러, 맑은 마음 품은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맑은 마음 품은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니, 시나브로 맑은 말마디로 맑은 이야기 나누겠지요.


  온누리를 밝히고 지구별 보살피는 힘은 바로 맑은 눈빛으로 꿈꾸는 사랑에서 비롯합니다. 숲을 생각해요. 숲에서 살아요. 숲을 돌봐요. 숲을 가슴으로 포옥 얼싸안으면서 환하게 웃어요.


  미야자와 겐지 님은 ‘숲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숲아이’를 꿈꾸듯 글을 썼어요. 지식으로 쓴 글이 아니라 숲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쓴 글이에요. 교육이나 훈육이나 감동이나 교훈 같은 것을 내세우는 동화가 아닌, 숲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시골에서 살며 숲을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흙을 사랑하기를 꿈꾸면서 숲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숲바람 마시고 숲동무 사귀면서 이야기꾼이 됩니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사람은 멧새 새벽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열었고, 멧새 저녁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닫았어요. 4346.6.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맑은 어린이책 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06-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 이 책 너무 좋을 듯 해요~^^
제목도 책표지 그림도 내용도 다 막~끌리네요.
감사히 잘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06-20 10:47   좋아요 0 | URL
미야자와 겐지 님 동화책은 다 좋아요.
그런데 출판사에 따라
이리저리 뒤죽박죽이더라고요.
또한, 번역자에 따라 이래저래 뒤숭숭하고요.

저는 이 책을 사기는 했지만
번역이 그렇게까지 아름답지 못했어요.

앞으로 누군가 겐지 동화선집이나 동화전집을
제대로 번역해서 어린이 눈높이로 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답니다..
 
동심에서 건져 올린 해맑은 감동, 동시 쓰기 새로운 글쓰기의 보고 세상 모든 글쓰기 (랜덤하우스코리아) 13
이준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32

 


동시쓰기와 동시읽기는 무엇인가
― 동심에서 건져올린 해맑은 감동, 동시쓰기
 이준관 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207.12.7./7500원

 


  사랑을 생각합니다. ‘사랑’이라 할 때에 무엇이 떠오르는지 가만히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어떠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 느낌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는, 맨 처음으로 ‘따스함’이 떠오릅니다. 다음으로, ‘좋다’가 떠오르고 ‘웃음’이 떠오릅니다. ‘기쁨’이 뒤따릅니다. ‘환한 빛’이 떠오르고 ‘무지개’와 ‘빗방울’과 ‘개구리 노랫소리’와 ‘제비 먹이 물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꿈을 생각합니다. ‘꿈’이라 할 때에 무엇이 떠오르는지 찬찬히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꿈을 어떻게 바라볼는지 모릅니다. 나는 내 느낌만 짚을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햇살’이 떠오릅니다. 다음으로, ‘즐겁다’가 떠오르고 ‘노래’가 떠오릅니다. ‘어깨동무’가 떠올라요. ‘빛살’과 ‘노을’과 ‘새벽’이 떠오릅니다. ‘보람’과 ‘땀방울’이 나란히 떠올라요.


.. 사랑은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이다. 그리고 남의 아픔을 달래고 감싸 주려는 마음이다. 동시를 쓰는 마음은 무엇보다도 남의 아픔을 달래고 감싸 주려는 사랑의 마음이어야 한다 ..  (35쪽)


  동시쓰기를 가르치는 분도 제법 있고, 동시쓰기 강의를 하거나 책을 내는 분이 더러 있는데, 나는 동시쓰기를 가르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뿐 아니라 어른시도 ‘어른시쓰기’를 가르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동시읽기도 가르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어른시읽기’도 가르칠 수 없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시를 쓸 적에는 ‘마음’을 ‘글’로 옮기기 때문에, 마음을 어떻게 그리라고 가르치거나 알려줄 수 없어요. 글을 쓴 사람 마음이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따지거나 재거나 나무라거나 추켜세울 수 없어요.


  오직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시 즐기기’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느 것도 가르칠 수 없지만, ‘시를 즐겁게 쓰기’하고 ‘시를 즐겁게 읽기’, 이렇게 두 가지만 가르칠 수 있다고 느껴요.


  이준관 님이 쓴 《동심에서 건져올린 해맑은 감동, 동시쓰기》(랜덤하우스코리아,2007)라는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동시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책을 다 쓰는가 싶어 궁금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준관 님은 ‘사랑’이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라고 적바림하는데, 또 아픔을 달래는 마음이 ‘사랑’이라고 적바림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사랑’을 너무 작고 좁게 바라보는 결이지 싶습니다. ‘사랑’ 가운데 이런 마음이 한 자락 있을 테지만, 사랑은 품이 한결 넓어요.


  이웃사랑, 지구사랑, 아이사랑, 책사랑, 만화사랑, 놀이사랑, 하늘사랑, 바다사랑, 숲사랑, 마을사랑, 나라사랑, 노래사랑, 밥사랑, …… 들을 헤아려 봅니다. 어떤 사랑이 되든 ‘맞은편 마음 헤아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걱정해 주기’란 ‘걱정’이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얕습니다. 달래기, 어루만지기, 감싸기, 같은 느낌도 ‘달램’과 ‘어루만짐’과 ‘감쌈’에서 맴돌 뿐, ‘사랑’으로 와닿기에는 어쩐지 동떨어집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어머니를 사랑해요. 할아버지가 흙을 사랑하고 할머니가 나무를 사랑해요. 나무가 사람을 사랑하고, 숲이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이 숲을 사랑하고, 사람이 하늘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한결 넓으면서 깊게 바라볼 때에, 동시를 쓰는 마음이란 어떠한 결인가를 새롭게 깨닫거나 느끼리라 봅니다.


.. 동시를 쓰는 사람들이 가장 고심하는 것이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소재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시의 소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주변에 있다 ..  (53쪽)


  나는 글을 쓰면서 ‘걱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걱정을 하자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너무 마땅합니다. 걱정이 넘치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까 걱정한다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있을 때에 글을 쓰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도 없는데 ‘글 쓸 거리’를 찾거나 끌어당긴대서 ‘글이 되’지 않아요.


  곧,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그러니까 ‘글’을 쓰려면 ‘쓸거리(소재)’ 아닌 ‘이야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깨달을 때에 글을 씁니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알아차릴 때에 글을 읽습니다.


  글읽기(책읽기)는 아무나 못 합니다. 글읽기(책읽기)는 참말 아무렇게나 못 합니다. 누군가 베스트셀러나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를 선물해 주었기에 하는 글읽기(책읽기)가 아니에요. 글(책)을 읽으려 한다면, 그 글(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을 스스로 먼저 느껴야 하고, 그 글(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떻게 다스려서 새롭게 거듭나고 싶은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글(책)로 읽고 싶은 ‘이야기’를 모르는 채 글(책)만 붙잡는다면 아무것도 못 얻어요. 얻을 수 있는 한 가지라면 ‘아무것도 못 얻는다’는 대목만 얻지요.


  다시 말하자면, 쓸거리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쓸거리는 “생활 주변에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쓸거리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쓸거리란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니, 내 마음속에서 길어올려야 합니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내 삶 언저리’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머나먼 곳에 있는 낯선 나라 낯선 마을 모습과 삶’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찾든,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일 때에 글(동시, 어른시, 동화, 소설, 산문)을 쓸 수 있어요.


.. 눈으로 보는 것은 구경꾼이나 관찰자에 불과하다. 한발 비켜서 있는 구경꾼의 글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 어렵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했거나 해 본 일은 그 감동이나 느낌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  (74쪽)


  나는 눈으로 바라보기를 좋아합니다. 눈만큼 ‘큰 경험’이 없습니다. 씨앗을 눈으로 보고, 밥물 끓는 모습을 눈으로 봅니다.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하루 내내 눈으로 지켜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아이들과 함께 달리면서, 우리 보금자리 깃든 전남 고흥 어여쁜 마을살이를 눈으로 살펴봅니다.


  눈으로 실컷 누리면서 코로 맡습니다. 씨앗내음을 맡고, 밥물 끓는 내음을 맡습니다. 아이들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들 옷에 때나 땀이나 얼룩이 얼마나 묻었나 냄새를 맡습니다. 시골길 다니며 들내음과 숲내음과 바다내음 맡습니다.


  그리고, 살갗으로 헤아립니다. 마음으로 살핍니다. 나를 둘러싼 이 아름다운 누리를 모든 세포를 깨워서 낱낱이 느낍니다. 좋은 느낌을 찾고, 즐거운 빛을 살피며, 반가운 꿈을 돌아봅니다.


  눈으로 바라본대서 ‘구경꾼’이 아닙니다. 구경꾼이란 ‘뒷짐 진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인데, 아이를 돌보는 몫을 어머니한테만 떠맡기고 바깥으로만 나돌거나 집에서 아이들 보살피는 몫 건사하지 않는 여느 아버지들이 바로 ‘구경꾼’입니다. 빨래 안 하고, 밥 안 지으며, 청소 안 하고, 아이들 자장노래 안 불러 주는 수많은 여느 아버지들이 바로 ‘구경꾼’이에요.


.. 생활 속에 시가 있다. 생활하면서 느낀 것, 또는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써 보라. 아이들의 생활을 눈여겨보고 시로 써 보고, 어린 시절의 추억도 시로 써 보라.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사물과 동식물들도 재미있게 시로 옮겨 보라 ..  (167쪽)


  글로 쓸 거리란 ‘사람들 마음속에 다 있다’고 느낍니다. 글을 읽어 얻을 생각도 ‘사람들 마음속에 다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동시나 어른시 모두 “생활 속에 시가 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삶에 시가 있다’기보다 ‘내 마음속에 시가 있다’고 말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삶이란 무엇이겠어요. 삶이란 내가 누리는 하루가 모여 이루어지는 이야기예요. ‘이야기’가 ‘삶’이에요. 그러면, 이야기란 또 무엇이겠어요.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이야기예요. 곧 ‘마음’이 ‘이야기’입니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라 하는 이야기란 또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이지요.


  사랑을 들려주고 싶기에 글(시)을 씁니다. 사랑을 듣고 싶기에 글(책)을 읽습니다. 실마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글(시)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이 실마리를 잘 깨우친 분이라고 느낍니다. 윤동주 님도, 이원수 님도, 권정생 님도, 임길택 님도, 바로 이 같은 실마리를 슬기롭게 깨우쳤어요. 이분들은 한결같이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고픈 ‘마음’을 살찌우고 아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고픈 마음을 살찌우고 아끼는 하루를 가다듬으며 ‘삶’을 일구었어요. 언제나 스스럼없이 글(시)이 샘솟지요. 꾸며서 쓰는 글(시)이 아니라, 싱그럽게 노래하며 쓰는 글(시)이에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현덕, 백석, 권태응 같은 분들이 노래한 이야기도 바로 이러한 ‘삶노래’이고 ‘사랑노래’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꾸준하게 넘실거리는데, 왜 “어린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히는가요.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노래가 자꾸자꾸 넘치는데, 굳이 “생활 주변에 있는 사물과 동식물들도 재미있게” 옮기는 글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삶을 써야 글이 맞습니다. 삶을 쓸 때에 시가 됩니다. 그러면, 글이 맞고 시가 되는 ‘삶’이 무엇인지부터 또렷이 살펴야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마음,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는 하루와 하루가 모여 ‘삶’이 됩니다.


.. 동시를 쓰려면 준비 단계가 필요하다.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세계와 동심의 세계를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아이들을 잘 알고 좋아해야 한다. 자기가 쓰려고 하는 아이들과 친해야 한다. 아이들과 만나서 친할 기회가 없으면 아이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거나 연구를 해야 한다 ..  (19쪽)


  이준관 님이 쓴 《동심에서 건져올린 해맑은 감동, 동시쓰기》라는 책에는 다른 어느 동시작가 작품보다 이준관 님 작품을 아주 많이 다룹니다. 이준관 님 스스로 동시를 쓰시니, 이녁 작품을 보기로 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동시쓰기 일반론을 펼치려 한다면, 이녁 작품은 되도록 한두 꼭지로만 다루고, 다른 동시작가 작품을 다루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이녁 작품을 보기로 들면서 ‘잘 쓴 글’이라는 말까지 거듭 덧붙이는데, 이렇게 ‘스스로 칭찬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자주 보여주는 일은 좀 남우세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붙이자면, 동시를 쓰려는 사람은 “아이들을 잘 알고 좋아해야” 하기는 할 텐데, 동시를 쓰려는 사람이 “아이들과 만나서 친할 기회가 없”을 수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게다가 “아이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거나 연구를 해야” 한다는 말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이들하고 만나면 되지, 왜 아이들 세계 연구를 하고, 왜 아이들 세계를 학문으로 밝힌 책을 읽으라고 하는가요. 이런 책읽기야말로 ‘구경꾼’ 되는 노릇이지 싶습니다. 스스로 몸으로 겪지 않은 일을 써서는 ‘감동’을 할 만한 동시를 못 쓴다고 책에 밝힌 이준관 님인데, 동시를 쓰려는 사람들한테 책 첫머리부터 ‘구경꾼’이 되라고 말하는 대목은 좀 아찔합니다. 우리 둘레에 아이들이 없어서 ‘책으로 아이들을 연구’해야 할까요.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동시를 쓰는 사람은 모두 어른입니다만, 어른이라는 사람 누구나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에서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사람은 몸뚱이가 어린이하고는 사뭇 멉니다. 그러나, 어린이로 살아온 나날이 몸속 깊이 아로새겨졌습니다. 스스로 내 몸을 돌아볼 수 있다면, ‘내 마음속에 깃든 어린이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이 마흔이나 예순이라 하더라도 나이 여섯이나 아홉 아이들과 똑같이 어울려 뛰놀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속 어린이 모습’을 찾아내어 둘레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면 곧바로 ‘어린이마음(동심)’이 되어요.


  동시를 쓰려는 사람은 스스로 어린이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동시를 쓰려는 사람은 ‘이웃하고 나누고 싶은 사랑’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갈무리하면서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찾지 말아요.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서 찾지 말아요. 아이들을 ‘우리 집’에서 찾아요. 아이들을 우리 삶터와 우리 마을에서 찾고, 다른 어느 곳보다 ‘우리 마음속’에서 아이들을 찾아요. 4346.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 장터 이야기 - 세상과 만나는 작은 이야기
정영신 지음, 유성호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134

 


고무신 꿰는 시골아이
― 시골 장터 이야기
 정영신 글,유성호 그림
 진선출판사 펴냄,2002.3.15./8000원

 


  나는 운동신이나 구두를 못 신습니다. 서른 살까지 어찌저찌 이런 신 저런 구두를 신으며 이럭저럭 버티었는데, 서른 살 때부터 고무신을 만나, 이때부터 언제나 고무신만 신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고무신을 신으며 즐겁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고무신 신을 일이 없었을는지 모릅니다. 내 둘레 아이나 어른 모두 운동신이나 구두를 발에 꿰니 나도 이런 신만 익숙하게 신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도시라 하더라도 저잣거리로 마실을 가면 고무신 만날 수 있어요. 서울이든 인천이든 부산이든, 큰길에 있는 신집 말고 저잣거리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신집으로 찾아가면 어김없이 고무신을 다룹니다.


.. 농사에 필요한 연장을 파는 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립지다. 호미와 낫을 비롯하여 이토록 많은 연장이 시골 농사에 필요하다는 것을 장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물건들입니다 ..  (36쪽)


  요사이에는 ‘고무’로 만든 고무신 말고 플라스틱을 눌러 만든 ‘이름만 고무신’인 ‘플신(플라스틱신)’이 아주 많습니다. 고무로 만든 고무신은 딱딱해서 뒷굽과 앞꿈치 자꾸 까진다며 사람들이 꺼리면서 이제는 예전 고무신은 더는 나오지 않아요. 그나마 고무신 공장이 모두 중국에 있는데, 딱딱한 고무신은 중국에서만 사고팔리는 듯해요.


  서른 살부터 서른아홉 살 오늘까지 줄곧 고무신만 신으며 둘레를 돌아보면, 내 또래 가운데 고무신 발에 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엇비슷합니다. 고무신 발에 꿰는 사람은 시골 할매와 할배 빼고는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저씨나 아주머니조차 내 고무신을 바라보며 “그 고무신 어디서 사요?” 하고 묻기까지 합니다. 읍내 신집이든 면내 신집에 가면 다 있는 고무신인데, 나한테 묻는 사람이 참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요즈음 같은 이 나라에서 저잣거리 신집 찾아가는 젊은 사람 없을 테니, 고무신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모두들 모른다고 할 만하겠지요.


  시골 아닌 도시에서 지낼 적에도 그래요. 도시에서도 오래된 도심 저잣거리 찾아가면 그곳 신집에 고무신 있는걸요. 어른 고무신도 있고 아이 고무신도 있어요. 아이 고무신은 130미리부터 있어요. 우리 아이들 신는 고무신은 도시에서도 사고 시골에서도 사요. 어디에든 다 있어요.


.. 몇 십 년 동안 뻥튀기 장사를 해 온 아저씨의 꿈은 시골마을에 뻥튀기 기계를 마련해서, 장날이 아니라도 아이들이 뻥튀기를 먹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동구 밖에서 아이들의 함성과 함께 기계를 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  (45쪽)


  전남 순천에는 아랫장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큰 저잣거리 있어요. 이곳에서는 저자가 날마다 열려요. 시외버스 타고 순천에 갈 적에 으레 아랫장을 스치는데, 아랫장에는 사람 아주 많아요. 시외버스 타고 고흥에서 순천으로 나오는 길에 벌교를 지나고 보면, 벌교 저잣거리에도 사람이 매우 많아요. 구경하는 사람도 장사하는 사람도 무척 많아요. 고흥하고 고작 한 시간 거리인데, 순천도 벌교도 사람 참 많구나 싶어 놀라요. 왜냐하면, 고흥에서는 오일장이라 하는 장날에도 장터 장사꾼 얼마 없고, 장터 구경꾼 얼마 없거든요. 장날에 볼일 보러 읍내로 나가면 군내버스에 할매와 할배 바글바글 넘쳐 때로는 버스를 못 타기까지 해요. 그렇지만 군내버스에만 사람 가득할 뿐, 저잣거리에도 마을에도 읍내에도 사람은 얼마 없어요.


  도시로 마실을 가서 커다란 가게, 이른바 마트라 하는 데에 들어가면 사람 아주 많아요. 숨이 막히도록 사람이 많아요. 도시에서는 시내라는 데에도 사람 참 많아요. 버스에도 전철에도 온통 사람물결이에요.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스무 층이건 마흔 층이건 높다라니 층집 세우지 않고서는 사람들 지낼 보금자리 마련하지 못하지요. 너무 많은 사람을 너무 좁은 곳에 몰아놓는 바람에,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서로를 알뜰히 여기거나 보살피려는 마음 옅어요. 사람 많아 장사하기 좋다 하기도 하고, 사람 많으니 일거리 많다 여기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외려 사람내음 맡기 어렵기 일쑤예요.


  그러면, 시골에서는 사람내음 구수할까요. 시골이기에 사람내음 따사로울까요.


  잘 모르겠어요. 시골이라서 더 구수하거나 따사롭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디에서건 사람들 스스로 구수한 마음 되려 애쓸 때에 구수한 내음 흐르고, 어디에서라도 사람들 스스로 따사로운 사랑을 가꿀 때에 따사로운 사랑 감돌아요.


  도시에 있는 마트라서 나쁠 수 없고, 시골에 있는 저잣거리라서 좋을 수 없어요. 일하는 사람 마음이 좋을 때에 좋고, 장사하는 사람 마음이 나쁠 때에 나쁠 뿐이라고 느껴요.


.. 이름이 다른 씨앗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한 톨의 씨앗이 훗날엔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어떤 마술사도 하지 못할 일을 자연만은 말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땅을 지키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시골사람들의 정직함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65쪽)


  오늘날 시골에서 고무신 꿰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아예 없다고 해도 좋아요. 군내버스 타고 읍내에 나갈 적이든, 자전거 타고 면내에 나갈 때이든, 고무신 꿴 어린이나 어른은 거의 못 봐요. 마을에서 흙 만지는 할매와 할배는 으레 고무신이거나 맨발이지만, 읍내나 면내를 돌아다니는 분들은 모두 운동신이거나 구두예요. 군내버스 타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상표 있는 운동신이거나 구두예요. 때때로 시골 초·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아이들 바라보아도 하나같이 상표 있는 운동신이거나 구두예요. 아마, 이 시골 아이들 낳아 키우는 시골 어버이도 모두 상표 있는 운동신이거나 구두일 테지요. 흙을 만져도, 시골 젊은 어른들은 고무신하고 사귀지 않아요.


  그리고, 시골 젊은 어른들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지 않아요. 시골 젊은 어른들은 자가용 몰아 ‘시골 마트’를 다녀요. 또는 자가용 몰아 가까운 도시 ‘큰 마트’를 찾아가요. 도시와 가까운 시골이든 두멧자락 시골이든, 젊은 어른들은 자가용하고 사귀어요. 시골마을 젊은 어른들은 시골일 그닥 좋아하거나 즐기지 않아요. 텔레비전을 좋아하고 손전화(요새는 스마트폰)를 즐기지요. 도시나 시골이나 거의 같아요. 도시나 시골이나 흙하고는 멀어져요. 도시나 시골이나 학교에서는 흙을 보여주지 않고 말하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아요. 도시 학교나 시골 학교나 흙운동장 그대로 두지 않고, 인조잔디나 아스콘을 깔려고 해요.


.. 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 많아서 아주머니들은 철따라 나는 산나물을 가지고 나와서 팝니다. 주변 마을의 소식이 궁금한 아주머니들은 빙 둘러앉아서 그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는 모습이 다정해 보입니다 ..  (87쪽)


  정영신 님 글과 유성호 님 그림으로 이루어진 《시골 장터 이야기》(진선출판사,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에 깃든 유성호 님 그림은 아무래도 ‘정영신 님이 찍은 사진’을 고스란히 옮겼구나 싶습니다. 정영신 님은 2012년 8월에 《한국의 장터》(눈빛)라는 사진책 내놓았어요. 그러니까, 《시골 장터 이야기》라는 책은 정영신 님이 스스로 쓴 글이랑 손수 찍은 사진으로 엮을 수 있었어요. 굳이 ‘사진을 베낀 그림’을 넣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 보는 책이라서 사진 아닌 그림을 넣었을까요. 아이들 보는 책에는 사진을 넣으면 안 될까요. 시골 저잣거리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 한다면, 그림보다는 오히려 사진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정영신 님은 사진을 구수하니 곱게 찍어요. 구수하니 곱게 담은 시골 저잣거리 사진하고 수수하니 투박하게 빚은 글을 잘 엮으면, 어른도 아이도 즐겁게 읽을 《시골 장터 이야기》 되리라 느껴요.


  시골 저잣거리 누리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사라지는 오늘날로서는 《시골 장터 이야기》와 《한국의 장터》처럼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람들 어울리는 이야기’ 보여주는 책은 더 없으리라 느껴요. 지나간 옛 모습이나 사라진 지난 모습 아닌, 바로 오늘 시골사람 누리는 시골 저잣거리 이야기로는 정영신 님 책 두 가지만 있구나 싶어요. 이 이야기책 곱게 아끼는 손길로 시골마을 또한 곱게 돌보는 사람들 하나둘 태어나면 좋겠어요. 4346.5.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05-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불쑥 집에 들린, 친구와 그림책들을 보며 이야기하다가
<한이네 동네 이야기>에 골목 담옆에서 목마 타는 아이들 그림을 보며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나중에 이런 목마 태우는 사람이 되어, 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다 목말을 태워주면 그것도 참 재밌겠다.~' 저는 이구, 이 목마아저씨는 생업이야. 너는 낭만이고.
'그러니 더 즐거울 것 아니야' 합니다. ^^

숲노래 2013-05-28 14:37   좋아요 0 | URL
한이네 동네 이야기라는 그림책
한번 찾아보아야겠군요~

동무와 그림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란
참 즐거우리라 느껴요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바바라 아몬드 지음, 김윤창.김진 옮김 / 간장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아이 돌보기
[사랑하는 배움책 17] 바바라 아몬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

 


- 책이름 :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 글 : 바바라 아몬드
- 옮긴이 : 김진, 김윤창
- 펴낸곳 : 간장 (2013.4.11.)
- 책값 : 15800원

 


  아이들은 시외버스를 타면 갑갑해 합니다. 좁은 걸상에 꼼짝 않고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버티기 힘드니까요. 아이들 아닌 어른도 시외버스에서 견디기 벅찹니다. 시외버스에서 여러 시간 견디기 힘드니, 어른들은 시외버스에 텔레비전을 붙여서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런데, 시외버스에 붙인 텔레비전에서는 ‘어른들이 보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쇼’만 흐르지, ‘아이들이 볼 만한 영화나 만화나 이야기’는 흐르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괴롭고 슬프게 낑겨야 합니다.


  시외버스에서 창문이라도 열 수 있으면, 바깥바람 조금 쐬면서 버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멧자락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시골이든 구경하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시외버스는 모두 통유리입니다. 아이들은 바람놀이도 창밖놀이도 즐길 수 없습니다. 과자를 우걱우걱 먹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꼼지락꼼지락 이리저리 움직일밖에 없어요.


  아이를 낳아 돌본 어른이라면, 이리하여 아이들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며 돌아다닌 적 있는 어른이라면, 시외버스에 아이들 태우고 움직일 때에 얼마나 고단한가 알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젊은 날 아이를 낳아 돌보았어도 나이들며 이런 고단함을 잊는 어른이 많아요. 아직 많이 젊은 사람들이나 푸름이 들도 이런 대목을 제대로 못 짚기도 해요. 저희가 어릴 적에도 ‘시외버스에서 소리 지르거나 우는 아이’ 모습인 줄 떠올리지 못하지요.


  두 아이 데리고 고흥에서 일산까지, 또 일산에서 음성으로, 다시 음성에서 고흥으로, 이렇게 여러 날 걸쳐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며 생각합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아이들 옷가지와 여러 짐을 커다란 가방과 작은 가방에 나누어 담고 나릅니다. 아이들 보듬습니다. 이래저래 온몸 쑤십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듭니다. 시외버스에서 세 시간 남짓 신나게 놀다가 드디어 마지막 한 시간 즈음 달게 잠들기도 하지만, 대여섯 시간 넘는 시외버스 마실길 내내 몸이 간지럽고 좀이 쑤셔서 이리저리 뒤척거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 둘레에 ‘아이를 데리고 태운 어버이’ 있으면 반갑습니다. 아마 그분도 우리가 반가우리라 생각해요. 그분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내가 반갑고, 우리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그분이 반갑겠지요. ‘아이를 데리고 태운 어버이’가 시외버스에 여럿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눈 마주치며 잘 놀기도 하고, 어느 아이 하나 소리를 지르더라도 한결 가붓하게 아이들 보듬을 만합니다.


.. 50년 전에는 조부모, 숙모와 삼촌, 그리고 형과 언니들이 종종 아이 키우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확대가족의 붕괴는 이제 자녀보육의 부담을 온전히 부모에게, 대개는 어머니에게 지운다 …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마음은 온 사랑을 쏟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이상화하며, 거기에는 양가감정 같은 정상적인 감정 반응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 확대가족의 도움 없이도 모두 다 해내고자 하는 것, 즉 일도 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키우고, 남편과 친밀한 관계도 지속하고, 취미와 사회생활, 운동 일정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어머니들이 품고 있는 기대치이다. 양가감정은 오직 그런 목표들이 야기하는 기력 소진과 불가피한 실패에 의해 악화될 수 있을 뿐이다 ..  (35, 58, 165쪽)


  아버지 혼자 아이 둘 데리고 마실을 다니거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 둘레 어른들이 자꾸 “애 어머닌 어디 갔수?” 하고 묻습니다. 할매가 묻든 할배가 묻든, 이런 물음을 들으면 나는 아무 대꾸를 않습니다. 대꾸할 값어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묻는 분이 있으면 조용히 자리를 옮깁니다. 아이들 귀에도 이런 말이 흘러들거든요.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 있어요. 누런소와 검은소 두 마리를 바라본 어느 양반네가 흙일꾼한테 큰소리로 물었다지요.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느냐고. 이 소리 들은 흙일꾼은 논에서 소 두 마리 부리다가 말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 양반네를 데리고 멀리 자리를 옮기면서 귀엣말로 그런 소리 함부로 말라고, 소가 다 알아듣는다고 했다지요.


  아이들은 다 알아들어요. 아이들은 다 알아보아요. 어른들이 엉터리로 하는 말을 아이들은 다 알아들어요. 어른들이 엉터리로 하는 짓을 아이들은 다 알아보아요.


  어머니 혼자 아이 둘 데리고 마실을 다닐 적에, 아이 어머니더러 “애 아버진 어디 갔수?” 하고 묻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어디를 다녀야 한다면, 아주 마땅히 ‘아이 어머니’가 도맡아서 움직여야 하는 줄 여깁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뿌리내렸을까 알쏭달쏭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거나, 아이 아버지는 아이들 돌보지 않아도 된다거나, 아이 아버지는 아이들 돌보는 삶을 안 배우고 지내도 되는듯 잘못 흐르는 삶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 찾아보기 참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요. 아버지는 어떤 어버이인가요. 아버지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지낼 때에 아름다울까요. 아버지는 집안일과 집살림을 어떻게 꾸려야 슬기로운가요.


.. 내 친구는 자신의 아이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상상해야만 했다. 아이가 자신과 꼭 닮았기 때문에 아이를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은 그녀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 어머니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예전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 …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이면에는 늘 어머니 자신이 유아기와 아동기에 겪었던 경험이 깔려 있다 ..  (46, 67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도 옷도 모두 놀이로 여기며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호미질도 흙일도 설거지도 빨래도 놀이하듯 어버이한테서 배울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놀자면 어른부터 홀가분한 삶이어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재미나게 일굴 때에,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놀도록 잘 풀어놓을 만합니다. 어른 스스로 어떤 굴레에 매이거나 어떤 수렁에 갇히면, 아이들이 예쁘게 놀도록 지켜보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들은 어떤 삶 일구는가요. 오늘날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젊은이는 ‘어버이 자리’로 오기까지 어떤 일 하고 어떤 놀이 하면서 마흔이 되고 서른이 되며 스물이 되는가요.


  입시지옥을 거치면서 사람다운 사람살이 배운 젊은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젊은이는 아버지다움이나 어머니다움, 아울러 어버이다움을 누구한테서 어느 만큼 배웠을까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가르치며 키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배운 적 한 차례라도 있을까요.


  어린이와 푸름이를 가르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를 맡는 이들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다니면서 어떤 삶 배우고 어떤 삶 누리며 어떤 삶 사랑하는가요.


.. 여자들이 일에서 얻는 만족은 그들을 더 좋은 어머니로 만들고,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을 키워 주고, 자신의 가치를 찾고자 아이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줄여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독한 갈등과 원망, 죄책감을 유발하여 어머니 노릇을 쉽사리 어긋나게 만들 수도 있다 … 자연스러운 수유 방법인 모유 수유는 1930년대 중·상류층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모유 수유를 했을, 그리고 모유 수유가 제공하는 친밀감과 보살핌의 느낌을 즐길 수 있었을 여자들이, 모유 수유는 곧 하류층을 뜻하며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기에게서 그런 경험을 박탈했을지도 모른다 ..  (154∼155, 156쪽)


  바바라 아몬드 님이 쓴 배움책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배움책은 ‘어머니’ 이야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어버이 가운데 어머니 이야기만 할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아이들 낳고서 ‘돌보고 가르치며 키우는 몫’은 온통 어머니한테 떠넘기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즐겁고 흐뭇하며 사랑스레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며 키우지 못하잖아요. 아니,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나 두 어버이가 어깨동무하면서 삶과 사랑과 믿음과 꿈을 북돋우도록 이끌지 않잖아요.


  복지제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교육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복지제도이든 교육문화이든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제도나 문화가 있건 없건, 아이들 삶과 어른들 삶이 그리 살갑지 못해요. 아이들은 갓 태어나서 스무 살 되기까지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에 갇혀요. 홀가분하게 놀 겨를이 없고, 즐겁게 놀 터가 없어요.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이다 학원이다, 게다가 학교이다 하면서, 자꾸 여기저기 얽매이며 들볶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몽땅 얽매이며 들볶이니, 서로서로 동무 되지 못해요. 아이들은 놀이동무가 없어요. 아이들은 손전화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이 ‘동무’ 구실을 해요.


  이렇게 큰 아이들이 스무 살 되고, 스물다섯 서른 서른다섯 마흔 되어 ‘아이를 낳는 어버이’ 되면 어찌 될까요. 게다가, ‘아이를 낳는 어버이’ 되는데, 아버지 자리에 설 사람은 회사에서 돈 버는 일 맡는다며 ‘아이 돌보는 몫’을 나누어 맡지 않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어머니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는 아이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 어머니의 부재는 어떤 면에서 증오보다도 더 좋지 않다. 증오는 적어도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 무언가가 살아 있는 것이니 말이다 … 오늘날 전문 직종과 기업계에 대거 진출한 교육받은 여자들은, 탁아소와 유모들이 아무리 좋고 배려 깊다 해도 자신들이 직접 함께 있을 때만은 못하다는 점(어머니 본인에게도, 또 아이들에게도)을 알아 가고 있다 ..  (206, 215, 349쪽)


  바바라 아몬드 님은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라 하는 배움책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미워한다고 밝힙니다. 그럴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자,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미워한다는 ‘두 마음’을 품는다면,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요?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있기나 할까요?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나마 조금이라도 있기나 할까요? 아버지라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이런 마음도 저런 마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엉성하게 흘리는 모습 아닐까요? 아버지라는 사람은 ‘두 마음’은커녕 ‘한 마음’조차도, 아니 ‘아무 마음’마저 없는 수렁에서 허덕이는 나날 아닌지요?


.. 나이 든 부모를 기꺼이 돌보고자 하는 딸(또는 아들)의 마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의 초기 관계가 어떠했는가와 많은 관련이 있다. 양가감정과 원망의 응어리가 충분히 풀려서 자녀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선뜻 보살핌을 준비하고 제공하는가? … 그저 남을 모방하기만 할 경우에는, 좋지 못한 자녀양육 관행들(사탕을 뇌물로 사용하거나 TV를 보모로 사용하는 것, 또는 과도한 신체적 훈육)을 영속시킬 수도 있다 ..  (345, 354쪽)


  아버지는 아이를 돌보아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밥을 차려 먹일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씻기고 옷을 빨래하며 집안을 쓸고 닦으며 치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텃밭 일굴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는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가용 몰 줄 알기보다는 숲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달빛과 별빛과 햇빛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풀꽃을 들여다보며 개구리와 제비 노랫소리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 돌볼 줄 모르는 사회에서, 어머니 혼자 아이를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사랑하며 따스하게 품기를 바란다면, 참 쓸쓸하고 슬픕니다.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는 전업주부 일공일삼 19
키르스텐 보예 지음,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30

 


집안일과 집살림 배울 사람은 누구
― 아빠는 전업 주부
 키르스텐 보이에 글,박양규 옮김
 비룡소 펴냄,2003.3.14./8000원


 

  키르스텐 보이에 님이 쓴 청소년문학 《아빠는 전업 주부》(비룡소,200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참 재미난 책이네. 책이름으로 보건대, 틀림없이 ‘아빠 자리 있는 분께서 전업 주부 노릇 제대로 못한다는 이야기 나오겠구나’ 싶어요. 한국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내들이 ‘전업 주부’는커녕 ‘어버이 구실’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에둘러 나무라는 이야기 보여줄 듯싶어요.


  책을 펼쳐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읽습니다. 참으로 이 생각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오랫동안 집안일과 집살림에만 얽매인 어머니가 바깥일 하고 싶다며 하니, 아버지 되는 분은 ‘그러라’고, 이녁은 전업 주부 노릇 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말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바깥일을 하는 첫날부터 아버지는 집안일을 영 그르칩니다. 온 집안은 엉망진창 됩니다.


  문득 내 삶을 돌아봅니다. 지난 삼월 이십칠일부터 오늘 사월 십사일까지 옆지기 없이 열아흐레째 없이 두 아이 돌봅니다. 앞으로 이틀 있으면 옆지기는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스무 날 즈음 시골집 떠나 홀로 공부할 것 있어 먼 마실 떠났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이렇게 긴 나날 집을 비운 적 처음입니다. 아이들은 오래도록 못 보는 어머니를 그리워 하면서도 날마다 꿋꿋하고 씩씩하게 잘 놉니다.


  옆지기가 늘 하는 말 한 가지 되새깁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가장 즐겁고 멋진 하루를 새롭게 지을 수 있어야 해요.’ 두 아이가 날마다 새 아침 맞이할 적마다 참말 새 하루로구나 하고 느끼도록 이끌 즐겁고 멋진 이야기를 지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는, 이런 하루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버이인 나 또한 누릴 노릇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날마다 가장 새롭고 가장 멋지며 가장 즐거운 삶을 누릴 노릇입니다. 어른 스스로 새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면, 아이한테 새로운 삶 보여주지 못해요. 어른부터 새로운 삶 즐기는 마음 못 되면, 아이 또한 새로운 삶 즐기는 기쁨 맞아들이지 못해요.


.. “그래, 넬레. 하지만 우리 넬레도 두 손이 있지? 구둣솔과 구두약은 신발장에 있단다.” 엄마는 며칠 뒤에 내게 감자 깎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구스타프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신발 끈을 혼자서 매야 했다 … 사실 나도 나중에 일하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집에서 내 신발이나 닦고 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9, 13쪽)


  들길을 걷습니다. 들길 걷는 동안 햇살 고루 받습니다. 아이도 아버지도 살결 탑니다. 들길에서 들꽃을 만납니다. 아이들은 들꽃 예쁘다고 들여다봅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예쁜 들꽃이랑 아이들 모습 나란히 사진으로 담습니다.


  숲길을 걷습니다. 숲길 걷는 동안 숲바람 듬뿍 쐽니다. 아이도 아버지도 숲이 나누어 주는 푸른 숨결 마십니다. 숲이 있어 들이 살고 마을이 살며 우리 보금자리 살 수 있다고 느낍니다. 숲이 없으면 들도 마을도 보금자리도 살 수 없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나는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습니다. 나는 바깥에서 다른 사람 불러 아이들 맡아 달라 하지 않습니다. 옆지기 또한 몸이 아무리 아프거나 힘들어도 스스로 아이들 건사하지, 다른 시설이나 사람한테 아이를 맡기지 않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삶은 나를 돌보는 삶이요, 아이를 바라보는 삶은 내 속마음 바라보는 삶입니다. 곧,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란 내가 꿈꾸거나 바라는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고 느끼면서 차근차근 일구는 나날입니다.


.. “그렇다니까. 학교 생활이 재미없는 건 아닌데 몇 년 하고 나니 새로운 게 없어요. 그렇지만 남자로서 전업 주부라니, 이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당신이 나중에 제게 불평하지 않는다면 그렇겠죠.” … 아빠는 엄마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짐작건대 아빠는 요리나 청소하는 일을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20, 23쪽)


  옆지기는 아이 낳은 어머니 되기 앞서 집안일과 집살림을 얼마나 배웠을까요. 옆지기 어머님은 옆지기한테 집안일과 집살림을 얼마나 가르쳐 주었고, 여느 때에 어떤 집안일과 집살림 보여주었을까요. 옆지기 다닌 초·중·고등학교는 옆지기 스스로 집안일과 집살림을 어떻게 느끼거나 생각하도록 이끌었을까요.


  나를 낳은 어머니는 언제나 집안일과 집살림 도맡는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집안일이나 집살림에는 아주 손을 놓으며 바깥일만 했습니다. 나는 아들로 태어났으니,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거나 말거나 집살림을 슬기롭게 꾸리거나 말거나,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도 내 아버지처럼 바깥일에만 마음 쏟는 사내로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바깥일만 도맡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기지 않았어요. 사내가 바깥일만 하는 일은 어딘가 걸맞지 않다고 느꼈어요. 가시내는 바깥일을 하더라도 집안일까지 아울러 맡도록 내모는 사회 얼거리는 여러모로 뒤틀렸다고 느꼈어요.


  내가 다닌 초·중·고등학교를 떠올립니다. 열두 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사내한테 집안일 가르친 교사’는 없습니다. 열두 해 학교에서 교과서 배우는 동안 ‘사내가 집살림 배우도록 북돋우는 교과서’는 못 보았습니다. 국민학교에서는 사내와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한 달에 한 차례씩 학교에서 밥을 지어 먹는 시간 있었어요. 국민학교에서는 사내라 하더라도 바느질과 뜨개질을 가르쳤어요. 중학교에 가고부터 ‘가정’이나 ‘가사’ 같은 수업 시간 없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사내한테 바느질이나 뜨개질 가르치지 않고, 학교에서 손수 밥 지어 먹는 시간 또한 없습니다.


..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힘이 철철 넘쳐 보였다. 엄마는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과 끈적끈적한 부엌 바닥을 보고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뽀뽀하며 말했다. “오, 불쌍한 내 남편!” … 아빠는 뭔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했는데도 부엌 꼴이 그랬으니, 엄마는 아빠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 “처음엔 어차피 엉망진창이 될 거라고 우리 모두 짐작한 거잖니. 너한테도 바뀐 환경이 쉽지 않다는 거 엄마도 알아.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아빠를 거들어 주어야 해. 아빠가 우리보다는 훨씬 더 힘들 테니까 말이야.” ..  (47, 48, 49쪽)


  밥은 누가 지어서 차려야 할까요. 아이를 아직 안 낳은 어른이 스스로 살림을 꾸린다 할 적에, 집에서 밥은 누가 차려야 할까요. 빨래는 누가 해야 할까요. 빨래기계가 빨래를 해 준다 하더라도, 빨래 마친 옷가지는 누가 개야 할까요. 집에서 비질과 걸레질은 누가 해야 할까요. 집살림 다스리고 집안을 돌보는 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사내와 가시내가 서로 사랑한다면서 짝을 짓는다고 할 적에, 나중에 아기를 낳아 돌보는 일까지 헤아리는 사람 얼마나 될까요. 아기씨앗 몸에 건사하며 열 달에 걸쳐 찬찬히 사랑하는 길은 어떠한 삶이 된다고,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집에서나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요. 따로 임신교실·출산교실 같은 데를 다녀야 하나요. 집에서 어른들은 무엇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나요. 따로 책을 찾고 인터넷을 뒤져야 하나요. 초·중·고등학교는 무엇을 하는 데인가요.


  집안일을 배울 수 없다면 학교라는 데는 어떤 몫을 할까요. 집살림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학교라는 데는 어떤 구실을 하나요. 집안일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는 얼마나 교사다울까요. 집살림을 물려주지 못하는 어버이라면 어느 만큼 어버이다운가요.


  아이들이 스무 살 언저리 되어 대학생 되도록 이끌면 교사 구실은 끝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시집장가 간다 할 적에, 자가용 장만해 주거나 아파트 마련해 준대서 어버니 노릇 다했다고 여겨도 되지 않습니다. 교사라면, 아이들이 제 힘으로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가며 살림 꾸리고 꿈을 이루도록 북돋우는 몫을 맡아야 합니다.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저희 슬기를 빛내어 스스로 튼튼하게 서도록 살림과 일을 즐겁게 누리는 빛을 보여주거나 물려주어야 합니다.


.. “말은 잘하네요. 어떻게든 해 보자고요? 어떻게는 뭘 어떻게 해요? 결론은 뻔하죠. 내가 항상 일을 다 하는 거잖아요!” … 엄마는 커피 잔을 거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는 일하는 게 재미있어. 그래서 계속 일할 거라는 엄마 생각에는 변함없어. 아빠도 같은 생각일 거야. 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청소도 못하고 애 키우는 것도 잘 못하고 가구도 반들반들하게 닦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왜 여자 판사나 의사는 남자 판사나 의사보다도 못하다고 여겨지고, 수공업 일이나 해야 하는 거지? 이제는 이런 걸로 싸우는 사람조차 없단다. 하지만 어려움은 정작 이렇게 살려고 할 때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거란다.” ..  (135, 155쪽)


  청소년문학 《아빠는 전업 주부》를 생각합니다. ‘전업 주부’나 ‘가정 주부’라는 이름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런 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바른 한국말은 ‘일꾼’이요 ‘살림꾼’입니다. 집안일 살뜰히 꾸리는 일꾼이며, 집살림 슬기롭게 추스르는 살림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일꾼이면서 살림꾼입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일꾼이면서 살림꾼으로 자란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일꾼이자 살림꾼 모습을 늘 보여주면서 보살필 때에 즐거운 삶 일군다고 느낍니다. 어른 스스로 아름다운 일꾼이면서 살림꾼이 되지 못한다면, 어른 스스로 하나도 안 즐거운 삶 되리라 느낍니다.


  아름답게 일하면서 아름답게 살림 꾸립니다. 기쁘게 일하면서 기쁘게 살림 꾸려요.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지요. 예쁘게 살림하고 예쁘게 사랑하지요. 어버이답게 일을 하고, 어버이다운 살림을 꾸려요. 어버이로서 일을 맡고, 어버이 넋 빛내어 살림을 아낍니다. 4346.4.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4-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는 전업주부... 많이 공감하셨겠어요. ^^
님도 쓰실 수 있는 책인 듯...^^

숲노래 2013-04-15 19:24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다지...
생각보다는 마음이 안 끌리더라구요.
뭐랄까, 집안일을 하는 줄거리보다는
작품에 나오는 청소년 아이가
반에서 짝사랑 하는 이야기가 3/5쯤 차지하다 보니,
뭐랄까... 김이 샌달까요 @.@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