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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ㅣ 동화는 내 친구 19
미야자와 겐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이종미 그림 / 논장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32
맑은 눈빛 숲아이
―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미야자와 겐지,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2000.10.10./7000원
숲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숲노래를 부릅니다. 숲노래에는 숲내음 실리고, 숲빛 감돌며, 숲무늬 어여쁩니다. 숲노래는 숲사람 누구나 듣습니다. 숲노래는 숲벌레와 숲짐승도 함께 듣습니다.
들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들노래를 부릅니다. 들노래에는 들내음과 들빛과 들무늬 곱게 어우러집니다. 들노래는 들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들벌레와 들짐승도 나란히 듣지요.
바다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바다노래를 불러요. 멧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멧노래를 불러요. 아이들은 저마다 이녁 삶터에서 노래를 부르지요. 가장 고운 목청을 뽑아 가장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 겐쥬는 항상 새끼줄을 허리에 매고, 싱글벙글 웃으며 숲속이나 밭고랑을 느릿느릿 걸어다녔습니다. 빗속의 푸른 대숲을 보면 좋아서 눈을 깜박깜박하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아가는 매를 발견하면 깡충거리며 손뼉을 쳐서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겐쥬를 몹시 얕잡아보고 놀려댔기 때문에, 겐쥬는 점점 웃지 않는 척하게 되었습니다 … “겐쥬, 오늘도 숲을 지키고 있군.” 도롱이를 입고 지나가던 사람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삼나무에는 짙은 밤색 열매가 열리고, 당당한 초록빛 가지 끝에서는 차갑고 맑은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습니다. 겐쥬는 입을 한껏 벌리고 하아하아 가쁜 숨을 쉬었습니다. 겐쥬의 몸이 빗속에서 김을 내며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 (8, 15∼16쪽)
오늘날 한국 아이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거의 안 남았습니다. 마을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아요. 호젓한 두멧자락에서 멧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닫고 새벽을 여는 아이가 매우 드뭅니다. 이제, 이 나라 아이들 거의 모두는,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멧골이 들려주는 노래를 알지 못한다 할 만해요. 이제, 이 나라 아이들 거의 모두는, 스스로 숲노래도 들노래도 바다노래도 멧노래도 부르지 못해요.
그런데, 아이들 어버이부터 숲노래를 안 부릅니다. 아이들 어버이부터 들노래를 잊고 바다노래를 잊으며 멧노래를 잊어요. 어른들 스스로 시골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지 못해요. 어른들 스스로 시골에서 놀고 일하는 웃음꽃 피우지 못해요. 어른들부터 맑은 숨결 누리지 않으면, 아이들은 맑은 숨결 받아먹지 못합니다. 어른들부터 밝은 눈빛 밝히지 않으면, 아이들은 밝은 눈빛 어떻게 밝히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함께 걸어가는 길이에요. 같이 손을 잡는 길이에요.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이지요. 나란히 춤을 추며 노래하는 길입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사랑을 노래합니다. 꿈을 노래합니다. 오직 이 세 가지를 노래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언제나 새롭게 마시는 바람을 고마이 들이켭니다. 늘 새삼스레 내리쬐는 햇살을 따사로이 받아먹습니다. 노상 푸르게 피어나는 풀과 나무와 꽃을 싱글벙글 웃으며 들여다봅니다.
.. 네 명의 농부들은 저마다 저 좋은 쪽에 대고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에 밭을 일구어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숲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집을 지어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숲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네 사람이 또다시 한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여기에 불을 피워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 (81쪽)
아이들한테 숲소리를 돌려주셔요. 그리고, 어른들 스스로 숲소리를 되찾아요. 자동차에 열쇠 꽂아 부릉거리는 소리 말고, 새벽을 여는 소리를 되찾아요. 아이들한테 자동차 부릉거리는 소리 말고 멧새 소리를 돌려주셔요. 자동차 발판을 꾸욱 밟으며 부릉거리며 달리는 소리 말고 냇물 쪼르르 흐르는 소리를 돌려주셔요. 자동차 끼익 세우는 날선 소리 말고 풀벌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돌려주셔요.
아스팔트와 시멘트 걷고 흙땅을 되찾아 주셔요. 흙땅에 온갖 들풀 흐드러지도록 돌려주셔요. 흙땅에 나무들 씩씩하게 뿌리내려 오백 해 오천 해 우람하게 자라도록 돌려주셔요. 새벽과 멧새와 개구리와 푸나무 모두,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 스스로 기쁘게 누려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움이에요. 돈으로 사로잡지 못하는 사랑이에요. 돈으로 홀리지 못하는 꿈이에요. 아름다운 삶은 사랑과 꿈으로 일구어요.
돈으로는 도시를 지어 물질문명사회 이룩하겠지요. 돈으로는 높은 건물 시멘트와 쇠붙이로 척척 올리겠지요. 돈으로는 더 비싸고 커다란 자가용 만들겠지요. 돈으로는 더 커다랗고 번쩍거리는 놀이공원이나 관광단지 짓겠지요.
그러면, 돈으로 무엇을 누리나요. 돈으로 닦고 세우고 만들고 놓고 지은 곳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누리나요. 수천 억원 들인 길다란 다리를 수천만 원 자가용 몰아 씽 하고 건너면 무엇을 누리나요. 수천 억원 들인 고속도로를 수천만 원 자가용 몰아 쌩 하고 달리면 무엇을 누리나요.
마음을 기울여 보살핀 숲길을 걸어요. 주머니에 든 것 모두 내려놓고 맨몸으로 아이 손을 잡고 숲길을 걸어요. 숲은 우리한테 돈을 내라 하지 않아요. 숲은 우리더러 신분증이나 졸업장을 보여주라 하지 않아요. 숲은 우리한테 잘생기고 못생기고 따지지 않아요. 숲은 우리더러 사내냐 가시내냐 금을 긋지 않아요.
.. 그 새벽녘 하늘 밑, 낮에는 새들도 가지 않는 높은 곳을 날카로운 서리 조각이 바람에 실려 사락사락 사락사락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희미한 소리가 언덕 위의 한 그루 은행나무한테도 들릴 만큼 맑은 새벽입니다. 은행 열매는 모두 한꺼번에 눈을 떴습니다. 모두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늘은 진짜로 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다들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 (118쪽)
미야자와 겐지 님 어린이문학을 그러모은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논장,2000)을 읽습니다. ‘숲아이’ 겐쥬가 나오고, ‘숲동무’한테서 노래를 배우는 고슈가 나옵니다. 숲아이 겐쥬는 마을에 없는 숲을 스스로 돌보고 건사하면서 아끼다가 아주 어린 나이에 몸져눕다가 숨을 거둡니다. 숲동무를 만나며 쳇쳇거리던 고슈는 숲동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녁이 억지로 악기를 켤 때에는 왜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지 못하는가를 깨닫습니다. 고슈는 어느새 ‘숲어른’으로 거듭납니다.
겐쥬도 고슈도, 곧 숲아이도 숲어른도, 마음속에 사랑을 채울 때에 그지없이 사랑스러워요. 마음속에 꿈을 실을 때에 더없이 홀가분히 날갯짓하는 꿈노래 불러요.
.. “다르긴 뭐가 달라.” “그럼, 당신이 모르는 거예요. 우리 뻐꾸기는 뻐꾹 하고 만 번을 울어도, 그 만 번이 저마다 다른걸요.” … 고슈는 처음에는 짜증스러웠지만, 한참 켜다 보니 어쩐지 새의 음이 진짜 도레미파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37, 140쪽)
맑은 눈빛이 될 적에 맑은 사랑을 합니다. 맑은 사랑을 할 적에 맑은 삶을 가꿉니다. 맑은 삶을 가꿀 적에 맑은 노래를 불러, 맑은 마음 품은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맑은 마음 품은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니, 시나브로 맑은 말마디로 맑은 이야기 나누겠지요.
온누리를 밝히고 지구별 보살피는 힘은 바로 맑은 눈빛으로 꿈꾸는 사랑에서 비롯합니다. 숲을 생각해요. 숲에서 살아요. 숲을 돌봐요. 숲을 가슴으로 포옥 얼싸안으면서 환하게 웃어요.
미야자와 겐지 님은 ‘숲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숲아이’를 꿈꾸듯 글을 썼어요. 지식으로 쓴 글이 아니라 숲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쓴 글이에요. 교육이나 훈육이나 감동이나 교훈 같은 것을 내세우는 동화가 아닌, 숲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시골에서 살며 숲을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흙을 사랑하기를 꿈꾸면서 숲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숲바람 마시고 숲동무 사귀면서 이야기꾼이 됩니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사람은 멧새 새벽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열었고, 멧새 저녁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닫았어요. 4346.6.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맑은 어린이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