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거짓말쟁이 다림창작동화 1
김리리 지음, 한지예 그림 / 다림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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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5

 


생활동화란 무엇일까
― 엄마는 거짓말쟁이
 김리리 글
 한지예 그림
 다림 펴냄, 2003.11.16.

 


  생활동화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삶을 그리면 생활동화가 된다 하겠지요. 그러면,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 모습을 그릴 때에 생활동화가 된다 할까요. 아이들한테 읽힐 동화책에 담는 ‘삶 이야기’는 어디에서 마주하고 어떻게 갈무리해서 어떠한 빛으로 그릴 때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거울 수 있을까요.


  김리리 님이 쓴 생활동화인 《엄마는 거짓말쟁이》(다림,2003)를 읽었습니다.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는 우리 집 큰아이는 이 책에 나오는 그림만 살피면서 ‘왜 이래?’ 하고 묻습니다. 나도 우리 집 큰아이처럼 ‘글을 모르는 사람’인 듯 여기면서 글은 잊고 그림만 따로 들여다봅니다. 그림으로만 볼 적에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교사와 동무들은 그리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거짓말하기’를 물려받거나 배웠다고도 할 테지만, 이보다, 주인공 아이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 살아가나?’ 하는 대목이 아리송합니다.


.. “치! 그런데 왜 내가 말을 안 했다고 그래? 난 분명히 엄마한테 말했는데…….” “알았어. 빨리 책이나 읽어 봐.” 나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잘못했다고 해서 화가 나는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요 ..  (11쪽)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아이가 어리니 으레 꾸짖으며, 어른들끼리 속닥거리면서 놀고, 어른이라면서 하루 내내 컴퓨터게임만 하는 모습을 꼭 동화책에 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이런 모습을 비판하려는 뜻에서 동화책에 담을 수 있습니다만, 굳이 비판을 하려고 동화책으로 담아서 보여주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거짓말은 나쁘다고 말하면서 거짓말 이야기만 잔뜩 보여주는 생활동화는 이 동화책 읽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스며들는지 궁금합니다.


  이 동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대로 살펴본다면, 주인공 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아름다운 모습이나 사랑스러운 빛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합니다. 하나도 겪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요. 그래도 제법 씩씩하고 대견스레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달리 착하고 예쁘며 참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다가 그만, 여느 때에 늘 겪고 보며 마주하는 어버이 모습이 아이한테서도 드러나요. 아이는 이런 모습이 드러날 때에 무척 부끄러워 하면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동화책을 읽을 아이들도 ‘아이 스스로 모르는 사이 얄궂은 거짓말과 매무새에 젖어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뒤집기를 하면서 무언가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습니다만, 굳이 뒤집기를 해야 할까 아리송해요. 그리고, 뒤집기를 하려 한다면, 주인공 아이네 어버이와는 사뭇 다른 ‘수수하면서 착하고 참다운 이웃이나 동무’를 함께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야 알맞겠다고 느낍니다.


.. “엄마! 그냥 지나치면 어떻게 해?” “내가 뭘?” “지금 사람들이 건널 차례인데 엄마가 그냥 지나쳤잖아.” “건너는 사람이 없으니깐 그렇지. 운전할 때 말 시키지 말고 입 좀 다물고 있어.” ..  (16∼17쪽)


  아이들은 어른들이 여느 때에 으레 하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먹습니다. 어른들 말이 곧 아이들 말이 됩니다. 어른들이 범죄를 일으키니 아이들도 범죄를 일으킵니다. 어른들이 사회에서 계급과 신분과 재산과 학력 따위로 금을 긋고 푸대접과 따돌리기와 괴롭히기를 일삼으니, 아이들도 학교와 마을에서 똑같은 짓을 저지릅니다.


  아이들이 ‘외계어’나 ‘통신체’를 쓴다고 나무랄 수 없어요. 모두 어른한테서 배우는 말투입니다. 둘레 어른들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말하면, 아이들도 저절로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말해요. 그렇지만 어른들은 ‘어른이니까’라는 핑계로 아무 말이나 내뱉습니다. 아이들이 보거나 말거나 짓궂은 말을 내뱉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어른 흉내를 내지 말라 윽박지릅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어른과 똑같이 거친 말을 마구 내뱉거나 지껄여요. 중·고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아주 ‘어른 말투’로 거칠거나 짓궂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주절주절 떠들곤 합니다.


..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요. “그게 뭐 어렵냐? 눈 딱 감고 그냥 예쁘다고 하면 되는 거지!” “정말? 그럼 아빠도 거짓말한 거네!” “내가 하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으니깐 하는 거지!” ..  (22쪽)


  생활동화는 어떤 삶을 그릴 때에 생활동화일까요.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그리면서 아이들과 따사로운 사랑과 꿈을 품을 때에 동화책이 될까요.


  아이를 밥상 앞에 앉히고 ‘나쁜 밥’과 ‘좋은 밥’을 함께 올리고는, 아이더러 ‘좋은 밥’만 먹으라 하고는 어른들은 ‘나쁜 밥’만 먹으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울까요. 이때에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과 슬기를 빛내어 ‘그래 그래, 좋은 밥만 먹어야지’ 하고 몸가짐을 추스를는지요.


  생활동화가 ‘착한’ 모습만 그리면서 ‘착한’ 이야기만 들려주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막판에 짠 하고 뒤집기를 하려는 얼거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얄궂은 모습들만 잔뜩 보여주는 얼거리로 쓰는 생활동화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얼마나 즐거울 만한지 묻고 싶습니다. ‘그래 나도 이렇지!’ 하면서, 어머니들 누구나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쾌감’을 맛보도록 하는 뜻이 생활동화인지 묻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일삼지 않아요. 모든 아버지가 집에서 아이하고 안 놀면서 인터넷게임에만 빠지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비추면서 생활동화로 어떤 이야기와 생각을 깨우치려 한다 할 적에도, ‘가벼운 뒤집기’로 끝낼 노릇이 아니라, ‘그러면, 어떤 삶이 아이한테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울까’ 하는 대목을 함께 보여주거나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말이 들통이 나서 부끄러운 줄 느끼면 어른도 아이도 하루아침에 깨달아 새 사람이 될까요? 참말 궁금합니다. 마지막에 뒤집기 한 판을 짠 보여주면 ‘동화문학’이 된다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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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4-01-15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 무척 공감갑니다. '가벼운 뒤집기' 한 판을 위해서 앞 쪽에서 너무 억지스럽고 곱지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건, 저도 반대예요. 잘 읽었어요. ^^ 요즘 유아 관련된 이야기를 꾸미고 있어서 더 새겨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4-01-15 12:07   좋아요 0 | URL
'뒤집기'보다는,
처음부터 사랑스레 흐르는 이야기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우리들이 '명작'이라 손꼽는
나라 안팎 수많은 어린이문학은 모두 '뒤집기'를 쓰지 않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고이 흐르는 사랑이 있답니다.
사랑을 담아 쓰면 되는 일이라고 느껴요.

페크pek0501 2014-01-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님이 동화를 쓰시는 날이 오기를...^^

숲노래 2014-01-15 13:32   좋아요 0 | URL
아, 네, 동시부터 좀... 책이 나올 수 있기를 빌고,
동화는 찬찬히 찬찬히
쉰 살 즈음부터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현병호 지음 / 양철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21

 


아이들은 늘 삶을 배웁니다
―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현병오 글
 양철북 펴냄, 2013.12.6.

 


  오늘도 언제나처럼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두 아이를 재웁니다. 큰아이는 왼쪽에, 작은아이는 오른쪽에 눕습니다. 밤에 아이들 재우면서 부를 적에는 자장노래이고, 낮에 아이들 함께 놀며 부를 때에는 놀이노래입니다. 밤에 부를 적과 낮에 부를 때 노랫가락을 바꿉니다. 노래를 부르는 빠르기를 달리하고, 노래를 부르는 목청을 달리합니다.


  아이들을 재우거나 아이들과 놀면서 노래를 부르고 보면, 이 노래는 아이한테 들려주거나 베푸는 선물로 그치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내 마음이 따스하고, 노래를 내 귀로도 함께 들으며 즐겁습니다.


  아이들과 들마실을 하면, 아이들만 즐겁지 않아요. 아이와 함께 들길을 걷는 내 몸과 마음도 나란히 즐겁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가면, 아이들만 바다놀이를 하며 신나지 않아요. 나도 바다내음 맡고 바다빛 누리면서 신납니다. 밥을 차려 맛있게 먹일 적에 아이들만 배부르지 않습니다. 나 또한 배부르면서 즐거워요.


.. 서로가 잘되도록 돕기보다 서로가 못되기를 은근히 바라게 만드는 것이 학교와 사회의 문화가 되었다 … 학교가 그렇게 아이들을 하루 종일 잡아놓고 있지 않는다면, 또 그렇게 경쟁하도록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더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기’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 그만큼 값져서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일개 학교의 교칙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  (15, 16, 20, 34쪽)


  일곱 살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웁니다. 네 살 작은아이를 수레에 태웁니다. 나는 앞에서 자전거를 끕니다. 두 아이 무게와 샛자전거 무게와 수레 무게는 꽤 됩니다. 여름에는 더위에 땀으로 폭삭 젖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얼어붙습니다. 여름에는 참 덥다고 느끼고, 겨울에는 참 춥구나 느낍니다. 그렇지만 여름에도 겨울에도 자전거를 달립니다. 우리 집에 자가용을 안 모시니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즐겁습니다. 아이들 숨소리를 느낄 수 있고, 어느 곳에서나 마음대로 멈추어 쉴 수 있습니다. 멧골도 넘고 바닷가도 달립니다. 논둑길도 달리고 고샅길도 다닙니다.


  아이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달리며 흘리는 땀과 느끼는 추위가 재미있습니다. 들바람을 쐬고 바닷바람을 먹는 자전거마실이 신나요.


  그러고 보면, 아이들 옷가지를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비벼서 빨래할 적에도 재미있습니다. 이불을 발로 꾹꾹 눌러 빨 적에도 신납니다. 이 조그마한 옷을 입고 조그마한 몸으로 그처럼 개구지게 뛰고 달리고 노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조그마한 옷을 한결 아끼고 보듬자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옷이 어느덧 안 맞을 만큼 자라고, 다른 작은 옷이 어느새 안 맞을 만큼 큽니다.


  마당에서 함께 옷을 넙니다. 방에서 함께 옷을 갭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비질이나 걸레질을 거듭니다. 큰아이는 곧잘 설거지를 거듭니다. 수저를 밥상에 곱게 놓을 줄 압니다. 풀밥을 잘 먹고, 마당에서 까마중을 훑을 적에 함께 훑어 주곤 해요. 이 겨울 지나고 새로운 봄 찾아들면, 아버지와 함께 봄풀 뜯으러 이곳저곳 함께 다녀 주겠지요. 조물딱조물딱 호미질을 하며 흙을 같이 일구어 줄 테고요.


.. 이 땅의 학교는 졸업장을 팔아먹는다. 값비싼 졸업장은 지상천국도 약속한다면서 … 사랑과 이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 아이들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가슴속에 사랑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 사실 수능 준비 같은 이상한 공부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이다 … 도시에서 자라면서 아이들이 약아지고 양심과 감스성이 무디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까 … 행복은 이렇듯 돈과 시간을 아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데 있지 않을까 ..  (26, 30, 40, 50, 63, 66쪽)


  미술학원에 다녀야 그림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종이와 연필이 있으면 됩니다. 붓과 물감이 있어도 됩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스스로 그릴 때에 비로소 그림을 배웁니다. 남이 가르쳐 줄 수 없어요.


  글을 쓰고 싶다면? 스스로 글을 쓰면 돼요. 스스로 글을 써야 글을 배웁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스스로 사진을 찍어야지요.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스스로 노래를 불러야지요. 춤을 추고 싶다면? 스스로 춤을 추어야지요. 흙을 일구고 싶다면? 스스로 흙을 일구어야지요.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면 스스로 자전거를 탈 노릇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않고서 자전거를 탈 수 없어요. 이론을 배우거나 영화를 본들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이론이 아니라 자전거입니다. 그림도 이론이 아니라 그림이에요. 스스로 즐겁게 그릴 때에 그림이에요. 마음속에 피어나는 이야기를 그려야 그림입니다. 이런 기법과 저런 솜씨를 뽐낸대서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나타내고 싶은 빛을 그림이라는 틀에 빌어서 보여주기에 그림이에요.


  문장작법에 맞춘대서 글이 되지 않아요. 우리는 보고서나 논문을 쓰지 않아요. 글을 씁니다. 삶을 들려주는 글을 씁니다. 삶을 사랑하는 글을 써요.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면서 나누는 글입니다. 남한테 읽히려는 글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곱다시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 고급 빌라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아이의 장래일까 … 우리 교육 현실이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네 부모들이 아이들을 닦달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발벗고 나서서 뛰어다닌 결과이지 않을까 … 엄연히 이름이 있는 아이들에게 번호를 매겨서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곤 한다. 그런 교사들은 흔히 한 해가 다 가도록 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기 일쑤다 … 불행히도 학교는 애초에 아이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자원’이 되도록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에 더 가깝다 ..  (75, 82, 95, 125쪽)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못 가르쳐요. 왜냐하면, 학교는 학교이지, 집이나 삶터나 보금자리나 마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나 틀이 아닌, 집이라면, 집에서 무엇이든 가르치고 배웁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면서 가르치지, 지식이나 교과서나 책을 배우면서 가르치지 못해요. 밥이란 삶이고, 옷이란 삶이며, 집이란 삶입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는 모두 삶입니다. 이론이나 교과서로는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해요. 학교 아닐 집일 때에 비로소 밥을 어떻게 짓고 옷을 어떻게 지으며 집을 어떻게 짓느냐를 배우고 가르쳐요.


  이론이 아닌 몸으로 먹는 밥이에요. 지식이 아닌 몸으로 입는 옷이에요. 실기나 체험이 아닌 삶으로 누리는 집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학교에서는 밥도 옷도 집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를 다니고 나면 밥과 옷과 집하고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손수 밥을 차릴 줄 아나요. 유학을 다녀온 아이들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아나요. 대학원 무슨무슨 논문을 쓴 아이들이 나무를 베고 손질해서 기둥을 세우고 처마를 댈 줄 아나요.


  약초도감이나 식물도감을 들여다본대서 나물을 캐거나 뜯지 못해요. 스스로 들과 숲을 다니고 논둑과 밭둑에서 풀을 뜯어서 먹어야 비로소 나물을 캐거나 뜯을 수 있어요.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혀로 느낄 때에 나물을 알고 배워요.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으며, 뱃속에 넉넉히 담아서 삭혀야 나물을 익히고 깨달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해야 사랑을 압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꿈을 꾸어야 꿈이 됩니다. 착하고 참답게 살아가려는 빛이 있을 적에 삶이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은 곰곰이 헤아릴 노릇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서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낼 생각이냐, 아니면 아이한테 졸업장을 선물할 생각이냐, 둘 가운데 어느 길로 가고 싶을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 슈타이너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 나무 한 그루 없는 휑한 운동장은 아이들이 운동하기 위한 공간이기보다 전체 조례나 운동회 같은 집단 의례를 위한 공간이다 … 너무 일찍부터 부모와 멀어지고, 대신 텔레비전과 더 가까워진 아이들, 골목과 놀이 친구를 잃어버리고 대신 학원 선생님을 만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몸을 놀려 놀지 않는다 … 문제의 본질은 학교 폭력이 아니라 ‘폭력 학교’이다 ..  (183, 209, 249, 264쪽)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잡지 《민들레》가 있습니다. 《민들레》를 펴내는 현병오 님이 그동안 꾸준히 쓴 글을 그러모아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양철북,2013)라는 배움책 하나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느긋하게 지내지 못한다고 여기는 마음을 이 책으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입시지옥일 뿐이요 시험기계만 만들 뿐이라는 모습을 낱낱이 밝힙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은 무엇을 말할까요. 제도권교육 아닌 대안교육은 얼마나 다른 교육일까요. 제도권이 아니니 낫다고 할 만한지요. 대안을 말하니 아름답거나 즐겁다고 할 만한지요.


  교과서를 안 쓰고, 입시지옥이 아니며, 시험기계를 만들지 않는 대목에서는 제도권교육보다 나은 대안교육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심지 않고, 나무를 아끼지 않으며, 나무를 누리지 않는 곳에서 어떤 대안교육이 이루어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무를 심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자리에서 어떤 대안교육 이론이나 생각이 설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며 누리는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즐거울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제도권교육이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안교육이냐 아니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삶이냐 아니냐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이냐 아니냐를 헤아려야 합니다. 꿈이냐 아니냐를 읽어야 합니다.


  배움책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는 오늘날 이 나라 교육제도가 얼마나 엉망진창인가를 잘 밝힙니다. 오늘날 이 나라 대안교육도 그리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슬기롭지 못하다고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와 어른은 어떤 삶으로 나아갈 적에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우리들은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꽃피우는 하루를 누리면서 활짝 웃을 만할까요.


  아쉽지만,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책에서 이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삶과 사랑과 꿈이 아름답게 나아가는 길까지 이 책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삶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이 찾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굳이 다룰 까닭이 없을 만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나 대안이나 제도나 교육은 둘째치고, 글쓴이 현병호 님 스스로 이녁 삶과 사랑과 꿈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가꾸면서 하루가 즐겁게 빛나는가를 들려주기를 바라요. 제도권교육과 대안교육 비판은 살짝 내려놓고, 현병호 님 스스로 밝히거나 빛내는 삶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걸어가는 즐거운 길을 밝히면 됩니다. 스스로 부르는 고운 노래를 들려주면 됩니다. 스스로 나누는 예쁜 사랑을 흐드러지게 펼치면 됩니다. 교육이란 삶이니, 삶을 말하고 보여주면 모든 꿈이 즐겁게 이루어집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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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취재 현장! - 기자 일과 사람 18
신옥희 지음, 차재옥 그림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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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4

 


신문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 여기는 취재현장!
 신옥희 글
 차재옥 그림
 사계절 펴냄, 2013.12.26.

 


  신문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신문에 나오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지요. 신문에 나오는 글은 어떻게 쓸까요?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만난 사람과 겪은 이야기를 간추려서 쓰겠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곳을 찾아갈까요? 사람들이 많이 볼 만하거나 사람들한테 알릴 만한 누군가를 만날 테지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사람은 어디에 살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그래요, 신문기자는 어디를 찾아다니고, 어떤 사람을 만나려나요?


.. 기자가 왜 신문사가 아니라 경찰서로 출근하냐고? 나는 사건과 사고를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야. 그 중에서도 경찰서 담당이지. 큰 사건과 사고는 대부분 경찰서로 모여 ..  (10쪽)


  신옥희 님이 글을 쓰고 차재옥 님이 그림을 그린 《여기는 취재현장!》(사계절,2013)은 신문기자라는 어른이 어떤 일을 하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어린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까를 헤아리는 어른들이 ‘일과 사람’을 글머리로 잡아 열여덟째 권으로 선보이는 책입니다.


  취재현장이 어디이고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신문사 얼거리를 보여줍니다. 경찰서에 있는 기자실을 보여줍니다. 취재현장에서 정기자와 수습기자 두 사람이 어떻게 취재하는지 보여줍니다.


  책을 읽으면, 경찰서에 크고작은 사건과 사고가 모인다고 나옵니다. 아마 그러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경찰서에는 어떤 사건과 사고가 모일까요. 경찰서로 들어오는 자료와 정보와 소식은 무엇일까요.


  경찰서에는 기자실이 따로 있습니다만, 이를테면 밀양 송전탑 언저리에는 기자실이 따로 없습니다. 평택 대추리에도 기자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4대강 공사를 하는 냇가에도 기자실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4대강 홍보실’은 있되, 4대강사업을 꾸짖는 사람들이 ‘홍보하는 자리’나 ‘기자를 모아 기사를 쓰도록 연 자리’는 없습니다.


.. 사람들은 핵 발전소에 관한 우리 정부 정책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해. 나는 한나 박사 인터뷰와 일본이 사고 뒤에 보여준 모습을 덧붙여서 기사를 쓸 거야. 김초롱 기자한테는 행사 소개와 시민 인터뷰 기사를 써 보라고 했어 ..  (27쪽)


  《여기는 취재현장!》이라는 책에서는 두 가지 취재현장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핵발전소 반대하는 집회현장’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원’입니다. 두 가지 모두 뜻있는 현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현장은 우리 아이들 삶과 얼마나 가까운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살갗으로 느낄 만한 현장이 될까 궁금해요.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집회현장이라 하지만, 이 현장은 어디일까요? 핵발전소를 짓는다고 하는 ‘시골마을 조용하고 깊은 두멧자락’인가요? 도시 한복판인가요?


  이 책에서는 핵발전소를 놓고 ‘정부 정책’과 ‘외국 박사님 인터뷰’와 ‘후쿠시마 뒷이야기’와 ‘행사 소개’와 ‘시민 인터뷰’ 다섯 가지를 신문에 싣는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막상 핵발전소를 ‘어디에’ 짓고 ‘어떻게’ 지으려 하는지,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하는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 모습이나 이야기라든지, 핵발전소를 시골에 지은 뒤 도시까지 이을 송전탑 이야기라든지, 핵발전소에 뒤따르는 핵폐기물처리장 이야기라든지, 방사능 이야기라든지, 에너지 이야기라든지, 거대발전소를 그만두고 나아갈 새로운 에너지나 마을 에너지라든지, 깊이 파고들거나 살피거나 헤아리지 못합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신문 가운데 깊이 파고들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신문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이 책 《여기는 취재현장!》에서도 신문기자 모습을 더 꼼꼼하고 빈틈없으며 아름답게 그리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신문기자로 일할 어린이라 한다면, ‘오늘날 어른과 똑같은 모습’으로 기자 노릇을 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이 책에 나오는 ‘수습기자 김초롱’은 왜 “네! 네!” 하고 외치면서 ‘정기자’를 웃사람 모시듯 섬겨야 할까요. 군대에서처럼 위계질서를 따져야 하는 신문사 얼거리가 우리 아이들한테 보여줄 만한 신문기자 모습이 될까 궁금합니다.


  한 칸에 모든 그림을 다 그리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기관을 찾아가거,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를 찾아가며, 마을 주민을 만나고, 대안에너지를 생각하는 환경단체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은 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살피면서, 그야말로 눈썹 날리게 뛰어다니면서 취재현장 누비는 그림이 하나쯤 깃들어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취재현장!》이라는 책에 나오는 기자는 너무 느긋해요. 너무 한갓져요.


.. 이 회의에서 올바로 정해야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아무리 중요한 소식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 수 없거든 ..  (16쪽)


  편집회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편집회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척 중요한 회의라고 하면서, 정작 편집회의가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들려주지도 못합니다. 편집회의에서 여러 사람이 옥신각신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얼마든지 보여줄 만하다고 생각해요. 몇몇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부드러운 그림은 구석에 깃들기는 하지만, ‘말풍선’을 써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거리낌없이 꺼내면서 어떤 이야기를 신문에 실어야 하는가를 한참 주고받으면서 가장 슬기롭게 마무리를 짓는다는 흐름을 보여주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신문기자는 어디에서 일하며 살아갈는지 궁금합니다. 다들 큰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갈까요. 시골 군이나 면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신문기자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모내기하는 기쁨을 그리는 신문기자, 봄나물 뜯는 보람을 그리는 신문기자, 방아를 찧거나 베틀을 밟는 넋을 그리는 신문기자, 낫으로 가을걷이하는 재미를 그리는 신문기자, 벼를 훑고 깨를 터는 땀방울을 그리는 신문기자, 겨울날 짚을 삼으며 돗자리 엮는 웃음을 그리는 신문기자, 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는 꿈을 그리는 신문기자, …… 사건과 사고를 넘어, 우리 삶을 사랑과 평화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이야기빛을 선보이는 신문기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7.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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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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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8

 


마흔 살에 걷는 길
― 공선옥의 마흔 살 고백
 공선옥 글
 생활성서사 펴냄, 2009.2.10.

 


  소설쓰는 공선옥 님은 지난 2003년에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말)라는 책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공선옥의 마흔 살 고백》(생활성서사)을 내놓습니다. 1964년에 태어나셨으니 어느새 쉰 줄에 접어든 공선옥 님이니, 앞으로는 “쉰에 길을 나서다”나 “쉰 살 고백”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내 서른 살 언저리에 읽었고, 《공선옥의 마흔 살 고백》은 마흔 살 길목에서 읽습니다.


.. 그때 누군가 작은 소리로 그러던 것이었다. 으이구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울어. 나는 뒷머리를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미운 짓 하는 내 아이를 누군가는 지금 콱 한 대 때려 주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그 나들이가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 “그런데 아이들이 저를 위로하는 거예요. 제 곁에 그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울지 않게 되었어요.” … 아이가 우는데도 악이나 쓰는 아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 이전에 나는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느꼈다. 아이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라고 했다. 무슨 일로인지 두 사람이 다퉜고 아이 엄마가 식당을 뛰쳐나갔다는 것인데 ..  (20, 27, 29쪽)


  옛날이라면 마흔 살 나이로 접어든 사람한테는 스무 살 아이가 있습니다. 스무 살 나이로 접어든 아이는 마음을 밝히는 짝꿍을 만날 만합니다. 마음을 밝히는 짝꿍을 만난 스무 살 아이는 푸른 빛으로 고운 아이를 낳을 테고, 이 아이는 새롭게 자라겠지요. 이리하여, 마흔 살 어른이 예순 살이 될 무렵, 스무 살 젊은이는 마흔 살 어른이 되고, 갓 태어난 아기는 새로운 스무 살로 꽃피우리라 느껴요.


  커다란 느티나무는 아주 작은 꽃을 풀빛으로 피우고는 아주 작은 열매를 또 풀빛으로 맺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둘레에는 작은 씨앗 떨어져 작은 싹이 돋습니다. 이들 작은 싹은 풀을 먹는 숲짐승이 냠냠 훑어먹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어버이 나무 곁에서 어린이 나무로 줄기가 굵어지기도 해요.


  너무 마땅한데, 사랑스러운 손길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이웃을 아낍니다. 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덜 받거나 못 받으며 자란 아이라 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그동안 덜 받거나 못 받은 따순 손길을 그리며 이웃을 곱게 아낍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언제나 이웃을 아끼는 마음길로 자라요.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이들 모습과 매무새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깨닫지요. 사랑을 주어도 사랑을 먹고, 사랑을 미처 못 주어도 사랑을 먹는 이 아이들 삶빛에서 한 가지를 슬기롭게 배워요. 어른 스스로 어떻게 삶길 걸어갈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가 하고.


.. 울어도 감싸 주거나 뺨 부벼 주는 이 하나 없는 아이들은 이다음에 커서도 그 영혼이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 나는 내심 아이에게 미안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언제 한 번이라도 풍족하게 먹여 준 적 없고 입혀 준 적 없는 엄마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언제 한 번을 새 물건 사 주라고 떼쓴 적이 없었다. 맛난 것 먹자고 한 적도 없었다. 있는 반찬에, 있는 옷에 저희끼리 그냥 커 버린 내 아이 입에서, 오늘의 불편한 여행에 대해 불평 한 마디 없이 고맙다는 말이 턱 하니 튀어나오다니 … 남도 지방을 여행하던 중에 어제 나는 장흥에 사는 지인의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밤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을 때 맨 먼저 나를 압도한 것은 바로 ‘밤의 빛깔’이었다 … 요즘 사람들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릴 생각은 아예 잊어버리고 인공의 빛으로 반짝이는 거리를, 그 ‘야경’이란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아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야경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  (30, 49, 117쪽)


  오늘날 거의 모든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만 보여줍니다. 오늘날 웬만한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문제집과 참고서만 건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입시공부 아닌 사랑을 들려주고 삶을 보여주는 어버이(또는 어른)이 어김없이 있어요. 아이들한테 교과서나 문제집이나 참고서 아닌, 사랑책과 삶책을 넌지시 건네며 함께 즐기는 어버이(또는 어른)가 틀림없이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학교 울타리에 가두지 않는 어버이가 꼭 있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지 않는 어른이 반드시 있어요.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아이들을 들볶지 않는 어버이가, 그러니까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끼는 어른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톱니바퀴 되어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군인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아요. 맑은 넋으로 밝은 숨결 사랑하는 어른이 있어 이 나라가 튼튼히 섭니다.


  맑은 숨결이 목숨을 살려요. 밝은 웃음이 사람을 살리지요. 고운 바람이 목숨을 지키고, 따사로운 햇볕이 사람을 살찌웁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어머니 학력’이나 ‘아버지 재산’은 덧없습니다. 일흔 할매나 여든 할배한테 ‘할매 학력’이나 ‘할배 재산’은 부질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어버이 학력이나 재산을 물어 볼 까닭 없어요. 할매와 할배한테 이녁 학력이나 재산이 어떠한가 여쭐 까닭 없어요. 언제나 즐겁게 마주하고, 늘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노상 웃음꽃으로 이야기 나누면 돼요.


.. 네가 대학에 안 가면 나는 돈 안 들어서 좋고 너는 시간 벌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네가 알면 ‘기절할까 봐’ 너 몰래 나 혼자 했었다. 대학이야 네가 나중에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이 꼭 대학이란 데서 배워야만 할 때, 하여간 뭔가 필요성이 생길 때 가면 되지 않을까. 사람은 내가 정말로 필요하면 무슨 일이든 저절로 하게 되어 있잖냐 … 너는 나를 최초로 엄마로 만들어 준 아이다. 나는 너를 낳았지만 너는 나를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 어떤 사람이 어떻게 세 아이를 혼자서 떠맡을 생각을 다 했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그랬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만약 나만 고생한다는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들을 아이 아빠들에게 두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어땠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 어찌어찌하여 그 ‘험한’ 세월을 통과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둘째 아이 입양하라는 그 상담원을 떠올리곤 했다 ..  (62, 64, 75쪽)


  공선옥 님이 걸어온 길은 어떤 빛이었을까요. “험한 세월(75쪽)”이었을까요? 아마, 공선옥 님 둘레에서 공선옥 님을 바라보던 이들이 이렇게 말했겠지요. 힘들거나 고단하다고 하지만, 늘 사랑이 피어났을 삶이 아닌 껍데기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겠지요.


  배고프다고 죽지 않아요. 목마르다고 죽지 않아요. 배고프면 배고플 뿐이고, 목마르면 목마를 뿐이에요. 배고픔을 잊자면, 목마름을 잊자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니까, 배고픔 아닌 다른 이야기를 떠올려야지요. 목마름 아닌 다른 삶을 찾아야지요. 사랑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꿈꾸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아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날마다 다섯 끼니를 먹더라도 늘 허거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물을 몇 동이 들이켜더라도 언제나 메마릅니다.


  한 숟가락 더 먹기에 배부르지 않아요. 한 숟가락 덜 먹으니 배고프지 않아요. 한 그릇 더 먹으니 배부르지 않아요. 한 그릇 덜 먹기에 배고프지 않아요. 사랑이 없을 때에 배고파요. 꿈이 없으니 목말라요. 사랑하고 멀어지니 힘들어요. 꿈을 잊으니 고단하지요.


.. 내가 꿋꿋이 작은 글들 쓰는 시간들을 견뎌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들 먹여살리기 위해서 내가 하는 글쓰는 일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든 일들을 하지 않았나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올 수 있는 그 어떤 형태의 고난, 억압, 모욕, 치욕까지도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을 때가 아니겠는가 … 밥 먹고 집 앞 오솔길을 걷고 글을 쓰고 사는 단순한 삶을 사랑하고 싶다 … 젊어서 돈을 많이 벌어 놓으면 과연 늙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혹시 돈 버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때까지도 돈돈 하는 사람이 될까 무섭다 ..  (79, 81, 113, 115쪽)


  내가 하는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 없습니다. 가끔 “아이고 힘들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는 하지만, 힘들기에 내뱉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힘을 더 써야 하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올 뿐입니다. 그러면? 그러면 어떡할까요? 힘이 들면 쉬면 돼요. 힘이 들기에 힘을 더 내면 돼요. 힘이 드니까 살짝 쉬었다고 새로 기운을 차려서 일하면 돼요. 힘이 드는 만큼 더더욱 땀을 쏟으면서 애쓰면 돼요.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길이란, 날마다 새롭게 사랑하겠다는 마음가짐이지 싶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나날이란, 언제나 새삼스럽게 꿈꾸겠다는 매무새이지 싶습니다.


  아이한테 베풀 사랑을 키운다기보다, 스스로 새롭게 사랑하려는 삶을 일굽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꿈을 가꾼다기보다, 스스로 새삼스럽게 이루면서 웃고 싶은 꿈을 돌봅니다.


  즐겁게 살아갑니다. 노래하며 살아갑니다. 춤추며 살아갑니다.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즐거움은 이야기가 되고, 노래는 빛이 됩니다. 춤은 밥이 되고, 웃음은 꽃이 됩니다.


..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에는 소나무, 잣나무, 꽃사과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나무, 잣나무, 꽃사과나무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먹는 게 즐겁지 않으니, 뭔들 즐거웠겠는가 … 모든 엄마들은 모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모든 아이들은 모든 엄마들의 아이들이 되었던 것이다 …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되기는 저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내가 왜 진작 몰랐을까. 나이 마흔의 어느 아침에 거울을 보고 앉아 내가 나를 예뻐하며, 나는 그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예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  (123, 148, 174, 191쪽)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아이를 사랑할 수 있지 않아요. 어버이로서 내가 나를 사랑하면 아이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아이한테 집이나 자가용이나 돈을 물려주어야 어버이 몫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일구면 아이는 시나브로 사랑과 꿈을 이어받아요. 스스로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면 아이는 천천히 웃음꽃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요.


  마흔 살에 걷는 길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스무 살에 걷는 길이 더 푸르지 않습니다. 예순 살에 걷는 길이 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열 살에 걷는 길이 더 싱그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고 싶은 사람이 아름답게 걷습니다. 스스로 싱그럽고 싶은 사람이 싱그럽게 걷습니다.


  꿈을 꾸려고 해야 꿈을 꿉니다. 돈이 넉넉해야 꿈을 꾸지 않아요. 사랑을 나누려고 해야 사랑을 나눕니다. 살림이 넉넉해야 사랑을 나누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여다봐요. 마음속에서 자라는 웃음을 노래로 빚어요.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젊은이이고,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스스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스스로 꿈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꿈날개를 폅니다. 아이도 어른도 골고루 한 살씩 더 먹으면서, 저마다 새 하루를 즐겁게 어깨동무합니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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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동화는 내 친구 3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43

 


놀면서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들
―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3.10.15.

 


  오늘 아침에 마을회관에서 한 해를 갈무리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을 할매는 회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시고, 마을 할배는 회관 마루에 앉아서 밥상을 기다리십니다. 이동안 우리 집 두 아이는 회관 마루와 부엌 사이를 쉴새없이 오갑니다.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마을회관 할배들은 아이들이 어지럽게 뛰논다며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웃고, 그저 달리며, 그저 뒹굽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아이들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아요.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할매나 할배가 말리든 안 말리든 신나게 달리고 뒹굴면서 노래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뛰놀지 못한다면 아이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도록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공부를 시킨다면서 조용히 하라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도록 하더라도 공부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마음껏 뛰놀도록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야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테니까요. 아이들은 아이답게 꿈꾸고 노래하면서 뒹굴어야 아이다우니까요.


.. 재미있는 집에서는 목요일마다 완두콩 수프를 먹어요. 그렇다고 리사벳이 목요일마다 완두콩을 콧구멍에 쑤셔넣는 건 아니에요. 사실은 딱 한 번 그래 봤을 뿐이에요 … 누군가를 골탕먹이려는 마음은 없었어요. 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을 뿐이에요 … 사실 엄마는 오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용히 누워 쉬고 싶었어요. 리사벳의 콧구멍을 후벼파고 싶지 않았다고요..  (5, 6, 10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놀 만한 곳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하루 내내 신나게 뛰놀면서 자라는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어떤 데에서 일하거나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놀기 어려운 곳을 집으로 삼지는 않는가요. 아이들이 놀 수 없는 데에서 일하지 않는가요. 아이들이 놀기 어려운 곳에서 살며 아이들을 묶어 놓지 않는가요.


  놀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놀이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아이는 어떤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어른으로 살아갈까요.


  아이한테는 이것을 가르치거나 저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아이 나름대로 이렇게 놀거나 저렇게 놀도록 해야지 싶어요.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은 아이들이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도록 즐겁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놀이마당을 마련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 장롱 옆에는 리나스 이다 아주머니의 기타가 세워져 있어요. 마디켄이 줄을 퉁기자, 마음을 적시는 듯한 고운 소리가 났어요. 어떻게 하면 아주머니처럼 기타를 잘 칠 수 있을까요 ..  (22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글을 쓰고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논장,2003)을 읽습니다. 리사벳은 언제나 즐겁게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리사벳네 언니 마디켄도 늘 기쁘게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둘은 한결같이 놀이에 살고 놀이로 하루를 누립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지으면서 새로운 사랑을 이 땅에 드리울까요.


  어찌 보면 말썽꾸러기이고, 어느모로 보면 말괄량이입니다. 언니 마디켄은 여기에 싸움꾼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마음은 착해요. 착하면서 참답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동무를 아끼고 싶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동무와 예쁘게 어울리고 싶으며, 날마다 새롭게 놀이를 찾고 싶어요.


.. 마디켄은 리사벳의 손을 꼭 쥐었어요. 동생이랑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틀림없이 기뻐하겠죠 … 마디켄은 꼭 중요할 때는 엄마 말을 까맣게 잊어버려요. 늘 싸우고 난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죠. 하지만 지금은 리사벳을 도와줘야 하니까 이야기가 달라요.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  (12, 35쪽)


  리사벳은 콩알을 콧구멍에 넣으며 놀아요. 우리 집 두 아이도 콧구멍에 무언가 넣기를 즐깁니다. 길다란 과자도 콧구멍에 넣고, 까마중 까만 열매도 콧구멍에 넣습니다. 그리고, 콧구멍에 넣은 것을 도로 빼서 입에 넣고 아주 맛나게 먹어요.


  재미있지요. 재미나지요. 오이 한 조각이나 무 한 조각도 그냥 먹지 않아요. 두 손으로 살며시 휘면서 무지개라 말하고, 둥그런 오이 조각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보름달로 바뀌었느니 반달이 되었느니 초승달이라느니 하면서 놀아요.


  나무막대기는 긴칼이 되기도 하지만, 하늘 나는 빗자루가 되기도 합니다. 바닥에 내려놓고는 냇물 건너는 다리로 삼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거나 커다란 울타리라 여기며 껑충껑충 뛰어넘기도 해요. 맨손 맨몸으로 마당을 휘휘 달리면서 어마어마한 모험을 한다고 여겨 까르르 웃기도 합니다.


  옆에서 아이들 놀이를 지켜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섞여 함께 놀아도 즐겁습니다. 장난감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꼭 놀이터까지 가야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들길을 걸어도 놀이가 됩니다. 자전거를 달려 이웃마을 찬찬히 지나다녀도 놀이가 되어요.


.. “자, 꼬마 아가씨들, 뽀뽀를 받고 나서 엉덩이를 좀 맞아야겠어. 그런 다음, 자는 거다.” 아빠는 딱 이 말만 했고요. 하지만 둘은 뽀뽀는 받았지만 엉덩이는 맞지 않았을뿐더러, 아직 자지도 않았어요. 어린이 방 불은 꺼진 지 오래였지만. 리사벳이 물었어요. “언니 침대에 가도 돼?” “응, 와도 돼. 그 대신 내 코에 손대지 않도록 조심해.” 리사벳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마디켄의 침대에 올라갔어요. 그리고 “언니, 팔베개 해 줘.” 하고 말하며 마디켄의 팔에 머리를 괴고 누웠어요. 마디켄은 팔베개를 해 주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면 자기가 훨씬 나이 많은 언니 같아, 리사벳이 귀엽게 느껴졌죠 ..  (54∼55쪽)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혼자서 놀이를 생각해 내면서 놀았습니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혼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신나게 즐겼어요. 종이 한 장에 이 그림 저 그림을 그리면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까맣게 잊으면서 놀았어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얼굴은 칠판을 쳐다보지만 마음속으로는 ‘노는 꿈’을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빙긋빙긋 웃곤 했어요. 이러다가 교사한테 들켜 얻어맞는다든지 꿀밤을 맞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리는 ‘노는 꿈’을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업 진도는 따분하고, 교과서 지식도 재미없지만, 머리로 하나하나 그리는 노는 꿈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워요.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바닷속을 가르기도 합니다. 먼 우주를 날기도 하며 지구별 맞은편에 있는 이웃나라 아이하고 어깨동무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 바라볼 적마다 어린 날을 떠올립니다. 나는 언제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랐습니다. 이렇게 즐거우면서 고맙게 받아먹은 사랑을 아이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든 기쁘게 맞이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즐기는 눈빛을 따사롭게 얼싸안고 싶어요. 이러는 동안 저도 새롭게 일하는 기운을 얻고, 이러는 사이 아이들은 씩씩하면서 튼튼한 마음이 되어요.


  놀면서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놀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어른들입니다. 놀면서 웃습니다. 놀면서 노래합니다. 놀면서 아름답게 일합니다.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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