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 세트 - 전5권 이오덕 일기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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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다섯 권 느낌글을 모두 마무리짓습니다. 이제 다섯 가지 느낌글을 한 자리에 모둡니다. 즐겁게 천천히 살피시면서, 이 책에 깃든 넋과 꿈과 사랑 잘 받아먹으시기를 빕니다. 마지막 느낌글을 올리면서 다섯째 권 느낌글에는 '이제껏 공개 안 한 여러 사진'을 붙였습니다. 모둠 느낌글에도 이제 비로소 보여주는 사진을 몇 가지 붙입니다. 아무쪼록 이 책들 널리 사랑받기를 빌면서, 사람들 가슴에 고운 빛줄기 샘솟는 밑거름이자 책동무로 삼으시면 고맙겠습니다.

 

..

 

 

 

 

http://blog.aladin.co.kr/hbooks/6428075 (갑갑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빛)

이오덕 일기 1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http://blog.aladin.co.kr/hbooks/6437083 (오직 마음속 사랑만 생각하며 산다)

이오덕 일기 2 :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http://blog.aladin.co.kr/hbooks/6443845 (서로 배우는 아이와 어른)

이오덕 일기 3 :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http://blog.aladin.co.kr/hbooks/6457789 (‘죽은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오덕 일기 4 :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http://blog.aladin.co.kr/hbooks/6484851 (숲으로 가는 길)
이오덕 일기 5 : 나는 땅이 될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 사진과 원고는 제가 선생님 원고를 정리하던 때에 스캔한 파일이고,

선생님 무덤과 집과 방은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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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 덕분에, 좋은 책과 느낌글 귀한 자료와 사진까지 잘 받아
마음에 새기며..오래오래 찬찬하고 기쁘게 <이오덕 일기> 책동무 삼겠습니다. ^^
여러모로 애쓰셨고 마음밥, 마음빛..함께 나누어 주시어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

숲노래 2013-07-24 11:26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책동무가 곁에 있으면
하루하루 삶이 새롭게 빛나리라 생각해요~
 
오래된 흙벽집 하늘파란상상 2
이상교 글, 김원희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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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36

 


사람은 나면 시골로 보내야
― 오래된 흙벽집
 이상교 글,김원희 그림
 청어람주니어 펴냄,2009.7.7./9000원

 


  어린이와 젊은이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시골에는 늙은 사람만 남습니다. 도시로 간 어린이와 젊은이는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에서 돈을 법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나 푸름이는 흙일을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는 어른도 흙을 만질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 아이와 어른 모두 돈을 내고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가게에서 사다 먹습니다. 시골에 남은 늙은 사람은 늘 흙을 만지며 일굽니다. 그러나 일손이 모자라거나 힘이 달린 나머지, 농약과 비료를 자꾸자꾸 씁니다. 시골에 젊은 일손이라도 있으면 농약과 비료를 덜 쓸 만하지만, 시골에 남은 젊은 일손이래서 똥오줌 거름을 삭혀서 쓰려는 생각을 키우지 못합니다. 1960∼70년대부터 풀지붕 없애고 흙길 밀며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는 따위로 시골사람 길들인 탓에, 이제 시골에서 똥오줌 거름 잘 삭혀서 젊은이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는 어르신은 매우 드물어요. 소몰이를 가르치거나 물려줄 어르신도 아주 드뭅니다. 시골에서도 돈을 벌어 농기계를 장만해야 하고, 돈을 더 벌어 농기계 움직일 석유값 대어야 합니다.


  갈수록 텅 비는 모습이 되는 시골에는 어린이와 젊은이가 돌아와야 합니다. 흙을 아끼며 사람과 지구를 사랑할 마음 키우고 싶은 어린이와 젊은이가 시골로 돌아와야 합니다. 돈 될 만한 농사짓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집을 짓고 옷을 지으며 밥을 짓는 즐거움 흐뭇하게 누리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치고 싶은 어른들이, 바로 시골로 돌아와야 합니다.


  시골은 물이 맑아야 시골입니다. 시골은 바람이 시원해야 시골입니다. 시골은 햇살이 따스해야 시골입니다. 시골은 풀빛이 가득하고 나무가 우거져야 시골입니다. 곧, 시골에서 냇물과 땅밑물 맑게 마실 수 없다면 시골이랄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시원한 바람 어디에서나 맛나게 마실 수 없다면 시골이랄 수 없어요. 농약 때문에 냇물과 땅밑물을 못 마신다면, 농약 뿌리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다면, 이런 곳은 시골이 될 수 없어요. 풀밭이 없거나 숲이 없을 때에도 시골이랄 수 없지요.


.. 삼촌을 따라 집 구경을 갔던 삼촌 친구 종도 아저씨도 똑같이 말했다고 했다. “삼촌, 왜 하필 그런 집으로 이사했어?” 그런 집 말고도 깨끗하고 살기 좋은 집이 많을 텐데, 싶었다. “벽이 진흙으로 발려 있어 맘에 들었거든.” 꼬라비 삼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숨이 대답했다. “흙벽?” … “무슨 새인데, 참새?” 내 머릿속에서 참새 한 마리가 폴짝 날아올랐다. “재현이 넌 새라면 그저 참새밖에 모르지?” ..  (12∼14, 16쪽)


  예부터 어떤 사람들이 얄궂은 말을 퍼뜨렸습니다. 이른바,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와 같은 말입니다. 참 엉터리라 할 말입니다만, 오늘날에도 이 말이 널리 뿌리내립니다.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처럼 커다란 도시에서조차 이런 도시에 안 남고 서울로 가야 무언가 번듯하게 할 수 있는 듯이 잘못 생각해요. 오직 서울바라기요, 그예 서울바라기입니다.


  서울이 커지면서 시골이 줄어듭니다. 서울이 커지며 서울사람 쓸 공산품과 전기와 물이 모자라다 보니, 시골에 공장을 짓고 댐을 지으며 발전소를 짓습니다. 서울만큼 커지고 싶은 부산이며 대구이며 인천이며 광주이며 대전이며 울산이며, 곳곳에 도시가 자꾸자꾸 커지니, 이런 큰도시와 서울을 이으려는 고속도로를 자꾸자꾸 닦습니다. 고속도로 닦으며 시골마을 무너지고 둘로 쪼개집니다. 발전소 시골에 세워 큰도시로 전기를 보내면서 논밭과 숲에 우람한 송전탑 섭니다. 깨끗한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바라는 도시사람이지만, 그러니까 유기농이니 무농약이니 친환경이니 하고 바라는 도시사람이지만, 정작 시골마을 깡그리 무너뜨리거나 짓밟습니다.


  고속도로를 내는 도시사람은 시골마을 무너뜨려요. 4대강사업 하나 갖고 시골마을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고속철도, 공장, 발전소 따위가 나란히 시골마을 무너뜨립니다. 조금 깨끗하고 조용하다 싶으면 관광지로 만들겠다며 삽질을 해대니 시골마을 망가집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은 바닷가 어디나 다도해 국립공원에 들 만큼 정갈하며 좋은 삶터였지만, 차츰차츰 바닷가 ‘국립공원 지역’을 슬그머니 풉니다. 이러면서 바닷가에 시멘트로 옹벽을 세우지요. 그저 개발짓이고 그저 삽질입니다.


.. 나는 물고기가 정말 좋다. 딱 한 번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송사리였는데 손바닥을 간질이는 것처럼 꼬물거려 얼른 놓아주었다. 그 일은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  (26쪽)


  도시에서도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집은 나무와 흙과 돌로 지었습니다. 도시에서도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골목동네 작은 집’을 허물면, 나무와 흙과 돌을 새로운 집 지을 적에 다시 쓸 수 있었어요. 이른바 ‘건축폐기물’이 거의 안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집을 허물면 온통 쓰레기입니다. 시멘트로 짓고 스티로폼과 합판과 석면 따위를 쓰니, 이런 것들은 집을 허물 때에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어디 갖다 버릴 데가 없는데, 자꾸자꾸 ‘나중에 쓰레기로 버려질 집’을 짓는 한국 사회가 되었어요. 아파트만 걱정거리 아니에요. 시멘트로 짓는 모든 집이 걱정거리예요. 슬레이트지붕만 치운대서 될 일이 아니에요. 시멘트로 지은 모든 집을 걱정해야 해요. 앞으로 이 시멘트 쓰레기를 어찌할 생각일까요.

  생각해 보셔요. 지난날 흙집은 허물어 얼마든지 새로 지을 수 있어요. 흙집 허물어 나온 흙은 땅에 뿌리면 그대로 밭흙 논흙 숲흙 되지요. 아니, 무너진 집을 그대로 두기만 해도 되었어요. 나무와 흙과 돌로 지은 집이 허물어지면, 백 해쯤 지나면 저절로 흙으로 돌아가 깨끗한 새 숲이 이루어져요.


  그러면,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지요. 오늘날 아파트와 빌라를 백 해쯤 그대로 두면 어찌 될까요. 아마 아주 으스스한 곳이 될 테지요. 사람도 풀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쓰레기터가 되겠지요. 핵발전소 핵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하는데, 아파트 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면 얼마나 기나긴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 “처음엔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살다 보니 저절로인 것이 참 많아요.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돋아나 저절로 열매를 맺고, 지고, 또 봄이면 다시 저절로 돋아나고.” “그렇지요? 네발 달린 동물들도 깃털 달린 새도 하다못해 흙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까지도요.” 삼촌이 덧붙여 말했다. “삼촌, 물고기들도.” 윗개울에 가는 걸 미루게 될까 봐, 나도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  (101쪽)


  이상교 님 동화책 《오래된 흙벽집》(청어람주니어,2009)을 읽습니다. 동화책에서는 ‘흙벽집’이라 말하지만, 옛날 집은 벽만 흙이 아니에요. 방바닥과 지붕도 흙입니다. 서까래에 흙을 잔뜩 올리고, 방바닥도 흙을 잔뜩 깔아요. 그래서 ‘흙벽집’이 아닌 ‘흙집’입니다. “오래된 흙집”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이 흙집은 마당도 흙이지요. 예전에는 울타리도 흙으로 쌓기도 했다고 해요. 바닷가나 섬처럼 바람이 많은 데에서는 돌로 쌓지만, 여느 시골마을에서는 울타리 아예 없거나 흙으로 쌓곤 했습니다. 때로는 탱자나무나 찔레나무가 울타리 구실을 해요.


  《오래된 흙벽집》 99쪽을 보면 ‘개밥별’이라는 풀을 얘기하며, 이 풀이 ‘환상덩굴’이라고 적는데, ‘환삼덩굴’을 잘못 적었습니다. 글쓴이도 잘못 적고, 편집부 일꾼도 풀이름을 잘 모른 탓에 그대로 책에 찍혀 나왔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환삼덩굴을 가리켜 ‘개밥별’이라고도 하는군요. 이 동화책은 경기도 가평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는데, 경기도 가평 시골말로는 ‘개밥별’ 풀이라고 일컬을까요?


.. 꽃이며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이 모두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쉿!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사람의 숨, 나무, 꽃, 새, 풀, 물고기, 흙 같은 것들의 숨은 모두, 서로서로 바꿔 쉬는 거래.” 발명가 아저씨가 그물을 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  (126쪽)


  동화책을 덮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집은 시골 흙집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집에서 신나게 뛰고 달리며 구릅니다. 마당에서도 뛰놀고 고샅에서도 뛰놉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거리낌없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춥니다. 아래층 위층 소음공해 피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쉴 적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풀벌레소리와 개구리소리를 듣지요.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습니다. 전남 고흥 시골은 눈이 거의 안 오니 눈소리 듣기는 어렵지만 한 해에 한두 차례쯤은 눈소리를 들어요.

  어른한테나 아이한테나 어떤 집이 사랑스럽거나 즐거울까요. 부동산이 되는 집이 사랑스럽거나 즐거울까요. 아이들이 기쁘게 뛰놀며 어른들은 느긋하게 쉬며 새 기운 차려 하루일 힘차게 여는 집이 사랑스럽거나 즐거울까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집에서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활짝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람은 사람답고 풀과 나무는 풀과 나무다우며, 새와 짐승은 새와 짐승답게 이녁 삶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는 모두 지구별 따사로운 이웃이에요.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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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동물원 일공일삼 47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허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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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35

 


동무와 놀고 싶은 마음
― 외톨이 동물원
 하이타니 겐지로 글,허구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펴냄,2003.11.17./7500원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어느 어른은 ‘또래가 없어서 심심하겠어요.’ 하고 말합니다. 아이 앞에서 할 말과 안 할 말이 있지, 이렇게 생각이 없는 채 말을 해도 되는가 싶지만, 이런 말에는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짧게 대꾸합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놀 데가 없어서 어쩌지요?’


  도시라는 데라 해서 아이들이 또래를 널리 만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온통 자동차투성이라서 아이들이 마음껏 나다니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동차 때문에 걱정하는 나머지 아이들을 함부로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래, 아이들은 도시에 있다 해서 ‘또래를 쉬 만나지 못’해요. 그리고, 도시 어른들은 왜 도시에서 아이들이 또래를 쉬 못 만나는지 못 깨닫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수많은 학원에 얽매이느라 또래놀이를 할 겨를이 없습니다. 학원에서 또래끼리 어울린다 하지만, 놀이를 하지 않아요. 그저 손전화 갖고 노닥거리거나, 텔레비전에서 본 이야기를 시시껄렁하게 주고받을 뿐입니다.


.. 두 사람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는, “업어 주면 될 텐데.” “저러다가 해 떨어지겠네.” 하는 따위의 말을 했다.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고 마리코한테는 제발 들리지 않았으면 싶은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기분 나빠.”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살까?” 200미터를 40분 만에 걸어가는 아이한테는 아무 즐거움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마리코는 채송화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하루미 이모는 채송화가 필 무렵이 되면 항상 그렇게 말한다. “이렇게 뽐내지 않는 꽃도 드물 거야. 그렇지, 마리코? 봐,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려고 채송화는 얼마나 오랫동안 견뎠는지 몰라. 알고 있니? 메마른 땅에서도 뙤약볕이 며칠씩 쏟아져도 채송화는 끄떡도 않고 항상 예쁜 꽃을 피운다는 거.” ..  (13, 23∼24쪽)


  아이들끼리 놓으면, 아이들은 ‘또래’를 굳이 안 따집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나이를 하나하나 캐묻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나이에 따라 누구는 동생 누구는 오빠 누구는 누나 하고 틀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나이를 안 물어요. 아이들이 나이를 묻는 버릇이 있다면, 어른들이 언제나 ‘나이 묻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나이를 궁금하게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은 오직 한 가지만 궁금하게 여깁니다. “이름이 뭐니?”


  아이들은 이름을 궁금하게 여깁니다. 풀 한 포기 이름을 궁금해 합니다. 나무 한 그루 이름을 궁금해 합니다. 나비를 보면서, 벌레를 보면서, 새를 보면서, 구름을 보면서, 저마다 어떤 이름인지 궁금해 합니다.


  도시에서는 가게를 보고 간판을 보고 자동차를 보고 기계를 보고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어마어마한 것들 보면서 하나하나 가리키며 묻지요. “저건 (이름이) 뭐예요?”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부를 만한 동무를 가까이에 두지 않습니다. 갖가지 지식만 아이들 곁에 둡니다.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이 살가이 마주하면서 따사로이 보살필 동무를 가까이에 두지 않습니다. 풀도 나무도 벌레도 짐승도 새도 가까이에 두지 않아요.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 텔레비전을 놓아요.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 놀이터조차 아닌 주차장만 잔뜩 놓아요.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 가게를 놓고 오락실을 놓으며 학원을 놓습니다.


  동무와 놀고 싶은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동무를 만날 수 없으니 못 놀고, 동무를 만나더라도 무엇을 해야 놀 만한지 모릅니다. 도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놀이가 뚝 끊겼어요. 도시 아이들은 언니 오빠 누나한테서 놀이를 물려받지 못했어요. 도시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과 꿈을 물려받지 못했어요. 도시 아이들은 오직 시험공부와 대학입시 두 가지에만 목을 매달아야 해요.


.. “까꿍까꿍, 착하지. 선생님이 노래 불러 줄게.” 야마자키 선생님은 스물다섯 살로 아직 총각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서투른 솜씨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여자 아이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학교에서 쉬할 텐데?” “응.” “기저귀 잘 갈 줄 알아?” 그러자 굼벵이는 “으응.”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아기는 낯선 곳에 오면 기저귀를 갈 때마다 온몸을 뒤틀며 마구 뻗댔다. “난 동생들 기저귀를 천 번도 넘게 갈아 줬어.” “정말이야?” 굼벵이는 기타를 존경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네 동생 기저귀 갈아 주러 내일 학교에 가야겠구나.” … 기타는 콩조림도 조그맣게 쪼개서 먹였다. 굼벵이가 기타를 흉내 내어 사과를 잘게 쪼개고 있었더니, 기타가 타박을 주었다. “그런 건 그냥 손에 쥐고 빨게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이빨이 약해진단 말이야.” “끄으응.” 하고 야마자키 선생님이 신음 소리를 냈다. 기타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도 기타를 새삼 다시 보았다 ..  (36, 47, 52쪽)


  두 아이와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또래 아이’가 없어도 됩니다. 시골에 있는 또래 비슷한 아이라 하더라도, 여느 도시 아이와 똑같다면, 아이들 스스로 가까이 다가서지 않습니다. 재미없거든요.


  시골에서는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아요. 마냥 뛰고 달리면 놀이예요. 풀잎을 만지고 또랑물을 첨벙첨벙 밟다가는 샘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면 놀이예요. 꽃을 꺾어 목걸이와 반지와 팔찌를 만들어요. 꽃을 귀에 꽂아요. 꽃을 들고 달려요. 잠자리를 좇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어요. 힘들면 나무그늘에 털썩 주저앉아 시원한 풀바람을 쐬지요. 이 모두가 놀이예요. 달리 놀이가 아니에요.


  자치기니 굴렁쇠니 해야 놀이가 아니에요. 공기나 소꿉을 해야 놀이가 아니에요. 자전거나 딱지나 물총이 있어야 놀이가 되지 않아요. 제비를 올려다보고 먼발치에서 해오라기를 바라보아도 놀이예요. 풀을 뜯어서 맛보고, 꽃잎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놀이예요.


  도시 어른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돼요. 시골에는 놀이터가 없어요. 시골에는 놀이터가 없어도 돼요. 시골에서는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이 오롯이 놀이터예요.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은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놀이터예요. 쉼터이고 만남터이며 잔치터가 되지요.


.. ‘차코를 태워 줘야지. 차코를 태우고 여기저기 다닐 거야. 차코는 탐험가가 될지도 모르니까.’ ..  (72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 동화책 《외톨이 동물원》(비룡소,2003)을 읽습니다. 짧은동화 다섯 꼭지를 실어, 다섯 갈래로 다섯 삶을 일구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섯 갈래로 보여주는 다섯 가지 아이들 삶은 모두 다른데, 꼭 한 가지는 비슷합니다. 다섯 갈래 아이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외롭습니다. 슬픕니다.


  그러나, 다섯 갈래 아이들은 어버이 주머니가 가난할 뿐, 어버이와 아이 마음은 넉넉해요. 다섯 갈래 아이들은 짓궂은 어른들 때문에 외롭지만, 스스로 마음속에서 사랑을 길어올리고픈 꿈을 키워요. 다섯 갈래 아이들은 바보스러운 어른들 때문에 자꾸 슬픔을 맛보지만, 동무들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 땅에 고운 눈빛 밝히는 꽃이야기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 “너구리처럼 인기 없는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지?” 소년은 안심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는 소년이 “으응.” 하고 힘든 소리를 냈다. “조용한 동물이랑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 먹이 저장실에 가자, 소년은 감탄한 듯이 외쳤다. 마른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향긋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소년은 마른풀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아니야, 들판 냄샌가?” ..  (90, 91쪽)


  우리 어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궁금해요. 아이들은 ‘동무와 놀고 싶은 마음’인데, 우리 어른들은 ‘어떤 이웃이나 동무를 사귀면서 무엇을 하고픈 마음’일는지 궁금해요.


  술자리 아닌 즐거운 놀이를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인가요? 담배 아닌 기쁜 놀이를 떠올릴 줄 아는 어른인가요? 극장이나 쇼핑이나 관광 말고, 호젓한 이야기잔치 이루는 살가운 놀이를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인가요? 돈 한 푼 안 쓰면서 다 함께 활짝 웃음짓는 놀이를 꿈꿀 줄 아는 어른인가요?


  어른들 스스로 꿈꾸지 않고서 아이들더러 꿈꾸라 말할 수 없어요. 어른들 스스로 서로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이들더러 이웃을 사랑하라 말하지 못해요. 어른들부터 참답고 착한 삶 일굴 때에, 아이들은 참답고 착한 마음을 품어요. 어른들부터 슬기롭고 올바른 삶 빛낼 적에, 아이들은 곱고 맑은 말씨로 예쁜 벗님 되어 날마다 신나게 뛰어놉니다.


..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술장수는 꿈이 없는 직업일까…….’ 가즈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쩐지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즈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연필을 들었다 ..  (108쪽)


  아이들은 아이다운 몸가짐으로 놀 적에 튼튼히 자라요. 아이들은 아이다운 낯빛으로 활짝 웃을 적에 씩씩히 커요. 어른들은 어른다운 마음가짐으로 일할 적에 꿋꿋하게 살아요. 어른들은 어른다운 눈빛으로 티없이 웃을 적에 아름다운 길 걸어요.


  아이들한테 말미를 주셔요. 아이들이 스스로 놀 만한 말미를 주셔요. 아이들이 걱정없이 뛰놀 빈터를 주셔요. 아이들한테 돈 말고 꿈을 주셔요. 아이들한테 문제집이나 참고서나 교과서 말고 사랑을 주셔요. 아이들한테 직업훈련이나 입시지옥 말고 놀이를 주셔요.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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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배 아이들 작은 책마을 1
리혜선 지음, 이영경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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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33

 


사랑이라는 씨앗 심는 어린이
― 사과배 아이들
 리혜선 글,이영경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2006.9.15./7500원

 


  아이들이 뛰놉니다. 거리끼지 않고 뛰놉니다. 뛰노는 아이들은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함께 뒹굴고 같이 얼크러집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러 1등을 맞은 아이도, 시험점수 꼴등이 나온 아이도, 다 함께 하나가 되어 어우러집니다.


  아이들 놀이에는 등수가 없습니다.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에 등수란 없습니다. 고무질이나 공기놀이에 등수란 없어요. 그러나, 어른들 교육에는 온통 등수입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아이들한테 점수를 닦달하고 등수를 매기는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빌미를 내세우지만, 막상 어른들 하는 짓은 가르침 아닌 점수다툼과 시험지옥입니다.


  아이들은 깍두기를 마련합니다. 느리거나 굼뜬 아이라 하더라도 어느 쪽에나 끼면서 함께 놀 수 있습니다. 어른들 누리에는 깍두기가 없습니다. 느리거나 굼뜬 아이는 바보 대접을 받습니다. 점수가 떨어지거나 시험을 못 보는 아이들은 따돌림을 받으며 고달픕니다.


.. 상에는 사과 외에도 산열매들과 나뭇잎, 돌멩이, 풀씨들이 울긋불긋 가득 올랐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운이에게서 이런 것들이 죄다 멋진 이름을 가지는 것이다. “이건 사과요, 이건 국수와 쌀, 송편, 경단, 무지개떡이니라.” ..  (14쪽)


  놀이가 사라진 학교는 배움터라 할 수 없습니다. 놀이를 억누르는 학교는 배움터와 동떨어집니다. 놀이하고 금을 그은 채 오직 시험공부만 시키는 학교는 배움터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어른들 스스로 놀 줄 모르기에 아이들을 놀게 하지 않아요. 어른들 스스로 아름답게 놀지 않는 터라,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헤아리지 못해요. 어른들 스스로 놀이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나머지,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놀면서 얼마나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는가를 알아채지 못해요.


  삶이란 놀이입니다. 일이란 놀이와 같습니다. 즐겁게 꾸리는 삶이지, 억척스레 쌓아올려 이름이나 돈이나 힘을 거머쥐려는 삶이 아닙니다. 즐겁게 일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려는 일이지, 나 혼자 이름과 돈과 힘을 차지하면서 우쭐거리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두레는 즐겁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두레를 합니다. 품앗이는 사랑스럽습니다. 밥잔치를 베풀고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면서 아이 어른 모두 기쁘게 놀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기에 품앗이를 합니다.


.. 범두가 꽥 소리를 질렀다. “왜 혼자 먹어? 이 먹보야.” “생일이니까 혼자 먹어두 돼.” 영호가 창선이의 편을 들며 범두를 쏘아 주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혼자 먹으면 욕심이 불어난다고…….” “생일이니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창선이의 입 안에서 가득 부서져 내리는 사과 소리를 듣자 아이들은 일제히 새콤한 침을 꿀꺽 넘겼다 ..  (16∼17쪽)


  시험점수를 쌓는 학교에서는 참삶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어른과 아이가 허물없이 놀고 어울리면서, 저마다 살아가는 뜻과 보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으려 할 때에 비로소 참가르침과 참배움이 샘솟습니다.


  호미질 한 번이 즐거워야지요. 낫질 한 번이 기뻐야지요. 바느질 한 땀으로 노래가 나오고, 빨래 비빔질 한 차례로 춤사위 샘솟아야지요.


  이맛살 찡그릴 때에는 일답지 못합니다. 위와 아래로 나누어 누구는 시키기만 하고 누구는 부려먹히기만 한다면 일다울 수 없습니다. 계급이나 신분이 있으면 일이 아니라 굴레입니다. 계급이나 신분은 사람을 사람 아닌 노예로 길들입니다.


  직급도 직위도 없어야 해요. 과장이니 부장이니 차장이니 하는 이름이란 얼마나 덧없을까요. 시인 가운데에는 과장 시인이나 부장 시인이 없어요. 사장 시인이나 회장 시인이란 없지요. 모든 시인은 그저 시인입니다.


  놀이하는 아이들 가운대 대장 아이와 쫄개 아이란 없습니다. 모든 ‘놀이 아이’는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 이때 갑자기 창호가 달려들어 범두의 손에 든 것을 빼앗아 갔다. 너무 뜻밖이고 조금 심하기까지 해서 범두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창호는 손에 쥔 씨를 높이 들고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사과를 심자!” “와, 신난다!”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다. 창호는 머리를 힘껏 쥐어박았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  (32쪽)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 어린이입니다. 사랑씨앗 아니고는 따로 심지 않는 어린이입니다. 다만, 사랑씨앗 아닌 씨앗도 함께 심지요. 이를테면, 꿈씨앗을 심어요. 믿음씨앗을 심지요. 생각씨앗을 심으며, 웃음씨앗과 이야기씨앗을 심어요.


  아이들은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심는 아이들은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따위를 생각했다면 씨앗을 심을 마음이 피어나지 않아요. 이런 따위를 생각하면 씨앗도 어깨동무도 꿈도 아닌 어두움만 가득하고 말아요.


  곧, 어른들은 아이들을 낳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낳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낳아 사랑을 새롭게 배웁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고운 숨결 물려받으면서, 이 고운 숨결을 사랑과 꿈과 빛으로 다시 북돋아서 씨앗 한 톨로 곱다시 선물로 내어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한테서 사랑과 꿈과 빛을 받아먹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늘 삶과 살림과 이야기를 나누어 줍니다.


.. 차차 창호의 눈이 이상한 빛을 뿜기 시작했다. 저 나무에 백두산 너머 고향의 과일 접지를 접목한다……, 이곳 기후에 맞게 풍토 순화하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새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다……, 사과같이 예쁘고 달고, 배같이 물이 많고 시원하고……, 이 산에도, 저 산에도, 저기 저 산에도 가득 과수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과일이 이름은 사과……배, 아아, 사과배 ..  (62쪽)


  리혜선 님 어린이문학 《사과배 아이들》(웅진주니어,2006)을 읽습니다. 중국땅에서 새 삶터 일구려 한 한겨레가 어떻게 ‘사과배’ 한 알 얻을 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온통 어둡고 깜깜한 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빛을 되찾으며 삶을 밝혔는가 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른들은 그저 ‘새 땅’에 가면 되겠거니 하고 여깁니다. 아이들은 노상 ‘가장 맑은 꿈(사과 한 알)’을 생각합니다. 물 설고 낯 설며 추운 새터에서도 ‘가장 맑은 꿈(사과 한 알)’을 누리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이 아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무릅쓰고 ‘사과배’를 생각해 냅니다. 씨앗을 심고 가꿉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고 여러 차례 어긋났지만 씩씩하고 꿋꿋하게 꿈을 키워 바야흐로 사과배 한 그루 얻습니다.


  아마, 감나무도 아이들이 빚은 씨앗 한 톨에서 자랐겠지요. 온누리 모든 열매나무는 아이들이 품은 꿈 한 자락에서 태어났겠지요. 곡식도 푸성귀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언제나 아이들이 가장 맑고 밝은 꿈을 키우고 생각을 빛내 이루었으리라 느껴요.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공부에 시달려서는 안 돼요. 이 아이들을 학교에 내몰아 입시지옥에 휘둘리게 해서는 안 돼요. 아이들은 들을 밟고 숲을 누리며 나무와 나란히 서며 놀아야 해요. 아이들은 하늘숨을 마시고, 바람내음 맡으며, 풀빛을 좋아하며 자라야 해요. 그래야 아이들입니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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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저 이 책 꼭 읽을래요. ^^
히히..사과 배 아이들, 다 너무 좋아해요.~

숲노래 2013-06-27 13:24   좋아요 0 | URL
리혜선 님이 쓴 책 가운데
<코리아드림>이 아주 재미있는데...
'남녘 문제'를 너무 날카롭게 건드렸다 해서
여러모로...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요새는 이분 작품이 남녘에 거의 소개가 안 되는 듯해요...

페크pek0501 2013-06-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중고교의 체육수업을 지금보다 늘리겠다고 하더군요.
체육수업을 늘리면 체력 향상뿐만 아니라 인성교육도 되고 학습능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입시 경쟁으로 인해 체육 수업을 줄였었다는 게 문제지요.
아이들이 뛰어 논다면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겠지요.

"아이들은 들을 밟고 숲을 누리며 나무와 나란히 서며 놀아야 해요."
"놀이가 사라진 학교는 배움터라 할 수 없습니다." - 맞습니다. ^^

숲노래 2013-06-27 18:28   좋아요 0 | URL
체육 수업이 늘어나도 '교과서에 나오는 어떤 스포츠를 따라하는' 것에 그친다면, 늘리나 마나가 될 텐데, 어느 특정 과목 수업을 늘리는 것이 아닌, 입시제도가 사라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겠지요....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 왜 전쟁 반대와 평화가 중요할까요?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0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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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5

 


전쟁을 부르는 군대
―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이임하 글
 철수와영희 펴냄,2013.6.25./13000원

 


  군대는 사람을 죽이는 곳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도록 내몰려고 군대라는 데가 생겼습니다. 군대는 사람을 버젓이 죽여도 법으로 아무 잘못을 캐묻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법에 따라 사람을 때리거나 다치게 하거나 죽여도 딱히 말썽거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하사관이나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대대장 같은 이들이 여느 병사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 하더라도, 여느 병사가 ‘하극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면 그저 ‘하극상’이 될 뿐입니다. 또한, 전방이나 최전방에서 여느 병사가 북쪽으로 넘어가려 했기에 총으로 쏘아 죽였다 하면,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한테 훈장이 떨어집니다. 여느 병사가 군대에서 얻어맞아서 괴롭든, 따돌림을 받아서 괴롭든, 여러모로 괴로워서 군대를 벗어나려고 하면 ‘탈영’이라는 죄를 붙여, 적어도 무기징역이라 하는 군사재판을 붙입니다. 군대를 벗어나면서 총알 하나를 건사했다면, 또는 총알 하나 없더라도 소총을 들고 벗어났다면, 이때에는 언제라도 총으로 쏘아 죽여도 법에서는 따지지 못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해방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군대에서 일어난 모든 ‘의문사’는 이렇게 ‘죽은 사람한테 덤터기 씌워’ ‘죽인 사람은 아무 허물도 죄값도 치르지 않은’ 채 빠져나왔다는 뜻입니다.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군대에서 여느 병사 한 사람을 괴롭히며 두들겨패다가 그만 숨이 끊어지면, 전방이나 최전방에서는 ‘지뢰를 밟아서 주검 하나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둘러대기도 합니다. 때로는 ‘북쪽으로 넘어갔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면, ‘시체 부검’조차 할 수 없지요.


  나는 이 여러 가지 일을 군대에서 몸소 겪었어요. 최전방 철책에서 경계근무를 서는데, 갑자기 옆 부대 소초에서 ‘지뢰 밟아 두 사람이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옆 부대는 우리 소초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데에 있는데, 지뢰 터진 소리는 못 들었어요. 그런데 지뢰 밟아서 두 사람이 죽었다 하더군요. 한여름 어느 날에는 4/5톤 짐차 엔진이 터져서 사람이 죽었다는 보고도 들었으나, 짐차 엔진 터진 소리도 못 들었고, 그런 부스러기도 못 봤어요. 그러나 ‘사람이 죽은’ 일은 틀림없습니다. ‘개미에 물려서 죽었다’는 사람도 있어요. 모두 어떻게 해서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 모르는 채 벌어진 ‘의문사’들입니다. 내가 있던 부대 중대장도 이녁 마음에 안 드는 병사가 있으면 “이 개새끼들아, 너희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야. 총으로 너희 머리 갈기고, 이북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다음 시체 갖다 버리면 그만이야.” 하고 소리지르곤 했습니다. 이렇게 소리지르며 얼차려를 주는데, 참말 K-1소총에 실탄 잰 탄창 끼워 장전을 하면 등줄기로 땀이 스르르 흐릅니다. 넋이 나가지요.


.. 교과서는 한국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를 사진을 곁들여 두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읽고 ‘아이들은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교과서는 이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네요 … 단순하게 사실을 추려서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실 뒤에 숨은 뜻을 밝혀내는 역사 교육과 사회 교육이라면 좋지 않을까요  ..  (9, 10쪽)

 

 


  군대가 있어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기에 전쟁을 벌입니다. 군대가 있는 나라는 언제나 전쟁을 일삼습니다. 군대가 있기 때문에 평화 아닌 전쟁으로 기울어지고, 정치권력은 독재와 봉건과 제국주의로 치닫습니다.


  군대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사람을 잘 죽이는 재주’를 가르칩니다. 농사를 짓던 사람이건,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던 사람이건,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사람이건,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사람이건, 군대에 끌려가면 모조리 ‘사람을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재주’를 가르칩니다.


  어떤 사람은 총검술을 보며 멋있다고 말하는데, 총검술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빠르게 더 많은 적군 목을 한 칼에 따서 죽이는 재주가 총검술입니다. 한 칼에 한 사람 목을 따서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백병전’이라 해서, 주먹다짐으로 맞붙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한 사람이 백 사람을 죽일 수 있어’야 비로소 살아남는다고 가르칩니다. 총검술을 가르치면서 동작 하나 어긋나거나 느리면 뒤에서 군화발로 뻥뻥 걷어차거나 얼차려를 시키는 까닭은 ‘너 이렇게 엉터리로 하면 네가 죽는다’는 생각을 집어넣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소총 소염기로 얼굴과 배와 옆구리와 허벅지를 쿡쿡 찌르면서 우리 마음에 ‘너 말이야, 사람을 아주 쉽게 많이 죽일 수 있어야 해’ 하는 생각을 길들이듯 집어넣지요.


  총쏘기 훈련을 할 적에, 영점사격 석 발 쏘며 점수 제대로 안 나오면 언제나 얼차려를 받습니다. 한 시간 동안 죽을 똥 빼면서 얼차려를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석 발을 쏘게 하지요. 이때에도 점수 제대로 안 나오면 다시금 얼차려를 죽음과 같이 받아요. 사격훈련 한다면 새벽부터 밤까지 얼차려 받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잘 쏘든 못 쏘든 똑같습니다. 다 함께 똑같이 얼차려를 받아요. ‘군대 갔다 오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 까닭도, 늘 얼차려를 받고 시달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총은 총자루가 휘어졌기도 하고, 어느 총은 덜컥거리기도 합니다. 조교라든지 교관이라든지 고참이라든지 중대장은 말합니다. ‘싸움터에서 총 탓을 하다가는 네가 죽는다. 엉터리 총이라 하더라도 엉터리 총으로도 영점사격 똑바로 해야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전쟁터에서 물불 가릴 수 없고, 옆사람 총을 들고 쏴야 할 수 있으니, 다 망가진 총으로도 백발백중을 해야 하겠지요. 그러면, 왜 이렇게 총쏘기를 가르치겠습니까. 바로 더 많은 사람을 더 빨리 죽이라는 뜻입니다.


.. 친일파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해방이 되자 친일파들은 대중들의 열기에 놀라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벌벌 떨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친일파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죠. 미군이 38도선 이남 지역에 들어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친일파를 포함한 지주, 자본가들은 재빨리 모여 한국민주당을 만들었어요. 한국민주당은 미군정에 앞장서 협력하면서 새로 세워질 나라의 지도자로 이승만을 지지했답니다 ..  (16쪽)

 

 


  나는 1995년 11월 16일에 논산훈련소로 끌려가서 106 무반동총 주특기를 배운 뒤, 기차로 열여덟 시간을 달려 강원도 춘천 102 보충대에 닿았고, 이곳에서 사흘 지내고 나서 소양호를 배를 타고 한 시간에 걸쳐 가로지른 다음, 4/5톤 짐차에 실려 꼬박 하루를 달리며 21사단 백두산부대 휴양소에 닿아, 이곳에서 사흘 동안 눈쓸기를 하고서야 비로소 강원도 양구 동면 원당리에 있는 21사단 11연대에 떨어졌습니다. 연대 한쪽 막사에서 하룻밤 지내며 또 눈쓸기를 했고, 이듬날 새벽에 다시 4/5톤 짐차에 실려 두 시간쯤 달려 멧골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대암산, 월운리, 천지, 대우산, 도솔산, 이렇게 다섯 군데 비무장지대에서 여느 보병(땅개)으로 뒹굴었고, 1997년 12월 31일에 엄청나게 퍼붓는 눈길을 헤치며 가까스로 전역을 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사람들은 계급장에 따라 바보가 됩니다. 나이가 열 살이 위가 되든 아래가 되든, 계급장에 따라 ‘님’이 됩니다. 똑같은 계급장이라 하더라도 군대밥(짬밥)을 몇 그릇 더 먹었느냐에 따라 ‘님’이 달라집니다. 하루라도 일찍 군대밥 먹었으면 ‘님’이 되지요.


  여느 회사에서도 이와 같아요. 회사와 군대는 위계질서가 똑같습니다. 회사와 군대는 서로 똑같이 전쟁을 합니다. 내가 안 죽으려면 너를 죽여야 하듯 다툽니다. 내가 살겠다며 내 밥그릇을 챙깁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안 찾는 회사요 군대이지요. 중앙정부에서 꾀하는 경제개발을 생각해 봐요. 경제개발이란 다 함께 잘 살아 보자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을 파헤쳐서 돈을 더 많이 얻어내려는 뜻입니다. 지구별을 아름답게 돌보면서 꾀하는 경제개발 내놓는 중앙정부는 아직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골 농사꾼을 보살피면서 꾀하는 경제개발 이끄는 중앙정부는 지구별 어디에 있을까요.


  누군가는 군대에서 보낸 일을 ‘추억’이라느니 ‘낭만’이라느니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추억도 있고 낭만도 있겠지요. 군대에서라고 추억이나 낭만을 말하지 말란 법은 없어요. 감옥에서도 추억과 낭만 찾을 수 있고, 먹을 것 없어 쫄쫄 굶는 가난한 집에서도 추억과 낭만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군대는 전쟁을 일으키려고 만들었어요. 전쟁을 일으켜서 ‘이웃’ 아닌 ‘적군’을 죽이려고 만들었어요.


  전쟁이 터지면, 이쪽에서는 저쪽을 적군으로 삼고, 저쪽에서는 이쪽을 적군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봐요. 이쪽에서 군인이 되는 사람은 누구요, 저쪽에서 군인이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군인이 되는 사람은 모두 ‘여느 사람’, 곧 백성입니다. 서민입니다. 민중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군인이 되는 사람은 언제나 ‘여느 사람’이에요. 예전에는 모두 다 ‘농사꾼’이 군대로 끌려왔겠지요. 1950년부터 벌어졌다고 하는 한국전쟁에서도 군인은 죄 농사꾼이었고, ‘우리 편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적군’도, ‘적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저쪽 군인’도 모두 농사꾼이었어요.


  농사꾼이 왜 총을 들어야 했을까요. 농사꾼이 왜 흙이 아닌 총을 만져야 했을까요. 농사꾼이 왜 사랑스러운 이웃을 돌보지 않고, 온통 적군만 생각하며 ‘사람 죽이는 짓’을 해야 했을까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람을 죽인’ 이들도 군인입니다. 군인은 ‘사람을 죽이’면서 ‘사람을 죽인다’고 느끼지 않도록 배웁니다. 군인은 ‘사람 아닌 적군’을 죽인다고 배웁니다. 군인은 사람을 죽여도 법으로 벌을 받지 않고 죄값을 따지지 못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 죽이는 특권(?)’을 받는 군인 또한 ‘사람 대접 못 받는’ 셈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삶을 못 배우고,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며 때리는 재주만 배우는데, 군인이 사람다운 넋을 건사할 수 없습니다.


.. 이 전쟁 이야기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쓰인 듯하지만, 사실은 미국의 입장만 도드라져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해방 뒤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다양하고 격렬한 사람들의 이야기, 해방의 기쁨, 새 나라를 향한 열정, 군중의 물결 따위는 아예 나와 있지도 않잖아요 … 이 삐라들은 한강을 건너오는 모든 민간인을 적이라고 말하네요. 실제로 미군에게는 피난민에게 총을 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어요 … 미군은 민간인 거주지를 포함한 월미도 동쪽 전체를 집중 폭격했답니다. 민간인 희생을 줄이려는 어떠한 조치도 없이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폭격하고 눈으로 식별 가능한 높이에서 주민에게 기총 소사가 행해졌죠 ..  (34, 43, 54쪽)

 

 


  전쟁을 부르는 군대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군대입니다. 평화를 짓밟는 군대입니다. 평화를 깔아뭉개는 군대입니다. 군대를 거느리느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퍼붓습니다. 군대에서 쓰는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무기를 보살피며, 전쟁무기를 새로 만드는 데에 돈을 끔찍하게 많이 쏟아붓습니다.


  전쟁이 왜 터지는가를 생각해 보셔요. 서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돈과 자원과 보배와 땅’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돈이나 자원이나 보배나 땅을 빼앗으려고 할까요? 첫째, 정치권력자가 돈과 자원과 보배와 땅을 혼자 차지하면서 배불뚝이가 되려는 꿍꿍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저희 나라가 배고프기에 배고픈 사람들 먹여살리려고 전쟁을 일으킨다고 내세웁니다.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와 군대에 들이는 돈을 이웃나라한테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 봐요. 전쟁 날 일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서로서로 ‘군대와 전쟁무기’ 아닌 ‘나눔과 사랑’에 돈과 품과 땀을 들인다면, 지구별은 아름답고 평화롭습니다. 중앙권력자가 사람들을 바보로 길들이려고 군대를 거느리지요. 중앙권력자가 스스로 권력을 지키려고 군대를 더 단단히 갖추지요.


  평화를 바란다면 총칼 아닌 호미와 쟁기를 들 노릇입니다. 평화를 꿈꾼다면 탱크나 전투기나 잠수함이나 미사일 아닌 꽃과 풀과 나무와 숲을 보살필 노릇입니다. 권력이 생기고 군대가 나타나면서 주먹다짐과 따돌림이 생깁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법으로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이 되니, 주먹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짓이 자꾸 불거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내녀석이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야말로 어리석지요. 군대에 가서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우는 사내녀석이 어떻게 사람이 되겠습니까. 다만, 집에서 어리광쟁이로 지내다가 군대에서 규율에 얽매여 쉬지 못하게 채찍질 받으니까 그제서야 ‘집에서 얼마나 느긋하고 즐겁게 보냈는가’를 돌아보면서 게으른 버릇을 고친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집에서 어버이가 이녁 아이 게으른 버릇을 바로세우지 못한 잘못을 깨닫지 않고 ‘군대에 보내면 끝’이라고 여기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바보스러운 마음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사내녀석은 군대에 가서 주먹질과 ‘사람 죽이는 재주’에 길들여져서 쉽게 주먹다짐을 하고 가정폭력 일으키며 사회범죄를 일으키는 한편, 위계질서에 따라 척척 생체기계처럼 움직이고 맙니다.


  명령과 지시에 따라 복종을 하면 사람 아닌 생체기계예요. 사람은 창조와 상상으로 움직이는 목숨이에요. 사랑과 꿈으로 삶을 지을 때에 사람입니다. 창조도 상상도 빼앗기고, 사랑과 꿈도 잃는다면, ‘사람 죽이는 재주로 스스로 죽이는 노예’ 노릇밖에 못합니다.


.. 고지 쟁탈전은 북한군과 중국군의 죽음만을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라는 명령으로 한국군도 고지 쟁탈전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죽어 갔습니다 … 고지 뺏기는 자기의 공적만을 생각한 장군들의 무모한 작전으로, 많은 병사들을 희생시켰답니다. 그런데도 이를 지휘한 장군들은 곧잘 국군의 용감함과 자신의 공적으로 고지 뺏기를 미화하곤 하죠 … 과거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한국의 즉시 독립을 원하지 않았죠. 이렇게 살펴보니 미국의 정의가 반드시 한국인에게 정의는 아닌 것 같네요. 오히려 미국은 자기들의 이익과 맞물려 있으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그것을 정의라고 주장합니다 ..  (70, 71, 190쪽)

 

 


  이임하 님이 일군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철수와영희,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남녘과 북녘 사이에 일어났던 생채기’ 이야기입니다. 정치권력자와 학자는 ‘한국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이들한테나 ‘전쟁’이지 ‘전쟁 당사자’한테는 전쟁이 아닌 ‘생채기’입니다.


  내 아이가 죽고 내 옆지기가 죽으며 내 이웃과 동무가 모두 죽은 생채기입니다. 정치권력자끼리 꿍꿍셈 키워 남쪽과 북쪽을 갈랐어요. 정치권력자끼리 꿍꿍속 키워 사회 제도를 나누었어요.


  남녘과 북녘은 남남이 아닙니다. 그저 한겨레일 뿐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남남이 아닙니다. 서울과 경기도는 남남이 아닙니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남남일까요. 인천과 부천은 남남일까요. 서로 다른 삶 일구는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서로 다른 삶터에서 다른 사랑 보듬는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 세계를 서로 적대하는 두 세계로 나누어 바라보는 방식은 소련과 북한 또한 미국과 다르지 않았어요. 두 손바닥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냉전의 세계관은 서로 마주보고 귀를 막은 채 자기만 옳다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곧 냉전의 세계관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상대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세계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소개된 삐라를 읽다 보면, 냉전이 한국 전쟁의 명분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 왜 전쟁 반대와 평화가 중요할까요 …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를 힘으로 누르거나 굴복시키려 할 게 아니라,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교류로 이해해야 합니다 ..  (184, 198, 199쪽)

 


  이야기책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가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지 않습니다. 남녘 정치권력자와 북녘 정치권력자와 미국 정치권력자가 서로 어떤 속셈으로 이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들볶으며 닦달했는지를 차분하게 알려줍니다. 정치권력자 틈바구니에서 생체기계처럼 휘둘리거나 휩쓸린 채 죽고 죽이며 스스로 아프고 만 가녀린 사람들 이야기를 조용히 밝힙니다. 누가 전쟁을 불렀고, 누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도록 부추겼으며, 누가 이 나라를 이토록 망가뜨렸는가 하는 뿌리를 가만히 속삭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슬픈 전쟁이나 슬픈 노예나 슬픈 군대나 슬픈 ‘삐라 공작’이 아닌, 즐거운 평화와 아름다운 사랑과 따사로운 꿈을 키우자는 이야기를 천천히 펼칩니다.


  군대는 전쟁을 부릅니다. 군대는 죽음을 부릅니다. 군대는 미움과 주먹다짐과 따돌림을 부릅니다. 평화가 평화를 부릅니다. 사랑이 사랑을 부릅니다. 꿈이 꿈을 부릅니다. 이 나라 예쁜 아이들이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를 빕니다. 이 나라 예쁜 어른들이 하루빨리 군대를 훌훌 털어내어 평화로운 삶 일구기를 빕니다. 이 나라 예쁜 아이들이 전쟁 아닌 평화를 생각하고, 죽음 아닌 사랑을 헤아리며, 미움·주먹다짐·따돌림 아닌 웃음·노래·춤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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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6-2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긴 글을 쓰시다니, 하실 말씀이 많으셨나 봐요.


"군대는 전쟁을 부릅니다. 군대는 죽음을 부릅니다. 군대는 미움과 주먹다짐과 따돌림을 부릅니다. 평화가 평화를 부릅니다."
- 세계인이 모두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군사력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부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잘 보고 갑니다. ^^

숲노래 2013-06-21 14:50   좋아요 0 | URL
군대와 전쟁 이야기는 그닥 하고 싶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 제대로 모르는 사람, 올바로 알려고 안 하는 사람, 잘못 아는 사람...
너무 많아서,
또 책이 아름답기 때문에
이래저래 그럭저럭 이야기를 붙였어요.

부디 '군대와 전쟁'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이 똑똑히 알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