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바바라 아몬드 지음, 김윤창.김진 옮김 / 간장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아이 돌보기
[사랑하는 배움책 17] 바바라 아몬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

 


- 책이름 :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 글 : 바바라 아몬드
- 옮긴이 : 김진, 김윤창
- 펴낸곳 : 간장 (2013.4.11.)
- 책값 : 15800원

 


  아이들은 시외버스를 타면 갑갑해 합니다. 좁은 걸상에 꼼짝 않고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버티기 힘드니까요. 아이들 아닌 어른도 시외버스에서 견디기 벅찹니다. 시외버스에서 여러 시간 견디기 힘드니, 어른들은 시외버스에 텔레비전을 붙여서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런데, 시외버스에 붙인 텔레비전에서는 ‘어른들이 보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쇼’만 흐르지, ‘아이들이 볼 만한 영화나 만화나 이야기’는 흐르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괴롭고 슬프게 낑겨야 합니다.


  시외버스에서 창문이라도 열 수 있으면, 바깥바람 조금 쐬면서 버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멧자락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시골이든 구경하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시외버스는 모두 통유리입니다. 아이들은 바람놀이도 창밖놀이도 즐길 수 없습니다. 과자를 우걱우걱 먹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꼼지락꼼지락 이리저리 움직일밖에 없어요.


  아이를 낳아 돌본 어른이라면, 이리하여 아이들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며 돌아다닌 적 있는 어른이라면, 시외버스에 아이들 태우고 움직일 때에 얼마나 고단한가 알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젊은 날 아이를 낳아 돌보았어도 나이들며 이런 고단함을 잊는 어른이 많아요. 아직 많이 젊은 사람들이나 푸름이 들도 이런 대목을 제대로 못 짚기도 해요. 저희가 어릴 적에도 ‘시외버스에서 소리 지르거나 우는 아이’ 모습인 줄 떠올리지 못하지요.


  두 아이 데리고 고흥에서 일산까지, 또 일산에서 음성으로, 다시 음성에서 고흥으로, 이렇게 여러 날 걸쳐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며 생각합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아이들 옷가지와 여러 짐을 커다란 가방과 작은 가방에 나누어 담고 나릅니다. 아이들 보듬습니다. 이래저래 온몸 쑤십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듭니다. 시외버스에서 세 시간 남짓 신나게 놀다가 드디어 마지막 한 시간 즈음 달게 잠들기도 하지만, 대여섯 시간 넘는 시외버스 마실길 내내 몸이 간지럽고 좀이 쑤셔서 이리저리 뒤척거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 둘레에 ‘아이를 데리고 태운 어버이’ 있으면 반갑습니다. 아마 그분도 우리가 반가우리라 생각해요. 그분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내가 반갑고, 우리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그분이 반갑겠지요. ‘아이를 데리고 태운 어버이’가 시외버스에 여럿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눈 마주치며 잘 놀기도 하고, 어느 아이 하나 소리를 지르더라도 한결 가붓하게 아이들 보듬을 만합니다.


.. 50년 전에는 조부모, 숙모와 삼촌, 그리고 형과 언니들이 종종 아이 키우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확대가족의 붕괴는 이제 자녀보육의 부담을 온전히 부모에게, 대개는 어머니에게 지운다 …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마음은 온 사랑을 쏟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이상화하며, 거기에는 양가감정 같은 정상적인 감정 반응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 확대가족의 도움 없이도 모두 다 해내고자 하는 것, 즉 일도 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키우고, 남편과 친밀한 관계도 지속하고, 취미와 사회생활, 운동 일정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어머니들이 품고 있는 기대치이다. 양가감정은 오직 그런 목표들이 야기하는 기력 소진과 불가피한 실패에 의해 악화될 수 있을 뿐이다 ..  (35, 58, 165쪽)


  아버지 혼자 아이 둘 데리고 마실을 다니거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 둘레 어른들이 자꾸 “애 어머닌 어디 갔수?” 하고 묻습니다. 할매가 묻든 할배가 묻든, 이런 물음을 들으면 나는 아무 대꾸를 않습니다. 대꾸할 값어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묻는 분이 있으면 조용히 자리를 옮깁니다. 아이들 귀에도 이런 말이 흘러들거든요.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 있어요. 누런소와 검은소 두 마리를 바라본 어느 양반네가 흙일꾼한테 큰소리로 물었다지요.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느냐고. 이 소리 들은 흙일꾼은 논에서 소 두 마리 부리다가 말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 양반네를 데리고 멀리 자리를 옮기면서 귀엣말로 그런 소리 함부로 말라고, 소가 다 알아듣는다고 했다지요.


  아이들은 다 알아들어요. 아이들은 다 알아보아요. 어른들이 엉터리로 하는 말을 아이들은 다 알아들어요. 어른들이 엉터리로 하는 짓을 아이들은 다 알아보아요.


  어머니 혼자 아이 둘 데리고 마실을 다닐 적에, 아이 어머니더러 “애 아버진 어디 갔수?” 하고 묻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어디를 다녀야 한다면, 아주 마땅히 ‘아이 어머니’가 도맡아서 움직여야 하는 줄 여깁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뿌리내렸을까 알쏭달쏭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거나, 아이 아버지는 아이들 돌보지 않아도 된다거나, 아이 아버지는 아이들 돌보는 삶을 안 배우고 지내도 되는듯 잘못 흐르는 삶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 찾아보기 참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요. 아버지는 어떤 어버이인가요. 아버지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지낼 때에 아름다울까요. 아버지는 집안일과 집살림을 어떻게 꾸려야 슬기로운가요.


.. 내 친구는 자신의 아이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상상해야만 했다. 아이가 자신과 꼭 닮았기 때문에 아이를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은 그녀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 어머니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예전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 …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이면에는 늘 어머니 자신이 유아기와 아동기에 겪었던 경험이 깔려 있다 ..  (46, 67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도 옷도 모두 놀이로 여기며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호미질도 흙일도 설거지도 빨래도 놀이하듯 어버이한테서 배울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놀자면 어른부터 홀가분한 삶이어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재미나게 일굴 때에,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놀도록 잘 풀어놓을 만합니다. 어른 스스로 어떤 굴레에 매이거나 어떤 수렁에 갇히면, 아이들이 예쁘게 놀도록 지켜보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들은 어떤 삶 일구는가요. 오늘날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젊은이는 ‘어버이 자리’로 오기까지 어떤 일 하고 어떤 놀이 하면서 마흔이 되고 서른이 되며 스물이 되는가요.


  입시지옥을 거치면서 사람다운 사람살이 배운 젊은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젊은이는 아버지다움이나 어머니다움, 아울러 어버이다움을 누구한테서 어느 만큼 배웠을까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가르치며 키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배운 적 한 차례라도 있을까요.


  어린이와 푸름이를 가르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를 맡는 이들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다니면서 어떤 삶 배우고 어떤 삶 누리며 어떤 삶 사랑하는가요.


.. 여자들이 일에서 얻는 만족은 그들을 더 좋은 어머니로 만들고,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을 키워 주고, 자신의 가치를 찾고자 아이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줄여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독한 갈등과 원망, 죄책감을 유발하여 어머니 노릇을 쉽사리 어긋나게 만들 수도 있다 … 자연스러운 수유 방법인 모유 수유는 1930년대 중·상류층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모유 수유를 했을, 그리고 모유 수유가 제공하는 친밀감과 보살핌의 느낌을 즐길 수 있었을 여자들이, 모유 수유는 곧 하류층을 뜻하며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기에게서 그런 경험을 박탈했을지도 모른다 ..  (154∼155, 156쪽)


  바바라 아몬드 님이 쓴 배움책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간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배움책은 ‘어머니’ 이야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어버이 가운데 어머니 이야기만 할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아이들 낳고서 ‘돌보고 가르치며 키우는 몫’은 온통 어머니한테 떠넘기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즐겁고 흐뭇하며 사랑스레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며 키우지 못하잖아요. 아니,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나 두 어버이가 어깨동무하면서 삶과 사랑과 믿음과 꿈을 북돋우도록 이끌지 않잖아요.


  복지제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교육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복지제도이든 교육문화이든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제도나 문화가 있건 없건, 아이들 삶과 어른들 삶이 그리 살갑지 못해요. 아이들은 갓 태어나서 스무 살 되기까지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에 갇혀요. 홀가분하게 놀 겨를이 없고, 즐겁게 놀 터가 없어요.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이다 학원이다, 게다가 학교이다 하면서, 자꾸 여기저기 얽매이며 들볶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몽땅 얽매이며 들볶이니, 서로서로 동무 되지 못해요. 아이들은 놀이동무가 없어요. 아이들은 손전화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이 ‘동무’ 구실을 해요.


  이렇게 큰 아이들이 스무 살 되고, 스물다섯 서른 서른다섯 마흔 되어 ‘아이를 낳는 어버이’ 되면 어찌 될까요. 게다가, ‘아이를 낳는 어버이’ 되는데, 아버지 자리에 설 사람은 회사에서 돈 버는 일 맡는다며 ‘아이 돌보는 몫’을 나누어 맡지 않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어머니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는 아이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 어머니의 부재는 어떤 면에서 증오보다도 더 좋지 않다. 증오는 적어도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 무언가가 살아 있는 것이니 말이다 … 오늘날 전문 직종과 기업계에 대거 진출한 교육받은 여자들은, 탁아소와 유모들이 아무리 좋고 배려 깊다 해도 자신들이 직접 함께 있을 때만은 못하다는 점(어머니 본인에게도, 또 아이들에게도)을 알아 가고 있다 ..  (206, 215, 349쪽)


  바바라 아몬드 님은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라 하는 배움책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미워한다고 밝힙니다. 그럴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자,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미워한다는 ‘두 마음’을 품는다면,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요?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있기나 할까요?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나마 조금이라도 있기나 할까요? 아버지라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이런 마음도 저런 마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엉성하게 흘리는 모습 아닐까요? 아버지라는 사람은 ‘두 마음’은커녕 ‘한 마음’조차도, 아니 ‘아무 마음’마저 없는 수렁에서 허덕이는 나날 아닌지요?


.. 나이 든 부모를 기꺼이 돌보고자 하는 딸(또는 아들)의 마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의 초기 관계가 어떠했는가와 많은 관련이 있다. 양가감정과 원망의 응어리가 충분히 풀려서 자녀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선뜻 보살핌을 준비하고 제공하는가? … 그저 남을 모방하기만 할 경우에는, 좋지 못한 자녀양육 관행들(사탕을 뇌물로 사용하거나 TV를 보모로 사용하는 것, 또는 과도한 신체적 훈육)을 영속시킬 수도 있다 ..  (345, 354쪽)


  아버지는 아이를 돌보아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밥을 차려 먹일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씻기고 옷을 빨래하며 집안을 쓸고 닦으며 치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텃밭 일굴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는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가용 몰 줄 알기보다는 숲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달빛과 별빛과 햇빛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풀꽃을 들여다보며 개구리와 제비 노랫소리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 돌볼 줄 모르는 사회에서, 어머니 혼자 아이를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사랑하며 따스하게 품기를 바란다면, 참 쓸쓸하고 슬픕니다.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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