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i 사진의 발견 - 'i' 김윤수와 함께 17人 17色 사진의 정원을 거닐다
김윤수 지음 / 바람구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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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말하지 않는 사진 이야기
 [잠깐 읽기 38] 김윤수, 《17+i, 사진의 발견》


- 책이름 : 17+i, 사진의 발견
- 글ㆍ사진 : 김윤수
- 펴낸곳 : 바람구두 (2007.1.2.)
- 책값 : 16000원


 (1) 삶이 없는 사진이란


 제가 2007년 4월부터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이 깃든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으로 ‘사진 찍으러’ 찾아오는 바깥 손님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게 될 산업도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인천시 개발계획에 맞서는 동네사람 싸움이 여러 해째 이어지는 가운데, ‘곧 사라질는지 모를 골목길’ 모습이라 하면서 사진을 찍으러 옵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은 사진을 수없이 찍습니다. 쉬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서관에 와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는 하여도, 스스로 찍는 골목길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기에 눈을 박느라 바쁘고, 맨눈으로 골목집과 골목꽃과 골목사람과 골목풀과 골목나무를 살피고 맨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말마디를 나누려는 몸짓은 거의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열어 놓은 ‘사진책 도서관’에서도 ‘촘촘히 꽂힌 사진책’을 한 권쯤이나마 끄집어 내어 펼쳐 보려는 손길은 매우 드뭅니다. 그저 사진찍기에 바쁩니다.

 보다 못해 사진만 찍어대는 사람을 ‘다른 사람 책 보기에 걸리적거리니 나가 주셔요’ 하고 내쫓았고, 도서관 문간에 쪽지를 하나 붙였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마련한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사진만 찍으려고 하는 분은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셔요’라 적어 놓은.


.. 정말이지 선생님은 모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많은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 알아요?” 선생님은 동그래진 내 눈을 바라보며 특유의 눈꼬리가 올라간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풀과 나무들과 같이 자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거든.” ..  (14쪽)


 사진은 ‘적바림’입니다. ‘새겨 놓음’입니다. 한자말로 바꾸면 ‘기록’입니다. ‘각인’입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부대끼거나 스친 사람들을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내가 발디디는 동네 모습을 적바림하고, 내가 어울리는 동네 삶터를 고스란히 새겨 놓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을 찍든 저런 모습을 찍든,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찍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 삶 찍기”가 사진찍기요, “삶을 적어 놓기”가 사진찍기입니다.


.. 어떤 공간은 나의 과거 속 기억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자꾸만 탐험하고 싶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며, 어떤 공간은 불편하고 답답한 기운이 숨을 죄어 오기도 한다. 이것은 허름하거나 고급스럽다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허름해도 진짜가 많고, 화려할수록 두려운 가짜가 많은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  (51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 삶’을 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내 모습 찍기’가 아닌 ‘남 모습 찍기’일 테니까요. 그런데, 남 모습을 ‘내 눈길에 따라’ 찍습니다. ‘내 눈높이에 따라’ 찍습니다. ‘내 마음그릇에 따라’ 찍고, ‘내 생각줄기에 따라’ 찍습니다. ‘내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요, ‘내 깜냥껏’ 찍는 사진이며, ‘내 솜씨만큼’ 찍는 사진입니다.

 언뜻 보기로는 ‘나 아닌 삶’을 찍는 듯한 사진이지만, 알고 보면 ‘다름아닌 내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들여다본 대로 찍는다’는 소리는, ‘나한테 보여지는 대로 찍는다’는 소리이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만큼 나한테는 이렇게 보이니 이대로 찍는다’입니다. 이리하여 내 사진에 찍힌 세상사람 모습은 바로 ‘나 사는 모습’이며 ‘내 삶’입니다.

 속깊이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바로 속깊이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만 예쁘장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겉으로만 예쁘장해 보이도록 꾸민다는 뜻입니다. 머나먼 딴 동네에서 그럴듯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신 곁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보듬는 가슴이 없이 겉치레 해바라기에 매여 있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돈 되는 사진만 찍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에 돈벌기만 들어차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면 스타일은 무엇일가? 내가 본 대로, 느낀 대로, 경험한 대로 뒤죽박죽 정의를 내리자면 스타일은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오감을 통해 자극되어진 모든 행위의 집합체이다. 무엇을 먹고, 입고, 듣고, 읽고, 느끼고, 웃고, 분노하고, 울고, 찡그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걷고, 달렸는가가 고스란히 내 몸에 축적되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스타일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고 재생되는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날 세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의 마법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  (67쪽)


 그래서 저는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과 삶과 사람은 다르다고들 하지만, 제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아보고 부대끼기로는, ‘글과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글과 다른 삶’ 또한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어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쓴 글하고 삶은 똑같지만, 옷입히기 잘하는 사람들 손놀림(글재주)에 빠져들면서 참모습을 못 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읽는이가 되면 글쓴이 속내를 못 읽어요. 저부터 이와 같았고, 저부터 이런 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아니 마땅히, 저 스스로 아직 슬기로운 읽는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조금씩 갈고닦으며 거듭나는 읽는이라고 느낍니다. 잘못 읽거나 어설피 읽거나 어리석게 읽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를 믿습니다. 잘 읽으면 잘 읽은 대로 믿고, 잘못 읽으면 잘못 읽은 대로 믿습니다. 잘 읽어 흐뭇한 사람하고 사귀는 삶은 흐뭇함 그대로 즐기고, 잘못 읽어 뒷통수를 맞거나 쓴맛을 보게 되면 뒷통수 맞기와 쓴맛 보기를 달게 받아들입니다.


.. 가정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도서관에는 얼마나 자주 새 책이 투입되는가? 당신은 이 도서관의 성실한 열림자인가? 책들의 호흡주기를 파악하고 있고,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뿜어내는 광채가 온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부자이다 … 2000년, 오사카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작업실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를 만나러 3층으로 올라가기까지 내 눈에 비친 지하부터 지상까지 그의 작업실은 건축사무소라기보다는 하얀색 도서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책과 대화하고 살았는지, 또 살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책장 가득 빽빽이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권위적이지 않은 대화법과 아주 쉬운 단어로 안도 타다오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쉼 없이 과묵하게 일하는 자기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건축가였다 ..  (104, 115쪽)


 올해 2009년에 접어들면서,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는다며 마실 오는 사진쟁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2010년이 되고 2011년이 되면 훨씬 더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는 웬만한 골목길이 재빨리 사라지는 탓인데, 웬만한 서울 골목길이 수없이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여도, 사랑스레 살아남아 고스란히 이어가는 골목길 참모습을 옳게 읽어내는 눈썰미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 사진쟁이들은 ‘골목길은 이래야 하거든’ 하면서 ‘어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앞선 다른 이들이 찍은 골목길 사진만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때로는 잔뜩 멋과 예술감각(?)을 불어넣으며 찍습니다. 5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만 원짜리 사진기로, 20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0만 원짜리 사진기로, 두어 시간 ‘전철역 둘레 1km 안팎을 오가며’ 찍습니다.

 옆에서 이분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참으로 멋스럽게 찍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이분들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노라면, 이분들은 ‘골목길을 찍으려고 인천에 오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골목길이라 이름붙은 유행을 찍으려고 잠깐 서울 밖으로 나와 보았다’는 느낌만 짙습니다.

 골목길을 다루는 글도, 사진도, 그림도, 영상도 매한가지입니다. 헌책방을 다루는 글 사진 그림 영상 또한 매한가지였습니다. 아기를 다루어도, 연예인을 다루어도, 문화재를 다루어도, 섬마을을 다루어도 매한가지일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먼저 삶을 일구면서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스스로 당신들 삶을 알차게 가꾸는 가운데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사진기를 너무 일찍 들고 마니까요. 사진기만 뻘쭘하게 들고 있을 뿐이니까요. 어떤 사진기가 좋으냐 따질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어떻게 꾸려야 아름다운가를 돌아볼 줄은 모르니까요. 사진기 장만하려고 카드를 긁을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길을 찾고 생각하며 품과 땀과 시간을 들일 줄은 모르니까요. 
 







 (2) 삶을 말할 줄 알면 사진을 말할 수 있다


 ‘사진가 열일곱 사람’을 말하는 사진비평 《17+i, 사진의 발견》을 읽습니다. 이 책은 틀림없는 사진비평입니다. 그러나 글쓴이 김윤수 님은 ‘아무개 사진은 이렇고 저무개 사진은 저렇다’는 말을 토씨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딴소리라고 할는지, 엉뚱한 소리라고 할는지 모를 이야기만 길게 늘어붙입니다.

 그런데 이런 딴소리 늘어뜨리기가 외려 ‘아무개 사진은 아무개가 이런 흐름으로 당신 삶을 가꾸기 때문에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 어떻게 담아야 좋은 사진인가?’ 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꾸리는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하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가 고스란히 ‘삶 = 사진’이라는 흐름과 맞아떨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해 줍니다.


.. 나는 서울을 대놓고 비난할 수도, 또 아주 예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파적일 수 없는 것은 서울은 어쩌면 내 모습의 일부이고 나를 가장 편안히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기이기 때문이다 … 나는 서울의 지도를 펼쳐 놓고 서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복잡한 지도 속의 동네 이름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는 한가로운 멋을 찾을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이른 아침 까페나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한가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한가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사색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온종일 학원으로 과외로 내몬다. (나 또한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 13년 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나의 일상은 다이어리의 칸이 넘치도록 이어지는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  (165쪽)


 책을 손에 쥐고 나서 한 시간 만에 훌떡 읽어치웠습니다. 말 그대로 읽어치웠습니다. 가볍고 밝고 싱그럽게 쓴 글입니다. 꾸미지 않고 내세우지 않으며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놀라고,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사진비평이 하나쯤 나왔다는 데에서 반갑고 기쁩니다. 이 나라 사진쟁이 숫자는 열일곱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17+i, 사진의 발견》도 나옴직하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책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고 가슴 설레며 기다려야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또다른 일은 보석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 예측할 수 없는 돌출 행동과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언어의 조합이 언제나 기막히게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은 특별한 영혼을 가진 아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서울이라는 곳은 여리고 순수한 영혼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 이 무궁무진한 원석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지 못하고, 둥글게 멋없이 깎아 돌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선 ‘돌이 되어야 살기 편하지’라며 위로하곤 한다. 세상은 보석들이 많아야 정교하게 빛나는데, 서울은 점점 더 돌들만 가득해지고 있다. 그것도 애교 넘치는 자갈돌이 아닌 울퉁불퉁한 바윗둘로만 가득 차 있어 발을 다칠까 멍이 들까 늘 두렵다.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마지막 일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  (169쪽)


 다만, 글쓴이 김윤수 님이 만난 사진쟁이 열일곱 사람이 ‘이래저래 비슷한 사진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상선, 배병우, 양현모, 윤석무, 박경일, 김지양, 구본창, 이윤진, 조정환, 김현성, K.T.KIM, 오형근, 최민호, 박기호, 문형민, 박지혁, 천경우, 이렇게 열일곱 사람 가운데 K.T.KIM이라는 분 사진만 살며시 다르다는 느낌일 뿐, 다른 열여섯 사람은 어슷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틀림없이 이 열여섯 분 사진은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진 매무새와 사진 생각은 한동아리가 아닌가 싶어요.

 좀더 테두리를 넓혀 더 많은 사진쟁이를 만나 보았다면, 아주 배고프게 사진일을 붙잡는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오래오래 사진끈을 붙잡던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도시나 도시와 가까운 데에서 사는 사진쟁이 말고 도시와 먼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도 만났더라면, 서울 테두리를 넘어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로도 나가 보았다면, 하다 못해 수도권이라는 틀에서 사람들과 만나 보기라도 했다면, 또한, ‘만드는’ 사진이 아니라 ‘꾸밈없는’ 사진을 조용히 찍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면, 이 책 《17+i, 사진의 발견》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한껏 뽐내거나 빛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사진비평을 더 기다립니다.


..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몇 날 며칠을, 길게는 수 년을 애통해 하고 술을 벗 삼아 지내면서도, 자신의 기록을 잃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기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다 ..  (193쪽)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겨우, 우리 사진밭에 발맞춤하는 사진비평 걸음마를 밟았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머나먼 갈 길을 앞두고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지만,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보다는, 좀더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걸려넘어지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사진비평 발자국을 아로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말하면서 사진을 말하는 이음고리를 사랑하고, 삶을 밝히면서 사진을 밝히는 이음쇠를 믿으며, 삶을 가꾸며 사진을 가꾸는 이음마당을 아끼는 길찾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여행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자, 카페에서 우유크림이 수북한 카푸치노 한 잔 마실 여유도 없는 숨가쁜 일정을 짜곤 한다. 그리고는 피곤에 지쳐 뭘 얻었는지 모르는 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관광지 사진만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 여행은 정신 수양을 위한 것도, 이야깃거리를 만들러 가는 것도 아니다. 가장 편안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로 돌아가서 자연의 나와 만나고 오는 시간이다 ..  (203쪽)


 저는 오늘 하루도 아기 사진 스무 장 남짓, 골목길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었습니다. 조금 뒤 낮밥을 느즈막히 먹은 다음, 또는 낮밥을 거른 다음 아기를 안고 동네 마실을 나가면 쉰 장이나 일흔 장쯤 골목길 사진을 더 찍으리라 봅니다. 내일쯤 서울마실을 나가면 헌책방에도 들러 헌책방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으니 날마다 즐겁고, 날마다 즐겁게 사진을 찍으니 내 사진을 내가 보면서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핑 돕니다.

 제 사진을 마음에 들어하는 동네 이웃한테는 거저로 주고, 제 사진을 좋아해 주는 도서관 손님한테는 사진 한 장에 천 원에 팔곤 합니다(조금 큰 판은 종이값이 드니까 이천 원이나 사천 원을 받곤 합니다). 누군가는 ‘작품사진을 고작 천 원에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못해도 10만 원은 받아야지요?’ 하고 도움말씀을 해 주시는데, 저로서는 ‘작품사진이라면 더더욱 천 원만 받으며 팔고’ 싶어요. 싸구려로 넘기는 사진이라기보다, 나도 천 원에 팔고 당신도 천 원에 팔면서, 서로 홀가분하게 수많은 사진을 언제나 듬뿍듬뿍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사진삶이 즐겁습니다. (4342.6.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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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09-07-13 20:44   좋아요 0 | URL
좀더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느낌글이 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아직은 제 마음그릇으로는 이만큼밖에는 느낌글을 못 쓴다고 헤아리며, 어줍잖으나마 느낌글을 걸쳤습니다.

부끄러운 글을 읽어 주시니 저로서 더 고마울 뿐입니다. 그나저나, 한 번 사진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신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새 이야기를 보태어 가신다면, 차근차근 한결 빛나며 사랑스러운 사랑이야기를 둘레에 고이 나누며, 김윤수 님 아이한테도 기쁘게 물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폴 인그램 지음, 홍성녕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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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국은 부자나라가 되고자 티베트를 짓밟는다
 [잠깐 읽기 37] 폴 인그램,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 책이름 :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 글 : 폴 인그램
- 옮긴이 : 홍성녕
- 펴낸곳 : 알마 (2008.7.31.)
- 책값 : 19800원



 (1) 티베트를 바라보는 눈길


 사진을 찍는 분들 가운데 티베트나 몽골이나 인도에 다녀오는 분이 꽤 많습니다. 티베트나 몽골이나 인도에 다녀오면서 찍는 사진은 으레 ‘티없이 맑게 웃는 어린이’와 ‘주름이 깊게 팬 늙은 할배’와 ‘가난하고 꾀죄죄한 가운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어여쁜 아가씨’와 ‘울긋불긋한 빛깔로 꾸며진 불교 문화 발자취’이곤 합니다. 때로는 ‘가난과 따돌림이 흠씬 묻어난 뒷골목’ 모습을 담아 오곤 합니다. 스무 해 앞서고 이와 같았고 오늘날도 이와 같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런데 사진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티베트 이야기나 몽골 여행기나 인도 순례기는 이 사람이 쓰든 저 사람이 쓰든 한결같습니다. 다른 눈길을 느끼기 어렵고, 깊은 눈썰미를 찾을 수 없으며, 너른 눈매를 만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는 모습, 한자말로 하자면 ‘현상’은 잘 담아내지 않았느냐 할는지 모르나, 티베트사람 삶을 겉스쳐 훑으며 담는 ‘현상’이란 그저 ‘겉스친 현상’이지, 삶이 아닙니다. 골목길을 담는 사진이든 도심지를 찍는 사진이든 매한가지인데, 골목길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나를 느끼면서 담는 사진과 골목길 풍경을 구경꾼으로 담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사진기를 들기 앞서 ‘그곳은 그러한 곳이야!’ 하고 지레 생각을 굳혀 버리고 ‘그런 모습을 찍어야지!’ 하는 가운데, ‘그곳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는 못 봅니다. 못 느끼니 못 보고, 알려 하지 않으니 볼 수 없으며, 얼핏 알아도 살갗으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골목길 사진은 거의 어느 한 가지도 ‘골목사람 눈길이나 눈높이’인 적이 없으며, ‘골목사람 삶’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골목사람 스스로 사진기를 들어 내 이야기는 내가 담는다고 하면 달라질 텐데, 골목사람은 스스로 사진기를 들지 않아 왔습니다. 사진기 들 겨를이 없었고, 사진기 장만할 돈이 없었으며, 사진기를 굳이 들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싱그럽고 즐거운 삶이요, 나날이 고단하고 힘겨운 삶일 뿐입니다. 누구한테 내보이거나 자랑하려고 꾸리는 삶이 아니며, 누구한테 숨기거나 감추거나 덮어놓는 삶 또한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보려 하지 않아 그렇지, 티베트는 우리 나라에도 있고 몽골은 우리 둘레에도 있으며 인도는 우리 삶자락 어디에나 있습니다.


.. 1949년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에 진입하기까지 식량생산을 위한 티베트 민족의 토지 사용은 지극히 균형과 상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중국이 보이고 있는 서구인과 같은 방자한 자연개발의 태도가 없었고, 자연적 기근은 최근까지도 전혀 알려진 바 없다 … 티베트어 교육을 격려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중국어에 통달하지 못하는 한 아무런 직업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자 언어의 사용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많은 장소에서 티베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여러 곳에서 중국어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까지도 티베트인 부모가 아이들에게 티베트 이름을 지어 주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 중국 정부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티베트의 평균수명은 여전히 약 40세에 그치고 있다 … 의료혜택의 우선권은 중국인과 티베트 공산당원에게 주어진다. 고통당하고 있는 티베트인이 병원시설로부터 거절당하는 일은 다반사이며, 심지어는 치료가 필요한 중국인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침대에서도 쫓겨나고 있다 ..  (36, 93, 101∼103쪽)


 티베트는 식민지 나라입니다. 중국이 쳐들어와 식민지로 삼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이 한국과 대만과 여러 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듯, 중국은 멋대로 티베트에 군화발을 들이밀고 탱크를 밀어붙여, 티베트를 아주 조각조각 뜯어먹고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이 한국과 대만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고 품을 울궈냈듯, 중국은 티베트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고 품을 울궈냅니다. 일본이 한국과 대만에 있던 지하자원이며 문화재이며 곡식이며 나무이며 어마어마하게 빼앗아 가 버렸듯이, 티베트는 중국한테 지하자원을 빼앗기고 문화재를 빼앗기며 곡식이며 나무를 빼앗깁니다.

 유럽은 유럽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식민지를 거느리며 제 나라 살림을 키웠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티베트를 식민지로 거느리며 제 나라 살림을 키웁니다. 그리고 한국 또한 한국대로 돈없고 힘없는 나라에 공장을 세우며 공해를 내다 팔며 돈을 버는 한편, 돈없고 힘없는 나라 사람들 품을 헐값으로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공산당이 중국의 권력을 잡기 전에도 중국의 무장군대는 동부 티베트의 넓은 지역에 걸쳐 침입해 왔다 … 중국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식민지 해방투쟁은 격려하면서도 자국 안팎에서 티베트 민족이 제기한 요청은 계속 부정했다 … 북부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중앙사무국이 최근 실시한 세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중국의 티베트 점령의 결과로서 고문사 당한 10만 명을 포함하여 120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사망했다. 1982년 이사이불교평화회의 국제사무국의 달지트 센 아델은 최근 30년 동안 약 4백만 명의 불교인이 캄보디아와 티베트에서 살해당했다고 추정한 바 있다. 현재 드러난 증거로 볼 때 그의 추정치는 정확한 것으로 인정된다 … 많은 티베트인이 자신들의 집이 어느 때나 수색당할 수 있고, 자신들이 체포당하여 고문당하고 처형당할지 모른다고 여기며 생활의 상당 부분을 거의 영원한 공포의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신경장애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  (43, 45, 74, 114쪽)


 2000년대를 넘어선 오늘날, 프랑스가 지난날 어느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는지를 짚어낼 줄 아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줄은 그럭저럭 알는지 모르나, 이 또한 왜 일으켰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영국은 얼마나 넓게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는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어떠했으며, 이탈리아는 무슨 짓을 해 왔는지 헤아리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이 왜 포르투갈말을 쓰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적습니다. 중남미에서 왜 스페인말을 쓰는지 알아보려는 사람 또한 적습니다. ‘체 게바라’가 왜 스페인 이름을 얻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칠레사람들 가슴에 깊이 서린 노래꾼 ‘빅토르 하라’가 왜 빅토르인지 곱씹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요.

 꼭 이러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베트남 빵집에서 ‘프랑스 빵’을 무척 잘 굽는 까닭을 모르거나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 말에 일본 한자말이 많이 스며든 까닭에다가 일본책이 대단히 많이 옮겨지는 까닭을 곰곰이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 1950년경 티베트 전역에는 6000개 이상의 수도원ㆍ사원과 약 60만 명의 승려가 있었다. 1979년경 대부분의 비구와 비구니는 죽거나 실종되었고, 남겨진 수도원은 겨우 다섯 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남은 수도원들도 망가진 상태였다 … 중국은 티베트의 수도원과 사원을 고의적ㆍ조직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특별 팀이 여러 가지 귀중한 종교 물품을 골라 티베트 밖으로 반출하고 나면 건축물은 숙련된 솜씨로 폭파되었다. 반출된 물품의 상당수가 외국의 교환시장에서 팔려나가, 중국이 문화재보다 더 필요로 하던 외화를 벌어들였다 … 10대 중국인 살인자들이 유구한 불교문화의 유산을 파괴해도 좋다는 거의 백지위임장과 다름없는 구너력을 가지고 나라를 휘젓고 다녔기 때문에, 시민과 사회의 혼란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라싸에서 그들이 벌인 광란을 뒤로 하고 홍위병들은 콩포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포워 트라모에 살고 있던 나무꾼 400명의 딸들을 야만스럽게 강간했다. 소녀들은 벌거벗긴 채로 행진해야 했고, 탐징(인민재판)을 통해 처벌당했다. 이 잔혹함과 모욕에 울화가 치밀 정도로 무력했기 때문에 많은 티베트인이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  (48, 50, 65쪽)


 지난 2004년, 《티벳전사》라는 책 하나가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티베트사람이 티베트 이야기를 쓴 책 가운데 우리 말로 옮겨진 책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우리 나라에 나오는 티베트 이야기라면 하나같이 ‘티베트 불교’하고 ‘티베트 의학’뿐이지만, 이마저도 몇 권 안 되는데, 《티벳전사》는 티베트사람이 중국한테 어떻게 밟히고 있으며 어떻게 맞서는가 하는 이야기를, ‘티베트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처럼 우리(티베트) 문화를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들려줍니다. 다만, 눈여겨보는 사람이 적고, 알아보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티베트 여행이나 순례는 떠난다 할지라도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먼저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티베트를 다녀왔어도 그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거나 흘러가는가까지 살펴보려는 사람 또한 드물어요. 중국 정부가 감시와 통제를 모질게 해서 알아채기도 힘들다지만, 알아보려고 애쓰면 못 알아보겠습니까.


.. 중국의 티베트에서의 환경정책의 비정상성을 대표하는 사건이 있다. 중국인 홍위병이 밤나무 25만여 그루를 ‘엘리트주의자’로 선포하고 모조리 벌목해 버린 사건이다 … 중국은 로프 노르 지역에서 핵실험을 감행하여 환경에 더욱 위험한 손상을 안겼다. 중국도 극심한 방사능 대기오염을 인정하고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인은 허겁지겁 베이징으로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이미 전술한 바, 중국은 약 540억 달러 상당의 목재를 티베트에서 채취해 갔다. 또 중국은 사원에서 약탈한 종교예술작품을 외국 교환시장에서 판매하여 틀림없이 수천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 흥미롭게도 티베트를 일컫는 중국면 ‘시짱(西藏)’은 “서쪽의 보물”을 뜻하며, 티베트인은 이것이 수세기 동안 중국이 티베트를 탐내 온 주된 이유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1985년 티베트의 광물자원의 규모를 추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결과는 수조 달러 이상이었으며, 이 수치도 일반적으로 과소평가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티베트에 매장된 풍부한 광물자원의 리스트에는 석면, 붕사, 크롬, 코발트, 석탄, 구리, 다이아몬드, 금, 흑연, 철, 철광, 옥, 납, 마그네슘, 수은, 몰리브덴, 니켈, 천연가스, 석유, 요오드, 광유, 라듐, 은, 텅스텐, 티타늄, 우라늄, 아연이 포함되어 있다 … 중국에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가치를 지닌 더 큰 자원은 수력전력이다 … 종합해 말하면, 티베트에는 거의 미개발 상태의 광대한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무한에 가까운 수력전기 잠재력이 잠재되어 있다 ..  (136, 139, 142, 144, 145쪽)


 몇 해 앞서, 충북 음성군 생극면 시외버스역에서 ‘몽골에서 한국으로 와서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으나, 거의 한 번도 일삯을 받아 보지 못하고 몸만 망가지고 있던 아저씨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이는 당신 여동생이 한국으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초청비자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당신이 일하던 공장 사장이 허구헌날 욕을 하고, 또 동네사람이 ‘저놈은 한국말을 잘 모르고 이주노동자니까 막 굴려먹어도 돼’ 하면서 욕지꺼리를 내뱉고 있었음에도 ‘한국은 좋은 나라예요’ 하고 띄엄띄엄 말하면서 웃었습니다. 당신한테 착하고 반가이 마주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어디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하는지 도무지 알 노릇이 없었습니다.

 몽골이든 티베트이든 네팔이든 인도이든 찾아가고 순례를 하고 뭐를 하면서 ‘낮에는 하늘이 파랗디파랗게 눈부시’고, ‘밤에는 온누리 별을 여기에 갖다 놓은 듯 맑게 빛난’다고 노래를 하고,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노래를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오면 ‘찬밥꾸러기’에다가 ‘천덕꾸러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 아리송합니다. 여행을 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순박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왜 그 여행터 사람을 한국땅에서 마주할 때면 ‘욕’을 내뱉으면서 ‘지저분하다’느니 ‘바보’라느니 하고 깔보거나 깎아내릴 수 있지요? 때때로 텔레비전에서 몽골이나 티베트나 인도 이야기를 ‘예쁘장하게 비추어 내는 다큐멘터리’로 보여줄 때에는 ‘더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라고 말하면서도, 왜 그 나라 사람을 코앞에 마주할 때에는 싹 바뀌어 버릴 수 있지요?


 (2) 두툼한 보고서가 말하는 티베트와 중국


 500쪽이 넘는 두툼한 보고서 묶음인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을 읽습니다. 말하지 못한 티베트 이야기는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책 하나를 읽어낸다면, 이 나라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티베트 삶과 사회와 정치를 조금이나마 훑어 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달라이 라마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을 돌아보고,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 눈치를 보면서 ‘티베트 평화’에는 손을 하나도 안 쓰는 까닭을 어느 만큼 짚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1990년에 나온 책이니만큼, 퍽 예전 자료와 숫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09년이니, 이제까지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자원을 중국이 울궈갔으’며, ‘더 많은 티베트 문화와 터전이 망가졌’음을 어림해 볼 뿐입니다. 그런데, 560쪽이 넘는 쪽수라 한다면, 각주와 찾아보기뿐 아니라, 2000년대 이야기라든지 요즈음 흐름을 따로 달아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두툼한 보고서이니 조금 더 두툼해져도 괜찮고, 대여섯 쪽 더 나누어 보아도 괜찮을 테니까요. 정 힘들다면 각주나 찾아보기를 덜어내더라도, 오늘날 모습을 보여주어야 이 책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이야기’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는 글쓴이한테 ‘요즘 형편을 밝히는 글도 하나 달아 달라’ 할 수 있었으며, 글쓴이가 어렵다고 밝혔으면 ‘우리 스스로라도 더 알아보며 새 이야기를 붙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 2008년 백상예술대상 교양 작품상에 빛나는 다큐멘터리 〈차마고도〉(KBS)는 그 아름다운 영상미와 완성도 높은 음악(양방언 씨), 인상적인 내레이션(최불암 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현실을 미화하고 티베트인이 오로지 불교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려냈기에, 개인적으로 ‘위험한’ 작품이라 생각한다(엔드 크레디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중국 당국의 사전 내용검토를 받았다). 이제 티베트를 포함한 인권 문제를 ‘미학’의 차원으로 환치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치즘을 찬양했던 레니 리펜슈탈이 저지른 오류를 동시대의 한국민족이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을 지적함은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  (옮긴이 말 : 401∼402쪽)


 어쩌면, 우리로서는 이만큼 다가서는 몸짓만으로도 벅찰는지 모릅니다. 우리로서는 이만큼 알아보기도 귀찮은지 모릅니다. 우리로서는 이만큼 읽어 주기도 번거롭거나 낯설는지 모릅니다.

 먹고살기 바쁘잖아요. 먹고살기 바빠 책 하나 읽기도 벅차는데, 무슨 티베트 식민지 이야기를 읽느냐 하지 않겠습니까. 먹고살기 힘들어 내 집 살림 간수하기도 귀찮은 판에, 우리 역사도 아니고 티베트 역사를, 더군다나 식민지로 짓밟히는 역사를 뭐 하러 읽느냐 하지 않겠습니까. 먹고살기 고단하기도 하지만 엄청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지는 마당에, 티베트야 죽을 쑤건 밥을 하건 내 알 바 아니라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만한 책을 애써 옮겨내면서도 좀더 넉넉하고 따뜻하게 ‘티베트 오늘 삶’을 담으려는 엮음새를 보여주지 못하고, 이 책 하나 읽으며 얻는 지식조각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삭여내면 좋을까 하는 깜냥으로 다가서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티베트인은 폴란드인과 유대인에게 게슈타포가 자행했던 고문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고문에 노출되었다. 22세의 운전기사 첸진 세랍은 3월 5일 폭동 이후에 체포되었는데, 3월 23일경에 그의 가족은 시의 시체안치소 한곳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의 여동생이 시신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옷뿐이었다. 그의 안면은 심각하게 손상당한 상태였고, 안구 양쪽이 모두 뽑혀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돕던 남자 가운데 한 명은, 뒤에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뼈가 부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시신 석방 대금 600위안을 물어야 했다. 이 금액은 라싸의 빈곤한 티베트인 가족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  (173쪽)


 중국은 부자나라가 되고자 티베트를 짓밟았습니다. 티베트사람을 죽이고, 티베트 지하자원을 빼앗으며, 핵무기 실험을 하며 티베트땅을 더럽힙니다.

 한국은 부자나라가 되겠다며 비정규직을 만들고 정리해고를 손쉽게 해대며 이주노동자를 값싸게 들여와 함부로 부려먹고 아무렇지 않게 내동댕이칩니다. 언제나 더 많은 돈벌이에다가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할인매장을 온누리 곳곳에 마구잡이로 올려세우며, 동네에서 조촐하게 장사하는 사람을 굶어죽게 내몹니다. 늘 더 많은 돈벌기에다가 자유경제건설이라는 이름으로 값비싼 아파를 온나라 구석구석에 끝없이 올려세우며, 적은 돈으로도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을 싸그리 밀어없앱니다.

 우리 나라 군대는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힘이 있습니다. 핵무기는 없어도 군사힘은 꽤 셉니다. 비록 중국과 미국과 러시아와 일본하고 견줄 만큼은 안 되지만. 중국과 미국과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군사힘으로 숱한 식민지를 만들고, 일본 또한 돈으로 또다른 경제식민지를 만듭니다. 여기에 우리 나라 또한 제법 센 군사힘에다가 어느 만큼 이룩한 돈힘으로 이웃한 작고 여린 나라를 경제식민지로 삼으려 하지 않을까 근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작고 지하자원 또한 얼마 있지 않아도 ‘에너지 씀씀이’는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듭니다. 석유 소비는 일본 못지 않습니다. 우리들 끝없는 씀씀이를 댈 만한 지구자원을 얻자면, 나라안 낮은자리 사람을 더 누르는 일만으로는 모자라, ‘이라크 파병’이 아닌 ‘북녘 침략’쯤은 해야 숨통을 트지 않겠느냐고 여기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북녘이 하루빨리 남녘을 ‘도발’해 주어 하루아침에 북녘 정권을 허물어뜨리고 ‘무력통일’을 이루어 ‘남녘 경제살리기’를 하려는 무시무시한 꿈을 꾸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는 미국이 멕시코와 이라크로 쳐들어가고, 프랑스가 베트남으로 쳐들어가며, 스페인이 중남미로 쳐들어갔으며,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쳤고,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쳤으며, 중국이 티베트를 치는 흐름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모두들 ‘부자나라’가 되겠다면서 군대를 끝도 없이 키웠고, 군산복합체를 터질랑 말랑 하는 개구리배처럼 부풀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평화’와 ‘문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4342.6.8.달.ㅎㄲㅅㄱ) 

 



이런 좋은 책도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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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9-06-0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벳전사> 라는 책, 맥그로드간즈의 한국인 식당 한켠에 놓여있던 것을 뒤적거린 기억이 나네요.

파란놀 2009-06-10 07:02   좋아요 0 | URL
맥그로드간즈라는 데는 어디인가요?
한국인 식당 한켠에 이 책이 놓여 있었다니...
대단하군요 ^^

티벳, 티베트... 참 이야기가
제대로 세상에 읽히면서
우리 스스로도 우리 삶을
곰곰이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잉크냄새 2009-06-10 14:17   좋아요 0 | URL
달라이라마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한 도시입니다.

파란놀 2009-06-13 09: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111 ― 내 가슴속에서 살고 있는 자연 찾기
 : 다케타즈 미노루,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책이름 :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글ㆍ사진 : 다케타즈 미노루
- 옮긴이 : 김창원
- 펴낸곳 : 진선books (2008.1.28.)
- 책값 : 13800원



 (1) 학교와 자연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 학교에서 내어주는 숙제 가운데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우리 동네 천연기념물 알아오기’나 ‘우리 동네 국보 알아오기’ 따위였습니다. 서울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로 삼는 나무가 있으며 국보로 삼는 보배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 땅 어느 곳에 가도 천연기념물이며 국보이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서는 천연기념물도 국보도 만날 수 없었을 뿐더러, 보물로 치는 문화재를 만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아니, 천연기념물을 떠나 그 흔한 여느 새를 생각하기란 몹시 어려웠어요.

 나중에 커서 생각해 보면, 날마다 보던 갈매기를 애틋하게 여길 수 있고, 낚시하러 갯가에 가서 잡던 망둥이라든지, 동네에 있던 조그마한 논에서 잡던 미꾸라지를 살가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자연이나 사회 과목에서는 ‘우리 둘레 흔한 목숨붙이’는 그리 값할 만하지 않은 듯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개구리나 두꺼비를 사랑하는 일은 ‘자연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고 가르쳤고, 두루미나 오색딱따구리나 미선나무쯤 들먹여야 무언가 아는 셈이고 자연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듯 이야기했습니다.


.. 라디오에서는 저기압이 북쪽 해상을 통과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내일은 틀림없이 남풍이 불 것이다. 유빙을 데려가기 위해. “훗카이도 사람들은 보물섬에서 살고 있군.”  친구는 이 말을 남기고 도쿄로 돌아갔다 … 그 당시는 강물이 깨끗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아무도 강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하물며 강에 오줌을 누는 천벌 받을 짓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그맘때면 자연이 베풀어 주는 혜택을 그 강을 통해 받았기 때문이다 ..  (14, 105쪽)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또 고등학생이 될 무렵만 하여도, 인천에서 안개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툭하면 안개가 짙게 끼어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을 애먹었습니다. 그래 보았자 아홉 시가 넘어가고 열 시가 가까우면 걷혔는데, 이 짙은 안개가 오래오래 드리우면서 ‘우리도 학교를 좀 쉬어 봤으면’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코앞도 헤아릴 수 없도록 드리우던 안개가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 으레 나타난다고 말하던 교사란 없었고,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이라고 딱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마땅한 노릇인지 모릅니다. 인천사람으로서 물때를 모른다면 바보이고 바다 날씨를 모르면 멍텅구리였을 테니까요. 아주 꼬맹이가 아니고서는 다 알아야 한다고 여긴 바다 날씨였으니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었고, 안개이든 뭐든 철 따라 찾아오는 모습이었을 뿐입니다. 뭉게구름이나 소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지개를 대단히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보니까요.

 집집마다 온갖 꽃을 어여쁘게 키우기는 했으나 이런 꽃은 ‘돈으로 따질 값나가는 천연기념물에 들지 않으’니 푸대접을 해도 괜찮은 듯 가르친 학교라고 할까요. 아니, 처음부터 아예 생각할 구석이 없는 듯 우리 매무새를 길들인 학교라고 할까요.

 국민학교 3ㆍ4ㆍ5학년 때에는 방학숙제로 식물채집을 즐겨했는데, 식물채집이건 곤충채집이건 ‘흔한 풀꽃과 벌레’를 거두어 오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해마다 ‘흔한 풀꽃’을 스무 가지에서 서른 가지 즈음 거두면서 숙제로 내었고, 다른 동무 가운데에는 흔한 풀꽃조차 대여섯 가지를 거두어 온 녀석이 없던 탓인지, 저는 늘 점수를 잘 받았습니다. 하기는. 바다로 흘러가는 개천 옆 아파트 꽃밭에서 자라던 들딸기 한 포기도 거두었고, 아빠 엄마랑 설악산 나들이를 했을 때에도 두어 가지 풀을 캐 왔고, 수봉공원과 자유공원 마실을 하면서 이 풀 저 풀 캐 오며 ‘이름 모르는 풀’이라고 척 붙여놓곤 했으니까요.


.. 말은 트랙터와 달라서 ‘따 따 따 따’하는 요란한 소리 따위를 내지 않는다. 기껏 나는 소리라야 목을 돌릴 때마다 목에 걸린 방울이 ‘땡강 땡강’ 하고 울리는 정도다. 그리고 언땅이 녹는 것이 밭의 지형에 따라 이르거나 늦어져 밭갈이가 일제히 시작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말은 경유만 넣어 주면 며칠이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와는 달라서 전날 일이 힘들었다 싶으면 쉬게 해야 했고, 어떤 때는 주인이 전날 밤 약주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오후 늦게 밭에 나오는 그런 식이었다. 여하튼 모든 것이 느긋하고 한가로웠다 … 그리고 얼레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길래 “얼레지 알뿌리를 갈아서 그것으로 경단을 만들면 어떤 맛일까요?” 하고 말을 꺼냈더니 모두들 나를 흘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맥주 기운이 좀 돌아서 별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것은 먹어야죠. 먹을수록 더 좋아질 테니까요.” 했더니, 그중 한 사람이 “그럼 선생님, 여우 고기 맛은 괜찮아요?”라고 해서 내가 한방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  (30, 37쪽)


 요즈음도 학교에서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 숙제를 내어주는지 궁금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제는 식물채집이든 곤충채집이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 아닌 목숨이 홀가분하게 숨쉬고 살아갈 터전이란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니까요. 아니, 우리 스스로 사람 아닌 목숨은 살아갈 수 없게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온땅을 뒤덮고 있으니까요. 아니, 우리들은 이웃사람조차 살아갈 수 없게끔 비싼집을 새로 짓고 값싼집은 허물면서 온통 아파트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으니까요. 돈이 없으면 사람으로 치지 않고, 돈 되는 일에 마음을 쏟지 않으면 사람값을 못하는 듯 따돌리니까요.


.. 지키는 농부는 긴 장대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어 댈 뿐, 소리도 크게 지르지 않아서 옆에서 보면 쫓는다기보다는 함께 놀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한 분위기였다. 농가의 뜰은 넓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다람쥐들이 우르르 달려와 볼주머니에 밀을 채우고 있으면 농부는 달아나는 시간을 주려는 듯이 천천히 다가가서 장대를 흔든다. 그러면 또 다른 놈이 저쪽에 와서 붙는다. 참새들은 흔들거리는 장대가 아예 보이지 않는 듯 먹기에 바쁘다. 아무튼 적은 많고 끈질기다. 한 농가 주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하루에 한 가마니는 각오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그들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하고 덧붙였다 ..  (122쪽)


 그러고 보면 학교는 자연하고 울타리를 쌓습니다. 학교부터 자연하고 동떨어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자연을 벗삼는 일이란 없습니다. 봄가을에 맞추어 자연 터전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하여도 아이들은 먹고 쓰고 버리는 데에만 익숙하지, 자연을 아끼고 돌보면서 너른 품을 고이 껴안고자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하는 교사부터 자연을 넉넉히 껴안지 않기도 하고요.

 입으로는 물질만능주의 서양이 ‘동양사람들 마음밭 깊은 뜻 앞에 고개를 숙인다’고도 외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고 우리 얼이 어떠한지 곱씹지 않습니다. 되레 서양보다 깊디깊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며, 여기에 돈과 기계와 전쟁에 매입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닌 이웃을 밟고 올라서는 길을 걷습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등처먹는 경쟁과 장사속이 판치도록 하고, 서로를 지키고 다독이는 믿음이 아닌 서로를 괴롭히고 편가르는 학벌과 연고제와 조직을 키웁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든 중학교를 다니든 고등학교를 다니든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든 대학원을 다니든 매한가지입니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왔어도 지식조각은 많이 갖추지, 마음바탕이 깊어지거나 넓어지지 않아요.


.. 백조나 쇠기러기의 대량 폐사 이전에도 물새들의 죽음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일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것은 훗카이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냥터에서도 똑같지 않았을까? 이름 없는 새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들 무관심했다. 백조와 쇠기러기에 이어서 참수리, 흰꼬리수리 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의 희생이 발생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  (240∼241쪽)


 우리 교실이 그렇잖습니까. 우리 교실 어디에도 자연이 숨쉴 수 없습니다. 우리 교실 어느 구석에 꽃그릇 하나 놓여 있는가요. 꽃그릇 하나 놓여 있다 한들 날마다 사랑하고 아끼는 꽃그릇입니까, 그저 모양새로 갖다 놓은 꽃그릇입니까. 밝은 한낮에도 전기불을 켜야 하는 교실 아닙니까. 밝은 한낮에 햇살을 듬뿍 쬐면서 신나게 뒹굴고 땀흘릴 수 있는 학교는 어디에 있습니까. 새벽별을 보고 찾아와 밤별을 보며 돌아가는 학교는 언제쯤 몰아낼 수 있습니까. 아니, 이런 입시지옥 거짓 배움터를 우리 삶터에서 쫓아낼 생각은 조금이나마 하고 있습니까.


 (2) 집과 자연


 예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일터 사장님은 저를 일본에 한 번 중국에 두 번 보내 주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나라밖 구경을 해 보았는데, 사진과 그림으로만 보던 나라밖 모습과 두 눈으로 들여다보며 몸으로 부대끼는 나라밖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어느 도심지가 되든 건물만 우죽우죽 올라선 곳은 메마르기 그지없습니다. 도심지에서는 모두 바빠맞으며 차갑고 매몰찹니다. 그런데 그 도심지에서도 살짝 골목 안쪽으로 접어들면 모두 느긋하며 따뜻하고 넉넉합니다.

 일본 간다 헌책방거리도 좋았지만, 헌책방거리가 아닌 여느 사람들 삶터가 깃든 골목 안쪽 또한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일부러 골목 안쪽으로 ‘길을 헤매고 싶은 사람’처럼 돌아다녔는데, 고즈넉한 길에 차는 한 대도 없이 걷는 내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집집마다 문간 둘레에 마련해 놓은 꽃그릇 냄새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북경이든 연길시이든 도심지하고 도심지에서 벗어난 곳은 크게 달랐어요.


.. 아이누족은 복수초꽃이 피면 한 해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해의 첫 달은 4월이 되는 셈이다 … 복수초는 북쪽 지방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그래서 이 꽃을 보고 한 해가 시작한다고 생각한 아이누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 하루는 하날다람쥐에게 줄 먹이를 얻으러 나갔다. 이 시기에 야생 하늘다람쥐는 버드나무의 꽃눈이나 자작나무의 꽃눈, 낙엽송이나 분비나무의 겨울눈을 즐겨 먹는다 … 연령초는 5월이면 잎이 시들고 열매를 맺는다. 달고 맛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매우 좋아하는데 청설모도 먹는 것 같다 ..  (18, 31, 54쪽)


 저는 서울내기가 아니고, 서울이라는 곳은 1994년에 처음 밟았으며, 1995년부터 2003년 가을까지 살았습니다. 이때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두어 곳씩 헌책방마실을 했고, 헌책방마실은 거의 언제나 두 다리로 걸어서 했습니다. 하루에 예닐곱 시간이나 여덟 시간 남짓도 걸어다녔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곧잘 걸어다녔고 한강다리도 숱하게 두 다리로 넘었습니다. 헌책방은 큰길가나 번화가에 없으니, 언덕배기를 따라 골목길을 수없이 누볐습니다. 2000년대를 넘어서고 2010년대에 가까워질수록 서울은 달동네 집자리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부쩍 늘어나는데, 이러는 가운데 헌책방도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헌책방을 비롯해 동네 작은 새책방도 많이 줄었고요. 학교 앞 문방구도 한두 군데 빼놓고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구멍가게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갑니다.

 작은 집을 허물고 커다란 집만 세우기 때문인데, 작은 집은 돈이 안 되고 커다란 집은 돈이 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작은 집에서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오순도순 지내던 맛과 멋을 우리 스스로 내버리고, 커다란 집에서 방마다 따로따로 처박혀 따로따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고 제 꿈나라로 빠져드는 놀이에 젖어들고 싶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꾸준히 땀흘려 번 돈으로 이웃돕기나 이웃사랑을 펼치기보다는, 내 집을 더 키우고 내 차를 더 키우며 내 씀씀이를 더 헤프게 하는 데에 빠지는 버릇에 젖어들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 우리들은 계절을 잃고 말았다. 봄의 바다가 잊혀져 가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얼마 안 가서 항구를 떠나는 고기잡이배를 한 척도 못 보는데도 생선은 여전히 가게에 쌓이는 날이 올지 모른다. 송어나 연어란 원래 토막난 몸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 도망갈 데가 얼마든지 있는 산속의 초지는 평소 토끼에게 안전하고 마음 놓이는 장소지만, 사람들이 그곳의 목초를 베고 거둬들이는 7월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토끼들의 낙원은 하룻밤 사이에 전쟁터로 바뀐다 ..  (48, 85쪽)


 다른 누구보다 우리 아버지가 이러합니다. 이런 아버지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느끼지만, 아버지는 저 같은 아들이 안타깝다고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들 된 저는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면 즐겁다고 느끼지만, 아버지 된 분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며 더 많이 누리면 좋다고 느낍니다. 더 많이 배우면 더 좋고,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리면 더 좋으며, 더 많이 번 돈으로 더 돋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더 좋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 집에도 꽃그릇은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집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아파트에도 꽃그릇은 많습니다. 밖에서 보면 그예 시멘트덩어리이지만, 이 안쪽에는 온갖 꽃그릇이 그득그득 채워져 있다고 할까요.

 그러나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꽃그릇이요, 시멘트 울타리 안쪽에 갇힌 꽃그릇입니다. 비바람을 머금을 수 없고, 햇볕을 고루 받을 수 없습니다. 꽃냄새이든 풀냄새를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벌나비를 부르지 않습니다. 씨앗을 퍼뜨리지도 못합니다. 새로 지어지면 새로 지어질수록 우리네 자연하고는 멀어지는 아파트요, 더 늘어나면 더 늘어날수록 우리네 자연을 무너뜨리는 아파트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흐름을 살갗으로 느끼지 않는 가운데, 우리한테 넘치는 돈을 어디에 들여서 우리 주머니를 어떻게 더 부풀리느냐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 판자 대신 모르타르와 함석으로 둘러쳐진 창고는 그 주변에 생물들이 사는 것을 차갑게 거부했다. 나무줄기에 생기기 마련이던 크고 작은 구멍들도 모습을 감췄다. 큰 나무들은 재목으로 잘렸고, 오래된 고목은 쓸모없는 나무로 취급되어 잘려 없어졌기 때문이다. 먹이가 줄어들고 보금자리를 잃은 생물들이 처하게 될 운명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대로 됐을 뿐이다 … 일반 숲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 즉 생물들의 요람 구실까지 고려하면 이처럼 귀하고 고마운 숲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고마워하지 않더라도―흔한 것을 고맙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적어도 학자나 연구자, 그리고 관청의 행정관이라는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것은 천벌 받을 일이 아닐까. 한편 일부의 연구자나 학자들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보호하거나 기념물입네 하고 떠들어대는 작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93, 114∼115쪽)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우리 나라가 땅이 좁아 아파트를 짓지는 않습니다. 돈이 되니 지을 뿐입니다. 돈굴리기에 좋으니 짓습니다.

 어느 아파트이든 아파트 크기만큼 동과 동 사이가 벌어져야 하며, 아파트 넓이만큼 빈터가 넓어야 합니다. 창문까지 꼭꼭 틀어닫고 전기불에서 책상머리 일만 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1층이건 꼭대기층이건 ‘햇볕이 들어와야’ 하거든요. (그래도 그늘이 지는 동이 생기도록 짓는 아파트이긴 하지만) 볕이 들도록 지어야 하는 아파트인 가운데, 놀이터와 꽃밭과 쉼터가 있도록 짓는 아파트입니다. 여기에 자가용 댈 곳은 얼마나 넓어야 합니까. 요사이는 한 집에 자가용 두어 대는 으레 굴리고 있잖아요.

 이런 아파트 지음새를 돌아본다면, 그만한 넓이를 위로 높이 올려세우기보다는, 땅바닥에 달라붙도록 알맞게 2층이나 3층으로만 지으면 훨씬 넓은 자리를 온 동네 사람이 넉넉히 쉼터로 삼을 수 있으며, 어느 집이건 햇볕과 비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 집이든 툇간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빨래를 널 수 있고, 어느 집이든 층간소음에 시달리지 않는데다가, 집구석이 아닌 골목골목 뛰쳐나와 놀 수 있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이좋게 지내는 길을 익힙니다.

 우리가 참삶을 바란다면 자연하고 가까울 수 있는 도시로 다시 짜야 하고, 우리가 돈삶을 바란다면 오늘날 흐름과 같이 아파트만 때려짓는 도시로 치달아야 합니다.


 (3)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라는 책은


 1937년에 태어나 1963년부터 일본 훗카이도 가축진료소에서 수의사로 일하다가 1991년에 일터에서 그만둔 ‘다케타즈 미노루’라는 분이 쓴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스물여섯 살부터 쉰네 살까지 수의사로 일한 셈인데, 이분이 쓴 책에는 서른 해 가까이 산마을 깊은 데에 옹크리면서 뭇짐승을 만난 발자취며 느낌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알뜰히 묻어나 있습니다. 이분이 쓴 《새끼 여우 헬렌이 남긴 것》이라는 책은 영화로 만들어 2006년에 극장에 걸리기도 했답니다.

 다케타즈 미노루 님 책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은 2007년 2월에 우리 말로 옮겨졌고,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 또한 2008년 7월에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 10년 전에는 마을 주변의 다섯 개의 호수와 늪은 물오리와 큰기러기, 도요새 등의 물새 떼들이 노니는 평범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수렵 금지가 해제되면 네 개의 호수와 늪에서는 단 한 마리의 새도 찾아보기 힘들고, 반대로 사냥 금지 구역인 도후쓰 호는 온통 새들로 북적였다. 살기를 바라는 생물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간도 산다는 문제에서는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극성이었다. 밀렵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당시에는 사냥이 금지된 호수에서 무선으로 조종하는 작은 모형보트를 달리게 하고, 놀라 날아오르는 새를 호수의 경계선 바깥쪽에서 기다렸다가 총으로 쏘는 사람도 있었다 ..  (144쪽)


 짐승을 돌보는 의사로 일했으니 누구보다 짐승을 사랑하던 분이라 할 만합니다. 글쓴이뿐 아니라 글쓴이 옆지기와 아이들도 더없이 짐승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을 테고요.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쓴이는 ‘짐승사랑’이라든지 ‘자연사랑’을 펼쳐 보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똑같은 목숨이기 때문에, 똑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던 이야기를 펼쳐 보였구나 싶습니다. 짐승들 살아갈 자연 터전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넘어, 짐승이 살아가지 못하는 터전이라면 사람도 살아가지 못하는 터전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싱그럽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이야기를 그려 보였구나 싶어요.

 글쓴이 다케타즈 미노루 님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도 손을 거들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내셔널트러스트도 그러하지만, 이 운동은 ‘내 땅 지키기’가 아니라 ‘내 삶 지키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삶 지키기’는 ‘내 마음 지키기’로 하는 일이며, 내 마음 지키기란 나를 나답게 하는 수수하고 조촐한 길이 아닌가 싶어요.


.. 다음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에게 “어젯밤은 시끄러웠죠?” 했더니 “어머나, 그랬어요? 저희 집에서는 몰랐는데요.” 한다. 20년쯤 전이라면 으레 그런 인사가 서로 통했는데 요즘 와서는 안 통한다. 다른 집들이 모두 방한과 방음이 잘 되는 밀폐된 집으로 바뀌면서 시각적인 면은 제외하고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근대 문명은 입으로는 ‘자연과 친하게 살자’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기술의 확립에 바쁜 것 같다. 자연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  (183∼185쪽)


 세발이까지 갖추면서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 하나 얻고자 추위를 무릅쓰기도 하던 글쓴이인데, 글쓴이가 찍은 사진은 작품사진이 아닙니다. 예술사진도 아닙니다. 풍경사진 또한 아닙니다. 자연사진이라 말하려 한다면 자연사진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자연사진보다는 삶사진이라고 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글쓴이는 언제나 자연하고 ‘살았’거든요. 언제나 자연에서 뭇목숨붙이를 제 이웃으로 삼으며 함께 ‘살았’거든요.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담은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사진’이라고만 글쓴이 사진을 바라보면 한 가지만 읽어내고 맙니다. 또한, 이런저런 어여쁘고 애틋한 짐승 모습을 담아낸 짐승사진이라고만 들여다보면 이때에도 한 가지밖에 읽어내지 못합니다.


..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은 이런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요즘 시대는 모든 것이 지식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어린이들 마음속에 있는 동물들은 도망가 버린다. 뭔가 새로운 것을 뒤쫓는 것이 과학이요, 연구라는 발상 속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어린이들은 자연의 불구가 되고 만다. 어디에나 있는 자연의 감동을 맛보지 못하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  (255쪽)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는 ‘자연일기’입니다. 어김없이 자연에서 지내온 일기입니다. 글쓴이 또한 자연 가운데 하나임을 느끼며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글쓴이 스스로 자연을 지킨다는 어설픈 외침이 아닌, 스스로 자연으로 녹아들며 하루하루 즐겼던 삶자락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말나눔입니다. 잔잔한 수다라고나 할까, 따사로운 옛이야기라고나 할까, 푸근한 글줄, 곧 시라고 할까요.

 우리 누구나 자연일기를 쓸 수 있으며, 우리 누구나 자연삶을 즐길 수 있고, 우리 누구나 자연임을 책 하나에 오롯이 담아 나누어 줍니다. 자연은 우리들 가슴 어디에나 고요히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려 하는 만큼 깨어날 자연이며, 우리가 깨달으려 하는 만큼 거듭날 자연이고, 우리가 부대끼려 하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자연입니다. (4342.6.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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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식탁 5
시무라 시호코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9 ― “먹기 전에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여도 될까?”
 : 시무라 시호코, 《여자의 식탁》 5권


- 책이름 : 여자의 식탁 (5)
- 글ㆍ그림 : 시무라 시호코
- 옮긴이 : 김현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9.6.15.)
- 책값 : 4200원



 (1) 밥하기와


 엊저녁에 불려놓은 누런쌀로 아침에 밥을 합니다. 옆지기는 당근을 썰어 밥에 얹습니다. 다시마도 굵직하게 잘라 함께 얹습니다. 아주 여린 불로 밥을 끓입니다. 몇 분쯤 지나 보글보글 소리가 나고 밥 익는 냄새가 온 집에 퍼집니다.

 요사이 우리처럼 가스불로 냄비에 밥을 해먹는 분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마는,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 밥보다 냄비밥이 훨씬 맛이 있으면서 영양소도 부서지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곰곰이 떠올리면,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3학년인가 4학년 때에 학교에서 실과 시간에 밥하기를 가르쳤고, 그무렵에는 한 달에 한 번쯤 학교에서 밥잔치나 먹기잔치라고 해서 우리가 손수 밥하고 반찬하고 하면서 서로 돌려먹기를 하곤 했습니다. 김수정 님 만화 《오달자의 봄》에는 주인공 달자와 펑순이네가 학교에서 밥해서 대접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즈음도 학교에서 이런 실과 수업이 있는가 궁금한데,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에 맞추고 중학교에서는 중학생 나이에 맞추며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생 나이에 맞추어 밥하기와 반찬하기를 가르치면서, 어버이 손을 빌지 않고도 살림을 꾸리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또한, 밥하기를 넘어 청소하기와 빨래하기도 가르치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몸과 마음이 오롯이 튼튼한 사람으로 커야 아름다우며, 어느 누구도 밥을 안 먹고 못 살며 옷을 안 입고 못 사는 한편 잠을 안 자고 못 사니까요.


.. ‘왜 (내가 만든) 이 케이크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까? … 그 애 (엄마가 만든) 케이크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케이크를 먹는 평범한 어린애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짠맛이 섞인 케이크를 먹으면서 ‘엄마, 빨리 와’라고 중얼거렸다’ ..  (16∼18쪽)


 어릴 적 일을 되새기면 학교에서 밥하기를 가르치기 앞서, 누구나 집에서 밥하기를 배웠습니다. 밥하기를 배운 다음에는 어머니 일을 거든다며 밥하기를 손수 해 보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밥물을 안치고 끓이지는 못하고, 조리로 돌 고르기를 여느 때에 꾸준하게 하고 나서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밥을 끓였습니다. 우리 집은 압력밥솥을 썼는데, 압력밥솥 추가 치치치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내내 옆에서 지켜보면서 기다렸고, 다 되어 뜸을 들이고 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 때 느낌이란!

 그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밥할 줄 모르는 사람?’ 하고 물어 보았다고 떠오르는데, 이렇게 물을 때 손을 든 아이는 두엇쯤?

 요즈음 아이들도 밥하기를 어느 만큼은 할 수 있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전기밥솥은 단추만 누르면 되거든요. 그렇지만 밥물을 맞출 줄 모르는 아이도 많고, 고작 단추 한 번 누르면 되는 밥하기조차 못하는 아이도 많을지 모릅니다. 세탁기도 단추 하나면 끝이지만 단추 한 번 못 누르는 사람이 제법 되거든요.
 





.. “저기, 왜냐고 해도, 일단은 설날 요리의 기본이고, 게다가 오빠도 엄청 좋아하는 거고.” “그래, 남편도 아이도 아버님도 어머님도 다들 좋아해. 근데 난 안 좋아하거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평소 때 식사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만들고 있어.” “그거야 다들 그런.” “그런 거야?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난 애가 생기는 바람에 일찍 결혼해 그대로 주부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잖아. 대체 나란 인간은 뭔가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주체성 없는 여자라니.” ..  (24쪽)


 낮에 생협에 가서 인절미를 삽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보고 있을 옆지기가 인절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도 배가 고파 몇 점 먹을 생각입니다. 옆지기는 인절미를 반참 삼아 함께 밥을 먹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한 밥에다가 인절미를 반찬으로 삼아 늦은낮밥을 먹습니다. 옆지기는 인절미를 조금씩 끊어 잘근잘근 씹은 다음 아기한테 먹이고 당근 섞은 누런밥 또한 잘근잘근 씹어서 아기한테 먹입니다. 아기는 날름날름 잘 받아먹습니다. 저와 옆지기도 인절미 조금에다가 밥을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생협 인절미는 2600원이었는데, 생협 아닌 여느 떡집에서는 2000원쯤 받습니다. 적어도 600원은 비싸게 사먹는 셈이라 하겠습니다만, 허튼 쌀로 짓지 않은 떡이요, 농사지은 사람이며 다루어 파는 사람이며 고르게 도움이 되니까 600원을 더 썼다고 해서 아쉽지 않을 뿐더러 즐겁습니다. 게다가 세 식구가 2600원으로 한 끼니 배부를 수 있습니다.

 세 식구가 떡과 밥으로 늦은낮밥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남깁니다. 아기는 열 달째로 접어든다면서 어엿하게 걸상에 앉아 손바닥 장난을 치면서 밥술을 낼름낼름 받아먹는데, 아직은 이런 어린 날을 떠올릴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커서 제 어릴 적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새삼스럽다고 느낄 테지요. 밥자리 사진을 찍으면서 괜히 웃음이 납니다.


.. “이 집, 후르츠 샌드위치가 정말 맛있어. 여기저기 먹으러 다녀 본 내가 장담하는데, 아마 최고일 거야. 봐, 저 두 사람(나를 차고 딴 여자 만나는 놈하고 짝꿍)도 먹고 있잖아. 훗, 내가 알려준 가겐데.” “언니, 진정해.”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왔어, 언니. 일단 먹고.” “음, 먹기 전에, 후타바, 나,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이고 와도 될까?”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자기를 차고 다른 여자랑 재미있게 노는 녀석한테 아무 말 없이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다시 아무 말 없이 제자리로 돌아와서 후르츠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는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생은 여태까지 후르츠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거나 맛있다고 느껴 보지 않았지만, 바로 이때부터 자기도 맛있게 먹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  (75∼78쪽)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릴 적에는 밥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일이 없습니다. 다른 동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삿날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고, 밥먹을 때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으며, 골목에서 놀 때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때는 입학식과 졸업식과 ‘좋다는’ 데 놀러간 날입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여느 자리 여느 때 이야기는 그날그날 잊어버린 삶이 아니었을까 싶고, 여느 우리 삶은 굳이 돌아볼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된 분들로서는 아이와 함께 ‘좋다는’ 데로 데리고 가서 비싼 바깥밥을 사먹이면 ‘당신들로서도 뿌듯하고 아이들로서도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는데, 또 이렇게 생각할 아이도 많을 텐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 잘 버는 작은아버지가 제 국민학교 3학년 때(1984년) ‘뷔페’에 데려간다며 오늘은 아침부터(또는 낮밥부터) 굶고 있으라 했지만, 형과 저는 배가 너무 고파 라면 세 봉지 끓여 형이 두 봉지 제가 한 봉지 먹고 국물에 밥까지 잔뜩 말아 먹었어요(‘뷔페’가 어떤 곳인지 이날 처음 알았고, ‘뷔페’라는 이름도 이날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니 라면국물에 밥까지 말아 배 띵띵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그러고 저녁에 작은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는데 ‘라면에다가 밥까지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촌놈들!’ 하면서 웃었습니다. ‘뷔페집에 가면 얼마나 맛있는 게 많은데 그런 걸 먹어!’ 했고, 뷔페집에 가서도 ‘고기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우리 눈에는 고기보다는 여느 때에는 구경할 수 없던 바나나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눈이 왕방울처럼 동그래져서 바나나만 한 접시 가득 채워 여러 번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작은아버지는 또다시 혀를 끌끌 찼지만, 그런 혀끌끌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나나와 배와 능금만 다섯 접시쯤 먹었던가?

 생일 때라고 뭐 으리으리한 집을 바란 적이 없었고, 저는 크림 들어간 케익은 몸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한데다가, 잡채 한 접시와 약밥 몇 점이 있으면 좋았습니다. 혀가 짧아 매운 반찬이나 김치는 잘 삭이지 못하면서도, 늘 먹는 밥이면 다 좋았습니다.
 





 (2) 밥먹이기와


 1995년에 부모님 집을 나와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먹고살며 일한 뒤로는 언제나 밥을 했습니다. 딱히 밥을 잘하지 않았으면서도 밥당번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니 형들이 귀찮은 일을 시킨 셈일 텐데, 군대에 갔다 온 다음에는 호텔조리학과를 다니고 군 취사병으로 있었던 선배가 여러모로 가르쳐 주어 하나씩 익히면서 함께 밥당번을 맡았습니다. 신문사지국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던 때에는 한 해 동안 함께 살던 형들을 먹이려고 밥을 했고, 형들이 장가가며 따로 나가면서는 혼자 먹을 밥을 혼자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집에 냉장고를 들였습니다만, 냉장고가 있다고 해 보아야 냉장고에 넣어둘 만한 먹을거리란 딱히 없었습니다. 그 뒤 첫 혼인을 하고 나서도 밥하기는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혼인살이를 접고 충주 산골마을에서 일할 때에는 밥을 내처 얻어먹었는데, 오랜만에 남이 해 준 밥을 얻어먹어서 그런지 바늘방석에 앉아서 먹는다는 느낌이었고, 제가 먹고픈 대로 조금 모자라게 먹을 수 없었으니 속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먹여 주는 분으로서는 더 먹여 주고플는지 모르지만, 먹는 저로서는 덜 먹고 덜 쓰면서 몸을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고향마을로 돌아와 새 혼인을 살아가는 그러께부터는 다시 제 밥을 제가 합니다. 얻어먹기가 끝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를 노릇이었으며, 가깝든 멀든 누군가와 함께 먹을 밥을 마련하는 일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즐겁습니다. 똑같은 밥차림이라 하여도 날마다 새로운 밥차림이요 언제나 따뜻하게 새로 하는 밥입니다. 똑같이 밥상을 받아도 날마다 고맙게 새로 먹는 밥이요, 이 고마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 그것은 2월의 쌀쌀한 아침. 난방도 켜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아빠 모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빠, 엄마는?” “어, 아아, 잠깐 어디 갔어?. 아마 곧 돌아오겠지.” “거짓말.” ‘어느새 옆에 와 있던 언니가 중얼거렸습니다. 아빠 손 밑에 있는 종이가 이혼신고서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도 이제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역시 제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역시 우린 글렀습니다. 엄마한테 버림받은 구제불능 우리들.’ “풉, 아하하하하하, 왠지 한심해. 기껏 잡아 온 모시조개가 전부 모래투성이라니. 우린 정말 바보야.” ..  (52∼53, 61∼63쪽)


 그렇다고 제가 밥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못 됩니다. 그저 저 먹을 만큼 할 뿐이요, 제 밥그릇과 옆지기하고 아기 밥그릇까지는 맡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힘이 들어 드러누워 꼼짝을 못하고 있으면 옆지기가 쌀을 불리고 밥을 합니다. 집에서 지짐이도 하고, 가끔 과자도 굽습니다. 생협에서 토막닭을 사서 집에서 몇 번 튀겨서 먹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한다는 일은 내 배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잣거리 마실을 하며 하나둘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이 바탕이 되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는 동안 쌀이며 다른 먹을거리이며 어떻게 그곳까지 가고 나는 그곳에서 어떻게 장만하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됩니다. 돈 몇 푼 치르면 얼마든지 사다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닙니다. 돈이면 다 되는 밥차림이 아닙니다. 집에서 안 차리고 돈 주고 밖에서 사먹어도 그만인 삶은 아닙니다.

 먹는 즐거움만으로 꾸리는 삶은 아니되,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내 삶은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니 밥하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고, 밥하는 즐거움만큼 밥해 먹이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며, 내가 다루는 먹을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길러서 내 손까지 오는가를 헤아리고 싶습니다.


.. “난 말이죠, 옛날에 이거에 푹 빠져서 마구 먹어댔던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살이 쪄서 이러다간 남편이 바람 피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리 그인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죠 … 미안해요. 사실은 괜찮아요. 좀더 먹는다고 해도. 제대로 각오가 돼 있다면.” ..  (127∼129쪽)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에도 늘 그렇거든요. 저하고 옆지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이나 ‘새책방에서 잘 팔리는’ 책에는 눈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만한’ 책이냐 아니냐를 무엇보다 따집니다. ‘우리가 읽기 힘들어도 우리 아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올 사람한테 도움이 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우리 모자란 살림으로도 기쁘게 사 주어 글쓴이와 출판사한테 도움되도록 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이런 책읽음새를 고스란히 밥하기와 밥먹기에 맞춥니다. 빨래하기와 치우기에 맞춥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때에도 똑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비손을 할 때이든,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든, 아기를 씻길 때에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읽는 책이지,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차려서 먹는 밥이지, 우리 스스로 배만 부르면 그만으로 먹는 밥이 아닙니다.


.. “얘, 이게 뭐니?” “받았어.” “누구한테?” “스가이네 엄마.” “스가이? 친구니?” ‘아니야. 오늘 잠깐 얘기만 한 거야. 왕따당하는 애랑 엮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 어쩔 수 없으니까. 잊자. 잊어버리자.’ “자.” “아.” “먹을 거지? 네가 받아온 어야. 마멀레이드가 아주 맛있네.” (덥석. 오물오물오물) ‘쓰다. 이게 이런 맛이었나? 이게 이렇게 쓴맛이었나? 이렇게.’ (이튿날 학교 가는 길에서) “안녕, 스가이.” ‘우와, 하야시 패가 봤나? 노려보고 있을까? 우와, 우와, 너무 무서워. 하지만 난 그 마멀레이드를 맛있게 먹고 싶은걸. 제대로 맛있게 먹고 싶어.’ ..  (144∼148쪽)


 제 어린 날, 어머니가 늘 우리를 불러 밥상 차리기를 거들도록 하고, 수저를 놓게 하며, 반찬그릇을 놓고 치우게 했으며, 설거지라든지 여러 가지를 돕도록 한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귀찮은 심부름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얻어먹는, 또는 받아먹는 밥그릇 하나가 고마운 만큼, 얼마든지 자잘한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찌개를 끓이시는데 뭐 하나 빠져 있다 하면 얼른 저잣거리나 가게로 달려가 후다닥 사 왔고,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어머니가 저한테 칼자루를 쥐어 준 적이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으나, 어설픕니다만 제 칼질은 어머니 곁에서 빤히 지켜보던 칼질이요, 밥차림이요, 반찬 손질이요, 설거지요, 뒷마무리입니다.


 (3) 만화책 《여자의 식탁》 다섯째 이야기


 만화책 《여자의 식탁》 다섯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앞선 네 가지 이야기 못지않게 다섯째 이야기도 뭉클뭉클합니다. 아니, 앞선 네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끼면서 뭉클뭉클합니다. 어쩌면, 1권보다 2권이, 2권보다 3권이, 3권보다 4권이, 4권보다 5권이 한결 무르익은 그림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1권부터 5권까지 한결같이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조금 어리숙하면 어리숙한 대로 좋고, 아주 빈틈이 없으면 빈틈이 없는 대로 좋습니다.

 먹을거리 하나에 얽힌, 또는 먹을거리 하나마다 깃든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저 수수하게 풀어놓는 《여자의 식탁》은, 세상에 이름나지 않고 둘레에서 따로 알아주지 않는 수수한 사람들 삶자락마다 웃음과 눈물이 얼마나 넘치도록 많은가를 보여줍니다. 《서양골동 양과자점》 같은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아름답고 재미있고 뜻이 있을 텐데, 꼭 이처럼 뭔가 돋보이거나 남다르거나 톡톡 튀거나 멋스러워 보이지 않는 여느 먹을거리 하나라 하여도 ‘다 다르면서 모두 애틋하면서 언제나 가슴이 찡한 삶’임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 “응? 웬일이냐? 카나에. 이런 곳에.” “아, 아뇨, 그냥.” “조심해라. 얼마 전 이 부근에 치한이 나왔다더라.” “아, 그래요?” “훗, 하긴. 너라면 걱정할 거 없냐?” “아, 아니, 농담이야, 농담.” “핫,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웃지 마. 웃지 말아 줘. 제발. 웃지 마.’ “풉.” ..  (174∼176쪽)


 1권부터 4권까지 보는 동안, 그리고 이번에 나온 5권을 보는 내내, 나아가 앞으로 나올 6권부터 꾸준히 새로 그릴 작품까지, 그린이 시무라 시호코 님은 ‘아무것도 아닌 먹을거리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우리 이야기’라는 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여느 사람들 흔하고 너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사랑스럽고 눈물겹고 웃음짓는 재미난 이야기’라는 말을 건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린이가 여자요, 나오는이도 여자이니, 좀더 찬찬히 이 만화를 말하자면 “여자가 차린 밥상”이 아닌 “여자가 하루하루 꾸려 나가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열네 살 처남한테 ‘나중에 여자친구를 사귈 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한번 보라’고 건네 보기도 했는데, 온통 남자 목소리가 판을 치고 영화며 연속극이며 책이며 강의며 학문이며 정치며 오로지 남자 목소리가 넘실거리는 이 땅에서 우리 마음을 고즈넉하게 다스리면서 허물없이 어깨동무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고 싶다면, 만화책 《여자의 식탁》을 곰곰이 두어 번쯤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섹스는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난 날 위해서 했다. 욕망을 느껴 주길 바랐다.’ ..  (182∼184쪽)


 책을 한 번 덮고, 또 한 번 본 다음 덮고, 다시금 보고 나서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에도 “또다른 ‘여자의 식탁’으로 빚어낼 이야기는 늘 넘치고 있지만, ‘여자의 식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눈길이 없고 찾아보려는 손길이 없으며 귀기울여 들으려는 귓길이 없는 가운데, 머나먼 딴 나라로 넋과 얼을 팔아치우고 있다”고. 앞으로 어느 누가 되든, “내 어머니 밥상”과 “내 동생 밥상”과 “우리 아버지 밥상”과 “우리 할머니 밥상”과 “내 남편 밥상”과 “우리 오빠 밥상” 같은 이야기를 솔솔 풀어낼 수 있기를 꿈꾸고 싶다고. (4342.6.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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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 - 책 읽고, 놀고, 대학도 가고, 일석삼조 독서토론기
조원진.김양우 지음 / 삼인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책읽고 대학 갔다가, 책만 들고 대학 관두고
 [잠깐 읽기 37] 조원진+김양우,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



- 책이름 :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
- 글 : 조원진, 김양우
- 펴낸곳 : 삼인 (2009.4.20.)
- 책값 : 11000원


 (1) 책읽기와 대학교 가기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는 고등학생이던 때, 학교나 학원 동무인 여러 아이들이 ‘책을 읽고 느낌을 이야기로 나누자’는 데에 뜻을 맞추면서 열다섯 차례에 걸쳐 ‘독서토론’을 해 온 발자국을 담아낸 책입니다.

 따로 학교에서 교사가 이끌지 않은 ‘책읽기모임’이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려든 동아리가 아닌 ‘책읽고 나누는 모임’이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열다섯 차례뿐 아니라 서른 차례이든 쉰 차례이든 얼마든지 ‘책읽고 나누고 함께하는 모임’으로 꾸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또는 마땅하게도 ‘책읽기모임’은 ‘논술모임’으로 바뀌었고, 아이들 스스로도 이렇게 가야 한다고 그럭저럭 느끼거나 받아들였습니다. 열다섯 차례에 걸쳐 스스로 모임을 꾸려 나가던 어느 날, 아이들한테 가뭄에 단비처럼 모임을 도와준 ‘어른’이 나타났거든요.


.. 사실 《제3의 물결》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우리 모임이 수준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 책으로 토론을 하면서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어려운 책만이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항상 내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는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들과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도 배웠다 ..  (32, 56쪽)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도움이 어른’은 아이들한테 더없이 좋은 길동무였을는지, 그지없이 반가운 이슬떨이였을는지.

 언제나 받아들이기 나름이므로, 아이들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거이 함께하려 했다면 도움이 어른은 좋은 사람이고 고마운 길잡이입니다. 더구나, 아이들은 ‘책읽기모임’을, 티없는 마음으로 책을 사랑하는 줄기를 내 삶을 사랑하는 줄기로 잇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책읽기모임’을 하면서 ‘다가오는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 대비도 잘할 수 있어 괜찮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스스로 도움이 어른을 바랄밖에 없었고, 스스로 얼마든지 ‘책읽기모임’을 꾸려 나갈 수 있었고, 또 열다섯 차례 꾸려 나가기까지 했지만, 스스로 이루어 온 열매와 보람에 어떤 뜻과 값이 담겨 있는가를 더 깊이 곰삭이고 깨닫고 되뇌기보다는, 가볍게 ‘대학교 잘 붙기’ 쪽으로 갑작스레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 토론이 진행될수록 저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게 됐다는 거다. 처음 멋모르고 독서토론을 시작할 때는 무서울 게 없었다. 어떤 개념을 모른다든지 지식이 부족하다는 데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고, 엉터리 같은 말이라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무지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토론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보다는 주제에 대한 발표 위주로 진행되었다 ..  (106쪽)


 딱하다면 딱한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를 쓰고 함께한 아이들만 딱한 노릇이 아닙니다. 그나마 이렇게 ‘책읽기모임’이라도 해 보겠다면서 ‘입시에 옴쭉달싹 못하도록 매인 껍질’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몸부림조차 안 하는 아이들이 거의 모두이니까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고, 그예 억누르는 틀에 맞춰 지내면서, 몰래몰래 ‘어른들 하는 짓’을 따라 담배도 태우고 술도 마시고 사랑놀이도 즐기면서 푸른날(청소년기)을 썩히고 있으니까요. 담배태우기와 술마시기와 사랑놀이가 나쁜 짓이 아니라, 왜 담배를 태우고 왜 술을 마시며 왜 사랑을 나누려 하는지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채, 그저 ‘어른 따라하기’로 치달을 뿐이니까요.

 학교에서는 시험만 잘 치르면 ‘착한 아이’가 됩니다.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험을 잘 치르는 아이가 몹쓸 짓을 한다 해서 크게 꾸지람을 듣는 일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옆 짝꿍을 괴롭힌다든지 도둑질을 한다든지, 또는 청소 땡땡이를 친다든지 겉속이 다른 말을 한다든지, 애엄마나 늙어 힘든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안 돕는다든지, 새치기를 버젓이 한다든지,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든지, 용돈이 넉넉해 군것질을 내키는 대로 한다든지, …… 타이르고 다독일 대목이 많다 하여도 ‘공부를 잘하는데요!’ 하면서 대충 얼버무리거나 잠자코 지나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시험성적이 좋은 아이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이 아이를 때리는 교사는 몽둥이 세기가 달랐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한테는 온힘을 다해 몽둥이질을 더 많이 했고, 공부 잘하는 아이한테는 살살 몽둥이질을 하는 데다가 몇 대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웬만한 잘못은 슬쩍 못 본 체하기도 했습니다. 담배 태우다 걸리는 동무들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뺨 한 대 맞고 풀려나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는 ‘너흰 임마, 수업 안 들어도 되잖아? 어차피 잘 텐데?’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장 돌 줍기에다가 툭하면 발로 엉덩이 걷어찬다든지 하면서 갖은 모욕을 주면서 괴롭히기만 했습니다.


.. 논술공부를 한다는 것, 또는 그와 비슷하게 입시의 맥락에서 독서나 토론을 한다는 것은 사실 특정한 문화의 산물이었고, 그 문화는 정확히 말하면 중산층 가족의 것이었다 … 이렇게 ‘권력을 지닌’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들 내지 하위주체의 언어들이 추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193쪽)


 따지고 보면,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라는 책 하나까지 이루어 낸 아이들은 퍽 남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제법 잘 나오는 아이들인 가운데, 집안 형편도 썩 괜찮았던(그러나 아주 넉넉하지는 않은) 아이들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그럭저럭 어중간이었다면, 또 집안 형편도 그리 낫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 아빠 엄마 되는 분들께서 ‘그래, 너희가 좋은 생각을 하는구나. 잘해 보렴!’ 하면서 북돋워 주거나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치지 않았겠다고 느낍니다. 하물며 학교에서는 어떻겠습니까. 뭔가 ‘불량서클’을 ‘책읽기모임’이라는 이름을 입히면서 뻘짓거리 하지 않느냐고 눈을 번득이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되는 아이’에다가 ‘있는 아이’라는 ‘타고난 재주’가 있으니, ‘책읽기모임’을 내걸면서 입시논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로지 대학교 가기만을 바라고 있고 내몰고 있고 밀어붙이고 있거든요. 제아무리 착하고 얌전하고 바르고 상냥한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시험성적은 젬병이라면 ‘저 병신!’ 하고 깎아내리는 교사요 부모요 어른입니다. ‘그래, 좋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어깨를 쓰다듬고 손을 맞잡아 주지 못하는 교사요 부모요 어른입니다.

 교사든 부모든 어른이든 아이들 스스로 ‘책읽기모임’을 하든 ‘야구모임’을 하든 ‘연극모임’을 하든 ‘인터넷게임모임’을 하든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거들 일은 거들면서 기쁨과 슬픔을 아이들이 온몸과 온마음으로 맞부딪칠 수 있게끔 부드러운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돈에 매이고 이름에 팔리고 힘에 끄달리는 삶이거든요. 어른들부터 옳지 않게 살아가면서 아이들한테도 옳지 않은 삶을 ‘현실은 이러하니 어쩔 수 없더라’ 하는 핑계로 감추어 놓고 있거든요.


..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분명히 다른 사람과 함께 부대끼면서 배워 나가는 것임에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삶들과 만날 기회는 점점 적어졌다 … 내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  (210∼211쪽)


 이리하여,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는 조금도 대단한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라꼴이 이러하기 때문에 외려 대단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뒤죽박죽 엉키고 꼬이고 다투고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잔뜩 담긴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야말로 아이들 오늘날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 삶자락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교육방송 교재’와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입시지옥 속알맹이를 더 깊이 파고들거나 파헤치는 눈썰미를 기르지 못해 겉핥기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겉모습이나마 핥으면서 잘잘못을 깨닫는 눈썰미를 스스로 길러내려고 한 아이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교사나 부모가 시키는 교과서 외우기와 논술대비를 벗어나, 스스로 ‘참답게 알고 싶다’는 마음외침을 따르면서 손수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골라드는 아이는 이 나라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빈틈없이 나올 수 없던 책이요, 처음부터 허술함 가득한 채 이루어질 수밖에 없던 ‘책읽기모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빈틈많음과 허술함이야말로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를 읽는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깨지고 까이고 넘어진 발자국이야말로 ‘앞으로 중고등학생인 나이에 스스로 책읽기모임을 꾸려 나가는 좋은 앞사람 보기’가 되어 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2) 왜 관두지 못할까


.. 토론이 잘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일이 모두에게 처음일뿐더러, 어려운 책을 고르는 바람에 모두가 읽는 것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토론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아직도 60년대식 사고에 멈춰 있는 틀에 박힌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것들을 암기시키는 식으로 수업을 한다. 우리는 그동안 10년을 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토론을 해 본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 무조건 풀고 답을 적기만 강요했던 수학이, 암기만 죽어라 했던 역사가 진짜 공부일까? 아무리 흥미 있는 내용이라도 문제 풀기나 암기에 치중해 공부하면 따분하고 지루해진다. 학생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공부를 피해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다 ..  (36, 109쪽)


 고등학생 아이들 네다섯이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가며 책을 읽으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모습을 책으로 읽으면서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나이였을 때에는 어떠했는가를 돌아봅니다.

 제가 책읽기에 눈을 뜬 때는 중학교 2년이고, 한 반에 《영웅문》을 교과서 뒤에 숨기고 읽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좋은 책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리고 제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없고 쓸데없는 시험지식 외우기 수업이 골이 난 저로서는 딱히 할 일도 없어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나 하고 있었는데, 그 교과서 밑에 책을 감추어 놓고 읽는 모습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제 뒤통수를 그지없이 후려갈겼습니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뭐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이 우리 집에 없었고, 학교에서 어디 빌려 주는 데도 없습니다. 그래도 기껏 읽는답시고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300원 주고 빌려서 읽었습니다. 그런 다음 중학교 3년 때에는 얇은 ‘빨간 책(시사영어사에서 펴낸 영한대역본)’을 한 권에 1000원에 사서 읽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고2로 올라선 무렵, 바야흐로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제가 입시를 치를 1993년 가을부터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뀐 틀에 맞추어야 했고, 제 또래는 수능뿐 아니라 논술도 맨 처음으로 치르는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나중에 논술시험은 몇몇 대학교에서만 치르는 틀로 다시 달라졌습니다). 갈팡질팡 입시제도 때문에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저로서는 한 가지 빛줄기를 보았으니, ‘외워서 잘 쓰는 시험문제 풀이에서 벗어나, 교과서 아닌 책도 읽고 생각하는 테두리를 넓힌다’고 하는 입시방침이라고 밝힌 대목입니다. 그래서, 중학교 2년 때부터 하던 ‘교과서 아닌 책’ 읽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했기에,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딱 두 사람만 ‘대학 독일어 논술시험’을 따로 준비해야 했는데, 학교에서는 ‘두 사람한테만 가르치자고 독일어 수업을 할 수 없다(그러나 우리 학교는 제2외국어로 버젓이 독일어를 가르쳤고, 수업도 한 주에 두 번 있었으나, 1학년 때에만 수업을 하고, 그 뒤 이태 동안은 국영수 보충수업과 다름없이 해 버렸습니다)’고 밝히며 우리 둘보고 학원에 가서 배우라고 내밀었습니다.

 대단히 엉뚱한 학교입니다만, 전교조도 없던(이제 막 꿈틀거리던) 때에 무슨 수업권이 있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인천에서 독일어를 어디에서 가르치느냐 알아보니 딱 한 군데 있었고, 그나마 그 학원에서도 독일어 수업은 고작 일곱 사람만 들었습니다. 학원강사는 당신 스스로도 우리를 가르치기 쉽지 않음을 느꼈을 텐데,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독일어를 기본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니, 알맞춤한 교재가 딱히 없어, 당신이 예전부터 쓰던 교재를 장만해 오라 했는데, 그 교재는 인천 시내 어느 책방에서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마실을 가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도 갔으나 그곳에서조차 팔지 않았습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더군요. 빈손으로 학원으로 가니, 학원강사는 우리 두 사람한테 ‘헌책방에는 갔느냐?’고 물었고, 안 가 보았다 하니, 헌책방도 안 가 보고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줄곧 입시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아끼려고 발버둥쳤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공부해서 숨막히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잃는 게 많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면서,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홀히 하면서 입시에만 매진하다 보니, 내 삶에서 내가 없어졌던 것이다 … 이 시대와 절대 발맞추지 않으려는 듯한 꽉 막힌 이야기도 (교과서에) 많이 실려 있어 공부하기가 무척 괴로웠다. 고리타분하고 뻔한 내용이어서 흥미가 일지도 않고 공부할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 뛰어난 인재들을 동원하면서도, 내용을 시대에 맞춰 더 개정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교과서를 무조건 암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 교실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금기시된 듯한 느낌이었다 ..  (47, 92∼93쪽)


 이리하여 토요일 보충수업이 끝난 세 시 반에 부리나케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골목으로 갔고, 이곳에서 세 시간 남짓 뒤진 끝에 꼭 두 권을 찾아냈습니다. ‘있구나, 있어!’ 하면서 기뻐하는 가운데 책값을 치렀고, 책값을 치르고 나오려는데 책방 뒤쪽이 궁금해 슬쩍 돌아보다가, 헌책방에 ‘교과서와 교재 아닌 책’도 많이 갖추고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판이 끊어진 독일어 교재 하나 찾아낸 일은 기뻤지만, 이 기쁨을 잠재울 만큼 ‘뭐야? 헌책방은 이런 곳이었나? 난 이런 헌책방에서 고작 판끊어진 교재나부랭이나 찾는답시고 몇 시간을 헛되이 버렸나?’ 하고 생각하며 부끄러웠습니다.

 이날부터 제 책읽기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제 책읽기뿐 아니라 책을 읽는 매무새도 바뀌었고, 책을 읽으며 바라보는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여느 새책방에는 꽂혀 있지 않던 책을 헌책방에서 잔뜩 만났고, 교재와 부교재에는 대충 이름만 걸쳐 놓던 ‘시인과 소설가 작품집’이 얌전하게 꽂혀 있어 들뜬 마음으로 하나둘 장만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좋고 나쁨을 떠나, 통으로 책 하나를 살피면서 앞사람들 넋과 얼을 돌아보는 일에 마음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ㄱ대학교 한국사학과를 꿈꾸면서, 고등학교 3년 때에는 일찌감치 그 ㄱ대학교 역사학과에서 교재로 삼는 역사책을 모두 읽어냈고, 그 대학교 교수들이 쓴 웬만한 역사책은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었습니다.


..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이다. 어째서 우리 나라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스무 살이 가까워져서야 생각하기와 글쓰기를, 그것도 ‘입시를 위해서’라는 옹색한 이유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 동시에 우리는 글쓰기 영역에서도 자유로운 글쓰기가 아닌 논술에 맞춘 글쓰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조차 우리는 별 무리 없이 수긍했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절박함은 어찌 보면 쉽게 생길 법한 고민들을 없애 버렸다 …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로부터 이를 극복할 전망을 발견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나조차 중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잘했지만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늘 ‘사탕’이 주어진다 ..  (140, 147, 161쪽)


 1993년 입시에서 저는 제가 바라던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로 바라던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로 바라던 곳을 다니며, 대학교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다쳤습니다. 내 학생증은 복학생이었다가 졸업까지 했어도 일자리를 못 얻고 도서관을 헤매는 선배한테 선물로 남기고 그 대학교를 관뒀습니다. 이럴 바에는 고등학교부터 관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속이 아팠으나,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고등학교를 때려치운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일찌감치 그만두었으면 내 삶이며 생각이며 더 단단하고 슬기롭게 다스리지 않았겠느냐고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더 아름다운 제가 되었겠습니다마는, 얄궂고 어줍잖은 길을 어느 만큼 걷기도 한 탓에, 얄궂고 어줍잖은 길에서도 아픈 이웃이 있으며 아픈 이웃을 돕는 길을 생각할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거꾸로, 얄궂고 어줍잖은 길을 안 걸으면서 더 크고 너른 아름다움을 나눌 길을 찾았을 수 있는데, 스스로 잘잘못하고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까이고 차이고 넘어지고 얻어맞고 쫓겨나고 밟히고 하던 하루이틀이 제 몸을 한결 단단하게 갈고닦는 밑거름은 아니었을까 싶으며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를 덮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이만큼 생각밭을 일구는 매무새라 한다면, 이 아이들 스스로 제 기득권을 얼마든지 내버리면서 아이들 꿈과 뜻에 튼튼한 날개를 달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대안학교도 많고 뜻있는 괜찮은 대안학교 교사도 많은 요즈음은 얼마든지 “책의 바다에 빠지는 노란잠수함”이 더 즐겁고 신나게 바다밑을 넘나들고 누빌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찌감치 ‘입시를 관두지 않았’고, ‘시험성적이라는 기득권을 더 꼭 움켜쥐었’기 때문에 이렇게 책 하나로 갈무리하는 아이들 푸른날을 남길 수 있었으며, 이 푸른날을 발판으로 삼아 아이들 스스로 ‘곧바른 지식인으로 걸어갈 길’을 차근차근 다지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노란잠수함’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 까이지 않았거든요. 남김없이 밟히고 짓이겨지고 차이고 밀리고 쫓겨나고 들볶이지 않았거든요. 이제부터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부딪히면서 까이고 아파하고 밟히고 슬퍼하고 차이고 괴로워하며 쫓겨나고 고달픈 가운데, 세상 살아가는 보람을 저마다 다르게 붙안지 않겠느냐 믿어 봅니다.

 저한테는 ‘책읽고 대학 갔다가, 책만 들고 대학 관둔’ 삶이지만, 이 아이들한테는 ‘대학 가려고 책읽고, 책도 들고 대학도 다니는’ 삶으로 일구면서, 이 나라에서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이런 삶으로도 서로서로 반갑고 기쁠 수 있다고 믿어 봅니다. (4342.6.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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