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식탁 5
시무라 시호코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9 ― “먹기 전에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여도 될까?”
 : 시무라 시호코, 《여자의 식탁》 5권


- 책이름 : 여자의 식탁 (5)
- 글ㆍ그림 : 시무라 시호코
- 옮긴이 : 김현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9.6.15.)
- 책값 : 4200원



 (1) 밥하기와


 엊저녁에 불려놓은 누런쌀로 아침에 밥을 합니다. 옆지기는 당근을 썰어 밥에 얹습니다. 다시마도 굵직하게 잘라 함께 얹습니다. 아주 여린 불로 밥을 끓입니다. 몇 분쯤 지나 보글보글 소리가 나고 밥 익는 냄새가 온 집에 퍼집니다.

 요사이 우리처럼 가스불로 냄비에 밥을 해먹는 분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마는,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 밥보다 냄비밥이 훨씬 맛이 있으면서 영양소도 부서지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곰곰이 떠올리면,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3학년인가 4학년 때에 학교에서 실과 시간에 밥하기를 가르쳤고, 그무렵에는 한 달에 한 번쯤 학교에서 밥잔치나 먹기잔치라고 해서 우리가 손수 밥하고 반찬하고 하면서 서로 돌려먹기를 하곤 했습니다. 김수정 님 만화 《오달자의 봄》에는 주인공 달자와 펑순이네가 학교에서 밥해서 대접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즈음도 학교에서 이런 실과 수업이 있는가 궁금한데,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에 맞추고 중학교에서는 중학생 나이에 맞추며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생 나이에 맞추어 밥하기와 반찬하기를 가르치면서, 어버이 손을 빌지 않고도 살림을 꾸리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또한, 밥하기를 넘어 청소하기와 빨래하기도 가르치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몸과 마음이 오롯이 튼튼한 사람으로 커야 아름다우며, 어느 누구도 밥을 안 먹고 못 살며 옷을 안 입고 못 사는 한편 잠을 안 자고 못 사니까요.


.. ‘왜 (내가 만든) 이 케이크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까? … 그 애 (엄마가 만든) 케이크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케이크를 먹는 평범한 어린애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짠맛이 섞인 케이크를 먹으면서 ‘엄마, 빨리 와’라고 중얼거렸다’ ..  (16∼18쪽)


 어릴 적 일을 되새기면 학교에서 밥하기를 가르치기 앞서, 누구나 집에서 밥하기를 배웠습니다. 밥하기를 배운 다음에는 어머니 일을 거든다며 밥하기를 손수 해 보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밥물을 안치고 끓이지는 못하고, 조리로 돌 고르기를 여느 때에 꾸준하게 하고 나서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밥을 끓였습니다. 우리 집은 압력밥솥을 썼는데, 압력밥솥 추가 치치치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내내 옆에서 지켜보면서 기다렸고, 다 되어 뜸을 들이고 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 때 느낌이란!

 그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밥할 줄 모르는 사람?’ 하고 물어 보았다고 떠오르는데, 이렇게 물을 때 손을 든 아이는 두엇쯤?

 요즈음 아이들도 밥하기를 어느 만큼은 할 수 있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전기밥솥은 단추만 누르면 되거든요. 그렇지만 밥물을 맞출 줄 모르는 아이도 많고, 고작 단추 한 번 누르면 되는 밥하기조차 못하는 아이도 많을지 모릅니다. 세탁기도 단추 하나면 끝이지만 단추 한 번 못 누르는 사람이 제법 되거든요.
 





.. “저기, 왜냐고 해도, 일단은 설날 요리의 기본이고, 게다가 오빠도 엄청 좋아하는 거고.” “그래, 남편도 아이도 아버님도 어머님도 다들 좋아해. 근데 난 안 좋아하거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평소 때 식사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만들고 있어.” “그거야 다들 그런.” “그런 거야?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난 애가 생기는 바람에 일찍 결혼해 그대로 주부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잖아. 대체 나란 인간은 뭔가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주체성 없는 여자라니.” ..  (24쪽)


 낮에 생협에 가서 인절미를 삽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보고 있을 옆지기가 인절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도 배가 고파 몇 점 먹을 생각입니다. 옆지기는 인절미를 반참 삼아 함께 밥을 먹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한 밥에다가 인절미를 반찬으로 삼아 늦은낮밥을 먹습니다. 옆지기는 인절미를 조금씩 끊어 잘근잘근 씹은 다음 아기한테 먹이고 당근 섞은 누런밥 또한 잘근잘근 씹어서 아기한테 먹입니다. 아기는 날름날름 잘 받아먹습니다. 저와 옆지기도 인절미 조금에다가 밥을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생협 인절미는 2600원이었는데, 생협 아닌 여느 떡집에서는 2000원쯤 받습니다. 적어도 600원은 비싸게 사먹는 셈이라 하겠습니다만, 허튼 쌀로 짓지 않은 떡이요, 농사지은 사람이며 다루어 파는 사람이며 고르게 도움이 되니까 600원을 더 썼다고 해서 아쉽지 않을 뿐더러 즐겁습니다. 게다가 세 식구가 2600원으로 한 끼니 배부를 수 있습니다.

 세 식구가 떡과 밥으로 늦은낮밥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남깁니다. 아기는 열 달째로 접어든다면서 어엿하게 걸상에 앉아 손바닥 장난을 치면서 밥술을 낼름낼름 받아먹는데, 아직은 이런 어린 날을 떠올릴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커서 제 어릴 적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새삼스럽다고 느낄 테지요. 밥자리 사진을 찍으면서 괜히 웃음이 납니다.


.. “이 집, 후르츠 샌드위치가 정말 맛있어. 여기저기 먹으러 다녀 본 내가 장담하는데, 아마 최고일 거야. 봐, 저 두 사람(나를 차고 딴 여자 만나는 놈하고 짝꿍)도 먹고 있잖아. 훗, 내가 알려준 가겐데.” “언니, 진정해.”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왔어, 언니. 일단 먹고.” “음, 먹기 전에, 후타바, 나,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이고 와도 될까?”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자기를 차고 다른 여자랑 재미있게 노는 녀석한테 아무 말 없이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다시 아무 말 없이 제자리로 돌아와서 후르츠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는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생은 여태까지 후르츠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거나 맛있다고 느껴 보지 않았지만, 바로 이때부터 자기도 맛있게 먹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  (75∼78쪽)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릴 적에는 밥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일이 없습니다. 다른 동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삿날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고, 밥먹을 때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으며, 골목에서 놀 때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때는 입학식과 졸업식과 ‘좋다는’ 데 놀러간 날입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여느 자리 여느 때 이야기는 그날그날 잊어버린 삶이 아니었을까 싶고, 여느 우리 삶은 굳이 돌아볼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된 분들로서는 아이와 함께 ‘좋다는’ 데로 데리고 가서 비싼 바깥밥을 사먹이면 ‘당신들로서도 뿌듯하고 아이들로서도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는데, 또 이렇게 생각할 아이도 많을 텐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 잘 버는 작은아버지가 제 국민학교 3학년 때(1984년) ‘뷔페’에 데려간다며 오늘은 아침부터(또는 낮밥부터) 굶고 있으라 했지만, 형과 저는 배가 너무 고파 라면 세 봉지 끓여 형이 두 봉지 제가 한 봉지 먹고 국물에 밥까지 잔뜩 말아 먹었어요(‘뷔페’가 어떤 곳인지 이날 처음 알았고, ‘뷔페’라는 이름도 이날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니 라면국물에 밥까지 말아 배 띵띵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그러고 저녁에 작은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는데 ‘라면에다가 밥까지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촌놈들!’ 하면서 웃었습니다. ‘뷔페집에 가면 얼마나 맛있는 게 많은데 그런 걸 먹어!’ 했고, 뷔페집에 가서도 ‘고기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우리 눈에는 고기보다는 여느 때에는 구경할 수 없던 바나나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눈이 왕방울처럼 동그래져서 바나나만 한 접시 가득 채워 여러 번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작은아버지는 또다시 혀를 끌끌 찼지만, 그런 혀끌끌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나나와 배와 능금만 다섯 접시쯤 먹었던가?

 생일 때라고 뭐 으리으리한 집을 바란 적이 없었고, 저는 크림 들어간 케익은 몸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한데다가, 잡채 한 접시와 약밥 몇 점이 있으면 좋았습니다. 혀가 짧아 매운 반찬이나 김치는 잘 삭이지 못하면서도, 늘 먹는 밥이면 다 좋았습니다.
 





 (2) 밥먹이기와


 1995년에 부모님 집을 나와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먹고살며 일한 뒤로는 언제나 밥을 했습니다. 딱히 밥을 잘하지 않았으면서도 밥당번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니 형들이 귀찮은 일을 시킨 셈일 텐데, 군대에 갔다 온 다음에는 호텔조리학과를 다니고 군 취사병으로 있었던 선배가 여러모로 가르쳐 주어 하나씩 익히면서 함께 밥당번을 맡았습니다. 신문사지국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던 때에는 한 해 동안 함께 살던 형들을 먹이려고 밥을 했고, 형들이 장가가며 따로 나가면서는 혼자 먹을 밥을 혼자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집에 냉장고를 들였습니다만, 냉장고가 있다고 해 보아야 냉장고에 넣어둘 만한 먹을거리란 딱히 없었습니다. 그 뒤 첫 혼인을 하고 나서도 밥하기는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혼인살이를 접고 충주 산골마을에서 일할 때에는 밥을 내처 얻어먹었는데, 오랜만에 남이 해 준 밥을 얻어먹어서 그런지 바늘방석에 앉아서 먹는다는 느낌이었고, 제가 먹고픈 대로 조금 모자라게 먹을 수 없었으니 속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먹여 주는 분으로서는 더 먹여 주고플는지 모르지만, 먹는 저로서는 덜 먹고 덜 쓰면서 몸을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고향마을로 돌아와 새 혼인을 살아가는 그러께부터는 다시 제 밥을 제가 합니다. 얻어먹기가 끝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를 노릇이었으며, 가깝든 멀든 누군가와 함께 먹을 밥을 마련하는 일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즐겁습니다. 똑같은 밥차림이라 하여도 날마다 새로운 밥차림이요 언제나 따뜻하게 새로 하는 밥입니다. 똑같이 밥상을 받아도 날마다 고맙게 새로 먹는 밥이요, 이 고마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 그것은 2월의 쌀쌀한 아침. 난방도 켜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아빠 모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빠, 엄마는?” “어, 아아, 잠깐 어디 갔어?. 아마 곧 돌아오겠지.” “거짓말.” ‘어느새 옆에 와 있던 언니가 중얼거렸습니다. 아빠 손 밑에 있는 종이가 이혼신고서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도 이제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역시 제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역시 우린 글렀습니다. 엄마한테 버림받은 구제불능 우리들.’ “풉, 아하하하하하, 왠지 한심해. 기껏 잡아 온 모시조개가 전부 모래투성이라니. 우린 정말 바보야.” ..  (52∼53, 61∼63쪽)


 그렇다고 제가 밥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못 됩니다. 그저 저 먹을 만큼 할 뿐이요, 제 밥그릇과 옆지기하고 아기 밥그릇까지는 맡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힘이 들어 드러누워 꼼짝을 못하고 있으면 옆지기가 쌀을 불리고 밥을 합니다. 집에서 지짐이도 하고, 가끔 과자도 굽습니다. 생협에서 토막닭을 사서 집에서 몇 번 튀겨서 먹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한다는 일은 내 배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잣거리 마실을 하며 하나둘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이 바탕이 되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는 동안 쌀이며 다른 먹을거리이며 어떻게 그곳까지 가고 나는 그곳에서 어떻게 장만하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됩니다. 돈 몇 푼 치르면 얼마든지 사다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닙니다. 돈이면 다 되는 밥차림이 아닙니다. 집에서 안 차리고 돈 주고 밖에서 사먹어도 그만인 삶은 아닙니다.

 먹는 즐거움만으로 꾸리는 삶은 아니되,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내 삶은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니 밥하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고, 밥하는 즐거움만큼 밥해 먹이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며, 내가 다루는 먹을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길러서 내 손까지 오는가를 헤아리고 싶습니다.


.. “난 말이죠, 옛날에 이거에 푹 빠져서 마구 먹어댔던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살이 쪄서 이러다간 남편이 바람 피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리 그인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죠 … 미안해요. 사실은 괜찮아요. 좀더 먹는다고 해도. 제대로 각오가 돼 있다면.” ..  (127∼129쪽)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에도 늘 그렇거든요. 저하고 옆지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이나 ‘새책방에서 잘 팔리는’ 책에는 눈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만한’ 책이냐 아니냐를 무엇보다 따집니다. ‘우리가 읽기 힘들어도 우리 아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올 사람한테 도움이 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우리 모자란 살림으로도 기쁘게 사 주어 글쓴이와 출판사한테 도움되도록 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이런 책읽음새를 고스란히 밥하기와 밥먹기에 맞춥니다. 빨래하기와 치우기에 맞춥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때에도 똑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비손을 할 때이든,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든, 아기를 씻길 때에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읽는 책이지,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차려서 먹는 밥이지, 우리 스스로 배만 부르면 그만으로 먹는 밥이 아닙니다.


.. “얘, 이게 뭐니?” “받았어.” “누구한테?” “스가이네 엄마.” “스가이? 친구니?” ‘아니야. 오늘 잠깐 얘기만 한 거야. 왕따당하는 애랑 엮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 어쩔 수 없으니까. 잊자. 잊어버리자.’ “자.” “아.” “먹을 거지? 네가 받아온 어야. 마멀레이드가 아주 맛있네.” (덥석. 오물오물오물) ‘쓰다. 이게 이런 맛이었나? 이게 이렇게 쓴맛이었나? 이렇게.’ (이튿날 학교 가는 길에서) “안녕, 스가이.” ‘우와, 하야시 패가 봤나? 노려보고 있을까? 우와, 우와, 너무 무서워. 하지만 난 그 마멀레이드를 맛있게 먹고 싶은걸. 제대로 맛있게 먹고 싶어.’ ..  (144∼148쪽)


 제 어린 날, 어머니가 늘 우리를 불러 밥상 차리기를 거들도록 하고, 수저를 놓게 하며, 반찬그릇을 놓고 치우게 했으며, 설거지라든지 여러 가지를 돕도록 한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귀찮은 심부름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얻어먹는, 또는 받아먹는 밥그릇 하나가 고마운 만큼, 얼마든지 자잘한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찌개를 끓이시는데 뭐 하나 빠져 있다 하면 얼른 저잣거리나 가게로 달려가 후다닥 사 왔고,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어머니가 저한테 칼자루를 쥐어 준 적이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으나, 어설픕니다만 제 칼질은 어머니 곁에서 빤히 지켜보던 칼질이요, 밥차림이요, 반찬 손질이요, 설거지요, 뒷마무리입니다.


 (3) 만화책 《여자의 식탁》 다섯째 이야기


 만화책 《여자의 식탁》 다섯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앞선 네 가지 이야기 못지않게 다섯째 이야기도 뭉클뭉클합니다. 아니, 앞선 네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끼면서 뭉클뭉클합니다. 어쩌면, 1권보다 2권이, 2권보다 3권이, 3권보다 4권이, 4권보다 5권이 한결 무르익은 그림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1권부터 5권까지 한결같이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조금 어리숙하면 어리숙한 대로 좋고, 아주 빈틈이 없으면 빈틈이 없는 대로 좋습니다.

 먹을거리 하나에 얽힌, 또는 먹을거리 하나마다 깃든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저 수수하게 풀어놓는 《여자의 식탁》은, 세상에 이름나지 않고 둘레에서 따로 알아주지 않는 수수한 사람들 삶자락마다 웃음과 눈물이 얼마나 넘치도록 많은가를 보여줍니다. 《서양골동 양과자점》 같은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아름답고 재미있고 뜻이 있을 텐데, 꼭 이처럼 뭔가 돋보이거나 남다르거나 톡톡 튀거나 멋스러워 보이지 않는 여느 먹을거리 하나라 하여도 ‘다 다르면서 모두 애틋하면서 언제나 가슴이 찡한 삶’임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 “응? 웬일이냐? 카나에. 이런 곳에.” “아, 아뇨, 그냥.” “조심해라. 얼마 전 이 부근에 치한이 나왔다더라.” “아, 그래요?” “훗, 하긴. 너라면 걱정할 거 없냐?” “아, 아니, 농담이야, 농담.” “핫,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웃지 마. 웃지 말아 줘. 제발. 웃지 마.’ “풉.” ..  (174∼176쪽)


 1권부터 4권까지 보는 동안, 그리고 이번에 나온 5권을 보는 내내, 나아가 앞으로 나올 6권부터 꾸준히 새로 그릴 작품까지, 그린이 시무라 시호코 님은 ‘아무것도 아닌 먹을거리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우리 이야기’라는 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여느 사람들 흔하고 너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사랑스럽고 눈물겹고 웃음짓는 재미난 이야기’라는 말을 건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린이가 여자요, 나오는이도 여자이니, 좀더 찬찬히 이 만화를 말하자면 “여자가 차린 밥상”이 아닌 “여자가 하루하루 꾸려 나가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열네 살 처남한테 ‘나중에 여자친구를 사귈 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한번 보라’고 건네 보기도 했는데, 온통 남자 목소리가 판을 치고 영화며 연속극이며 책이며 강의며 학문이며 정치며 오로지 남자 목소리가 넘실거리는 이 땅에서 우리 마음을 고즈넉하게 다스리면서 허물없이 어깨동무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고 싶다면, 만화책 《여자의 식탁》을 곰곰이 두어 번쯤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섹스는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난 날 위해서 했다. 욕망을 느껴 주길 바랐다.’ ..  (182∼184쪽)


 책을 한 번 덮고, 또 한 번 본 다음 덮고, 다시금 보고 나서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에도 “또다른 ‘여자의 식탁’으로 빚어낼 이야기는 늘 넘치고 있지만, ‘여자의 식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눈길이 없고 찾아보려는 손길이 없으며 귀기울여 들으려는 귓길이 없는 가운데, 머나먼 딴 나라로 넋과 얼을 팔아치우고 있다”고. 앞으로 어느 누가 되든, “내 어머니 밥상”과 “내 동생 밥상”과 “우리 아버지 밥상”과 “우리 할머니 밥상”과 “내 남편 밥상”과 “우리 오빠 밥상” 같은 이야기를 솔솔 풀어낼 수 있기를 꿈꾸고 싶다고. (4342.6.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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