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99 : 책잔치와 책방과 도서관

 지난 9월 5월과 6일 이틀에 걸쳐, 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에서는 ‘책잔치’가 조촐히 열렸습니다. 춘천 실레마을에는 조그마한 기차역인 ‘신남역’이 있는데, 이곳은 2004년부터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종로나 퇴계로, 또 박지성길 같은 곳이 있다지만, 버스역이나 기차역 들에 사람이름이 쓰이기로는 나라안에서 처음입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김유정역’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준 일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춘천 실레마을 조그마한 기차역 둘레에 ‘김유정문학마을’을 이루어 낸 여느 사람들 힘 또한 대단합니다. 아니,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목소리가 차근차근 모였기에 비로소 ‘김유정’ 하나로 문화와 삶과 역사와 행정이 한마음이 되었다 할 테지요. 춘천 실레마을 책잔치는 ‘물건과 원고와 식구 하나 남기지 않은’ 김유정이라는 옛사람을 기리는 넋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깜냥껏 우리 새터에서 우리 새삶과 새빛을 일구자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9월 마지막 주말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어김없이 책잔치가 마련됩니다. 지난 1950년대부터 헌책을 팔아온 책장수들 스스로 돈과 품과 땀과 마음을 모두어서 마련한 이 책잔치는 벌써 여섯 해째 이어오는데, 처음 마련한 해부터 지난해까지 아주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헌책방 대접은 푸대접조차 아닌 똥대접이나 막대접인 터라, 시청과 구청 공무원을 비롯해 기자들 눈길과 손길은 ‘그깟 헌책방이 뭐?’였고, 중앙 언론매체는 ‘서울도 아니고 부산인데 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부산에만 있고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관광명소 14곳’에 넣어 주시는(?) 한편, 시에서 여러모로 뒷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헌’책이 아닌 책을 되살리고 아끼던 책장수들 땀방울과 손품이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9월 18일부터 서울 홍익대 앞에서는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가 열립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온갖 영어를 뒤섞어 내놓아야 비로소 사람들이 몰려드는 책잔치마당이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우리들 생각힘을 좀더 뻗어 나가게 할 수 없는가 싶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책잔치 하나 서울에서도 벌이니 반가운 일인데, 이와 같은 책잔치 자리에 가 보면 돛데기시장처럼 ‘책 싸게 팔기’ 판만 잔뜩 벌여놓고 있어, 책마을에서 일한다는 분들 생각밭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나 싶어 서글픕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책을 읽은 우리들 매무새와 삶이 새로 태어나도록, 책 하나에 깃든 사랑을 고이 받아먹도록 손길을 내밀기는 그토록 어려운가 싶어 쓸쓸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면, 우리 나라 도서관이 책잔치에 함께 나서는 일은 드뭅니다. 출판사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책잔치에 책을 싸게 내놓아 ‘책을 제값대로 팔아야 하는’ 동네책방은 씨가 말라 버리게 합니다. 이제 교보와 영풍 아닌 책방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책이 죽지 않도록 책잔치를 연다’고 하나, 책이 죽은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작은 책방이 죽고’ 있을 뿐이며, 실레마을 책잔치를 함께 기획하고 마련한 춘천시립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나라안에 거의 없을 뿐입니다. (4342.9.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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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풋, 도서관 사서가 땡땡이치며 글을 썼구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 스콧 더글러스, 《쉿, 조용히!》



 오늘은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십 분 남짓 앞당겨 집에서 길을 나섭니다. 일곱 시 십 분이 될 무렵 가방을 메고 나오는데, 아까부터 깨어 있던 아기가 아빠한테 와서 안깁니다. 어쩌는 수 없이 아기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다가는 옆지기한테 넘겨주려고 하는데, 아기가 엄마 얼굴을 안 보고 홱 고개를 돌립니다. 아빠한테서 떨어지기 싫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아기가 자고 있을 때 길을 나서야 하는데, 그만 깨고 말아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조금 더 어르며 안고 있다가 살그머니 엄마한테 넘겨줍니다. 아직 졸음기가 있으나 뚱한 얼굴입니다. 아까 깨어났을 때에는 씻는방에서 빨래를 몇 점 했는데, 아기는 빨래하는 아빠 옆에 바싹 붙어 쭈그려앉은 채 말끄러미 비빔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빨래를 헹구려고 작은 대야에 담은 물에 제 조그마한 손을 담그더니 얼굴에 묻힙니다. 제 손으로 낯을 씻겠다는 소리입니다.

 “헤!” 하면서 입을 벌리고 혀를 살짝 내미는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아빠가 헹굼질을 끝낼 때까지 아기는 옆에서 낯을 씻는 시늉입니다. 아직 낯씻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밖에 없으니, 아빠가 큰손으로 목덜미와 겨드랑이까지 씻겨 줍니다. 아기는 얌전하게 가만히 있습니다. 이렇게 아빠가 씻겨 주던 하루하루를 아기는 오래도록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손길이 무엇이었다고 떠올릴 수 있을까요.

 엄마 품에 안겨 손을 흔드는 아기를 따라, 차츰 멀어지는 아빠도 왼손을 머리 위로 길게 뻗친 채 골목이 끝나는 데에까지 흔듭니다. 골목 안쪽으로 아빠가 사라진 다음에도 아기는 손을 흔들고 있었을까요. 다시 칭얼거렸을까요. 그러다가 엄마젖을 물고 밀린 잠을 마저 자려고 할까요.

 걸음을 재촉하며 걷다가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분꽃과 나팔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두 장 찍어 놓습니다. 아침 또는 새벽에 나팔꽃을 사진으로 담을 때면 언제나 ‘모닝글로리’라는 문구회사가 떠오릅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1988년)이었을 때부터 이 회사 공책을 썼는데, 이때에는 영어를 처음 배우던 때라 ‘모닝글로리’가 ‘나팔꽃’을 가리키는 줄을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아도 배우면서 재미있어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토박이말로 이름을 붙인 ‘바른손’팬시 이름도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직 철이 덜 들던 때라 ‘바른손’ 다음에 ‘팬시’라고 붙인 대목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으며, ‘모닝글로리’라는 곳이 왜 ‘나팔꽃’이라는 좋은 이름을 안 쓰려 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열 해쯤 지나 국제통화기금 일이 터질 무렵 ‘모닝글로리’는 회사이름이 영어로 되어 있어 나라안 회사가 아닌 나라밖 회사인 줄 사람들이 잘못 알고 몹시 힘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회사가 이름을 토박이말로 바꾸려나? 다른 회사는 하나같이 영어로 이름을 바꾸지만, 이 회사는 토박이말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나?’ 하고 꿈을 꾸었는데, 모닝글로니는 그예 모닝글로리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어로 지은 회사이름을 모조리 잊어버렸습니다.

 이른아침부터 학교 가는 발걸음이 바쁜 아이들을 돌아봅니다. 동인천역에 들어서니, 지하상가 철거에 반대하는 분들이 쳐 놓은 천막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한 분들이 한뎃잠을 자며 버티고 있으나, 시에서는 딱히 어떤 대책이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동인천역 건물에 깃들던 다른 가게는 모두 나간 지 오래이고, 동인천역 건물 바깥은 ‘공사중’을 알리는 커다란 그물을 몇 해 동안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표를 끊고 타는곳에 들어섭니다. 여느 날보다 십 분 남짓 일찍 집에서 나오니 전철을 탈 때에 앉을 자리가 납니다. 제가 타는 전철역은 인천 맨끝이라 그럴 테지만, 맨끝 역이라 해도 7시 32분 차를 타면 자리를 얻기 아주 힘듭니다. ‘앞으로는 오늘보다 5분 더 일찍 나와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겠구나 생각했으나, 제 옆에 앉는 양복쟁이 남자 어른은 팔짱을 낀 채 자려고 해 제 옆구리를 찌르고 아주머니 또한 팔짱을 끼고 몸을 부풀리며 앉느라 오늘도 여러모로 고달픈 출근길이 됩니다. 어느 누가 전철길에 고달프지 않으랴만, 스스로 고달프다고 느낄 때에는 다른 이도 고달플 터이니 다리 벌리기나 팔짱 끼며 ‘내 자리 더 넓히기’는 안 해 주면 좋으련만.
 





.. 지난달 우리는 폐관을 위한 행사를 기획했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거의 오십 년 동안 배우고, 읽고, 사랑하게 된 이 작은 건물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였다. 나이든 이용자들은 이 도서관 이름이 된 초대 사서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했고, 십대들은 자신들이 첫 걸음마를 겨우 뗄 무렵 동화 낭독을 들으러 왔던 기억을 공유했다. 누구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이야기를 하나쯤 품고 있었다. 그 한 달 내내 모든 기억들이 모였다. 누구도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들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모두가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더 나아지기 위한 폐관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그들만의 도서관이었다. 와서 배우고 성장한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지금 없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  (198쪽)


 신길역에서 갈아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립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사람들이 붐빕니다. 그리고, 이렇게 붐비는 사람 가운데 자동계단 아닌 돌계단을 타고 오르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한 사람쯤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서대문역쯤 되는 깊이라면 모두들 ‘걷지 않으려’고 합니다.

 서대문역이나 이대역이나 신금호역 같은 곳은 계단이 깊기도 깊다 하지만,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라면 이만한 계단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걸을 만합니다. 그리고, 이만큼은 걸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숱한 회사원과 학생들이 ‘하루 동안 걸을 일’이 참 드물거든요. 밥을 먹어 몸에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라지만, 정작 몸을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서로 어울리는 일이란 퍽 드물거든요. 운동이 모자라 헬스클럽을 다닌다든지 주말에 어디를 다닌다든지 하는 일도 나쁘지 않으나, 여느 때에 두 다리로 걷고 계단도 성큼성큼 디딜 수 있으면 그리 걱정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세탁기를 돌려도 그릇되지는 않으나, 웬만한 빨래는 손으로 빨고 걸레도 손으로 빨아서 무릎 꿇고 방다닥을 슥슥 문질러 훔치면 운동이 모자랄 일이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면 아이하고 신나게 놀고, 아이가 많이 자라 어린이나 젊은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면서 어깨동무하면서 나들이를 다니고 한다면, 이 또한 운동이 모자랄 까닭이 없습니다.


..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다.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든다. 그들이 없으면 신성함도 사라진다. 그저 책이 있는 건물에 불과하다 … 이삿짐 센터 사람들은 짐을 함부로 다뤘다. 도서관 안에는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막노동꾼들 같았다. 그들은 책을 다룰 줄 몰랐다. 그들은 책을 상자에 넣기 위해서 함부로 던지고 책에 낙서를 했다 … 그동안 본 적도 없는 백인들이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와서 관심 있는 척하고 있었다. 나는 시장을 바라봤다. 그의 입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정치 선전에 불과했다. 그는 한 번도 도서관에 온 적이 없었다. 물론 이 남자를 위해 도서관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는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다른 도시에서 사다가 읽을 것이다. 그는 이 도서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이 도시의 부촌에 있는 대저택에 살고 있다 ..  (210, 214쪽)


 오늘 아침은 여느 날보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섰지만, 새벽 여섯 시 사십 분에 깨어나는 바람에 밥을 못했습니다. 전철역 앞에서 김밥 파는 아주머니한테서 김밥 석 줄을 삽니다. 3900원입니다. 김밥을 가방에 넣습니다. 일하러 나온 길에 읽은 책도 가방에 넣습니다. 그제와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해서 즐겁게 읽은 책은 이제 마감합니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꾸밈없이 적어내려간 《쉿, 조용히!》라는 책인데, “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도서관 이야기”라기보다는, “도서관에서 일한 수수한 한 사람이 내 삶과 이웃 삶을 돌아본 발자취”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도서관 공무원으로 있으며 ‘용케 땡땡이 잘 치며 글도 재미나게 썼네?’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서관에서 일할 때에 일 안 하고 도서관 이야기를 글로 쓴’ 모습이 밉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책손이 뜸하며 조용할 때에는 도서관 사서라 하더라도 책에 앉은 먼지를 털거나 책만 읽기보다는, 이러한 짬에 스스로 내 삶 이야기를 적바림한다면 더없이 즐겁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을 열려고 하면 눈길이 열리고, 마음을 열려고 하면 따순 손길을 두루 뻗칠 수 있겠지요. 눈길을 열면서 우리 둘레 삶터를 한결 넉넉하게 바라보면서 글 한 줄로 담아낼 수 있고, 따순 손길을 두루 뻗치면서 좀더 사랑스러운 말 한 마디를 나눌 수 있겠지요. 우리 나라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공무원이 이야기책을 하나 쓴다면 어떤 모양새가 될까 궁금합니다. 아니, 우리 나라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공무원들은 땡땡이를 칠 때에 무엇을 할는지 궁금합니다. (4342.9.17.나무.ㅎㄲㅅㄱ)


 ┌ 《쉿, 조용히!》(스콧 더글러스 씀,박수연 옮김/부키,2009)
 └ 책값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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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 전민조 사진집
전민조 지음 / 평민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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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만들어 준 얼굴을 찍는 즐거움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4] 전민조, 《농부》


- 책이름 : 農夫
- 사진 : 전민조
- 펴낸곳 : 평민사 (2009.8.30.)
- 책값 : 4만 원


 (1)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얼굴


 엊저녁 몹시 고단하고 지친 가운데에도 빨래를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옆지기는 홀로 집에서 아기를 보면서 빨래를 한 점도 하지 못합니다. 아기 아빠는 돈을 벌려고 서울로 일을 나온다지만, 돈을 버는 일이라기보다 한글학회에서 우리 말과 글을 다루는 큰일 한 가지를 넘겨받느라 아기돌보기를 한동안 미룬 채 올 12월까지만 힘들게 살기로 했습니다. 살림돈이야 어떤 일을 하든 못 벌겠습니까. 우리 세 식구는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돈을 쓰며 꾸리는 삶보다, 우리한테 알맞춤하게만 돈을 벌어 쓸 만큼만 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손길이 있어도 굳이 사무실에 나가는 일을 안 한 까닭은, 더 많은 돈을 벌다가는 우리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는 한편(그러나 이렇게 해서 흐트러지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안 해도 흐트러지리라 봅니다), 이보다는 아이를 엄마와 아빠가 곁에서 함께 돌보는 일이 몹시 아름답고 즐겁고 거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아기가 돌을 맞이할 때까지는 엄마와 아빠가 아기와 하루 내내 함께 붙어 지내면서 돌보았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적어도 서너 해는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다른 식구들이 보기에는 ‘애 아빠가 한 해 동안 집에서 온갖 일 다하며 아기를 본 일’만 해도 대단하다고 여기겠지요. 이리하여, 남들한테는 ‘회사 다니며 일하기’로서는 짧다는 넉 달일 테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아기 아빠가 넉 달이나 인천에서 서울로 일을 나가는 삶이 몹시 길고 고단합니다. 아기 아빠가 집에서 집 안팎 살림을 모두 치러낼 때에도 고단함이 가득했는데, 집 바깥으로 나가면서 집 안팎 살림을 모두 짊어지려 하니 몸뚱이 하나로는 남아나지 않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밥하고 빨래하고 짐 꾸려서 지옥철에 시달리며 서울로 간 다음, 눈코 뜰 사이 없이 일을 하다가 도시락 까먹고 쉴 틈 없이 일하고 나서, 다시 지옥철에 들볶이며 인천으로 와서는, 아기하고 밤마실을 하고 보리술 한두 병 마신 뒤에, 그 사이 늘어난 빨래를 마저 하고 아기 씻기고 잠들라치면 두 팔과 어깨와 다리에는 아무런 힘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그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거의 하지 못합니다.

 아주 곯아떨어지듯 잠자리에 드는데,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서도 한밤에 옆지기가 “여보, 기저귀 좀 갈아 줘요.” 하고 부르는 가느다란 목소리를 알아채고 벌떡 일어납니다. 기저귀를 갑니다. 그러고 다시 곯아떨어집니다.

 오늘 새벽과 아침에도 지난 한 달과 똑같은 하루를 되풀이하며 지옥철에서 시달립니다. 제 왼쪽에는 양복쟁이 젊은 사내가 다리를 쩍 벌린 채 앉고, 제 오른쪽에는 이어폰 꽂고 다리 덜덜 떠는 젊은 사내가 또한 다리를 쯔억 벌린 채 앉습니다. 오늘은 이레 만에 자리를 겨우 얻어 앉아서 서울로 가는데, 겨우 한 번 앉아도 이 모양이니 괴롭습니다. 한참 꾹 참으며 가다가 부천역에 이르러, 두 팔을 뻗어 왼손으로는 왼쪽 자리 젊은 사내 허벅지를 꾹 잡고 오른손으로는 오른쪽 자리 젊은 사내 허벅지를 꽉 잡은 뒤 옆으로 쑤욱 밉니다. 두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미안해 하는 빛을 띱니다. 그나마 미안한 줄은 아나 보지? 두 사내가 들을 수 있도록 ‘에휴!’ 하고 크게 한숨을 쉽니다. 읽던 책을 마저 펼칩니다. 만화책 《빛의 바다》를 다 본 다음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이라고 하는 소노 아야코 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마침,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잘 맞지 않는 상대와는 무엇이든 무리할 필요가 없다. 어디라도 좋으니 의기 투합하는 회사를 찾아 그곳에서 일하면 그만이다(36쪽).”는 대목을 읽었지요. 다음으로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추하다고 느끼거나, 때로는 업신여기고 싶은 마음으로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38쪽).”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이 대목까지 이른 다음에, ‘이 볼썽사나운 녀석들한테 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데로 갈까?’ 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내가 이 자리를 비운다 한들 이 녀석들은 똑같이 이렇게 살 테니까.’ 하고 생각하며, 전철에서 ‘옆에 남자가 앉든 여자가 앉든 다리 쩍 벌리는 짓’이 얼마나 버르장머리없는 노릇인가를 일깨워 주되, 아주 부드럽게 일깨워 주자고 다짐했습니다.

 ‘허벅지 콱 집어서 밀기’를 하고 나서는 자리가 널널해졌습니다. 널널해진 자리를 즐기며 신길역에서 갈아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리기까지, 사람과 사람한테 다시금 들볶이다가 문득, ‘웬만한 한국사람은 어릴 때부터 너무 바쁜 쳇바퀴에 갇혀 치이고 밀리고 들볶이고 시달리면서 제 삶을 잃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멀쩡한 두 다리를 놓고 자동계단이나 승강기만 타려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사람들 스스로 이렇게 되어 가는 동안, 이 사람들한테서 어떤 다름(개성)을 찾을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검고 하얀 빛깔만 가득한 서양 차린옷을 갖춘 ‘남녀 회사원’ 매무새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면, 똑같은 삶자락과 똑같은 밥버릇과 똑같은 공짜신문과 똑같은 텔레비전과 똑같은 은행계좌와 똑같은 여행계획과 똑같은 아파트+자가용 꿈에 매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손전화 사진기’이든 ‘디에스엘알’이든 ‘똑딱이’든, 갖가지 사진기가 많이 팔리고 널리 쓰여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진이 쏟아지는 우리 나라인데,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진은 쏟아지나, 정작 ‘다름’을 느낄 사진은 없는 가운데, 한결같이 판에 박은 사진만 넘치는 까닭은 이런 도시내기 삶에서 비롯하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저 또한 도시내기라 할 테지만, 도시 한복판이 아닌 변두리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죽 살아왔고, 옆지기하고도 골목동네에서 살림을 이루었고 아기도 골목동네에서 낳았습니다. 아기를 기뻐해 주고 반겨 주는 사람은 하나같이 골목동네 이웃입니다. 저잣거리를 마실하든 골목을 거닐든, 골목동네 이웃은 우리 아기와 세 식구를 따숩게 맞이해 줍니다. 이러는 동안 제 사진은 저절로 ‘골목길을 내 삶 그대로 느낀 모습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자’고 생각합니다. 꼭 얼굴사진을 환하게 웃는 빛으로든 시무룩하게 가라앉은 빛으로든 담아야 ‘골목길 사람들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람 얼굴이나 몸뚱이 하나 깃들지 않아도 얼마든지 ‘골목길 사람들 사진’이 된다고 깨닫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도 사람 손길이 타지 않은 자리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고 느껴야 하며 껴안아야 하고 널리 나누어야 할 모습이란 다름아닌 사람 냄새요 사람 목소리요 사람 빛깔이니까요.
 

















 (2) 사람을 보는 얼굴과 본 그대로 담는 손길


 지난 9월 10일부터 오는 9월 23일까지, 서울 중구 저동2가에 자리한 〈갤러리 M〉(02-2277-2436)이라는 곳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삶터’를 담은 사진잔치가 열립니다. 사진을 찍은 이는 사진기자로 정년퇴직을 한 전민조 님입니다. 전민조 님은 이제까지 숱한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던 때에는 《얼굴》(평민사,1985)과 《서울스케치》(눈빛,1992)와 《이 한 장의 사진》(행림출판,1994)과 《가짜사진 트릭사진》(행림출판,1999)과 《그때 그 사진 한 장》(눈빛,2001)을 펴냈습니다. 사진기자로서 이렇게 사진책을 많이 낸 분은 더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기자 일을 마치고 ‘사진작가’로 달라진 다음부터는, 《아무도 오지 않는 섬》(눈빛,2005)을 비롯해 《서울》(눈빛,2006)과 《한국인의 초상》(눈빛,2007)과 《사진이야기》(눈빛,2007)와 《기자가 본 기자》(대가,2008)를 해마다 잇달아 펴냈습니다.

 저는 2005년 ‘섬’ 사진잔치 때부터 전민조 님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04년까지는 사진책으로만 전민조 님을 뵈었는데, 2006년과 2007년에도 사진잔치 자리에서 즐겁게 얼굴을 마주하며 사진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08년에는 우리 아기가 태어나던 무렵에 사진잔치를 하시는 바람에 미처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2009년 가을에는 조금 느긋해져서 저 혼자 사진잔치에 찾아갑니다. 전민조 님은 틀림없이 2010년에도 새로운 사진감으로 사진잔치를 벌이실 테니, 그때가 되면 우리 세 식구는 서로 손을 맞잡고 신나게 사진잔치 마실을 갈 수 있겠지요.


.. 농부와 소는 비에 젖지 않게 온통 비닐로 칭칭 감겨 있었다. 밀짚모자와 헤진 검은 잠바를 비닐로 덮고 소 잔등에까지 감기에 걸리지 않게 찢어진 비료 비닐이 감겨져 있었다. ‘자연의 농부’를 드디어 발견한 것 같았다.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논바닥에 고인 흙탕물을 쟁기가 거침없이 헤쳐 나갔다. 몇 번 무거운 쟁기질에 소는 이내 거친 숨을 내뿜고 농부의 발걸음도 비틀거렸다. 쟁기와 소 걸음이 철퍼덕거릴 때마다 흙탕물이 렌즈에까지 튕겨 왔다. 오직 퍼붓는 비에 카메라에 젖으면 낭패다 싶어 한 장을 찍으면 얼른 카메라를 재킷 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찍는 등, 앉아 찍고 서서 찍고, 움직이는 농부를 쫓아 셔터를 누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농부는 흔한 쟁기질인데 촬영자가 비를 흠뻑 맞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우스운지, 잠시 쟁기질을 멈추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소” 하며 빙그레 웃었다 ..  (찍은이 말/전민조)


 9월 10일 저녁 여섯 시, 〈갤러리 M〉에는 숱한 사진작가와 사진학과 교수가 모여들었습니다. 2005년부터 이어진 다섯째 사진잔치를 기리는 발길이 웅성웅성 모여들었습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에는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게 사진잔치를 했던 일을 떠올리면 사뭇 다릅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사진을 아주 좋아하는 몇몇 사람’만 알음알이로 찾아와서 당신한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말이에요, 이렇게 늘 사진기를 갖고 다녀야 해요. 자, 보세요, 저도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깨에 사진기를 메고 있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해요. 언제든지 사진기가 내 몸 일부가 되어 붙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사진기를 늘 갖고 다니려고 이렇게 조그마한 녀석을 하나 들고 다니지요.” 하는 말씀을 알뜰히 들었습니다. 사진밭에서 이름 크게 나거나 이름 널리 날리는 이들이 찾아와 당신을 기리거나 기뻐해 주지 않았으나, 이 나라 곳곳에서 조용히 사진을 즐기는 낮은자리 사람들이 눈빛을 말똥말똥 빛내면서 ‘사진하는 매무새’를 깊이 새겨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잡은 사진 주제에 따라서 사진기를 다르게 가지고 있어야 해요. 저는 그때그때 스냅으로 사람들 삶을 찍기 때문에 이만한 작은 사진기 하나가 가장 좋아요.”

 2009년 9월 10일 자리는 전민조 님 당신 삶과 생각을 더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이 자리에서까지 당신 삶과 생각을 듣지 않아도 됩니다. 지난 다섯 해 사이에 여러 가지 사진책을 펴낸 전민조 님이기 때문에, 이 사진책에 당신 삶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냈으니 책을 스스로 펼쳐 읽으면 되거든요. 꼭 ‘입’으로 이거는 이렇고 저거는 저렇다고 말을 해 주어야만 ‘전민조 사진밭은 이러하다!’ 하고 알아챌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 두 눈으로 몸소 사진을 들여다보면 시나브로 ‘전민조 사진바탕은 이렇군요!’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전민조 님은 당신 사진잔치에서 당신 말씀을 아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한테 큰 어르신이라며 이명동 님한테 한 말씀을 여쭙니다. 그러고 사진작가 윤주영 님한테도 한 말씀을 여쭈지만 윤주영 님은 손사래를 칩니다. 강운구 님은 멀찌감치 물러서서 뒷짐을 지고 구경하다가 〈갤러리 M〉 관장한테 꾸지람 한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전민조 선생은 사진 아래쪽에 자기가 사진을 찍은 날짜와 찍은 곳을 손으로 적어 놓는데, 액자에 그 글씨가 가려진 데가 많으면 어떡해?”

 이명동 님 말씀이 끝난 다음에는, 이번 사진잔치 “농부”가 있도록 해 준, 전북 남원 대산면 풍촌리 농사꾼 모씨 할아버지네 아들들을 앞으로 모시고 한 말씀을 여쭙니다. 세 형제 모공식, 모정식, 모중식 님은 방명록에도 나란히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 세 형제는 아버지 뒤를 이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사진잔치에는 따로 안 걸렸지만, 사진잔치와 함께 나온 사진책 《농부》에는 ‘농사꾼 모씨 할아버지 아들 부부’가 그곳에서 그대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자취가 하나하나 담겨 있습니다.


.. 나는 농부의 얼굴을 촬영할 때까지는 어떤 혹독한 대가도 달게 받으며 몸으로 찍는 놀랍고 뜨겁고 특별한 사진들을 항상 으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농부의 얼굴을 찍은 시간부터는 그런 특별한 사진들이 얼마나 그릇된 생각인가를 알게 되었다. 오직 자연에만 몸을 맡기고 웃는 농부라는 직업에 무한한 존엄성을 느꼈다. 그러면서 힘든 일도 힘든 줄도 모르고 걸어가는 농부라는 직업은 수많은 직업 중에 최고의 직업이며 군자 같은 직업으로 여겨졌으며, 유순한 소 역시 인간과 운명을 함께하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 최고의 군자 같은 동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  (찍은이 말)


 무슨무슨 교수님과 작가님 들이 한창 막걸리와 떡과 고기를 즐기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모두들 사진밭 큰 어르신들인데 어깨나 손에 사진기를 쥐거나 안은 분은 거의 안 보입니다. 한결같이 양복을 차려입은 가운데, 저와 몇몇 사람은 어깨에 사진기를 메고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었던 이들도 떡과 고기와 술을 맛보기에 바쁘지만, 저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사람물결이 빠져나가는 흐름’을 지켜봅니다. 해가 아직 하늘에 걸려 있을 때 밖으로 나와 사진 한 장 찍고, 뉘엿뉘엿 기울 때 다시 한 장 찍으며, 아주 저문 뒤에 또 한 장 찍습니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사진틀을 등이나 팔꿈치나 손으로 치거나 긁거나 미는 모습’을 쓰디쓰게 바라봅니다. 조그맣고 조촐한 잔치마당인데, 너무 많은 손님이 찾아왔구나 싶은 한편, 즐거움을 나누는 도르리 같다면 흐뭇하겠다 싶으면서도, 이래서는 사진을 사진대로 바라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발디딜 틈이 없던 전시장에 사람이 하나둘 빠져나갑니다. 저마다 이런 약속 저런 일정이 있어 떠납니다. 조금씩 넓어지는 전시장을 여러 차례 되짚으며 사진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봅니다. 북적거릴 때에 보는 사진하고 조용할 때에 보는 사진이 퍽 다르구나 싶습니다. 어지러이 어수선할 때에는 훌렁훌렁 넘겨야 했던 사진이나, ‘거치적거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는 몇 분 동안 사진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습니다.

 스무 점 안팎 걸린 사진을 몇 분씩 차근차근 돌아보는 사이, 이제는 전민조 님 식구와 가까운 벗을 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북새통은 사라지고 오붓한 이야기마당이 펼쳐집니다. 전시장에 들어올 때 32000원에 사들인 책(전시장에서는 20% 에누리해서 책을 팝니다)에도 실린 사진이라 하지만, 작은 크기로 볼 때하고 2미터짜리 큰 사진을 볼 때에는 같지 않습니다. 가장 크게 걸린 사진 앞에서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고개를 돌리면서 들여다보다가, ‘소한테 비닐을 씌워 비오는 날 쟁기질을 하는 농사꾼’ 뒤로 이 농사꾼하고 똑같이 ‘소한테 비닐 씌우고 스스로도 비닐 뒤집어쓰고 쟁기질하는 다른 농사꾼’이 여럿 보입니다. ‘아, 그렇구나!’

 다른 사진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봅니다. 이날 비를 맞으며 쟁기질을 하는 농사꾼은, 모씨 할아버지만이 아니라 꽤 많습니다. 그러나 전민조 님은 다른 농사꾼이 아닌 ‘모씨 할아버지와 일소’ 하나만을 알아보았고, 이 한 곳에서 한 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필름 석 통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다 찍을 까닭은 없었겠지요. 농사꾼은 어디에나 흔히(?) 있었겠지요. 지리산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있고 경기도에도 있으며 경상도와 충청도에도 일소를 부리며 쟁기질하는 농사꾼은 널려(?) 있었겠지요. 사진기자만이 아니라 사진작가도 많고, 이 나라 곳곳에 사진모임이 수두룩하게 있는 가운데 사진전람회나 사진공모전도 수없이 있었겠지요.

 아까, 사람들 북적이던 때, 어느 신문사 기자가 “그림 좋게 거기 사진 주인공들하고 나란히 서서 사진 설명 좀 해 줘요.” 하고 부탁할 때 전민조 님은 “뭐, 다 아는 이야기인데 또 설명을 해?” 했고, 사진기자는 다시 “그래야 좋은 사진이 나오지요.” 했습니다. 전민조 님은 허허 웃다가 “이렇게 찍는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서 주셔야겠네요.” 하고 농사꾼 손님을 사진 앞에 세웁니다. 사진기자가 ‘서 달라는 대로 서 주며’ 이야기를 다시 들려줍니다. 늦게 온 사진기자는 기사에 써야 한다면서 ‘그림 만들기’를 바라는 판인데, 사진기자로 온삶을 보내다 정년퇴직한 전민조 님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자연이 만들어 준 얼굴을 찍는 즐거움, 저는 이것 때문에 농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이게 제 사진이 걷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님이 다 돌아가고 난 뒤에, “나도 기자였지만, 기자들이 말야, 약속을 해도 약속을 안 지켜. 전시회 소식을 써 준다고 하면서도 다 잊어버리고 안 쓰지.” 하고 넌지시 한 마디를 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빙그레 웃다가, 전민조 님한테 부탁 한 말씀을 드립니다. “전민조 선생님, 이제는 인천에서도 마흔 해 만에 사진잔치를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어릴 적에 살던 고향으로 사진이 한 번쯤 돌아올 때가 된 듯해요.”

 일본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어린 날을 보낸 다음 인천으로 와서 동산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나중에 서울로 살림집을 옮기기 앞서까지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던 전민조 님은, 첫 번째 사진잔치를 1967년에 인천에서 열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1985년, 2001년 모두 서울에서 사진잔치를 했고, 당신 성장기를 보낸 고향에서는 당신 사진을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천이라는 터전에서 문화와 예술을 하든, 교육과 행정을 하든, 정치와 과학을 하든, ‘자연이 스스로 빚어내는 얼굴’ 그대로 살아가는 분이 드문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이 스스로 빚어내는 얼굴을 애틋하게 부둥켜안거나 사랑스레 껴안는 몸짓이 너무 적은 탓이 아니랴 싶습니다.

 삶 한자락을 고이 담는 전민조 님 사진은, 자연을 찍는 즐거움뿐 아니라 자연을 나누는 사랑스러움을 보여주는 한 방울 눈물입니다. (4342.9.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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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리뷰'에 안 걸치는 까닭은, '리뷰'에는 정식으로 다시 쓸 생각이기 때문이다) 

 





 전철길에서 눈물 흘리며 책읽기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 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엄마가 사랑해》(숲속여우비) 



 열석 달을 넘기는 아기한테는 엄마가 나누어 주는 사랑에다가 아빠가 나누어 주는 사랑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이 두 가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좋겠지요. 우리 삶터는 어느 결에 조각조각 쪼개지면서 어버이 따로 아이들 따로가 되어 버리고 있는데,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당신들 하고픈 일과 놀이를 즐기고 싶습니다. 아이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바라는 일과 놀이를 붙잡고 싶습니다. 함께 모이기 어렵고, 같이 손 잡기 힘듭니다. 외려 낯과 이름 선 사람들하고 모여서 일을 하거나 놀이를 즐깁니다.

 어젯밤 자정이 다 되어 가까스로 집에 돌아온 애 아빠는 아이가 깨어 있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기저귀 빨래만 해 놓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부랴부랴 일어나 씻고 가방을 꾸리는데, 어젯밤 미처 해 놓지 못한 빨래는 건드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둡니다. 이 빨래는 오늘 늦게 집으로 돌아가서 또다시 고단한 몸으로 해야겠지요. 마땅한 노릇일 텐데, 애 아빠는 아침에도 ‘깨어 있는 아이 얼굴’은 보지 못하는 채 길을 나섭니다. 그나마 일터에 아홉 시까지 나가도록 맞추어 가장 늦게 집에서 나오려고 하니 일곱 시 이십사 분에 걸음을 재촉합니다.

 애 엄마는 홀로 하루 내내 아이하고 씨름을 하다가 느즈막하게 아빠를 마주하는데, 서로서로 다른 까닭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눈만 겨우 마주친 다음, 아빠가 먼저 쓰러지듯 잠들고,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애 아빠가 서울로 일을 나온 지 한 달이 되는데, 이에 앞서는 엄마 아빠가 아이하고 언제나 하루 내내 있었지만, 언제 그렇게 지냈느냐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아빠는 바깥으로만 맴돌게 되고 엄마는 집에서만 머물게 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동네 마실을 즐기지 못해, 한참 신나게 걸어다니며 세상을 느끼고 싶은데 제대로 세상을 느낄 길이 없습니다.

 밀리고 눌리고 밟히는 전철길입니다. 자리를 얻지 못하고 서서 갑니다. 자리에 앉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전철칸 하나에 쉰 사람쯤만 앉습니다. 여기에 백을 곱한 오백 사람 남짓은 서로 오징어떡이 되면서 낑기고 찡긴 채 서울로 가야 합니다. 맨 끄트머리 전철역에서 타더라도 자리에 못 앉는 사람이 많습니다. 밀리고 차이고 얻어맞는 사람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골을 내고 짜증을 부리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자리에 앉은 이 가운데에는 한둘쯤 책이나 신문을 들고, 거의 모두 모자란 잠을 이루려 눈을 붙입니다. 새벽에 길 나서고 밤에야 돌아오는데, 일터에서 낮잠이라도 삼십 분 달게 자기 어려운 이들 ‘인천 떨거지(또는 수원 떨거지)’는 아침저녁(또는 새벽밤)으로 스스로 사람 아닌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저마다 똑같은 노릇이요 똑같은 괴로움과 고달픔이라지만 ‘날마다 이런 골부림과 짜증내기를 저 혼자만 해야 하는’ 듯 느끼기 일쑤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한테 치이고 밀리다 보니, 서로를 나와 똑같이 아름답고 고운 목숨임을 잊기 일쑤입니다. 서로서로 똑같이 힘들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 우리는 밖에 나가면 늘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구멍가게에서 잡지를 사려고 했을 때, 가게 주인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이 일에 보답을 해 주실 거예요.” 우리가 소원하던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 아이는 참 운이 좋군요. 나중에 아이가 당신들에게 꼭 고맙다고 할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이런 유의 위로를 들어야 했다 ..  (83쪽)


 왼쪽오른쪽 앞뒤에서 밀어대는 사람들한테 밀리고 휩쓸리며 전철칸 창문 옆 벽에 몸이 쿵 하고 찧습니다. 저를 민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한테 밀렸을 테고, 그 사람은 또 그 옆에 있는 사람한테 밀렸겠지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이 밀친 사람’한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모두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이 썅!’ 한 마디뿐(그러면 제 몸이 쿵 박은 전철 벽은 저한테 ‘아이 썅!’ 할는지?).

 밀리고 밟히고 팔꿈치로 얻어맞으면서 《엄마가 사랑해》(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씀,유혜자 옮김/숲속여우비,2009)라는 책을 붙잡습니다. 1988년에 처음 우리 말로 나온 책이 2009년에 스물한 해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엄마 아빠가 내다 버려서 외톨이가 된 아이를 스위스에 사는 글쓴이(도리스 클링엔베르그)가 열여덟 달을 기다린 끝에 맞아들인 이야기(1975년에)가 낱낱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예전에 한 번 읽었으나, 새로운 판으로 읽으면서도 가슴이 뻑적지근합니다. 책을 읽다 읽다 또 읽다가 눈물이 핑 도는데, 제 옆에서 저를 팔꿈치 뾰족한 데로 쑤시듯 밀치는 아가씨 때문에 아파서 핑 도는 눈물이 아닙니다. 이렇게 오징어떡이 되는 가운데에서도 가슴을 적시는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놀랍고, 이렇게 책을 붙잡는 동안 허리가 아프고 옆구리가 결려도 고단하다고 느끼지 않으니 기쁩니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말없이 그냥 서 있었다. 결국 아이의 손짓 발짓으로 우리는 아이가 그것들이 모두 자기 것이냐고 묻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이가 옷장에서 옷을 신나게 끌어내는 모습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웅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것이나 꺼내어 걸쳐입었다 ..  (38쪽)


 덜컹거리고 흔들리고 미어터지는 가운데 책을 읽자고 선뜻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고단한 전철길에서 겨우 자리 하나 얻었다면 몇 분이라도 눈을 붙이며 몸을 쉬고 싶다는 사람들 마음을 잡아끌기 어렵습니다. 저 또한 몹시 고단하면 책을 덮고 잠을 자니까요.

 언제나 고단함이 가득가득 쌓인 사람들한테 무슨 책을 쥐어 줄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스포츠와 연예 기사 가득한 공짜신문이 아니고는, 또 주식시세와 돈벌이 소식 담긴 경제신문이 아니고는, 어떤 읽을거리를 전철길 이웃사람한테 건넬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서대문역에서 내립니다. 밖으로 나오니 길에서 담배 피우며 걷는 양복쟁이가 둘 보입니다. 선 채로 담배를 피우든지, 걸을 때에는 담배를 끄든지, 저 혼자만 좋다고 담배를 피워서 쓰겠느냐 싶으나, 저이한테는 이렇게라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머리와 마음에 가득한 골남과 짜증남을 털어내지 못할 테지요. 걸음을 재게 놀려 담배쟁이를 앞지르고 책을 펼칩니다. 일터에 닿기 앞서 몇 줄을 더 읽습니다. “내가 웅에게 ‘귀여운 오리’라는 노래를 열 번쯤 되풀이해서 불러 주었다. 웅은 환하게 웃으면서 내 노래를 열심히 들었다. 기름진 땅에 수많은 씨앗이 떨어지고 있다.(96쪽)” (4342.9.10.나무.ㅎㄲㅅㄱ)


 ┌ 《엄마가 사랑해》(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씀,유혜자 옮김/숲속여우비,2009)
 └ 책값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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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8 : 책에 담는 땀방울, 책을 읽는 눈물방울

 얼결에 한글학회로 일을 나온 지 보름이 넘었습니다. 그 좋아하는 골목마실 헌책방마실 못하며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에서 시달립니다. 그래도, 이 지옥철에서 비지땀 뻘뻘 흘리며, 그동안 못 읽고 미루어 둔 책을 하나하나 읽어치웁니다. 뒤늦게 마지막 쪽을 덮은 책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장만하던 몇 해 앞선 그때 다 읽었으면 내 삶과 생각과 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좋은 책을 일찌감치 읽었으니, 저는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또는, 이제서야 읽게 되었기에, 지난날에는 줄거리만 훑고 덮어놓았을 책을 곰곰이 되씹으며 새삼스레 붙잡을 수 있을까요.

 예나 이제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옥철에서도 책을 붙잡습니다.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느긋하고 시원하고 따뜻한 곳에서도 안 읽습니다. 전철역 나들목에서 나누어 주는 공짜 신문을 조금 들여다보다가 멀뚱멀뚱 선 채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저로서는 출퇴근길 세 시간이 몹시 아까워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발버둥이지만, 거의 모든 분들한테 출퇴근길은 지루하고 지겹고 고단해서 얼른 벗어나기를 바라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 나온 소식과 인터넷책방 맛보기로는 퍽 눈에 뜨이던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를 아침길에 1/3쯤 읽습니다. 읽다가 자꾸 짜증이 나지만 사람들한테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면서 가방에서 다른 책을 꺼내지 못합니다. 시베리아에 붙들린 서글픈 사람들 눈물방울을 담아내려고 한 책이라 하는데, 눈물방울은 그닥 보이지 않고 꽤 지루한 근현대 역사 이야기가 잔뜩 늘어집니다. 다른 책에 얼마든지 나와 있는 이야기를 굳이 덧붙여 실어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작 해야 할 말이 이런 자질구레한 군말 때문에 묻히지 않느냐 싶어 안타깝습니다.

 저녁길에 어린이책 《바람과 나무의 노래》를 읽다가 코끝이 찡합니다. 눈물이 어립니다. 아침길에 느낀 아쉬움을 갚습니다.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을 풀어 줍니다. 밀리고 치이고 밟히는 가운데 눈물바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한동안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꽤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데, 글줄 하나마다 글쓴이 온힘과 넋이 담겨 있다고 느낍니다. “‘곧장 되돌아가!’ 나는 자신에게 명령했어요. 하지만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말이죠. 상쾌한 바람이 불고, 도라지꽃이 저 멀리까지 한없이 피어 있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그냥 돌아가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요.(9∼10쪽)” 지옥처럼 바뀌고 마는 전철길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어서 벗어나고프다고만 생각하고, 나와 살을 비벼야 하고 코앞에 얼굴을 부벼야 하는 사람을 이웃으로 느끼기 어려울까요. 모든 회사원이 지옥철이 아닌 하늘나라 꽃길이나 구름길을 거닐면서 일터를 오갈 수 있다면, 모든 학생이 새벽길이나 밤길이 아닌 햇볕 따사롭고 바람 시원하며 싱그러운 나들이길을 거닐며 학교를 오갈 수 있다면, 우리 삶터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까 하고 생각에 젖습니다. 인천 서쪽 끄트머리에 가까워 오니 전철 손님이 많이 줄고, 다시 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4342.9.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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