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99 : 책잔치와 책방과 도서관

 지난 9월 5월과 6일 이틀에 걸쳐, 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에서는 ‘책잔치’가 조촐히 열렸습니다. 춘천 실레마을에는 조그마한 기차역인 ‘신남역’이 있는데, 이곳은 2004년부터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종로나 퇴계로, 또 박지성길 같은 곳이 있다지만, 버스역이나 기차역 들에 사람이름이 쓰이기로는 나라안에서 처음입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김유정역’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준 일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춘천 실레마을 조그마한 기차역 둘레에 ‘김유정문학마을’을 이루어 낸 여느 사람들 힘 또한 대단합니다. 아니,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목소리가 차근차근 모였기에 비로소 ‘김유정’ 하나로 문화와 삶과 역사와 행정이 한마음이 되었다 할 테지요. 춘천 실레마을 책잔치는 ‘물건과 원고와 식구 하나 남기지 않은’ 김유정이라는 옛사람을 기리는 넋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깜냥껏 우리 새터에서 우리 새삶과 새빛을 일구자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9월 마지막 주말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어김없이 책잔치가 마련됩니다. 지난 1950년대부터 헌책을 팔아온 책장수들 스스로 돈과 품과 땀과 마음을 모두어서 마련한 이 책잔치는 벌써 여섯 해째 이어오는데, 처음 마련한 해부터 지난해까지 아주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헌책방 대접은 푸대접조차 아닌 똥대접이나 막대접인 터라, 시청과 구청 공무원을 비롯해 기자들 눈길과 손길은 ‘그깟 헌책방이 뭐?’였고, 중앙 언론매체는 ‘서울도 아니고 부산인데 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부산에만 있고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관광명소 14곳’에 넣어 주시는(?) 한편, 시에서 여러모로 뒷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헌’책이 아닌 책을 되살리고 아끼던 책장수들 땀방울과 손품이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9월 18일부터 서울 홍익대 앞에서는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가 열립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온갖 영어를 뒤섞어 내놓아야 비로소 사람들이 몰려드는 책잔치마당이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우리들 생각힘을 좀더 뻗어 나가게 할 수 없는가 싶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책잔치 하나 서울에서도 벌이니 반가운 일인데, 이와 같은 책잔치 자리에 가 보면 돛데기시장처럼 ‘책 싸게 팔기’ 판만 잔뜩 벌여놓고 있어, 책마을에서 일한다는 분들 생각밭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나 싶어 서글픕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책을 읽은 우리들 매무새와 삶이 새로 태어나도록, 책 하나에 깃든 사랑을 고이 받아먹도록 손길을 내밀기는 그토록 어려운가 싶어 쓸쓸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면, 우리 나라 도서관이 책잔치에 함께 나서는 일은 드뭅니다. 출판사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책잔치에 책을 싸게 내놓아 ‘책을 제값대로 팔아야 하는’ 동네책방은 씨가 말라 버리게 합니다. 이제 교보와 영풍 아닌 책방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책이 죽지 않도록 책잔치를 연다’고 하나, 책이 죽은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작은 책방이 죽고’ 있을 뿐이며, 실레마을 책잔치를 함께 기획하고 마련한 춘천시립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나라안에 거의 없을 뿐입니다. (4342.9.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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