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
안미선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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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31 ― 처녀 총각일 때에 ‘애 엄마 삶’을 읽어야
 : 안미선,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 책이름 :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 글 : 안미선
- 그림 : 장차현실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09.3.14.)
- 책값 : 12000원



 (1) 여자와 남자 모두 살림꾼이 되어야


 방과 마루를 뻔질나게 오가면서 온 서랍을 다 뒤지고 갖은 물건을 모조리 뒤집어엎으며 쏟아놓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덥석 안습니다. 아기는 까르르 웃고 눈을 빛냅니다. 왜 이제까지 나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두었느냐는 눈빛입니다. 아기를 왼팔과 오른팔로 번갈아 안으며 이리 어르고 저리 어르니 또다시 까르르 웃습니다. 엄마가 뒷간에 가도 울고불고 하는 아기는 엄마이든 아빠이든 저하고 하루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고 보챕니다. 아니, 아기로서 살아남자면 마땅한 몸부림이라 할 테고, 아기로서는 이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혼자놀기’를 잘한다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동무나 이웃이 없으면 입에 거미줄을 칩니다. 입에 거미줄을 치면 입에서 차츰 구린 냄새가 납니다. 가끔이나마 입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어야 거미줄이 걷히고 냄새가 사라집니다. 사람이기에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사람 내음을 가꾸고 사람다움을 일굽니다. 그러니까, 어른들도 혼자서는 심심하고 힘든 삶입니다. 아이들이라면 혼자서 훨씬 심심할 테며 더욱 힘들 테지요. 그러니까, 어버이 된 몸으로서 아이들을 홀로 집에 둘 수 없으며, 아기라 한다면 더더욱 함께 지내야 합니다.

 노자키 후미코 님이 그린 만화 《신이 주신 선물》(서울문화사) 7권(2001)을 보면, “걔네한테 친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겠지? 걔네들한텐 아빠가 꼭 필요해. 피가 섞이고 안 섞이곤 중요하지 않아. 부부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애들은 문제 없어. 부자 간에 사소한 싸움이 있더라도 말야(17∼18쪽).”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옵니다. 엄마 홀로 키우던 아이들을 보고 하는 말인데, 이 아이들한테 아빠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거꾸로 놓고 보아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빠 홀로 키우는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 혼자서 낳거나 아빠 홀로 낳을 수 없으니까요. 아이는 엄마 혼자서 돌보거나 아빠 홀로 돌볼 수 없으니까요. 함께 돌보는 아이입니다. 서로 힘을 모아 키우는 아이입니다. 엄마가 도맡는다든지, 엄마가 더 오래 돌봐야 한다든지 한다면 서로서로 고단합니다. 아이한테도 좋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 사랑과 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터전을 돌아볼 때에, 오늘날 우리 아이들 가운데 엄마 사랑과 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는 아이들을 만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으레 아빠 된 쪽이 회사로 일하러 나가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흔히 엄마 된 쪽이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 아이하고 씨름하면서 갖은 집안일을 합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집안일과 집살림과 아이키우기하고 동떨어집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이웃과 사회와 마을 이야기를 비롯한 바깥일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한편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고, 엄마는 엄마대로 한쪽만 들여다보는 바보가 됩니다. 엄마와 아빠가 다 함께 집안일과 집밖일을 하면서 아이키우기를 손잡고 하지 않는다면, 두 어버이는 모두 외곬 눈길로 치닫는 바보로 머물고야 맙니다.

 제 둘레 남자 동무들은 하나같이 집밖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아이는 저녁이나 밤, 또는 주말에나 얼굴을 겨우 본다고 할 만합니다. 제 둘레 여자 동무들은 한결같이 집안에서 아이하고 복닦이면서 세상일은 거의 젬병으로 지낸다 할 만합니다. 때때로 보육원에 아기를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놓으며 바깥일을 한다지만, 남자들이 바깥일을 하는 모습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경자 님이 쓴 소설을 모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작가정신,1992)를 읽으면 첫 작품부터 사람들 뒷통수를 퍽 하고 후려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날 남편은 밖에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느닷없이, 남성은 인류의 절반이다, 그러니까 하늘의 절반도 남성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너무도 뚱딴지 같은 소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했더니, 우리 아이에 대한 친권행사를 동등하게 하자는 겁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씨를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의 합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순간, 저는 불같이 화가 뻗쳤습니다. 아니 그래, 그까짓 정자 한 개와 난자, 자궁, 진통, 수유 등등을 어떻게 견줄 수 있다는 겁니까(17쪽)!” 〈옛날 옛날 한옛날에〉라는 이름이 붙은 짧은소설 한 토막입니다. 오늘 우리 삶터와 견주면 아주 거꾸로라 할 이야기인데, 참말로 오늘 우리 삶터에서 남자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놓고 읽힐 글이라 하겠습니다. 1990년대 첫무렵에만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우리 터전이 아니라, 2010년이 되고 2020년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우리 터전이라 하겠습니다.

 옆지기 부모님 댁에 찾아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서 장모님이 즐기는 연속극을 함께 보고 있자면,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돈까지 많은 여성’들이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며느리로 들어가 한다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르고 밥하기입니다. 아이 낳아 하루 내내 애보기입니다. 부잣집 며느리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집을 도맡기면 되련만, 부잣집 며느리 가운데 집일을 도맡기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속극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은 하나같이 바깥일만 하지 집일은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일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니, 젊은 남자나 여자는 한결같이 집일을 모르며 알려 하지 않고 배우지 않을 뿐더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은 나이든 여자뿐입니다. 나이든 남자는 ‘아주 마땅하다는 듯이’ ‘나이를 먹었으니 집일을 굳이 더 안 배우’고, ‘나이를 먹었기에 아내가 집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1990년대 연속극이든 2000년대 연속극이든 2010년대 연속극이든 배우와 소재만 살짝 다르지 줄거리와 짜임새와 이야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우오토 오사무 님이 그린 만화 《현미 선생의 도시락》(대원씨아이) 2권(2010)을 보면, “요즘 학생들은 양상추와 양배추도 구분 못하고, 토막난 상태가 아니면 무슨 생선인지도 몰라요. 무서워서 두부를 손바닥 위에 놓고 썰지도 못하죠! 거의 다 그래요! 애들은 학원 가느라 시간 없고, 부모는 부모대로 야근이니 뭐니 해서 늘 바쁘죠. 그러다 보니 애들한테 요리를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가 많아요. 애들도 자연히 요리에 대해서 배우지 못하고요.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히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학생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대학생들은 피해자니까요(179쪽).”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굳이 만화책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오늘날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 누구 하나를 붙잡고 물어 보아도 ‘밥하기’와 ‘반찬하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칼질하기를 옳게 할 줄 안다든지 설거지를 바르게 할 줄 안다든지 빨래를 알맞게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어른을 놓고 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기계가 도맡아 주지 않느냐고 할는지 모르는데, 따지고 보면 집밖일도 매한가지입니다. 갖가지 셈틀과 기계가 바깥일을 도맡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셈틀이 있고 기계가 있어도 이러한 셈틀과 기계를 다루는 ‘사람을 써야’ 합니다. 집에서도 그래요. 온갖 집안 살림기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 기계를 다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집안살림이든 집밖살림이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매무새를 익히는 사람 일을 제대로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못 가르칩니다. 제대로 안 배울 뿐 아니라 못 배웁니다. 지식인은 많아도 살림꾼은 없습니다. 아니, 지식인은 세상에 떵떵거리면서 펜데를 굴려 일을 하여도 살림꾼 목소리는 어디에도 실릴 자리가 없습니다. 신문과 잡지와 책과 인터넷에서는 오로지 ‘살림을 안 하거나 살림을 모르는 사람이 살림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만 다룹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사랑놀이를 즐기며 아이를 배고 낳을 때에, 아이키우기가 어떠한 일인가를 옳게 가르쳐 주는 적이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아이키우기를 일러 주지 않습니다. 여자한테든 남자한테든 똑같이 가르칠 아이키우기이지만, 이를 살갗으로 올바로 깨달으면서 아이들한테 가르칠 어른이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학교에서도 알뜰히 못하지만 집에서도 알뜰살뜰 못합니다.


 (2)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라는 책 하나


 “회사 일이라는 게 돈으로 환산될 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67쪽).”고 말하는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를 쓴 안미선 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자기가 정말 겪은 일과 느낌을 솔직히 쓴다면 엄청나게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 말이다. 서로 사는 모습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모른다(6쪽).”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 책마을에서 일을 했고,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학교와 쉼터에서 성교육을 하기도 했던 안미선 님인데, 안미선 님 스스로 ‘직장여성’일 때하고 ‘애 엄마’일 때하고는 사뭇 달랐겠지요. 직장여성일 때에는 생각하지 못한 애 엄마 삶이었겠지요.

 저는 직장남성이라는 길을 걷기는 했지만,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몸이 된 뒤부터는 거의 집에서 식구들 돌보는 길을 걷습니다. 밥벌이와 옆지기 돌보기와 아이키우기를 한꺼번에 해야 하면서 지칠 뿐 아니라 고되기까지 하지만, 밥벌이 때문에 집밖으로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거나 바깥사람을 만나거나 홀로 책방마실을 하거나 사진찍기를 할 때에는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는 삶이란 이렇게 홀가분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혼자 이 좋은 삶을 다 누리니 참 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옆지기 혼자서 아기하고 씨름하며 복닥일 모습을 그리면서 ‘더없이 힘들겠지’ 하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몇 가지 책을 넘기면서 ‘애 엄마 삶’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책에 담긴 지식으로 읽을 뿐, 애 엄마 삶이란 어디 머나먼 곳에 있는 엄마들 삶이 아닌 바로 ‘나를 낳아 키운 어머니 삶’이기도 함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 스스로 애 아빠 삶을, 아니 어버이 삶을 걸으면서 ‘애 엄마 삶’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립니다. ‘아이키우기를 하는 삶’이란 어떠한가를 곰곰이 곱씹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어머니 삶을 돌아보고 옆지기 어머님 삶을 함께 톺아봅니다.

 안미선 님은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 끄트머리에서 당신과 마찬가지로 ‘한국땅에서 직장여성으로 살거나 애 엄마로 살거나 직장여성이면서 애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짤막짤막 옮겨적습니다. 대학교에서 청소용역을 한다는 아주머니는 “이 학교가 부자라고 하더라구요. 건물도 계속 짓고. 그런데 직영으로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싸게 부릴 생각만 해요. 우리도 사람인데. 선생들은 고생을 안 해 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25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미선 님은 청소 아줌마 목소리를 빌어 이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만, 안미선 님이 강단에 서서 강사가 되고 조교수가 되고 부교수가 되고 정교수가 되고 했다면, 이 청소 아줌마 말마따나 ‘고생을 안 해 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는 또 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제 안미선 님은 ‘고생을 해 보’고 ‘청소를 어떻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더없이 마땅하게도 ‘고생을 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는 한편,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들 목소리’를 펼쳐 보입니다. 이 목소리를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 줄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 남자와 여자가 스스로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는 자리에서 얼마나 이 목소리를 귀담아들을는지 모르지만.


 (3) 한 줄 한 줄 되씹기


 책을 덮습니다. 옆지기가 이 책을 넌지시 들추면서 한 마디를 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스스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각을 달리 하고 있지만, 이분 스스로 이제까지 이 책에 쓴 아쉬움과 한숨과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배운 적이 없었다고.

 틀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숱한 사람들은 저처럼, 또 안미선 님처럼, 아니 모두들 다르게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을 슬기롭게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나중에 잔뜩 짊어져야 하는 굴레를 깊이 돌아볼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 느껴도 스스로 달라지면서 내 둘레 터전이 달라지도록 힘을 쓰지 못합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 고꾸라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고, 울타리가 너무 높고 단단하기 때문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여자들은 애써 이런 책을 써내고 돌려읽기도 하지만, 정작 남자들은 이런 책을 찾아 읽지 않고 다루지 않으며 가슴으로 새기지 못합니다. 하다 못해 책으로라도 이 같은 지식을 받아먹으려 하지 못합니다.

 책은 못 읽어도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책조차 못 읽는 우리들 삶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쁠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쁘도록 하나요. 무엇이 쫓겨 이다지도 바쁜 채 허덕이나요.

 누구보다 저부터 바빠맞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 줄 두 줄 되씹어 봅니다. 나부터 우리 아이와 옆지기한테 좀더 마음을 쓰고 따숩게 얼싸안는 삶이 되도록 하면서 방긋방긋 웃자고 다짐하면서 석 줄 넉 줄 되읽어 봅니다. 세상 남자들이, 아니 한국 남자들이 ‘남자 날개옷’만 멋스럽게 붙잡지 말고 ‘여자 날개옷’을 나란히 챙기면서 ‘사람 날개옷’을 곱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면서 다섯 줄 여섯 줄 천천히 거듭 읽습니다. (4343.1.18.달.ㅎㄲㅅㄱ)


[17, 58쪽] 외국에서 아기를 낳은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임신해서 한 번만 초음파를 찍고 그 이상은 불필요하다고 의사가 말린다던데, 아기 낳는 모양새도 그 나라 습성을 따르는 게다. 조산소에서 가족과 함께 낳으면 가장 좋다는 말도 들었지만 수혈 문제 때문에 종합병원에서 낳게 되었다. 임신 내내 지금까지 줄곧 ‘위험할 수 있어요, 위험해요’ 하고 협박만 들은 것 같다 … 애가 아플 거라는 소리가 협박처럼 들렸다. 우는 애를 안고 일어서자 의사가 “문제는, 돈이야!” 하고 외친다. 뒤돌아서는데 속에서 뜨거운 게 치민다. 개새끼. 지가 의사면 의사지, 뭘 안다고 능글능글 반말로 씨부렁거리냐. 지가 젖 먹여 애 길러 봤어? 지가 애 땜에 뜬눈으로 간호해 봤어?

[27, 32, 37∼38쪽] 나도 할 말이 있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뛰어가고 엎어지고 엎지르고 박아대는 아기와 씨름하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 먹고논다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 정말 내가 안 움직이면 우리 집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린다. ‘집은 쉼이다’면서 남자가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있는 광고도 있지만, 주부에게 그것은 그림의 개떡 같은 소리다. 집은 일터다. 집 밖에 나가야 한숨 돌릴까. 집은 곳곳을 치워 달라고 손봐 달라고 소리 없이 외쳐댄다 … “회사에서 아프면 사장한테 요구하지. 아니, 사장한테 도장 맞고 공단에 요구하지. 그런데 아기 보고 살림하다 아프면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 집에 있는 여자들과, 집안일을 더해 밖에서도 일해야 하는 많은 여자들이 아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플 거라고 여기지 않고 일한다고 여기지 않고 그것이 사회에서 보장해 주어야 할 몫이라고는 더더군다나 생각하지 않는다.

[34, 158쪽] 나도 애를 봐주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 종일 업고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할머니를 보니 힘든 건 다 똑같은데 같은 여자한테 떠넘기지 말아야겠다 싶기도 하다 … 남편이 주말에 쉰다는 것이 어떤 아내들에게는 부러울 뿐이다.

[42, 83∼84, 198∼198쪽] 결혼한 친구들은 각각 자기 집에 틀어박혀 혼자서 가족감당을 하느라 여념이 없고, 결혼 안 한 친구들은 여행이며 연애를 꿈꾸는데 이건 나와 딴판의 이야기였다 … 어른들이 도시의 갇힌 공간에서 쇼핑으로 술자리로 기분전환하듯, 아이들은 한 시간에 얼마 하는 인위적인 실내 놀이 공간에서 좋다고 뛰논다 … 사고 쓰고 버리는 것이 어른들의 생활이듯, 아이들의 시간도 놀이도 그렇다 … ‘살림이며 육아를 알아서 할 사람이 있겠지’ 하며 나 몰라라 하는 그이의 직장, 남편이 잠잘 시간만 빼고 그의 노동력을 오롯이 써먹는 직장에 대해서 화가 난다. 아이를 같이 낳고 기르는 것은 남편과 나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직장에 다니니 평등가족이 될 수 없다고 남편은 먼저 푸념했다.

[48, 101, 108, 121, 136쪽] 남자에게 콘돔을 쓰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이다 … 그때 나는 우리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자리에서 희롱을 당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책이 나온 날짜를 물끄러미 본다. 이 책이 나올 무렵 나는 깁스를 하고 빈방에 종일 앉아 있었다. 판권에는 사장 이름만 나와 있어, 만든 이들을 잊어버린 책이다 … 우리 시대의 고통바든 남편은 요컨대 자신도 집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 바도 배운 바도 없거니와, 돈을 벌러 회사에서 갖은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는 피해의식과 ‘가장’이라는 한줌 자부심으로 모든 집안일에서 면제받길 바란다 … (쉼터에 있는) 이 아이들은 특별히 문제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피임을 배우지 못하고, 남자 애들이 사랑해 주면 좋긴 한데 제 몸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이 나라 여자 아이들은 누구나 이 자리에 올 수 있다.

[90, 92, 96쪽] 나는 애가 공부 잘한다고 싱글벙글인 부모에게 아이의 지치고 고단한 얼굴을 보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공부하는 건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두려워해서가 아닐까 혼자 생각도 해 보았다 … 뒤늦게 안 것이다. 십대의 행복은 십대에만 있을 뿐이다. 그때 읽고 싶은 책은 그때에 읽어야 즐겁고, 그때 하고 싶은 일은 그때에만 깔깔거리며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정말 나의 행복을 바란 것이었을까 …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일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학교나 입시교육 안에서가 아닌 것이다.

[91, 94쪽] 모두들 서울에 오고 싶어했다. 서울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돈도 잘 벌고, 행복해질 거라고 여겼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다 … 공부 못하면 여기에서 못 떠난다고 협박당하던 그 친구들이 고향에 남아 든든한 이웃이 되어 거기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또 농사를 짓고 일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스럼없이 사투리를 쓰며 덩굴 뻗어 살아간다.

[141∼142, 187쪽] 남자 아이들에게 성은 자위를 몇 번 하니, 포르노에서 여자가 어떻게 나오니 정보를 공유하며 과시하는 놀이가 되지만, 여자 아이들은 월경과 함께 임신할 수 있는 몸, 성폭력을 당할지 모르는 몸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부터 세상에 대한 공포를 잠재화하게 된다 … 문제는, 이렇게 딴판으로 성에 대해 생각하는 이성들이, 상대가 바라는 걸 알지도 배워 보지도 혹은 믿지도 못하는 이성들이 만날 때 일어나는 문제다 … 여성에게 위험한 것은 밤길뿐만이 아니다.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낯선 사람, 낯선 장소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여성이 조신하지 않아서 섹시해서 무례해서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3, 209, 214쪽] 행복하고 깔끔한 가정과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종일 노동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가족 안에 고립되어 재산권이나 노동권, 재교육이나 사회적 지지 소통망 같은 자원에서 배제된 채 가족의 재생산과 보살핌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일해야 한다. 이러한 낮은 지위와 처우는 가족주의와 성별분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 속에서 구조화되어 있다. 교육을 받건 받지 않건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 성노동이 노동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일 자체가 성별화되고 불안하기 때문에 자주 노동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매매의 시장으로 간다 … 문학이나 대중문화가 근대의 산물인 것처럼, 작가도 초연한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특정한 성으로 태어나 그에 따르는 시선을 학습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자에게 불평등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작가는 성찰하지 않는 한 그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현실에서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터무니없거나 폭력에 가까운 묘사도 향수나 그리움, 애틋한 사랑의 이름으로 그려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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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 2010년 올해에 "헌책방 이야기" 세 번째 낱권책을 써내려 하는데, 시간이 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벌써 여섯 해가 지난 2004년에 내놓은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놓고, 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는가를 밝혔던 글을 크게 손질해서 걸쳐 놓는다. 2004년이면 아직 '글과 말을 한창 가다듬으며 고치던 무렵'이라서 내가 쓴 내 글임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2010년 오늘 쓰는 글 또한 앞으로 2020년이 되어서 돌아본다면 다시금 못마땅할 테지. 2030년이나 2040년을 맞이한 때에도 나 스스로 내 글에 별을 다섯 꾹꾹 눌러 채워서 줄 수 있게끔 더 갈고닦으며 애써야겠다고 느낀다 .. 










 1. 모든 책은 헌책이다 (그물코 펴냄,2004)
 : 헌책방 사라질까 걱정되어 쓴 책



 (1) 왜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냈는가?


.. 그저 인터넷과 헌책방 소식지로만 조용히 헌책방 이야기를 하고팠지만, 이러다가는 헌책방이 다 사라질지도 모르고, 헌책방을 소중한 책 문화와 책 쉼터로 느끼지 않거나 못하는 아쉬운 우리 현실과 눈높이를 가다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  (머리말)


 저는 ‘울타리 허물기’를 좋아합니다. 일부러 울타리를 허물지는 않으나,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울타리’가 참으로 많다고 느낍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서 모두들 쉬쉬하거나, 뒷꽁무니에서 몰래 울타리를 넘나들며 제 뱃속을 채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런 울타리 없이’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2004년 여름과 가을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우리 말 강의를 했습니다. 이때 국립국어원에서는 저보고 양복에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오라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하더군요. 첫날은 그렇게 차려입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혼인잔치에서도 양복 차려입기를 힘들어 하는 저로서는 양복 옷감에는 두드러기가 납니다. 출판사에서 영업일을 할 때에도 우리 옷을 갖춰 입은 저로서는 참 죽을 맛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강의를 앞으로도 해야 하나 생각한 끝에, 저는 제 길대로 살며 제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니, 다음 강의부터는 양복을 벗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자전거를 몰고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건물 지킴이가 ‘웬 미친놈이 다 들어오나?’ 하면서 부리나케 달려와서 제 앞을 가로막더니, 제가 국립국어원에서 ‘강사로 모신 분’임을 안 다음부터는 꼬박꼬박 거수경례를 붙이더군요. 강사가 꼭 양복 차림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머리에 지식을 가득 넣은 분들을 비롯하여, 건물을 지키는 분들까지도 옷차림으로 사람을 재고 따지는 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아니, 난 분이든 든 분이든 찬 분이든 빈 분이든 하나같이 양복차림입니다. 가벼운 옷이나 시원한 옷을 입고 잘 가르치는 일이 우리한테 더 좋지 않을까요? 값싸고 겉치레하지 않는 옷으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이 우리한테 더 즐겁지 않을까요?

 헌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헌책방 문화밭에도 ‘높직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어느 헌책방에서든 그곳 이야기만 해야지, ‘그곳 아닌 다른 헌책방 이야기’나 ‘다른 헌책방을 알려주는 일은 하지 말’도록 말없이 서로서로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꾸리는 헌책방에서 다루지 않거나 없는 책이 있을 때에도, 웬만한 헌책방 임자들은 “다른 헌책방에 가도 없는 책이다” 하고 딱 잘라 말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헌책방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헌책방이 있고, 제가 알기로는 당신 헌책방이 아닌 다른 헌책방에 바로 그 책이 틀림없이 있는데에도 그리들 말했습니다. 제가 ‘헌책방 길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이 한 동네 곳곳에 깃들어 있는 헌책방을 두루두루 다닐 수 있도록 길잡이를 삼고자 나누어 주면, 헌책방 일꾼들은 이 길그림을 썩 못마땅해 했습니다. 당신 가게로 찾아오는 책손이 다른 가게로 빠져나갈까 걱정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더 나은 헌책방도 더 나쁜 헌책방도 없는데, 책을 500원이나 1000원 더 싸게 파는 곳이 훨씬 좋은 헌책방이 아닌데, 우리 나라에는 헌책방 조합이 없기도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 서로서로 돕는 마음바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책손도 다르지 않습니다. 헌책방 헌책은 ‘세상에 딱 한 권’일 때가 잦다 보니, 헌책방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정보는 아주 ‘고급’ 정보였고, 이 같은 정보를 다른 이(경쟁자)한테 눈꼽만큼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서울 시내에 있는 250군데쯤 되는(2004년 요즘 잣대로) 헌책방을 그분들이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웬만한 분들은 그럭저럭 이 많은 곳들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저 일부러 아는 척을 안 할 뿐이요, 당신들이 바라는 ‘좋은 책이 나오는 텃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제가 그리는 헌책방 길그림 때문에 고급 정보가 새어나갈까 봐 몹시 안절부절해 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도 싫고 저 모습도 싫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웅크리며 살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왜 내가 더 가지려 하는가요. 좋은 책을 다루는 마음밭이라면 좋은 넋을 키워야지요. 좋은 책을 읽는 마음그릇이라면 좋은 얼을 가꾸어야지요.

 나날이 헌책방이 사라지고 죽어 가는데, 이러한 헌책방 정보와 소식을 널리 나눠서, 헌책방을 즐겨 찾는 이와 헌책방을 그럭저럭 가는 이와 헌책방을 아직 잘 몰라서 안 거나 못 가는 이 누구한테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94년부터 헌책방 나들이 이야기를 글로 썼어요. 박상준 님이라고, sf책을 즐겨 찾는 분이 쓴 ‘헌책방 순례기’가 열두 꼭지 있는데, 이 열두 꼭지에서 미처 다루지 않은 헌책방을 바탕으로 사람들한테 널리 알려지지 못한 헌책방을 찾아내어 이야기해 주고 길그림을 그리며 소식지를 펴내어 좀더 많이 즐겁게 헌책방을 드나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1998년 1월 6일에는 〈헌책방 사랑 누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식으로 헌책방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2000년 9월 14일부터 헌책방 이야기를 올리며 더욱 널리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해에 걸쳐 차곡차곡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돈있고 이름있는 출판사 세 곳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으나 모두 손사래를 치고, 나라안에서 내로라할 이름도 돈도 힘도 없는 작디작은 생태환경책 출판사인 ‘그물코’에서 인세를 안 받기로 하면서, 드디어 2004년 5월에 그동안 쓴 글을 갈무리하여 책 한 권으로 엮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숱한 헌책방에서 고마움을 듬뿍 받았고 수많은 헌책에서 사랑을 널리 얻었으니 이름난 출판사에서 큰돈 받고 책을 내는 일은 꺼림칙했습니다. 조용히 한길을 다부지게 가는 출판사에서 아무 돈 안 받고 책을 내어 헌책방마다 돌며 제 책을 선물해 드리는 길이 제가 그동안 받은 따스함을 갚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2) 책에는 무얼 담았나요?


.. 헌책방에는 고운 옷차림으로 오지 마세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쌓인 책을 고개 숙여서 볼 마음가짐으로 오세요. 두어 시간 동안 먼지 구덩이 속에 파묻혀서 옷과 얼굴과 손에 시커먼 책 먼지를 묻힐 마음가짐으로 오세요. 그러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이 반갑고 즐거운 ‘내가 모르는 좋은 책’을 헌책방에 한 번 갈 적마다 한 권씩 꾸준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  (24쪽)


 먼저,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싸구려 책, 교과서와 문제집, 아이들 책 전집 …… 으레, 헌책방 헌책은 이러한 줄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기 앞서나 이 책을 내놓고 나서나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내놓은 다음 신문잡지방송 기자들이 헌책방을 엉뚱하게 바라보며 엉터리로 다루는 기사를 바로잡으시라고 퍽 긴 편지를 써서 보내는 한편 제가 낸 책을 읽어 보시라고 했지만, 한 번도 ‘잘못된 기사가 바로잡힌’ 일이 없습니다.

 참말로 헌책방에서는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요?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헌책방에서 어떤 책을 만나고 있을까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헌책방을 취재하면서 늘 하는 말이 ‘가장 오래된 책’은 무엇이고, ‘가장 귀한 책’은 어떠하느냐는 타령입니다. 틀림없이 무척 오래된 책이 있는 헌책방이요 퍽 드물며 애틋한 책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은 이렇게 ‘값비싼 옛책(고서)’만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늘 살아 움직이는 책을 다루는 곳이요, 세월이 백 해가 흐르건 이백 해가 흐르건 우리들이 즐겁게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있는 곳입니다. 언제 보아도 새로우면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책을 만나는 곳이 바로 헌책방입니다.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 하여 수십 수백 권을 갖추어 팔 수 없는 헌책방입니다. 거의 한두 사람한테만 팔 수 있는 책을 갖가지로 갖추는 헌책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들어와서 그때그때 팔리기에 바지런히 다리품을 파는 사람과 곰곰이 헤아리는 눈썰미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기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새책방은 새로 나온 책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어느 주제 하나와 얽힌 책을 널리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헌책방은 갓 나온 책부터 나온 지 아주 오래된 책에다가, 도서관에서 ‘폐기 대상 도서’라는 이름을 붙이며 버리는 책하고, 학교에서는 ‘맞춤법이 옛날 얼개로 된 책’이라 하며 버리는 책과 함께, 사람들이 살림집을 옮기며 ‘짐덩이가 되기에 내놓는 책’까지 두루 받아들여 나누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버리는’ 책이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둘도 없는 보배’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책과 좋아하는 책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이와 같은 ‘다름’을 아주 온몸으로 느끼는 곳이 헌책방입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팔리지 않겠다’ 싶어서 버리는 책이지만, 이렇게 버려지거나 책시렁에서 사라지는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 문화사와 언론사와 생활사를 밝히는 소중한 자료가 많습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박정희 씨가 1961년 5월 30일에 뿌린 《지도자도》라는 책자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물러난다”는 조항을 넣은 팜플렛인데, 박정희 씨가 삼선개헌을 하면서 죄다 거두어들여 불태워 없애려던 책자입니다. 이런 책자는 새책방이나 도서관에 없어요. 어쩌다가 헌책방으로 흘러나오면, 또 고물상에 들어갔는데, 그 고물상을 찾아온 샛장수(중간상인)가 찾아내어 헌책방에 내다 팔면, 이제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2010년 1월에 드디어 2심 판결이 나온 ‘유재순-전여옥 판결’이 있습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는 2004년부터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정 다툼에서 말이 많은 책 《하품의 일본인》(청맥,1994)이 어떠한 책인가를 알아볼 길이 있겠습니까? 이 나라 도서관에 유재순 님이 쓴 《하품의 일본인》이 번듯하게 자리잡고 있을까요? 그러나, 이 책은 헌책방에는 있습니다. 다만, 늘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 헌책방에는 이 책이 들어옵니다. 저도 이 책 《하품의 일본인》을 헌책방에서 세 번 만났습니다. 〈월간조선〉 기자 조갑제와 정호승이 함께 지은 《김현희의 하느님》(고시계,199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쓰는 정호승 님이 〈월간조선〉 차장으로서 조갑제 씨한테서 배웠음을 아는 분은 생각 밖으로 퍽 드뭅니다만, 이 두 사람이 《김현희의 하느님》 같은 책을 함께 쓴 줄을 아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다른 때도 아닌 전두환-노태우 두 군사독재자가 정권을 움켜쥐고 있을 때에 〈월간조선〉 기자로 일하며 낸 이 책 또한 도서관에서 찾아볼 길이란 없습니다. 아주 마땅하게도 헌책방을 뒤지고 훑으며 찾아냅니다. 《백두산의 옛 전설》 같은 북녘책이나, 《조선족백년사화》 같은 연변책 또한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갖추지 않습니다. 정치나 사상하고는 아무런 이음줄이 가 닿지 않는 이 같은 책들이라면 이 나라 새책방과 도서관에서도 갖추어 주면 좋으련만, 이런 책마저 남녘땅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 눈밝히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 서울에서 파는 헌책과 제주에서 파는 헌책과 대구에서 파는 헌책과 청주에서 파는 헌책이 다릅니다 … 헌책방 헌책은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또각또각 단추를 누르며 주문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 헌책은 책으로서도 값어치가 있고 책에 담은 줄거리로도 우리에게 즐거움과 일깨움을 줍니다. 나아가 옛 느낌을 지금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다른 이가 읽은 낡거나 오래된 책’만을 헌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  (56∼58쪽)


 다음으로는 ‘헌책’이 무언지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을 찾아가 보면 서로 엇비슷해서 어디를 가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 비슷합니다. 이 책방에 가면 이 갈래 책이 더 있다거나, 저 도서관에 가면 저 갈래 책을 남달리 갖추었다고 하는 빛깔이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 도서관은 공부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네 새책방은 잘 팔리는 책으로 장사하는 돛데기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은 새책방이요 도서관입니다.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든, 서울 시내 어디를 가든 다 다른 헌책방입니다. 동네헌책방이든 큼직한 헌책방이든 모양새와 매무새가 다릅니다. 갖춘 책이 다르고, 사고파는 책값이 다릅니다. 어느 곳에서는 어린이책이 값싸고, 어느 곳에서는 인문사회과학책이 값쌉니다. 대전에는 대전과 충청도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헌책이 있고, 광주에는 광주와 전라도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잇는 헌책이 있어요.

 우리가 다리품을 팔면서 찾아가 둘러보고 헤아리며 사들이는 헌책 하나는, 오래된 종이를 만지는 느낌뿐 아니라, 책을 처음 만들었을 때 느낌과 때로는 지은이가 누군가한테 선사한 자국을 보면서 받는 느낌까지 풋풋하게 내 마음속로 삭이거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줄거리만 살피지 않습니다. 책 한 권과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째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책 문화가 더없이 낮습니다. 우리는 ‘경제 선진국’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돈벌이에만 목매달고 있는 탓입니다. 앞선 나라가 되자면, 돈만 잘 버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 누구나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경제 선진국이란 그지없이 못난 이름이요, 참다운 앞선 나라라 한다면, ‘문화 선진국’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이리하여,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건물임자가 멋대로 뻥튀기하듯 올리는 가게세 때문에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헌책방이 건물 한켠에 들어오면 다시 옮기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쓰고 도와줄 수도 있는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헌책방만이 아닙니다. 자그마한 새책방 하나가 깃들어도 오래오래 자리잡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 헌책방은 ‘책방 장사’가 아닌 ‘고물 장사’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아직까지도 적잖은 이들은 ‘헌책방 = 고물 장사’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새책 장사이든 헌책 장사이든 똑같은 책장사인 줄을 깨닫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헌책방 장사를 아주 낮보고 깔보는 셈입니다. 우리네 헌책방은 언제 한 번 제대로 책 문화로 꽃피우지 못하는 찬밥 대접이었고, 낡아빠진 책이나 팔아먹는 ‘떨거지’쯤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생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3) 나는 계약서를 이렇게 썼다


 1.저작권법 제3장 출판권의 조항을 따른다.
 2.인세는 책에 매긴 값으로 따져 10퍼센트로 하되, 팔린 부수로 셈한다.
  (팔린 부수가 10만 권 단위로 넘을 때에는 1퍼센트씩 올린다.)
 3.출판권자가 책이름을 짓고 책값을 매긴다.
 4.지은이한테 첫 판은 10권, 새로 찍을 때에는 3권을 보낸다.
 5.지은이가 책을 살 때에는 책에 매긴 값으로 따져 70%로 판다.


 지난 2003년부터 올 2004년에 걸쳐 저작권법 공부를 아주 부지런히 했습니다. 저작권법이란 ‘저작물을 만드는 사람(책이나 노래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공연이나)’한테 권리를 지켜 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작권법이 나쁘게 쓰이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출판사에서 지은이한테 내미는 ‘출판권 설정 계약서’를 보면, ‘대한민국 저작권법’을 거꾸로 풀이해서 저작권자한테 있는 권리를 빼앗아 마치 출판사한테 그러한 권리가 있는 듯 쓰는 일이 흔합니다. 제가 몸담았던 출판사도 그러했고, 제가 아는 분들 출판사도 그러합니다. 저작권협회에서 만든 틀과는 사뭇 다릅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우리한테는 우리 얼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책을 내려는 저작권자나 책을 펴내는 출판사나 저작권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계약서를 쓰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더군요. 따지고 보면, 책이름이나 책값을 출판사 마음대로 붙일 수 없습니다. 저작권법을 보면 책이름이나 책값은 저작권자(글쓴이)하고 뜻을 모아서 붙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는 겉그림과 판크기와 종이까지도 저작권자와 ‘협의’하라고 밝혀 놓습니다. 교정과 교열도 저작권자가 할 몫으로 되어 있으며, 다만 출판사에서 ‘도와줄 수 있다’는 보탬말이 있습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인데, 저작권자는 책에 얽힌 모든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출판사는 출판권자로서 책을 만든 다음에 ‘파는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출판사가 ‘책을 제대로 팔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저작권자는 언제라도 이 책을 판매중지를 시킬 수 있도록 저작권법에 똑똑히 나와 있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까지 물릴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약서’에 낱낱이 밝히는 출판사는 아직까지 못 보았습니다.

 그래, 그물코 출판사하고 계약서를 쓸 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계약서는 제가 준비할게요.” 하고요. 그러면서 조항을 딱 다섯 가지로 줄여서 계약서를 마련했습니다. 요즈음은 계약서를 쓸 때에 다른 조항은 하나도 안 넣고 오로지 하나, 1번만 넣습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일부개정 2003.5.27 법률 제06881호)을 따른다”고만 적어 넣습니다. 이런저런 군말이란 부질없고, 그저 우리 법률에 나와 있는 대로만 하면 잘못되거나 어긋날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책을 낸 출판사에서는 계약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4) 책을 엮은 사람한테 듣다


 제 책을 내기 앞서, 제 책을 내주겠다고 한 출판사 일꾼한테 몇 가지를 여쭈었습니다. 먼저,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낼 까닭이 있었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없어져 가는 것들, 꼭 있어야 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을 조용히 한 사람이 오래 찾은 것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 헌책방을 가면 더 많이 찾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궁금해서라도 한 번 가 보면 자기 나름대로 헌책방의 매력을 찾게 될 거 같아요. 찾고 싶던 책을 찾게 되는 그런 것들 … 그래서 저와 사장님도 이 책을 낸 뒤 헌책방을 자주 가게 되었어요. (절판되어 찾기 어려운) 만나고 싶던 책도 만나게 되었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책을 내며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요?” 하고 여쭈었고, 출판사 일꾼은, “가장 빨리 눈에 띈 건 틀린 글씨 많은 거, 표지. (표지를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낱말모음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찾아가는 길그림이 다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자 마자 이사하고 없어진 헌책방이 있고. (버스길도 다 적었는데, 이명박 시장이 7월 1일부터 버스길을 다 바꾸는 바람에 쓸모없이 되어 버리기도 했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물코 출판사는 환경책을 전문으로 내는 곳인데,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과 환경은 어떻게 이어진다고 보시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쓰고 버리지 않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중간 장치, 중간 기능이랄까요, 책에서 ‘하수구 기능을 하는’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다시 읽을 수 있고, 읽을 만하고, 읽으면 좋은 책인데, 그걸 버리지 않고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 굳이 새 거 사지 않고 헌책 찾아 읽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5) 헌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꾸기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 실은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꼭지를 보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헌책방에서 만난 신문자료를 다룹니다. 언젠가는 1940년에 나온 〈조선일보〉 호외 한 장을 헌책방에서 찾았는데, 그 호외는 일본 내각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알렸습니다. 호외는 잠깐 뿌리고 사라지기에 쉽게 만나기 어렵지만, 신문이 흘러온 역사를 밝혀 주는 소중한 언론사 자료예요. 이런 자료를 하나하나 만나다 보면 잊혀지고 감춰졌던 우리 역사를 차근차근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이나 자료가 뭐 대단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지만, 그런 물음에는 늘 “참으로 대단하답니다” 하고 대꾸하곤 합니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교수,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서울대 신용하 교수를 비롯해 숱한 교수와 기자와 지식인들이 헌책방에서 소중한 자료를 캐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갈래와 얽힌 자료를 찾아내고자 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분들 누구나 헌책방에서 만나는 자료를 놓고 한낱 ‘종이뭉치’라 하거나 ‘싸구려 헌책’이라 하지 않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애틋한 책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헌책방이라는 곳은 소중하거나 애틋한 역사 자료라든지 생활문화 자료를 캐내는 곳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이삿짐 뭉치와 함께 이러저러한 자료가 함께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평론가 정진국 씨는 《잃어버린 앨범》(눈빛)이라는 책에서 ‘사진관에서 찍는 가족 단체 사진’이 우리네 옛 생활문화 역사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헌책방을 다니다 보면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떠나는 집에서 내놓은 ‘사진첩’을 가끔가끔 구경하곤 합니다. 이 낡은 사진첩은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이 어떤 옷차림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가를 살펴보도록 돕는 자료가 됩니다. 말 그대로 ‘생활문화 역사’를 보여줍니다.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그렇습니다. 서울 불광동 〈작은우리〉 꼭지에서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때, 베트남에서 보낸 ‘군사우편’ 봉투와 얽힌 여러 이야기를 다룹니다. “새마을 웃음을 짓는 국군장병”, “색출하자 붉은 마수” 그림이 들어간 끔찍한 엽서 …… 이 모두가 제도권 안쪽에는 거의 드러나지 못한 채 파묻히고 있는 우리 삶 발자취입니다.

 시간을 죽인다거나 심심풀이로, 가벼운 소설 한 권 찾을 마음으로도 헌책방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가는 분이 많습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러도 헌책방에 갑니다. 좀 값싸게 책을 사고픈 마음에 가는 분이 많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고 다른 이야기이니, 다 다른 까닭으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이런 책을 찾는 사람한테는 이런 책이 있고, 저런 책을 찾는 사람한테는 저런 책이 있습니다. 하이틴로맨스소설이 한켠에 꽂히고, 세계문학전집이 한켠에 꽂힙니다. 둘은 나란히 꽂히는 책이요 똑같이 사랑받는 책입니다. 높이와 낮이가 따로 없습니다. 깊이와 얕이 또한 따로 없습니다. 모든 책은 고르게 다룹니다. 모든 책은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서울 인사동 〈통문관〉 이겸노 님한테 ‘풀꽃상’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만, 〈통문관〉 큰일꾼한테뿐 아니라 여느 동네헌책방 일꾼한테도 똑같이 풀꽃상을 줄 노릇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그렇다고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 훈장을 받거나 공로패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고갱이는 ‘헌책방 장사’를 한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하나 쥐어주려고 애썼던 일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는 거지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아도 뒤에서 힘이 되도록 밑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밑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들은 헌책방 주인이기도 하고, 구멍가게 주인일 수도 있으며, 여관 주인일 수도 있고, 하숙집 주인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네들이 뭐 보상받겠다고 나서겠습니까 ..  (308∼309쪽)


 세상을 바꾸는 힘은 보통사람들 손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보통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바꾸고, 여론을 모아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뜯어고치고, 집회나 시위를 벌이기도 하면서 우리 나라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모든 일은 ‘보상이나 훈장이나 공로패’를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 함께 즐거웁고자 하는 일입니다.

 헌책방에서는 반가운 책 하나를 값싸게 만나기도 하지만 소중한 자료 또한 만납니다. 사람들 살아가고 부대끼는 모습을 느끼고, 우리한테 그지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싱그러운 자리가 어디이며 어떠한 모습인가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책과 사람이 하나하나 모이고 뭉치면서 바야흐로 우리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올망졸망 북돋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을 고이 품에 안으면서, 이 믿음에 살포시 힘을 실으면서, 우리들 보통사람 힘을 하나로 엮어낼 바탕을 배우는 ‘헌책 하나를 즐기자’는 뜻에서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 하나 어줍잖게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4337.9.6.달.처음 씀/4343.1.16.흙.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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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 좋아하세요? - 대전 동구청 앞 헌책방이 모여있는 거리
    from 생활미감,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행복 2010-04-15 11:08 
    헌책 좋아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에서 나는 향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그 향들이 좋아하죠. 그래서 가끔은 책이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헌책방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전에서도 그 향을 즐길 수 있는 운치있는 헌책방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위치는 대전 동구청 앞. 행정구역 상으로는 동구 원동(중앙시장길 100번지 일대). 서점의 수는 약 20여개가 모여있으며, 헌책 뿐만 아니라 고서적,..
 
 
카스피 2010-01-18 11:48   좋아요 0 | URL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예전에 본 책이네요.저도 헌책방을 자주 드나드는데 예전 최종규님과 같이 헌책방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올리신 헌책방지도가 많은 도움이 도었지요.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강원도,경상남북도(대구,부산은 제외)만 못가보고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것 같군요.심지어 제주도 한밭서점까지 다녀왔네요^^
그나저나 헌책방은 계속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새책도 워낙 안팔려서 헌책방으로 오는 책들이 많이 줄어서라고 오복서점 쥔장께서 말씀하시더군요.참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파란놀 2010-01-18 16:38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책을 '골고루 읽고 사랑하며' 내 삶을 따스히 보듬으면서, 헌책방뿐 아니라 동네 작은 새책방도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카스피 2010-01-25 22:18   좋아요 0 | URL
맨위의 사진은 지금은 증산동에 있는 예전 모아북 내부 사진같군요.두번째는 홍제 대양1서점 사장님같고,세번쨰는 뿌리서점 사장님 사진같고,마지막은 서울역부근에 있는 헌책방(갑자기 이름이 기억안나네요)사진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16 ― 아픔과 슬픔이 함께 있어 좋은 책
 : 고사명, 《산다는 것의 의미》



- 책이름 : 산다는 것의 의미
- 글 : 고사명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07.7.2.)
- 책값 : 8700원



 (1)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읽고 나누며 살기


 제가 더없이 사랑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한테 좋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찾아나서고, 두 손 두 다리 온몸이 고단하도록 책을 살핀 다음, 좋아하는 책을 쥐어들어 기쁘게 울고 웃으며 읽고, 이렇게 읽은 책을 옆지기한테 건넨다든지 느낌글을 쓰고 나서, 둘레에 건네주거나 느낌글을 쓰던 얼거리 그대로 저 스스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책을 찾아나서서 사고 읽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이란 저한테 둘도 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요 며칠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라는 일본 만화 하나를 보면서 이 같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 만화책은 200쪽이 채 안 되는 작은 판이요 2009년에 나왔는데 8000원이나 합니다. 요사이 만화책에서 8000원이란 값이란, ‘애장판’이나 ‘소장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400∼500쪽은 되는 녀석한테나 붙이는 값입니다. 여느 만화책 한 권은 요사이(2009년 첫머리∼2010년 첫머리)에 4200원 합니다. 그러니까, 여느 만화책 두 권 값이요 딱히 애장판이나 소장판도 아니면서 떡하니 8000원입니다. 아무래도 대본소판 만화가 아니라 이러한 값을 붙였다 할 텐데, 그래도 참 비쌉니다. 비싸기 때문에 한참 망설였는데, 책 뒤쪽에 ‘카마쿠라의 바닷가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봄볕처럼 따스하고 청량한, 네 자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이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어서 골랐습니다. 책값으로 8000원을 치르고 나서 ‘만화가 그저 그렇다’면 이 돈을 고스란히 버릴 뿐 아니라, 책을 읽던 시간마저 버리는 셈이지만, ‘카마쿠라 바닷가 마을’이라는 말마디와 ‘네 자매 속 깊은 이야기’에 이끌렸습니다. 우리로 치면 ‘보성 바닷가 마을’이나 ‘삼척 바닷가 마을’쯤 되는 터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 셈이요, 만화책에서 너무도 뻔하게 나오는 사랑타령과 판타지싸움판타령에서 훌쩍 벗어나 있거든요.

 만화책을 펼쳐 읽으며 꽤 괜찮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웃어야 할 대목은 신나게 웃도록 그림을 그리고, 울어야 할 대목은 북받쳐 울 수 있게끔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그마한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네 사람 애틋한 이야기를 담아낸 줄거리를 곱씹으면서, ‘왜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도 넓고 갖가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도 늘 뻔하고 너절한 이야기에 그치는 줄거리밖에 못 만날까’ 싶어 아쉽습니다. 무엇이든 서울로 모이고, 어떤 책이건 영화이건 뭣이건 서울을 다룹니다. 서울에서 서울 이야기를 쓰고 서울에서 사고팔립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오늘날 우리네 문화와 사회와 정치는 온통 ‘서울에서 생산하고 서울에서 소비한다’입니다. 서울에서 전철로 한 시간만 달려도 인천골목길이 있지만, 인천골목길을 놓고 ‘골목길이다!’ 하고 여기는 문화예술인이든 여느 사람이든 매우 드뭅니다. 부산사람 스스로 부산골목길을 얼마나 곰삭이고 느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릉에 사는 아끼는 동생은 강릉골목길이 참 예쁘다며 꼭 보러 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강릉골목길을 이야기한 서울사람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목포골목길이든 고흥골목길이든 고령골목길이든 진주골목길이든 영월골목길이든 화천골목길이든 …… 도시나 시가지를 이룬 곳에는 어김없이 있는 골목길, 논밭을 이룬 곳에는 반드시 있는 고샅길, 이들 자동차 아닌 사람들이 한복판에 서면서 빚어내는 살가운 삶마디를 알알이 느끼며 나누려는 움직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에 나들이를 가면 으레 여러 식구가 둘러앉아 연속극을 봅니다. 저는 이때에 비로소 연속극을 구경합니다. 여러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연속극을 죽 보노라면 늘 뻔하게 맺는 줄거리로구나 싶은 한편, 또 하나 늘 뻔하다 싶은 모습을 찾아봅니다. 바로, 어떠한 연속극이든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 한다면 모조리 서울에서만 찍습니다. 역사 이야기도 으레 궁중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서울이 무대입니다. 원주에서 펼쳐지는 연속극, 청주에서 이루어지는 연속극, 문경에서 펼쳐지는 연속극, 남원에서 이루어지는 연속극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지역에서 지역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이루어내고 전국사람이 함께 즐기는 연속극을 찍으려 하는 몸짓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 곳곳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모양새와 넋으로 살아내면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알차게 여미면서 서로 반갑게 껴안으려는 움직임은 도무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좋아한다는 책을 내놓는 출판사는 하나같이 서울에 있습니다. 이제는 땅값이 싼 경기도 파주로도 많이 옮겨 갔다지만(돈이 있는 출판사만 들어갔지만), 모두들 서울에서 돌고 돕니다. 서울에 있는 작가들이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어 서울에 있는 책방에서 팔리고 서울에 있는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루며 서울에 있는 헌책방으로 흘러든다고 할까요. 하기는, 인천에서 살고 있는 저부터 인천에서는 좀더 넓고 깊게 책을 만나기 힘들어 바지런히 서울마실을 해야 합니다.

 며칠 앞서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에서 “20세기 미술의 발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묶음책 가운데 하나인 《코코슈카》를 장만했습니다. 코코슈카라는 그림쟁이는 ‘오스카 코코슈카’입니다. 이분은 당신 그림에 ‘OK’라는 이름을 남겨 놓았습니다. 좋은 그림쟁이 좋은 그림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선물받아 참으로 좋다고 느끼는 가운데, ‘OK’라는 이름 때문에 한참 웃었습니다. 그저 ‘OK’라서 웃었습니다. 비아냥거리는 뜻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파벳으로는 ‘OK’이지만, 우리 말로는 ‘옥’이겠네 싶어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데굴데굴 구르는 나뭇잎을 보며 웃을 때가 있듯, 그냥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저하고 옆지기가 한참 웃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아기도 함께 웃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31일에 맞추어 사진책 《윤미네 집》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깃들인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은 몇 해 앞서 돌아가셨습니다. ‘윤미네 집’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 제사를 1월 1일에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삿날 하루 앞서 책이 나왔고, ‘윤미네 집’에서는 새해 첫날 차례상을 올리면서 《윤미네 집》을 두 권 함께 올려놓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란히 느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차례상이든 제사상이든 먹을거리만 올릴 수 있지 않구나. 차례상이든 제사상이든 우리 스스로 무엇을 기리고 아끼고 나누며 함께하느냐를 돌아볼 수 있구나. 다가오는 설에 우리 식구가 아무 데에도 갈 수 없다면 우리 깜냥껏 차례상을 차리고 지난해에 내가 써낸 책 몇 가지를 올려놓으며 옛어른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올려도 되겠구나.’

 제가 써낸 책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읽고 그지없이 좋았던 책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가운데 참 마음에 드는 녀석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격식이나 예절이라고 하지만, 격식과 예절에 앞서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격식이든 예절이든 맨 처음에는 마음을 바치거나 나누면서 사랑하려는 흐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눈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가슴팍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아닌 맨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하나 돌아볼 때에, 이 책들은 틀림없이 ‘좋은 줄거리’이거나 ‘훌륭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줄거리와 훌륭한 이야기를 넘어서면서 ‘따뜻한 마음’이요 ‘넉넉한 사랑’이었으리라 봅니다. 대단하지 못한 줄거리라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훌륭하지 못하다고들 일컫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넉넉한 사랑이 실려 있으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저는 제 두 눈이 아닌 제 마음으로 읽는 책이 좋습니다. 아니, 저는 열여섯 살 푸름이였을 때나 스물여섯 살 젊은이였을 때나 서른여섯 살 애 아빠일 때나 한결같이 제 마음을 톡톡 두드리면서 살포시 어루만지다가는 와락 껴안는 책이 좋습니다. 머리에 담는 지식이 가득한 책은 그저 자료로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과 믿음이 어우러진 책이라야 비로소 여러 해에 걸쳐 제 책상맡에 올려놓고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읽고 삭입니다. 새롭게 읽고 삭이기를 거듭합니다.


 (2)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란


 《산다는 것의 의미》는 오래된 책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지는 세 해이지만, 일본에서는 퍽 예전에 나왔습니다. 한겨레이지만 한겨레가 살아가는 남녘에서든 북녘에서든 뿌리내리지 못하고 일본에서 뿌리내린 한 사람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적바림한 책입니다.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아니요 일본사람 또한 아닌 떠돌이 같은 넋이 일본땅에서 부딪히고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괴로워 뒹굴던 이야기를 아주 차분하게 펼쳐내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모든 아픔과 슬픔을 딛고 섰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했으며 이 책을 써내는 그때에도 아픔과 슬픔이 늘 길동무처럼 옆에 나란히 있기 때문일 테지요. 아픔과 슬픔에 짓눌린 사람이 아니니까, 아픔과 슬픔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니까, 아픔과 슬픔이 우리 삶에서 좋음과 기쁨처럼 늘 곁에 있는 벗임을 깨달았다면 아주 차분하게 나 스스로 걸어온 길을 적바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삶이란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는 발자국입니다. 삶이란 괴로움과 싱그러움이 나란히 있는 걸음걸이입니다. 삶이란 고단함과 개운함이 엇갈리는 길목입니다. 삶이란 낮과 밤이 갈마드는 하루하루입니다. 내내 낮이지 않고 노상 밤이지 않습니다. 줄곧 어둠이지 않고 내처 밝음이지 않습니다.

 내내 낮이거나 내처 밝음이라면 눈이 너무 고달픕니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합니다. 잠을 자지 않고 어찌 삽니까.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고 똥을 눕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을 마시고 오줌을 눕니다. 사람 아닌 목숨도 매한가지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먹은 만큼 내뿜거나 내보내야 합니다. 돌고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주고받기입니다. 주기만이 아니요 받기만이 아닙니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면 탈이 납니다. 먹기만 하거나 누기만 할 때에도 말썽이 생깁니다. 낮이 있는 만큼 밤이 있어야 하고, 바지런히 일하는 만큼 신나게 놀아야 합니다. 힘껏 하루를 보냈다면 한갓지게 하루를 쉬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1932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간 ‘고사명(김천삼)’ 님은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 하나로 ‘도무지 삶이란 뭐지?’ 하는 길찾기를 합니다. 마흔세 살이 당신 외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픔이 어떠한 아픔인가를 돌아보고, 이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냘픈 목숨은 당신 외아들뿐이 아님을 헤아리며, 아이들과 어른들 누구나 내 삶이 어떠한 삶인가를 짚지 않는다면 삶과 죽음이란 다르지 않음을 곱씹습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많고, 죽었으나 살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버젓이 살아 있다지만 죽었다느니만 못하고, 아련히 죽었다지만 언제까지나 마음속에서 살아남아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 아이들한테, 아니 이 땅이 아닌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이 될 수 없는 채 살아가는 재일조선인과, 한국땅에서 이웃나라 한겨레와 일본 아이들 모두 얼마나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굽어살피지 못하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바치는 책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아니랴 싶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요, 삶은 삶대로 아름답고 죽음은 죽음대로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살아 있는 모든 기쁨과 웃음을 슬픔과 눈물과 함께 누려야 합니다. 죽어 묻힐 때에는 흙으로 기꺼이 돌아가면서 내 뒷사람과 뭇 목숨붙이한테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겨야 합니다.


 (3) 수없이 되읽는 말마디


 2007년에 나온 《산다는 것의 의미》를 2008년에 읽었는데, 2009년 한 해 내내 이 책을 끌어안고 지냈습니다. 이제 2010년을 맞이하며 제 마음 한켠에서 살포시 내려놓고 우리 집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옮겨 놓고자 합니다. 제 어설프고 어줍잖은 마음밭을 일구어 준 고마운 책 하나한테 즐거웠다는 인사말을 남기며, 새로운 책 하나로 이 마음밭을 다시금 일구어 보고자 합니다. 책상맡에서 책시렁으로 옮겨 놓기 앞서, 한 번 더 책장을 뒤적이면서, 그동안 밑줄을 그은 대목을 또박또박 느린 글씨로 적바림해 봅니다. (4343.1.16.흙.ㅎㄲㅅㄱ)


[7, 79∼80, 115, 188쪽]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지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 비가 오는 날은 나막신을 두 손에 들고 맨발로 뛰었습니다. 나는 비오는 날이 좋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방이나 운동화가 비에 젖을까 봐 쩔쩔맬 때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빗속을 뛰어다녔습니다 …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건져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인간의 상냥함이란 참된 조선인, 참된 일본인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을 때 나보다 힘겨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18∼19, 46쪽] 어머니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는 처음부터 남길 만한 유품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결혼할 때도 결혼사진을 찍을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 어머니는 가난에 허덕이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겐 어머니의 죽음이 당신 책임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 아버지와 한바탕 싸움을 끝내면 새엄마는 너무나도 슬픈 눈으로 우리 형제를 바라봤습니다. 그러다가도 금세 독기가 오른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슬픈 눈빛은 고통스런 생활을 온힘을 다해 버텨 내려는 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20, 24∼25, 200쪽] 우리는 왜 우리의 이름이 떳떳하게 불리는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버지는 언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것일까요? … 전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무척이나 괴롭혔습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슬피 울었습니다. 같은 일을 당했다면 분명 일본인도 울지 않고서는 견뎌 내지 못했겠지요 … 특히 어떤 선생님은 내가 아직도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고 조선 이름을 쓰고 있다는 데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온 나라가 전쟁에 뛰어든 판국에 정부가 시키는 대로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으니, 눈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26∼27, 74쪽] 일본어에는 일본어만이 지닌 향기가 있습니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언어가 부드럽고 단아하다고 말합니다. 조선인에게는 조선어가 있습니다. 일본인이 일본어를 사랑하듯 조선인은 조선어를 사랑합니다. 조선어에는 조선인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있습니다 … 일본 학교에 다니는 일본인이 일본어를 사용할 수 없다면 일본인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조선어를 배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조선어로 얘기했고, 우리는 일본어로만 얘기했습니다. 부자 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가 서로 다르다니 기막힌 일입니다.

[49, 66, 127쪽] 우리 집은 천장에도 신문지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동생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천장은 우리들에게 무척 유용한 놀잇감이었습니다. 나는 천장에 붙여 놓은 신문을 통해 처음 글씨를 배웠습니다 … 입학식 날입니다. 우선 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이 새 교복을 입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말고는 전부 어머니가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 시치린마치의 아이들이 바다를 사랑한 것은 맨몸으로 뛰어들어도 거리낌 없이 우리를 받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영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되기에 옷이 더럽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주기 때문에 드넓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가야의 숨막히는 생활도 멀리 사라집니다.

[61, 64, 75쪽]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엔 살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도둑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자물쇠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 한편으로는 도둑이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나가야의 빈집을 털 정도였으니 찢어지게 가난했을 것입니다. 부리나케 바지를 벗고 똥을 쌀 때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을 것입니다. 똥을 싸고 있을 때 사람이 들어오면 정말 큰일이니까요 … 모두가 가난했으니 가난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학교에 입학해 나처럼 가난하지 않은 일본 아이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과 내가 아는 조선인 대부분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깨달음이 내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87, 174∼175쪽] 학교에서 멋대로 날뛰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학교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버지 말대로 학교는 공부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내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는 나를 가난하다고 놀리고, 조선인이라고 놀리고, 어머니가 없다고 놀리는 곳입니다. 학교는 나를 괴롭히는 곳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곳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사카이 선생님은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속엔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가 조선인이라고 경멸하지도 않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우습게 보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내게 화를 낸 것은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며, 가난에 짓눌려 눈치나 봤기 때문입니다 … 4학년 때 담임은 나라는 학생보다 학교 규칙이 먼저였습니다. 내가 왜 손톱을 자르지 않고 지저분하게 길렀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학교 규칙을 어겼으니 혼을 내야겠다는 식이었습니다.

[145, 149쪽] 폭력 속에 갇힌 인간은 폭력에 눈이 멀어 폭력이 명령하는 대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폭력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 나는 모두에게 조롱받았던 말의 폭력에 대해 팔의 힘을 행사하는 폭력으로 맞서 싸웠고, 그 순간 나 자신이 폭력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 다른 사람의 처지를 함부로 조롱하는 인간은 상대방을 비웃기 전에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비웃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매일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세계지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언제쯤 우리가 만든 일장기 모형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붙일 수 있게 될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만든 일장기를 워싱턴이라고 쓴 곳에 붙일 경우,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집이 불타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34쪽] “이제 겨우 해방됐으면서 뽐낼 틈이 어디 있어?”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일본사람은 조선인을 괴롭혔다. 조선인이 어려울 때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뒤집혀 일본사람들이 어려워졌다. 그럼 조선인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일본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짓밟고 괴롭혀야겠느냐? 남에게 원한을 사면 나중에 그 원한이 나한테 돌아오는 법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는 서로 돕는 게 사람의 도리다. 사람의 도리를 짓밟으면 해방도 머잖아 끝이다. 일본사람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용서해 줘야 그게 진짜 해방이다. 앞으로 좀 살 만해졌다고 일본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또다시 조선을 망하게 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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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와 글쓰기


 내가 대단히 좋아하는 만화책 가운데 《도자기》가 있다. 이 만화를 그린 이는 ‘호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지난 2009년 봄에 몸이 무척 아팠는가 보다(아마 예전부터 몸이 나빴겠지). 호연 님이 몸이며 살림이며 너무 어려운 나머지 당신 블로그에서 어찌어찌 도움을 바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이야기를 두 군데 신문에서 기사로 내보냈는가 보다. 《미녀는 못 말려》 만화책을 보던 옆지기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뒤적뒤적해 보니 〈한겨레〉 기사가 뜬다. 〈세계일보〉에도 같은 기사가 이틀 앞서 나왔다는 댓글은 읽었으나 〈세계일보〉 기사까지는 찾지 못했다. 줄거리는 〈한겨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 그런데, 이 기사를 놓고 여러 누리사랑방(블로그)이나 누리모임(카페)에서 뒷말이 많다. 나로서는 오늘 처음 알았지만, 호연 님 만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남긴 뒷말인데, 호연 님은 당신 몸이 아파서 도움을 바라는 글을 올렸던 이야기를 자꾸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덥석 기사로 띄운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띄운 〈세계일보〉도 그렇지만, 이렇게 기사가 된 이야기를 새삼 다시 기사로 띄운 〈한겨레〉는 무얼까? 이렇게나마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돕고자 했기 때문일까?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한겨레〉 기자들이라 한다면, 〈한겨레〉가 그토록 손가락질하는 〈조선일보〉 매무새하고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다. 나는 〈한겨레〉 ㄱ기자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겨레〉 ㄱ기자가 나를 취재하겠다며 연락을 해 온다면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아십니까?” 하고 넌지시 여쭌 다음에,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지면을 빌어 공개사과를 한 적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여쭈고,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디 저를 취재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마무리말을 한 다음 내가 먼저 전화를 뚝 끊으려 한다. (4343.1.15.쇠.ㅎㄲㅅㄱ)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347436.html#opinion1

http://cafe.naver.com/swallowedbir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3159
 


 

2009년 4월에 있던 일을 이제서야 

알아서, 뒤늦게 가슴을 치면서 

뒷통수 치는 글을 끄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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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빛
강운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사진쟁이 한길을 걸으며 하고 싶던 말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1] 강운구, 《시간의 빛》



- 책이름 : 시간의 빛
- 글ㆍ사진 : 강운구
- 펴낸곳 : 문학동네 (2004.1.5.)
- 책값 : 18000원


 (1) 삶에 따라 하는 말, 삶에 따라 찍는 사진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람하고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하고 깊습니다. 그러면서 내 둘레 터전과 이웃을 바라보는 눈길 또한 따뜻하며 깊습니다.

 내가 달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하고 어울리는 동안에는 내가 달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과 마주하는 눈길이 차갑고 얕습니다. 그러면서 내 언저리 삶자리와 동무를 마주하는 눈길 또한 차갑고 얕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땅이나 목숨붙이하고 있다면, 내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내가 좋아하는 느낌을 고이 담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 좋은 길을 걷습니다. 창작이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알맞고 걸맞고 들어맞는 길을 걷는 놀이입니다. 느끼는 대로 바라보고, 바라보는 대로 살며, 살아가는 대로 펼쳐 보입니다. 높음이나 낮음이 따로 없는 창작이요, 훌륭함이나 못남 또한 따로 나눌 수 없는 창작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창작이 아닌 생산을 하곤 합니다. 생산이란 내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공장을 돌리는 일입니다. 이른바 ‘프로’로서 ‘취업’을 하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주문하는 사람 입맛에 맞추어 척척 찍어내는 기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내 결에 따라서 내 넋을 담는 창작이 아닌, 다른 사람 눈썰미에 따라서 다른 사람 쓸모에 맞추는 공산품을 일구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고 내 이름값을 높이며 내 힘을 키운다고 할까요.

 공산품을 생산하는 프로가 된다 하더라도, 즐겁고 신나게 작품을 일굴 수 없지는 않습니다. 마음가짐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공산품 뽑아내는 직업인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아름답고 싱그럽게 작품을 가꿀 수 없지는 않습니다. 몸가짐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에 따라 바뀌니까요. 그런데, 이 나라에서 프로 작가라는 이름을 내거는 분들 가운데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라는 길을 걷는 분을 만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스스로 이름값을 내려놓는 분이라든지, 스스로 주머니를 털털 털어놓는 분이라든지, 스스로 힘을 버리는 분이라든지, 그러니까 낮은자리로 스스럼없이 내려서면서 고개를 숙이는 어른을 찾아보기가 참 힘듭니다.


.. 잠깐 눈이라도 쉬어 갈 수 있는 편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 풍경을 넘어서 뭔가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다 끼어 있다면 기쁘겠다 ..  (8쪽)


 저는 날마다 ‘우리 말 이야기’를 쓰면서 언제나 한결같은 이야기를 넌지시 담는다며 발버둥을 칩니다. 말은 삶이요 삶은 말이라는 이야기를 늘 글 한켠에 살포시 적바림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말과 삶과 넋은 늘 한동아리가 되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말과 삶과 넋을 다 함께 가누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 하루하루가 기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노상 글 한구석에 조용히 끄적거리려고 용을 씁니다. 저로서는 말과 넋과 삶이지만, 이를 조금 달리하면 글쓰기와 넋과 삶이 되고, 사진찍기와 넋과 삶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 사진쟁이한테는 사진쟁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삶을 꾸리는가에 따라 그이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림쟁이한테는 그림쟁이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으면서 어떤 삶을 보내는가에 따라 그이 그림이 달라집니다. 만화쟁이도 그렇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법을 다루든 공무원으로 있든 고기잡이이든 농사꾼이든 그렇습니다. 누구나 제가 발딛고 있는 터전에서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가꾸고 말을 합니다.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 일하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 창작이든 생산이든 하면서 제 깜냥껏 작품을 내놓습니다. 이리하여, 더 높거나 낮은 작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가슴을 움직일 만한 작품이냐 아니냐로 가를 수 있습니다. 눈물을 샘솟게 하는 작품이냐, 웃음이 피어나도록 하는 작품이냐, 이렇게 두 가지로만 작품을 바라봅니다.


.. 사람들은 불 밝힌 빌딩에서 밤을 새우며 야근하고, 재벌 총수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고층빌딩을 자랑한다 … 기름값이 치솟자 연탄으로 돌아간 집들이 다시 생겼다. 그래서 연탄재가 여기저기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들판이나 골목길에 쌓인 연탄재 무더기들은 꼭 설치미술 같아 보인다 ..  (229, 238쪽)


 어제와 그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습니다. 추운 날씨라서 두 손은 겉옷 주머니에 쑤셔넣고, 쑤셔넣은 손으로 사진기를 붙잡고 다닙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갈 때에도 사진기는 목걸이처럼 걸고 다닙니다. 따로 사진찍을 일이 없어도 제 한쪽 손은 사진기를 움켜쥡니다. 여느 날씨에는 손이 시리지 않으니, 서울길을 거닐 때에 책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저로서는 눈을 둘 만한 데가 없고 바라볼 만한 곳이 없다고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애써 목걸이처럼 사진기를 달고 다니면서 사진 한 장 찍을 일이 없습니다. 그저, 헌책방에 찾아가 책시렁을 둘러볼 때에만 사진을 찍습니다. 한 장 두 장 아끼면서 찍습니다. 필름사진을 찍을 때에도 한 장씩 아끼면서 찍습니다. 그렇다고 한 자리에 오래도록 서서 빛이며 틀이며 느낌이며 다 맞추면서 찍지 않습니다. 내 몸뚱이가 내 사진감인 헌책방에서 ‘헌책방과 내 몸마음이 하나되도록 살아내’면서 시나브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숨을 멎고 1/15초나 1/20초로 찍습니다. 예전에는 1/4초나 1/8초로도 곧잘 찍었는데, 이제는 손떨림을 줄이고자 1/15초로 늘렸습니다. 때로는 1/30초로도 찍지만, 제 헌책방 사진은 거의 모두 1/15초나 1/20초입니다. 저로서는 마땅하게도 세발이를 받치지 않고 이렇게 찍습니다.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으레 1/20초나 1/30초에 머물고 셔터빠르기를 더 넘기지 않습니다. 요사이에는 1/30초나 1/40초쯤으로 맞추곤 합니다. 헌책방마실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손이 쉬지만, 골목마실은 여러 시간을 쉴새없이 사진기를 쥔 채로 돌아다니다 보니 손이 쉴 겨를이 없어 손떨림이 꼭 나타나더군요. 1/20초로 찍을 때에는 아깝게 버려야 하는 사진이 반드시 나옵니다.

 골목마실 사진은 모두 디지털사진으로만 찍습니다. 골목마실 사진을 필름사진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지만, 이러다가는 필름값을 짐질 수 없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골목마실 사진을 필름으로 담을 때에는 여느 35밀리 사진이 아닌 105밀리 중형 가운데 파노라마사진기로 담고 싶습니다. 파노라마 중형사진기 필름사진이 아니라면 골목마실 사진을 따로 필름으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사진으로 거의 날마다 200장쯤 골목 사진을 빚어 놓으면서 저로서는 ‘사진을 무척 적게 찍는다’고 느낍니다. 숫자로 치면 200장이 많다고 여길 수 있지만, 저는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 골골샅샅 누비면서 담으니까 조금도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한 집 한 가지 모습에 꼭 한 장만 딱 한 번 찍습니다. 손떨림을 느끼면 다시 찍지만, 이런 일은 드뭅니다. 필름사진을 할 때에만 ‘한 장 찍으면 돈이 얼마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사진을 할 때에도 ‘군더더기로 더 찍으면 군더더기 사진을 파일로 만지느라 내 아까운 품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값도 돈입니다. 시간도 돈입니다. 그러나, 돈을 잃는다는 생각 때문에 아껴 찍지 않습니다.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 때문에 잘 가누면서 찍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과 시간보다 훨씬 마음을 쓸 대목이 있다고 여깁니다. 돈과 시간을 아무것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만, 돈과 시간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나한테 가장 반갑고 즐겁고 훌륭하고 거룩한 사랑이느냐입니다. 내 사랑을 아름답게 펼치는 사진이냐 아니냐를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내 사랑을 따뜻하게 담아내는 사진이 되느냐 아니냐를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사랑을 넉넉하게 펼칠 줄 아는 사진으로 자리매기느냐 아니냐를 곱씹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에 붙은 말마따나 말은 삶이고 삶은 말이든, 사진은 삶이고 삶은 사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 사진쟁이 한길 걷는 강운구 님이 하고픈 말이란


 강운구 님이 사진과 글로 엮어 놓은 《시간의 빛》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사진밭에서 강운구 님 이름은 무척 드높습니다. 강운구 님 스스로 당신 이름을 드높다고 여기실는지 안 여기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강운구 님은 이름이 드높습니다. 다만, 제아무리 이름 드높은 강운구 님이라 하지만, 이 높은 이름값에 견주어 당신 사진책은 얼마 안 팔립니다. 다른 사진쟁이 사진책과 댄다면 무척 많이 팔리는 셈이지만, 이 나라에서 ‘사진한다’고 하는 숱한 사람들 숫자를 어림해 본다면 너무 안 팔리는 노릇입니다.

 하기는, 이 나라에서 사진책은 참 낮은대접입니다. 사진기 팔리는 모양새를 본다면, 사진책 팔리는 모양새는 참 까마득합니다. 사진기를 장만한다고 사진책을 꼭 사서 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진읽기 없이 사진찍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글읽기 없이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림읽기 없이 그림그리기를 할 수 있는지 갸우뚱합니다. 노래듣기 없이 노래부르기를 할 수 있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춤 잘 추는 사람 춤을 구경해야 내 춤을 잘 출 수 있지는 않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노래를 들어야 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테두리에서 헤아린다면, 나 스스로 내 춤과 노래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가슴팍이라 할 때에는, 내 둘레에서 춤과 노래를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펼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글 하나 아름다이 여미려고 한다면, 내 둘레에서 더없이 아름답게 글을 여민 사람들 열매를 찬찬히 살피면서 글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찾아나서려는 몸짓이 없이 나 스스로 아름답다 느낄 사진찍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요? 사랑스러운 사진을 알아보려는 매무새 없이 나 스스로 사랑스럽다 느낄 사진찍기를 즐길 수 있을까요?


.. 이 세상에서, 인류사에서, 이 땅에서만큼 빠르게 온갖 것을 뒤죽박죽으로 바꾼, 아니 버리고 새로 시작한 경우가 있었을까? 그러고도 걸핏하면 반만년 역사나 선조들의 지혜를 들먹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제의 길은 오늘은 길이 아니며, 어제의 풍경은 오늘 이미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말하자면, 온 나라가 고속도로와 고층아파트가 되려고 한다. 온 나라가 공사판이다 … 한때는 서울 광화문 지하도 입구에서 풍란이나 춘란을 가마니로 쌓아 놓고 헐값으로 팔기도 했다. 다 저 남쪽의 무인도 같은 곳 절벽에 핀 것들을 쓸어담아다가 여러 사람이 골고루 나눠 가진 뒤에 골고루 죽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험해서 자태 귀하고 향내 좋은 것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 사람들은 흔히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또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그 자체로서 바라보기보다는 어떤 평판과 그에 깃든 사연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순박한 메밀밭을, 메밀밭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서보다는 한 소설의 무대로서 바라보기를 더 좋아한다 ..  (9, 27, 129쪽)


 강운구 님이 글과 사진으로 엮은 《시간의 빛》을 곰곰이 삭여 읽으면서, 빛느낌 좋은 사진을 듬뿍 느끼는 한편, 어쩐지 이 책에서는 사진읽기를 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더없이 맑고 고운 사진과 글이라서 더없이 맑고 고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군더더기가 자꾸자꾸 보입니다. 강운구 님은 ‘군더더기 남기지 않으며 사진찍기를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왜 당신이 쓰는 글에서는 ‘군더더기 가득한 모습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찍기를 잘하는 사람이 글쓰기까지 잘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잘하고 못하고 하는 갈래나눔이 아닙니다. 사진 하나에 아름다움과 사랑을 담는 님이라 한다면 글 한 줄에도 아름다움과 사랑을 담아야 할 텐데, 빈틈과 티끌은 하나 없는 사진이요 글이라 하지만, 보기좋음을 감싸면서 가슴찡함으로 울리는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강운구 님 글이 어수룩하거나 어리석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강운구 님 글에는 우리 삶터를 읽어내어 당신 깜냥껏 삭여내되 보드랍고 너그러이 감싸려는 손길이 어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산울림처럼 외곬로 내보내기만 하고는 돌아오지 못하는 목소리로 머뭅니다.


.. 여수까지 가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기후가 수상해서 나라 안의 꽃피는 질서가 없어졌다. 서울 시내야 공해로 감싸인 곳이니 진달래가 일찍 피는 것이 당연하지만, 위도에 상관없이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피어 분홍빛으로 ‘봄봄봄’ 하고 있었다 … 천 년 전 융성했던 폐허에 아직 당당하게 곧추서 있는 탑 그늘의 남루한 폐허에도 환한 봄은 왔다. 16만 원어치 더덕 모종을 심는다고 노인이 말했다. “그러면 그걸 언제 수확하나요?” “삼 년 뒤에나요.” “그땐 그게 얼마어치나 됩니까?” “몰라요. 그걸 지금 알 택이 있겠십니껴.” … 보리가 건강에 좋다면서도 먹는 사람이 없으니 보리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일손이 달리는 판에 노동력의 대가를 주지 못하는 농사는 포기할 길 말고는 없게 되었다 … 조선 소도 서양 소들처럼 사육되는 목장이 많이 생겼다. 한우 고기를 생산하는 소와 그 주인은 교감 따위가 필요없다. 오로지 팔기 위한 것이므로 많이 먹여 빨리 살만 찌게 하면 된다 ..  (36, 49, 74, 137쪽)


 바라보는 목소리를 넘어 살아내는 이야기로 글과 사진을 아로새길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은 아직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남 이야기를 하기 앞서 저부터 스스로 옳고 알차게 해내지 못하면서 바라기만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내자고, 이 사람을 부둥켜안자고 하는 땀방울이란 ‘펜굴림’으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진기쥠’으로도 이루지 못합니다. 펜을 붙잡은 손을 넘어서는, 아니 펜을 붙잡는 손을 아우르는 발걸음과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손을 넘어서는, 아니 사진기를 쥔 손을 어우르는 손품과 몸놀림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담는 손에서 지식을 다루는 손이 되었다면, 지식을 녹여내어 지식을 살아내는 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자연을 바라보거나 쉬러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건강을 얻기나 하려는 그런 거지들은 꼭 달리기 경주처럼 산을 오르내린다. 산뜻하게 깨어나는 자연, 길섶에 핀 샛노란 제비꽃 양지꽃 들을 무참히 밟으며 씩씩하게 오르내린다 … ‘풍경’이나 좋으라고 다랑이논에서 소로 써레질을 계속할 리는 없다. 우리는 지킨 전통보다 버린 것이 더 많다. 소와 맺어 온 오래된 인연도 끊기게 되었다. 농가 울타리 안에서 소와 개와 닭은 늘 한식구로 살아왔다. 닭은 늘 경계하며 겉돌았고, 개는 아이들과 친했으며, 소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 … 비록 감상적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이 제시하는 조건을 웬만큼은 무시하며 살아간다. 비가 와도 출근해야 하며, 눈이 와도 일은 해야 한다. 계절 때문에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식물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  (54, 66, 97쪽)


 좋은 생각은 좋은 삶이 되면서 좋은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람을 찍건 자연을 찍건 들판을 찍건 노을을 찍건 빛줄기를 찍건 구름을 찍건 나무를 찍건 연날리기를 찍건 꽃송이를 찍건 연탄재를 찍건, 이 사진 하나하나에는 바라보기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 이야기를 함께 스며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진쟁이가 아닌 ‘작가주의’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새내기 사진쟁이가 아닌 ‘사진길을 어느새 마흔 해 즈음 걷고 있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풋내기 사진쟁이가 아닌 ‘우리 고유한 풍경을 가장 한국 내음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찍는다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음이란 무엇일까요. 한국 내음이란 어떤 느낌일까요. 우리한테 고유한 넋이나 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우리한테 고유한 넋과 얼을 어느 만큼 간수하고 있을까요. 강운구 님 스스로 살아내는 한국 내음이란 어떤 모습이나 빛깔일까요. 강운구 님 스스로 즐기면서 나누는 고유한 넋과 얼이란 무엇일까요.


.. 쓰레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높고 깨끗한 곳에 모셔져 있었다. 그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은 작은 산의 마루께는 고창읍의 쓰레기 매립지였다. 아마도, 어떤 마을과도 마찰이 없는 곳에 은밀하게 자리잡은 것일 터이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더라도 속은 풍경에 전혀 감동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 보기 좋은 풍경을 찾는다고 꼭 이름난 곳에만 갈 이유는 없다. 풍경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으며, 뜻밖에 만나는 풍경이 더 신선하다. 같은 곳을 다시 가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계절이나 환경이 바뀌기도 하고,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또는 사람이 생활하는 풍경과 자연의 풍경은 늘 동떨어져서 따로만 있다 … 제도권 밖에 있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고는 결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벼슬이 낮거나 아예 없는 것들에서 신선한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다 ..  (117, 119, 216∼217쪽)


 강운구 님은 1994년에 〈우연 또는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첫 사진잔치를 열었고, 1998년에 〈모든 앙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사진길을 걸은 지 서른 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니어링 부부 이웃에서 살던 사람들은 당신들과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살아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다는데, 저는 1994년과 1998년 강운구 님 사진잔치를 두 눈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던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진을 보고 배울 수 있으니 그지없이 반갑다고 느낍니다. 좋은 모습을 헤아리면서 배우고, 아쉬운 모습 또한 살피면서 배웁니다.

 그러고 보면, 강운구 님이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도록 대단하기만 하다면 좀 재미없는 사진이며 글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참 좋은 사진이요 참 애틋한 사진인데 어느 한 구석에서는 ‘어딘가 허전한걸?’ 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진길을 걷는 뒷사람으로서 제 깜냥껏 새 눈길을 트고 새 손길을 갈고닦으며 새 마음길을 추스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몹시 적지만, 강운구 님은 1975년에 ‘공간’이라는 출판사에서 《내설악 너와집》이라는 사진책을 한글판과 영어판으로 나란히 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 ‘공간’ 출판사는 임응식 님 《비원》과 《종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진책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공간 출판사가 이무렵 내놓은 《종묘》에는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대표가 되는 종묘 사진’이 시원스런 판짜임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책은 임응식 님 《종묘》이지, 강운구 님 《내설악 너와집》이 아닙니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담은 강원도 내설악 너와집인데, 무지개빛사진이 아닌 흑백사진으로도 이토록 아름답게 담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저로서는 강운구 님 사진책 가운데 이 《내설악 너와집》을 가장 사랑하고 아낍니다. 더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안승일 님 사진책 《굴피집》이 한결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두 분 모두 빼어난 분이요, 두 사진책 모두 훌륭하지만, 《굴피집》에는 굴피집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굴피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둘러싼 자연 터전 이야기가 고이 묻어나 있고, 《내설악 너와집》에는 사람들 발자취와 사람들을 둘러싼 자연 터전 모습만 곱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설악 너와집》이나 《굴피집》이나 100번을 넘게 되읽고 되읽지만, 《내설악 너와집》을 되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습니다. 《굴피집》은 되읽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하고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지만.

 아쉽게도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에, 《내설악 너와집》을 몹시 아끼고 사랑하면서 간수하고 있지만, 강운구 님 사진밭에서 ‘이야기 찾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975년에서 서른 해가 지난 2004년이었다면, 무언가 ‘다리품 팔며 이 땅 곳곳을 누빈 당신 땀방울이 깃든 이야기’가 넌지시 사진으로 실리고 조용히 글로 여미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에서마저도 이야기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녁에》에서도 이야기는 스며들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왜 강운구 님은 당신 사진에 이야기를 깃들이는 손길을 여미지 않을까요. 아니, 못할까요. 아니, 스스로 더 다가서지 못할까요.

 좋아하는 분이요, 사랑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 대목을 늘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쉽고 안타깝기 때문에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 저부터 한결 새로워지며 나날이 거듭나자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아닌 반가움이나 고마움으로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강운구 님이 걸어온 사진길은 100%를 빛내는 사진이 아닌 98%로 아름다운 길을 걷는 발자국이었는지 모르니까요. 아무리 강운구 님 사진밭이 알차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 하여도, 너무 높은 이름이 아닌 작고 따사로운 동네 아저씨 바지저고리로서 들려주는 사진 목소리인지 모르니까요. (4343.1.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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