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 2010년 올해에 "헌책방 이야기" 세 번째 낱권책을 써내려 하는데, 시간이 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벌써 여섯 해가 지난 2004년에 내놓은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놓고, 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는가를 밝혔던 글을 크게 손질해서 걸쳐 놓는다. 2004년이면 아직 '글과 말을 한창 가다듬으며 고치던 무렵'이라서 내가 쓴 내 글임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2010년 오늘 쓰는 글 또한 앞으로 2020년이 되어서 돌아본다면 다시금 못마땅할 테지. 2030년이나 2040년을 맞이한 때에도 나 스스로 내 글에 별을 다섯 꾹꾹 눌러 채워서 줄 수 있게끔 더 갈고닦으며 애써야겠다고 느낀다 .. 










 1. 모든 책은 헌책이다 (그물코 펴냄,2004)
 : 헌책방 사라질까 걱정되어 쓴 책



 (1) 왜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냈는가?


.. 그저 인터넷과 헌책방 소식지로만 조용히 헌책방 이야기를 하고팠지만, 이러다가는 헌책방이 다 사라질지도 모르고, 헌책방을 소중한 책 문화와 책 쉼터로 느끼지 않거나 못하는 아쉬운 우리 현실과 눈높이를 가다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  (머리말)


 저는 ‘울타리 허물기’를 좋아합니다. 일부러 울타리를 허물지는 않으나,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울타리’가 참으로 많다고 느낍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서 모두들 쉬쉬하거나, 뒷꽁무니에서 몰래 울타리를 넘나들며 제 뱃속을 채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런 울타리 없이’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2004년 여름과 가을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우리 말 강의를 했습니다. 이때 국립국어원에서는 저보고 양복에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오라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하더군요. 첫날은 그렇게 차려입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혼인잔치에서도 양복 차려입기를 힘들어 하는 저로서는 양복 옷감에는 두드러기가 납니다. 출판사에서 영업일을 할 때에도 우리 옷을 갖춰 입은 저로서는 참 죽을 맛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강의를 앞으로도 해야 하나 생각한 끝에, 저는 제 길대로 살며 제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니, 다음 강의부터는 양복을 벗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자전거를 몰고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건물 지킴이가 ‘웬 미친놈이 다 들어오나?’ 하면서 부리나케 달려와서 제 앞을 가로막더니, 제가 국립국어원에서 ‘강사로 모신 분’임을 안 다음부터는 꼬박꼬박 거수경례를 붙이더군요. 강사가 꼭 양복 차림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머리에 지식을 가득 넣은 분들을 비롯하여, 건물을 지키는 분들까지도 옷차림으로 사람을 재고 따지는 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아니, 난 분이든 든 분이든 찬 분이든 빈 분이든 하나같이 양복차림입니다. 가벼운 옷이나 시원한 옷을 입고 잘 가르치는 일이 우리한테 더 좋지 않을까요? 값싸고 겉치레하지 않는 옷으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이 우리한테 더 즐겁지 않을까요?

 헌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헌책방 문화밭에도 ‘높직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어느 헌책방에서든 그곳 이야기만 해야지, ‘그곳 아닌 다른 헌책방 이야기’나 ‘다른 헌책방을 알려주는 일은 하지 말’도록 말없이 서로서로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꾸리는 헌책방에서 다루지 않거나 없는 책이 있을 때에도, 웬만한 헌책방 임자들은 “다른 헌책방에 가도 없는 책이다” 하고 딱 잘라 말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헌책방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헌책방이 있고, 제가 알기로는 당신 헌책방이 아닌 다른 헌책방에 바로 그 책이 틀림없이 있는데에도 그리들 말했습니다. 제가 ‘헌책방 길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이 한 동네 곳곳에 깃들어 있는 헌책방을 두루두루 다닐 수 있도록 길잡이를 삼고자 나누어 주면, 헌책방 일꾼들은 이 길그림을 썩 못마땅해 했습니다. 당신 가게로 찾아오는 책손이 다른 가게로 빠져나갈까 걱정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더 나은 헌책방도 더 나쁜 헌책방도 없는데, 책을 500원이나 1000원 더 싸게 파는 곳이 훨씬 좋은 헌책방이 아닌데, 우리 나라에는 헌책방 조합이 없기도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 서로서로 돕는 마음바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책손도 다르지 않습니다. 헌책방 헌책은 ‘세상에 딱 한 권’일 때가 잦다 보니, 헌책방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정보는 아주 ‘고급’ 정보였고, 이 같은 정보를 다른 이(경쟁자)한테 눈꼽만큼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서울 시내에 있는 250군데쯤 되는(2004년 요즘 잣대로) 헌책방을 그분들이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웬만한 분들은 그럭저럭 이 많은 곳들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저 일부러 아는 척을 안 할 뿐이요, 당신들이 바라는 ‘좋은 책이 나오는 텃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제가 그리는 헌책방 길그림 때문에 고급 정보가 새어나갈까 봐 몹시 안절부절해 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도 싫고 저 모습도 싫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웅크리며 살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왜 내가 더 가지려 하는가요. 좋은 책을 다루는 마음밭이라면 좋은 넋을 키워야지요. 좋은 책을 읽는 마음그릇이라면 좋은 얼을 가꾸어야지요.

 나날이 헌책방이 사라지고 죽어 가는데, 이러한 헌책방 정보와 소식을 널리 나눠서, 헌책방을 즐겨 찾는 이와 헌책방을 그럭저럭 가는 이와 헌책방을 아직 잘 몰라서 안 거나 못 가는 이 누구한테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94년부터 헌책방 나들이 이야기를 글로 썼어요. 박상준 님이라고, sf책을 즐겨 찾는 분이 쓴 ‘헌책방 순례기’가 열두 꼭지 있는데, 이 열두 꼭지에서 미처 다루지 않은 헌책방을 바탕으로 사람들한테 널리 알려지지 못한 헌책방을 찾아내어 이야기해 주고 길그림을 그리며 소식지를 펴내어 좀더 많이 즐겁게 헌책방을 드나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1998년 1월 6일에는 〈헌책방 사랑 누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식으로 헌책방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2000년 9월 14일부터 헌책방 이야기를 올리며 더욱 널리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해에 걸쳐 차곡차곡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돈있고 이름있는 출판사 세 곳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으나 모두 손사래를 치고, 나라안에서 내로라할 이름도 돈도 힘도 없는 작디작은 생태환경책 출판사인 ‘그물코’에서 인세를 안 받기로 하면서, 드디어 2004년 5월에 그동안 쓴 글을 갈무리하여 책 한 권으로 엮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숱한 헌책방에서 고마움을 듬뿍 받았고 수많은 헌책에서 사랑을 널리 얻었으니 이름난 출판사에서 큰돈 받고 책을 내는 일은 꺼림칙했습니다. 조용히 한길을 다부지게 가는 출판사에서 아무 돈 안 받고 책을 내어 헌책방마다 돌며 제 책을 선물해 드리는 길이 제가 그동안 받은 따스함을 갚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2) 책에는 무얼 담았나요?


.. 헌책방에는 고운 옷차림으로 오지 마세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쌓인 책을 고개 숙여서 볼 마음가짐으로 오세요. 두어 시간 동안 먼지 구덩이 속에 파묻혀서 옷과 얼굴과 손에 시커먼 책 먼지를 묻힐 마음가짐으로 오세요. 그러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이 반갑고 즐거운 ‘내가 모르는 좋은 책’을 헌책방에 한 번 갈 적마다 한 권씩 꾸준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  (24쪽)


 먼저,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싸구려 책, 교과서와 문제집, 아이들 책 전집 …… 으레, 헌책방 헌책은 이러한 줄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기 앞서나 이 책을 내놓고 나서나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내놓은 다음 신문잡지방송 기자들이 헌책방을 엉뚱하게 바라보며 엉터리로 다루는 기사를 바로잡으시라고 퍽 긴 편지를 써서 보내는 한편 제가 낸 책을 읽어 보시라고 했지만, 한 번도 ‘잘못된 기사가 바로잡힌’ 일이 없습니다.

 참말로 헌책방에서는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요?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헌책방에서 어떤 책을 만나고 있을까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헌책방을 취재하면서 늘 하는 말이 ‘가장 오래된 책’은 무엇이고, ‘가장 귀한 책’은 어떠하느냐는 타령입니다. 틀림없이 무척 오래된 책이 있는 헌책방이요 퍽 드물며 애틋한 책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은 이렇게 ‘값비싼 옛책(고서)’만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늘 살아 움직이는 책을 다루는 곳이요, 세월이 백 해가 흐르건 이백 해가 흐르건 우리들이 즐겁게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있는 곳입니다. 언제 보아도 새로우면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책을 만나는 곳이 바로 헌책방입니다.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 하여 수십 수백 권을 갖추어 팔 수 없는 헌책방입니다. 거의 한두 사람한테만 팔 수 있는 책을 갖가지로 갖추는 헌책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들어와서 그때그때 팔리기에 바지런히 다리품을 파는 사람과 곰곰이 헤아리는 눈썰미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헌책방 헌책을 알아보기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새책방은 새로 나온 책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어느 주제 하나와 얽힌 책을 널리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헌책방은 갓 나온 책부터 나온 지 아주 오래된 책에다가, 도서관에서 ‘폐기 대상 도서’라는 이름을 붙이며 버리는 책하고, 학교에서는 ‘맞춤법이 옛날 얼개로 된 책’이라 하며 버리는 책과 함께, 사람들이 살림집을 옮기며 ‘짐덩이가 되기에 내놓는 책’까지 두루 받아들여 나누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버리는’ 책이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둘도 없는 보배’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책과 좋아하는 책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이와 같은 ‘다름’을 아주 온몸으로 느끼는 곳이 헌책방입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팔리지 않겠다’ 싶어서 버리는 책이지만, 이렇게 버려지거나 책시렁에서 사라지는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 문화사와 언론사와 생활사를 밝히는 소중한 자료가 많습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박정희 씨가 1961년 5월 30일에 뿌린 《지도자도》라는 책자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물러난다”는 조항을 넣은 팜플렛인데, 박정희 씨가 삼선개헌을 하면서 죄다 거두어들여 불태워 없애려던 책자입니다. 이런 책자는 새책방이나 도서관에 없어요. 어쩌다가 헌책방으로 흘러나오면, 또 고물상에 들어갔는데, 그 고물상을 찾아온 샛장수(중간상인)가 찾아내어 헌책방에 내다 팔면, 이제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2010년 1월에 드디어 2심 판결이 나온 ‘유재순-전여옥 판결’이 있습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는 2004년부터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정 다툼에서 말이 많은 책 《하품의 일본인》(청맥,1994)이 어떠한 책인가를 알아볼 길이 있겠습니까? 이 나라 도서관에 유재순 님이 쓴 《하품의 일본인》이 번듯하게 자리잡고 있을까요? 그러나, 이 책은 헌책방에는 있습니다. 다만, 늘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 헌책방에는 이 책이 들어옵니다. 저도 이 책 《하품의 일본인》을 헌책방에서 세 번 만났습니다. 〈월간조선〉 기자 조갑제와 정호승이 함께 지은 《김현희의 하느님》(고시계,199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쓰는 정호승 님이 〈월간조선〉 차장으로서 조갑제 씨한테서 배웠음을 아는 분은 생각 밖으로 퍽 드뭅니다만, 이 두 사람이 《김현희의 하느님》 같은 책을 함께 쓴 줄을 아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다른 때도 아닌 전두환-노태우 두 군사독재자가 정권을 움켜쥐고 있을 때에 〈월간조선〉 기자로 일하며 낸 이 책 또한 도서관에서 찾아볼 길이란 없습니다. 아주 마땅하게도 헌책방을 뒤지고 훑으며 찾아냅니다. 《백두산의 옛 전설》 같은 북녘책이나, 《조선족백년사화》 같은 연변책 또한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는 갖추지 않습니다. 정치나 사상하고는 아무런 이음줄이 가 닿지 않는 이 같은 책들이라면 이 나라 새책방과 도서관에서도 갖추어 주면 좋으련만, 이런 책마저 남녘땅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 눈밝히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 서울에서 파는 헌책과 제주에서 파는 헌책과 대구에서 파는 헌책과 청주에서 파는 헌책이 다릅니다 … 헌책방 헌책은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또각또각 단추를 누르며 주문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 헌책은 책으로서도 값어치가 있고 책에 담은 줄거리로도 우리에게 즐거움과 일깨움을 줍니다. 나아가 옛 느낌을 지금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다른 이가 읽은 낡거나 오래된 책’만을 헌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  (56∼58쪽)


 다음으로는 ‘헌책’이 무언지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을 찾아가 보면 서로 엇비슷해서 어디를 가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 비슷합니다. 이 책방에 가면 이 갈래 책이 더 있다거나, 저 도서관에 가면 저 갈래 책을 남달리 갖추었다고 하는 빛깔이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 도서관은 공부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네 새책방은 잘 팔리는 책으로 장사하는 돛데기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은 새책방이요 도서관입니다.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든, 서울 시내 어디를 가든 다 다른 헌책방입니다. 동네헌책방이든 큼직한 헌책방이든 모양새와 매무새가 다릅니다. 갖춘 책이 다르고, 사고파는 책값이 다릅니다. 어느 곳에서는 어린이책이 값싸고, 어느 곳에서는 인문사회과학책이 값쌉니다. 대전에는 대전과 충청도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헌책이 있고, 광주에는 광주와 전라도 문화와 사회를 엿볼 수 잇는 헌책이 있어요.

 우리가 다리품을 팔면서 찾아가 둘러보고 헤아리며 사들이는 헌책 하나는, 오래된 종이를 만지는 느낌뿐 아니라, 책을 처음 만들었을 때 느낌과 때로는 지은이가 누군가한테 선사한 자국을 보면서 받는 느낌까지 풋풋하게 내 마음속로 삭이거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줄거리만 살피지 않습니다. 책 한 권과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째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책 문화가 더없이 낮습니다. 우리는 ‘경제 선진국’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돈벌이에만 목매달고 있는 탓입니다. 앞선 나라가 되자면, 돈만 잘 버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 누구나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경제 선진국이란 그지없이 못난 이름이요, 참다운 앞선 나라라 한다면, ‘문화 선진국’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이리하여,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건물임자가 멋대로 뻥튀기하듯 올리는 가게세 때문에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헌책방이 건물 한켠에 들어오면 다시 옮기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쓰고 도와줄 수도 있는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헌책방만이 아닙니다. 자그마한 새책방 하나가 깃들어도 오래오래 자리잡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 헌책방은 ‘책방 장사’가 아닌 ‘고물 장사’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아직까지도 적잖은 이들은 ‘헌책방 = 고물 장사’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새책 장사이든 헌책 장사이든 똑같은 책장사인 줄을 깨닫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헌책방 장사를 아주 낮보고 깔보는 셈입니다. 우리네 헌책방은 언제 한 번 제대로 책 문화로 꽃피우지 못하는 찬밥 대접이었고, 낡아빠진 책이나 팔아먹는 ‘떨거지’쯤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생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3) 나는 계약서를 이렇게 썼다


 1.저작권법 제3장 출판권의 조항을 따른다.
 2.인세는 책에 매긴 값으로 따져 10퍼센트로 하되, 팔린 부수로 셈한다.
  (팔린 부수가 10만 권 단위로 넘을 때에는 1퍼센트씩 올린다.)
 3.출판권자가 책이름을 짓고 책값을 매긴다.
 4.지은이한테 첫 판은 10권, 새로 찍을 때에는 3권을 보낸다.
 5.지은이가 책을 살 때에는 책에 매긴 값으로 따져 70%로 판다.


 지난 2003년부터 올 2004년에 걸쳐 저작권법 공부를 아주 부지런히 했습니다. 저작권법이란 ‘저작물을 만드는 사람(책이나 노래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공연이나)’한테 권리를 지켜 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작권법이 나쁘게 쓰이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출판사에서 지은이한테 내미는 ‘출판권 설정 계약서’를 보면, ‘대한민국 저작권법’을 거꾸로 풀이해서 저작권자한테 있는 권리를 빼앗아 마치 출판사한테 그러한 권리가 있는 듯 쓰는 일이 흔합니다. 제가 몸담았던 출판사도 그러했고, 제가 아는 분들 출판사도 그러합니다. 저작권협회에서 만든 틀과는 사뭇 다릅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우리한테는 우리 얼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책을 내려는 저작권자나 책을 펴내는 출판사나 저작권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계약서를 쓰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더군요. 따지고 보면, 책이름이나 책값을 출판사 마음대로 붙일 수 없습니다. 저작권법을 보면 책이름이나 책값은 저작권자(글쓴이)하고 뜻을 모아서 붙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는 겉그림과 판크기와 종이까지도 저작권자와 ‘협의’하라고 밝혀 놓습니다. 교정과 교열도 저작권자가 할 몫으로 되어 있으며, 다만 출판사에서 ‘도와줄 수 있다’는 보탬말이 있습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인데, 저작권자는 책에 얽힌 모든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출판사는 출판권자로서 책을 만든 다음에 ‘파는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출판사가 ‘책을 제대로 팔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저작권자는 언제라도 이 책을 판매중지를 시킬 수 있도록 저작권법에 똑똑히 나와 있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까지 물릴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약서’에 낱낱이 밝히는 출판사는 아직까지 못 보았습니다.

 그래, 그물코 출판사하고 계약서를 쓸 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계약서는 제가 준비할게요.” 하고요. 그러면서 조항을 딱 다섯 가지로 줄여서 계약서를 마련했습니다. 요즈음은 계약서를 쓸 때에 다른 조항은 하나도 안 넣고 오로지 하나, 1번만 넣습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일부개정 2003.5.27 법률 제06881호)을 따른다”고만 적어 넣습니다. 이런저런 군말이란 부질없고, 그저 우리 법률에 나와 있는 대로만 하면 잘못되거나 어긋날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책을 낸 출판사에서는 계약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4) 책을 엮은 사람한테 듣다


 제 책을 내기 앞서, 제 책을 내주겠다고 한 출판사 일꾼한테 몇 가지를 여쭈었습니다. 먼저,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낼 까닭이 있었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없어져 가는 것들, 꼭 있어야 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을 조용히 한 사람이 오래 찾은 것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 헌책방을 가면 더 많이 찾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궁금해서라도 한 번 가 보면 자기 나름대로 헌책방의 매력을 찾게 될 거 같아요. 찾고 싶던 책을 찾게 되는 그런 것들 … 그래서 저와 사장님도 이 책을 낸 뒤 헌책방을 자주 가게 되었어요. (절판되어 찾기 어려운) 만나고 싶던 책도 만나게 되었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책을 내며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요?” 하고 여쭈었고, 출판사 일꾼은, “가장 빨리 눈에 띈 건 틀린 글씨 많은 거, 표지. (표지를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낱말모음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찾아가는 길그림이 다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자 마자 이사하고 없어진 헌책방이 있고. (버스길도 다 적었는데, 이명박 시장이 7월 1일부터 버스길을 다 바꾸는 바람에 쓸모없이 되어 버리기도 했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물코 출판사는 환경책을 전문으로 내는 곳인데,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과 환경은 어떻게 이어진다고 보시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쓰고 버리지 않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중간 장치, 중간 기능이랄까요, 책에서 ‘하수구 기능을 하는’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다시 읽을 수 있고, 읽을 만하고, 읽으면 좋은 책인데, 그걸 버리지 않고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 굳이 새 거 사지 않고 헌책 찾아 읽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5) 헌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꾸기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 실은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꼭지를 보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헌책방에서 만난 신문자료를 다룹니다. 언젠가는 1940년에 나온 〈조선일보〉 호외 한 장을 헌책방에서 찾았는데, 그 호외는 일본 내각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알렸습니다. 호외는 잠깐 뿌리고 사라지기에 쉽게 만나기 어렵지만, 신문이 흘러온 역사를 밝혀 주는 소중한 언론사 자료예요. 이런 자료를 하나하나 만나다 보면 잊혀지고 감춰졌던 우리 역사를 차근차근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이나 자료가 뭐 대단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지만, 그런 물음에는 늘 “참으로 대단하답니다” 하고 대꾸하곤 합니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교수,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서울대 신용하 교수를 비롯해 숱한 교수와 기자와 지식인들이 헌책방에서 소중한 자료를 캐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갈래와 얽힌 자료를 찾아내고자 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분들 누구나 헌책방에서 만나는 자료를 놓고 한낱 ‘종이뭉치’라 하거나 ‘싸구려 헌책’이라 하지 않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애틋한 책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헌책방이라는 곳은 소중하거나 애틋한 역사 자료라든지 생활문화 자료를 캐내는 곳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이삿짐 뭉치와 함께 이러저러한 자료가 함께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평론가 정진국 씨는 《잃어버린 앨범》(눈빛)이라는 책에서 ‘사진관에서 찍는 가족 단체 사진’이 우리네 옛 생활문화 역사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헌책방을 다니다 보면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떠나는 집에서 내놓은 ‘사진첩’을 가끔가끔 구경하곤 합니다. 이 낡은 사진첩은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이 어떤 옷차림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가를 살펴보도록 돕는 자료가 됩니다. 말 그대로 ‘생활문화 역사’를 보여줍니다.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그렇습니다. 서울 불광동 〈작은우리〉 꼭지에서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때, 베트남에서 보낸 ‘군사우편’ 봉투와 얽힌 여러 이야기를 다룹니다. “새마을 웃음을 짓는 국군장병”, “색출하자 붉은 마수” 그림이 들어간 끔찍한 엽서 …… 이 모두가 제도권 안쪽에는 거의 드러나지 못한 채 파묻히고 있는 우리 삶 발자취입니다.

 시간을 죽인다거나 심심풀이로, 가벼운 소설 한 권 찾을 마음으로도 헌책방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가는 분이 많습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러도 헌책방에 갑니다. 좀 값싸게 책을 사고픈 마음에 가는 분이 많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고 다른 이야기이니, 다 다른 까닭으로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이런 책을 찾는 사람한테는 이런 책이 있고, 저런 책을 찾는 사람한테는 저런 책이 있습니다. 하이틴로맨스소설이 한켠에 꽂히고, 세계문학전집이 한켠에 꽂힙니다. 둘은 나란히 꽂히는 책이요 똑같이 사랑받는 책입니다. 높이와 낮이가 따로 없습니다. 깊이와 얕이 또한 따로 없습니다. 모든 책은 고르게 다룹니다. 모든 책은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서울 인사동 〈통문관〉 이겸노 님한테 ‘풀꽃상’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만, 〈통문관〉 큰일꾼한테뿐 아니라 여느 동네헌책방 일꾼한테도 똑같이 풀꽃상을 줄 노릇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그렇다고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 훈장을 받거나 공로패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고갱이는 ‘헌책방 장사’를 한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하나 쥐어주려고 애썼던 일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는 거지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아도 뒤에서 힘이 되도록 밑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밑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들은 헌책방 주인이기도 하고, 구멍가게 주인일 수도 있으며, 여관 주인일 수도 있고, 하숙집 주인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네들이 뭐 보상받겠다고 나서겠습니까 ..  (308∼309쪽)


 세상을 바꾸는 힘은 보통사람들 손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보통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바꾸고, 여론을 모아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뜯어고치고, 집회나 시위를 벌이기도 하면서 우리 나라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모든 일은 ‘보상이나 훈장이나 공로패’를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 함께 즐거웁고자 하는 일입니다.

 헌책방에서는 반가운 책 하나를 값싸게 만나기도 하지만 소중한 자료 또한 만납니다. 사람들 살아가고 부대끼는 모습을 느끼고, 우리한테 그지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싱그러운 자리가 어디이며 어떠한 모습인가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책과 사람이 하나하나 모이고 뭉치면서 바야흐로 우리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올망졸망 북돋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을 고이 품에 안으면서, 이 믿음에 살포시 힘을 실으면서, 우리들 보통사람 힘을 하나로 엮어낼 바탕을 배우는 ‘헌책 하나를 즐기자’는 뜻에서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 하나 어줍잖게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4337.9.6.달.처음 씀/4343.1.16.흙.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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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 좋아하세요? - 대전 동구청 앞 헌책방이 모여있는 거리
    from 생활미감,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행복 2010-04-15 11:08 
    헌책 좋아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에서 나는 향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그 향들이 좋아하죠. 그래서 가끔은 책이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헌책방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전에서도 그 향을 즐길 수 있는 운치있는 헌책방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위치는 대전 동구청 앞. 행정구역 상으로는 동구 원동(중앙시장길 100번지 일대). 서점의 수는 약 20여개가 모여있으며, 헌책 뿐만 아니라 고서적,..
 
 
카스피 2010-01-18 11:48   좋아요 0 | URL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예전에 본 책이네요.저도 헌책방을 자주 드나드는데 예전 최종규님과 같이 헌책방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올리신 헌책방지도가 많은 도움이 도었지요.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강원도,경상남북도(대구,부산은 제외)만 못가보고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것 같군요.심지어 제주도 한밭서점까지 다녀왔네요^^
그나저나 헌책방은 계속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새책도 워낙 안팔려서 헌책방으로 오는 책들이 많이 줄어서라고 오복서점 쥔장께서 말씀하시더군요.참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숲노래 2010-01-18 16:38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책을 '골고루 읽고 사랑하며' 내 삶을 따스히 보듬으면서, 헌책방뿐 아니라 동네 작은 새책방도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카스피 2010-01-25 22:18   좋아요 0 | URL
맨위의 사진은 지금은 증산동에 있는 예전 모아북 내부 사진같군요.두번째는 홍제 대양1서점 사장님같고,세번쨰는 뿌리서점 사장님 사진같고,마지막은 서울역부근에 있는 헌책방(갑자기 이름이 기억안나네요)사진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