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16 ― 아픔과 슬픔이 함께 있어 좋은 책
 : 고사명, 《산다는 것의 의미》



- 책이름 : 산다는 것의 의미
- 글 : 고사명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07.7.2.)
- 책값 : 8700원



 (1)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읽고 나누며 살기


 제가 더없이 사랑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한테 좋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찾아나서고, 두 손 두 다리 온몸이 고단하도록 책을 살핀 다음, 좋아하는 책을 쥐어들어 기쁘게 울고 웃으며 읽고, 이렇게 읽은 책을 옆지기한테 건넨다든지 느낌글을 쓰고 나서, 둘레에 건네주거나 느낌글을 쓰던 얼거리 그대로 저 스스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책을 찾아나서서 사고 읽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이란 저한테 둘도 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요 며칠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라는 일본 만화 하나를 보면서 이 같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 만화책은 200쪽이 채 안 되는 작은 판이요 2009년에 나왔는데 8000원이나 합니다. 요사이 만화책에서 8000원이란 값이란, ‘애장판’이나 ‘소장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400∼500쪽은 되는 녀석한테나 붙이는 값입니다. 여느 만화책 한 권은 요사이(2009년 첫머리∼2010년 첫머리)에 4200원 합니다. 그러니까, 여느 만화책 두 권 값이요 딱히 애장판이나 소장판도 아니면서 떡하니 8000원입니다. 아무래도 대본소판 만화가 아니라 이러한 값을 붙였다 할 텐데, 그래도 참 비쌉니다. 비싸기 때문에 한참 망설였는데, 책 뒤쪽에 ‘카마쿠라의 바닷가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봄볕처럼 따스하고 청량한, 네 자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이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어서 골랐습니다. 책값으로 8000원을 치르고 나서 ‘만화가 그저 그렇다’면 이 돈을 고스란히 버릴 뿐 아니라, 책을 읽던 시간마저 버리는 셈이지만, ‘카마쿠라 바닷가 마을’이라는 말마디와 ‘네 자매 속 깊은 이야기’에 이끌렸습니다. 우리로 치면 ‘보성 바닷가 마을’이나 ‘삼척 바닷가 마을’쯤 되는 터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 셈이요, 만화책에서 너무도 뻔하게 나오는 사랑타령과 판타지싸움판타령에서 훌쩍 벗어나 있거든요.

 만화책을 펼쳐 읽으며 꽤 괜찮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웃어야 할 대목은 신나게 웃도록 그림을 그리고, 울어야 할 대목은 북받쳐 울 수 있게끔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그마한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네 사람 애틋한 이야기를 담아낸 줄거리를 곱씹으면서, ‘왜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도 넓고 갖가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도 늘 뻔하고 너절한 이야기에 그치는 줄거리밖에 못 만날까’ 싶어 아쉽습니다. 무엇이든 서울로 모이고, 어떤 책이건 영화이건 뭣이건 서울을 다룹니다. 서울에서 서울 이야기를 쓰고 서울에서 사고팔립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오늘날 우리네 문화와 사회와 정치는 온통 ‘서울에서 생산하고 서울에서 소비한다’입니다. 서울에서 전철로 한 시간만 달려도 인천골목길이 있지만, 인천골목길을 놓고 ‘골목길이다!’ 하고 여기는 문화예술인이든 여느 사람이든 매우 드뭅니다. 부산사람 스스로 부산골목길을 얼마나 곰삭이고 느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릉에 사는 아끼는 동생은 강릉골목길이 참 예쁘다며 꼭 보러 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강릉골목길을 이야기한 서울사람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목포골목길이든 고흥골목길이든 고령골목길이든 진주골목길이든 영월골목길이든 화천골목길이든 …… 도시나 시가지를 이룬 곳에는 어김없이 있는 골목길, 논밭을 이룬 곳에는 반드시 있는 고샅길, 이들 자동차 아닌 사람들이 한복판에 서면서 빚어내는 살가운 삶마디를 알알이 느끼며 나누려는 움직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에 나들이를 가면 으레 여러 식구가 둘러앉아 연속극을 봅니다. 저는 이때에 비로소 연속극을 구경합니다. 여러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연속극을 죽 보노라면 늘 뻔하게 맺는 줄거리로구나 싶은 한편, 또 하나 늘 뻔하다 싶은 모습을 찾아봅니다. 바로, 어떠한 연속극이든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 한다면 모조리 서울에서만 찍습니다. 역사 이야기도 으레 궁중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서울이 무대입니다. 원주에서 펼쳐지는 연속극, 청주에서 이루어지는 연속극, 문경에서 펼쳐지는 연속극, 남원에서 이루어지는 연속극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지역에서 지역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이루어내고 전국사람이 함께 즐기는 연속극을 찍으려 하는 몸짓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 곳곳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모양새와 넋으로 살아내면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알차게 여미면서 서로 반갑게 껴안으려는 움직임은 도무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좋아한다는 책을 내놓는 출판사는 하나같이 서울에 있습니다. 이제는 땅값이 싼 경기도 파주로도 많이 옮겨 갔다지만(돈이 있는 출판사만 들어갔지만), 모두들 서울에서 돌고 돕니다. 서울에 있는 작가들이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어 서울에 있는 책방에서 팔리고 서울에 있는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루며 서울에 있는 헌책방으로 흘러든다고 할까요. 하기는, 인천에서 살고 있는 저부터 인천에서는 좀더 넓고 깊게 책을 만나기 힘들어 바지런히 서울마실을 해야 합니다.

 며칠 앞서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에서 “20세기 미술의 발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묶음책 가운데 하나인 《코코슈카》를 장만했습니다. 코코슈카라는 그림쟁이는 ‘오스카 코코슈카’입니다. 이분은 당신 그림에 ‘OK’라는 이름을 남겨 놓았습니다. 좋은 그림쟁이 좋은 그림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선물받아 참으로 좋다고 느끼는 가운데, ‘OK’라는 이름 때문에 한참 웃었습니다. 그저 ‘OK’라서 웃었습니다. 비아냥거리는 뜻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파벳으로는 ‘OK’이지만, 우리 말로는 ‘옥’이겠네 싶어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데굴데굴 구르는 나뭇잎을 보며 웃을 때가 있듯, 그냥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저하고 옆지기가 한참 웃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아기도 함께 웃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31일에 맞추어 사진책 《윤미네 집》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깃들인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은 몇 해 앞서 돌아가셨습니다. ‘윤미네 집’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 제사를 1월 1일에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삿날 하루 앞서 책이 나왔고, ‘윤미네 집’에서는 새해 첫날 차례상을 올리면서 《윤미네 집》을 두 권 함께 올려놓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란히 느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차례상이든 제사상이든 먹을거리만 올릴 수 있지 않구나. 차례상이든 제사상이든 우리 스스로 무엇을 기리고 아끼고 나누며 함께하느냐를 돌아볼 수 있구나. 다가오는 설에 우리 식구가 아무 데에도 갈 수 없다면 우리 깜냥껏 차례상을 차리고 지난해에 내가 써낸 책 몇 가지를 올려놓으며 옛어른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올려도 되겠구나.’

 제가 써낸 책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읽고 그지없이 좋았던 책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가운데 참 마음에 드는 녀석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격식이나 예절이라고 하지만, 격식과 예절에 앞서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격식이든 예절이든 맨 처음에는 마음을 바치거나 나누면서 사랑하려는 흐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눈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가슴팍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아닌 맨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하나 돌아볼 때에, 이 책들은 틀림없이 ‘좋은 줄거리’이거나 ‘훌륭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줄거리와 훌륭한 이야기를 넘어서면서 ‘따뜻한 마음’이요 ‘넉넉한 사랑’이었으리라 봅니다. 대단하지 못한 줄거리라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훌륭하지 못하다고들 일컫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넉넉한 사랑이 실려 있으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저는 제 두 눈이 아닌 제 마음으로 읽는 책이 좋습니다. 아니, 저는 열여섯 살 푸름이였을 때나 스물여섯 살 젊은이였을 때나 서른여섯 살 애 아빠일 때나 한결같이 제 마음을 톡톡 두드리면서 살포시 어루만지다가는 와락 껴안는 책이 좋습니다. 머리에 담는 지식이 가득한 책은 그저 자료로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과 믿음이 어우러진 책이라야 비로소 여러 해에 걸쳐 제 책상맡에 올려놓고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읽고 삭입니다. 새롭게 읽고 삭이기를 거듭합니다.


 (2)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란


 《산다는 것의 의미》는 오래된 책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지는 세 해이지만, 일본에서는 퍽 예전에 나왔습니다. 한겨레이지만 한겨레가 살아가는 남녘에서든 북녘에서든 뿌리내리지 못하고 일본에서 뿌리내린 한 사람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적바림한 책입니다.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아니요 일본사람 또한 아닌 떠돌이 같은 넋이 일본땅에서 부딪히고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괴로워 뒹굴던 이야기를 아주 차분하게 펼쳐내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모든 아픔과 슬픔을 딛고 섰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했으며 이 책을 써내는 그때에도 아픔과 슬픔이 늘 길동무처럼 옆에 나란히 있기 때문일 테지요. 아픔과 슬픔에 짓눌린 사람이 아니니까, 아픔과 슬픔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니까, 아픔과 슬픔이 우리 삶에서 좋음과 기쁨처럼 늘 곁에 있는 벗임을 깨달았다면 아주 차분하게 나 스스로 걸어온 길을 적바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삶이란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는 발자국입니다. 삶이란 괴로움과 싱그러움이 나란히 있는 걸음걸이입니다. 삶이란 고단함과 개운함이 엇갈리는 길목입니다. 삶이란 낮과 밤이 갈마드는 하루하루입니다. 내내 낮이지 않고 노상 밤이지 않습니다. 줄곧 어둠이지 않고 내처 밝음이지 않습니다.

 내내 낮이거나 내처 밝음이라면 눈이 너무 고달픕니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합니다. 잠을 자지 않고 어찌 삽니까.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고 똥을 눕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을 마시고 오줌을 눕니다. 사람 아닌 목숨도 매한가지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먹은 만큼 내뿜거나 내보내야 합니다. 돌고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주고받기입니다. 주기만이 아니요 받기만이 아닙니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면 탈이 납니다. 먹기만 하거나 누기만 할 때에도 말썽이 생깁니다. 낮이 있는 만큼 밤이 있어야 하고, 바지런히 일하는 만큼 신나게 놀아야 합니다. 힘껏 하루를 보냈다면 한갓지게 하루를 쉬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1932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간 ‘고사명(김천삼)’ 님은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 하나로 ‘도무지 삶이란 뭐지?’ 하는 길찾기를 합니다. 마흔세 살이 당신 외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픔이 어떠한 아픔인가를 돌아보고, 이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냘픈 목숨은 당신 외아들뿐이 아님을 헤아리며, 아이들과 어른들 누구나 내 삶이 어떠한 삶인가를 짚지 않는다면 삶과 죽음이란 다르지 않음을 곱씹습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많고, 죽었으나 살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버젓이 살아 있다지만 죽었다느니만 못하고, 아련히 죽었다지만 언제까지나 마음속에서 살아남아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 아이들한테, 아니 이 땅이 아닌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이 될 수 없는 채 살아가는 재일조선인과, 한국땅에서 이웃나라 한겨레와 일본 아이들 모두 얼마나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굽어살피지 못하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바치는 책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아니랴 싶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요, 삶은 삶대로 아름답고 죽음은 죽음대로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살아 있는 모든 기쁨과 웃음을 슬픔과 눈물과 함께 누려야 합니다. 죽어 묻힐 때에는 흙으로 기꺼이 돌아가면서 내 뒷사람과 뭇 목숨붙이한테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겨야 합니다.


 (3) 수없이 되읽는 말마디


 2007년에 나온 《산다는 것의 의미》를 2008년에 읽었는데, 2009년 한 해 내내 이 책을 끌어안고 지냈습니다. 이제 2010년을 맞이하며 제 마음 한켠에서 살포시 내려놓고 우리 집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옮겨 놓고자 합니다. 제 어설프고 어줍잖은 마음밭을 일구어 준 고마운 책 하나한테 즐거웠다는 인사말을 남기며, 새로운 책 하나로 이 마음밭을 다시금 일구어 보고자 합니다. 책상맡에서 책시렁으로 옮겨 놓기 앞서, 한 번 더 책장을 뒤적이면서, 그동안 밑줄을 그은 대목을 또박또박 느린 글씨로 적바림해 봅니다. (4343.1.16.흙.ㅎㄲㅅㄱ)


[7, 79∼80, 115, 188쪽]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지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 비가 오는 날은 나막신을 두 손에 들고 맨발로 뛰었습니다. 나는 비오는 날이 좋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방이나 운동화가 비에 젖을까 봐 쩔쩔맬 때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빗속을 뛰어다녔습니다 …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건져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인간의 상냥함이란 참된 조선인, 참된 일본인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을 때 나보다 힘겨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18∼19, 46쪽] 어머니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는 처음부터 남길 만한 유품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결혼할 때도 결혼사진을 찍을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 어머니는 가난에 허덕이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겐 어머니의 죽음이 당신 책임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 아버지와 한바탕 싸움을 끝내면 새엄마는 너무나도 슬픈 눈으로 우리 형제를 바라봤습니다. 그러다가도 금세 독기가 오른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슬픈 눈빛은 고통스런 생활을 온힘을 다해 버텨 내려는 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20, 24∼25, 200쪽] 우리는 왜 우리의 이름이 떳떳하게 불리는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버지는 언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것일까요? … 전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무척이나 괴롭혔습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슬피 울었습니다. 같은 일을 당했다면 분명 일본인도 울지 않고서는 견뎌 내지 못했겠지요 … 특히 어떤 선생님은 내가 아직도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고 조선 이름을 쓰고 있다는 데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온 나라가 전쟁에 뛰어든 판국에 정부가 시키는 대로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으니, 눈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26∼27, 74쪽] 일본어에는 일본어만이 지닌 향기가 있습니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언어가 부드럽고 단아하다고 말합니다. 조선인에게는 조선어가 있습니다. 일본인이 일본어를 사랑하듯 조선인은 조선어를 사랑합니다. 조선어에는 조선인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있습니다 … 일본 학교에 다니는 일본인이 일본어를 사용할 수 없다면 일본인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조선어를 배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조선어로 얘기했고, 우리는 일본어로만 얘기했습니다. 부자 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가 서로 다르다니 기막힌 일입니다.

[49, 66, 127쪽] 우리 집은 천장에도 신문지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동생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천장은 우리들에게 무척 유용한 놀잇감이었습니다. 나는 천장에 붙여 놓은 신문을 통해 처음 글씨를 배웠습니다 … 입학식 날입니다. 우선 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이 새 교복을 입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말고는 전부 어머니가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 시치린마치의 아이들이 바다를 사랑한 것은 맨몸으로 뛰어들어도 거리낌 없이 우리를 받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영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되기에 옷이 더럽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주기 때문에 드넓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가야의 숨막히는 생활도 멀리 사라집니다.

[61, 64, 75쪽]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엔 살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도둑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자물쇠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 한편으로는 도둑이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나가야의 빈집을 털 정도였으니 찢어지게 가난했을 것입니다. 부리나케 바지를 벗고 똥을 쌀 때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을 것입니다. 똥을 싸고 있을 때 사람이 들어오면 정말 큰일이니까요 … 모두가 가난했으니 가난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학교에 입학해 나처럼 가난하지 않은 일본 아이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과 내가 아는 조선인 대부분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깨달음이 내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87, 174∼175쪽] 학교에서 멋대로 날뛰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학교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버지 말대로 학교는 공부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내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는 나를 가난하다고 놀리고, 조선인이라고 놀리고, 어머니가 없다고 놀리는 곳입니다. 학교는 나를 괴롭히는 곳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곳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사카이 선생님은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속엔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가 조선인이라고 경멸하지도 않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우습게 보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내게 화를 낸 것은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며, 가난에 짓눌려 눈치나 봤기 때문입니다 … 4학년 때 담임은 나라는 학생보다 학교 규칙이 먼저였습니다. 내가 왜 손톱을 자르지 않고 지저분하게 길렀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학교 규칙을 어겼으니 혼을 내야겠다는 식이었습니다.

[145, 149쪽] 폭력 속에 갇힌 인간은 폭력에 눈이 멀어 폭력이 명령하는 대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폭력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 나는 모두에게 조롱받았던 말의 폭력에 대해 팔의 힘을 행사하는 폭력으로 맞서 싸웠고, 그 순간 나 자신이 폭력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 다른 사람의 처지를 함부로 조롱하는 인간은 상대방을 비웃기 전에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비웃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매일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세계지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언제쯤 우리가 만든 일장기 모형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붙일 수 있게 될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만든 일장기를 워싱턴이라고 쓴 곳에 붙일 경우,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집이 불타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34쪽] “이제 겨우 해방됐으면서 뽐낼 틈이 어디 있어?”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일본사람은 조선인을 괴롭혔다. 조선인이 어려울 때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뒤집혀 일본사람들이 어려워졌다. 그럼 조선인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일본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짓밟고 괴롭혀야겠느냐? 남에게 원한을 사면 나중에 그 원한이 나한테 돌아오는 법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는 서로 돕는 게 사람의 도리다. 사람의 도리를 짓밟으면 해방도 머잖아 끝이다. 일본사람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용서해 줘야 그게 진짜 해방이다. 앞으로 좀 살 만해졌다고 일본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또다시 조선을 망하게 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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