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스페인으로 마실을 간다는 형이 인천에 찾아왔다. 이제 모레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단다. 꽤 오래 마실을 한다는 형인데 잠깐 있으라 하더니 은행에 들러 맞돈 백만 원을 뽑아서 나한테 건넨다. 다음달에 집을 옮긴다는 나한테 돈이 있느냐고 묻더니 이렇게 곧바로 보태어 준다. 집과 도서관 달삯은 벌써 몇 달 앞서부터 돈 대기에 빠듯해서 죽을 노릇이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돈을 빌려주는 데도 없으나 돈을 빌려서 쓸 마음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어찌저찌 고마운 손길을 받으며 버티는 살림살이였기에 살림집을 빼면 보증금 삼백만 원으로 짐차 부르고 시골집 보일러 기름을 넣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코앞에 닥친 이달치 달삯이 걱정되었는데, 용케 형한테서 도움을 받아 크게 한숨을 돌린다. 밤나절, 졸려 하는 아이 이를 닦고 손발을 씻긴 다음 등에 업고 노래를 불러 준다. 업힌 아이 손에서 힘이 다 풀리고 고개가 내 등에 푹 박힐 무렵 천천히 바닥에 아이를 뉘인다. 이십 분을 아이 곁에서 가만히 기다린 다음 기저귀를 채운다. 비로소 느긋하게 셈틀을 켠다. 그렇지만 셈틀을 켰어도 글을 쓸 기운은 없다. 하루 내내 홀로 아이를 돌보느라, 더욱이 어제그제오늘까지 이불 세 채를 내리 빨래하느라 해롱해롱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인터넷으로는 책을 사지 않던 내가 두 군데 오래도록 다니고 있던 헌책방 누리집으로 들어간 다음 책을 십만 원어치나 고른다. 두 군데 헌책방은 처음부터 누리집을 꾸리던 데가 아닌데, 이제는 제법 크게 누리집을 꾸리고 있으며, 나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매장을 찾아가서 책을 살 뿐, 오늘처럼 누리집에서 목록을 들여다보며 책을 고르는 일은 없었다. 형은 틀림없이 집 옮기는 데에 보태고 아이한테 맛난 밥 사 주라는 뜻으로 돈 백만 원을 주었는데 이 가운데 십만 원을 책값으로 덜컥 쓰고 만다. 책값을 다 치러 놓고 괜히 아이한테 미안하고 형한테 쑥스럽다. 돈이 한 푼이라도 생기면 무엇보다 책을 사들이는 데에 쓰는 버릇은 참 어찌할 길이 없다. 굶어도 책이고 불러도 책인 내 삶은 늘 이렇게 돌아간다. 어쩌면 형은 내가 이렇게 책값으로 돈을 쓸 줄 알았을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책값으로 십만 원뿐 아니라 다시금 십만 원을 더 쓸는지 모르는데, 여기에서 즐겁게 멈추어야겠지. 아, 나한테는 파노라마 후지6×17은 그예 꿈으로 그치지 않으랴 싶다. 나 스스로 부끄럽고 옆지기와 아이한테 미안하며 형하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들 얼굴이 없다. 노상 하듯 두 손 네 손가락으로 사진틀을 만들어 마음껏 찍을 수 있는 사진만 찍어야겠다. (4343.5.29.흙.ㅎㄲㅅㄱ)
 

.. 형한테 미안하고 고맙기에 글 하나를 끄적이는데, 글을 끄적이는 내내 괜히 슬프면서 홀가분하다. 아무래도 후지617을 손에 쥘 날을 맞이할 수 없으리라 느끼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으로나마 이 사진기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끄적거리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가장 싼 파노라마사진기인 후지617이지만, 김영갑 님이 돌아가시면서 얼결에 이 값싼 보급형 파노라마가 지나치게 뻥튀기 값이 붙으며 비싸구려가 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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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4 : 아이가 아플 때 읽는 책

 아이가 아플 때에 애 엄마는 아이 곁을 지킵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아이 목숨이 크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픈데 다른 무슨 일을 하며, 다른 어떤 곳에 눈을 두겠습니까. 그런데 이때에 여느 애 아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애 아빠도 온마음을 아픈 아이한테 쏟을 수 있을는지요.

 하루이틀 새로워지는 우리 터전에서, 아이가 아플 때에 아이 곁을 지키지 않거나 지키지 못하는 애 엄마가 늘어납니다. 그러면 아픈 아이 곁을 내처 지키며 돌보는 애 아빠는 조금씩 늘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가씨들이나 젊은 애 엄마는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청소하기 같은 밑살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요즈음 젊은 사내들이나 애 아빠는 집살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데, 옆에서 재미나다는 책을 읽는다든지 신난다는 연속극을 본다든지 하는 어버이가 있다면, 이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기쁨을 찾고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돌볼 줄 모를밖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 똥오줌을 스스럼없이 치우고 이 손으로 거리낌없이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이이는 어버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이란 이름 또한 알맞지 않습니다.

 엊그제부터 우리 집 아이가 아픕니다. 그러께에 그러께를 더한 날부터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옆지기는 퍽 예전부터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애 아빠 된 저는 바깥일 때문에 아픈 애를 놓고 움직입니다. 집에서 애 엄마가 몇 시간쯤 더 애써 주기를 바라면서 혼자 바깥일을 봅니다.

 집살림이며 돈벌이 때문에 아픈 옆지기한테 살가이 마음 쏟지 못하며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제가 읽은 훌륭하다거나 거룩하다거나 좋다거나 곱다거나 하는 책은 무슨 쓸모가 있을는지 되새깁니다. 성경을 읽어도 성경 말씀이 좋다고만 할 뿐 성경 말씀처럼 살아내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옳고 바르며 고운 삶을 살피며, 옳고 바르며 고운 길을 걷는 정치꾼한테 한 표를 선사하는 사람이란 뜻밖에 퍽 드뭅니다.

 애 아빠로서 아픈 아이 곁을 내내 지키지 못한다면 아이 앞에서 들 얼굴이 없습니다. 옆지기로서 아픈 애 엄마 둘레를 언제나 지키지 못한다면 애 엄마 앞에서 들 낯짝이 없습니다. 다른 남자가 어떠하다느니, 다른 집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부질없는 핑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엉성궂거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에 빠져 있든, 좋은 책을 좀처럼 알아보지 못하고 있든, 나는 나부터 내 삶을 옳고 바르고 곱고 착하고 참되어 추스르고 있지 못하는 슬픔을 눈여겨보면서 아파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나한테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할까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부터 내 삶을 참된 맑음과 착한 믿음과 고운 사랑으로 빚고 있지 못하다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이들은 온갖 모습으로 신나게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에 나오는 끔찍한 짓을 저지를 발판을 얻습니다. (4343.5.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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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블로그에 갔다가, 

그분이 서울을 떠나 진주로 가며 

진주에 떨어져 지내던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비로소 함께 산다는 소식을 읽는데, 

그 글에 이런 사진이 붙어 있다. 

 



 

그리 잘 팔리지는 않는 듯한데, 

참으로 용하게 사랑받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한 언론매체가 있었는지 모른다. 

언론 소개를 안 타고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니 

놀라운 한편, 

2011년에 <사진책과 함께 살기> 2권을 낼 수 있겠다는 꿈을 

다시금 소록소록 키워 본다. 



 

돈 버는 일은 거의 못하는 주제에 

책만 신나게 써내고 있는데, 

2쇄나 3쇄도 찍어 

비로소 글삯(인세)을 만져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도 6월 중순에 인천을 떠나 산골마을로  

살림집과 도서관을 옮기려 하는데, 

집 옮길 돈이 없어 

살림집 보증금이 빠지면 이 돈으로 차 부르고 사다리차 쓰고 해서 

움직여야 한다. 



어찌 되었든, 

아이 앞에서 꿋꿋하며 씩씩한 아빠로 

잘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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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윤정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꽤 사랑받아 오고 있다. 나도 이 책을 읽었고 잘 간직하고는 있으나, 이 책을 읽던 지난날이나 이 책을 책꽂이에 모셔 놓고 있는 오늘날이나 그다지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숲이나 나무나 도시나 시골 살림살이를 제대로 모르며 지내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한테는 책이름이 퍽 충격스럽다든지 남다를 뿐더러,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새롭거나 놀랍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 숲살림을 다루고는 있어도 우리 숲살림 밑바탕을 밝히거나 보듬고 있지는 못하다.

 한젬마라는 분이 쓴 《그림 읽어 주는 여자》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은 이제 헌책방에서 사랑받지 못한다. 2006년까지는 새책으로만이 아니라 헌책으로도 몹시 사랑받던 책인데, 2006년부터는 헌책방에서 이보다 더 막대접인 책이 드물다. 스스로 옳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거짓말을 일삼았던 발자취가 드러났으니, 헌책방으로 다리품을 팔며 책을 찾아 읽는 분들한테 겉발린 빈 껍데기 이야기가 사랑스럽거나 살갑게 스며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침묵의 봄》이라든지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든지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든지 《녹색세계사》라든지 하는 책하고는 견줄 수 없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하거나 괜찮다 할 만한 환경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2010년 5월 17일에 차윤정 씨가 보여준 모습을 보니 이 책이 앞으로는 더는 살아남을 까닭이 없겠구나 싶다. 빈 껍데기 지식조각으로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허울좋은 이름을 찾아 높은자리에 올라서려는 사람들이 읊는 책으로는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굴 수 없기 때문이다.

 ‘4대강본부 환경부본부장’이라는 이름이란 얼마나 놀라운 공무원 직책인가. ‘전문계약직 1급’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리인가. 4대강 사업 일자리가 32만 개나 나온다고 하는데, 하나같이 이런저런 일자리란 셈이 아닐까 궁금하다. 아마 31만 개는 삽질하는 일자리일 테고 1만 개는 차윤정 씨처럼 홍보하는 일자리일 테지.

 차윤정 씨는 스스로 ‘굳은 심지’에 따라 4대강 사업을 널리 알리는 일자리를 함께 누리겠다고 밝히는데, 바로 이 ‘굳은 심지’로 높이높이 올라설 차윤정 씨 일자리란 얼마나 오래가는 맑고 밝으며 고울 내음일는지 머잖아 스스로 느끼는 날을 맞이하리라 본다. 착하지 않고 참되지 않으며 곱지 않은 사람은 생태와 자연과 사람을 입에 담을 자격이 어림 반 푼어치조차 없다. (4343.5.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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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5-29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기사 보고, 근래 들어 최고로 웃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요. 좋다 좋다 이야기만 듣고 벼르고 있었던 '신갈나무..'는 영원히 보관함에서 아웃.

파란놀 2010-05-29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기사를 볼 때에 '그럴 만한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하고 다시금 생각했기에 이런 어줍잖은 글이나마 끄적이면서, 우리 스스로 옳고 착한 길을 잃지 않기를 다짐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샘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곡학아세...라고... 대학에서 공부 깨나 한 사람들이 돈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들어가는데 1억/마리당...이라잖아요. 근데, 1급 공무원 어쩌고 제의가 들어오면, 까짓거 돈벌러 가는 거죠. 변절자 더러운 거야, 친일파 놈들이나 김문수나 그게 그건거죠. 신갈나무들이 4대강물 쪽쪽 빨아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윤정이야 뭐 차,버리면 그만이구요.

파란놀 2010-05-29 17: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분은 교수 신분인 한편, 여러 방송에도 나가고 이런저런 강연도 많이 해서 벌이가 꽤 많을 텐데, 이만한 벌이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큰 '욕심'을 어찌하지 못하셨는가 봐요. 참 불쌍하고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공기를 팝니다 -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케빈 스미스 지음, 이유진.최수산 옮김 / 이매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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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삶터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6] 케빈 스미스, 《공기를 팝니다》



 다가오는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를 생각할 때마다 슬프고 괴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몇 달 앞서부터 선거하는 날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 ‘후보자가 내놓는 공약’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에서 듣는 이야기라든지 신문과 방송에 가득 넘치는 이야기라든지 선거운동원이 내미는 이름쪽에 담긴 이야기라든지, 어느 대목을 보더라도 이이는 무엇을 이루고자 하며 저이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무슨 정당 후보가 뽑혀야 한다거나 안 뽑혀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무슨 연합이니 대연합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 다음으로 많습니다. 연합을 한다면 왜 연합을 하고, 연합을 하며 내놓으려는 정책이 무엇이며, 이 정책은 우리들한테 어떻게 도움이 되거나 피와 살이 될는지를 밝힐 노릇입니다. 하다못해 ‘4대강 반대’를 하더라도 ‘그러면, 4대강을 반대한 다음 무얼 하려고?’ 하는 생각조차 듣기 어렵습니다. 4대강 반대를 이룰지라도, ‘4대강 사업과 맞먹는 또다른 큰돈 들일 토목공사 계획’만 춤을 추고 있습니다.

 머나먼 다른 동네보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시장 후보로 네 사람이 나왔는데 5월 28일까지 후보자 공약집이 집으로 오지 않고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 담벼락에 후보자 포스터가 붙은 지 며칠 되지 않습니다. 시장 후보자 운동원이든 구청장 후보자 운동원이든 정당에 따라 수십 사람이 줄을 맞춰 늘어서면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면서 ‘기호 몇 번’만 외치고 있습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름쪽하고 정책홍보지를 주워서 들여다봅니다. 지난 여덟 해에 걸쳐 시장이 된 분하고 새롭게 시장을 맡겠다고 하는 분하고 정책이 똑같습니다. 다른 대목이라면 예전 시장님은 ‘뉴타운 재개발’을 외치고, 새로 시장이 되고자 하는 분은 ‘웰타운 재정비’를 외칩니다. 두 분 모두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어딘가에서 뽑아내어 ‘동네를 온통 아파트로 바꾸는 토목공사’를 벌이려는 꿈이 당신들 공약이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전 시장님은 인천이 교육성취도가 3위라고 내세우며 당신이 교육을 아주 잘 이끌었다고 밝히고, 새로 시장이 되고자 하는 분은 인천이 교육성취도가 뒤에서 2등이라고 말하며 당신이야말로 인천 교육을 책임질 사람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이런 수치이든 저런 통계이든 두 분 모두 다시금 몇 조를 들여 사교육을 뜯어고치고 교육지원금을 마련하며 ‘학력성취도’를 높이려는 데에만 눈길을 둡니다. 그러니까, ‘전국 일제고사 성적’이 인천이 1등을 거머쥘 수 있도록 모든 뒷배를 아끼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두 분 공약집에 실려 있습니다.


.. 오늘날, 시장에는 탄소 상쇄라는 새로운 면죄부가 등장했다. 현대의 면죄부 판매인인 클라이미트케어, 카본뉴트럴컴퍼니, 카본클리어 같은 탄소 상쇄 기업들이다. 스스로 자신을 ‘생태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프로젝트로 ‘착한 기후 보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매로 발생한 배출권은, 다시 말해 상쇄 기업이 만들어낸 ‘착한 행위’는 돈은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책임질 시간과 여유가 없는 오늘날의 죄인들에게 소매가격으로 팔려 나간다 ..  (14∼15쪽)


 요즈음 도시 초등학교는 한 반 아이들 숫자가 서른∼서른다섯쯤이라고 합니다. 아직 아이들 숫자가 더 줄어야 하지만 이만 한 숫자라 하더라도 고작 열 몇 해 앞서를 헤아리면 대단히 발돋움한 셈입니다. 우리는 얼마 앞서까지 한 반에 쉰 예순 일흔 여든을 때려넣고 몽둥이찜질로 아이들을 닦달해 왔습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숙제와 성금걷기와 체벌로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못하게 짓눌러 왔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지난날과 견주면 몽둥이찜질과 손찌검에서 홀가분합니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드물었던 갖가지 과외와 학원과 영어와 한자와 방과후수업 따위로 놀 겨를이 없습니다. 그나마 집안일 거들기에 짬을 낼 수조차 없습니다. 초등학교라면 초등교육을 할 노릇이지만, 뒷날 더 나은 일류대학에 들어갈 예비 수험생이 되도록 내몰기만 합니다. 중학교라면 중등교육을 하고 고등학교라면 고등교육을 할 노릇인데, 어김없이 대학교만 바라보는 수험생이 되도록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일류대학교 학생이 되어 졸업장을 움켜쥐도록 등을 미는 까닭이란, 나중에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 연봉 많이 받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착하고 참되고 고운 어른으로 크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1등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뽑든 시장을 뽑든 국회의원을 뽑든, 우리들은 늘 ‘1등만 생각하는’ 틀에 맞추어지고 맙니다. 반드시 1등이 되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듯 생각합니다. 1등이 안 되어 떨어지더라도 ‘생활정치’를 알차게 하면서 ‘정치꾼이 제몫을 하도록 지켜보는 민주주의’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허울좋은 사탕발림처럼 들먹이는 ‘아름다운 꼴찌’입니다. 좋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야 사회가 나아질 줄 알고 있는데, 좋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면 나쁘지는 않으나, 우리가 정작 해야 할 일이란 우두머리보다 바로 우리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거듭나는 일입니다.


.. 영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흡수하려면 해마다 새로운 플랜테이션이 1만 제곱킬로미터나 필요하다 … 북반구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립화’하려고 남반구에 대규모 단일 조림 플랜테이션을 조성하는 것을 두고 ‘탄소 식민주의’라고 꼬집었다. 이것은 마치 북반구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를 유지하려고 남반구를 착취하는 것하고 같다 … 기후변화에서 가장 정의롭지 못한 일은 기후변화 책임이 작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 불평등한 세계 경제 구조 안에서 북반구 기업들은 남반구 프로젝트를 수행해 수출 보조금 같은 더 큰 재정적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 또 값싼 토지와 노동력, 원자재도 이용할 수 있다 … 결국 탄소 상쇄 프로젝트는 덜 ‘개발된’ 남반구를 ‘개선’시킨다고 선전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  (53, 58, 64∼65, 66쪽)


 《공기를 팝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자그마한 이 책에는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하고 적혀 있습니다. 한마디로 갈무리하자면,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미친날씨를 막을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나라가 더 망가지는 듯 보이지만, 이명박 씨 아닌 다른 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4대강이라는 이름이 아닐 뿐 수많은 토목공사 재개발 계획이 공약으로 가득 넘치고 있는 탓’에 이 나라는 언제나 망가지는 길을 걷습니다. 우리 스스로 탐욕을 부리고 있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욕심을 줄이지 않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연봉을 꿈꾸고, 나 홀로 정규직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브래드 피트한테 ‘나무심기 쇼’나 ‘환경사랑 퍼포먼스’ 같은 잔재주를 부리라고 등을 떠밀 노릇이 아니라, 브래드 피트한테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당신 스스로 조용하면서 아름다이 할 만한 참된 ‘나무심기(또는 텃밭 일구기)’를 하거나 ‘자가용 덜 타기나 안 타기’를 하는 데부터 올바르게 살도록 손을 맞잡을 노릇입니다.

 우리 삶은 ‘쇼’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하루하루 더없이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언제나 고마움과 기쁨을 듬뿍 느끼면서 내 둘레 터전을 곱게 가다듬을 일입니다.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탄소 상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골머리 앓지 말고, 내 삶에서 ‘쓸데없는 탄소 만들기’를 안 하자면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내 이웃과 동무 삶을 어떻게 껴안아야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 탄소 상쇄처럼 가짜 해결책에 스타가 동원되면서, 효과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사회 변화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인식하는 의식의 전환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탄소 상쇄에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해 버리는 것이다 … 탄소 상쇄 프로그램이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정부와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아주 쉽게 희석시키면서 시종일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 기업이나 개인이 스스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의심스러운 ‘숫자 놀음’과 ‘상쇄’를 통한 그린워시가 아니라 에너지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활동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훨씬 낫다 ..  (104, 107, 125쪽)


 열 해쯤 지난 일인데, 지난날 ㅁ방송국에서 ‘책을 읽자’는 교양홍보 방송을 하면서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도서관’은 방송국이 시청율을 높이고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거두어들여서 세울 시설이 아닙니다. 지자체마다 엉뚱하게 ‘보도블록 갈아엎기’를 하지 않아도 이 돈만으로 넉넉히 도서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보도블록 갈아엎을 돈이면 해마다 온 나라에 도서관 수천 곳을 세울 수 있어요. 자전거길은 마땅히 내야 하지만 인천시처럼 잘못된 계획을 얄궂게 밀어붙이며 수백 억을 길바닥 갈아엎기에 쏟아부으면 안 됩니다. 수백 억이란 돈(500억이 조금 넘는 줄 압니다)은 도서관뿐 아니라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어느 만큼 이룰 수 있는 몹시 큰돈입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토목공사를 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환경 무너뜨릴 탄소’는 얼마나 많았을까요. 환경사랑을 외치며 밀어붙인 ‘자전거길 토목공사’는 외려 환경을 무너뜨립니다. 4대강 사업이 큰 말썽거리라면, 겉으로는 환경사랑이요 일자리 만들기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구석 환경사랑이 아닐 뿐더러 올바르지 못한 일자리 만들기인 데다가 일자리란 고작 ‘삽 들고 땅 파헤치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살리지 못하고 사람을 살리지 못하며 사랑을 살리지 못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붓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아주 몹쓸 짓거리입니다.

 《공기를 팝니다》라는 작은 책은 바로 이 대목을 짚는 살뜰한 읽을거리입니다. ‘탄소 배출권’이라는 새로운 장사거리만 만드는 자본주의 얼거리에서는 우리 삶과 삶터와 사람이 하나도 아름다워질 수 없음을 까밝히는 읽을거리입니다.

 다만, 아쉬우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공기를 팝니다》라는 책은 ‘탄소 배출권’ 장사를 하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 장난질을 찬찬히 파헤치며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회 지식을 얻은 우리들은 우리 삶을 어떻게 돌보거나 가꾸면서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가를 일깨우지 못합니다. 거짓스러운 ‘환경사랑 장사꾼’ 검은 속셈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기 때문에, 이 읽을거리 하나에 매여서는 안 되고, 이 읽을거리를 덮고 나서 내 터전을 헤아리고 내 동네를 살피며 내 나라를 돌아보도록 눈길을 틔워야 합니다. 나 스스로 ‘1등주의 경쟁’에 파묻히지 않도록 내 삶을 다스리면서, 다가오는 선거에서라도 한 표 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표 권리를 쓴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여느 때 여느 자리에서 올바른 민주주의 길을 걸어가도록 내 삶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깨끗한 삶터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은 돈으로 베풀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돈으로 키울 수 없습니다. 착한 책은 돈으로 엮을 수 없습니다. 몸에 알맞을 밥 한 그릇은 돈으로 장만할 수 없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돈으로 심거나 가꿀 수 없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은 돈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4343.5.28.쇠.ㅎㄲㅅㄱ)


 ┌ 《공기를 팝니다》(이매진,2010)
 ├ 글 : 케빈 스미스
 ├ 옮긴이 : 이유진, 최수산
 └ 책값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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