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24 : 아이가 아플 때 읽는 책

 아이가 아플 때에 애 엄마는 아이 곁을 지킵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아이 목숨이 크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픈데 다른 무슨 일을 하며, 다른 어떤 곳에 눈을 두겠습니까. 그런데 이때에 여느 애 아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애 아빠도 온마음을 아픈 아이한테 쏟을 수 있을는지요.

 하루이틀 새로워지는 우리 터전에서, 아이가 아플 때에 아이 곁을 지키지 않거나 지키지 못하는 애 엄마가 늘어납니다. 그러면 아픈 아이 곁을 내처 지키며 돌보는 애 아빠는 조금씩 늘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가씨들이나 젊은 애 엄마는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청소하기 같은 밑살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요즈음 젊은 사내들이나 애 아빠는 집살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데, 옆에서 재미나다는 책을 읽는다든지 신난다는 연속극을 본다든지 하는 어버이가 있다면, 이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기쁨을 찾고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돌볼 줄 모를밖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 똥오줌을 스스럼없이 치우고 이 손으로 거리낌없이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이이는 어버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이란 이름 또한 알맞지 않습니다.

 엊그제부터 우리 집 아이가 아픕니다. 그러께에 그러께를 더한 날부터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옆지기는 퍽 예전부터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애 아빠 된 저는 바깥일 때문에 아픈 애를 놓고 움직입니다. 집에서 애 엄마가 몇 시간쯤 더 애써 주기를 바라면서 혼자 바깥일을 봅니다.

 집살림이며 돈벌이 때문에 아픈 옆지기한테 살가이 마음 쏟지 못하며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제가 읽은 훌륭하다거나 거룩하다거나 좋다거나 곱다거나 하는 책은 무슨 쓸모가 있을는지 되새깁니다. 성경을 읽어도 성경 말씀이 좋다고만 할 뿐 성경 말씀처럼 살아내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옳고 바르며 고운 삶을 살피며, 옳고 바르며 고운 길을 걷는 정치꾼한테 한 표를 선사하는 사람이란 뜻밖에 퍽 드뭅니다.

 애 아빠로서 아픈 아이 곁을 내내 지키지 못한다면 아이 앞에서 들 얼굴이 없습니다. 옆지기로서 아픈 애 엄마 둘레를 언제나 지키지 못한다면 애 엄마 앞에서 들 낯짝이 없습니다. 다른 남자가 어떠하다느니, 다른 집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부질없는 핑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엉성궂거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에 빠져 있든, 좋은 책을 좀처럼 알아보지 못하고 있든, 나는 나부터 내 삶을 옳고 바르고 곱고 착하고 참되어 추스르고 있지 못하는 슬픔을 눈여겨보면서 아파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나한테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할까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부터 내 삶을 참된 맑음과 착한 믿음과 고운 사랑으로 빚고 있지 못하다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이들은 온갖 모습으로 신나게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에 나오는 끔찍한 짓을 저지를 발판을 얻습니다. (4343.5.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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