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8] 꽁짜

 잘 쓰던 손전화 기계가 더는 제구실을 못할 때에 바꿉니다. 손전화 기계는 두어 해가 지나면 약이 금세 닳거나 단추가 제대로 안 눌립니다. 갓난아이가 엄마 아빠 못 본 사이 입에 무느라 침이 흘러들어 맛이 가기도 합니다. 손전화 만드는 곳에서는 이 기계를 열 해나 스무 해 즈음 걱정없이 쓰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아니, 기계 하나라면 쉰 해나 백 해쯤 쓰더라도 말썽이 나지 않도록 단단하거나 야무지게 만들 노릇일 텐데, 이와 같이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더 많은 물건과 더 새로운 물건을 꾸준히 팔아치워 돈을 벌 생각뿐입니다. 요즈음 우리 누리에서 써야 하니까 쓰지만, 우리 식구들이 손전화 없어 못마땅하거나 힘들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느긋하지만 우리 둘레 사람들이 힘들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쓰는 손전화입니다. 이 기계에 딸렸다는 숱한 쓰임새를 쓸 일이란 없습니다. 그예 전화를 걸고 시계로 삼습니다. 엊그제는 버스를 타다가 길거리 전화가게를 바라봅니다. 가게마다 한결같이 ‘꽁짜’를 내겁니다. ‘거저’나 ‘그냥’이란 없습니다. 문득, ‘짜장면’이라 하면 잘못이고 ‘자장면’이라 해야 옳다고 말하는 분들 마음을 읽습니다. (4343.9.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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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5 09:51   좋아요 0 | URL
들리는 소문에 국내 핸폰의 수명은 약 2년이라고 합니다.그래야 약정 기간이 끝난 고객이 다른 통신사를 이용해야 하니까요.뭐 버튼 하나만 교체해도 2~3만원하니 통신사 바꾸는것이 싸기 싸더군요ㅡ.ㅡ

파란놀 2010-11-15 10:56   좋아요 0 | URL
음... 그런가 보군요... 지금 쓰는 녀석도 이래저래 아슬아슬하다고 느끼는데, 다 그런 까닭이 있네요.. ㅠㅜ

그 쓰레기들을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들...
 

[함께 살아가는 말 23] 잠집

 충청북도 충주시 끝자락이라 음성읍과 맞닿은 신니면 무너미마을 부용산 기슭에 이오덕자유학교라는 배움터가 있습니다. 산골마을 품에 안은 배움터 아이들은 으레 산을 타고 밭일을 하며 짐승하고 어울립니다. 이곳에는 ‘모임집’이 마련되어 있고 ‘헤엄터’가 따로 있습니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두루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모이는 집”이라는 말뜻 그대로 모임집이요, “헤엄을 치며 노는 터”라는 말뜻 그대로 헤엄터예요. 언제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으나, ‘씻는방’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려준 분은 딱히 우리 말글 사랑을 할 뜻으로 ‘씻는방’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말뜻 그대로 “몸을 씻는 곳”이니까 씻는방을 찾았습니다. 그 뒤 ‘잠방’하고 ‘잠집’이라는 말을 다른 사람한테서 듣습니다. 이 말을 읊은 분 또한 애써 한겨레 말사랑을 펼치려는 뜻이 아니라, “잠자는 방”이랑 “잠자는 집”을 찾다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을 뿐입니다. 따로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낱말인 한편, 꼭 국어사전에 실어야 할 만한 말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예 살아가며 조곤조곤 나누면 좋을 말입니다. 낯선 곳으로 마실을 해서 잠잘 곳을 찾으니 잠집을 알아봅니다. 밖에서 밥을 사먹으니 바깥밥을 먹습니다. (4343.11.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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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섬 물맛


 인천에서는 인천에서 나는 물로 막걸리를 빚습니다. 서울에서는 서울에서 흐르는 물로 막걸리를 빚습니다. 부안에서는 부안에서 긷는 물로 막걸리를 빚어요. 춘천은 춘천땅 물로 막걸리를 빚고, 부산은 부산 터전 물로 막걸리를 빚는답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제주는 제주섬 물로 막걸리를 빚습니다. 울릉섬에서 막걸리를 빚는다 할 때에는 울릉섬 물로 막걸리를 빚을 테며, 백령섬에서는 백령섬 물로 막걸리를 빚겠지요. 이리하여 막걸리맛은 고장마다 다릅니다. 막걸리맛은 고장에 따라 같을 수 없습니다.

 아이랑 애 엄마랑 애 아빠, 여기에 애 엄마 배속에서 자라는 둘째하고 네 식구가 처음으로 제주마실을 합니다. 제주마실을 하면서 모자반 듬뿍 넣은 국을 먹으며 제주 막걸리를 마십니다. 콸콸콸 사발에 따라 한 모금 들이키는데, 첫맛과 끝맛이 한결같이 부드럽습니다. 막걸리라는 술맛이기도 할 테지만, 이 술맛에 앞서 물맛이 다르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모자반도 좋고 막걸리도 좋으며 바람도 좋습니다. 제주섬은 시내에 있어도 물과 바람과 밥이 이와 같은 맛이라 할 때에는, 제주섬 시골은 얼마나 포근하면서 싱그러우려나요. 이 좋은 물과 바람과 밥이라 할 때에, 이 좋은 물과 바람과 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어느 만큼 싱그럽거나 애틋하려나요.

 책이란 삶이고 삶터요 삶무늬라고 느낍니다. 좋은 삶이기에 좋은 책이 태어날 수 있는데, 좋은 책이 태어나더라도 좋은 책을 좋게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삶을 좋은 삶으로 일구며 좋은 빛을 나누는 좋은 사람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좋은 삶을 모든 사람이 좋게 받아들이며 좋은 넋으로 다스리지 못할지라도, 좋은 꿈은 좋은 땅에 좋은 뿌리를 내리리라 믿습니다. 좋은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서, 이 좋은 막걸리가 얼마나 좋은 줄 참다이 느끼지 못하며 더 알뜰하거나 알차게 삶자리를 일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좋은 빛은 곱게 드리운다고 느낍니다. (4343.11.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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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르는 책읽기


 책 하나 서둘러 읽어치우려 하면 틀림없이 한결 빨리 읽어치울 수 있다. 책 하나 느긋하게 읽으려 하면 언제나 한결 느긋이 읽을 수 있다. 서둘러 읽어치우는 맛에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테지. 더 많이 읽어내는 데에 책읽기 뜻을 두는 사람이 있겠지. 책 하나 오래도록 곱씹거나 곰삭이는 데에 책읽는 삶을 맞추는 사람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허둥지둥 밥을 먹어도 얹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헐레벌떡 밥을 먹으며 쉬 속에 얹혀 애먹는다. 누군가는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안달이고, 누군가는 알맞게 먹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거나, 내 이웃한테 한 숟갈이나 두 숟갈 덜어 주고자 마음을 쓴다.

 살아가는 매무새가 다르고, 읽어내는 몸가짐이 다르다. 살고 싶은 꿈이 다르며, 읽으려고 손에 쥔 책이 다르다. 먹는 밥이 다른 만큼, 읽는 넋이 다르다. (4343.11.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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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여름날, 골목동네에서 살면서 이제 이 동네에서 시골집으로 옮기기 앞서, 날마다 신나게 나들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걸리고 안고 하면서 꽃구경을 즐겼다.

- 2010.6.3. 인천 동구 만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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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5 09:37   좋아요 0 | URL
만수동이란 오랬만에 사진 보네요.제 기억에 도로를 사이로 두고 한쪽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마치 서울 약수동 같은 느낌),다른 한쪽은 텅 빈곳 같았는데,이제 그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