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앞서까지 모자라면 안 쓰겠다고 우기던 아이가 웬일로 이 모자를 쓴다. 이 모자를 두 번째 선물받는데 처음에는 아주 끔찍히 싫어하더니, 이번에는 안 벗는다며 떼를 쓴다. 그래 보았자 한 시간 갔나... 한 시간이 지나니 또 다시 안 쓴다. -_-;;;

 - 20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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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글 읽기


 나는 ‘서평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느낌글’만 쓴다. 책을 읽은 뒤에 글을 쓴다면 ‘책느낌글’을 쓴다.

 내가 읽은 책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쓰기 앞서, 또는 쓰고 난 다음 다른 사람들이 썼을는지 모를 느낌글을 찾아보곤 한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느낌글’을 만나지 못하기 일쑤이다. 거의 언제나 내가 마주하는 글이란 ‘서평글’투성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서평글을 신나게 쓴다. 느낌글을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본다만, 참말, 책을 읽은 느낌 그대로 조곤조곤 적바림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안 보일까. 책을 읽었으니 ‘책 읽은 느낌 담은 글’을 쓰면 되지 않나. 왜 자꾸 ‘서평글’에 옭매여 버리는가.

 누가 책을 선물해 주었든, 무슨무슨 행사가 있어 책을 거저로 받든, 책을 읽었으면 내 느낌을 적으면 된다. 구태여 줄줄줄 칭찬만 늘어놓는다든지, 책을 제대로 못 읽은 티를 내면서 어줍잖게 겉훑기 얘기를 늘어놓을 까닭이 없다. 이럴 바에는 아예 글을 안 써야 낫다. 품과 겨를이 아깝다. 더욱이, 느낌글을 써내지 못한다면, 이렇게 읽은 책은 그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된다. 나 스스로 읽어서 내 삶을 일구도록 이끄는 좋은 책이라 한다면 느낌글을 쓰도록 절로 이끌기 마련이다. 좋은 책 하나를 읽은 사람은 쓰지 말라 해도 느낌글을 쓸밖에 없다.

 느낌글이란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적바림한 글인 가운데, 몸으로 느끼거나 헤아릴 만한 몸짓이곤 하다. 글을 모르거나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삶이 바뀐다. 스스로 삶을 바꾸며 거듭난다.

 참말이지, 서평글은 척 보아도 알아챈다. 서평글을 쓰는 사람은 제아무리 좋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삶을 바꾸지 못하고, 삶을 바꾸어야 하는 줄 깨닫지 못하며, 삶을 바꿀 생각을 처음부터 안 품는다.

 책은 지식이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지식을 쌓지 못한다. 더 많은 책을 읽는다고 더 똑똑해지거나 더 훌륭해지지 않는다. 리영희 님 책을 읽었다 해서 우리 삶터를 굽어살피거나 꿰뚫는 눈이 한결 깊어지지 않는다. 리영희 님이 읽어낸 ‘우리 삶터 속내’를 조금은 엿볼 뿐이다.

 책은 삶이다. 내가 꾸리는 삶이 내가 읽는 책이다. 내가 꾸리는 삶만큼 나 스스로 책을 알아보고 집어들며 읽는다. 내가 꾸리는 삶을 나 스스로 어떻게 다스리거나 추스르느냐에 따라, 내가 읽고자 하는 책을 고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서평글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다면, 이 나라 이 터전이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테지만, 이 나라 이 터전이 이 모양 이 꼴인 채 그예 흐르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느낌글 아닌 서평글만 잔뜩 쏟아내는 틀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소리라고 여긴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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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글과 느낌글
    from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2010-12-08 12:56 
    어렸을 때 독후감이나 일기를 써서 가끔 상을 받았다. 방학 숙제로 써야하는 독후감을 여러 편 써서 친구들 숙제를 대신 해 준 적도 있었다. 댓가를..
 
 
hnine 2010-12-08 12:34   좋아요 0 | URL
책을 중간에 읽다 말지 않고 어쨌든 끝까지 다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든 그 느낌이 남기 마련이겠지요. 그 느낌을 여기 서재라는 공간에 남겨 놓습니다. '마이 리뷰' 라는 카테고리가 있어서 거기에 올립니다. '서평'이라고 생각하며 쓰고 올린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을 할 자격도 안되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다른 분의 서재에서 보는 많은 리뷰들도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읽고 있거든요. 제가 가는 서재들이 비슷한 경향을 띠어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파란놀 2010-12-08 12:26   좋아요 0 | URL
님과 같은 느낌과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너무 많은 글들이... 서평글 형식으로 아무렇게나 대롱대롱 매달린 채, 정작 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어떠한 보람과 웃음과 눈물이 서렸는가를 보지 못하도록 물을 흐리는구나 싶어요.

좋은 독자 한 사람이라면 좋은 책 하나는 기쁘다는 말처럼, 어쩌면, 좋은 느낌글 하나 바라기란 더없이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지나치게 바라는지 모르지요... ㅠㅜ

ㅇi 2010-12-08 10:54   좋아요 0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느낌을 표현해내기 힘드니 자꾸 어줍잖은 흉내만 내려는지도 모르겠네요. 부끄럽게 읽고 갑니다. 올려주신 글에는 늘 그 느낌이라는게 있어서 차분해지는 것 같네요.

파란놀 2010-12-08 12:26   좋아요 0 | URL
그냥,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눌 수 있으면 좋은 삶이랍니다...

파란놀 2010-12-08 15:18   좋아요 0 | URL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님...
다음 편지를 거의 안 쓰느라 먼댓글로 답글을 못 남기고 ^^;;;;

책을 지식으로 여기든, 삶을 바꾸려 하면서 읽지 못하든, 책을 그저 읽기만 하면 그예 책에 파묻혀 버리고 말아, 정작 '내가 책을 왜 읽었더라?' 하는 마음을 잊는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잃고 말아요.

책을 읽은 다음 쓰는 느낌글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냥 좋으니 쓰는 글이어야 하고, 속에서 샘솟으며 터져나오는 글이 아닐 때에는, 이런 글을 쓰는 내 삶이 하나도 아름다워지지 못한답니다...

(나중에라도 이 댓글도 함께 읽어 주소서~)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내 삶은 내가 사랑해야 아름답다
 [책읽기 삶읽기 29] 유미리,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일본책 이름은 “私語辭典”이었으나 한국책 이름은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인 유미리 님 산문책을 읽다. “내 말 사전”이랑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하늘과 땅처럼 다른 느낌이요 흐름이요 이야기일 텐데, 왜 한국책에는 이런 이름이 붙을까. 누가 이런 이름을 붙였으려나. 문학을 하는 유미리 님은 ‘국어사전(일본에서 살아가니 일본어사전이라 하겠지)에 풀이된 말뜻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고 여겨, 당신이 살아온 나날을 곱씹으면서 “내 말 사전”이라는 책이름을 붙였을 텐데, 한국책에서 책이름을 좀 고쳐서 멋스러이 보인다든지 눈에 뜨이게 한다든지 책 좀 팔아 보겠다든지 한달지라도, 작은이름으로 “내 말 사전”으로 나왔던 책임을 알아보도록 해 주어야 옳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옅은 빛 잔 글씨로 “The Private Glossary”라 적히기는 했구나. 그런데 일본책에는 이런 영어가 아닌 한자로 책이름이 적었잖은가.


.. 사랑이란 “피를 흘릴 만큼 타자에게 관여하는 일”이란 정의도 있을 수 있다. 사전에는 인생이 없다 … 진상을 폭로해 버릴까 싶기도 하지만, 진상 따윈 들을 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 모두들 진상보다는 소문을 좋아하는 것이다 … 남의 편지(마음)를 훔쳐보다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서 얼마 후 그와 헤어졌다 ..  (8, 40, 56쪽)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책이름을 놓고 궁시렁거려 본다. 왜냐하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에는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라는 말마디하고 유미리 님 삶하고는 그닥 이어졌다고는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미리 님은 당신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즐긴다. 더도 덜도 아닌 당신 고운 삶임을 헤아리며 받아들인다. 싫든 좋든 고맙든 달갑잖든 하루하루 목숨줄을 잇는다. 그렇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프던 나날이 길었던 만큼, 또 이런 나날이 있었던 만큼, 이와 같은 나날 이야기를 조곤조곤 적바림한다.

 누구한테 드러내 보이려고 적바림하는 글이 아니다. 그예 쏟아지는 글이다. 누구한테 알린다거나 참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하고 밝히는 글이 아니다. 그예 살아가는 하루하루 틈틈이 솟아오른 글이다.

 조그마한 사람으로서 조그맣게 살아가는 유미리 님이라고 느낀다. 수수한 사람으로서 수수한 삶을 보듬는 유미리 님이라고 여긴다. 당신한테 글쟁이나 문학꾼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여느 ‘애 엄마(이 책을 내놓을 때에는 아가씨)’이다. 잘날 구석이 없으나 못날 구석도 없는 소담스러운 목숨이며 삶이다.

 문득 궁금하기는 하지만, 또 앞으로는 어떠할는지 모르는데, 유미리 님이 도시 한복판 사람이 아니라 시골 한구석 사람이라면 어떠한 글을 쓰려나. 아이와 둘이서 꾸리는 삶은 어떠한 결 어떠한 무늬 어떠한 빛깔일는지 궁금하다. 이제 아이가 제법 컸을 텐데, 아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떤 살림살이로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배를 앓으며 낳은 아이를 젖이 아프도록 물리고 몸이 고되도록 돌보면서 키우는 나날을 어찌 돌아보는가 궁금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유미리 님 다른 산문책 《생명》에 잘 나왔으리라 본다. 《생명》도 곧 읽을 생각인데, 2000년에 나온 작품 《생명》이 아니라, 2010년이나 2011년 삶자락 목소리를 듣고 싶다.


.. 나는 여자를 싫어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던 탓일까 … 내가 처음으로 성욕을 느낀 것은 몇 살 때였을까. 성교가 아니라, 사람과 몸을 나누고 싶다, 누군가 나를 만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라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품고 있었다 … 나는 여자와 작가를 양립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런 데다 엄마나 아내 역할까지 하라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  (18, 34, 99∼100쪽)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한 주 이레, 한 달 서른 날을 꼬박 붙어 지내는 동안, 웃고 떠들며 안고 어르기도 하지만, 이맛살 찌푸리며 꾸중을 하기도 한다. 아이 엄마 말마따나 아이 아빠는 아이 눈높이하고 똑같거나 어쩌면 아이 눈높이보다 낮기 때문에 아이한테 토라지기까지 한다. 하기는, 아이한테 골을 부리는 아빠란 어디에 있을까. 아빠가 아이를 달래기도 하지만, 아이가 아빠를 달래기도 한다. 아이랑 아빠가 다르다면, 아빠는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아이가 입을 옷을 빨며 아이가 잠들 잠자리를 추스른다. 아빠는 아이를 수레에 태워 자전거를 달리고, 아이가 먹을 밥거리를 벌어서 값을 치르며, 아이가 누릴 물건을 가방에 짊어지고 다닌다.

 아빠라는 자리는 어떤 삶일까. 엄마라는 자리는 어떤 삶이려나. 아이라는 자리는 또 어떠한 삶인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아이였을 적을 늘 돌이킨다. 아이와 복닥이면서 내가 아이하고 복닥이는 이 느낌이, 내가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는 어떠했고, 우리 옆지기는 당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는 어떠했으려나 하고 곱씹는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읽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 삶을 읽을 텐데,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제 삶을 여민다. 유미리 님 산문책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를 읽으며 유미리 님 삶을 돌아보는 가운데 내 삶을 돌아본다. 유미리 님은 유미리 님대로 일본땅에서 ,나는 나대로 한국땅에서, 저마다 슬기로우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맞이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 여성은 어디서든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눈썹, 복사뼈, 엉덩이 사이에서도 … 성은 환상에 지배되기가 예사인데, 여자들이 남자들의 환상을 받아들여 악전고투하는 꼴은 어째 좀 이상하다 … 나 자신은 욕망이 강한지 약한지 잘 모른다. 내 방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청소기도 없다. 전기밥솥도 없다. 일반적인 집에는 흔히 있는 것이 없는 셈인데, 별로 갖고 싶은 생각도 없다. ..  (48, 71, 118쪽)


 번역은 영 마땅하지 않다. 첫머리부터 “말을 사용(使用)한다(7쪽)”라 적바림하더니, 마지막까지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感謝)를 드립니다(182쪽)”라 적바림한다. 이렇게 번역을 해도 될까. 이런 번역도 번역이라 할 만한가. 이 책을 옮긴 한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우리네 번역은 이러한 말굴레에서 허덕이는지 슬프다. 왜 우리네 창작꾼이나 번역꾼은 우리 말글을 조금 더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는지 서글프다. 왜 우리네 문학은 더욱 넉넉하며 푸진 말잔치가 아니라, 더욱 쪼그라들거나 짓눌린 말다툼으로 그치는지 서운하다.

 “섹스는 의사(擬似)적인 죽음이며(23쪽)”는 번역이 아니다. 일본글을 우리 말이 아닌 한글로만 적은 글이다. “실제와 비슷하다”는 뜻이라는 ‘擬似’인데, 일본사람이 쓰는 일본말 ‘의사적’을 굳이 고스란히 살려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홍세화 님은 우리 말로 ‘너그러움’이라 하지 않을 뿐더러, 한자말로 ‘관용’이라고도 않고 프랑스말 ‘똘레랑스’를 쓰고 말았다. 번역쟁이이든 지식꾼이든 이런 말은 섣불리 쓰면 안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눌 말을 써야 옳다. 여느 사람들과 수수하며 수월하게 주고받을 말을 깨달아야 아름답다. “화제(話題)의 대상(對象)으로 삼는다(73쪽)” 같은 말마디는 “이야깃거리로 삼는다”라 하면 넉넉하고, “(죽고 만 고양이) 검둥이의 존재감(存在感)을 불식(拂拭)할 수 없을 것 같다(42쪽)”는 “(죽고 만 고양이) 검둥이를 내 마음에서 지울 수 없을 듯하다”로 다듬어야 알맞다고 느낀다. “우리 부모님”이라 했다가 “나의 어머니(153쪽)”라고 적바림한 번역은 귀엽다고 해야 할까나. 그나마 “나의 부모님”이라 하지 않았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창작이든 번역이든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다스리지 못하면, 이렇게 책으로 엮은 문학을 읽는 사람한테 얄궂은 말버릇이 퍼진다. 얄궂은 말버릇은 아주 더디 차근차근 스민다. 어느 하루 갑작스레 확 바꾸지 않는다. 차츰차츰 젖어들도록 이끈다.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라는 산문책이 유미리 님한테는 “내 말 사전”임을 헤아린다면, 이러한 산문책을 우리 말로 옮길 때에 ‘어떤 우리 말’로 옮겨야 하고, 얼마나 글을 더 가다듬거나 손보아야 하는가를 한결 깊이 살피며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글 한 줄과 낱말 하나 더욱 마음을 쏟아 바로잡거나 어루만져야 한다고 느낀다.


.. 한국에서 온 유학생 A가 다니는 대학교에 놀러 갔을 때, A의 친구와 함께 전철을 타게 되었다. 그 친구가 이름을 묻기에, “유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한국사람?” “네.” “한국사람치고는 일본말 굉장히 잘하네요.” “일본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럼 일본사람이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재일한국인 2세인데요.” “그게 무슨 소리죠?” 나와 A는 어리둥절하여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녀는 재일한국인이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67쪽)


 유미리 님이 재일한국인(또는 재일조선인, 또는 그냥 한겨레)이 아니었다면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일본사람으로 살았어도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같은 책을 쓸는지 모르는데, 그때에는 이 책에 실을 이야기가 아주 다르겠지. 아니, 재일한국인이 아닌 ‘일본사람’ 눈으로 ‘한국에서 온 유학생 아무개’가 참 바보스럽거나 어리숙한 줄을 깨닫는다면 어떤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한국 역사를 아는 일본사람이 한국 역사를 모르는 한국사람을 마주할 때에는 어떤 느낌일까. 아무래도, 일본 역사를 아는 한국사람이 일본 역사를 모르는 일본사람을 마주할 때하고 엇비슷한 느낌일까. 꼭 같지는 않을 터이나 살짝이나마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낄까.

 “자기 과거의 비참한 사건을 재산이라고 여기는 감각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151쪽).”라는 대목에 마지막으로 밑줄을 긋는다. 책은 세 번째 읽으며 꼭 덮는다. 이제 이 책은 오래오래 가슴에 묻자. 유미리 님 다음 산문책을 읽자.

 우리 집 딸아이는 앞으로 열 해쯤 제 엄마 아빠랑 함께 살아가고 나서 이 책을 들출 수 있겠지. 아쉽게 판이 끊어졌으나 아버지가 이 책을 고이 장만해서 예쁘게 읽은 다음 잘 건사해 놓을 테니까,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보기 힘들 2020년에도 반갑게 마주할 만하리라 본다. 그나저나, 2020년이나 2030년에는 유미리 님 산문문학을 한국땅 사람들이 어떻게 돌아볼까 궁금하다. 유미리 님이 환갑 나이를 넘어선 뒤에는 한국땅 사람들은 이녁 문학을 어떻게 살피며 곱씹을는지 궁금하다. (4343.12.8.물.ㅎㄲㅅㄱ)


―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글,김난주 옮김,민음사 펴냄,2000.4.24./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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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와 글쓰기


 고등학교 1학년이던 때 시를 깨작거린다든지 ‘읽은 책 나누는’ 느낌을 아로새긴다든지 하면서 글쓰기를 비로소 했다. 내가 글쓰기를 안 하고 살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궁금한데,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오는 내내, 겨울이면 언제나 추위를 뼛속 깊이 느끼면서 지낸다. 여름이면 더위를 물씬 느끼면서 지낸다. 시골집으로 옮겨 지내는 요즈음도 추위를 사무치게 느끼며 지낸다. 손이며 발이 추위에 오그라들지 않으면서 지낸 적이 이제껏 한 차례도 없지 않나 싶다. 모처럼 당신 아들이랑 손녀랑 보러 찾아온 어버이가 방에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서만 서성이다 돌아가시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 들어온다 해서 바깥보다 그닥 따뜻하지 않을 수 있으니 몹시 남우세스럽다. 나는 참, 왜 이렇게 스스로 춥게 지내면서 추운 집살림을 조금이나마 따숩게 추스르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까지 구지레하게 주절주절 늘어놓을까. 설마 자랑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하지는 않을 테지. 손이 오그라들어 호호 입김을 불면서 글을 쓴달지라도 머나먼 옛날, 가난을 벗삼으며 어렵게 글 한 줄 적바림하던 사람들 넋을 헤아릴 만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든지, 더위를 잊으면서 글을 쓴다든지, 배부르거나 배고픈 하루를 살피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든지, 아이와 함께 살며 기쁘며 고된 나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든지 한다면, 참으로 부질없는 글쓰기라고 여긴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부질없는 글쓰기로 이룬 문학을 읽으면 몹시 재미없을 뿐더러 따분하다고 느끼는데, 나부터 부질없는 글쓰기로 뭔가를 끼적거린다면 얼마나 덧없고 짜증스러우며 밉고 못나 보일까. 추워도 그냥 추운 채 살다가 추운 줄조차 그만 잊으며 지낸다. 사랑하는 짝꿍이 있고, 고운 아이가 있는데, 아빠 멋대로 이렇게 살아가면 제 살붙이 추운 줄 모르는 바보가 되기에, 이제는 나 스스로 추운 줄 잊지 말자며 자꾸자꾸 돌이키고 생각해 내면서 새벽을 맞이하려 한다. 퍽 힘들지만, 이렇게 안 하면 집식구랑 더불어 지내는 뜻이나 보람이 어디 있겠나.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보일러가 몇 분 동안 돌고 몇 분씩 쉬는가 곱씹는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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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와 글쓰기


 옆지기와 어머니를 뺀 사람 가운데 나한테 미역국을 끓여 준 사람이 둘 있었던가 싶다. 살붙이 아닌 사람한테서 미역국을 받아 먹는 일이란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한 끼니 밥그릇을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을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한 해 가운데 12월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태어난 날이 12월에 있기 때문에 이달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1월부터 한 해를 달리고 보면, 어느 무렵에 12월까지 닿을까 싶어 숨이 찰 뿐더러 빠듯한데, 7월을 지나고 9월을 지나며 11월에 이르면, ‘이야, 드디어 12월도 코앞이네.’ 하면서 온몸과 온마음이 짜릿짜릿하다. 바야흐로 11월 30일 문턱에서 12월 1일로 넘어가면,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보다 훨씬 찌르르하다. 올 한 해, 그예 12월까지 살아냈구나 하면서 크게 숨을 돌린다.

 헌책방이라는 곳에 처음 눈을 뜬 1992년부터 글쓰기에도 조금씩 눈을 뜬 삶이라고 느낀다. 이해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오는 동안 언제나 글을 쓰기는 했으나, 내 삶이 글을 쓰는 나날이 되리라 여기며 아주 못박고 지낸 해는 1998년이 아닌가 싶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도 글을 쓰기는 썼고, 이때 쓴 글은 ‘요즈음 쓰는 내 셈틀에는 넣을 수 없는 작은 디스켓’에 담겼기에 열어 볼 수 없다만, 199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쓴 글을 더듬을 때에, 내 글은 해마다 크게 물갈이를 한다고 느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는 거의 물갈이 없는 글이었다고 느낀다. 아니, 물갈이가 아예 없지는 않다. 해마다 노상 다른 삶이고 나날이었으니 해마다 노상 다르게 거듭나거나 다시 태어나면서 글을 썼다.

 나는 글쓰기를 할 때에 여섯 달치를 똑 끊으며 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셈틀에 ‘내가 쓰는 글을 갈무리하는 방’을 만들면서 여섯 달마다 새로 방을 연다. 날마다 글을 쓰니까 날마다 글이 쌓이고, 날마다 쌓이는 글이 늘면 불러들여 새로 읽거나 자료를 찾을 때에 퍽 힘들다. 예전에는 글을 담은 디스켓이 날아간다든지 갑자기 셈틀이 먹통이 된다든지 하기 일쑤라, 애써 쓴 글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여섯 달치로 끊어 따로 건사해 놓곤 했다. 그래서, 내 글쓰기를 톺아보면, 여섯 달마다 크게 물갈이를 시키는 노릇이라고 느낀다. 이제 올 한 해도 12월이 하루하루 지나는 만큼, 다시금 새해를 맞이한다면, 나는 또 새해에 걸맞게 내 글쓰기를 사뭇 다르게 고치는 길로 접어들겠지.

 예전에는 ‘예전에 쓴 글을 고쳐서 새로 써야 할 때’에, 예전 글을 고스란히 남기고, 파일이름을 새로 붙여 ‘예전 글이랑 새로 고친 글이랑 나란히 남도’록 했다. 이제는 애써 이렇게 두 가지 글을 남기지 않는다. 바쁘다고 할는지, 번거롭다며 대충 지나간다고 할는지, 글 끝에 ‘어느 날 고쳐씀’이라고 토만 달고 그친다. 글을 새로 쓰는 가운데 예전 글을 끝없이 고쳐쓰는 내 글쓰기이기에, 예전 글이랑 고친 글을 통째로 남기면, 글쓰기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한결 남달리 엿볼 만하리라 본다. 그러나, 워낙 써 둔 글이 많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두 갈래 글, 또는 서너 갈래 글을 모두 남겨 놓기가 벅차다. 나부터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을 다 돌이키지 못한다고 느끼니까.

 옆지기하고 글쓰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 글을 고치는 뜻’을 곰곰이 되새긴다. 예전 글은 예전 글대로 값이 있을 뿐 아니라, 예전에 그 글을 쓰던 느낌과 삶이 있으니 섣불리 건드린다든지 손질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런데 나는 예전 글을 자꾸 고친다. 지난 내 삶을 부끄러워 하기 때문일까. 오늘 내 삶 또한 앞으로는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인가. 오늘은 오늘대로 내 삶을 꾸리면서 어제는 어제대로 내 어설프거나 모자라거나 어리숙한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야 할 텐데, 나는 자꾸자꾸 오늘 내 모습과 넋에 따라 어제 내 모습과 넋을 지우려 드는 노릇이구나 싶다.

 앞으로 마흔여섯을 맞이하면 내 글쓰기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앞으로 쉰여섯을 맞이할 수 있으면, 예순여섯이나 일흔여섯까지 고맙게 맞아들일 수 있으면, 이때에는 내 글쓰기 삶이 어떠하려나. 열여섯부터 이어온 글쓰기를 서른여섯까지 이은 삶만 돌아보아도 더없이 고마운 셈이라고 느낀다. 참말, 하느님 고맙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에 내가 밥을 하고 미역국 끓여 식구들 밥상을 차린다고 딱히 무슨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옆지기가 말을 해 주기까지 한 가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태어난 날에 늘 당신 손으로 당신 미역국을 끓이셨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곰곰이 떠올린다. 잘 떠오르지 않지만, 떠올려 보려고 한다. 그러나, 끝끝내 우리 어머니는 당신 태어난 날에 당신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셨는지, 아니면 형이나 내가 끓여 준 적이 있는지 안 떠오른다. 틀림없이 형이든 나든 안 끓여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못 떠올리지 않나 싶다. 나는 바보스러웠으나 형은 나처럼 바보스럽지 않으니 형은 끓여 드렸는지 모른다. 참 우스꽝스럽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태어난 날이든 아버지 태어난 날이든, 내가 선뜻 나서서 미역국 끓여 드려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아예 없지 싶다. 이러니, 나 태어난 날에 내가 손수 미역국을 끓이면서 거의 아무 느낌이 없지 않나 싶다. 히유, 딸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데, 딸아이가 네 살 나이에 맞이할 제 할머니랑 할아버지 난날에는, 아침 일찍 제 아버지가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함께 찾아가서 미역국을 끓여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시골버스 첫차 때에 맞추어 집식구 모두 부모님 댁에 찾아가서 아들 된 사람이 미역국을 끓여서 올리든지.

 2011년 달력에는 옆지기 어버이 난날하고, 음력으로 태어난 날을 헤아리는 어머니 난날을 동그라미 그려서 잘 보이도록 적바림해야겠다(아버지 난날은 양력이라 안 잊는데, 어머니 난날은 음력이라 거의 언제나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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