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글쓰기


 옆지기와 어머니를 뺀 사람 가운데 나한테 미역국을 끓여 준 사람이 둘 있었던가 싶다. 살붙이 아닌 사람한테서 미역국을 받아 먹는 일이란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한 끼니 밥그릇을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을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한 해 가운데 12월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태어난 날이 12월에 있기 때문에 이달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1월부터 한 해를 달리고 보면, 어느 무렵에 12월까지 닿을까 싶어 숨이 찰 뿐더러 빠듯한데, 7월을 지나고 9월을 지나며 11월에 이르면, ‘이야, 드디어 12월도 코앞이네.’ 하면서 온몸과 온마음이 짜릿짜릿하다. 바야흐로 11월 30일 문턱에서 12월 1일로 넘어가면,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보다 훨씬 찌르르하다. 올 한 해, 그예 12월까지 살아냈구나 하면서 크게 숨을 돌린다.

 헌책방이라는 곳에 처음 눈을 뜬 1992년부터 글쓰기에도 조금씩 눈을 뜬 삶이라고 느낀다. 이해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오는 동안 언제나 글을 쓰기는 했으나, 내 삶이 글을 쓰는 나날이 되리라 여기며 아주 못박고 지낸 해는 1998년이 아닌가 싶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도 글을 쓰기는 썼고, 이때 쓴 글은 ‘요즈음 쓰는 내 셈틀에는 넣을 수 없는 작은 디스켓’에 담겼기에 열어 볼 수 없다만, 199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쓴 글을 더듬을 때에, 내 글은 해마다 크게 물갈이를 한다고 느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는 거의 물갈이 없는 글이었다고 느낀다. 아니, 물갈이가 아예 없지는 않다. 해마다 노상 다른 삶이고 나날이었으니 해마다 노상 다르게 거듭나거나 다시 태어나면서 글을 썼다.

 나는 글쓰기를 할 때에 여섯 달치를 똑 끊으며 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셈틀에 ‘내가 쓰는 글을 갈무리하는 방’을 만들면서 여섯 달마다 새로 방을 연다. 날마다 글을 쓰니까 날마다 글이 쌓이고, 날마다 쌓이는 글이 늘면 불러들여 새로 읽거나 자료를 찾을 때에 퍽 힘들다. 예전에는 글을 담은 디스켓이 날아간다든지 갑자기 셈틀이 먹통이 된다든지 하기 일쑤라, 애써 쓴 글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여섯 달치로 끊어 따로 건사해 놓곤 했다. 그래서, 내 글쓰기를 톺아보면, 여섯 달마다 크게 물갈이를 시키는 노릇이라고 느낀다. 이제 올 한 해도 12월이 하루하루 지나는 만큼, 다시금 새해를 맞이한다면, 나는 또 새해에 걸맞게 내 글쓰기를 사뭇 다르게 고치는 길로 접어들겠지.

 예전에는 ‘예전에 쓴 글을 고쳐서 새로 써야 할 때’에, 예전 글을 고스란히 남기고, 파일이름을 새로 붙여 ‘예전 글이랑 새로 고친 글이랑 나란히 남도’록 했다. 이제는 애써 이렇게 두 가지 글을 남기지 않는다. 바쁘다고 할는지, 번거롭다며 대충 지나간다고 할는지, 글 끝에 ‘어느 날 고쳐씀’이라고 토만 달고 그친다. 글을 새로 쓰는 가운데 예전 글을 끝없이 고쳐쓰는 내 글쓰기이기에, 예전 글이랑 고친 글을 통째로 남기면, 글쓰기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한결 남달리 엿볼 만하리라 본다. 그러나, 워낙 써 둔 글이 많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두 갈래 글, 또는 서너 갈래 글을 모두 남겨 놓기가 벅차다. 나부터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을 다 돌이키지 못한다고 느끼니까.

 옆지기하고 글쓰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 글을 고치는 뜻’을 곰곰이 되새긴다. 예전 글은 예전 글대로 값이 있을 뿐 아니라, 예전에 그 글을 쓰던 느낌과 삶이 있으니 섣불리 건드린다든지 손질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런데 나는 예전 글을 자꾸 고친다. 지난 내 삶을 부끄러워 하기 때문일까. 오늘 내 삶 또한 앞으로는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인가. 오늘은 오늘대로 내 삶을 꾸리면서 어제는 어제대로 내 어설프거나 모자라거나 어리숙한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야 할 텐데, 나는 자꾸자꾸 오늘 내 모습과 넋에 따라 어제 내 모습과 넋을 지우려 드는 노릇이구나 싶다.

 앞으로 마흔여섯을 맞이하면 내 글쓰기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앞으로 쉰여섯을 맞이할 수 있으면, 예순여섯이나 일흔여섯까지 고맙게 맞아들일 수 있으면, 이때에는 내 글쓰기 삶이 어떠하려나. 열여섯부터 이어온 글쓰기를 서른여섯까지 이은 삶만 돌아보아도 더없이 고마운 셈이라고 느낀다. 참말, 하느님 고맙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에 내가 밥을 하고 미역국 끓여 식구들 밥상을 차린다고 딱히 무슨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옆지기가 말을 해 주기까지 한 가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태어난 날에 늘 당신 손으로 당신 미역국을 끓이셨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곰곰이 떠올린다. 잘 떠오르지 않지만, 떠올려 보려고 한다. 그러나, 끝끝내 우리 어머니는 당신 태어난 날에 당신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셨는지, 아니면 형이나 내가 끓여 준 적이 있는지 안 떠오른다. 틀림없이 형이든 나든 안 끓여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못 떠올리지 않나 싶다. 나는 바보스러웠으나 형은 나처럼 바보스럽지 않으니 형은 끓여 드렸는지 모른다. 참 우스꽝스럽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태어난 날이든 아버지 태어난 날이든, 내가 선뜻 나서서 미역국 끓여 드려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아예 없지 싶다. 이러니, 나 태어난 날에 내가 손수 미역국을 끓이면서 거의 아무 느낌이 없지 않나 싶다. 히유, 딸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데, 딸아이가 네 살 나이에 맞이할 제 할머니랑 할아버지 난날에는, 아침 일찍 제 아버지가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함께 찾아가서 미역국을 끓여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시골버스 첫차 때에 맞추어 집식구 모두 부모님 댁에 찾아가서 아들 된 사람이 미역국을 끓여서 올리든지.

 2011년 달력에는 옆지기 어버이 난날하고, 음력으로 태어난 날을 헤아리는 어머니 난날을 동그라미 그려서 잘 보이도록 적바림해야겠다(아버지 난날은 양력이라 안 잊는데, 어머니 난날은 음력이라 거의 언제나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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