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글 읽기
나는 ‘서평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느낌글’만 쓴다. 책을 읽은 뒤에 글을 쓴다면 ‘책느낌글’을 쓴다.
내가 읽은 책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쓰기 앞서, 또는 쓰고 난 다음 다른 사람들이 썼을는지 모를 느낌글을 찾아보곤 한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느낌글’을 만나지 못하기 일쑤이다. 거의 언제나 내가 마주하는 글이란 ‘서평글’투성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서평글을 신나게 쓴다. 느낌글을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본다만, 참말, 책을 읽은 느낌 그대로 조곤조곤 적바림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안 보일까. 책을 읽었으니 ‘책 읽은 느낌 담은 글’을 쓰면 되지 않나. 왜 자꾸 ‘서평글’에 옭매여 버리는가.
누가 책을 선물해 주었든, 무슨무슨 행사가 있어 책을 거저로 받든, 책을 읽었으면 내 느낌을 적으면 된다. 구태여 줄줄줄 칭찬만 늘어놓는다든지, 책을 제대로 못 읽은 티를 내면서 어줍잖게 겉훑기 얘기를 늘어놓을 까닭이 없다. 이럴 바에는 아예 글을 안 써야 낫다. 품과 겨를이 아깝다. 더욱이, 느낌글을 써내지 못한다면, 이렇게 읽은 책은 그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된다. 나 스스로 읽어서 내 삶을 일구도록 이끄는 좋은 책이라 한다면 느낌글을 쓰도록 절로 이끌기 마련이다. 좋은 책 하나를 읽은 사람은 쓰지 말라 해도 느낌글을 쓸밖에 없다.
느낌글이란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적바림한 글인 가운데, 몸으로 느끼거나 헤아릴 만한 몸짓이곤 하다. 글을 모르거나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삶이 바뀐다. 스스로 삶을 바꾸며 거듭난다.
참말이지, 서평글은 척 보아도 알아챈다. 서평글을 쓰는 사람은 제아무리 좋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삶을 바꾸지 못하고, 삶을 바꾸어야 하는 줄 깨닫지 못하며, 삶을 바꿀 생각을 처음부터 안 품는다.
책은 지식이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지식을 쌓지 못한다. 더 많은 책을 읽는다고 더 똑똑해지거나 더 훌륭해지지 않는다. 리영희 님 책을 읽었다 해서 우리 삶터를 굽어살피거나 꿰뚫는 눈이 한결 깊어지지 않는다. 리영희 님이 읽어낸 ‘우리 삶터 속내’를 조금은 엿볼 뿐이다.
책은 삶이다. 내가 꾸리는 삶이 내가 읽는 책이다. 내가 꾸리는 삶만큼 나 스스로 책을 알아보고 집어들며 읽는다. 내가 꾸리는 삶을 나 스스로 어떻게 다스리거나 추스르느냐에 따라, 내가 읽고자 하는 책을 고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서평글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다면, 이 나라 이 터전이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테지만, 이 나라 이 터전이 이 모양 이 꼴인 채 그예 흐르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느낌글 아닌 서평글만 잔뜩 쏟아내는 틀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소리라고 여긴다. (4343.12.8.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