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맞는 마음


 새눈이 내립니다. 문을 열고 내다 봅니다. 마당에 어느새 새눈이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밤 한 시입니다. 아이는 곱게 잠들지 않습니다. 그예 울기만 합니다. 힘들어서 그러는지, 고단해서 그러는지, 심심해서 그러는지, 더 놀고파 그러는지 좀처럼 예쁘게 잠들지 못합니다. 새근새근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어찌해야 좋을까요.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랑 꽤 자주 부대끼는 일이지만, 부대낄 때마다 슬프고 안쓰럽습니다. 악을 쓰지 말고 억지를 부리지 말며 어여삐 잠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지나치려나요.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안습니다. 낮나절 아이를 안고 읍내를 다녀오느라, 저녁나절 빨래를 하느라, 더구나 아빠는 낮잠을 못 잔 몸이라, 아이를 안으면서 끄응 소리가 납니다.

 아이한테 밤눈 내리는 바깥 모습을 보여줍니다. 달도 자고 별도 자는 이 깊은 밤에 온누리 온통 하얀 빛깔인데 홀로 이렇게 깨어 울면 어떡하니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빠도 속으로는 얘가 참 울음을 못 그치는구나 싶어 밉살맞네 하고 여겼습니다만,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을 고칩니다. 나 또한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어떠했고, 또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아이라 할 때에 어떠할까 돌아보면, 아이를 다그칠 수 없습니다.

 품에 안긴 아이는 울먹울먹하다가 찬찬히 머리를 파묻습니다. 머리를 파묻은 아이를 서서 안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서서 안고 싶으나, 팔과 허리가 받쳐 주지 않습니다. 배에 올려놓다가 팔베개를 하고, 한참 소근소근 달래니 비로소 눈을 깜빡깜빡 하다가는 고이 잠듭니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놀리고 가르치고 보듬으며 살아오셨을까요.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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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감은빛님의 "2010 '생태', '환경' 분야 아까운 책!"

네 가지 책을 다 읽은 사람으로서 <녹색세계사> 빼고는 그다지 생태와 환경에 더 살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다만 <흙>은 제대로 읽는 사람한테는 무언가 깊이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그러나 <흙> 또한 생태환경책이라기보다는 '생태환경 지식'으로 나아가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잊혀진 미래 - 숨겨진 풍경 - 작고 위대한 소리들 -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이 다섯 가지 책들이야말로 사람들이 거의 알아채지 못하거나 잘 못 읽는 환경책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 <작고 위대한 소리들>은 번역이 너무 엉터리이고, <잊혀진 미래>는 오탈자가 너무 많지요 -_-;;; 실천이나 삶 없이 지식과 이론만 다루는 책들은 환경책이라고 말하기가 좀... 힘들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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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2-30 11:06   좋아요 0 | URL
아! 선생님! 말씀 무척 고맙습니다!
배다리 '나비날다' 책방에서 스치듯 뵌 적 있었는데,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저 역시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제 기준은 '출판'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고려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말씀해주신 책 중에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와 <작고 위대한 소리들>은 제 기준에서 조금 비중이 적어서 언급하지 않았고, 나머지 책들은 솔직히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란놀 2010-12-30 12: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선생님이라니요... @.@

어떠한 환경책이든, 사람들이 환경책을 잘 살펴 주면 고맙고,
환경책을 애써 살피는 눈길이라면
'지식 이야기를 펼치는 책'보다는
'실천하는 즐거움과 재미 담은 책'에
조금 더 눈길을 맞출 수 있기를 꿈꾼답니다.

환경 지식을 헤아리거나 환경사랑을 외치려고 읽는 환경책 아닌,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담은 책이기에 즐기는 환경책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고 또다른 꿈도 꿔요.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
 


 졸면서 책읽기


 옆지기하고 아이랑 읍내 목욕탕에 갔다. 나도 함께 갈까 하다가 그만둔다. 돈 오천 원을 아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꽤 졸려서 목욕탕에 가 보아도 얼마 못 있을 듯하지 않으랴 싶었다. 그러나 아이랑 함께 씻으려 하는 옆지기는 퍽 힘들 텐데. 그래도 옆지기는 어느덧 두 시간째 목욕탕에서 씻는다. 나는 읍사무소에 들어와서 책을 읽는다. 죠반니노 과레스끼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옛날 백제 판 1979년에 나온 책으로 읽는다.

 한참 읽으며 책에 밑줄을 긋는다. 읽다가 졸고, 읽다가 하품을 하며, 읽다가 눈자위를 꾹꾹 누르며 잠을 깨려고 한다. 셈틀 자리가 빌 때에 한동안 또각거려 보기도 한다. 아직 옆지기한테서 전화가 오지 않는다. 느긋하게 씻으라 했으니 참으로 느긋하게 씻는가 보다. 좋다.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기도 할 테지만, 모처럼 엄마랑 둘이 오붓하게 어울리면서 사랑을 듬뿍 받을 테니 서로 좋겠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책을 다시 읽는다. 나 또한 아주 모처럼 홀로 느긋하게 쉰다. 그런데 이렇게 홀로 느긋하게 쉬자니 외려 힘들다. 차라리 내가 아이를 씻긴다면 걱정하지 않을 텐데, 옆지기하고 두 시간 남짓 씻으며 아무 소식이 없으니 되레 걱정스럽다. 뭐, 걱정할 일이 있겠느냐만, 그냥 내가 아이랑 씻고 옆지기는 혼자 더 느긋하게 씻도록 했어야 하나. 그러나, 이렇게 한다면 옆지기는 또 옆지기대로 바빠맞지 않았으려나.

 읍사무소 쉼터 책상맡에서 졸며 깨며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아주 드물게 졸며 깨며 책을 읽는 한나절도 제법 즐길 만하지 않나 싶다. 읍사무소 일꾼들 일하는 소리를 귓결로 듣고, 사람들 뜸할 때에 도란도란 수다 떠는 소리를 잠결에 듣는다. 읍사무소 건물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모두들 두툼한 겉옷을 입고 일한다. 후덥지근하지 않아 좋다만 썰렁하니 그저 그렇기도 한데, 따스하기보다는 조금 썰렁한 기운이 나을 수 있겠지.

 이제 슬슬 가방을 꾸려 밖으로 나갈까. 혼자 이 골목 저 골목 천천히 쏘다니면서 옆지기랑 아이를 기다려 볼까.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도 나쁘지 않으나, 조용히 걷고 싶다. 시골집에서 아이 노랫소리랑 옆지기 말소리 말고는 듣는 소리 없이 지내다 보니, 호젓한 읍사무소에서마저도 귀가 따갑고 머리가 띵하다.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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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0] 시골버스

 도시에서 다니는 버스를 가리켜 ‘도시버스’라 하는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어로 ‘시티버스’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골에서 다니는 버스를 일컬어 누구나 ‘시골버스’라 이야기합니다. 굳이 영어로 ‘컨트리버스’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시내버스’입니다. 자그마한 시이든 커다란 시이든 시내버스입니다. 빨리 달리는 버스라면 ‘빠른버스’라 할 만하지만 언제나 ‘급행버스’라는 한자말 이름을 붙입니다. 그나마 영어로 ‘스피드버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도시를 둘러볼 때에 ‘도시마실’이라 하면 어쩐지 낯섭니다. 시골에서는 으레 ‘시골마실’이라 합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마실’이 아닌 ‘시티투어’라 할 때에 잘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도시를 오가는 기차길이니까 ‘철도공사’라는 이름보다는 ‘코레일’이라는 영어 이름이 어울리겠지요. 시골보다는 도시로 커지려 하는 경기도이기에 ‘g bus’라는 이름을 지어서 쓸 테고요. 흙을 가까이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흙내음 물씬 묻어나는 말이요, 아스팔트랑 시멘트하고 살 부비며 지내는 동안에는 아스팔트 빛깔과 시멘트 느낌이 짙게 스미는 말입니다.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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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과 글쓰기 

  난 어릴 때부터 무언가 선물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열거나 뜯어 마음껏 즐겨 본 일이 없다. 늘 집까지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말씀드리고 나서 끌거나 뜯었다. 옆지기와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날은 집에서 옆지기랑 아이가 보는 앞에서 선물을 끌른다. 내가 먼저 맛보거나 나부터 슬쩍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아니, 이런 마음이 드는 적이란 없다. 대수로운 선물이든 흔한 선물이든 똑같은 선물이고 한결같이 사랑스럽다.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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