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과 글쓰기


 뒷간이 집 바깥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밤에 뒷간을 가자면 어두운 길을 살살 짚으며 걸어가야 합니다. 뒷간이 집 안쪽에 붙은 여느 도시 살림집에서는 그냥 전기불을 켜고 슬슬 걸어가면 되겠지요.

 하품을 하며 문을 열고 집 바깥으로 나옵니다. 깜깜한 밤하늘을 등에 지고 뒷간으로 갑니다. 둘레에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시골 하늘을 살짝 올려다봅니다. 큰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였는데 모처럼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해맑은 밤하늘입니다. 마구 쏟아질 듯하다는 옛날 옛적 빛나는 별빛 하늘은 아니지만, 숱한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마저 자동차를 몰고자 하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며 더 큰 아파트에서 누리려 하는 한국땅인 만큼, 몽골이나 티벳이나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산티아고 같은 데처럼 아리따운 밤하늘을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토록 더러운 물질문명을 꼭꼭 움켜쥔 채 날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내놓고 있는 이 땅에서 무슨 아리따운 밤하늘을 찾을 수 있겠어요. 이 땅에서는 시원하고 해맑은 샘물 또한 섣불리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케케묵고 얼빠진 채 살아가는 이 나라라 할지라도 밤하늘은 밤하늘이요, 별이 가득한 하늘은 별이 가득한 하늘입니다.

 우리 집은 바깥에 뒷간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밤하늘 별빛을 헤아리면서 살아갑니다. 어두운 밤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어둡지 않은 밤을 실컷 즐기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담을 텐데, 어두운 밤이 일찍부터 찾아오는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저로서는 저녁 일고여덟아홉 시이면 이내 잠자리에 든 다음 희뿌윰히 밝아오는 새벽 서너덧 시이면 으레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담습니다. (4343.8.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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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와 달팽이와 개구리


 퍼붓는 빗길을 헤치며 자전거를 달려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나비와 달팽이와 개구리를 만난다. 차에 치여 그만 숨을 거둔 나비 한 마리가 길섶 한켠에 쓰러져 있다. 비를 맞아 젖은 날개를 어쩌지 못하고 꼼짝 않는 나비가 길섶 흰 금에 앉아 있다. 달팽이가 어디부터 기어왔는지 모를 노릇인데 길섶 가장자리에서 기고 있다. 길섶 물 고인 웅덩이에서 놀던 개구리는 내 자전거가 물웅덩이를 가로지를 무렵 화들짝 놀란 듯 길 옆 풀숲으로 뛰어든다.

 자동차들은 빗길에 나비를 그냥 치거나 밟을까 걱정스럽다. 자동차들은 노란 금과 흰 금 안쪽으로 얌전하고 천천히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한테는 달팽이가 보일 노릇이 없으니 작은 돌멩이 하나 밟았다고 여기거나 아예 못 느낀 채 조그마한 목숨 하나 저승으로 보내겠구나 싶다. 그나마 개구리 한 마리는 내가 풀숲으로 보내 주었기 때문에 얼마쯤이나마 더 살아갈 수 있겠지. (4343.8.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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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웅진 세계그림책 132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서애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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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외로우면 우리 집에 놀러 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 앤서니 브라운, 《나와 너》



 어떤 이들은 앤서니 브라운 님과 같은 그림쟁이를 두고 “그림책 독자라면 누구나 최고의 작가라고 손꼽는” 같은 꾸밈말을 달아 놓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웁니다. ‘최고’란 “가장 높음”이나 “가장 훌륭함”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그림쟁이보다 앤서니 브라운 님이 가장 돋보인다거나 높다거나 훌륭하다거나 거룩하다는 소리인 셈입니다.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느끼기에 따라 다를 텐데, 누군가는 닥터 수스 님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테고, 아무개는 윌리엄 스타이그를 첫 손가락으로 삼을 테며, 어떤 이는 버지니아 리 버튼 님 같은 그림쟁이는 없다고 침을 튀기리라 봅니다. 마리 홀 엣츠 님을 으뜸으로 치는 분도 있을 테고요.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가 다르기에 그림책을 바라보는 눈썰미가 다릅니다. 모두들 하는 일과 즐기는 놀이가 다른 까닭에 그림책을 받아들이는 가슴이 다릅니다. 누구나 서 있는 곳과 삶터와 마음밭과 살림돈과 가방끈이 다르니까 그림책을 읽는 눈높이와 눈결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한테는 그림책을 일군 그림쟁이 이름을 하나하나 들며 누구 그림은 어떠하고 아무개 그림은 저떠하다 말할는지 모르나(이를테면 논문이나 비평하는 글을 쓰면서), 아이들은 그림책 하나하나를 꾸밈없이 살피고 받아들이면서 생각합니다. 굳이 앤서니 브라운 님 그림책이라서 더 좋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딱히 닥터 수스 님 그림책이기에 더 재미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반드시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인 까닭에 한결 아름답다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꼭 마리 홀 엣츠 님 그림책이니까 훨씬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림책 하나마다 다른 결을 살피고, 같은 그림쟁이 그림책이라 할지라도 책마다 다른 손길과 마음길을 담았음을 읽습니다.

 서른 살 나이에 그리는 그림책에는 서른 살까지 살아오며 마주하고 부대끼며 보듬은 삶을 담습니다. 마흔 살 나이에 내놓는 그림책에는 마흔 살까지 사는 동안 만나고 복닥이며 어루만진 삶을 싣습니다. 쉰 살 나이에 선보이는 그림책에는 쉰 살까지 지내며 맞아들이고 받아들이며 어깨동무한 삶자락을 아로새깁니다. 이리하여 서른 살 나이에 그린 그림책에는 서른 살 그림쟁이 숨결을 읽으며 즐겁습니다. 마흔 살 나이에 내놓은 그림책에는 마흔 살 그림쟁이 숨소리를 들으며 반갑습니다. 쉰 살 나이에 선보인 그림책에는 쉰 살 그림쟁이 숨넋을 곱씹으며 고맙습니다.

 우리는 그림책 하나를 장만하여 읽는 자리에서 ‘우와, 아무개 그림책이 새로 나왔네!’ 하고 놀랄 수 있을 터이나, 이렇게 놀라기 앞서 ‘이야, 이 그림책 참 좋구나!’ 하고 놀라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렇게 놀라움이 절로 터져나오는 그림책이 아니고서는 구태여 사들일 까닭이 없고, 펼쳐 볼 일이란 없으며, 둘레에 나누거나 보여줄 구석이 없다고 느낍니다.

 앤서니 브라운 님 새 그림책 《나와 너》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영국에서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새로운 틀로 꾸며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서 이런 줄거리를 알 턱이 없습니다. 또 이런 줄거리를 반드시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영국 옛이야기이든 노르웨이 옛이야기이든 포르투갈 옛이야기이든 크게 돌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피며 돌아볼 대목이란 ‘그림책 《나와 너》가 내 가슴을 얼마나 두근두근 쿵쾅쿵쾅 울리는가’라든지 ‘그림책 《나와 너》가 내 마음자리에 어떻게 스며들면서 웃음이나 울음을 길어올리는가’입니다.

 제 어린 날을 생각해 봅니다. 국민학생 때였는데 우산을 깜빡 잊은 채 학교에 갔고 공부를 마칠 즈음 비가 퍼붓습니다. 꽤 걱정이 됩니다. 수업하는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창밖을 내다 봅니다. 비가 언제 그치려나, 이 비가 그치지 않으면 누가 집에서 마중을 나오려나. 집에서 날 마중나올 사람이란 없을 텐데, 이 빗길을 어떻게 헤치고 가나. 빗길을 헤치려면 가방이 안 젖도록 어떻게 해야 하나. 비닐봉지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나한테는 봉지조차 하나 없는데.

 어린 날,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학교로 찾아와 주신 적이 있는지 없는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일로 바쁘셔서 나와 주실 수 없었겠지요. 동무들 가운데 몇몇 아이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나와 줍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아이는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아 비를 쫄딱 얻어맞으며 집으로 쭐래쭐래 걸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를 흠뻑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가끔 어떤 어른이 “이런! 비를 맞고 가는구나!” 하면서 당신이 쓰던 우산을 저 같은 아이한테 씌워 주며 “어디까지 가니? 네가 가는 길까지는 우산을 같이 쓰자.”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외롭게 떨어진 채 비를 흠뻑 맞으며 걷는 아이는 있습니다. 요즈음이야 우산 하나 아주 흔하고 값싸다고 하지만, 이토록 값싸고 흔한 우산 하나 챙기지 못하는 아이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이 우산 하나 챙기지 못한 채 외로이 빗길을 걷는 아이한테 따숩게 말을 건네는 어른이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오늘날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이나 광주나 …… 이런 큰도시뿐 아니라 시골마을에서 이와 같이 따숩게 말을 건네며 손수건이든 수건이든 건네며 비를 닦으라 한다든지, 아예 우산을 안기면서 “어른인 나는 우산을 하나 새로 사도 되거든.” 하고 말할 만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그림책 《나와 너》에 나오는 노랑머리 아이는 홀로 말없이 후미진 길을 걷다가 문이 빼꼼 열린 집으로 살며시 들어갑니다. 문이 빼꼼 열린 집에 차려진 밥상을 보며 왠지 모를 너그러움과 포근함을 맛보고는, 이내 ‘낯선 집에 사는 아이 몫’으로 주어진 밥그릇을 싹싹 비웁니다. 노랑머리 아이는 노랑머리 아이가 사는 집에서는 느끼지 못하지 않았느냐 싶은 즐거움을 실컷 느끼면서 ‘낯선 집에 사는 아이 잠자리’에까지 기어들어 달콤하게 잠이 듭니다. 그러나, 낯선 집 임자는 곧 집으로 돌아오고, 낯선 집 아버지와 어머니는 몹시 성이 났습니다. 노랑머리 아이는 깜짝 놀라 후다닥 내뺍니다. 노랑머리 아이한테 밥과 걸상과 잠자리마저 빼앗긴 낯선 집 아이는 제 엄마 아빠랑 달리 노랑머리 아이한테 성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크게 놀랐을 뿐입니다. 꽁지가 빠지게 내빼는 노랑머리 아이를 창문으로 내다 보던 낯선 집 아이는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랑머리가 바라보기에, 낯선 집에 살던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랑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공원으로 마실도 다녀오는 걱정없고 즐거운 아이입니다. 언뜻 보기에 참 따사롭고 넉넉한 집에서 근심이든 슬픔이든 하나 없이 살아간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낯선 집 아이네 어머니나 아버지는 당신 아이한테 ‘당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을 즐기는지’ 한 마디도 묻지 않습니다. 함께 있기는 있으나 다른 누리를 생각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공원으로 세 식구가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빠는 아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엄마는 엄마 회사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그냥 딴청을 피웠지요.” 하는 모습입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쓰고 누리고 즐기는 모든 물질문명과 학원과 학교와 장난감 따위를 골고루 잘 갖춘 아이는 외롭지 않으며 언제나 기쁨이 넘친다 할 수 있을까요. 어버이 두 분이 다 있고, 집에 자가용이 있으며 널찍한 아파트가 있는데다가, 학교에서 꽤 높은 성적을 받고 있으면, 이 아이는 즐거운 나날이라 할 만한가요.

 아이들을 생각하기 앞서, 우리 어른들부터 되새길 노릇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모든 물질문명을 다 누리는데다가 돈이 철철 흘러넘치면 즐거운 삶인가요. 남들이 알아주는 이름값을 얻고 있다면, 어마어마한 공직자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자리에 올라 있으면, 어른들 당신은 기쁘며 아름다운 나날이나요. 아우디를 몰거나 뚜껑 없는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있으면 짜릿하며 신나는 삶인지요.

 그림책 《나와 너》가 우리한테 얼마나 살가우며 따사로운 그림책인가를 헤아리자면, ‘앤서니 브라운’이 일군 그림책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털어내어 이 그림책만 그림책 그대로 들여다보며 아이랑 오붓하게 읽고 눈물 한 방울과 웃음 한 조각 나누면 됩니다. (4343.8.7.흙.ㅎㄲㅅㄱ)


- 나와 너 (앤서니 브라운,웅진주니어,201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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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별 보기


 밤에 갑작스레 큰비가 미친 듯이 퍼붓다가 새벽에 이르러 말끔히 개며 구름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씨가 이어진다.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밤에는 어둡게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으며, 길가에 등불이 없어 달빛과 별빛을 가로막지 않으나, 한동안 밤하늘 별을 시골에서조차 찾지 못했다. 엊저녁 참 오랜만에 밤에 비가 퍼붓지 않는다. 밤에 비가 퍼붓지 않으니 후덥지근하며 끈적끈적한 날씨가 사라지는데, 이와 함께 밤하늘 별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밤하늘 별빛은 아예 잊는다고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까만 밤하늘 빛깔과 애기별꽃 같은 별무늬를 잊는다면 얼마나 슬픈 노릇일까. (4343.8.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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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숨은 과학
정창훈 지음, 한성민 그림 / 봄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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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에 깃든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43] 정창훈, 《자전거에 숨은 과학》


 자전거 한 대에는 숱한 과학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과학 이야기를 좀더 헤아리거나 살필 수 있으면 자전거를 한결 즐거우며 사랑스레 즐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자동차 한 대에도 숱한 과학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자동차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이와 같은 과학 이야기를 더욱 돌아보거나 보듬을 수 있으면 자동차를 한껏 즐겁고 신나게 즐길 수 있을 테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쓰는 모든 물건에는 과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과학 이야기 하나 깃들지 않은 물건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들이 이러한 대목을 살피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대목을 애써 살피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러저러한 물건을 쓸 수 있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많이 파는 책 가운데 ‘과학 그림동화’와 ‘과학 글동화’가 꽤 많습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읽을 무언가를 건넨다(교양)는 뜻에다가 아이들한테 무언가 가르칠 수 있다(학습)는 뜻을 더한 책입니다. 우리 삶 어디를 보더라도 과학이 깃들어 있으니 굳이 ‘과학 무엇’이라 내세우지 않아도 되건만, 이처럼 ‘과학 무엇’을 내세워야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주머니를 엽니다. 아이한테 교양과 학습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싶어 이러한 책을 선뜻 장만합니다.

 《자전거에 숨은 과학》이라는 책은 책이름부터 아예 ‘자전거와 과학’이라는 틀을 내세웁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한테 이러한 책을 선물로 내민다면 아이들로서는 자전거를 한결 더 아끼거나 살필 수 있어 무척 좋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이를테면 “자전거 전국 여행”이랄지 “자전거 세계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에도 아이들 눈길을 금세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전거를 다루는 손”이라든지 “자전거에 담은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들 눈길은 얼마나 쏠릴 수 있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이러한 이름을 얼마나 눈여겨볼까요.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미야오 가쿠 그림) 13권 20쪽을 보면, 자전거집 딸내미가 제 동무한테 “자전거는 기계라, 마음 따윈 갖고 있지 않아. 하지만 만약 마음이 있다면 너한테 이렇게 말했을 거야. 매일 타 줘서 고맙다고. 더러워져도, 흠집이 나도. 아마 자전거에게는 그게 가장 기쁜 일 아닐까?” 하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참말로 자전거는 기계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놓고 자전거에 무슨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생각날개를 펼쳐서 ‘자전거한테 마음이 있다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할까?’ 하고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에 깃든 과학을 말한다 할 때이든, 자전거에 숨은 과학을 보여준다 할 때이든, 우리는 자전거와 얽힌 과학이 우리 삶과 넋에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함께 돌아볼 수 있어요.


.. 자전거 핸들도 자동차 핸들처럼 축에 붙어 있어. 물론 자전거 핸들은 둥근 원이 아니라 막대 모양이지. 어쨌든 자전거 핸들도 자동차 핸들과 마찬가지로 축바퀴의 원리를 이용한 도구야 ..  (44쪽)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자전거를 글감으로 삼은 책 《자전거에 숨은 과학》은 자전거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전거에 깃든 과학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전거 책이 아닌 과학 책입니다. 자전거 이야기책이 아닌 과학 이야기책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지식이나 학문으로는 거의 모르거나 생각조차 않으나, 몸으로는 다 알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과학으로 풀어낸 책 《자전거에 숨은 과학》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전거를 사랑하려는 사람보다는 과학을 사랑하려는 사람한테 걸맞거나 어울립니다. 자전거를 즐겁게 타려는 사람보다는 과학을 즐기고 싶은 아이한테 알맞거나 들어맞습니다.


..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려면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해. 하지만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잖아. 바퀴와 지면 사이의 마찰력, 바퀴의 축에서 생기는 마찰력, 공기의 저항력 같은 힘들 말이야. 이런 힘들은 모두 자전거가 달리는 걸 방해하고 있어. 그래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가 저절로 멈추는 거야. 자전거 바퀴 축에 윤활유를 치는 이유는 마찰력을 줄이려는 거야. 그럼 자전거가 더 잘 달리지 ..  (110∼111쪽)


 사람들이 자전거를 장만할 때에 ‘자전거 설명서’를 챙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모든 자전거에는 다른 물건하고 똑같이 ‘제품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손전화 한 대를 사도 두툼한 설명서가 딸립니다. 사진기를 사도 사진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밝힌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장만하는 사람치고 자전거에 딸린 설명서를 챙겨 읽는다든지 꼼꼼히 살핀다든지 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거의 아무도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서 ‘설명서에 다 나온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묻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전거를 이야기하는 책’에 깃든 적잖은 이야기라든지 ‘자전거를 손질하는 정보를 다룬 책’에 깃든 웬만한 이야기는 모조리 자전거 설명서에 들어 있습니다. 자전거 설명서만 잘 읽으면 자전거를 어떻게 배워서 타야 하는가부터, 자전거를 올바르게 타는 매무새에다가, 자전거가 망가졌을 때 고치는 법까지 찬찬히 익힐 수 있습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자전거에 깃든 과학 이야기 또한 자전거 설명서에 낱낱이 적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전거 설명서는 ‘과학’을 내세우지 않으나, 자전거가 구르는 법이나 멈추는 법이나 미끄러지는 법 모두 ‘과학’하고 잇닿아 있거든요.


.. 앞 브레이크는 제동력이 좋지만, 회전력이 생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 또 뒤 브레이크는 회전력이 생기지 않지만, 제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쉽지. 자전거의 속도를 낮출 때는 이 두 브레이크의 성질을 잘 이용해야 해 …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으면 자전거가 움직이기 시작해. 자전거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되면 먼저 뒤 브레이크를 잡아. 그래야 자전거가 흔들리지 않거든. 뒤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으면 자전거가 미끄러져. 관성의 법칙에 따라 몸과 자전거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이지 ..  (114쪽)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든, 도시 아파트숲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이든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보호장구를 알뜰히 챙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보호장구를 하지 않은 어버이를 보면 나무라는 분도 제법 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로서는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으면 퍽 아슬아슬하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탈 때에 반드시 보호장구를 하도록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하면, 지난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어느 누구도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에는 도시 골목길도 시멘트가 깔리지 않은 흙길이 꽤 많았습니다. 아니, 도시 골목길에 시멘트가 깔린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흙길에서는 달리다가 넘어져도 무릎이 크게 벗겨지는 일이 드뭅니다. 으레 긁힌 생채기만 납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 때에도 비슷합니다. 풀숲이 우거진 자리에 넘어질 때하고 시멘트 전봇대나 쇠붙이 자동차를 들이받을 때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이제는 법으로 못박았을 뿐 아니라 길바닥에도 큼직한 글씨로 새겨 놓는데, 학교 둘레에서는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앞 길에서 자동차를 30킬로미티 밑으로 해서 달리는 자동차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 마음이 이렇습니다. 골목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 한강에 있는 자전거길을 달릴 때에 이곳 한강 자전거길이 ‘몇 킬로미터 넘는 빠르기’로 달리지 않도록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전거길에서 자전거한테 달리도록 하는 ‘가장 높은 빠르기’는 20킬로미터입니다. 20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면 서로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빠르기를 넘지 않도록 못박습니다. 그렇지만, 서울 한강 자전거길에서 20킬로미터 밑으로 달리려 하는 자전거꾼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또한, 자전거길에서 20킬로미터 밑으로 달릴 때에 자전거끼리 부딪히면 서로 얼마나 다치는지, 또 10킬로미터나 15킬로미터, 또는 7킬로미터로 달리다가 넘어져서 길바닥에 엎어지면 얼마나 다치는가를 제대로 아는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헬멧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꼭 착용해야 하는 보호 장구예요. 헬멧을 쓰면 자전거 사고가 났을 때 머리 손상의 85퍼센트, 그리고 뇌 손상의 90퍼센트를 막을 수 있다고 해요. 헬멧 안쪽의 완충재나 바깥쪽의 플라스틱은 깨지면서 충격을 흡수해요. 따라서 완충재나 플라스틱에 금이 가 있으면 완충 기능이 떨어져요 ..  (141쪽)


 자전거에 숨어 있다는 과학을 말하는 《자전거에 숨은 과학》은 책 끝자리에 아이들보고 헬멧을 반드시 쓰라고 이야기합니다. 틀림없이 헬멧을 썼을 때에는 안 썼을 때보다 한결 낫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 자전거는 20킬로미터를 넘는 일이 드뭅니다. 아니, 아이들 자전거는 10킬로미터를 살짝 넘는 빠르기입니다. 서울이든 시골이든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만한 자리를 어른들은 마련해 놓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겨우 자전거를 타겠다 싶은 골목이나 빈터에는 어른들이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자동차를 내달릴 뿐 아니라 아무 데나 차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은 사람들이 걷는 거님길로 자전거를 자주 다니는데, 사람들이 걷는 거님길에는 얼마나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아무렇게나 서 있는지요. 또, 가게마다 얼마나 많은 짐과 물건을 거님길에 쌓아 놓고 있는지요. 게다가, 거님길에는 얼마나 많은 전봇대와 배전반과 맨홀 따위가 있으며, 턱은 얼마나 높은지요.

 참말, 우리 터전을 돌아본다면, 우리들은 자전거 한 대를 놓고 과학을 말하기 앞서 자전거에 얽히거나 깃들어야 할 만한 따스하고 너른 마음을 이야기할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한다든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든지 하는 이야기책은 곧잘 나오지만, 정작 자전거를 내 몸으로 여기듯이 사랑하는 이야기책이라든지 자전거를 내 삶으로 곰삭이는 이야기책은 아직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제 막 자전거를 좋아하려고 하는 아이들한테마저 더 많은 지식과 더 새로운 정보를 집어넣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든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 13권 70∼71쪽을 보면, 자전거집 딸내미가 “이 푸조(자전거)는 20년도 더 된 프랑스제 평범한 대중 자전거. 부품 따윈 전부 고철들이야. 그래도, 그래도! 내겐 이 세상에 이걸 대신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더! 소중한 것에 구형이나 가격 따윈 상관없다고!” 하고 외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말마디처럼 우리들이 타는 자전거는 이 자전거 한 대와 얽힌 이야기와 삶이 소담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이 자전거 한 대에 얽힌 과학 또한 돌아볼 만하고 생각할 만한 대목임에는 틀림없을 테지만, 자전거에 얽힌 과학을 아이들하고 나누기 앞서 자전거를 즐기는 마음과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전거를 아끼는 마음을 먼저 밝히고 나누며 이야기할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자전거에 숨은 과학》이라는 책을 덮으면서 무엇보다 이 대목이 아쉽습니다. 자전거에 숨은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얼마든지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과 돌보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을 펼칠 수 있는데, 이러한 마음자리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책 끝자리에 넣은 헬멧 이야기는 ‘헬멧 완충 기능’만 다룰 뿐, 어떠한 길에서 어떠한 빠르기로 달리다가 어떻게 부딪힐 때에 ‘완충하는 기능’인지를 제대로 과학답게 다루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산을 타는 자전거나 갖은 재주를 부리는 자전거를 탈 수 있으나, 여느 아이들한테는 여느 자리에서 타는 ‘생활자전거’입니다. 이 책 《자전거에 숨은 과학》에서도 여느 아이들이 여느 자리에서 타는 생활자전거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도록 이끄는 생활과학 이야기에 눈길을 맞추고 마음길을 모두어 놓았으면 한결 알차고 아름다우며 신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른한테든 아이한테든 학문하는 과학이 아닌 살아가는 과학일 때에 뜻이 있습니다. 지식이 넘치는 과학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과학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4343.8.5.나무.ㅎㄲㅅㄱ)


 ┌ 《자전거에 숨은 과학》(봄나무,2010)
 ├ 글 : 정창훈, 그림 : 한성민
 └ 책값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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