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닢과 글쓰기


 어디에선가 글삯을 주겠다고 하면서 글을 써 달라고 하면 ‘글이야 날마다 늘 쓰니까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글삯을 주겠다고 하는 글을 쓸 때에는 글마무리가 퍽 고단합니다. 주어진 틀에 맞추어야 할 뿐 아니라, 이제까지 참 자주 흔히 펼쳤던 이야기를 되풀이해야 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나로서는 언제나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삶을 일구고 싶은데, 글삯을 받는 글은 지난날 내 모습으로 돌아가서 써야 하는 글이곤 합니다. 새로운 삶을 바라보며 새로운 넋을 담아내는 글을 살뜰히 일구어 내놓아 보면, 이와 같은 새로운 삶을 새로운 넋으로 담은 새로운 말을 으레 못 알아듣습니다. 뻔한 삶 뻔한 넋 뻔한 말이 아니고서는 이 땅 사람들은 도무지 귀를 닫고 눈을 감습니다. 날마다 새로 거듭나며 아름답게 꽃피어날 삶이란 그저 꿈 같은 소리일 뿐인가요.

 글삯을 받는 글을 오랜 품과 땀을 들여 겨우 마무리짓고 보낸 뒤에는 기운이 쪽 빠집니다. 다른 글을 쓸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여러 날 먹고살 돈은 얻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이런 글을 써 달라는 이야기를 또 듣는다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스럽습니다.

 돈닢을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때에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차근차근 담습니다. 돈닢을 바라지 않고 글을 쓰니까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알차고 아름다이 여미면서 글 하나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 딸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딸아이가 얼른 자라 돈 많이 벌기를 바라겠습니까. 우리 옆지기하고 살아가면서 우리 옆지기가 내 손품을 덜면서 집살림을 맡아 주고 밥이며 빨래며 쓸고닦기며 다 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한테 큰돈이나 큰집이나 자가용 들을 물려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쓴 책이 불티나게 팔리며 나한테 목돈이 들어오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이 널리 사랑받으며 사진밭에 내 이름이 아로새겨지기를 빌지 않습니다. 글을 쓰다가 돈을 얼마쯤 벌 수는 있을 테지만, 글을 쓰며 돈을 벌고 싶지 않습니다. 책을 내며 어느 만큼 벌이가 될는지 모르나, 책을 내놓아 살림살이를 꾸리고 싶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어 큰뜻 하나 이룰 수 있다지만, 큰뜻에 앞서 우리 살붙이하고 알콩달콩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좋은 삶과 좋은 넋과 좋은 말이면 그야말로 좋습니다. 여기에 좋은 책과 좋은 글과 좋은 사진을 나란히 놓고 싶습니다. 이러면서 나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걷고 싶고, 좋은 옆지기 좋은 딸아이로 저마다 이녁 삶을 가꿀 수 있도록 길동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책을 기꺼이 사 주는 분이나 내 사진을 스스럼없이 사들이는 분들은 나한테 돈을 보태어 주려는 마음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4343.8.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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