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아빠 - 상
츠치다 세이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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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살고 싶어 만화책 즐겨읽기
 [만화책 즐겨읽기 1] 츠치다 세이키, 《두루미 아빠 (상·하)》



 만화를 그리면서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바탕 그림이 잘 안 된’ 작품을 보자면 슬픕니다. 그러나 그림이 잘 안 되었어도 줄거리가 좋거나 작품을 통으로 살필 때에 아름다우면 ‘그림이 엉성궂어도 기쁘게’ 읽습니다. 이를테면 사진찍기를 할 때에 초점이 살짝 안 맞는다든지 흔들린다든지 빛이 어긋났다든지 하여도 가슴을 뛰도록 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작품이 있어요. 글에서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어도 아름다운 작품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맞출 줄 알아야 하지만, 이보다는 글 한 줄에 내 사랑과 믿음을 얼마나 제대로 참다이 알뜰살뜰 담을 수 있느냐가 훨씬 큽니다. 이리하여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바탕 그림이 좀 어설프더라도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바탕 그림까지 빈틈이 없다면 매우 훌륭할 테지요. 매우 훌륭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어딘가 좀 어수룩하면 어수룩한 대로 반갑고, 어딘가 살짝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쁩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고, 말마디 하나하나를 곰곰이 되씹을 수 있으면 나한테는 더없이 좋은 만화책입니다.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짤막하게 나온 《두루미 아빠》를 보았습니다. 새책으로 나왔을 때에는 알아보지 못했고, 판이 끊기고 나서 예닐곱 해가 지난 뒤에야 헌책방에서 겨우 알아보았습니다. 흔히 알 만한 이야기감을 다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그림결 또한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봤어. 이 세상이 얼마나 눈부신지. 누구보다도 많이(상권 152∼153쪽).” 같은 말마디 하나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합니다. 어쩌면 이런 말마디 하나를 읽고자 만화책을 뒤지고 사진책을 넘기며 글책을 훑는달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꾸리는 여느 삶을 더 사랑하고 싶어 이와 같은 말마디를 찾는달 수 있어요. 하루하루 참 고달프고 벅차며 힘들구나 하고 느끼니, 이 고달픔을 씻고 이 벅참을 털며 이 힘듦을 덜고자 내 마음을 건드리며 달래는 만화책 하나 좋은 사랑으로 껴안는달 수 있습니다.

 “너희들! 요코를 괴롭히면 알지? 아줌마가 너희 엄마를 때려 줄 거야(하권 44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며 새삼스레 기운을 얻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라서 다른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감싸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저희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 삶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 따스하고 넉넉히 살아가면 아이들로서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가운데 따스함과 넉넉함을 나눌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돈벌레이거나 당신 쇠밥그릇에 매여 있으면 아이들 또한 돈바라기에다가 저희 밥그릇 챙기기에만 푹 빠집니다. 따돌림이든 돌림뱅이이든 왕따이든 어른이 만들어 아이들한테 물려주지 아이들 스스로 만들지 않아요. 흔히 청소년범죄라 합니다만, 청소년범죄가 일어난다면 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낼 일이 아니라, 이 청소년을 낳아 기른 어버이와 이웃 어른과 학교 교사를 감옥에 처넣어야 합니다.

 “나 말야, 열심히 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열심히 하면 언젠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아무리 열심해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을 줄 몰랐어(하권 126∼127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며 곰곰이 되씹습니다. 즐거움(행복)이란 열매만이 아니며 열매가 즐거움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즐거움이란 내가 흘리는 땀방울입니다. 하루하루 흘린 땀이 즐거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려내고 말아야 즐거움이 아닙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렸든 상주까지만 갔든 문경새재를 못 넘든 괴산 즈음에서 멈추었든 즐거움입니다. 한 번 두 번 백 번 천 번 만 번 페달을 밟으며 달린 길이 모조리 즐거움이에요. 아무리 땀을 흘려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루지 못해서 슬픈 일이란 없습니다. 외려 이루지 못하면서 기쁘며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꼭 이루어야만 내 꿈이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꿈은 내 삶이요, 내 삶이란 내 땀이며, 내 땀이란 내 빛입니다.

 만화책 《두루미 아빠》 첫머리(상권 9쪽)를 보면 주인공 남녀가 혼인을 하겠다며 여자 쪽 어버이를 찾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남자 쪽한테는 어버이가 없습니다). 여자 쪽 어버이 두 분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중에 나누는 얘기가, “이즈미 걘, 무슨 생각이야? 내가 가지고 온 혼담은 줄줄이 깨 버리더니 저런 녀석을. 순전히 건달이잖아! 일류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어떻게 저런 거하고 알게 된 거야?” “그 회사 청소원이래요.”입니다. 주인공 여자 쪽 아버지는 당신 딸하고 거의 말을 섞지 않았음을 한 마디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여자 쪽 어머니는 당신 딸하고 드문드문 말을 섞었음을 살짝 엿봅니다. 그러나 주인공 여자 쪽 어버이 두 분 모두 당신 딸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해 보지 못했음을 느낍니다. 꼭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으레 일어나는 이야기이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자주 있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요. 이 글을 쓰는 저랑 함께 살아 주는 한 사람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며 맞아들였을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최종규라고 하는 사람은 ‘다달이 넉넉히 돈이 들어오는’ 일자리가 마땅히 없으면서 책만 잔뜩 사들일 뿐 아니라, 글쓰기와 사진찍기에 파묻힌 사람이니까요. 갖춰 입는 옷이란 언제나 변변하지 않을 뿐더러,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으며 거울조차 안 보며 살아가니까요.

 저는 저하고 함께 살아 주는 사람이 참 고마우며 놀랍고 대단하며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매가 고마우며 곱고, 사람을 맞아들이는 마음그릇이 놀라우며 따스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몸짓이 대단하며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틀림없이 내 마음은 이와 같이 느낍니다. 다만, 몸이 벅차고 힘들어 노상 갤갤거립니다. 엊저녁에도 몸이 하도 고단해 아이한테 윽박지르기나 하고 한결 따스하며 넉넉한 아버지 품이 못 되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버지다운 삶을 제대로 꾸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 집식구가 만화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주이치 있잖아, 몸이 왠지 가벼워. 볼래? 자! 날개가 생긴 것 같아. 나, 날고 있어. 주이치 즐거워. 이렇게 즐거워(하권 160∼161쪽).” 하고 말하며 몸에 깃든 생채기 때문에 숨을 거둘 무렵에야 바야흐로 아버지로서 아버지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을는지 모릅니다.

 새벽녘 희뿌윰히 밝아 오는 새날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옆방에서 아이가 잠꼬대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문득 엊저녁에 쌀을 씻어 불렸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엊저녁에 밥을 새로 해서 아침까지 먹을 수 있다고 떠올립니다. 아침에 밥을 먹기 앞서 콩부터 씻어 불려야겠고, 아침에는 어제 먹고 남은 새우국에 국수와 미역을 넣어 끓이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3.9.30.나무.ㅎㄲㅅㄱ)


― 두루미 아빠 (상·하) (츠치다 세이키 글·그림,김현정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3/38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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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삯과 자전거와 새우


 2004년에 내 첫 책이 나온 뒤로 이제껏 글삯을 받지 않았다. 늘 책으로 받아 둘레에 나누어 주었다. 2010년 9월에 나온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글삯으로 책을 쉰 권 사서 나누어 주고 있다. 나머지 글삯으로도 책을 살까 하다가 그만두고, 이 돈으로 가방 하나 새로 사려 한다. 몇 해 앞서부터 쓰는 40리터들이 가방은 끈이 거의 떨어져 아슬아슬하다. 이번에 47+5리터들이로 바꿀까 생각한다. 옆지기가 탈 자전거를 한 대 살 생각도 한다. 뼈대 빼놓고 모조리 망가진 내 자전거도 고치기로 한다. 음성 자전거집에 끌고 가서 여쭈니 견적이 18만 원 나온다. 값싼 부품으로 고치는 데에 이만 한 돈이다. 부품 급수를 한 단계 올리면 곱배기가 넘는 돈이 들고, 두 단계 올리면 서너 곱배기쯤 돈이 나온단다. 금요일에 새 부품을 받아 고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날새우를 칠천 얼마 어치 산다. 저녁으로 새우국을 끓인다. 가끔은 글삯을 조금 남겨 우리 살붙이 살아가는 데에 보태야겠다. (4343.9.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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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책 가운데 고전으로 손꼽을 몹시 훌륭한 책 가운데 하나인 <녹색세계사>가 품절인 채 오래도록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녹색세계사>를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헌책방에 내놓은 사람조차 매우 드물다. 나는 예전 '심지' 판하고 '그물코' 판을 모두 갖고 있으며 읽었으나, 이러한 책을 알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한 사람한테 <녹색세계사>를 읽어 보라고 말을 할 수 없다. 

 얼마 앞서 <녹색세계사> 고침판이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직 알라딘에 뜨지 않는다. 책이 나온 지 보름은 넘은 듯한데. 시골에서 살기에 가끔은 인터넷으로 책을 살밖에 없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녹색세계사>가 알라딘 새책으로 뜨려나. 출판사 누리집에 올라온 겉그림만 핥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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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09-30 10:46   좋아요 0 | URL
아, 반가운 소식입니다. 저도 얼른 읽고 싶어요!

파란놀 2010-09-30 21:08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 여쭈어 보니, 요즈음 편집 일이 잔뜩 밀려서 출고를 못하신다더군요.
ㅠ.ㅜ
그래도 책방에 얼른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시골 기름집 아저씨는 시인


 시골집 겨울나기를 할 기름을 넣는다. 기름통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잘 모르기에 한 드럼(200리터)을 받는데 기름통에 반 조금 더 찬다. 200리터로 올겨울을 날 수 있을까? 있겠지?

 기름을 다 넣은 기름집 아저씨는 “나중에 다른 데에서 기름을 받거나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와서 기름을 넣을 때에 이 눈금을 잘 보셔야 해요. 이 기계는 완전 봉인되어 있어서 건드릴 수 없어요. 이 눈금 있는 기계가 없으면 기름을 속여요. 여기 숫자가 기름을 넣은 값이고 여기는 몇 리터를 넣느냐는 눈금이고 여기는 리터에 얼마씩 하느냐는 숫자예요. 이 장치에 기름을 넣을 숫자를 입력하면 이 숫자대로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어요. 리터에 얼마인가하고 몇 리터를 넣었는가를 계산기로 두들기면 이 값대로 나오지요. 제가 다른 집에 가서도 할머니들한테 꼭 이런 말씀을 드려요.” 하는 이야기를 세 차례 되풀이한다. 시골에서 살며 보일러에 기름을 넣는 집이 많은데 요즈음 시골집은 거의 모두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살고 있다 보니, 기름집들 가운데 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속여 기름값을 높이 받는다거나 기름을 적게 넣으며 기름값을 오롯이 받는 일이 흔히 있는가 보다. 시골집 기름통에는 ‘기름이 몇 리터째 들어가는가’ 하는 눈금이 없으니까 기름 넣는 차가 콸콸콸 하고 기름을 넣을 때에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제대로 못 살필밖에 없다.

 기름집 아저씨는 기름을 다 넣고 돈을 받으며 “참 좋은 데에서 사시네요. 조용하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고 묻는다. 산골자락 집에 도서관을 마련한다며, 아직 책을 덜 갈무리했다고 얘기한다. “아, 좋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멀 텐데 찾아올 사람이 있을까요.” “네, 책을 볼 사람들은 멀어도 잘 찾아와요.”

 빠르지도 느리지도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기름집 아저씨는 시인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아니 시인이라 할 만하지 않겠나 싶다. 내가 기름집 일꾼이면서 시골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기름을 넣는다고 한다면, 나는 시골 이웃들한테 어떠한 목소리와 매무새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지냈을까. (4343.9.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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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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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삶
 [책읽기 삶읽기 6] 성수선, 《밑줄 긋는 여자》


 내 둘레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 나온 이야기를 듣고는, 이이 책을 책방마실을 하며 사들일 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을 읽을 때하고 조금이나마 안다 싶은 사람이 쓴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조금 안다 싶은 사람이 쓴 책을 읽는들 이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읽을 때보다 잘 헤아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꽤 잘 안다 싶은 사람이 쓴 책을 읽는들 이이를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읽을 때보다 잘 받아들인다고 여기지 않는다.

 삼성정밀화학이라는 일터에서 해외영업을 맡으며 살아가는, 그러니까 요즈음으로 치면 ‘여느 회사원’인 성수선 님이 내놓은 《밑줄 긋는 여자》(2009)라는 책을 읽다. 글쓴이를 안다는 까닭 하나 때문에 이 책을 사서 읽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글쓴이를 아주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조금 안다고 말하기조차 쉽지 않다. 밥자리와 술자리를 몇 번 함께한 적이 있다고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얼굴을 안다고 하면 될까. 때때로 헌책방마실을 즐기는 분임을 안다고 하면 될까.

 아는 이 책이라 해서 늘 장만하지는 않는다. 아는 이 책이라 해서 더 사랑하며 읽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 삶을 일구는 손발에 기운이 나도록 돕는 책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밑줄 긋는 여자》라는 책은 책이름 그대로 ‘책을 읽을 때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여자’ 한 사람이 살아가며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한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꼭 글쓴이가 살아가는 만큼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렸을 때 우리 아빠는 보쌈을 사오시곤 했다. 아빠 회사 앞에는 몇 십 년 전통 원조라는 유명한 보쌈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술을 한잔 하실 때마다 우리 얼굴이 어른어른하셨나 보다. 물론 어렸을 때는 아빠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투정을 부렸다. ‘치킨도 있고 햄버거도 있는데 아빠는 왜 만날 보쌈만 사오세요?’(16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나 또한 밑줄을 긋는다. 나는 “아빠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투정을 부렸다”라는 글월에 밑줄을 긋는다. 왜냐하면 나 또한 우리 어머니 마음이나 아버지 마음이나 옆지기 마음이나 아이 마음을 제대로 읽는다고는 느끼지 않으니까. 그러면 나는 투정을 부렸던가? 글쎄, 투정을 부릴 새가 어디 있을까. 어린 나날, 아버지한테 투정을 부렸다가는 몽둥이가 날아왔을 텐데. 늘 일에 눌려 고단한 어머니한테 어떻게 투정을 부릴 수 있는가. 학교와 집에서 여러모로 힘들던 형한테 투정을 부릴 수 있을까. 나로서는 투정을 부린다는 어린 나날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내 둘레에서 ‘엄마 아빠한테 투정 부리는 동무’를 보며, ‘이야, 저렇게도 살아가는 식구가 있네?’ 하고 놀라기는 했다.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다고 떠드는 사람들 중에 처세를 잘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 나 하나 살아 보겠다고 남을 속이고 피해를 준다면, 나 하나 잘되겠다고 남을 헐뜯고 이간질한다면 결국 다 함께 망할 뿐이다(66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글쓴이 성수선 님은 그야말로 ‘여느 회사원’이다. 문학책을 즐겨읽는 분이면서 처세책 또한 곧잘 읽는다.

 사람들이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지, 처세책도 읽기에 따라 ‘문학을 읽는 마음’이 된다. 문학책도 읽기에 따라 ‘처세를 살피는 마음’이 된다. 어느 책을 골라서 읽든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받아들인다. 어느 책을 마주하든 내 삶이 나아가는 대로 곰삭인다. 《삼국지》라는 책을 읽으려 한다면 이 책에 담긴 줄거리대로 지식을 줄줄 외우는 읽기가 아닌, 내 삶을 한결 아름다우며 훌륭한 쪽으로 이끄는 읽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삼국지》이든 《태백산맥》이든 《토지》이든 읽는 분들이 당신 마음을 아름답거나 훌륭한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지는 아리송하다. 사람들은 참말 왜 책을 읽는가. 뭐 하러 책을 읽는가. 사람들은 참으로 왜 영화를 보는가. 뭣 때문에 영화를 보는가.

 내 삶을 볼 줄 모르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들 마음이 뭉클할 수 없다. 내 삶을 가꿀 줄 모르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들 마음을 살찌울 수 없다.

 “난 내 꿈이 뭐였는지조차 잊은 채 살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졸업하고 한 번 찾아오지 않은 제자를 그토록 기다리고 계셨다(143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빙긋 웃는다. ‘글쟁이로서 대단한 이름값’이 없는 여느 회사원인 성수선 님은 꿈을 잊었다고 털털하게 이야기한다. 아마, 적잖은 여느 회사원은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내 꿈이 뭐였더라?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고 읊조리다가는 이튿날이 되면 말끔히(?) 양복 차려입고 일터로 달려가 ‘회사에 큰돈 벌어다 주는’ 쳇바퀴 일거리에 매일 테지. 씁쓸하게 읊던 ‘내 꿈은 뭐지?’는 언제나 술자리에서나 읊는 말일 뿐, 정작 당신 삶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당신 삶을 흘리고 말 테지.

 《밑줄 긋는 여자》는 대단한 책이 아니요 대단한 책일 까닭이 없으며 스스로 대단한 책이 되고자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바란다. “……을 읽다가 그만 펑펑 울어 버렸다(166쪽).”고 하듯 글쓴이 삶을 조곤조곤 털어놓으며 말문을 열기를 바란다. 애써 연 말문을 맞은편에서 고즈넉히 맞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여느 회사원으로 살든, 땅을 부치며 살든, 네모난 교실에서 똑같은 지식을 아이들한테 집어넣으며 살든, 날마다 바쁘게 살림하며 바깥사람한테 밥 차려 주고 빨래 해 주며 집 치워 주면서 살든, 저마다 곱고 사랑스러운 넋임을 느끼어 만나자고 말문을 열기를 바란다.

 우리들은 우리 삶을 빛내는 빼어난 세계명작 한 가지를 오른손으로 읽는다면, 우리 삶에 깃든 작은 빛줄기를 꾸밈없이 사랑할 수수한 ‘삶 이야기 담은 책’ 한 가지를 왼손으로 읽어야 즐거우며 어여쁘리라 본다. 즐거우며 어여쁘게 살아가고픈 사람이라면 훌륭한 얼과 수수한 넋을 나란히 사랑하며 아낄 수 있어야지 싶다. (4343.9.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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