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기름집 아저씨는 시인


 시골집 겨울나기를 할 기름을 넣는다. 기름통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잘 모르기에 한 드럼(200리터)을 받는데 기름통에 반 조금 더 찬다. 200리터로 올겨울을 날 수 있을까? 있겠지?

 기름을 다 넣은 기름집 아저씨는 “나중에 다른 데에서 기름을 받거나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와서 기름을 넣을 때에 이 눈금을 잘 보셔야 해요. 이 기계는 완전 봉인되어 있어서 건드릴 수 없어요. 이 눈금 있는 기계가 없으면 기름을 속여요. 여기 숫자가 기름을 넣은 값이고 여기는 몇 리터를 넣느냐는 눈금이고 여기는 리터에 얼마씩 하느냐는 숫자예요. 이 장치에 기름을 넣을 숫자를 입력하면 이 숫자대로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어요. 리터에 얼마인가하고 몇 리터를 넣었는가를 계산기로 두들기면 이 값대로 나오지요. 제가 다른 집에 가서도 할머니들한테 꼭 이런 말씀을 드려요.” 하는 이야기를 세 차례 되풀이한다. 시골에서 살며 보일러에 기름을 넣는 집이 많은데 요즈음 시골집은 거의 모두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살고 있다 보니, 기름집들 가운데 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속여 기름값을 높이 받는다거나 기름을 적게 넣으며 기름값을 오롯이 받는 일이 흔히 있는가 보다. 시골집 기름통에는 ‘기름이 몇 리터째 들어가는가’ 하는 눈금이 없으니까 기름 넣는 차가 콸콸콸 하고 기름을 넣을 때에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제대로 못 살필밖에 없다.

 기름집 아저씨는 기름을 다 넣고 돈을 받으며 “참 좋은 데에서 사시네요. 조용하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고 묻는다. 산골자락 집에 도서관을 마련한다며, 아직 책을 덜 갈무리했다고 얘기한다. “아, 좋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멀 텐데 찾아올 사람이 있을까요.” “네, 책을 볼 사람들은 멀어도 잘 찾아와요.”

 빠르지도 느리지도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기름집 아저씨는 시인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아니 시인이라 할 만하지 않겠나 싶다. 내가 기름집 일꾼이면서 시골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기름을 넣는다고 한다면, 나는 시골 이웃들한테 어떠한 목소리와 매무새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지냈을까. (4343.9.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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