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와 글쓰기


길에 물건을 내어놓고 이 물건을 사들일 사람을 기다립니다. 손수 일군 푸성귀이든 다른 데에서 떼어와 파는 푸성귀이건 온갖 물건이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리에 조그맣고 앉아 기다립니다. 누가 사 갈는지 모르지만 조용히 기다립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기다립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기다립니다. 이동안 다른 살붙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려나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저잣거리 한켠으로 찾아와 길바닥에 앉아 더위이든 추위이든 햇살이든 바람이든 비이든 눈이든 고스란히 맞아들이면서 기다립니다. 손님이 뜸할 때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덧 새우처럼 등을 굽힌 채 살짝 눕습니다. 도시락을 먹거나 바깥밥을 사먹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가끔 이웃 장사꾼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말을 섞습니다. 이웃 장사꾼이 없으면 성경책을 넘기거나 해바라기를 하거나 멀거니 생각에 잠깁니다. 한 해를 살고 두 해를 살며 열 해를 살다가 스무 해를 삽니다. 길손이 흘낏 쳐다보다가는 지나칩니다. 관광객이라는 구경꾼이 빤히 쳐다보다가는 사진을 찍습니다. 아예 들여다보지 않고 스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루 일해 하루 벌어 하루를 삽니다. (4343.11.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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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글쓰기

길을 헤맨다. 자꾸 헤매면서 어디가 어디인지 종잡지 못한다. 그래도 걷는다. 그래도 걸어가며 제대로 가는지 엇갈려 가는지 모르는 채 빙글빙글 돌고 돌면서 온몸이 쑤시고 지친다. 가방 무게가 자꾸 무겁다고 느끼며, 걷기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품에 안고 걷자니 더욱 무겁다. 어느덧 팔은 아무 느낌이 없다. 아이를 내려놓을 수 없다. 가방을 내려놓을 수 없다. 다시금 걷는다. 땀으로 온몸이 젖고 옷 또한 흠뻑 젖어든다. 발이 부어오른다고 느낀다. 발가락과 뒤꿈치가 살짝살짝 따끔거린다. 발목과 무릎은 시큰거린다. 이내 발가락 마디마디 욱씬거린다. 몇 시간쯤 걸었는지 모르는 가운데 겨우 다리쉼을 할 자리를 찾다. 집식구는 쉬를 누고, 애 아빠는 땀을 훔친다. 가방을 내려놓으니 등짝이 없는 듯하다. 손으로 무엇을 쥘 때마다 덜덜 떨리며 놓친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앞으로 걸을 길이 참 멀고, 집을 떠나 제주마실을 나온 지 기껏 이틀째. 벌써부터 집식구는 모두 어깨가 축 처져 버리나. 자가용도 택시도 끌지 않고 두 다리로 깊은 가을날 걸어다니는 사람이란 바보인가. 걷는 사람치고 큰 가방에다가 아이를 안는 사람은 볼 수 없고, 걷는 사람 가운데 여느 살림집 사이사이 흔한 골목을 누비는 사람은 볼 수 없다. 나는 이 길이 내 길이기에 걷는다. 나는 이 길을 거닐면서 내 삶을 돌이킨다. 나는 이 길에서 내 글을 쓴다. (4343.11.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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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잔과 글쓰기


 제주섬 마실을 왔다. 이도1동 1261번지에 자리한 헌책방 〈책밭서점〉을 들렀고, 몸국 한 그릇 먹었으며, 저녁나절 아이와 함께 잠들 잠집을 찾아든다. 애 아빠는 제주섬 마실을 기리며 보리술 한 병 사러 잠집 앞 구멍가게에 들른다. 호텔이 늘어선 한켠 구멍가게가 아니라 동네사람 노닥거리는 잠집 사이 구멍가게이니까 바가지는 아니겠지 생각한다. 서울 종로3가 안골목 구멍가게에서는 보리술 작은 병에 2500원이나 받는다. 큰 병은 5000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곳은 일본 손님 자주 들락거리는 골목이요, 그 동네 집값을 헤아리면 그쯤 받아야 달삯을 치를 만하다. 서울에서는 그만큼 바가지를 씌워 장사를 해야 살림을 꾸릴 수 있다. 잠집 앞 구멍가게 이름은 ‘한라수퍼’. 손으로 쓴 간판 글씨가 비바람에 많이 깎이고 이래저래 지워지고 했다. 문을 옆으로 밀며 들어선다. 가게 할망이 누군가하고 전화로 얘기를 나눈다. 퍽 오래 얘기를 나눈다. 천천히 시렁을 돌아보고, 뭘 고를까 헤아린다. 전화 얘기가 꽤 길어지기에 보리술 두 병하고 아이 까까에다가 탄산음료 하나를 골라 셈대에 놓는다. 한참 얘기를 하시던 할망이 살짝 “5100원.” 하고 나즈막하게 말씀한다. 응, 술값이 그리 안 비싸네, 하고 생각하며 아이 까까와 탄산음료를 하나씩 더 고른다. 따지고 보면 아이 까까이면서 아빠 까까이다. “6800원.” 할망은 전화기를 내내 붙든다. 뭔가 깊은 얘기를 나누시는가 보다. 값을 치른다. 잠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고단해 하면서도 까까를 잘 주워먹는다. 아빠는 보리술 한 병을 마시면서 속이 꽤 힘들다고 느낀다. 먼 마실을 오며 길에서 몹시 힘겨웠던 탓이요, 엊그제 먹은 짜장면이 아직 내려가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기껏 보리술 두 병인데 한 병만 겨우 마신다. 아이가 잠들고 애 엄마는 속이 더부룩하다며 텔레비전을 본다.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우리들은 이렇게 먼 마실을 나와 잠집에 머물 때에 텔레비전 구경을 한다. 애 아빠는 쓰러진다. 깊은 밤과 새벽에 퍼뜩 깬다. 입에서 술내음이 나는 듯하다. 막걸리 한 병 반하고 보리술 한 병을 마셨을 뿐인데 이렇게 냄새가 나나. 이제는 보리술 두 병조차 가붓이 즐기기 어려운 몸이 된 셈인가. 몸뚱이가 이와 같다면, 술 한 사발 즐기고 나서는 책이고 글이고 즐길 수 없으려나. 너덧 해 앞서까지는 서울에 있는 헌책방으로 마실을 간 다음 가방 가득 꾹꾹 눌러담은 책을 낑낑 들고는 홀로 술집에 들러 보리술 닷 잔 마시며 책을 두 시간쯤 읽고는 잠집에 들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가 있어 이렇게는 못한다지만, 홀로 느긋이 마실할 수 있을 때에도 이처럼 즐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4343.11.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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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5 09:53   좋아요 0 | URL
제주도 유일의 헌책방이란 책밭서점이 아직도 있네요.저도 몇년전에 지금 자리로 이사오기전에 한번 찾아가본 적이 있는데 또 언제 제주도에 한번 들릴지 모르겠군요ㅡ.ㅡ
 

 지난 2009년에 한 번, '단무지 어린이' 모습을 보여주더니, 올해에도 어김없이 '단무지 어린이'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 201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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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 골목은 가을빛이 곱게 내려앉기에, 이 빛깔을 맞아들이며 반갑고 즐겁다. 아, 요즈음 인천골목은 얼마나 어여쁠까.

- 2008.11.20. 인천 동구 창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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