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한테 아름다운 삶을 보여줄 수 없을까
― 오사다 아라타(長田 新), 《페스탈로찌》


- 책이름 : 페스탈로찌
- 글 : 오사다 아라타(長田 新)
- 옮긴이 : 이원수
- 펴낸곳 : 신구문화사 (1974.5.1.)


 저로서는 헌책방이었기에 만난 책이 몹시 많습니다. 저는 1975년에 태어났으니 1975년 무렵에 나온 책은 새책으로 만날 길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이던 1992∼93년에는 최인훈 소설과 황순원 소설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세로쓰기로 된 판을 찾으려고 인천에 있는 모든 새책방을 샅샅이 훑으며 하나하나 그러모으곤 했지만, 1970년대 끝무렵부터 1980년대 첫무렵에 나온 책을 1990년대에 새책으로 만나기란 아주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이러한 책은 헌책방에서 찾아야 하는 줄 깨닫습니다.

 도서관에서 갖추어 주는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갖추어 주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도서관이라 해서 모든 책을 골고루 갖추지는 않습니다. 또한, 서울에 있는 큰 도서관 한 곳에는 있을는지 모르나,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는 없는 책이 많습니다. 게다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는 도서관에서 철지난 책을 갖출 수 없는 노릇입니다. 1970∼80년대에 ‘신구문화사’에서 펴낸 ‘신구문고’라 하는 작은 책을 어느 도서관에서 몇 권이나 만날 수 있으려나요. 이 신구문고를 알아본 때는 1990년대가 저물 때요, 1990년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1970년대 책을 찾으려 했으니, 헌책방 아니고서는 만날 길이 없습니다.

 1998년 1월 첫머리에 권정생 님 이야기책 《몽실 언니》를 읽고는 어린이책을 차근차근 장만하여 읽습니다. 이원수 님 《해와 같이 달과 같이》도 이무렵에 비로소 읽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어린이일 때에 못 읽었으니 참 슬프다고 여겼지만, 어린이일 때에 못 읽은 책을 어른이 되어 읽는 맛은 남달랐습니다. 어린이일 때에 한 번 읽고 어른이 되어 다시금 읽어도 훌륭한 책이지만, 어린이문학이란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한테나 아름다울 책인 줄을 비로소 깨닫도록 도왔다고 할까요.

 이원수 님 어린이책을 하나하나 사서 읽던 어느 날, 헌책방 책시렁을 살피다가 신구문고 가운데 하나인 《페스탈로찌》를 만납니다. 1974년에 옮긴 얇은 책 《페스탈로찌》는 바로 ‘이원수 옮김’으로 되었습니다. 헌책방에서 살핀 책 때문에 알았는데, 이원수 님은 공상과학동화라든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라든지 ‘미운 새끼오리’라든지 ‘장발장’을 우리 말로 옮기곤 했습니다. ‘미운 새끼오리’는 계몽사 판으로 나왔고, ‘장발장’은 학원사 판으로 나왔어요. 아마 일본책을 살펴 우리 말로 옮기셨을 텐데, 서양말에서 바로 옮긴 책은 아닐 테지만, 번역글이 몹시 정갈하며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페스탈로찌》는 어른이 읽는 책이라 퍽 딱딱한 말로 옮겼는데, ‘이원수 님 해적이’에는 나오지 않는 이 번역책을 뜻밖에 보면서, 어쩌면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을 이루는 밑바탕 가운데 하나로 ‘페스탈로치가 어린이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넋’도 있겠구나 느꼈습니다.


.. 그러나 그(페스탈로치)는 일반적으로 자선 사업이란 빈민의 불행을 조장할망정 절대로 불행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방법은 그에게는 다만 거지를 양성하고 위선자를 배가하는 일체의 빈민 구제와 다를 바 없으며, 그것은 “구토를 일으킬 만큼 시대를 식상케 하는 고식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빈민을 구조하는 단 하나의 수단은 생활상의 용무, 의무 및 어떤 상태에 충분히 적합하여, 또 모든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내재하는 힘이 자극되고 발달되는 점에 있다고 하는 것이 그의 굳은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념으로써 나라 안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 신체적·정신적 및 도덕적 손질을 개인적이요 가정적인 또는 시민적인 형편을 통하여 확실하게 도야하고 그 도야에 의해서 안식과 평화의 생활에 확고한 기초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빈민 학교의 상세한 계획을 발표했다 ..  (46쪽)


 작은 책 《페스탈로찌》를 알아보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교사들도 이런 책을 찾아 읽지 않고, 교사가 되려는 이들 또한 이와 같은 책을 찾아 읽지 않습니다. 페스탈로치 님이 쓴 《숨은 이의 저녁놀》(또는 “은자의 황혼”) 같은 책을 찾아 읽는 교육자 또한 몹시 드뭅니다. ‘국민 기초 교육’ 발판을 닦아 퍼뜨린 페스탈로치 님인 만큼, 초등교사들이라면 누구나 대학교에서 학문으로 페스탈로치 이야기를 듣기는 들었을 텐데, 막상 페스탈로치라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초등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사랑하려 했는지를 살피지는 않아요.

 신구문고 가운데 23번으로 나온 《페스탈로찌》를 살피면, 앞머리에 민병산 님이 소개글을 적습니다. 민병산 님은 “페스탈로찌는 수도원의 승방이나 황야의 암굴에 들어박힌 성자가 아니라, 사회에 뛰어든 성자, 가난한 사람들·배우지 못한 사람들·버림받은 사람들·어둠에 갇힌 어린이들과 더불어 ‘인간의 희망’을 증명하기 위해서 투쟁한 성자라는 사실(4쪽)”이라고 적바림하면서 거룩한 뜻을 섬깁니다. 그런데, 소개글 끝자락을 보면 《페스탈로찌》를 쓴 일본사람 이름을 ‘나가다(長田)’로 적습니다. 게다가 책 뒤쪽 간기를 살피면, 정작 글쓴이 ‘長田 新’이 어떠한 사람인지 한 줄로조차 적지 않습니다. 옮긴이 이원수 님 소개만 이원수 님 동화책 이름 하나를 적고는 끝입니다.


.. 페스탈로찌는 드디어 50인의 빈민 아동을 목표로 하여 빈민 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거기에 나서서 아동을 모아 왔다. 그는 이 아이들과 같이 여름에는 땅을 갈고 겨울에는 면화를 실이나 베로 가공하여 경영을 유지하려 했다. 특히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마음에는 다만 빈곤을 극복하여 자신을 자립으로 끌어올리는 노동의 쾌감이 생길 뿐 아니라 자활하면서 그들이 내적인 여러 가지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페스탈로찌의 신념이었다.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노동을 하는 사이에 지적 도덕적 및 종교적 여러 힘은 말하기·읽기·쓰기·외기 등에 의하여 연습되고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 큰 세대에서는 사랑이 그 수호신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더우기 아이들의 마음속에 모든 인간적인 고상함과 위대함을 자각케 하고, 그리고 그것을 공고히 하는 가정의 힘은 그 수호신으로서의 사랑 가운데 들어 있어서 거기서부터 흘러나온다. 이러한 수호신이 페스탈로찌의 빈민 학교를 강력히 지배했다. 그러나 페스탈로찌가 그들의 식탁에서 같이 먹어도, 아니 그들에게는 맛난 감자를 먹이고 자기는 험한 음식을 먹어도 이 훌륭한 사람은 그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관청도 그를 원조해 주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는 이런 사업에 대한 세세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채무는 점점 불어 가서 1780년에는 학교를 해산하는 비운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  (47쪽)


 ‘長田 新’이라는 분은 온누리에 손꼽히는 ‘페스탈로치 연구 권위자’입니다. 이름은 ‘오사다 아라타(おさだ あらた)’로 읽고, 1887년 2월 1일에 태어나 1961년 4월 18일에 숨을 거둡니다. 이분이 엮은 다른 책으로 《原爆の子》가 있는데, 이 책은 일본에서 1951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6년에 학문사에서 《원폭의 어린이》라는 이름으로 옮겼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사다 아라타’라는 이름을 ‘나가다’라 잘못 읽든, 이 작은 책 《페스탈로찌》를 알아보지 않든, 우리들은 우리 터전에서 우리 아이들을 얼마든지 사랑하거나 아낄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원자폭탄에 애꿎게 쓰러진 어린이가 있다면, 한국에는 입시지옥에 슬프게 쓰러지는 어린이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이 나라에서 아름다운 삶과 꿈을 헤아리며 어린이한테 맑거나 밝은 길을 가르치거나 이끌지 못하기에, 《페스탈로찌》이든 다른 어떤 아름다운 책이든 스스로 즐겁고 기쁘게 쥐어들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리라 봅니다. (4344.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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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혼인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머니’가 되지 못합니다. 혼인을 했으나 아이를 낳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버지’가 되지 못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매한가지입니다. 당신 아이가 아이를 낳아야 비로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됩니다.

 아이를 하나 낳아 기르고, 곧 둘째를 낳아 기를 어버이로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아이 아버지로서 내가 좋아하는 글이란, 아이 아버지답게 내가 쓰는 글이란, 언제나 어린이를 살피는 글입니다. 어린이를 생각하지 않고 지식을 생각하며 쓰는 글은 예전부터 쓰기 싫었고 쓰지 않았으며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

 흔히 인문책은 지식책인 줄 잘못 알지만, 인문책은 지식을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지식을 다루면 지식책일 뿐입니다. 지식책이란 ‘기술서’입니다.

 인문책이란 삶을 다루는 책입니다. ‘삶책’을 한자말로 옮기니 ‘인문(人文)책’이 됩니다. 우리는 삶을 다루는 책인 인문책을 읽어야 하고, 앞으로는 ‘인문책’이라는 이름은 내려놓고 ‘삶책’이라는 이름을 옳고 바르며 쉽고 살가이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제 이름을 제대로 말하면서 제 삶을 제대로 꾸려야 비로소 내 삶이며 내 책이고 내 글인 가운데 내 꿈입니다.

 어린 날부터 책을 읽을 때면 ‘어린이를 사랑하는 넋’을 담은 이야기가 깃든 책을 좋아했습니다. 동화책이든 만화책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넋을 담지 않은 책은 재미있지 않았어요. 그리 당기지 않고, 손을 뻗기 어렵습니다. 《마징가 제트》 같은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는, 어린 날에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을 뿐더러, 어른이 되어 다시 보아도 따분합니다. 《우주소년 아톰》 같은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는, 어린 날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고, 어른이 되어 다시 넘겨도 눈물을 흘립니다. 똑같은 ‘로봇’ 만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로봇이 벌이는 싸움박질과 로봇을 앞세워 싸움박질을 하는 못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다른 하나는 로봇에 깃들이는 사랑과 로봇뿐 아니라 뭇목숨을 아끼는 사랑스러운 넋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가 쓰는 글처럼 살가우면서 따스한 글은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막상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들 가운데 글을 쓰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더구나, 애 어머니가 쓰는 글을 책으로 묶는 일은 훨씬 드물 뿐 아니라, 책으로 내야겠다고 찾아나서는 사람조차 드뭅니다. 아니, 애 어머니는 누구한테 내보이려고 글을 쓰지 않아요.

 아이를 낳았어도 다른 사람 손에 맡긴 채 글을 쓰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꽤 많습니다. 이분들 또한 아이를 낳아 키우며 글을 쓰는 어버이라 할 만하지만, 그다지 믿음직하지 않습니다. 못미덥습니다. 이모저모를 떠나, 이런 어버이들 글은 참 따분합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로서는,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하루로 고되면서 즐거울 뿐, 애써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고마우면서 하루하루 잊고 새롭게 하루하루 맞이하는 나날입니다. 글까지 쓰도록 넉넉한 말미가 아니요, 그림이나 사진을 할 만큼 한갓진 겨를이 없습니다.

 어린이 삶을 헤아리기 때문에 더욱 포근하면서 보드랍습니다. 어린이 삶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딱딱하거나 거칩니다. 어린이 입맛을 살피며 밥을 하듯, 어린이 눈높이를 살피며 글을 씁니다. 어린이 살결과 몸을 돌아보며 옷을 입히듯, 어린이 살결과 몸을 돌아보는 매무새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이 눈썰미에 맞게 손을 잡고 마실을 다니듯, 어린이 눈썰미에 맞는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를 낳았대서 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이랑 복닥이며 함께 살아가야 바야흐로 어머니나 아버지입니다. 그래, 어머니들은 글도 잘 안 써 버릇 할밖에 없도록 집살림에 바쁘며, 책을 읽을 만큼 느긋하거나 호젓하지 않아요. 책을 쓰는 사람들은 ‘어머니가 읽을 만하’게 책을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머니가 즐겁게 짬을 내어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비로소 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 (4344.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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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지와 글쓰기


 아이 귀를 언제부터 파면 좋을까 오래도록 생각만 하다가 엊그제 드디어 귀를 파 본다. 귀후비개를 살살 집어넣는데 딱딱한 뭔가가 걸린다. 뭐가 이렇게 있나 하고 톡톡 치며 툭 하고 떼어내니 귓구멍 크기만 하게 말라붙은 귀지이다. 귀지가 이토록 크게 엉겨붙으면서 말라붙기까지 하는가. 애 아빠로서 아이 귀를 얼마나 안 후벼 주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아침저녁으로 코를 파면 아침저녁으로 길쭉한 콧물딱지를 뽑아낸다. 코도 귀도 몸도, 참말 자주 씻기고 자주 돌보며 자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애 아빠로서 너무 모자라다. 이래저래 애쓰거나 힘쓰거나 용쓴다지만, 아이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 삶을 놓고 살펴야 한다. (4344.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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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1-26 09:22   좋아요 0 | URL
어쩌다 애들 귀를 파줄 때마다 이만한 게 저 조그만 구멍에 어찌 들어가 있었나 깜짝 깜짝 놀라게 되요. 혹자는 뱃속에 있을 때 양수가 말라붙었다는 얘기도 하는데, 참말인지는 모르겠어요.

파란놀 2011-01-26 09:38   좋아요 0 | URL
조그마한 귀지들이 하루하루 뭉치면서 생길 텐데... 참 아찔하면서, 이 귀지가 귓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도 한숨을 돌립니다...
 

 

[사진과 우리 말 68] 우체국 GREEN CARD

 손님들을 따숩게 맞이하는 우체국 일꾼을 북돋워 준다는 ‘GREEN CARD’가 우체국 한켠에 꽂힌다. 생각해 보니, ‘GREEN CARD’ 옆에는 ‘RED CARD’도 있었지 싶은데, 빨강 엽서는 보이지 않는다. 우체국에 찾아와 우체국 일꾼과 마주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 한국사람이겠지. 이 엽서를 보아도 모두 한글로만 적는다. 영어로 만든 ‘GREEN CARD’란 한 장도 없다. 그렇지만, 이 엽서 이름은 ‘GREEN CARD’일 뿐, ‘푸른 엽서’나 ‘푸른 종이’가 아니다. (4344.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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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18] Book Wall

 인터넷이 처음 자리를 잡을 무렵에는 인터넷을 다루는 낱말이 모조리 영어였습니다. 이무렵 쓰던 영어를 여태껏 그대로 쓰는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이무렵 쓰던 영어를 우리 나름대로 거르거나 다듬은 낱말을 쓰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처럼 생긴 무늬를 ‘앳’으로 읽는 사람이 퍽 많지만, ‘골뱅이’로 읽는 사람도 몹시 많습니다. 인터넷편지 주소를 밝히며 마침표(.)를 ‘컴’으로 읽는 사람이 제법 많으나, ‘점’으로 읽는 사람 또한 무척 많아요. 셈틀 바탕에 깔아 놓는다는 그림이나 사진을 가리켜, 맨 처음에는 영어로 ‘wallpaper’라고만 했습니다. 나중에 ‘바탕사진’이라든지 ‘바탕화면’이라든지 ‘배경사진’이라든지 ‘배경화면’이라든지 ‘바탕그림’ 같은 말마디로 다듬었습니다. ‘Book Wall’이라면 ‘책 바탕’이나 ‘책 배경’일 테지요. 그러면, 처음부터 ‘책 바탕화면’이나 ‘책 바탕그림’쯤으로 이름을 지으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어김없이 이래야 하는지, 꼭 영어로 먼저 이름을 지어서 대롱대롱 달아 놓습니다. 이래야 멋이요, 이래야 눈여겨보며, 이래야 팔리는가 보지요. (4344.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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