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줄을 다시 끼운 게 효과가 있어 예정보다 이틀 뒤 퇴원을 했더랬다. 소변줄을 계속 끼우고 있어야 했기에 선생님은 계속 입원하는 걸 좀 더 권유했지만 남편이 더 이상 휴가를 쓸 수 없고 주말부부인지라 아이들만 집에 놔둘 수 없어 그냥 퇴원을 했다.
처음 며칠은 괜찮은 듯 했다. 그러나 주말이 되자 피오줌이 소변주머니에 쌓이더니 소변이 또 새기 시작했다. 겁이 나서 살금살금 하던 집안일을 다시 손놓고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다행히 주말에는 남편이 올라와 집안일을 전담해준 데다가 주중에 먹을 반찬도 잔뜩 해놓고 내려갔다. 그 덕분인지 다시 소변 새는 양이 줄어들다가 다시 병원에 가는 날에는 완전히 중단됐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은 지난 주말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안 놓이신단다. 결국 일주일만 더 소변줄을 끼고 있자고 하셨고 대신 약은 좀 줄여도 될 거 같다고 했다. 이번엔 다시 소변이 새는 일도 없고 무사히 일주일을 넘기나 했는데 이번엔 고열이 발목을 잡았다. 해열제를 먹어도 37.8도 이하로는 안 떨어지고 아차하면 39.5도까지 순식간에 올라갔다. 일주읾만에 다시 만난 선생님은 고열 소식에 더 심각해졌다. 20일 가까이 끼고 있던 소변줄은 드디어 뺐으나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은 원래 진료가 없으신데도 불구하고 검사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진료실을 열어주셨다. 혈액검사 결과 균이 배양되었고 이건 몸의 어딘가에 염증이 있다는 얘기란다. 선생님은 다시 입원을 해 열을 잡은 뒤 금요일에 요도내시경을 해보고 카페테도 새 걸로 교체해보자고 하셨다. 입원해봤자 결국 열 관리가 고작이라면 그냥 집에 있다가 금요일에 검진을 받겠다고 하니 가능하겠냐며 걱정을 하신다. 애 낳을 때마다 석달씩, 한달씩 40도 고열을 겪으며 산후조리를 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항생제를 다시 더 강한 걸로 바꾸고 삼시 세끼 먹는 걸로 처방전을 주셨다.
오후에 잠깐 39도까지 다시 올라가긴 했지만 지금은 37도까지 떨어진 상태이다. 사흘만에 처음으로 37도까지 열이 내린 거라 바뀐 약이 효과가 있는 듯 하다. 아... 벌꺼 비뇨기과 얘기가 다섯번째라니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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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10-0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을 되찾으셨는지?
잘지내고 계신거죠?^^

조선인 2019-10-08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요양중입니다. 이 달 말에는 진짜 끝나길 기대하고 있어요
 

예정대로 오늘 퇴원을 못 했다.
원인은 2가지. 빈혈수치가 8.2라는데 12까지 올라가야 한다. 보다 결정적인 원인은 수술부위 주변에 여전히 소변이 새는 것이 CT로 확인되었다.
일단 소변줄을 다시 끼워 방광의 압력을 낮추고 하루 이틀 더 관찰해 보기로 했다. 만약 소변줄이 효과가 있으면 1달 정도 입원하며 완전히 아무는 걸 확인 후 퇴원하는 것이 권장사항.
그러나 남편이 더 이상 휴가를 쓸 수 없는 관계로 오늘 밤기차로 지방근무지에 복귀중이다. 애 둘만 덩그러니 집에 있는 상황을 하소연하니 소변주머니를 달고 외래를 다니는 게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하신다.
최악의 경우는 하루 이틀 경과를 봐도 소변줄이 효과 없는 거. 이 경우엔 다시 또 개복하여 봉합... 생각하기 싫은 상황이다...

어쨌든 소변줄을 다시 꼽고, 이제는 운동을 절대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라는 조치를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간호사가 엉뚱한 곳에 소변줄을 잘못 넣어 온갖 해프닝이... 자세한 얘기는 차마 못 쓰겠는데, 너무 속상하여 한참을 울자니 간호사도 당황, 담당의도 안절부절, 나도 눈물이 안 그쳐 당혹... 그러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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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7-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직 이 문제가 남아 있는 거에요? ㅜㅜㅜ

조선인 2019-07-29 22: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끝날 듯 끝나지 않네요

Mind 2019-07-2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선인 님, 힘내세요. 모든 게 순조롭게 잘돼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시길 빕니다. 강한 마음으로 함께 화이팅 한번 외쳐봅시다~^^ 조선인 님 화이팅~!!!

조선인 2019-07-30 03:57   좋아요 0 | URL
강한 마음... 저에게 꼭 필요한 조언 감사합니다

hnine 2019-07-30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만 해도 그 고통이 이렇게 느껴지는데 조선인님 당사자는 얼마나 힘드실까요.
속상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시고 조금만 더 참으시라고 할 밖에요.
이제부터라도 순탄한 과정만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하고요.
힘내세요.

조선인 2019-07-30 04:52   좋아요 0 | URL
따스한 당부와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책읽는나무 2019-07-30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병원이 잘못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나 계속 끝나지 않는 문제인 것인가??
별생각이 다 듭니다.
에혀~~hnine님 말씀처럼 지금 조선인님이 제일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차도가 있어야 할 검사결과의 당혹스러움...저도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ㅜㅜ
곁에 있는 식구들의 걱정도 클 것이고,방학이라 아이들, 특히 마로는???
.............
어쨌든,이겨 냅시다.굳건하게!!
버텨온 만큼 조금 더 힘을 내보아요.
해드릴 수 있는 건 이런 말밖에 없네요ㅜ

조선인 2019-07-30 07:17   좋아요 0 | URL
차라리 마로는 하루종일 자습실에 있으니 괜찮은데 중1 아들이 걱정입니다. T.T

카스피 2019-07-3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맘 고생이 심하셨네요.얼른 쾌차하시길 기원 합니다.

조선인 2019-07-30 19:40   좋아요 0 | URL
그나마 다행이라고 소변주머니 달고 퇴원하기로 했습니다.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
 

1.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의 인터넷 응용 버전에 해당하는 책.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꾼 건 사실이고 문제는 얼마나, 어떻게냐이다.

2. 조선 태조는 1395년(태조 4) 큰 종을 만들어 전각을 지어 걸어두고 새벽과 저녁마다 종을 울려 시민들의 활동시한을 정해주었다고 한다. 국가가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린 우리나라의 역사는 신라시대 혜공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중세시대 성당에서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종을 치곤 했다. 국가가 시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는지, 종교가 그랬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유의미하겠다.
물론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공공 시계 대신 개인 시계의 범용화가 인간에게 어떤 자율적인 변화를 야기시켰는지이다.

3. 아미시는 기계에 대한 도구주의자 보다 결정주의자의 주장을 지지하는 예시다. 기계가 인간의 생각과 종교관을 바꿀 것이 두려워 아미시는 기계를 멀리 하는 것이다.

4. 뇌구조의 변화가 독서와 집필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동안 인터넷의 단절을 택했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대개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인터넷과 단절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책을 읽으며 단상을 책 구석 포스트잍에 끼적이는 대신 북플을 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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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논문 중 하나인데 제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한중일 3국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은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중국과 일본은 숟가락의 사용이 극히 일부 음식 한정 용도로 퇴화한 반면, 한국의 경우 식사 도구로서 젓가락 이상의 굳건한 위상으로 발전했고, 쇠숟가락으로 고유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그 이유를 크게 식문화의 차이와 숭유사상에서 찾아낸다. 중국음식은 기름기가 많아 젓가락으로 밥알이나 국의 건더기만 건저 먹어야 느끼함을 피할 수 있다. 일본밥은 찰기가 많아 굳이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아도 젓가락으로 식사할 수 있고 국물은 그릇째 마시면 되니 숟가락을 생략해도 됐다는 게 한 이유. 반면 한국은 예서의 지침에 따라 숟가락의 사용을 철두철미 지키었을 뿐 아니라, 일품요리 보다는 밥과 국, 탕, 반찬의 구성으로 발전했기에 자연스레 숟가락과 젓가락의 기능이 세분화되었다는 것.

몹시 수긍이 가는 내용이지만 어린 시절 경험을 덧붙여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고 싶다. 숟가락이 발달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숟가락을 많이 사용해야 하니까. 다시 말해 중국이나 일본보다 밥을 많이 먹으니까이다. 고봉밥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동감할 거다. 지금보다 2~3배는 컸던 밥공기와 그 위에 공기만큼 솟아올랐던 고봉밥의 위용을. 그게 어디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을 수 있는 양이었던가. 숟가락으로 푹푹 퍼내도 바닥을 보기 요원했던 고봉밥!!! 1940년대 밥공기 기본 크기가 680ml였던 걸 생각해보라 (지금은 200ml 남짓이다.) 사진 속 조선인에게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밥 먹으라고 해보면 예에 어긋난다 일갈했을까 아니면 누굴 배 골려 죽일 작정이냐 역정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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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란 떠나야만 한다는 걸,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도 떠나야만 한다는 걸...˝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시 때문이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버님이 이 책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고 처음 읽었을 때, 내 취향이 아니군 이라고 생각했다. 무신론자인 딸이 코엘료가 좋다고 했을 때, 그리고 언어교환앱에서 만난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친구가 인생의 책이라고 이 책을 추천했을 때, 다시 읽어볼 것을 각각 약속했다. 재독을 해도 여전히 취향은 아니고, 구도의 항해를 하는 남자와 오아시스 항구의 파티마 설정은 딱 싫을 지경이다.

무신론자와 기독교신자와 이슬람신자를 모두 매혹시킨 이 책이 나에겐 왜 이리 거리를 두는 건지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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