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26] ‘오시는 길’과 ‘사이트맵’

 ‘인터넷 홈페이지’를 우리 말로 다듬은 낱말은 ‘누리집’입니다. 공공기관 가운데, 이렇게 다듬은 낱말대로 말을 쓰는 곳은 국립국어원 한 곳입니다. 다른 곳은 이렇게 다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아요. 한결같이 ‘홈페이지’나 ‘홈피’나 ‘사이트’나 ‘웹사이트’라고 할 뿐입니다. 그래도, 기관으로 “찾아가는 길”을 알리는 자리는 거의 ‘오시는 길’이나 ‘찾아오는 길’이라 적습니다. 이렇게 쉬운 말로 적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 기관을 어떻게 찾아와야 하는가를 알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막상 이들 누리집을 어떻게 돌아보면 좋을까를 알려주는 자리에는 ‘사이트맵’이라는 말만 씁니다. 아무래도 ‘누리집’ 아닌 ‘홈페이지’나 ‘인터넷 사이트’ 같은 낱말만 쓰니까 ‘홈페이지 맵’이라든지 ‘사이트맵’이라 할밖에 없겠지요. 처음부터 ‘누리집’으로 이름을 알뜰히 다듬어서 쓸 줄 알아야 비로소 ‘누리집 보기’나 ‘누리집 둘러보기’나 ‘누리집 한눈보기’ 같은 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434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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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일기 - 절망의 수용소에서 쓴 웃음과 희망의 일기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윤소영 옮김 / 막내집게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할 삶과 사랑받을 사람과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38] 조반니노 과레스키, 《비밀일기》



- 책이름 : 비밀일기
- 글 : 조반니노 과레스키
- 옮긴이 : 윤소영
- 펴낸곳 : 막내집게 (2010.12.11.)
- 책값 : 1만 원



 (1) 하루살이 이야기


 밤늦게까지 안 자던 아이가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납니다. 밤새 잠을 거의 못 자다가 새벽녘 일어나 주섬주섬 일하던 애 아버지는 그만 한숨부터 쉽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일찍 일어난 까닭이 있을 테지요. 아무리 늦게 잤달지라도,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기로 했으니, 일찍 일어나야 하는 줄 아니까요. 그러면 어제는 좀 일찍 자든가 해야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아이는 고단하고 졸리니까 땡깡만 부립니다. 이런 날을 워낙 숱하게 겪다 보니, 일찍 일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대견하다고 여기지 못합니다. 아이한테 옷을 입힌 다음 마주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 주어 고맙지만, 네가 어제 그렇게 늦게 자고 오늘 아침에는 이토록 일찍 일어나면 제대로 놀 수 있느냐, 보나 마나 다른 때처럼 또 골 부리고 그럴 텐데, 어머니가 일어나고 아침 차려 먹고 이것저것 치운 다음 떠나야 하니, 이렇게 하자면 서너 시간은 더 있어야 하니, 너도 좀 그때까지는 더 잠을 잤다가 일어나서 얼른 밥 먹고 가자 …….

 조금 뒤 아이를 꼬옥 안고는 이부자리로 파고듭니다. 한동안 배 위에 올려놓다가는 옆으로 누여 팔베개를 해 줍니다. 이렇게 삼십 분쯤 있자니 아이는 스르르 잠듭니다.

 겨우 재웠구나 생각하며 일손을 붙잡으려 하지만, 애 아버지도 잠이 모자라 어질어질합니다. 이제 밥물 안치고 국이나 반찬을 해야 할 텐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애 아버지도 벌렁 드러눕고 싶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벌렁 나자빠지고 싶습니다.


.. 우리는 버려진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짐승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빈손으로 우리만의 문명을 만들어 나갔다 … 침묵이 흐른 뒤, 모두들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한 사람 옆에 또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또 한 사람. 이민자의 집에 있는 칙칙한 선반에 쟁여진 물건들처럼, 모두들 그렇게 차곡차곡 침대로 들어간다 ..  (14, 106쪽)


 등허리가 아파 애 아버지도 살짝 누워 봅니다, 바닥이 따스해서 좋습니다. 눈을 감아 봅니다. 아, 느긋하고 좋습니다. 어느덧 살짝 잠이 들었다 싶더니 마음으로 빨래를 합니다. 살짝 잠이 든 채 꿈속에서 빨래를 합니다. 이제 막 빨래를 마치고 헹군다 할 즈음 눈을 도로 뜹니다. 그래, 빨래도 해야 하는데, 빨래감을 가져가서 할머니 댁에서 할까.

 어제부터 드디어 날이 조금 풀립니다. 한낮이 가까우면 앞마당과 집 둘레 멧자락이 두툼히 깔린 눈이 살살 녹는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겨울에 얼어붙은 우리 집 물은 안 녹습니다. 더 따뜻해야 하고 더 포근해야 하며 더 오래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야 합니다.

 멧자락 집에서 물을 못 쓰며 두 달을 살고 보니 일거리는 더 많고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면 한결 고단합니다. 집안에 물꼭지가 있어 언제라도 물을 틀어 쓰는 삶이란 얼마나 수월한가 새삼 깨닫습니다. 물지게를 지며 물을 쓰던 옛사람 삶이란, 물 한 바가지 얼마나 알뜰히 건사할밖에 없는가 싶습니다.

 집에 물꼭지 없이 우물물을 길어야 물을 한결 알뜰히 여기거나 돌보지만은 않겠지요. 집에 물꼭지 있어도 얼마든지 물을 아끼며 살겠지요.

 가난하게 살아간대서 가난한 삶이 무엇인가를 잘 헤아리며 이웃사랑 삶사랑을 하지는 않겠지요. 돈이 많거나 넉넉하면서도 얼마든지 이웃사랑 삶사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물꼭지를 언제나 마음껏 틀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물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가용 있는 분들이 자가용을 꼭 써야 할 때만 쓰고, 여느 때에는 두 다리나 자전거를 알뜰히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있으면서도 알뜰살뜰 꾸리는 살림인 분이 오늘날 얼마나 되나 알쏭달쏭합니다.


.. 독일 제국, 당신 내 주머니를 뒤지고 내 침대의 대팻밥을 들쑤시는데, 다 쓸데없는 짓이라오. 아무것도 못 찾을걸. 하지만 난 아주 중요한 비밀문서들을 숨겨 놨다오. 우리 집의 청사진, 내 과거의 수많은 영상들, 내 미래의 계획과 같은 것들 … 사람의 본질이란 그런 거라오. 바깥에서 명령을 내리는 거야 아주 쉽겠지만, 그 속에서는 영원하신 하느님께만 순종하는 법 … 오늘은 내 아들이 네 살이 되는 날이다. 나는 그 녀석에게서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보았지만, 아들과 떨어져 있는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56∼57, 88∼89쪽)


 첫째 아이가 좀 크면 집일을 나누어 맡을까 궁금합니다. 첫째 아이가 좀 크더라도 집일을 그닥 나누어 맡지 못하면서 둘째 아이 또한 이래저래 마음쓰며 돌볼 일만 잔뜩 늘어날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아이 없이 살아가더라도, 아이 여럿 키우는 어머니 삶을 올바로 읽는 사람은 어김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혼인을 않고 살아가더라도,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제대로 살피는 사람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책을 잘 안다 할 수 없습니다. 교사 노릇 오래 했대서 학생 삶을 잘 헤아린다 할 수 없습니다. 여행을 두루 다녔대서 온누리 골골샅샅 깊디깊이 훑는달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야 아는 삶입니다. 스스로 읽어야 아는 책입니다. 스스로 다녀야 아는 마실입니다.

 허리가 쑤시고 결리며 저리니까 바야흐로 집일이란 무엇인가를 뼈와 살로 받아들입니다. 집물을 못 쓰고 다른 집에서 물을 길어다 쓰니까 손가락이 노상 꽁꽁 얼어붙어 콕콕 쏘면서 물이란 어떠한가를 몸과 마음과 발바닥으로 맞아들입니다.

 고단하면서 졸리며 힘든 나날을 날마다 치르면서, 이런 나날이면서 손에 쥐어들 책이란 어떠한 책인가 하고 헤아립니다. 나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나 같은 집살림 도맡는 사람이 졸리며 고단한데다가 힘든 몸으로 자꾸 감기는 눈을 비비며 읽을 만한 글을 쓰지 못한다면, 이런 글이 실린 책을 책으로 여길 만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사진을 찍는 사람인 만큼, 나처럼 집살림 아이키우기 도맡을 사람이 바빠맞은 하루하루 겨우 말미를 내어들여다보며 가슴속에 아름다움이 꽃피우도록 할 만한 사진일 찍지 못한다면, 이런 사진도 사진이랍시고 찍은 셈이겠느냐고 돌아봅니다.

 하루살이로 살며 하루살이로 읽는 책이고 사진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니 하루살이로 쓰는 글이며 찍는 사진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랑 붙어 지내며 아이가 웃고 울며 떠들고 조용한 온갖 모습을 지식 아닌 삶으로 곰삭입니다. 아이 말씨 말투 말결을 살며시 되뇌고, 아이 몸짓 눈짓 손짓을 가만히 되짚습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아이 삶입니다. 어제 새롭고 오늘 새로운 아이 모습입니다. 늘 같을 수 없는 나날이며, 늘 다른 나날이기에 이렇게나 고단하고 지치면서도 용케 아침이면 다시 눈을 뜨며 새날을 맞이하는구나 싶습니다.


.. 자식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안전한 철조망 안에서― 아버지 시대 젊은이들의 지혜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담배도 피우지 않고, 춤도 추지 않고, 저녁에 외출하지도 않고, 극장에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불량식품을 사먹지도 않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 하지만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면요 …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전쟁의 끝이 초를 다투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시계를 들고 기다린다. 하지만 1분이 지나고, 2분·3분·4분·5분이 지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  (113, 148쪽)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은 사람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사랑을 물려줍니다.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사랑을 물려주기 어렵지만, 마음으로 사랑을 그리거나 바라거나 기린다면, 스스로 사랑씨를 틔워 차츰차츰 사랑꽃을 맺습니다. 스스럼없이 묻어나는 사랑을 물려줄 수 있고, 어렵디어렵게 피워낸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요.

 어떤 사랑이 우리 아이한테 더 낫거나 좋거나 기쁠 사랑인지는 모릅니다. 그저 저는 제 나름대로 사랑을 물려줍니다. 고운 옆지기는 고운 옆지기대로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테고, 어수룩하게 집살림 도맡으며 해롱해롱거리는 하루살이 아버지는 해롱해롱 하루살이 아버지대로 사랑을 물려줍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군다며 삐지거나 입을 샐쭉거리는 아버지는, 이런 아버지대로 어영부영 어설피 어버이 노릇 한답시고 바둥거리면서, 이렁저렁 사랑을 물려줍니다.

 깊어 가는 저녁나절 아이는 잠들지 않다가 갑자기 “엄마 똥 눌게.” 하면서 변기에 앉아 끙끙 하면서 똥을 뿌직뿌직 누고는 “똥 눴어. 오줌 눴어.” 하기에 밑을 종이로 한 번 닦고 영차 아이를 안아 물로 다시금 닦았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똥 눈다면서 변기에 앉아 다시금 똥을 뿌직부직 누기에 종이로 거듭 닦고 어영차 아이를 또 안아 물로 다시 닦습니다. 아이 밑을 닦으면서 아이가 속이 답답해 똥을 누고 싶어 잠을 안 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갓난쟁이 아이였다면 아이는 그예 곯아떨어진 채 기저귀나 바지에 똥을 부직부직 누었겠지요. 아버지는 똥바지와 똥기저귀를 빨면서 아이가 이토록 힘들었구나 생각하다가는, 아이가 크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더 귀여워 하며 예쁘게 받아들여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뉘우칩니다.

 애 아버지는 조용히 비손합니다. 우리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넉넉한 돈으로 무언가 다른 일을 할는지 모르며, 우리 옆지기가 몸·마음이 안 아픈 사람이라면 집일을 많이 나누어 맡아 주면서 애 아버지도 한 시름 덜는지 모르지만, 우리 살림은 쪼들리고 우리 옆지기는 아파 하기에, 애 아버지는 더욱 힘들며 슬프게 살아갈밖에 없지만, 더욱 힘들며 슬프게 살아갈밖에 없으니, 더 몸을 쓰고 더 마음을 쏟으면서 하루하루 집과 식구와 일과 놀이를 건사하는구나, 하고 비손합니다. 이제는 밥을 안쳐야겠습니다.


 (2) 전쟁 겪기·전쟁 읽기


 아이한테 밥을 먹이는 틈틈이, 아이를 재우고서 옆에 나란히 누워 조금씩, 밥물을 안치고 국을 끓이는 사이사이, 아이가 혼자 예쁘디예쁘게 책을 펼쳐 읽으면 이 옆에 마주앉아 얼마쯤 펼치며 읽은 《비밀일기》를 덮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많이 커서 열 몇 살 스물 몇 살이 되면 달라질 테지만, 온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책 하나 차근차근 차분히 읽지 못합니다. 읽다가 끊어야 하고, 읽다 끊겼기에 다른 책을 뒤적거리고, 다른 책도 읽다 끊어지니 또 다른 책을 읽다 끊고 하면서, 여러 가지 책을 이래저래 뒤죽박죽 섞어 읽습니다.

 바야흐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합니다. 다 읽었으면서 어쩐지 찜찜합니다. 잠든 아이 옆에 앉아서 책을 다시 펼칩니다. 밑줄을 그으며 읽은 대목을 또 읽어 봅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어 읽던 느낌과 어느덧 다 읽어내고 찬찬히 되짚는 느낌은 어떠한가 헤아립니다.

 바로 내가 읽은 내 책인데, 언제부터 이 책을 손에 쥐었는지 떠올리기 힘듭니다. 줄거리는 되새길 수 없고, 그때그때 되새기며 끄적끄적 했던 글월을 되새깁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나 하고 한 해 두 해 거슬러 짚습니다. 고작 서너 해 앞선 때 일이라든지, 너덧 해 앞선 때 일이 너무 아련합니다. 아득하며 까마득합니다. 사람들이란 이렇게 되나, 여느 어머님들 삶이란 이러했으려나, 내 앞날은 또 어떻게 펼쳐지고 몇 해쯤 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어떠하려나 두렵습니다.


.. 사랑하는 아들아, 너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우편함에서 어느 막사로 출두하라는 소집영장을 발견할지도 모르겠구나. 그곳에 가면 네 이웃을 해치고, 너도 그런 일을 당하게 만드는 장비들을 받게 될 거야 … 그들은 전쟁도 그렇게 한다. 냄비에 인간을 쏟아붓고, 화약 가루와 군사 과학에서 추출한 양념을 섞은 다음, 규율이라는 뚜껑을 덮고, 비타협이라는 밸브를 잠근다. 그러고는 불을 켜고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휘파람 소리를 기다린다 … 배고픔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이 어느덧 18개월째다. 하지만 그 감각은 날마다 새롭다 ..  (18, 57, 172쪽)


 《비밀일기》는 ‘수용소 일기’입니다. 수용소에서 독일군 포로로 지내던 삶을 적바림한 ‘포로 일기’입니다. 전쟁 포로란, 독일이 일으켰던 싸움 때문이든 독일에 맞서 나라를 지키든 겨레를 지키든 마을을 지키든 집식구를 지키든 하려며 총을 들고 일어서다가 붙잡힌 ‘전쟁 일기’입니다.

 총과 포탄과 비행기가 날거나 춤추는 싸움터에서 언제 죽었는지 모르도록 총이나 폭탄에 맞아 죽은 사람은 아무런 ‘전쟁 일기’를 남기지 못합니다. 훈장을 받은 사람은 ‘훈장 일기’를 남길 테고, 싸움에서 살아난 사람은 ‘생존 일기’를 남길 테며, 조반니노 과레스키처럼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전쟁포로 수용소 일기’를 남길 테지요.

 그런데,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이 새삼 지난일을 떠올리며 적바림했던 이 《비밀일기》란 참으로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이 겪은 일이었을까요. 한낱 꿈은 아니었을까요. 떠올리려 애쓰지만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까마득한 일은 아니었을까요.


.. 전쟁이 끝나면, 어떤 이들은 군복 가슴에 자랑스럽게 딸랑거리는 십자가 훈장을 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들이 죽어 있던 날들에 대한 보답으로, 해진 군복에 연필로 표시한 초라한 십자가만을 달게 되겠지 … 30분 전만 해도 우물가에서 세수하고 있던 사람이 지금은 죽어 있다니 … 비는 모래 위의 핏자국을 깨끗이 씻어내렸다 … 아르투르가 나에게 말했다. “복수는 야만적이고 비열한 짓이야. 내가 죽는다 해도 누가 복수해 줄 필요 없어. 난 단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  (65, 115, 117, 200쪽)


 전쟁을 치러 살아남은 사람들만 전쟁을 떠올립니다. 전쟁을 치러 죽은 사람은 전쟁은커녕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냥 잿더미가 되거나 흙으로 돌아갑니다.

 전쟁통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일기를 남깁니다. 전쟁을 겪었거나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전쟁 일기’나 ‘포로 일기’나 ‘수용소 일기’나 ‘훈장 일기’를 읽습니다.

 새삼스레 궁금합니다. 우리 겨레 우리 나라 우리 터 사람들은 이 땅에서 벌어졌던 숱한 전쟁을 어떻게 글로 남기고 어떠한 느낌으로 읽으려나요. 나라를 지키자면 전쟁이고 뭐고 힘차게 일어서야 하며, 적군은 깡그리 죽여 넘어뜨려야 한다는 넋으로 읽으려나요.


.. 오늘 아침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쪽 철조망 앞에 있는 밭이 초록빛으로 뒤덮였다. 보리가 팬 것이다. 차갑고 황량하기만 한, 햇살도 없는 이런 하늘 아래서 씨앗이 열매를 맺는 기적이 일어나다니? … 막사 문 앞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그걸로 돌멩이 차기 놀이를 하면서 수용소를 한 바퀴 돌았다 ..  (89, 137쪽)


 누가 일으키는 전쟁이요, 누가 죽는 전쟁이며, 누구를 죽이는 전쟁일까요.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무엇을 얻고, 전쟁을 막으려는 이들은 무엇을 지키려 하며, 전쟁통에는 누가 다치고 누가 살며 누가 아프고 누가 히히호호 웃는가요.

 숨길 까닭 하나 없는 비밀일기인 《비밀일기》입니다. 감추어야 할 대목 하나 없는 비밀일기인 《비밀일기》입니다.

 무엇을 숨겨야 하고, 어떤 이야기를 감추어야 하나요. 무슨 이야기는 꽁꽁 묻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를 꽉 틀어쥐어야 하는가요.

 우리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우며, 우리 이웃이란 어느 만큼 사랑스러운가요.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도 학교를 다녔을 테고, 사랑스러운 어버이가 사랑스러운 손길로 키웠겠지요. 전쟁통에 끌려나가 총칼을 들고 영문도 모를 누군가를 나쁜 놈으로 삼아 죽이고 짓밟아야 하는 맨 밑바닥 땅개 같은 군인들도 사랑스러운 어버이한테서 목숨을 선물받아 사랑스러운 어린 나날을 거쳐 사랑스러운 젊은이가 되었겠지요.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읽어야 하고, 무슨 책을 가까이해야 하며, 무슨 지식을 쌓아야 할까요. 우리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며, 누구를 미워해야 하고, 누구하고 등돌려야 하나요.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며, 우리 삶은 어떻게 꾸려야 하고, 우리 보금자리는 어떠한 모습이면 아름다울까요.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은 흙으로 돌아간 지 마흔 해가 훌쩍 넘었고, 《비밀일기》는 처음 태어난 지 예순 해를 훌쩍 넘긴 어느 날 한국땅에서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밥물이 끓습니다. 슬슬 아이를 깨워 오줌을 누이고 밥을 먹여야겠습니다. 아이고, 아이를 깨우려고 보니 아이는 그새 이불에 오줌을 흥건히 누었습니다. (434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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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넋을 찾는 책읽기


 넋이 나간 사람을 일컬어 미친이라 한단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넋나간 사람, 곧 미친이라 할 만할까. 어마어마한 나라돈을 쏟아부으며 물줄기를 살린다고 외치는 사람은 미친이라 할 만할까.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대통령부터 대학교수와 신문기자까지 골고루 많다. 이들은 미친이라 할 만한가.

 참말이 아닌데 참말인 듯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떠들썩하게 띄우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법정에 서서 잘못했다는 판결을 받았어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이들은 미친이일까 넋나간 사람일까.

 쿠바로, 런던으로, 파리로, 뉴욕으로, 사진을 찍는다든지 예술을 한다든지 뭔가를 한다든지 하면서 비행기 타고 마실을 다니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제 일본 도쿄쯤은 지렁이나 달팽이나 흔히 오가는 골목마실쯤 된다. 그런데 정작 쿠바이든 런던이든 파리이든 뉴욕이든 도쿄이든 쉽게 오가면서,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 한자락 골목을 거닐어 보지는 않는다. 아니,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과 이웃한 삶자락 한켠에 골목이 있는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모른다기보다 느끼는 가슴이 없다. 이들은 미친이일는지 넋나간 사람일는지 아리송하다.

 서양사람처럼 까만옷을 차려입으면 깍듯이 인사하지만, 반바지에 민소매옷을 입으면 잔뜩 찌푸린 낯으로 말부터 까고 보는 사람이 많다. 까만옷에 까만차라면 굽신거리며 인사하지만, 고무신에 조그마한 자전거를 몬다면 얼른 가로막고는 못 지나가게 하기 일쑤이다. 이 나라는 미친 나라일까 넋나간 나라일까.

 대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사람들은 으레 누구나 대학교를 다닌다고 여기면서 묻거나 말한다. 386이건 486이건 또 무슨무슨 학번이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더욱이 같은 해에 같은 대학교를 다녔다 한들 이 사람들이 한 동아리로 묶일 만한 살가운 이음고리가 있을 수 있는가. 스스로 진보라고 밝히는 사람들조차 초·중·고등학교만 마치는 사람들 앞날을 살피거나 걱정하지 않을 뿐더러, 학교 문턱을 안 밟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거나 보듬지 않는다. 지식으로 똘똘 뭉친 말과 책만 쏟아내고, 사람 나이를 학번으로 아니면 읽지 못한다. 이들 가방끈 긴 사람들은 미친이인가 넋나간 이인가.

 《짝꿍 바꿔 주세요》라는 일본 그림책이 있다. 이 그림책을 내놓은 일본에서는 거의 100만 부를 팔았는데(2010년까지)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은 “짝꿍 바꿔 주세요”가 아니다. 짝꿍 이름을 들먹이면서 ‘토나리 노 세키 노 마스다’라 붙였다. ‘토나리’는 뭐고 ‘세키’는 뭘까. 내가 가진 일본책을 찾아서 들여다본다. “となりのせきのますだくん”으로 적혔다. 이런, 일어사전을 찾아보니 “옆의 자리의 마스다 군”이네. “짝꿍 마스다”일 뿐인 책이름이잖아. 이 그림책을 그린 사람은 “짝꿍을 바꾸어 달라”고 말하지 않는데, 한국에서 옮긴 그림책은 멋대로 “짝꿍 바꾸라”고 이름을 붙였잖아. 누가 미친이인가. 누가 넋나간 사람인가.

 내가 읽는 책 하나는 내 넋을 옳게 차리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나는 내 넋을 알뜰히 차리려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가. 미친이만 판치는 미친나라에서는 미친책만 읽으며 미친글만 쓰면 되는가. (434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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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읽게 도와준 책
― 주요섭, 《미완성》



- 책이름 : 미완성
- 글 : 주요섭
- 펴낸곳 : 을유문화사 (1962.11.25.)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주요섭을 읽어 고등학교 3학년 즈음에는 주요섭 님이 내놓은 작품을 웬만큼 읽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작품을 다 읽지는 못합니다. 헌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책은 다 훑으며 읽었으나, 퍽 옛날에 나온 드물며 비싼 옛책은 사서 읽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학교 도서관에서 주요섭 님 책을 찾아 빌려 읽지 못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우리 학교에도 비로소 도서관이 열리지만(제가 다닌 학교에서 4회 졸업생입니다), 묵은 예전 책을 자그마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갖출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인천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서 주요섭 님 예전 책을 찾아서 읽을 수 없습니다. 갖추어 놓지를 않거든요.

 그때나 이제나 매한가지인데, 도서관은 묵은 옛책을 장만하려고 힘쓰지 않습니다. 도서관 일꾼 스스로 헌책방마실을 꾸준히 하면서 당신들 도서관에 좋은 책을 알뜰히 갖추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새로 나오는 책 가운데 도서관 일꾼이 보고픈 책이라든지 사람들이 바라는 책 몇 가지를 사 놓을 뿐입니다.

 새책이라는 옷을 입은 주요섭 님 작품은 으레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맴돕니다. 기껏 더 다루어 준다면 〈인력거꾼〉하고 〈대학교수와 모리배〉쯤입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사로 일하던 분들도 이런 작품까지만 줄거리로 다루면서 대입 논술 시험을 살피라고만 할 뿐, 주요섭을 주요섭으로 읽도록 이끌지는 않습니다.


.. “여보, 내 말 좀 명심해 들어요. ‘건국을 위해서 노력한답시는’ 그 동창생 덕분에 나두 한 턱 잘 얻어먹었어. 그런데 이것 봐요. 하루 저녁 요리값 ‘간죠’가 얼마나 났을 듯하우?”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짐작이라도 해 보란 말요. 하두 엄청나니 말야!” “몰라요, 난, 그런 거.” “여보, 놀라서 기절하지 않도록 마음 잔뜩 단단히 먹고 들으시우. 응, 간죠가 말이요, 하루 저녁 요리 먹은 간죠가 말이요, 놀라지 말지어다, 작으만치 일금 이만 원야라. 이만 원!” “가짓뿌리.” “아니야, 참말이야. 그렇지, 거짓말 같은 참말이 지금 우리 반도 안에 어디든지 가득 차 있어. 내 말 좀 들어보. 그 기생년들 말요, 기생년들이 간죠에 끼인 화대 외에 또 따로 팁을 오백 원씩 더 주고야 말더구만. 그러니 지금 세상엔 기생 돈벌이가 제일이겠읍디다. 하루 저녁 연회비가 우리 한 가족 생활비 일 년치 하고도 더 되니, 허어, 우리 일 년 생활비를 그자들은 한 끼에 다 먹어 버린단 말야 …… 여보, 마누라. 여보, 여보! 부르는데 왜 대답도 안 해?” “왜 그래요?” “마누라, 마누라가 날 보구 늘 골샌님이라구, 주변이 없다구 쫑알대 왔지, 기억하우? 그때마다 난 큰소릴 탕탕 치군 했었지. 사람은 돈보다는 절개가 더 중하다구. 허나 지금 우리 나라는 생지옥이야, 지옥! 질서두 없4ㅜ, 절도도 없구, 자존심도 없구, 그저 아무 짓을 해서라도 돈만 모으면 제일 잘난 사람이거든. 흥, 모리배라구? 그럼 어때? 잡혀간다구. 잡혀가문 어때? 검사국에서야 어쨌든 재판소에서는 으레 뻐젓이 무죄 판결로 석방돼 나오는데. 이게 소위 민주주의라는 거거든. 나두 낼부터 모리배 뒷꽁무니나 따라다닐까? 남들은 다 하는데 나 혼자 독야청청한다고 누가 나에게 상 줄까?” “그래두 양심 문제지요.” ..  (203∼205쪽)


 어릴 때에는 마냥 놀기에 바빴고,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온통 입시지옥에 갇혀야 했던 몸으로 문학을 문학답게 받아들이기는 참 힘들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과서 아닌 책’을 읽는 학교 동무는 꼭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아이가 보던 책은 《영웅문》입니다. 한 학년 55∼60명인 열 학급 중학교 세 해를 보내면서 《영웅문》 아닌 책을 읽으려 하던 동무는 이 아이 말고 딱 하나 더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도 고등학교에 가면서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파묻힐 뿐, 교과서 아닌 책하고는 사귀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선 다음에도 한 학급 50∼55명인 열 학급에서 교과서 아닌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아이는 찾아보지 못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툭하면 소지품검사를 하면서 ‘교과서 아닌 책’은 모두 빼앗아 갔는데, 교과서 아닌 책을 들고 다니다가 빼앗긴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삼중당문고이든 정음문고이든 마당문고이든 을유문고이든 박영문고이든 서문문고이든, 소지품검사를 달마다 두어 차례씩 하면서 언제나 빼앗겼다가 교무실로 찾아가서 국어교사를 이끌고 ‘이 책을 빼앗아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학생주임하고 따져서 겨우 되찾습니다. 학교교사라 해서 책을 읽지 않을 뿐더러, 국어교사가 아니고서는 주요섭이든 한하운이든 황순원이든 모릅니다. 더구나 이들 작가 이름을 한글 아닌 한자로 적어 놓으면 도무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박태원이든 김정한이든 하는 이름은 더더욱 모를 뿐더러, 어느 때에는 김수영과 신동엽 시집을 불온도서로 여겼고, 대원사에서 낸 시집 가운데 하나였던 박노해 시집을 놓고는 전교조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어처구니없는 소지품검사와 두발검사 따위로 청소년권을 짓밟던 교사들 때문에 책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릴케와 하이네 시집조차 ‘입시공부에 도움 안 되는 쓸데없는 책’을 갖고 다닌다며 빼앗으면서 몽둥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없는 돈으로 동네책방하고 대한서림하고 헌책방에서 겨우 장만해서 여러 차례 읽는 책을 터무니없이 빼앗긴 데다가 얻어맞기까지 해야 하니 울화가 치밉니다. 외려 ‘그래? 그러면 내가 더 읽어 주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밤 열 시 사십 분까지 하던 자율학습 때에는 언제나 교과서 아닌 책을 펼쳐 놓고 읽는데, 짜증스럽고 갑갑한 교실에서 읽지 말고 헌책방에서 읽자고 생각하며 저녁에 학원 가는 아이들 틈에 섞여 담타기를 하며 헌책방마실을 한 주에 한두 차례씩 합니다(입시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율학습을 안 받고 학원에 가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학교 앞문에서 학원 수강증 검사를 하니까, 학원 가는 아이들 틈에 섞여 교실에서 빠져나온 뒤 학교 옆담이나 뒷담을 타고 넘어 밤길을 후다닥 달리며 내뺐습니다).


.. 가난은 창피인가? 성현들의 말씀은 그렇지가 않다 했지만 오늘날 이 서울 풍경을 보면 가난은 확실하게 창피요, 또 가난한 살림일수록 어림삥한 풍설에 더 잘 속아 넘어가는 바보다 … 하기는 배급소 지정받는 것도 돈 쓰고 빽 써서 받은 것이니까 세도 쓸만 하겠지만. 그러나 민족의 지도자들을 개 욕하듯 욕설을 두 발 세 발도 더 긴 종이에 써서 도처에 내붙이는 종이는 넉넉하면서도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이 헛걸음치는 걸 미안하게 생각할 양심조차 없는 이 나라 장삿군이란 말인가?  그리고 또 오늘 설탕 배급 못 줄 이유는 무엇인고? 수백, 아니 수천 명이 헛걸음치는 걸 미안하게 생각할 양심조차 없는 이 나라 장삿군이란 말인가? … 지금에는 왜놈들은 다 가고 우리 나라 사람들끼리만 살고 있는데, 동포를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쏴 죽이고’ 싶은 생각을 나 같은 여자에게까지도 일으키도록 만들어 주는 이런 비극이 어디 또 있을까! ..  (207, 214, 215쪽)


 오랜만에 《미완성》을 다시 읽습니다. 거의 스무 해 앞서 읽던 책을 다시 펼치니 새삼스러우면서 새롭게 읽힙니다. 철 덜 든 어린 나날 읽던 주요섭 소설하고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며 읽는 주요섭 소설은 사뭇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 하나는 이 작품을 쓴 사람 목소리와 살내음 그대로 예나 이제나 고이 흐릅니다. 당신이 부대끼며 살던 나날을 낱낱이 싣고 찬찬히 담은 작품은 언제까지나 당신이 발 디딘 그날 그곳 삶자락을 읽도록 이끕니다.

 문학을 문학다이 즐기거나 누리거나 나누기 힘들던 일제강점기이며 해방이며 한국전쟁이며를 거치면서도 문학을 하던 사람이 있기에, 문학이 아닌 입시를 해야만 하던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문학을 문학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며 꿈을 꿉니다. 오로지 돈바라기로만 치닫는 오늘날, 애 아버지로서 돈바라기 아닌 삶을 어찌저찌 힘들거나 고단하면서도 꿋꿋하게 꾸린다면, 먼 뒷날 애 아버지가 흙으로 돌아간 뒤에 우리 아이나 우리 아이가 낳을 아이나 조금이나마 살갑거나 따스한 나날을 흐뭇하게 껴안으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으려나요.

 한국 문학쟁이 가운데 세계문학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을 쓴 사람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문학으로 손꼽히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한국땅에서 한겨레가 한국사람으로서 오붓하게 즐기며 되새길 수 있으면 넉넉하지 않나 싶습니다. 허먼 멜빌 《모비딕》은 모비딕대로 좋고, 주요섭 님 《미완성》에 담긴 〈해방 1주년〉은 해방 1주년대로 좋습니다. (434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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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팔아요?


 모를 만한 사람이 아닌 알 만한 사람이 나한테 “책 팔아요?” 하고 물을 때에는 참 갑갑하다. 모를 만한 사람이 아닌 알 만한 사람조차 내가 ‘헌책방을 열어 장사하는’ 줄 여긴다. 이들은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읽기나 했을까. 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안다고 여길까. 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가 나오면 어떤 뜬소문을 퍼뜨리며 다닐까.

 묵어서 좀처럼 안 보이는 헌책이나 옛책을 사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기를 돌려서 인터넷헌책방에서 사면 그만이다. 스스로 다리품을 팔아 헌책방마실을 하기 싫으면 집에서 인터넷 켜 놓고 또닥거리면 된다. 애써 나한테 전화할 까닭이란 없다.

 그러나 나한테 책 팔라 하는 이들은 그저 책에만 눈이 멀었기 때문이니까 어쩌는 수 없다. 이 불쌍한 넋들을 어찌할 길이 없다. 나는 내가 그동안 사서 읽고 마을 도서관을 열면서 갖춘 이 책들을 팔 까닭이 없고, 팔 수 없으며, 팔 일이 없다. 도서관을 열어서 꾸리는 사람 가운데 누가 책을 팔까? 그토록 책을 갖고 싶으면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책 좀 파셔요.” 하고 여쭐 노릇이다. 아니, 이런 책들이 묵지 않도록, 새로 나왔을 때에 부디 알뜰살뜰 제값 치르며 장만해 줄 노릇이다. 널리 팔리던 때에는 장만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없다고 수선을 피운들 이 책들이 짠하고 나타날 일이란 없다.

 사람들이 참 몰라본다 싶어 하루하루 묻히는 몇 가지 묵은 헌책 이야기를 틈틈이 느낌글 하나로 적바림해 놓으면, 내가 마치 이 책들을 경매시장 같은 데에 내놓아 팔려 하는 줄 생각하나 본데, 책을 팔려면 서지사항하고 사진하고 책값만 붙여 목록을 올리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떻게 일군다 하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 붙이지 않는다.

 사람을 읽지 않으면서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한 일이다. 사람을 읽지 못하는 눈길로 책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아리송한 일이다. 사람을 읽으려 하지 않으면서 책마다 다 다르며 깊고 너르게 깃든 이야기를 얼마나 껴안을는지 모를 일이다.

 제발, 책 좀 내려놓자. 책은 좀 내려놓고, 돈 있으면 어떤 책이든 다 사서 간직할 수 있다는 엉터리 생각 좀 내려놓자. 돈 있는 사람은 그저 돈 있을 뿐이니까, 이 돈냄새 나는 짓은 제발 그만두자. (434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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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3 22:22   좋아요 0 | URL
ㅎㅎ 된장님께 직접 전화를 걸어서 책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나 보군요.정성은 갸륵한데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궁금해 집니다^^

파란놀 2011-02-03 23:59   좋아요 0 | URL
출판사로도 전화를 걸고, 인터넷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다 나오기도 하고, 그러지요 뭐... 그냥, 책에만 눈이 먼 사람들이라 더없이 딱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