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넋을 찾는 책읽기
넋이 나간 사람을 일컬어 미친이라 한단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넋나간 사람, 곧 미친이라 할 만할까. 어마어마한 나라돈을 쏟아부으며 물줄기를 살린다고 외치는 사람은 미친이라 할 만할까.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대통령부터 대학교수와 신문기자까지 골고루 많다. 이들은 미친이라 할 만한가.
참말이 아닌데 참말인 듯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떠들썩하게 띄우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법정에 서서 잘못했다는 판결을 받았어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이들은 미친이일까 넋나간 사람일까.
쿠바로, 런던으로, 파리로, 뉴욕으로, 사진을 찍는다든지 예술을 한다든지 뭔가를 한다든지 하면서 비행기 타고 마실을 다니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제 일본 도쿄쯤은 지렁이나 달팽이나 흔히 오가는 골목마실쯤 된다. 그런데 정작 쿠바이든 런던이든 파리이든 뉴욕이든 도쿄이든 쉽게 오가면서,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 한자락 골목을 거닐어 보지는 않는다. 아니,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과 이웃한 삶자락 한켠에 골목이 있는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모른다기보다 느끼는 가슴이 없다. 이들은 미친이일는지 넋나간 사람일는지 아리송하다.
서양사람처럼 까만옷을 차려입으면 깍듯이 인사하지만, 반바지에 민소매옷을 입으면 잔뜩 찌푸린 낯으로 말부터 까고 보는 사람이 많다. 까만옷에 까만차라면 굽신거리며 인사하지만, 고무신에 조그마한 자전거를 몬다면 얼른 가로막고는 못 지나가게 하기 일쑤이다. 이 나라는 미친 나라일까 넋나간 나라일까.
대학교를 다니거나 마친 사람들은 으레 누구나 대학교를 다닌다고 여기면서 묻거나 말한다. 386이건 486이건 또 무슨무슨 학번이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더욱이 같은 해에 같은 대학교를 다녔다 한들 이 사람들이 한 동아리로 묶일 만한 살가운 이음고리가 있을 수 있는가. 스스로 진보라고 밝히는 사람들조차 초·중·고등학교만 마치는 사람들 앞날을 살피거나 걱정하지 않을 뿐더러, 학교 문턱을 안 밟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거나 보듬지 않는다. 지식으로 똘똘 뭉친 말과 책만 쏟아내고, 사람 나이를 학번으로 아니면 읽지 못한다. 이들 가방끈 긴 사람들은 미친이인가 넋나간 이인가.
《짝꿍 바꿔 주세요》라는 일본 그림책이 있다. 이 그림책을 내놓은 일본에서는 거의 100만 부를 팔았는데(2010년까지)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은 “짝꿍 바꿔 주세요”가 아니다. 짝꿍 이름을 들먹이면서 ‘토나리 노 세키 노 마스다’라 붙였다. ‘토나리’는 뭐고 ‘세키’는 뭘까. 내가 가진 일본책을 찾아서 들여다본다. “となりのせきのますだくん”으로 적혔다. 이런, 일어사전을 찾아보니 “옆의 자리의 마스다 군”이네. “짝꿍 마스다”일 뿐인 책이름이잖아. 이 그림책을 그린 사람은 “짝꿍을 바꾸어 달라”고 말하지 않는데, 한국에서 옮긴 그림책은 멋대로 “짝꿍 바꾸라”고 이름을 붙였잖아. 누가 미친이인가. 누가 넋나간 사람인가.
내가 읽는 책 하나는 내 넋을 옳게 차리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나는 내 넋을 알뜰히 차리려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가. 미친이만 판치는 미친나라에서는 미친책만 읽으며 미친글만 쓰면 되는가. (4344.2.2.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