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책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손에 들고 읽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강다리 건널 때면 책을 덮습니다. 넓은 한강과 한강 둘레를 뒤덮은 시멘트 건물을 봅니다. 이 시멘트 건물은 뿌연 먼지띠가 곱게 감싸안습니다. 그래서 이곳, 한강을 끼는 서울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사는 사람들은 먼지띠 위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낮하늘, 하얀 별이 가득가득 반짝이는 까만 밤하늘을 볼 수 없고, 보지 못하다가는, 생각도 안 하고 말거나, 잊어버리기까지 합니다. (4339.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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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으면서 만화책 읽기


 지난주에 서울마실을 했을 때에 가방이 넘치도록 책을 장만했다. 천으로 된 가방에도 책을 잔뜩 담아 팔뚝에 걸쳤다. 등허리가 휘겠구나 싶어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한 정류장을 가서 내린다. 전철역에서 내려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사고 나온 길이었기에 갈아타기가 되어 찻삯을 더 치르지 않는다. 걸음으로는 두 정류장이라 두 정류장을 걸어가든 버스로 가든 할 수 있는데, 한 정류장만 버스로 움직인다. 나머지 한 정류장 길에서는 천가방에서 만화책 하나를 꺼내어 읽는다. 어깨가 무거워 버스를 탔지만, 거칠게 모는 버스에서는 속이 메스꺼워 금세 내렸다. 고작 한 정류장을 버티었다. 시골에서 시골버스를 타던 때하고는 너무 다르다. 시골버스 일꾼은 도시버스 일꾼처럼 거칠게 모는 일이 없다.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을 뿐더러 길가마다 끔찍하도록 자가용들이 줄지어 섰으니 도시버스 일꾼들이 버스를 거칠게 몰밖에 없지 않을까. 도시에서는 버스 일꾼이 일하는 보람과 값과 뜻을 얼마나 느끼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 그저 다달이 돈 버는 일 빼놓고 무슨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사랑을 살필 수 있을까. 버스 일꾼부터 더 보람되이 일하기 어려운 만큼, 버스를 타는 손님들이 고마움이나 홀가분함이나 기쁨을 느끼기는 힘들 테지. 얄궂은 마음이 자꾸 돌고 도는 셈이다.

 그렇지만, 버스에서 내려 걷는다고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가게마다 시끄러이 틀어대는 노래를 들어야 하고, 엄청나게 많은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는 소리라든지 자동차 꽁무니에서 뿡뿡 뿜는 방귀를 마셔야 한다. 찻길 한켠에 차를 대도 모자란 판이니, 거님길까지 자동차가 올라선다. 똑바로 걸을 수 없다. 요리조리 자동차 옆으로 걸어야 한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손전화로 시끄럽게 수다를 떤다. 둘이나 셋씩 짝을 지어 걷는 사람들은 귀가 따갑게 수다를 떤다. 도시라는 곳은 워낙 시끄러운 나머지, 둘이 짝을 지어 걷는다 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없다.

 만화책 《유리가면》 45권이 새로 나왔기에 《유리가면》을 읽으며 천천히 걸었다. 가방이 무거우니까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하면서 걸었다. 메스꺼운 속에서 뭔가 울컥 하고 올라올 듯한 기운을 잠재우려고 눈알을 책에 처박는다. 시끄러운 소리와 어수선한 간판과 자동차에 눈이 홀리고 싶지 않아,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책 줄거리를 곱씹는다.

 생각해 보면,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몽땅 연극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제 삶을 사랑하며 제 삶을 아끼는 살림꾼이 아니라, 제 돈을 더 거머쥐려고 더 악착같거나 앙칼질 수밖에 없이 연극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예쁘장하거나 멋스러이 보이는 옷을 차려입으면서 남 보라는 듯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껍데기가 아무리 그럴싸하다 한들 알맹이인 줄거리가 엉터리라면 읽을 만한 책이 아니다. 편집은 편집대로 훌륭히 해야 하지만, 편집만 훌륭하고 ‘훌륭히 편집한 책 줄거리’가 엉터리라면 이러한 책은 읽을거리나 마음밥이 되지 못한다.

 말쑥하거나 말끔한 도시사람들이다. 예쁘며 멋진 도시사람들이다. 청소부들은 쉴새없이 쓰레기를 줍는다. 하루만 지나도 쌓이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들이 하룻밤을 지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도시사람이 먹다 남긴 밥쓰레기를 돈으로 치면 한 해에 10조 원 가까이 된다는데, 이 어마어마한 밥쓰레기는 날마다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로 버려질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제 넋을 찾거나 차리자면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래거나 다스릴 수 있을까. 도시에서 많이 사고팔리는 책이란 온통 지식과 정보와 자격증과 처세를 다루는 책들이요,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착하거나 따사로이 보듬는 책은 거의 안 팔리는데, 이러한 도시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매무새로 이웃을 사귈까.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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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이불 빨래


 아이가 사흘째 속이 몹시 안 좋은 듯하다. 사흘 내리 물똥을 싼다. 처음 물똥을 싸던 날 기저귀랑 바지랑 이불에 잔뜩 똥을 발랐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었기에 참지 못해서 그만 싸고 말았겠지. 아이가 아무쪼록 속을 잘 달래야 할 텐데, 어버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무엇일까.

 아이가 똥을 바른 이불과 깔개 석 점을 걷는다. 겉만 묻고 속솜에는 스미지 않았다.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냐고 생각하며 이불과 깔개를 빤다. 어른이 덮는 이불이나 깔개라면 꽤나 힘들지만, 그나마 아이 이불이요 깔개인 만큼 품이 덜 든다.

 그렇지만 아이 이불과 깔개 석 점이니까 어른 이불 한 채만큼 된다고 할까. 한창 추운 날이 거의 물러가고 제법 따사로운 날씨이니까 빨래하면서 그리 힘들지 않고, 빨래도 이틀 만에 다 마른다. 아이 아버지는 빨래하느라 등허리가 휘지만, 똥을 질러댔기에 그동안 오줌을 질러대어 그냥 말려서 다시 쓰던 이 이불이랑 깔개를 말끔히 빨아서 덮거나 깔 수 있다. 앞으로는 겨우내 덮고 깔던 이불을 하나씩 빨아야 할 테니까, 먼저 아이 이불과 깔개를 빨도록 해 준 셈일까.

 참으로 일거리가 그치지 않는 나날이라 눈알이 핑핑 돈다. 힘든 데에 더 고된 일거리가 쌓인다고 여기면 그야말로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버겁다. 잘 생각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책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 몫이지, 책을 쓴 사람 몫이 아니다. 책을 쓴 사람이 엉터리로 썼대도 읽는 사람이 잘 읽으면 훌륭하다. 책을 쓴 사람이 훌륭히 썼어도 읽는 사람이 엉터리라면 젬병이다.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아이 아버지로서 어찌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여야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를 찬찬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더 쓰다듬고, 다시금 껴안으며, 조금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어버이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저녁이 되면 픽픽 쓰러지지만, 새벽에 다시 기운을 차리며 일어난다. 오늘은 오늘 꾸릴 삶과 오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며 맞이할 새날을 생각하자.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북돋우며 도와줄 책을 헤아리자. 옆지기는 밤새 아이 옷가지 하나를 뜨개질로 짓는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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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9] 감나무

 감을 열매 맺는 감나무입니다. 고욤을 열매 맺는 고욤나무입니다. 도토리를 열매 맺으면 도토리나무로 생각할 만하지만, 도토리는 참나무나 떡갈나무나 신갈나무 같은 나무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배가 나니까 배나무이고, 포도가 나서 포도나무이며, 능금을 얻으니 능금나무입니다. 늘 푸르대서 늘푸른나무요, 어느 나무이든 푸르기 때문에 푸른나무라는 말도 곧잘 씁니다. 씨앗이 터서 자란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어린나무나 애기나무입니다. 한창 자라면 어른나무라 하고, 오래되었으면 늙은나무라 합니다. 이들 나무를 쓰려고 베니까 나무베기입니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기에 나무집이고, 나무를 깎아 배를 무으면 나무배입니다. 빨래할 때에 쓰든 다른 자리에 쓰든 나무방망이입니다. 지난날 밥을 먹으려고 곡식을 빻을 때에 나무방아를 썼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나무로 만든 신인 나무신, 곧 나막신을 신었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하고 노래했습니다. 햇볕과 물과 바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은, 나무가 없어도 살아가지 못합니다. 나무마음을 읽고, 나뭇가지 하나 함부로 꺾지 않았어요. 고마운 나무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나무가 될 테고, 내 말을 알뜰살뜰 여미어 말나무를 돌아봅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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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38] 프리미엄 웹방화벽 BIG 이벤트

 회사나 공공기관이 영어 쓰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라면, 요즈음 여느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영어 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 아닌 자리에서도 영어를 함부로 즐겨쓰니까, 회사이든 공공기관이든 사람들 눈길을 끌고자 영어를 섣불리 씁니다. “BIG 이벤트”라지만, “BIG event”처럼 모조리 영어로 쓰지 않고 뒤쪽은 한글로나마 적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느냐 싶기까지 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우리 말로는 어떻게 말해야 좋거나 알맞거나 옳은지를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말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영어로 쓰는구나 싶어요. 삶도 생각도 오로지 영어이기 때문에, 쉽게 튀어나오거나 사람들 앞에 널리 선보이는 자리에서도 영어를 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프리미엄 웹방화벽”이 아니라 “고급 웹방화벽”이나 “최고급 웹방화벽”이라고 쓴 우리들입니다. ‘고급’이나 ‘최고급’ 또한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입니다. 곧, 회사나 공공기관 사람들은 한자말만 쓰다가 영어로 휙 건너뛴 셈입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생각할 노릇입니다. 고급이든 프리미엄이든, 우리 말로는 무엇을 가리키거나 뜻할까요. 스스로 우리 말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쓰면서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지, 나이든 사람들 앞에서 어떤 말투로 생각을 주고받으려 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센 수학”이 있고 “핸드볼 큰잔치”가 있습니다. 세니까 “센 수학”이라 합니다. 방화벽 가운데 조금 더 튼튼하며 훌륭하니까 “센 방화벽”이겠지요. “더 나은 방화벽”이거나 “(더) 빼어난 방화벽”이라 할 테고요. 크게 벌이는 무슨 행사라 하기에 ‘큰잔치’입니다. “출시 기념 큰잔치”가 되고, “봄맞이 큰잔치”가 됩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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