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64] 해피콜, 택배지연신고센터

 영어로는 ‘해피콜’이라면, 한자말로는 ‘행복전화’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말로는 무엇이 될까요.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한국말로 생각을 나누어야 합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땅에서 살아가며 일본말로 생각을 나누어야 할 테고요. 덴마크사람이 덴마크땅에서 덴마크말을 버리고 영어를 사랑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버리고는 영어와 한자를 사랑합니다. ‘幸福’을 한국말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즐거움도 기쁨도 모르는 한국사람입니다. 덧붙여, ‘택배’ 같은 일본말이야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연(遲延)’이나 ‘센터(center)’ 같은 말 또한 어찌할 수 없을까 궁금합니다. “택배늦음신고마당”처럼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할 날을 우리 손으로 맞아들이기란 너무 힘든 듯합니다. (4344.4.2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생각
― 사진과 돈



 돈이 있으면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퍽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돈이 없기에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또한 꽤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참말로 돈이 있지 않고서야 더 낫다는 사진 장비를 쓸 수 없습니다. 사진기 몸통이든 렌즈이든, 후드이든 필터이든, 세발이이든 가방이든, 빛살피개이든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이든, 사진 장비를 장만하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돈이 없는 사람으로서 사진길을 걷는다는 일은 터무니없다 말할 만한지 모릅니다.

 제가 사진길을 처음 걷던 때를 돌이킵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습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만나 사진길을 걸었는데, 이 대학교에서 보도사진을 배울 때에 강사를 맡은 분은 모든 학생한테 사진기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던 터라 그야말로 빈털털이였는데, 아버지가 예전에 쓰시다가 망가져서 집안 어디인가를 뒹굴거리던 낡은 자동사진기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서 낡고 망가진 사진기를 찾았습니다. 사진관에 수리를 맡기니 한 주쯤 걸리고 삼만 원이 든다 했습니다. 다음 수업에는 사진기를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1회용 사진기를 사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듬주에 두 번째 수업에 들어가 보니, 모두들 번들거리며 큼지막한 사진기를 가지고 옵니다. 1회용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저 하나뿐이기도 했으나, 집에서 찾아내어 수리를 맡긴 낡고 값싼 자동사진기를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무렵 필름카메라는 수동사진기에서 전자동사진기로 크게 바뀌던 터라, 수동사진기를 쓰는 사람은 전자동사진기 앞에서 잔뜩 주눅들곤 했습니다. 까맣고 커다란 전자동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거나 큰 가방에 담고 작은 필름사진기를 비웃는 사람도 꽤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살림에 백만 원을 웃도는 사진기를 장만할 돈이 없을 뿐더러, 백만 원이 웃도는 값은 몸통 값일 뿐이요, 렌즈를 따로 사자면 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소리를 듣고는 야코가 죽었습니다. 1998년에 한겨레신문을 230부(하고 스포츠신문·서울신문 곁들여 모두 260부) 남짓 돌리면서 신문배달 일삯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을 받는데, 이 가운데 십육만 원을 적금으로 넣고 남은 십사만 원으로는 몇 해를 아무 데도 돈을 안 쓰고 모은들 꿈조차 꿀 수 없는 전자동사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장 값싸게 살 만한 수동사진기인 미놀타 엑스300마저 십삼만 원을 주어야 했으니, ‘내가 사진을 배우겠다고 나선 일은 참 턱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사진기를 장만한다 하더라도 필름을 사야 합니다. 신문사지국 작은 방에 얹혀 지내는데 암실은커녕 현상하거나 인화할 장비조차 살 돈이 없습니다. 사진관에 현상과 인화를 맡겨야 하는데, 가장 싼 필름을 알아보아 한 통에 천 원짜리를 어찌저찌 찾기는 했는데, 한 통을 현상·인화 하려면 칠천 원쯤 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 대학교 강의실에서 값비싼 사진기를 아무렇지 않게 장만해서 값비싼 필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 웃음소리를 듣기가 몹시 거북했습니다. 이들은 으레 뒷자리에 앉고, 저는 맨 앞자리에 앉습니다. 나는 1998년 이해에 신문방송학과 모든 강의를 다 듣고 대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 모든 강의를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으려 했습니다. 등록금은 너무 비쌌고 대학 강의란 덧없다고 느꼈으나, 그만두기 앞서 ‘혼자 책을 읽어서는 알거나 배우기 힘든’ 실기수업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보도사진 강의를 들었어요. 이때에 보도사진 강사를 맡은 분은 무척 고맙게도 나처럼 1회용 사진기를 쓰거나 아주 싸구려인 낡은 자동사진기를 가진 사람한테 힘이 되는 말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이 미국에서 사진을 배우던 일을 되새기면서, “미국 사진기자는 싸구려 자동사진기로도 특종을 찍지만, 한국 사진기자는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지고 멀리서 망원으로 싸구려 사진을 찍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싸구려 자동사진기를 가진 미국 사진기자는 취재원 코앞으로 다가와서 사진을 찍지만,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진 한국 사진기자는 멋없는 풍경 비스무레한 사진만 수없이 쓰며 필름을 버린다고 덧붙였어요.

 보도사진 강의는 한 학기로 끝납니다. 1998년 가을에는 따로 사진 강의가 없습니다. 더 들을 만한 강의를 찾을 수도 없기에 1998년 12월에 휴학계를 냅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학교 도서관과 학교 앞 새책방과 서울 시내 헌책방을 쏘다니며 혼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1999년 여름에 교육책과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에 영업자로 뽑혀 들어갑니다. 이듬해에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로 옮기는데, 다른 출판사 사장님이 저한테 큰 선물을 하나 해 줍니다. 제가 쓰는 값싸고 낡은 사진기를 보시더니 “얘야, 아무리 그 사진기로 사진을 훌륭히 찍는다 하더라도 장비가 뒷받침이 안 되면 안 된다. 앞으로는 네가 돈을 더 벌어서 더 나은 장비를 갖추더라도, 이제부터 십 년 동안 쓸 사진기를 하나 사 줄 테니까, 나중에 우리 회사를 그만두면 받을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이 사진기를 써라.” 하고는 캐논 이오에스 5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사지국보다 일삯을 많이 받았습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자로 일하면서 62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30만 원은 적금으로 떼고 32만 원을 내 몫으로 썼습니다. 신문사지국을 헤아리면 곱배기를 적금으로 부으면서도 살림돈은 곱배기로 남습니다. 그래도 새 사진기를 장만하기는 벅차요. 사진기를 선물해 주신 새 출판사 사장님은 일삯을 100만 원 주었습니다. 이제 100만 원 가운데 50만 원은 적금으로 부으며 50만 원을 살림돈으로 삼았고, 다달이 십만 원 안팎을 더 덜어 그러모은 다음 새 전자동사진기에 걸맞을 렌즈를 장만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해 손에 익은 사진기가 좋았지만, 차츰 새 사진기에 익숙해집니다. 사진기가 두 대가 되어, 하나는 빛깔사진을 찍기로 하고 하나는 흑백사진을 찍기로 합니다. 이제 막 새 사진기를 얻었기에 이무렵에는 ‘L렌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퍽 값싼 렌즈만 쓰다가 28-105미리 엘렌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이 렌즈를 한 번 빌려서 몇 장 찍고 보니 ‘온누리가 달라 보였’어요.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나 같은 사람들이 제아무리 값싼 사진기로 용을 쓰고 애를 쓰더라도, 돈이 있는 사람은 이런 장비를 손쉽게 턱하니 장만해서 내가 용쓰고 애쓴 사진을 어렵잖이 찍을 수 있구나.’

 그렇지만, 사진은 장비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몸으로 찍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지, 현장에는 없되 값진 사진기를 갖춘 사람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넉넉한 돈으로 장만할 수 있는 더 나은 장비가 있을지라도, 나 스스로 어떤 사진을 어디에서 찍으려 하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기를 쥐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고, 사진기를 내려놓을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제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예나 이제나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헌책방으로 취재를 나오는 기자들을 만납니다. 이들 신문사 기자나 잡지사 기자는 캐논 이오에스 5번보다 훨씬 빼어나다는 몸통에다가 갖가지 값진 엘렌즈를 붙여서 사진을 찍습니다. 기자들이 헌책방을 취재한다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불길이 치솟습니다. 이들 기자는 여느 때에는 헌책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헌책방을 다니지도 않으며,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를 마음으로 아로새기지도 않습니다. 슥 한 번 둘러보며 ‘그럴듯한 그림’을 신나게 만들어 냅니다. 값진 사진기와 장비와 렌즈는 ‘몸으로 제 사진감을 겪거나 치르거나 만나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무척 빼어나다 싶은 그림을 손쉽게 선물해’ 줍니다.

 짧으면 5분이나 10분, 길면 30분쯤 ‘풍경 스케치’를 끝내는 사진기자가 돌아가고 난 자리에서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아픈 속을 달랩니다. ‘그래, 저들은 내가 이룰 수 없는 멋져 보이는 풍경 스케치를 놀라운 장비로 놀랍게 만들겠지. 내 사진기로도 어찌저찌 하면 틀림없이 나 또한 사람들한테 멋지게 보일 만한 풍경 스케치를 이룰 수 있는지 몰라. 그렇지만, 나는 풍경 스케치가 싫어.’

 필름을 마련하고 현상·인화를 하면서 다달이 십만 원 남짓 따로 모으려던 돈이 좀처럼 모이지 않습니다. 인화한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스캐너를 장만하니 목돈이 쉽지 않습니다. 두 해만에 드디어 ‘헌 엘렌즈’ 하나 살 돈이 모입니다. 그러고 또 한 해 다시금 푼푼이 돈을 모아 값싼 미놀타 엑스300을 캐논 에이이 1번으로 바꿉니다. 필름을 긁는 스캐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거듭 돈을 추스르며 한 해 반이 지나 다른 스캐너를 장만했고, 다시 한 해 반이 지난 뒤에 캐논 9900에프 스캐너로 바꿉니다. 이러는 동안 몇 차례 사진기를 도둑맞아 적금을 깨서 사진기와 렌즈를 다시 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를 잃었을 때에는 이제 적금이 하나도 남지 않아 까마득했습니다. 그래도 나보고 사진길을 멈추지 말라는 고마운 뜻인지, 형이 살림돈을 보태 주어 디지털사진기로 캐논 450디를 마련하고, 고운 사진벗이 니콘 에프 삼번을 빌려줍니다.

 이리 되든 저리 되든 사진기를 쓰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고서야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내가 장만하든 남이 빌려주든, 누군가는 적잖이 돈을 치러 사진기를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붓이나 연필이나 물감하고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과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종이값이나 연필값은 사진기값하고 대면 아주 싸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이값이나 연필값이 참말 싼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값조차 비싸고 벅찹니다. 있는 살림에는 파노라마사진기마저 대수롭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 몇 장 장만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종이 몇 장에 글조각 끄적일 겨를을 어렵사리 마련합니다. 있는 살림에는 값진 사진기를 수월히 장만할 수 있고, 이곳저곳 마음껏 돌아다니며 온갖 모습을 담기 마련입니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더 나은 장비가 있고, 더 나은 장비는 틀림없이 더 빼어난 ‘풍경 스케치’를 베풀어 줍니다. 안젤 아담스가 빚은 사진을 십삼만 원짜리 수동사진기로 빚기란 힘들 뿐 아니라, 빚을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이래저래 따라해 볼 수 있는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값싼 사진기로는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는 값진 사진기로 빚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진은 낳지 못합니다.

 사진기는 ‘더 나은 장비가 빚는 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장비가 아닙니다. 연필과 종이는 ‘더 좋은 연필과 종이로 빚은 더 놀라운 글이나 그림’을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연필과 종이가 아니에요.

 1회용 사진기로는 1회용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는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신나게 찍으면 돼요. 내 삶이 부잣집 사람들 삶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내 즐거우며 아름다울 길을 찾는 삶이라면, 내 사진은 내 깜냥껏 가장 즐거우며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아름다운 사진을 찾는 사진삶이 되면 됩니다.

 돈이 없으니, 돈이 없는 대로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합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하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장비’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내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자전거’를 장만하지 않듯, 나는 내가 타고 다닐 가장 알맞으면서 괜찮은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닙니다. 돈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삶에 맞추는 돈입니다. 돈에 따라 꾸리는 삶이 아니라, 삶에 따라 마련해서 쓰는 돈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쓰라고 하면 됩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쓰면 됩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더 빼어나다는 장비를 홀가분하게 장만하면 됩니다. 사랑을 따스히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을 따스히 나누면서 내 삶을 누리면 됩니다.

 좋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다는 장비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나쁘거나 더 훌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우리 집 아이가 입는 옷은 거의 모두 얻어다 입힙니다. 아이 어머니가 뜨개한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이는 어느 옷을 입어도 참 어여쁩니다. 아이 아버지는 날마다 아이 옷가지를 손빨래하면서 아이가 기쁘게 입고 예쁘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값싼 사진기를 쓰든 값진 사진기를 쓰든, 저마다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가장 사랑스레 뻗는 손으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값진 사진기로는 참 훌륭하다 싶은 그림이 태어날 테고, 값싼 사진기로는 참 아리땁다는 이야기가 태어나겠지요.

 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보다 십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에 한결 잘 보일는지 몰라요. 삼천 원짜리 고무신을 신을 때보다 십만 원짜리 운동신을 신을 때에 훨씬 잘 달릴는지 몰라요. 온누리를 더 잘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수 있고, 달리기를 더 잘 하면 더 기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며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내 삶자락을 예쁘게 북돋우며 고운 넋으로 어여삐 살아가고 싶습니다. 1등이나 2등이나 3등이나 아무 뜻이 없습니다. 더 좋아 보이는 사진이란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마냥 바라보면서 좋은 모습이라면 사진으로 안 담고 내 눈과 내 마음에 담으면 그예 좋습니다. 내가 찍었되 내가 다시 보아도 참 좋아서 틈틈이 다시 보는 사진이라면,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도 좋지만, 내가 사진으로 찍은 그곳을 틈틈이 다시 찾아가서 맨눈으로 실컷 들여다보아도 좋습니다. 사진으로 찍힌 모습은 늘 한 모습이고, 맨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찍는 모습은 늘 새삼스러운 무지개빛 모습입니다.

 돈이 있으면 한결 돋보인다 싶은 사진을 쉽고 빠르게 얻습니다. 돈이 없거나 적으면 한껏 돋보일 사진을 땀과 사랑과 믿음을 들여 천천히 얻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입니다. 어느 쪽 사진이 더 낫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 온누리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는 사람이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 늘 살림돈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 하루아침에 값진 사진기를 쉬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라자기에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돈을 그러모아 값진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자란 나날을 보냈기에, 내가 그리는 값진 사진기를 꿈꾸며 여러 해에 걸쳐 돈을 그러모으며 지내다 보니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내가 꿈꾸던 사진기보다 훨씬 기능이 나아진 새 사진기’가 나오기도 하더군요. 그래, 사진기란 돈으로 장만합니다. 돈으로 장만하는 사진기는 한두 해 쓰고 버리거나 바꿀 사진기가 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장만하든 선물로 받아서 쓰든, 내가 손에 쥘 사진기는 이제부터 쉰 해쯤 고이 돌보면서 쓸 사진기가 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츠바랑! 10 한정판 - 매일이라는 선물을, 오늘도 열어본다.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가 담는 웃음, 만화가 잃는 재미
 [만화책 즐겨읽기 37]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10)》



 일본에서는 진작에 나온 《요츠바랑!》 열째 권이지만, 한국에서는 아홉째 권이 나온 지 한 해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열째 권이 겨우 나옵니다. 열째 권이 나오면서 ‘스티커 선물 담긴 한정판’이 나란히 나옵니다. 스티커 없는 《요츠바랑!》 열째 권은 4800원이고, 스티커 담긴 한정판은 9000원입니다. 저는 만화책방에 가서 스티커 담긴 한정판으로 장만합니다. 요츠바 모습이 담긴 자그마한 스티커가 여럿 담기는데, 스티커 값으로 퍽 비싸다 할 만할 수 있고, 그럭저럭 괜찮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정판으로 내놓기보다 스티커만 따로 팔아도 좋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스티커 때문에 만화책이 더디 나왔는지 모르며, 더디 나오는 바람에 스티커를 끼워넣은 한정판을 선물처럼 내놓았는지 모릅니다.


- “모양은 형편없지만 꽤 맛있네.” “형편없다는 말 하지 마요. 또 삐칠걸.” “아하하하, 형편없어!” “아, 괜찮아? 네가 만들었다구.” (63쪽)


 지난 2004년에 《요츠바랑!》 첫 권이 옮겨졌고, 2011년에 얼째 권이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요츠바랑!》을 그린 아즈마 키요히코 님은 《아즈망가 대왕》(2002)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오사카 만박》이라는 이름을 붙여 ‘아즈망가 대왕 열 돌’을 기리는 만화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귀엽다면 귀여워 보이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요, 예쁘다면 예뻐 보이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입니다.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아이들이라 한다면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라 할 만합니다. 재미나게 볼 수 있고, 즐겁게 여러 번 들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부터 2011년으로 흐르는 동안 《요츠바랑!》은 그닥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동안 일곱 해가 흘렀는데 요츠바는 예나 이제나 똑같은 어린이입니다. 요츠바 둘레 어른 또한 이제나 저제나 똑같은 어른입니다. 키도 안 크고 나이도 안 먹는 듯한 요츠바이고, 둘레 어른 또한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이나 무언가 하루하루 새롭게 거듭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다를 테니, 한결같이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언제나 싱그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살가이 이어갈 꿈으로 보듬을 수 있어요.


- “요츠바도 사진 찍고 싶어! 이거(콘센트 꽂이) 카메라! 찰칵. 찰칵.” (75쪽)
- “코이와이 씨, 디카 없어요? 왜요? 요츠바 찍어 줘야죠.” “음? 음. 사진이 없어도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싶었지. 근데 꽤나 잊게 되더라구. 사진이 있으면 떠오르지만.” (102쪽)


 사진이란 사진기로도 찍지만 마음으로도 찍습니다. 종이나 파일에 담겨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종이나 파일에 담았어도 마음에 담기지 못했으면 사진이 되지 못합니다. 저마다 웃고 울며 부대낀 삶을 담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사진이지, 문화나 예술이나 추억이나 기억이 되어야 사진이지 않아요.

 예쁘게 그리거나 아름다이 보여준대서 그림이나 만화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을 부비며 웃고 떠들며 복닥이는 삶을 오롯이 아로새길 때에 비로소 그림이나 만화입니다.

 만화책 《요츠바랑!》은 티없이 복닥이면서 해맑게 어우러지는 사람들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로 즐거이 태어났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권수가 늘면서, 다섯째 권이 나오고 일곱째 권이 나오고 아홉째 권이 나오면서, 또 이참에 열째 권이 나오면서, 자잘한 이야기를 퍽 길게 늘어뜨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자잘한 이야기에서 싱그러운 이야기가 피어나고, 자잘하다는 이야기에서 웃음나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자잘하다고 얕보는 이야기에서 외려 눈물나는 이야기가 흐르며, 자잘하다고 지나치는 이야기에서 참으로 어여쁘구나 싶은 이야기를 깨닫습니다.

 자잘한 이야기이기에, 곧 작은 이야기이기에, 그러니까 흔하며 너른 이야기이기에 따로 글로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습니다. 거룩하거나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닌 작은 이야기인 까닭에 글·그림·만화·사진이 빛납니다. 놀랍거나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아닌 수수한 이야기인 터라 글이든 그림이든 만화이든 사진이든 사랑스럽습니다.


- “너도 좀 먹어 봐.” “음, 음, 음. (부들부들부들) 하, 맛있다!” “거짓말, 부들부들 떨었잖아.” (77쪽)


 요츠바가 나이를 먹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간다 해서 더 재미나게 된다든지 한결 사랑스러이 새로워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째 권부터 열째 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재미나 보람이나 기쁨이나 웃음이나 눈물이 좀 고이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하루 스물네 시간만 하더라도 책 몇 권으로 써도 될 만큼 숱한 이야기감입니다.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에 이야기책 한 권씩 엮어 한 해에 삼백예순다섯 가지 이야기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크는 아이를 부대끼는 동안 날마다 새삼스러운 모습을 마주하고, 날마다 새삼스레 함께 크는 ‘어른인 내 모습’을 찾아봅니다.

 만화책 《요츠바랑!》은 어린이 요츠바뿐 아니라 요츠바를 둘러싼 어른과 동무들이 함께 크고 함께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고 우는 이야기를 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목에서 보자면, 권수가 늘수록 ‘이 만화에 무슨 이야기를 담으려 했는가’를 슬그머니 잊지 않느냐 싶습니다.


- “담보, 놀자! 저녁까지.” “어어, 뭐 하고 놀까?” “공원 가자!” (217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고픈 요츠바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며 곯아떨어져도 신나는 요츠바입니다. 어린이 요츠바는 마음껏 뛰놀아야 하고, 요츠바하고 동무하는 여러 아이들도 다 함께 뛰놀아야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요츠바처럼 뛰어놀지 못합니다. 한창 뛰어놀다가도 요츠바한테 먹이고 어른 스스로 먹을 밥을 차려야 합니다. 빨래를 하고 집안을 쓸고 닦으며 옷을 마련해야 합니다. 살림돈을 벌고 살림살이를 여밉니다. 아이를 씻기고 어른도 씻어야 합니다. 밥을 먹었으니 똥오줌을 누어야 하고, 집식구나 동무나 피붙이들하고 얽힌 일, 이를테면 생일이든 돌잔치이든 환갑이든 혼례잔치이든 함께해야 합니다. 어른이 된 사람은 어린이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기만 하지 못합니다.

 어른이 되어 마냥 놀기만 할 수 없는 삶이 슬프지는 않습니다. 밥을 차리면서 밥을 하는 재미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맛봅니다. 차린 밥을 맛나게 먹는 아이나 집식구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집식구들 하루살이를 돌아봅니다. 빨래를 함께 개면서 집살림이나 집일을 함께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이고, 어른은 어른입니다. 어린이한테는 어린이 삶이 있고, 어른한테는 어른 삶이 있습니다. 서로 함께 부대끼거나 복닥이면서 좋은 이웃이자 동무이자 살붙이입니다.


- “거짓말쟁이 벌레가 속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데?” “저절로 거짓말을 해. 에헤. 그러니까 요츠바, 진짜는 착한 아이인데, 그 녀석이 멋대로. 맞아, 거짓말쟁이 벌레 때문에, 거짓말쟁이 벌레 때문입니다.” “자, 요츠바, 좀 나갈까.” “어디 가?” (151쪽)


 앞으로 《요츠바랑!》 열한째 권이 나온다면, 열째 권 흐름하고 이어질는지, 아니면 거듭나거나 새롭게 다시 선보일는지 궁금합니다. ‘티없는 웃음’이라는 이름만 내밀며 이 흐름을 이을는지, ‘티없는 웃음이 태어나는 삶’을 곱씹으면서 한결 깊거나 넓게 사랑을 담아낼는지 궁금합니다.

 꼭 열 권 스무 권 서른 권을 내야 좋거나 훌륭하거나 재미난 만화이지 않습니다. 네 권으로 마무리지은 《아즈망가 대왕》이 네 권으로 끝났기에 너무 아쉬울 수 없습니다. 네 권 아닌 다섯 권이나 여섯 권으로 마무리지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만화로 선보이며 나누려는 재미는 참말 작은 데에 있습니다. 만화로 함께하는 즐거움은 참으로 자잘한 곳에 있어요. 이 작은 곳을 사랑한 만화책 《요츠바랑!》이라면 첫마음을 곱게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 자잘한 구석을 아끼는 만화책 《요츠바랑!》이라면 ‘자잘한 구석 이야기’가 무엇이었던가 하고 가만히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4344.4.22.쇠.ㅎㄲㅅㄱ)


― 요츠바랑! 10 (아즈마 키요히코 글·그림,금정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3.25./4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풀 머리카락


 밥을 먹던 아이가 어느 만큼 배가 부른지 놀려고 한다. 놀려고 하면서 아버지 등을 올라탄다. 밥먹는 사람 등에 올라타면 안 된다고 옆지기가 나무라지만 아이는 싱긋빙긋 웃으면서 아이 머리까지 붙잡고 더 기어오른다. 몇 차례 더 나무라는 소리를 듣고는 내려온다. 밥을 다 먹고 밥상을 치운다.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는데 옆지기가 뒤에서 내 머리카락에 밥풀이 잔뜩 붙었다고 말한다. 나는 머리카락이 어떤지 저떤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기저귀삶이를 해야 한다. 오늘은 텃밭에 골을 내어 씨앗을 심어야 한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난 때부터 밥물 안치고 쑥 뜯고 국 끓여 밥 차리고 하면서, 이렇게 보내느라 쉴 겨를뿐 아니라 뭐 다른 일을 할 틈이 없다. 날마다 집안을 쓸고 닦아야 먼지가 적은 줄은 알지만, 좀처럼 날마다 쓸고 닦지를 못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이것저것 집일을 더 하다가 머리카락을 묶어야겠다 싶어 왼손으로 추스르다가 비로소 끈적한 뭔가가 뭉친 줄을 깨닫는다. 머리카락에 물을 묻혀 비비다가 그냥 머리카락을 북 잡아뜯는다. 언제 하나씩 물을 묻혀 떼어내겠나. 머리카락을 잘라서 떼어야지. 아이가 등을 타고 놀며 날마다 얼마나 많은 머리카락이 뜯기는지 모른다. 아이는 알까? 알 수 없겠지. 내가 아이였을 때는 어떠했을까.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머리카락을 얼마나 뜯어먹으며 컸을까. (4344.4.22.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근씨와 책읽기


 지난해 ‘아주 어설퍼’ 텃밭은 마감하고, 올해 ‘덜 어설퍼’ 텃밭을 꿈꾼다. 조그마한 텃밭에 거름 뿌리고 풀 뽑은 뒤 틈틈이 갈아엎어 때를 기다렸다. 밤나절에 너무 춥지 않은 날이 되면 씨앗을 심자고 생각했다.

 드디어 물골과 함께 고랑을 만든다. 이듬날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하늘을 보니 비가 꽤 올 듯하다. 조그마한 텃밭이라지만 혼자 집일을 맡는데다가 이오덕학교에서 날마다 한 시간씩 아이들이랑 책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밥벌이를 하는 글도 써야 하니까, 밭일을 하루 사이에 한꺼번에 마무리짓지는 못한다. 오늘은 반쯤만 골을 만들어 씨앗을 심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쯤 만든 골조차 씨앗을 다 심지 못한다. 밭에서 씨앗을 함께 심던 아이가 졸립고 힘들다며 어서 들어가자고 자꾸 보채는 바람에 작은 세 골씩 이십일무와 당근을 심는다. 이십일무는 이름 그대로 스무 날만에 알이 굵어질까 궁금하다. 당근은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이십일무는 참말 스무 날만에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하다.

 씨앗을 심을 때면 언제나 새삼스레 느끼지만, 씨앗은 참으로 작다. 스무 날만에 큰다는 이십일무는 씨앗이 꽤 굵다 할 만하다. 어쩌면, 스무 날만에 크니까 씨앗이 이만큼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당근은 이십일무보다 훨씬 크게 알이 굵을 텐데, 석 달이 걸려 굵는 만큼 이십일무보다 씨앗이 작겠지. 그런데 참 작다. 하늘거리는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얹으면서 이 작은 씨앗에서 얼마나 작은 싹이 트고 얼마나 작은 뿌리가 내릴는지 지켜보고 싶다. 지난해에 무씨를 심을 때에도 무씨가 이렇게 작았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지만, 당근씨는 더 작고 훨씬 가볍기까지 하구나.

 작은 아이가 작은 손바닥을 펼쳐 당근씨를 올려놓고 작은 구멍에 쏙쏙 넣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당근씨가 이만큼 작다지만, 이 작은 텃밭에서 자라던 갖은 들풀 또한 들풀씨를 냈을 때에 요 들풀씨는 훨씬 작겠지. 사람이 먹는 열매나 푸성귀쯤 되니까 씨앗이 제법 굵거나 크겠지만, 사람이 따로 먹지 않는 열매나 푸성귀라면 자잘한 모래알갱이만 한 씨앗이 아닐까 싶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람을 빚는 씨앗 또한 몹시 작다. 사람을 빚는 씨앗은 더없이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사람 몸뚱이는 얼마나 크게 자라는가. 들풀이나 푸성귀와 달리 사람은 어른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니까 씨앗 또한 더 작다 할는지 모르리라.

 착한 넋이나 고운 얼이나 참다운 마음을 일구는 빛줄기가 서린 책이란 참으로 작다. 참으로 작은 책에 더할 나위 없이 작은 빛줄기가 서린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빛줄기를 아주 조금씩 받아먹으면서 천천히 착하거나 곱거나 참다이 살아간다. (4344.4.22.쇠.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1-04-23 23:4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프라스틱 박스에 상추씨 심었어용^^

파란놀 2011-04-24 08:35   좋아요 0 | URL
싱싱하게 자라나서 즐겁게 맛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