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씨와 책읽기


 지난해 ‘아주 어설퍼’ 텃밭은 마감하고, 올해 ‘덜 어설퍼’ 텃밭을 꿈꾼다. 조그마한 텃밭에 거름 뿌리고 풀 뽑은 뒤 틈틈이 갈아엎어 때를 기다렸다. 밤나절에 너무 춥지 않은 날이 되면 씨앗을 심자고 생각했다.

 드디어 물골과 함께 고랑을 만든다. 이듬날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하늘을 보니 비가 꽤 올 듯하다. 조그마한 텃밭이라지만 혼자 집일을 맡는데다가 이오덕학교에서 날마다 한 시간씩 아이들이랑 책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밥벌이를 하는 글도 써야 하니까, 밭일을 하루 사이에 한꺼번에 마무리짓지는 못한다. 오늘은 반쯤만 골을 만들어 씨앗을 심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쯤 만든 골조차 씨앗을 다 심지 못한다. 밭에서 씨앗을 함께 심던 아이가 졸립고 힘들다며 어서 들어가자고 자꾸 보채는 바람에 작은 세 골씩 이십일무와 당근을 심는다. 이십일무는 이름 그대로 스무 날만에 알이 굵어질까 궁금하다. 당근은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이십일무는 참말 스무 날만에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하다.

 씨앗을 심을 때면 언제나 새삼스레 느끼지만, 씨앗은 참으로 작다. 스무 날만에 큰다는 이십일무는 씨앗이 꽤 굵다 할 만하다. 어쩌면, 스무 날만에 크니까 씨앗이 이만큼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당근은 이십일무보다 훨씬 크게 알이 굵을 텐데, 석 달이 걸려 굵는 만큼 이십일무보다 씨앗이 작겠지. 그런데 참 작다. 하늘거리는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얹으면서 이 작은 씨앗에서 얼마나 작은 싹이 트고 얼마나 작은 뿌리가 내릴는지 지켜보고 싶다. 지난해에 무씨를 심을 때에도 무씨가 이렇게 작았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지만, 당근씨는 더 작고 훨씬 가볍기까지 하구나.

 작은 아이가 작은 손바닥을 펼쳐 당근씨를 올려놓고 작은 구멍에 쏙쏙 넣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당근씨가 이만큼 작다지만, 이 작은 텃밭에서 자라던 갖은 들풀 또한 들풀씨를 냈을 때에 요 들풀씨는 훨씬 작겠지. 사람이 먹는 열매나 푸성귀쯤 되니까 씨앗이 제법 굵거나 크겠지만, 사람이 따로 먹지 않는 열매나 푸성귀라면 자잘한 모래알갱이만 한 씨앗이 아닐까 싶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람을 빚는 씨앗 또한 몹시 작다. 사람을 빚는 씨앗은 더없이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사람 몸뚱이는 얼마나 크게 자라는가. 들풀이나 푸성귀와 달리 사람은 어른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니까 씨앗 또한 더 작다 할는지 모르리라.

 착한 넋이나 고운 얼이나 참다운 마음을 일구는 빛줄기가 서린 책이란 참으로 작다. 참으로 작은 책에 더할 나위 없이 작은 빛줄기가 서린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빛줄기를 아주 조금씩 받아먹으면서 천천히 착하거나 곱거나 참다이 살아간다. (4344.4.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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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23 23:4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프라스틱 박스에 상추씨 심었어용^^

숲노래 2011-04-24 08:35   좋아요 0 | URL
싱싱하게 자라나서 즐겁게 맛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