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이른버스



  마을앞을 지나는 첫 시골버스를 타면, 고흥읍으로 모여서 논밭일을 가려고 줄서는 베트남 이웃일꾼을 만난다. 으레 스무 사람쯤 줄서는데, 다들 첫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에 모이고, 다시 다른 시골버스를 타고서 어느 논밭으로 간다.


  오늘은 셈겨룸(입시)을 치르는 날이라고 한다. 어제부터 마을알림으로 시끄럽다. 영어듣기평가를 할 적에는 모든 길을 막고서 시골버스도 안 다닌다고 한다. 문득 참 유난을 떤다고 느낀다. 이 나라에서 푸른씨를 쳐다보거나 헤아리는 때는 고작 셈겨룸에서 영어듣기평가로구나. 이때를 빼고서 한 해 가운데 하루조차도 푸른씨 목소리를 안 듣고서 그저 돌림질(학원뺑뺑이)에 가두는 수렁이니까.


  왜 여느때에는 어린씨랑 푸른씨 목소리를 안 들을까. “왜? 왜? 왜?” 하고 물으려다가 그만둔다. 곰곰이 보면, 나라지기도 나라일꾼(의원·공무원)도 어린이책이나 푸른책을 곁에 안 두기 일쑤이고, 아예 모르기도 한다. 그림책을 읽는 나라지기가 있는가?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어린이책과 푸른책을 틈틈이 읽으면서 어린이와 푸름이하고 말을 섞는 나라일꾼은 몇이나 있는가.


  오늘은 지난해보다 덜 얼었지 싶다. 어쩐지 올해 이맘때 하늘은 예전보다 미움과 걱정이 한풀 꺾였구나 싶다. 우리 마음은 늘 날씨로 모여서 드러난다. 포근히 사랑하는 마음이면 다 푼다. 매섭게 노려보거나 겨냥하거나 손가락질하면 온누리가 들썩들썩 아프다. 나는 열한달 열셋쨋날인 오늘도 맨발고무신이다. 아직 긴바지를 입을 만큼 바람이 안 차고, 버선을 꿸 만큼 길이 얼지 않았다. 누구나 스스로 따스하게 마음을 다스리면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어도 안 추울 만하다.


  천천히 걷히는 구름을 바라보며 걷는다. 순천을 거쳐서 돌고돌아 창원으로 나아간다. 흔들대는 버스에서 글을 쓴다. 책을 셋 챙긴다. 창원대학교에서 이야기를 펴는 하루이다. 이야기꽃을 마치면 창원책집이며 마산책집에 들러서 긴저녁과 긴밤을 책노래로 누리려고 한다.


  뿌우웅 하면서 칙폭이가 들어온다. 이제 자리에 앉으면 눈을 조금 붙여야겠다. 아무쪼록 온누리가 어린씨를 첫째로 마주하고서, 푸른씨를 나란히 바라보려는 마음이기를 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린씨랑 푸른씨 곁에 있어야 참하고 착하게 모두 바꾸고 가꾸고 일군다. 어느 길이든 너랑 내가 함께 낸다. 함께 걷고 함께 쉬고 함께 노래하는 길이다. 2025.11.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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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흄fume (조리흄)



흄 : x

조리흄 : x

fume : 1. (화가 나서) 씩씩대다 2. 연기[매연]를 내뿜다

cooking oil fume/COF : 음식 조리시 나오는 유독 증기

cooking oil fume : 식용유 증기

ヒュ-ム : x



영어 ‘fume’을 우리가 굳이 써야 하지 않습니다. 영어 ‘fume’하고 한자말 ‘조리(調理)’를 붙인 ‘조리 흄’은 ‘cooking oil fume’을 옮긴 낱말인 듯싶습니다. 밥을 하면서 나오는 매캐한 김이라고 할 적에는 ‘밥먼지’로 옮길 만합니다. ‘밥티·밥티끌’로 옮겨도 되고요. ‘부엌먼지’나 ‘부엌티·부엌티끌’이라 해도 되어요. ㅍㄹㄴ



조리실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와 매연을 조리흄(cooking fumes)이라고 해요

→ 부엌에서 나오는 김과 먼지를 밥먼지라고 해요

→ 부엌에서 생기는 김과 먼지를 밥티라고 해요

《미래 세대를 위한, 지구를 살리는 급식 이야기》(민은기·배성호, 철수와영희, 2024)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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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식별 識別


 식별 능력을 지니다 → 가릴 수 있다 / 알아본다 / 알아차린다

 흐릿하게나마 식별이 가능할 정도였다 → 흐릿하게나마 읽을 수 있다

 얼굴 같은 것이 식별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 얼굴을 알지는 않지만

 식별할 방법이 없어서 → 알 길이 없어서 / 읽을 길이 없어서

 항공기의 종류를 식별할 수 있는 → 날개를 가려낼 수 있는


  ‘식별(識別)’은 “1. 분별하여 알아봄 2. [군사] 방공 및 대잠수함전에서 탐지된 물체가 적인지의 여부를 결정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리다·가려내다·가려보다’나 ‘맡다·눈치채다·뜯어보다·티·티내다’로 다듬습니다. ‘알다·앎·앎길’이나 ‘알아내다·알아맞히다·알아보다·알아차리다·알아채다’로 다듬고요. ‘헤아리다·살피다·잡아채다·채다·톺다’나 ‘읽다·읽어내다·읽꽃·읽빛’으로 다듬을 만해요. ‘글읽기·글읽눈·글읽꽃’이나 ‘삶읽기·삶눈·삶눈길·삶눈빛·살림읽기·살림눈’으로 다듬어도 어울려요. ‘뜻매김·뜻붙이·뜻새김·뜻찾기·뜻풀이·뜻읽기’나 “뜻을 매기다·뜻을 붙이다·뜻을 새기다·뜻을 찾다·뜻을 풀다·뜻을 읽다”로 다듬어도 됩니다. ㅍㄹㄴ



나물을 먹을 때면 잎의 맛으로 식물을 식별하곤 해요

→ 나물을 먹을 때면 잎맛으로 풀을 가리곤 해요

→ 나물을 먹을 때면 잎을 맛보며 풀을 헤아려요

《식물의 책》(이소영, 책읽는수요일, 2019) 42쪽


총 85가지의 서로 다른 소음을 식별해내었다

→ 모두 85가지 서로 다른 소리를 가려내었다

→ 85가지 서로 다른 소리를 읽어내었다

《바다 생물 콘서트》(프라우케 바구쉐/배진아 옮김, 흐름출판, 2021) 81쪽


피아식별을 마치고 뒤늦게 죄의식의 꼬리치기를 할 때면

→ 낯익히기를 마치고 뒤늦게 부끄러워 꼬리치기를 할 때면

→ 너나보기를 마치고 뒤늦게 고개꺾고 꼬리치기를 할 때면

→ 나너알기를 마치고 뒤늦게 뉘우치고 꼬리치기를 할 때면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나호선, 여문책, 2022)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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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이모작 二毛作


 이모작하지 않는 곳 → 두그루 않는 곳

 이모작하는 지역보다 → 그루짓기 마을보다


  ‘이모작(二毛作)’은 “[농업] 같은 땅에서 1년에 종류가 다른 농작물을 두 번 심어 거둠. 또는 그런 방식. 논에서는 보통 여름에 벼, 가을에 보리나 밀을 심어 가꾼다 ≒ 두그루부치기·두그루심기·양그루·양글·양모작”처럼 풀이합니다. ‘그루갈이·그루뜨기·그루짓기’나 ‘두그루·여러그루’로 고쳐씁니다. ‘두그루심기·두그루짓기·두그루부치기’나 ‘여럿짓기·여럿심기·여러그루짓기·여러그루심기’로 고쳐쓰면 되고요. ㅍㄹㄴ



북부 지역에서는 이모작 농사를 합니다

→ 높녘에서는 두그루를 짓습니다

→ 높녘에서는 그루갈이입니다

《다문화 속담 여행》(국제이해교육원, 대교북스주니어, 2010) 114쪽


이모작으로 모내기가 늦을 때는 7월 하순까지 보입니다

→ 여러그루로 모내기가 늦을 때는 일곱달 끝까지 봅니다

→ 그루짓기로 모내기가 늦으면 일곱달 끝무렵까지 봅니다

《긴꼬리투구새우가 궁금해?》(변영호, 자연과생태, 2018) 38쪽


일 년에 두 번 파종하는 이모작 방식으로 키우고 있어요

→ 한 해에 두 벌 심는 두그루짓기를 합니다

→ 한 해에 두 벌 뿌리는 그루짓기를 합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지구를 살리는 급식 이야기》(민은기·배성호, 철수와영희, 2024)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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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잔반 殘飯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을 → 밥집에서 나오는 찌끼를

 잔반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 남은밥을 치우면서

 잔반 없이 비웠다 → 대궁 없이 비웠다


  ‘잔반(殘飯)’은 “1. 먹고 남은 밥 2. 먹고 남은 음식 3. 먹다가 그릇에 남긴 밥 = 대궁”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나머지’나 ‘남은것·남은밥’으로 고쳐씁니다. ‘밥이 남다’나 ‘대궁·대궁밥’으로 고쳐써요. ‘밥쓰레기·밥찌꺼기·밥찌끼’로 고쳐쓸 만합니다. ‘찌꺼기·찌끄러기·찌끄레기·찌끼’로 고쳐써도 어울려요.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잔반(殘班)’을 “집안 세력이나 살림이 아주 보잘것없어진 변변치 못한 양반”으로 풀이하며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파티를 열면 잔반이 잔뜩 생기잖아

→ 잔치를 열면 밥이 잔뜩 남잖아

《아델라이트의 꽃 3》(TONO/반기모 옮김, 길찾기, 2023) 169쪽


내가 완전히 잔반이 되었단 것을 깨달았을 때

→ 내가 아주 남은밥이 된 줄 깨달았을 때

→ 내가 그저 나머지가 된 줄 깨달았을 때

《던전밥 14》(쿠이 료코/김민재 옮김, 소미미디어, 2024) 74쪽


급식실의 잔반 버리는 곳

→ 모둠밥터 남밥 두는 곳

→ 밥터에서 나머지 놓는 곳

《미래 세대를 위한, 지구를 살리는 급식 이야기》(민은기·배성호, 철수와영희, 2024)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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