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행복을 담는 엄마의 카메라 - Family Photography
장화영 글.사진 / 다빈치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사진기와 함께 사랑을 들어 주셔요
 [찾아 읽는 사진책 32] 장화영, 《엄마의 카메라》(다빈치,2007)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무엇보다도 아이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사진 느낌이 확 갈립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앞서 옆지기와 둘이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기를 쥔 내가 옆지기를 어느 만큼 깊으면서 넓은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사진 느낌이 크게 달라져요.

 모델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다큐멘터리를 빚으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모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모델을 얼마만큼 생각하면서 아끼는가에 따라서 사진 느낌이 새록새록 거듭납니다. 다큐멘터리를 빚으며 이야기를 갈무리하려는 사진쟁이는 이녁이 마주하는 사람하고 얼마나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넋과 얼로 손을 맞잡느냐에 따라 사진 이야기가 이모저모 샘솟거나 수그러듭니다.

 사진찍기로 밥벌이를 하지만, 아이를 둘 낳아서 키우는 어머니인 장화영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책 《엄마의 카메라》(다빈치,2007)를 읽습니다. 첫째를 2008년에 낳고 둘째를 2011년에 낳을 살림집에서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엄마의 카메라》라는 책은 ‘집안일과 집밖일에 함께 마음을 쓰는 사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생각하면서 몹시 두근두근 설렜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나오는 사진책을 돌아보면, 어떠한 책이건 ‘집안일은 아예 아랑곳하지 않고 집밖일로 사진기만 쥐는 사람’들 삶과 넋과 말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말에서 “카메라를 들고 아이와 마주했을 때 아이의 눈빛에서 ‘화’를 보기도 하고 ‘슬픔’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 엄마가 아닌 친구가 되려고 노력합니다(9쪽).” 같은 대목을 읽으면서 몹시 반갑고 기쁩니다.

 그렇지만 친구 아닌 엄마가 되어야지요. 엄마로서 아이하고 사랑스러운 살붙이로 지내야지요. 어머니는 어머니이지 동무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이지 벗이 아니에요. 내 아이는 내 아이입니다. 내 아이를 아이 그대로 맞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는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예요. 모두 이분들 자리를 옳게 돌아보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제 어머니한테 바라는 무언가 있다면 ‘어머니가 어머니로 나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지, ‘어머니가 동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사진찍기를 일거리로 삼아서 살아가자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집안일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집안일에 얽매여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집안일은 다른 누군가 도맡아 주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사진기만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기만 헤아리더라도 겨룸에서 밀리거나 다툼에서 쓰러질 테니까, 사진기 아닌 다른 사람이나 자리나 삶을 생각한다면, 한국땅에서는 벌써 ‘두 손 든’ 셈이라 할 만해요.

 사진책 《엄마의 카메라》를 쓴 장화영 님은 “카메라 컬렉터가 아니라 사진이 목적이라면, 너무 기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은 기계 외적 요인(심리적 상태, 의욕, 테마 등)의 역할이 크게 작용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33쪽).”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몇 대목 없습니다. 더군다나 기계에 얽매여서 안 되는 만큼 ‘사진쟁이 일을 하는 어버이 삶’에도 얽매여서는 안 되는 줄을 자꾸 잊습니다.

 270쪽에 이르는 책에서 “엄마 사진기”라는 책이름에 걸맞게 ‘엄마가 손에 쥔 사진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 몹시 드뭅니다. ‘그냥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이야기입니다. ‘계급’은 엄마일는지 모르나, 막상 이야기를 펼칠 때에는 ‘엄마 아닌 남자 사진쟁이’라 할 만합니다. 엄마 자리에 서서 이 땅 수많은 엄마들한테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라든지, 이 땅 숱한 아이들한테 속삭이는 사진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카메라는 사람의 눈과 유사하지만 결코 같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이 선물한 우리의 눈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골라 보는 탁월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해석하는 재미나고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눈에 ‘콩깍지’라는 것이 붙기도 하고 ‘미운 털’이 박히기도 합니다(44∼45쪽).” 같은 이야기는 좋습니다. 참으로 좋은 이야기입니다.

 아쉽다면, 이렇게 좋은 이야기는 ‘엄마 사진쟁이’가 아닌 ‘여느 사진쟁이’ 누구나 느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펼치려고 《엄마의 카메라》를 썼다고 한다면 좀 슬픕니다. 《엄마의 카메라》가 어울릴 뿐 아니라 아름답자면, 어머니로서 아이와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얼마나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이 사진길을 걷는가 하는 이야기가 불거져야 합니다. 더 빼어난 솜씨가 없어도 됩니다. 더 훌륭한 재주가 없어도 됩니다. 사진찍기는 솜씨나 재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솜씨는 있으나 사랑이 없다면, 재주는 빼어나다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면, 사진장비는 값지지만 삶은 값진 길을 걷지 못한다면, 이러한 흐름에서 ‘사진을 찍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이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사진기로 찍지 않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기를 써야겠지요. 그런데 사진기가 있대서 사진을 찍지는 않아요. 사진기는 있으나 사랑이 없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사진기는 없어도 사랑이 있으면 사진을 찍습니다. 다만, 사진기 없이 사랑이 있는 사람은 종이에 뽑을 만한 사진을 얻지는 못해요. 언제나 가슴속으로 아로새기는 사진을 빚고 나누며 즐깁니다.

 사진을 찍겠다고 다짐하거나 생각하는 분이라면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아이라 하든 이웃집 아이라 하든 ‘사진기’라는 장비를 몰라요. 더 나은 사진장비가 되든 무척 값진 사진장비가 되면 아이는 몰라요. 내 자가용이 값싸고 작든 내 자가용이 크며 비싸든 아이는 모릅니다. 아니,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거나 없거나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이는 제 어버이가 반지하에 사는지 아파트에 사는지 시골에 사는지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한테는 사랑이 없으면 젬병입니다. 아이한테 사랑을 나눌 수 없다면 부질없습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끼리도 이야기합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겨레도 뭐도 없다고 합니다. 돈있는 사람끼리 사랑하거나 돈없는 사람끼리 사랑하는 일이란 없어요. 마음이 맞거나 마음을 기울여 서로를 아끼는 사람이 사랑을 합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하고 짝을 짓든, 한국사람이 네팔사람이나 덴마크사람하고 짝을 맺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참으로 사랑하는 넋이면 돼요.

 아마, 어른 가운데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어른이라면 사랑이 왜 사랑인가를 잘 안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러면 아이하고도 똑같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아이하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기계가 아닌 가슴으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아이하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일굴 때에는 기계 아닌 따순 손길로 이야기를 일구어야 합니다. 조리개며 빛이며 기계이며 색온도이며 하나도 마음쓸 일이 없습니다.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인 내가 마음쓸 대목이란 어머니로서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버지로서 아이를 어떻게 믿느냐입니다.

 아무쪼록 사진기라는 기계와 함께 어머니 손길이 듬뿍 밴 사랑을 함께 들어 주셔요. 놀라운 사진이나 돋보이는 사진은 없어도 되니까, 아이하고 오붓한 사랑과 즐거운 믿음을 어깨동무해 주셔요.

 “여러 빛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110쪽).” 같은 말마따나, 날마다 언제나 새로운 아이하고 새 하루를 맞이하는 나날이란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하는 기쁨이자 놀라움입니다. ‘엄마가 나누려는 사랑’보다 ‘사진쟁이인 엄마가 아닌 사진 지식’ 이야기에 너무 치우치고 말아 아쉽습니다만, 앞으로는 ‘엄마 사진쟁이’가 참말로 《엄마의 카메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이야기책 하나 빚어서 나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4.5.20.쇠.ㅎㄲㅅㄱ)


― 엄마의 카메라 (장화영 사진·글,다빈치 펴냄,2007.12.2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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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니까 책읽기


 사람들은 너나없이 바쁩니다.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안 바쁜 사람이 없습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사람들은 저마다 수많은 일을 맡아야 합니다. 온갖 일을 치러야 합니다. 갖은 일을 돌보거나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느긋하거나 한갓지기에 책을 읽는 사람이 더러 있겠지요. 몸이 안 아프거나 돈이 넉넉해서 책을 읽는 사람 또한 있을 테고요. 나한테 돈이나 겨를이 넉넉하기에 읽는 책은 어떻게 스며들며, 나한테 돈이나 겨를이 빠듯하거나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할 때에 읽는 책은 어떻게 파고들까요.

 바쁘거나 힘들기에, 바쁜 틈을 쪼개고 힘든 나날을 바쳐서 읽는 책입니다. 바쁘니까 바쁜 만큼 온갖 일에 마음을 쓰면서 ‘함께 마음을 써서 읽는’ 책입니다. 힘든 만큼 힘든 몸을 더 움직이면서 ‘애써 읽는’ 책이에요.

 한갓지거나 느긋하다면, 한갓지거나 느긋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읽는 책입니다. 바쁘거나 힘들다면, 바쁘거나 힘든 내 삶을 아끼면서 읽는 책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는 책은 없습니다. 내 삶을 헤아리면서 내 삶만큼 사랑하면서 읽는 책입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 걸맞게 찾아서 손에 쥐어 읽는 책입니다.

 바쁘니까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바쁘니까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힘들기에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힘드니까 꿈을 꾸거나 펼칠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돈이 없을 때에도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나눌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돈이 있으나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돈이 있는 동안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면서 한삶을 즐기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즐거우니까 웃고, 슬프니까 웁니다. 즐거울 때에는 즐거이 사랑하고, 슬플 때에는 슬프게 사랑합니다. 즐거웁기에 즐겁게 읽는 책이며, 슬프기에 슬피 읽는 책입니다. (4344.5.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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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5-21 10:57   좋아요 0 | URL
이게 요즘 제 책읽는 방식이예요.
바쁘면 바쁜대로 책읽기, 슬프면 슬픈대로 책읽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거죠.
적어도 책읽기는 제게 삶이랑 동의어쯤 되니까 말예요.

이렇게 소박한 글로도 큰 울림을 만들어 내시다니요, 위로가 되어 몇자 남깁니다.꾸벅~

파란놀 2011-05-21 13:11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즐거이 좋은 나날 일구셨으리라 믿어요~ ^^
 



 사다리 놀이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5.20.



 새 책꽂이를 스물 들인다. 새 책꽂이는 형과 음성 어버이한테서 얻은 돈으로 장만했다. 내 팍팍한 살림돈으로는 도무지 새 책꽂이를 장만할 수 없었다. 새 책꽂이를 들이는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 문을 모두 열어 냄새를 뺀다. 지난 2007년에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쓰던 책꽂이를 얻을 때에도 퍽 오랫동안 문을 열어 냄새를 뺐다. 주한미군 도서관 책꽂이에서는 노린내가 뱄는데, 한국사람이 쓰는 책꽂이에는 무슨 냄새가 밸까.

 새 책꽂이를 들이는 만큼,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과 책을 알뜰히 갈무리할 수 있다. 신나게 치우며 갈무리한다. 아이는 집과 도서관 사이를 뜀박질하면서 오간다. 한창 뛰고 달리며 놀다가는 사다리에 올라탄다. “벼리, 올라갈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벌써 사다리에 다 올라간 다음 이야기한다. 제 키보다 훨씬 높이 올라가면서 안 무섭나 보지? 아이는 아버지가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 때에는 “벼리 빗자루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저도 함께 비질을 하겠단다. 아버지가 쓰레기를 주으면 저도 쓰레기를 줍겠다며 달려든다. 아버지가 짐을 나르면 저도 나르겠다며 손을 내민다. 참 귀여우면서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느덧 네 해째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간다. 곧 태어날 둘째는 얼마나 귀여우면서 사랑스러울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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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 부채, 자전거, 숲


 아이가 치마를 위에 입고, 웃도리를 바지에 끼워 넣는다. 아이는 옷을 엉터리처럼 끼워 입으면서 위와 아래에 모두 치마를 둘렀다고 여긴다. 으레 이와 같이 노는 아이를 바라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웃음이 터져나온다. 웃음을 꾹 참으면서 얼른 사진기를 찾는다. 신나게 사진을 찍는다.

 내가 어렸을 때에 나는 어떠한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 궁금하다. 나나 형이 어렸을 때에 둘은 저마다 달리 어처구니없는 짓을 곧잘 저질렀을 텐데,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아들이 저질렀을 어처구니없는 짓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다스리셨을까.

 아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아이는 날마다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다. 아이는 저 스스로 좋은 길을 걸어가면서 자란다. 어처구니없는 짓이든 어처구니있는 짓이든, 아이한테는 어느 한 가지 재미나지 않은 일이 없으리라 본다. 이렇게도 뒹굴고 저렇게도 뒹굴면서 크지 않겠는가.

 날마다 저녁나절 겨우 재우고 나서 기운을 쏙 뺀 뒤 옆에 쓰러져서 함께 잔다. 둘째가 태어나면 둘째를 돌보느라 섣불리 쓰러질 수 없고, 둘째를 건사하면서 잠이 참으로 모자란 나날이 거듭 찾아올 테지. 새벽에 일어나 어제 하루 찍은 사진을 갈무리할 때마다 생각한다. 날마다 새롭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면서 신나게 노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며 생각한다. 아이잖아. 아이니까 아이답게 놀잖아. 더 찬찬히 바라보고 한결 따스히 껴안으며 힘껏 기운내며 함께 살아갈 고운 목숨이자 길동무인 줄을 새삼스레 느껴야지.

 치마를 위에 두르고 부채를 둘 쥐며 자전거를 탄다고 깝죽대면서 텃밭 둘레에서 맴도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면서 한참 사진을 찍은 하루가 지나갔다. (4344.5.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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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5-21 10:59   좋아요 0 | URL
저는 신발을 왼쪽과 오른쪽 바꿔 신는 걸 좋아했어요.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맞는 작은 고무신도 있나 보죠?
앙증맞고 귀여워요~^^

파란놀 2011-05-21 13:11   좋아요 0 | URL
더 작은 고무신도 있답니다~ ^^*
 
에이프릴의 고양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3
클레어 터레이 뉴베리 지음, 김준섭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별 예쁜 목숨과 사랑스러운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 클레어 터레이 뉴베리, 《에이프릴의 고양이》(시공주니어,1998)



 지구별 사람 숫자가 60억을 넘었을 뿐 아니라, 곧 70억이 된다고 합니다. 내 어린 나날, 나는 지구별 사람 숫자가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국민학생 때에 40억쯤 된다고 했던가, 앞으로 50억이 넘으리라고 했던가, 열 살 남짓 하던 어린이는 앞으로 스물이 지나고 서른이 지나며 마흔이 다가올 줄을 몰랐습니다. 언제나 고 나이 그대로 머물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70억뿐 아니라 80억이나 100억에까지 이를 수 있겠구나 싶은 지구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땅에서는 ‘아이들이 모자란다’면서 아이를 더 낳아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제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돈도 주고 뭣도 주고 합니다. 그야말로 법석을 떱니다. 서울에서야 아이가 태어난대서 ‘아이 수당’을 줄 일이 없겠지만, 어느 곳에서는 아이 하나에 50만 원을 주느니 200만 원을 주느니 이야기합니다. 남녘땅에서만 오천만이 넘어섰는데도요.

 우리 식구 깃든 시골마을 지자체에서도 아이마다 육아수당을 줍니다. 다만, 한 달 벌이가 백만 원이 안 되는 집안에만 준다던가. 아무튼 우리 집도 이 육아수당을 받습니다. 곧 둘째가 태어나는데, 둘째한테도 따로 육아수당을 준다고 합니다. 참 고마운 일이구나 하고 여기지만, 마냥 고마운 일만은 아닙니다. 따로 육아수당을 주기 앞서 이 나라 사회 얼거리와 교육 얼거리와 문화 얼거리가 아름답다면 육아수당이라느니 무슨 수당이라느니는 없어도 되기 때문이에요. 사회와 교육과 문화 얼거리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서 ‘가난하다는 몇몇 집안’에 돈푼을 조금 보탠다 하면서 복지 정책을 잘 한다며 자랑하는 셈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살기 좋은 나라라 한다면, 가난한 사람이든 가멸찬 사람이든 살기 좋아야 하거든요. 돈이 있는 사람이든 돈이 없는 사람이든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없이 서로 오붓하게 어울리면서 즐거이 웃고 울 수 있어야 하거든요.

 육아수당 같은 돈을 준다면, 또 출산장려금 같은 돈을 주겠다면, 모든 사람한테 주어야 해요. 학교급식을 부잣집 아이래서 안 줄 수 없어요. 무상급식이란 가난한 집 아이뿐 아니라 안 가난한 집이나 그럭저럭 여느 집 아이한테도 베풀 일입니다. 다 함께 누릴 복지이고 평등이며 평화예요. 누구나 즐거이 누리면서 나눌 사랑이자 믿음이에요.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다 다른 자리가 저마다 아름다우면서 즐겁다’고 느끼면서 활짝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시커멓고 커다란 자가용을 몰아야 멋지거나 훌륭한 삶이지 않아요. 시골길을 두 다리로 낑낑대며 거닐며 짐을 나르거나 장마당 마실을 하기에 바보스러운 삶이지 않아요. 큰도시 아파트에서 살든,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살든, 흙을 일구며 살든, 펜대나 셈틀을 만지작거리며 살든,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목숨이에요.

 그리고, 사람 못지않게 딱새와 참새와 비둘기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개미와 거미와 바퀴벌레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텃밭에서 토마토 잎과 감자 잎을 갉아먹는 스물여덟점박이무당벌레 또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에요. 아침·낮·저녁으로 요 스물여덟점박이무당벌레를 수십 마리씩 잡아서 돌이나 젓가락으로 꾹꾹 눌러 죽입니다. 너희를 죽여야 내가 살아가니까 부디 다음에는 좋은 목숨 얻어 좋은 누리에서 잘 살아가기를 비손합니다. 감자알을 먹든 쌀알을 먹든, 오징어를 먹든 배추를 먹든, 하나같이 고마운 목숨이 내 몸으로 들어옵니다. 나는 목숨을 받아먹으며 목숨을 잇는 사람입니다.


.. 이 집에서는 고양이를 한 마리밖에 키울 수 없다니, 에이프릴은 아빠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고양이 네 마리가 있고, 우리 가족은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하잖아! ..  (10쪽)


 그림책 《에이프릴의 고양이》(시공주니어,1998)를 읽습니다. 더없이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낄 만한 고양이가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일군 분은 고양이를 무척 아끼거나 사랑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그림 솜씨가 빼어나대서 이러한 그림책을 일굴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아름다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낳습니다. 사랑스러운 꿈길과 넋길과 붓길이 얼크러지면서 사랑스러운 그림을 빚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양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개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꽃도 그렇습니다. 이웃사람이나 동무나 살붙이나 둘레 수많은 사람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도 많아요.

 누구나 그리는 그림입니다. 누구나 쓰는 글입니다. 누구나 찍는 사진이에요.

 그렇지만, 누구나 그리고 쓰며 찍는다 하더라도, 막상 사랑과 믿음을 고이 싣는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은 퍽 드뭅니다. 예쁘장하게 보인다지만 사랑스레 보이는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은 드물어요. 멋들어지게 보이지만 믿음직하게 껴안을 만한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은 찾기 어렵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미술대학을 나왔거나 미술학원을 오래 다녔거나 빼어난 스승을 모시면서 그림을 배우기에 그림을 잘 그리지 않습니다. 비싼 펜을 쓰거나 값진 종이를 쓰기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난 시쟁이나 소설쟁이한테서 글쓰기를 배웠으니까 글을 잘 쓰지 않아요.

 오롯이 내 삶으로 쓰는 글입니다. 그예 내 삶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온통 내 삶으로 찍는 사진이에요. 그림책 《에이프릴의 고양이》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랑 고양이를 나란히 사랑하는 넋으로 따사롭게 빚은 작품입니다.


.. 엄마가 물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다 기르지 않겠어요, 미스 엘웰?” 미스 엘웰이 소리쳤습니다. “세상에, 그건 말도 안 돼요! 이미 고양이를 너무 많이 기르고 있는걸요. 아주머니도 한번 우리 집 고양이 밥값 청구서를 보셔야 해요. 가슴이 덜덜 떨릴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미스 엘웰은 (새끼 고양이) 차콜과 브렌다가 소파 쿠션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너무 귀여워요! 정말로 예쁘네!” 미스 엘웰은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당장 데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22쪽)


 고양이는 금세 어른이 됩니다. 금세 어른이 된 고양이는 이윽고 새끼를 낳습니다. 고양이는 한 해에 두 차례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금세 어른 고양이가 되어 새끼를 낳습니다. 고양이는 해마다 손자 뻘 고양이를 낳고, 이듬해에는 증손자 뻘 고양이를, 또 이듬해에는 ……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가 끝없이 퍼집니다.

 고양이가 집고양이 아닌 들고양이로 살아간대도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새끼를 낳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여태껏 고양이 숫자가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일을 걱정한 적은 없을 테니까요. 한꺼번에 열 마리씩 새끼를 낳기도 하는 돼지라지만, 돼지가 고기돼지 아닌 들돼지나 멧돼지로 살아갈 때에는 새끼를 함부로 많이 낳지 않아요. 꼭 저 살아갈 만큼만, 또 이웃 돼지가 함께 제 터전에서 살아갈 크기만큼 새끼를 낳아 건사합니다.

 사람들이 집고양이를 기르고 집개를 키우면서 ‘끝없이 늘어나는 고양이와 개’가 근심거리가 됩니다. 집고양이가 되면서 새끼를 더 낳지 못하도록 손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염둥이 고양이로 기르면서 고양이는 들고양이로 지내던 버릇과 삶을 버려야 합니다.


..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좀더 큰 아파트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겠는걸. 어쨌거나 우리에겐 넓은 집이 필요해. 이 집은 너무 좁아.” 그 순간 에이프릴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 새 아파트로 가게 되면 어떤 아파트로 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처럼 고양이 한 마리용 아파트예요? 아니면, 아니면…….” ..  (30쪽)


 그림책 《에이프릴의 고양이》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걱정은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여길 만하지만, 너무도 쉽게 ‘큰 집으로 옮기면 된다’고 실마리를 풉니다. 틀림없이 어느 집에서는 이렇게 ‘큰 집으로 옮기면 돼’ 하고 말할 텐데, 틀림없이 수많은 집은 이렇게 ‘큰 집으로 쉬 못 옮기’며 살아갑니다. 더군다나,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다고 할 때에, 먹이 주고 똥오줌 치우며 집안에 흩날리는 털을 훔치는 몫은 누가 하려나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에이프릴은 집안일을 얼마나 잘 할 줄 알거나 잘 거들 줄 알까요. 마냥 귀여운 고양이를 그저 귀엽게 여긴대서 고양이와 함께 예쁘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몹시 귀여운 고양이를 매우 끔찍이 생각한대서 고양이와 함께 착하게 지낼 수 있을는지요.

 그림책 하나를 읽으며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거나 덧없는 근심을 한다고 느낍니다만, 아이하고 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랑 오붓하게 나눌 이야기밭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예쁜 고양이요, 집에 돈이 되니까 큰 집으로 옮기면 되는 줄거리입니다. 사람 삶도 환하게 드러나지 못하고, 고양이 삶도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어떤 목숨인가요. 사람은 어떤 목숨일까요.

 동생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는다고 생각해 봅니다. 동생을 마냥 예쁘게만 바라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때와 곳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젖을 찾고, 삼십 분마다 쉬를 누는 갓난쟁이를 바라보며 그저 예쁘게만 쳐다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하루에도 똥을 서너 번씩 누기도 하면서 자그마한 소리에조차 잠들지 못하며 앙앙 우는 아기를 노상 예쁘다고만 들여다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갓난쟁이가 되든 다섯 살 아이가 되든 열다섯 살 푸름이가 되든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든 어버이 말을 우라지게 안 듣든, 모든 아이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에이프릴의 고양이》라는 그림책은 수많은 갈래 숱한 이야기 가운데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만 살짝 가려뽑아 아주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보여주기‘만’ 하는 그림책일 텐데, 이 그림책에서 보여주지 못하거나 다루지 않는 다른 이야기나 모습을 찾으려 하는 일이 잘못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집 아이는 《에이프릴의 고양이》를 두고두고 좋아하면서 다시 꺼내어 들추지는 않습니다. 《바바빠빠》라든지 《까만 크레파스》라든지 《11마리 고양이와 작은 새》라든지 《로타와 자전거》 같은 그림책은 수백 번씩 다시 들추고 또 들여다보며 폭 빠져듭니다. 《에이프릴의 고양이》에 나오는 예쁘장한 그림을 보면서 ‘예뻐’ 하고 말하지만, 그저 예쁠 뿐, 더 뻗지 못하고 더 스미지 못해요.

 예쁜 사람들이 예쁜 삶을 꾸리며 예쁜 사랑을 나눈다 할 텐데, 예쁜 그림결로 예쁜 마음씨를 느끼기도 하지만, 예쁜 삶이야기를 함께 다루지 않을 때에는, 오래지 않아 질리거나 따분해지고 맙니다. 아이도 고양이도 노리개나 장식품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 한 집에서 살아가는 살붙이가 되면서,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4344.5.19.나무.ㅎㄲㅅㄱ)


― 에이프릴의 고양이 (클레어 터레이 뉴베리 글·그림,김준섭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8.12.15./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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