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대고 하는 말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람한테 삶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데 내가 하는 말이 한귀로 고스란히 흘러 나간다든지 아예 처음부터 튕겨진다고 할 때에는 벽을 대고 하는 말입니다. 맞은편은 맞은편대로 맞은편 하고픈 말을 쉬지 않고 쏟아부으면서 나한테 아무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에, 이 또한 벽을 대고 하는 말입니다. 쏟아붓기는 말도 이야기도 사랑도 아닙니다. 한쪽만 오래도록 말을 한대서 쏟아붓기이지는 않습니다. 깊이 사랑하면서 조곤조곤 속삭일 때에는 한 사람만 속삭여도 괜찮습니다. 따사로운 사랑으로 살가이 껴안을 때에는 한 사람만 말꽃을 피울 수 있어요. 그러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풀어야 할 일일 때에는, 두 쪽은 두 쪽대로 제 이야기를 꺼낸 다음, 맞은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차분히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제 할 말을 마치고 나서 다른 볼일을 보러 간다며 홱 돌아선다면, 그예 벽을 대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웃음 띤 얼굴이라 하더라도 벽을 대고 하는 말이라면 조금도 따스하지 않고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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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가 온 날 - 치히로 아트북 1,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아이가 온 날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 이와사키 치히로, 《작은 새가 온 날》(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2)


- 엄마는 바쁘고 / 곰돌이는 말을 안 해


 집안일을 도맡는 어머니들은 바쁩니다. 집밖일을 도맡는다는 아버지들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바쁘다’는 대목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여성을 푸대접하던 흐름이 많이 나아졌을 뿐 아니라, 집일 품을 더는 기계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다이 살아가자면 집밖일뿐 아니라 집안일을 저마다 알맞게 나누어 맡아야 합니다. 집일 품을 더는 기계는 말 그대로 손품을 줄일 테지만, 집일을 줄이지는 않습니다. 빨래기계가 있대서 빨래를 안 해도 된다든지, 다 한 빨래를 안 개도 된다든지, 갠 빨래를 옷장에 건사하지 않아도 된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청소기가 있대서 청소를 안 해도 된다든지 걸레를 안 빨아도 된다든지, 쓸고닦기를 안 해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청소기라 하더라도 텔레비전 화면이나 책상서랍이나 책꽂이 모서리나 창틀 안쪽이나 밑쪽을 치워 주지 못합니다.

 집안일을 굳이 돈값으로 어림할 까닭은 없습니다만, 집안일이 어떠한지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애써 돈값으로 어림해 보곤 합니다. 먼저,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쓸고닦아 주는 몫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 준다면 일삯을 얼마만큼 주어야 날마다 일해 주는 사람이 올까요. 토요일과 일요일뿐 아니라 공휴일까지 찾아와서 이 일을 해 주려면 일삯을 얼마나 치러야 할까요. 다음으로,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돌보아야 한다면, 또는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면, 게다가 토요일이나 일요일뿐 아니라 공휴일까지 맡아 보살펴야 한다면, 이러한 일을 맡는 이한테는 일삯을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돈이 참 많은 집에서는 ‘유모’에 ‘보모’에 ‘식모’가 있기도 합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을 두거나 집을 지키는 이를 두는 집도 있겠지요. 이러한 일을 맡는 이는 일삯을 얼마쯤 받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일삯을 어림한대서 집안일이 한결 돋보이거나 값있거나 뜻있다 할 수 없습니다. 집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내 삶을 일구는 하루하루를 마음과 몸으로 깊이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집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나날을 보내면서 차근차근 사랑스러워지고 믿음직하게 거듭납니다.


- 작은 새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 그럼 난 정말 정말 기쁠 텐데


 어머니도 바쁩니다. 아버지도 바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쁠 때에 아이는 안 바쁘다 할 수 있고 나란히 바쁠 수 있겠지요. 학원에 가야 한다든지 무슨무슨 책을 읽어야 한다든지 어떤저떤 과외를 받아야 하는 아이라면 몹시 바쁘겠지요. 그나저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밖과 집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기에 이토록 바쁠까 궁금합니다.

 그림책 《돼지책》을 펼치면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하고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 나옵니다. 이 세 남자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집안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집안일을 안 할 뿐더러 모르기까지 한 만큼, 집안일을 하면서 함께 꾸리는 집살림이 무엇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집살림이 무엇인지 알 노릇이 없으니, 사람살림과 사랑살림이란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살림과 사람살림과 사랑살림을 생각하지 못할 때에는 말살림이나 글살림이나 책살림 또한 헤아리지 못합니다. 텃밭살림이라든지 자전거살림이란 아예 거들떠보지 못할 수 있어요.

 바쁘디바쁜 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에 아이는 홀로 심심해 하거나 제 어버이와 마찬가지로 몹시 바쁘게 몰아치도록 학원이나 과외나 책읽기에 얽매입니다. 곰돌이한테 말을 건다든지 작은 새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습니다. 나비 날갯짓을 바라보면서 나비춤을 즐길 틈도 없겠지요.


- 작은 새는 자기 집이 좋은가 봐 /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렇지 곰돌아


 작은 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옵니다. 작은 아이는 열 달을 고요히 잠든 끝에 햇볕 환하게 내리쬐는 땅으로 찾아옵니다. 열 달을 고요히 잠들다가 태어난 아이라지만, 아이는 또 열 달을 새근새근 잠들면서 자라고, 또 열 달을 색색 잠들면서 큽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그린 《작은 새가 온 날》에 나오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작은 새는 저희 집, 그러니까 작은 새가 깃드는 숲속 보금자리를 좋아합니다.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멋진 집이든 초라한 집이든, 작은 새는 작은 제 몸뚱이를 누일 알맞춤한 숲속 보금자리를 좋아합니다. 나뭇가지 한쪽에 둥지를 틀든, 보리밭 한켠에 둥지를 마련하든, 작은 새는 작은 보금자리를 사랑합니다.

 나와 옆지기와 첫째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우리 집으로 찾아온 작은 아이는 제가 살아갈 작은 집을 좋아해 주겠지요.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으며 누나가 있는 멧자락 작은 집을 사랑해 줄 테지요.

 작은 새는 작은 새 삶을 작은 목청으로 노래합니다. 작은 새 노래를 듣는 어린이는 어린이 몸뚱이에 맞게 사랑스러운 눈길로 작은 새를 바라보며 따스한 손길로 작은 새를 쓰다듬겠지요.

 바쁘다는 어머니라지만, 온갖 집일을 하느라 깜빡 작은 아이 마음을 놓칠 수 있습니다. 밥을 더 맛나게 차리려다가, 일을 더 훌륭히 마무리지으려다가, 돈을 더 많이 벌려다가, 옷을 더 예쁘게 뜨개질하려다가, 그만 아이가 따분해 하거나 심심해 하는 줄을 잊거나 놓칠 수 있어요.

 머잖아 어머니는 작은 아이 웃음과 눈물을 찾아 읽겠지요. 어머니 또한 그리 먼 옛날이 아닌 고작 열 몇 해나 스물 몇 해 앞서, 당신 작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작은 사람이었다고 되새기면서, 내 작은 아이를 내 작은 사랑으로 따사로이 보듬어야지 하고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아이는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나니까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은 어린 나날부터 둘레 어른들한테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나고, 차츰차츰 어른 삶에 접어들면서 내 둘레 어른들이 나한테 했듯이 나 또한 내 둘레 아이들한테 사랑을 곱게 나누겠지요. 사랑어린 밥을 먹고, 사랑어린 옷을 입으며, 사랑어린 집에서 흐뭇하게 잠자리에 들도록, 사랑어린 손길과 눈길로 작은 아이를 보듬을 작은 어머니요 작은 아버지요 작은 살붙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온식구가 조용히 잠든 저녁나절, 오늘 하루 마지막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뻐꾸기라는 새는 제 목숨을 건사하려고 다른 새 알들을 떨어뜨려 깨뜨리는 궂은 짓을 하는데, 목청은 왜 이다지도 곱다고 느낄까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뻐꾸기 소리가 잦아드는 멧자락 어딘가에는 올빼미가 새끼한테 나누어 줄 먹이를 찾으러 날아다니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별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고즈넉한 까만하늘을 등에 이거나 가슴으로 안으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작은 아이는 살며시 칭얼칭얼했으나 어머니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을 받으며 따사로운 꿈결로 접어들었습니다. 작은 아이보다 조금 큰 첫째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졌습니다. 저녁도 못 먹고 곯아떨어진 첫째는 깨지도 않고 참 잘 잡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 작은 새가 온 날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글,임은정 옮김,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2002.8.30./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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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아이 동생이 생겨 좋은 일


 첫째가 입던 배냇저고리를 둘째가 입는다. 거의 세 해 만에 배냇저고리를 입혀 보자니 낯설지만, 몇 초 만에 금세 익숙하게 손을 놀린다. 갓난쟁이를 가슴에 안는 일도 처음 몇 초 동안은 서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이내 익숙하게 보듬어 본다.

 첫째를 낳은 어버이가 둘째를 낳을 때라면 누구나 나이를 더 먹기 마련이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몸으로 쓰는 힘은 줄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첫째보다 둘째가 수월하더라는 말마따나 나이를 더 먹은 뒤 낳는 둘째 돌보기는 첫째 때와 견주어 조금은 수월하다고 살짝 느낀다.

 그러나, 애 아버지하고 애 어머니는 다르다. 몸으로 젖을 먹일 뿐 아니라, 벌어진 엉덩이뼈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뿐더러, 아기방 또한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어머니가 아니니,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기저귀를 갈아 본 사람이 기저귀를 안 갈아 본 사람보다 더 잘 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다스려 본 사람이 아이들을 안 다스려 본 사람보다 더 잘 다스리기 마련이다. 몸으로 해 본 사람이 무엇이든 처음에는 익숙하게 잘 하겠지.

 하던 그대로 해야 하는 삶이라면, 언제나 처음부터 오래오래 하던 사람 혼자서 할 노릇이다. 함께 즐기거나 누리며 아름다울 삶이라면, 처음 하는 낯선 사람이든 아직 겪지 못하거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든, 서로서로 허물없이 웃고 울면서 천천히 하면 좋을 삶이다.

 아이 기저귀를 온누리에서 첫손가락 꼽도록 가장 잘 갈아야 하지 않는다. 아이 기저귀 빨래를 온누리에서 가장 알뜰히 잘 빨아야 하지 않는다. 아기한테 젖을 가장 잘 먹여야 하지 않는다. 아기를 가장 잘 안아야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한테 가장 값있고 훌륭하다는 옷을 입혀야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아이요 사랑받을 아이일 뿐인 한편, 그예 사랑할 어버이요 사랑받을 어버이라고 느낀다.

 첫째 아이한테 동생이 생겼기에 첫째한테, “자 보렴. 동생이 누나 옷을 물려입는구나.”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째는 어린 나날부터 제 옷을 물려입힐 뿐 아니라, 제 옷도 물려입는 줄 천천히 깨달으며 배우겠지. 첫째는 둘째한테 제 삶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면서 서로서로 사이좋게 싸우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겠지.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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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 소리와 책읽기


 들판과 멧자락에서 우짖거나 노래하는 새가 무슨 새인지 다 알지 못합니다. 둘째가 어머니 배에서 바깥누리로 나와 비로소 함께 햇살과 바람과 흙을 살결로 느낄 수 있던 어제 첫날, 텃밭에 낸 거름에 덮을 흙을 둘레에서 퍼서 뿌리는데, 뻐꾸기 한 마리가 집 가까운 어느 쪽에선가 몹시 높으면서 고운 목청으로 노래가락을 뽑았습니다.

 뻐꾸기는 스스로 알을 품어 까지 않습니다. 뻐꾸기가 태어나자면 다른 알들이 죽어야 합니다. 참 미운 짓이라 할 수 있고, 뻐꾸기로서는 이렇게 해야 살아남으니 자연 흐름에서는 참 자연스럽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 귀로는 결이 고우면서 맑은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면 뻐꾸기 한살이를 자꾸자꾸 생각하곤 합니다.

 나로서는 이름을 다 알지 못하고, 또 시골사람이래서 모두 다 멧새 들새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풀을 샅샅이 꿰뚫는 시골사람이 있을 테며, 아는 풀만 아는 시골사람이 있겠지요. 오늘날 시골사람은 모든 살림살이를 들판과 멧자락에서만 받아들이지 않기에, 들판과 멧자락 모든 풀을 다 알아채거나 느낄 수는 없어요.

 도시사람이래서 골목길을 다 꿰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기에 버스길을 다 알거나 온갖 물질문명을 다 누리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도시사람은 제아무리 집안에서 꽃그릇을 돌보거나 아낀다 하더라도 자연이 어떠한가를 살갗 깊숙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도시에는 자연이 없으니까요.

 자연하고 살아가지만 자연을 다 알지 못하는 오늘날 시골사람으로서 뻐꾸기 소리를 듣습니다. 뻐꾸기는 아침과 낮과 새벽과 저녁과 밤에 울 때에, 그때그때 어떤 느낌과 생각과 삶과 이야기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새가 우짖거나 노래하는 소리에 따라 새 한 마리 날갯짓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새가 우짖거나 노래하는 소리에 따라 새 한 마리 둥우리를 헤아립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이이가 펼치는 삶과 넋과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이분이 들려주는 삶과 넋과 말을 헤아립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이기에 이이 삶과 넋과 말 또한 한결 잘 알아 더욱 잘 곰삭이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이라서 이분 삶과 넋과 말 또한 한결 잘 모르거나 못 받아들이거나 못 삭이는지 궁금합니다. 두 시 반에도 네 시 반에도, 또 여섯 시에도 뻐꾸기를 곱게 울다가 곱게 조용합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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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24 15:40   좋아요 0 | URL
어제가 첫날이라니 축하드립니다*^^*
둘째도 큰아이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겠지요?
두 시 반에도 네 시 반에도, 또 여섯 시에도 뻐꾸기를 곱게 울다가 곱게 조용하다가....앞으로 어른시간말고 아기시간대로 움직이시려면 다른 새소리도 한참 듣겠네요~

파란놀 2011-05-24 18:09   좋아요 0 | URL
음... 하루 스물네 시간을 거의 깨어서 지내니까... 뭐 ^^;;;
아기를 낳아 키우면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느긋하게
눈 붙일 겨를은 그야말로 없어요 ㅠ.ㅜ
 



 핏물 기저귀 빨래


 종이달거리가 아니라 천달거리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렇지만, 기계빨래를 벗고 손빨래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닥 안 늘어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손빨래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라면 기계힘을 빌 수 있다고 느낀다. 아프고 힘드니까.

 바쁜 사람들도 기계힘을 빌 만하다고 여기지만, 바쁜 사람들이라 한다면 더더욱 손힘을 누리며 빨래를 맞아들일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바쁘니까.

 바쁘니까 바쁜 겨를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 바쁜데, 바쁜 틈을 나누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꿈을 북돋운다. 바쁘기 때문에 내 손과 몸과 일과 삶을 아끼는 길을 걸어간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계힘을 빌면서 “빨래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계힘을 빌리는데 빨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옳게 말하자면 빨래를 하는 삶이 아니라 “기계를 쓰는” 삶이라 해야겠지.

 기계빨래라고 손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기계빨래를 한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집일은 늘 고만큼 있다. 집일이란 내가 살아가는 만큼 나 스스로 해야 하기 마련이다. 손을 써서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손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손을 놀려 빨래를 하기에 내 옷과 빨래를 한결 사랑할 수 있다.

 옆지기 핏물 기저귀 빨래를 한다. 첫째를 낳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핏물 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했다. 핏물 기저귀 빨래를 마감한다 했더니, 이때부터는 천달거리 빨래가 이어졌다. 2010년 가을에 둘째를 밴 뒤로는 천달거리 빨래가 그친다. 2011년 오월에 둘째가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핏물 기저귀 빨래가 다시 생긴다.

 핏물 기저귀이든 천달거리이든 북북 문지른대서 핏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핏물 기저귀는 그때그때 빨아 말려야 하니 늘 삶을 수는 없지만, 아침부터 낮까지 나오는 핏물 기저귀라면 두어 장 모아 삶을 수 있고, 아기 보랴 집일 하랴 눈코 뜰 사이 없으면 목초물 뿌린 물에 담가 둔다. 처음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한손으로 핏자국을 살살 문지르면 제법 핏기가 빠지는데, 이렇게 핏기를 뺀 기저귀를 목초물 뿌린 물에 담근다고 하겠다. 삶을 때에도 목초물 뿌린 물에 한동안 담고 나서 삶으면 핏기는 더 잘 빠진다.

 집식구들 몸에서 나온 때를 내 손으로 느낀다. 살붙이 몸에서 나온 피를 내 손으로 받아들인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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