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소리와 책읽기


 들판과 멧자락에서 우짖거나 노래하는 새가 무슨 새인지 다 알지 못합니다. 둘째가 어머니 배에서 바깥누리로 나와 비로소 함께 햇살과 바람과 흙을 살결로 느낄 수 있던 어제 첫날, 텃밭에 낸 거름에 덮을 흙을 둘레에서 퍼서 뿌리는데, 뻐꾸기 한 마리가 집 가까운 어느 쪽에선가 몹시 높으면서 고운 목청으로 노래가락을 뽑았습니다.

 뻐꾸기는 스스로 알을 품어 까지 않습니다. 뻐꾸기가 태어나자면 다른 알들이 죽어야 합니다. 참 미운 짓이라 할 수 있고, 뻐꾸기로서는 이렇게 해야 살아남으니 자연 흐름에서는 참 자연스럽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 귀로는 결이 고우면서 맑은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면 뻐꾸기 한살이를 자꾸자꾸 생각하곤 합니다.

 나로서는 이름을 다 알지 못하고, 또 시골사람이래서 모두 다 멧새 들새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풀을 샅샅이 꿰뚫는 시골사람이 있을 테며, 아는 풀만 아는 시골사람이 있겠지요. 오늘날 시골사람은 모든 살림살이를 들판과 멧자락에서만 받아들이지 않기에, 들판과 멧자락 모든 풀을 다 알아채거나 느낄 수는 없어요.

 도시사람이래서 골목길을 다 꿰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기에 버스길을 다 알거나 온갖 물질문명을 다 누리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도시사람은 제아무리 집안에서 꽃그릇을 돌보거나 아낀다 하더라도 자연이 어떠한가를 살갗 깊숙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도시에는 자연이 없으니까요.

 자연하고 살아가지만 자연을 다 알지 못하는 오늘날 시골사람으로서 뻐꾸기 소리를 듣습니다. 뻐꾸기는 아침과 낮과 새벽과 저녁과 밤에 울 때에, 그때그때 어떤 느낌과 생각과 삶과 이야기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새가 우짖거나 노래하는 소리에 따라 새 한 마리 날갯짓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새가 우짖거나 노래하는 소리에 따라 새 한 마리 둥우리를 헤아립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이이가 펼치는 삶과 넋과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이분이 들려주는 삶과 넋과 말을 헤아립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이기에 이이 삶과 넋과 말 또한 한결 잘 알아 더욱 잘 곰삭이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이라서 이분 삶과 넋과 말 또한 한결 잘 모르거나 못 받아들이거나 못 삭이는지 궁금합니다. 두 시 반에도 네 시 반에도, 또 여섯 시에도 뻐꾸기를 곱게 울다가 곱게 조용합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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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24 15:40   좋아요 0 | URL
어제가 첫날이라니 축하드립니다*^^*
둘째도 큰아이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겠지요?
두 시 반에도 네 시 반에도, 또 여섯 시에도 뻐꾸기를 곱게 울다가 곱게 조용하다가....앞으로 어른시간말고 아기시간대로 움직이시려면 다른 새소리도 한참 듣겠네요~

숲노래 2011-05-24 18:09   좋아요 0 | URL
음... 하루 스물네 시간을 거의 깨어서 지내니까... 뭐 ^^;;;
아기를 낳아 키우면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느긋하게
눈 붙일 겨를은 그야말로 없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