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가 온 날 - 치히로 아트북 1,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아이가 온 날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 이와사키 치히로, 《작은 새가 온 날》(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2)


- 엄마는 바쁘고 / 곰돌이는 말을 안 해


 집안일을 도맡는 어머니들은 바쁩니다. 집밖일을 도맡는다는 아버지들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바쁘다’는 대목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여성을 푸대접하던 흐름이 많이 나아졌을 뿐 아니라, 집일 품을 더는 기계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다이 살아가자면 집밖일뿐 아니라 집안일을 저마다 알맞게 나누어 맡아야 합니다. 집일 품을 더는 기계는 말 그대로 손품을 줄일 테지만, 집일을 줄이지는 않습니다. 빨래기계가 있대서 빨래를 안 해도 된다든지, 다 한 빨래를 안 개도 된다든지, 갠 빨래를 옷장에 건사하지 않아도 된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청소기가 있대서 청소를 안 해도 된다든지 걸레를 안 빨아도 된다든지, 쓸고닦기를 안 해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청소기라 하더라도 텔레비전 화면이나 책상서랍이나 책꽂이 모서리나 창틀 안쪽이나 밑쪽을 치워 주지 못합니다.

 집안일을 굳이 돈값으로 어림할 까닭은 없습니다만, 집안일이 어떠한지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애써 돈값으로 어림해 보곤 합니다. 먼저,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쓸고닦아 주는 몫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 준다면 일삯을 얼마만큼 주어야 날마다 일해 주는 사람이 올까요. 토요일과 일요일뿐 아니라 공휴일까지 찾아와서 이 일을 해 주려면 일삯을 얼마나 치러야 할까요. 다음으로,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돌보아야 한다면, 또는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면, 게다가 토요일이나 일요일뿐 아니라 공휴일까지 맡아 보살펴야 한다면, 이러한 일을 맡는 이한테는 일삯을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돈이 참 많은 집에서는 ‘유모’에 ‘보모’에 ‘식모’가 있기도 합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을 두거나 집을 지키는 이를 두는 집도 있겠지요. 이러한 일을 맡는 이는 일삯을 얼마쯤 받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일삯을 어림한대서 집안일이 한결 돋보이거나 값있거나 뜻있다 할 수 없습니다. 집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내 삶을 일구는 하루하루를 마음과 몸으로 깊이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집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나날을 보내면서 차근차근 사랑스러워지고 믿음직하게 거듭납니다.


- 작은 새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 그럼 난 정말 정말 기쁠 텐데


 어머니도 바쁩니다. 아버지도 바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쁠 때에 아이는 안 바쁘다 할 수 있고 나란히 바쁠 수 있겠지요. 학원에 가야 한다든지 무슨무슨 책을 읽어야 한다든지 어떤저떤 과외를 받아야 하는 아이라면 몹시 바쁘겠지요. 그나저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밖과 집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기에 이토록 바쁠까 궁금합니다.

 그림책 《돼지책》을 펼치면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하고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 나옵니다. 이 세 남자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집안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집안일을 안 할 뿐더러 모르기까지 한 만큼, 집안일을 하면서 함께 꾸리는 집살림이 무엇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집살림이 무엇인지 알 노릇이 없으니, 사람살림과 사랑살림이란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살림과 사람살림과 사랑살림을 생각하지 못할 때에는 말살림이나 글살림이나 책살림 또한 헤아리지 못합니다. 텃밭살림이라든지 자전거살림이란 아예 거들떠보지 못할 수 있어요.

 바쁘디바쁜 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에 아이는 홀로 심심해 하거나 제 어버이와 마찬가지로 몹시 바쁘게 몰아치도록 학원이나 과외나 책읽기에 얽매입니다. 곰돌이한테 말을 건다든지 작은 새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습니다. 나비 날갯짓을 바라보면서 나비춤을 즐길 틈도 없겠지요.


- 작은 새는 자기 집이 좋은가 봐 /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렇지 곰돌아


 작은 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옵니다. 작은 아이는 열 달을 고요히 잠든 끝에 햇볕 환하게 내리쬐는 땅으로 찾아옵니다. 열 달을 고요히 잠들다가 태어난 아이라지만, 아이는 또 열 달을 새근새근 잠들면서 자라고, 또 열 달을 색색 잠들면서 큽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그린 《작은 새가 온 날》에 나오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작은 새는 저희 집, 그러니까 작은 새가 깃드는 숲속 보금자리를 좋아합니다.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멋진 집이든 초라한 집이든, 작은 새는 작은 제 몸뚱이를 누일 알맞춤한 숲속 보금자리를 좋아합니다. 나뭇가지 한쪽에 둥지를 틀든, 보리밭 한켠에 둥지를 마련하든, 작은 새는 작은 보금자리를 사랑합니다.

 나와 옆지기와 첫째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우리 집으로 찾아온 작은 아이는 제가 살아갈 작은 집을 좋아해 주겠지요.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으며 누나가 있는 멧자락 작은 집을 사랑해 줄 테지요.

 작은 새는 작은 새 삶을 작은 목청으로 노래합니다. 작은 새 노래를 듣는 어린이는 어린이 몸뚱이에 맞게 사랑스러운 눈길로 작은 새를 바라보며 따스한 손길로 작은 새를 쓰다듬겠지요.

 바쁘다는 어머니라지만, 온갖 집일을 하느라 깜빡 작은 아이 마음을 놓칠 수 있습니다. 밥을 더 맛나게 차리려다가, 일을 더 훌륭히 마무리지으려다가, 돈을 더 많이 벌려다가, 옷을 더 예쁘게 뜨개질하려다가, 그만 아이가 따분해 하거나 심심해 하는 줄을 잊거나 놓칠 수 있어요.

 머잖아 어머니는 작은 아이 웃음과 눈물을 찾아 읽겠지요. 어머니 또한 그리 먼 옛날이 아닌 고작 열 몇 해나 스물 몇 해 앞서, 당신 작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작은 사람이었다고 되새기면서, 내 작은 아이를 내 작은 사랑으로 따사로이 보듬어야지 하고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아이는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나니까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은 어린 나날부터 둘레 어른들한테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나고, 차츰차츰 어른 삶에 접어들면서 내 둘레 어른들이 나한테 했듯이 나 또한 내 둘레 아이들한테 사랑을 곱게 나누겠지요. 사랑어린 밥을 먹고, 사랑어린 옷을 입으며, 사랑어린 집에서 흐뭇하게 잠자리에 들도록, 사랑어린 손길과 눈길로 작은 아이를 보듬을 작은 어머니요 작은 아버지요 작은 살붙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온식구가 조용히 잠든 저녁나절, 오늘 하루 마지막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뻐꾸기라는 새는 제 목숨을 건사하려고 다른 새 알들을 떨어뜨려 깨뜨리는 궂은 짓을 하는데, 목청은 왜 이다지도 곱다고 느낄까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뻐꾸기 소리가 잦아드는 멧자락 어딘가에는 올빼미가 새끼한테 나누어 줄 먹이를 찾으러 날아다니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별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고즈넉한 까만하늘을 등에 이거나 가슴으로 안으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작은 아이는 살며시 칭얼칭얼했으나 어머니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을 받으며 따사로운 꿈결로 접어들었습니다. 작은 아이보다 조금 큰 첫째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졌습니다. 저녁도 못 먹고 곯아떨어진 첫째는 깨지도 않고 참 잘 잡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 작은 새가 온 날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글,임은정 옮김,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2002.8.30./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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