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책


 청바지를 빨고 이불을 빨아야 한대서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손으로 빨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식구가 늘고 아이가 여럿 있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맞다. 그러나 여러 아이와 큰식구가 버스나 기차로 오가다 보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내 옷, 옆지기 옷, 아이 옷을 손으로 빨래한다. 이불을 빨래하고 청바지를 빨래한다. 이불 한 채를 빨면 기운이 폭 빠진다. 청바지 한 켤레를 빨면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물을 듬뻑 머금은 이불을 낑낑 들고 빨래줄에 널어 물짜기를 하면 등허리가 결린다. 청바지를 탕탕 털어 물방울이 흩날리면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아기수레도 싣고, 기저귀도 실으며, 젖병도 싣고, 이렁저렁 옷가지를 챙겨 실어야 하니까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여러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니까 고단해서 자가용에 몰아넣으면 한숨을 덜면서 골 아픈 일이 적단다. 책방마실이라도 해서 책을 잔뜩 장만한다면 낑낑 끙끙 들고 오기 힘들지만, 자가용에 실으면 거뜬하단다.

 차츰 더운 날이 된다. 찬물로 북북 비비고 밟으며 이불을 빨아서 넌다. 빨래를 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는다. 헹굼물로 쓰기 앞서 낯을 씻고 팔다리에 끼얹는다. 몸씻이를 하며 이불을 빨래한다. 해바라기 하는 마당에 이불을 널면서 눈을 살짝 찡그린다. 이불과 기저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한참 마실하다 보면 어느덧 다리가 아프다며 안아 달라는 아이를 덥석 안는다. 장마당에서 여러 먹을거리를 장만하느라 가방이 꽤 무겁다. 뒤로는 가방이, 앞으로는 아이가 무게를 서로 버틴다. 첫째는 아기수레 없는 채 즐거이 네 살 어린이로 자랐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씩씩한 몸뚱이가 있기에, 첫째는 제 다리로 이 땅을 당차게 박차며 함께 뛰논다.

 몸이 고단하니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려우니 책 한 권 펼치기 만만하지 않다. 어버이부터 책읽기를 제대로 못하니까 아이한테 책읽기를 하라고 이르지 못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버이가 쉴새없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는 이 심부름을 하고 저 일을 거든다. 나는 아이한테 집살림이나 집일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저 우리 집 살림과 일을 바삐 하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줄 뿐이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어떤 이름이 붙는지 낱낱이 알지 못할 뿐더러, 낱낱이 알아볼 겨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아이한테 늘 “벼리야, 꽃이나 풀이나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이 꽃이나 풀이나 나무가 예쁜 줄 느끼면 돼. 고마운 꽃이고 어여쁜 풀이며 사랑스러운 나무야.” 하고 말한다. 멧자락에서 날마다 듣는 수많은 멧새 소리를 하나하나 가누지 못하지만, “우리 집 둘레에 새가 참 많이 살지? 아버지는 새 이름을 잘 몰라. 그러나 이 새들 목소리가 다 다르구나 하고 느껴. 다 다른 새들 목소리를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 좋구나.” 하고 말한다.

 앞마당 빨래줄에 널어 나부끼는 기저귀 사이사이로 뜀박질을 하며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벼리야, 네 동생처럼 네가 어릴 적에 네 아버지는 이렇게 네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을 쬐어 주었단다.” 아이는 햇볕을 머금으면서 자란다. 둘째가 태어나서 집일이 곱배기로 느는 바람에 집안 비질이나 걸레질조차 거의 못하며 지내지만, 첫째는 착하게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자란다. 밥상을 차리면 행주질을 맡으려 하고, 밥상을 치울 때에도 행주질을 해 보려 애쓴다. 착한 아이야, 너한테는 책이 따로 없어도 된다. 집안과 집밖이 모두 고우며 맑은 책이란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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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4   좋아요 0 | URL
아이쿠,빨래와 청바지를 직접 빠신다니 힘이 많이 드시겠네요.가끔은 문명의 이기를 좀 이용하셔도 좋을듯 싶습니다^^

파란놀 2011-05-30 22:54   좋아요 0 | URL
세탁기 파는 데를 한번 가 보았는데, 이불을 빨 만한 녀석을 사려면 100만 원은 있어야 하더군요... 그냥 이대로 잘 살아야지요 ^^;;;;
 



 시골 라디오 소리


 바람이 불고 새가 우짖는 시골 한켠에서 퍽 귀가 따갑게 하루 내내 들리는 소리란, 밭일을 하는 사람인지 개장수네인지 공장에서인지 마을회관에서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는 라디오 소리.

 뻐꾸기 우는 소리를 비롯해서 숱한 멧새가 우는 소리와 개구리가 우는 소리는 몇 시간을 고스란히 들어도 조금도 시끄럽거나 귀가 따갑지 않다. 바람이 부는 소리라든지,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 또한 하나도 안 시끄러우며 귀를 따갑게 하는 적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하고 라디오가 주절대는 소리는 몇 분만 듣더라도 금세 귀가 따가우며 괴롭다.

 바람이 부는 소리는 싱그럽고, 산들바람은 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자동차가 내달리는 소리는 차디차고,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는 귀청을 찢는다. 나뭇잎이 한들거리는 소리와 기저귀 빨래가 마르는 소리는 차분히 스며들면서 내 마음을 토닥인다. 손전화 울리는 소리와 텔레비전 새소식 소리는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내 생각을 억누르거나 짓밟는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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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5   좋아요 0 | URL
흠,시골이시라면 FM인가요? AM인가요? 서울이야 FM이 팡팡 터지지만 시골은 어쩐지 모르겠군요^^

파란놀 2011-05-30 22:51   좋아요 0 | URL
글쎄.. 라디오를 안 들으니 모르겠지만... 라디오 소리도 노래 소리도... 참 귀에 거슬려요... ㅠ.ㅜ
 



 빨래 그림자 놀이


 밤에 나온 둘째 똥기저귀는 새벽에 빨고, 새벽에 나온 둘째 똥기저귀는 아침에 빤다.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마당 빨랫줄에 넌다. 기저귀 하얀 빨래를 마당 빨랫줄에 너는 동안, 멧자락 숲에서 멧새가 우짖는 소리를 듣는다. 무슨 새일까, 어떤 새일까, 고개를 갸웃갸웃해 보지만 이름을 알지는 못한다. 그저 이름을 몰라도 고마운 소리를 아침부터 들려주니 반갑다고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첫째는 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온 모습을 보고는 토마토를 입에 물면서 뒤따라 나온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다 널고 들어갈 무렵 기저귀 나부끼는 사이사이로 요리 걷고 조리 달리면서 논다. 첫째야, 네 똥기저귀도 이렇게 아버지가 손빨래를 해서 해바라기를 시켰단다. 햇볕을 먹고 바람을 먹으며 나뭇잎 빛깔과 새소리 결을 함께 받아들이는 고운 기저귀와 함께 예쁘게 살아가렴.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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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5.27.
 : 스스로 달리는 자전거



- 이제 아이는 세발자전거를 스스로 밟아 앞으로 달릴 줄 안다. 다만, 빨리 달린다든지 왼쪽 오른쪽 마음대로 틀며 달리지는 못한다. 엉금엉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엉금엉금 뒤로 움직일 줄 안다. 아이를 씻길 때라든지 그림책을 읽힐 때라든지 옷을 입힐 때라든지, 아이 팔뚝이나 허벅지를 만지면 아이가 날마다 힘살이 조금씩 붙는다고 느낀다. 앞으로 힘살이 더 붙고 키가 더 자라면 이 세발자전거를 아주 신나게 몰 수 있을 테지. 이제 아이는 수레에 탈 때면 몸이 꽤 커서 둘째가 큰 다음 함께 태우기는 좀 좁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둘이 수레에 함께 탄다면 수레는 뒤에서 무게를 한결 잘 받치리라 본다. 다만, 둘째가 딸이 아닌 아들이기 때문에, 둘째가 더 자라면 몸무게가 더 나가서 왼바퀴와 오른바퀴에 실리는 무게가 달라지리라. 앞으로 몇 해쯤 첫째가 세발자전거를 즐길까 모르겠으나, 첫째가 세발자전거를 떼고 두발자전거로 옮겨탈 무렵 둘째가 세발자전거에 올라타며 엉금엉금 달리기를 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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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아, 어디 사니? 과학 그림동화 20
스즈키 마모루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비룡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내 곁에서 살아가는 조용하고 작은 이웃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 스즈키 마모루, 《새들아, 어디 사니?》(비룡소,2005)



 “새 둥지를 찾았다(鳥の巢みつけた)”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2002년에 나온 그림책이 2005년에 한국에서 《새들아, 어디 사니?》(비룡소,2005)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옮겨집니다. 새들이 숲속에서 둥지를 틀어 지내는 삶을 가만히 바라본 멧골사람이 따스하면서 보드라운 손길로 엮은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내놓은 스즈키 마모루 님은 숲속에 지은 작은 집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숲속에서 살면서 ‘새 둥지’가 집 둘레 어디에나 흔하게 퍽 많이 있었으나 그동안 거의 알아보지 못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밭일을 하던 어느 날 문득 빈 새 둥지 하나를 찾아보고는, ‘아, 새가 이곳에서 살았구나. 이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궁금하게 여겼고, 이윽고 다른 새 둥지는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 그러고 보니 집 주위에 여기저기에 빈 새 둥지가 있었어요. 새끼들이 다 자라 둥지를 떠났기 때문이에요. ‘아, 이런 곳에도 새 둥지가 있었구나. 좀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나는 아쉽기도 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따뜻해졌답니다 ..  (6∼7쪽)


 숲사람 스즈키 마모루 님이 밭일을 하며 새 둥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새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달리 둥지를 틀어 다 달리 한삶을 꾸리는 흐름은 아랑곳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솦속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숲사람이면서 정작 숲사람답게 숲새하고 동무하는 나날을 못 보냈으리라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산다는 이들도 읍내나 면내에서 살아가지, 시골자락에서 흙과 내와 들과 바다와 메를 낀 보금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지 않습니다. 흙과 내와 들과 바다와 메를 낀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더욱이, 도시에서든 여느 시골에서든 사람 삶터에 온갖 새가 함께 살아가지만, 이들 온갖 새를 ‘나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은행 상징(까치)으로 여기며 아무 데나 풀어놓기도 했고, 평화 상징(비둘기)으로 다루며 함부로 풀어놓기도 했지만, 이들을 풀어놓은 다음 자연 터전이 어떻게 되고, 다른 새들하고는 어떻게 어우러질는지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풀어놓은 비둘기가 어떻게 삶을 꾸리다가 어떻게 차에 치여 떡이 되고 목숨을 앗기며 먹이를 찾는지를 헤아리지 않아요. 아마, 비둘기가 둥지를 트는지 안 트는지, 둥지를 튼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트는지를 찾아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새는 둥지를 틀지 않고 무리를 지어 서로 몸을 비비며 겨울나기를 하는데, 참새가 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가를 곱씹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빈터나 골목이란 하나도 남아나지 않으면서 주차장으로 바뀌는 마당에, 작은 새들 보금자리나 먹이에 눈길을 둘 사람은 없을 테지요.


.. 봄이 되자 집 주위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새들이 둥지를 트는 계절이 돌아온 거예요. 새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장 안전한 모양으로 둥지를 틀지요 ..  (36쪽)


 갓 태어난 둘째 아이는 밤새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옆지기는 둘째 아이한테 밤새 젖을 물리느라 고단하고, 아버지는 밤새 똥기저귀를 빠느라 고달픕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보살피느라 0시·1시·2시·3시·4시·5시·6시 …… 밤부터 새벽을 거쳐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자는 둥 마는 둥 조는 채 자는 채 깬 채 얼뜬 채 지내다 보니, 때마다 어느 새가 어떻게 지저귀는지를 가만히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숱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새는 무슨 새일까. 이 새는 또 어떤 새인가.’ 하고 생각할 뿐, 어느 새인지는 모릅니다. 그저, 똑같이 우짖는 소리를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에도 듣는다고 떠올리면서, 새들은 새들대로 한삶을 일구니까, 밤에는 밤대로 볼일을 보며 지저귈 테고, 아침과 낮에는 또 아침과 낮대로 볼일을 보며 지저귀겠거니 여깁니다. 둘째 아이가 돌을 지나고 첫째 아이가 제법 클 무렵에는 네 식구가 숲속으로 들어가서 ‘하루 내내 우리 귀를 해맑게 간지럽히는’ 숱한 목소리를 누가 내는지 찾아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같은 새라 하더라도 지저귀는 소리가 같은 적이 없습니다. 높낮이·길이·크기·느낌·맑기 모두 다른 소리입니다. 꾀꼬리이든 올빼미이든 뻐꾸기이든 딱따구리이든, 같은 소리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엊그제부터 가느다랗게 조금씩 들리는 풀벌레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풀벌레라 하더라도 똑같은 소리란 없습니다. 이제 밤에만 오글오글 복닥복닥 들리는 개구리소리도 매한가지예요. 수백 수천 개구리가 한꺼번에 울지만, 수백 수천 개구리는 다 다른 목소리로 웁니다. 이 다 다른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리며 어슷비슷한 한 가지 소리로 들리려니 하고 여길 뿐이에요.


.. 나는 산속에 있는 조그만 집에서 살아요 ..  (2쪽)


 그림책 《새들아, 어디 사니?》를 곰곰이 되읽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혼자서 읽고, 아이를 불러 팔베개를 한 채 누워서 다시 읽습니다. 혼자 읽을 때에는 책이 어떻게 짜이고 줄거리와 엮음새가 어떠한가를 곱새깁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번역글이 어떠한가를 돌아보고, 그림이 얼마나 살갑거나 올바르거나 알맞은가를 가눕니다. 혼자 읽을 때에는 미처 못 느꼈는데, 아이한테 읽히는 동안 번역글은 번역글대로 조금 엉성하고, 그림결은 그림결대로 곳곳에 잘못된 대목이 드러납니다.

 맨 첫 그림인 2∼3쪽 그림부터 엉성합니다. 2∼3쪽을 보면, 그린이가 숲속에서 나무로 집을 짓고 밭을 일구는 모습이 나오는데, 밭에서 괭이질을 하면서 괭이 잡은 손이 잘못되었으며, 괭이가 너무 짧습니다. 흙을 뒤엎을 때에 쓰는 괭이는 무척 깁니다. 무척 긴 괭이는 손잡이 끄트머리 쪽만 잡으며 땅을 폭폭 찍습니다. 손잡이 가운데나 앞쪽을 잡으며 괭이를 휘두를 수 없을 뿐더러, 이렇게 하면 힘이 많이 들고 땅을 찍지 못합니다. 괭이질을 하는 허리 모습도 잘못 그렸어요. 이어지는 4쪽 그림에서는 괭이가 아닌 곡괭이가 나옵니다. ‘응, 곡괭이로 밭을 일군다고? 이러할 수도 있지만 말이 안 되잖아?’

 곡괭이와 괭이는 길이와 크기와 모양 모두 다릅니다. 2∼3쪽 그림은 괭이 모양이지 곡괭이 모양이 아닙니다. 2∼3쪽에서 곡괭이를 그리려 했다면 날이 더 굵고 앞뒤로 삐죽하게 나와야 할 뿐 아니라, 손잡이는 더 짧아야 합니다. 더구나, 곡괭이로 땅을 찍을 때에는 이러한 손과 허리 모습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곡괭이는 날이 무척 무겁기 때문에, 머리 위로 쳐들 때에는 한손은 날 바로 밑에 힘을 뺀 쥐 살짝 쥐고 다른 한손으로 어깨죽지 께에서 단단히 붙잡습니다. 내리찍을 때에는 날 바로 밑에 힘을 뺀 채 쥔 손을 스르르 밑으로 내리며 아래쪽에서 단단히 쥔 손 위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며 만납니다. 땅을 찍을 때에는 두 손으로 손잡이 아래쪽을 쥐는 모양이 됩니다.

 그러나, 땅을 찍고 나서 스르르 곡괭이를 잡아당겨 다시 위로 올리는 모습을 그렸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모습이라 하더라도 그림은 잘못 그렸습니다. 곡괭이질을 해 보면 쉬 알 수 있습니다.

 7쪽 그림에서 나무를 타며 둥지를 찾는 그린이 모습이 나옵니다. 이 그림에서도 어른이 타는 나무마다 줄기와 가지가 너무 가느다랗습니다. 이토록 가느다란 줄기와 가지라면 어른이 나무타기를 할 수 없어요. 나뭇줄기나 나뭇가지가 꺾이니까요. 훨씬 두꺼워야 합니다. 27쪽 까치 그림도 까치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합니다. 34쪽 꾀꼬리 그림도 꾀꼬리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새들아, 어디 사니?》는 자연 터전이나 멧새나 들새를 꼼꼼히 그려내어 보여주는 도감이 아닙니다. 살짝 엉성하게 그리든 아주 빈틈없이 그리든, 따스한 느낌이 살아나도록 보드랍게 그리면서 그린이 뜻대로 사랑스러운 손길을 나누면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그리든 자연을 그리든 새를 그리든 둥지를 그리든, 조금 더 마음을 쏟아 그림을 그려 준다면, 훨씬 놀라우면서 아름답고 좋은 그림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9쪽 황새 그림에서 황새는 날개가 이보다 훨씬 더 큽니다. 32∼33쪽 까마귀 그림에서도 까마귀는 이보다 몸뚱이와 날개가 더욱 큽니다. 까마귀는 부리도 되게 커요.

 그림책 《새들아, 어디 사니?》는 ‘자연 지식’이나 ‘과학 지식’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 “새 둥지를 찾았다”라는 말처럼, 숲속에서 살아가며 비로소 깨달은 새 둥지가 더없이 사랑스러우면서 반갑기에, 이들 새 둥지를 하나하나 사귀는 걸음걸이를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을 더 예쁘게 그리려 했기에 이렇게 ‘자연 모습하고는 살짝 동떨어진’ 그림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까마귀는 그야말로 새까만 빛깔이 아주 빛나면서 우람합니다. 꾀꼬리는 그야말로 노란 빛깔이 까만 얼룩이랑 아주 아름다이 어우러지면서 멋집니다. 까치는 흰빛과 검은빛이 예쁘게 어우러진 귀염둥이입니다(밭을 다 망가뜨리니 마냥 귀염둥이일 수만은 없지만).

 새 둥지를 찾아보며 어여쁜 ‘멧새 한삶’이나 ‘숲새 한살이’를 돌아본다면, 둥지 모양뿐 아니라, 이 둥지에 깃든 작은 목숨 또한 한결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이웃으로 어깨동무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림결을 예쁘게 가다듬어도 좋지만, 조금 더 옳고 바르게 마주바라보면 좋겠어요. 나무 한 그루를 그리더라도 ‘예쁘장하다고 여기는 나무 모습’이 아니라, 참말 ‘숲에서 자라는 씩씩한 나무 모습’을 그리면 좋겠어요. 들새는 들새답게, 멧새는 멧새답게, 숲새는 숲새답게 마음껏 날갯짓을 하면서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며 새끼를 보듬는 사랑스러운 한삶과 한살이를 나눌 수 있게끔, 그림결을 더 매만지면 좋겠습니다. (4344.5.30.달.ㅎㄲㅅㄱ)


― 새들아, 어디 사니? (스즈키 마모루 글·그림,이선아 옮김,비룡소 펴냄,2005.3.3./75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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