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기 어린이


 첫째 아이는 곧 석 돌을 맞이한다. 석 돌을 맞이하는 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이 아이가 얼마나 몸과 마음으로 잘 느끼거나 아는가를 날마다 새롭게 깨닫는다. 아이가 모르는 일이란 없다. 어버이가 못 알아채거나 둘레 어른이 안 알아챌 뿐이다.

 아이가 물가를 거닌다. 그렇지만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둘레 어른이나 언니 오빠 가운데 물에서 저를 아끼면서 즐거이 놀아 줄 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다. 장난걸기는 장난을 거는 쪽에서는 재미날는지 모르지만, 장난을 받는 쪽에서는 못마땅하거나 싫을 수밖에 없다.

 멧골학교 어린이와 어른이 손으로 모심기를 하던 어제, 아이는 논둑에서 얼쩡거리기만 한다. 아이한테는 무논 또한 똑같은 물가이다. 아이한테 무논은 퍽 깊은 물이요, 진흙이 폭폭 빠지니 아이로서는 자칫 숨을 거둘까 두렵다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손으로 모를 알맞게 뜯어 진흙을 폭폭 밟으면서 물속에 손을 포옥 담그면서 살짝 쏙쏙 꽂는 모심기를 네 살 나이에 겪으면 퍽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모심기가 되든 그냥 물놀이가 되든 헤엄치기가 되든, 아이가 물에서 걱정없이 놀거나 어울릴 수 있다고 깊이 느끼기 앞서는 논에 들어올 수 없겠지.

 볍씨에서 쑥쑥 올라온 모를 조금씩 뜯어 무논에 심으며 생각한다. 손모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쉴 수 없는 일이고, 서둘러 끝낼 일이다. 이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둘레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기운을 북돋는 누군가 있어야 하리라. 노래를 듣고 춤사위를 느끼면서 등판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잊고, 모를 꽂을 때마다 쿡쿡 쑤시는 허리를 잊어야 하리라.

 이제 거의 모든 논에서 논을 갈아엎거나 논삶이를 하거나 가을걷이를 하거나 볏짚을 털거나 하는 온갖 일은 기계가 맡는다. 모심기 또한 기계가 알뜰히 재빨리 해낸다. 손을 쓰는 일은 어리석다. 손을 써서 할 바에는 모든 일을 손을 써서 해야 할 테지. 자가용을 몰면서 무논에 손모를 심을 수는 없다. 아니, 자가용을 몰면서도 얼마든지 무논에 손모를 심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손모를 심는들 자가용을 모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면,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걷고 뛰고 달리고 서고 눕고 박차는 두 다리로 꼿꼿하게 살아가면서 흙과 물과 벼와 해와 숨을 손으로 받아들인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 볼을 쓰다듬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 머리카락을 빗은 다음 두 갈래로 묶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를 품에 안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를 눕히고 이불을 여미어 밤잠을 재운다. (4344.6.7.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 빨래


 밤새 틈틈이 깨어나 갓난쟁이 기저귀를 갑니다. 아버지가 스스로 일어나 기저귀를 갈기도 하지만, 옆지기가 아버지를 부르기에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기도 합니다. 밤새 쌓이는 똥오줌기저귀가 몇 장쯤 되는가를 헤아려 밤 빨래나 새벽 빨래를 합니다. 밤이나 새벽에는 넉 장까지 그대로 담그고, 다섯 장째부터 빨래를 합니다. 시골집은 밤이 되면 퍽 쌀쌀해서 새벽에 보일러를 돌립니다. 새벽나절에는 따순 물로 새벽 빨래를 합니다.

 아기가 빨래거리를 잔뜩 내놓으면 깊은 밤 한 시이든 두 시이든 빨래를 한 차례 더 합니다. 밤 열두 시에 겨우 등허리를 토닥이며 자리에 드러눕기 앞서 모든 빨래를 마무리짓습니다. 그러나 열두 시 땡 하고 지나고 나서도 으레 새 빨래거리는 나오고, 새벽 빨래를 하건 안 하건 밤새 잠자리에 들기는 어렵습니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사람은 밤잠도 새벽잠도 이룰 수 없습니다. 밤잠도 새벽잠도 이루기 힘든 터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이기저귀를 채우는구나 싶습니다. 가뜩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서는 집안대로 온갖 일에 시달릴 테고, 집밖에서는 집밖대로 돈벌이를 하느라 힘들 테니까요.

 새벽 세 시나 네 시 무렵에 새벽 빨래를 합니다. 시나브로 이른여름에 접어든 유월 첫머리 새벽은 퍽 밝습니다. 새벽 세 시 반쯤부터 희부윰합니다. 네 시를 넘기면 하이얗고, 네 시 반부터는 꽤 환하며, 다섯 시면 동이 다 틉니다. 더운 여름날 밭에서 김매기 좋은 때는 네 시 반부터 여섯 시 사이입니다. 나는 이무렵, 네 시 안팎에 새벽 빨래를 하면서 하루를 엽니다. 첫째 아이가 밤오줌기저귀를 뗄락 말락 하는 무렵에 둘째 갓난쟁이 똥오줌기저귀를 빨아야 하다 보니, 내 팔뚝은 남아날 겨를이 없고 숨돌릴 틈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팔뚝이 저린 채 보냅니다. 둘째 아이가 석 돌이 될 네 살을 맞이할 무렵까지 새벽 빨래입니다. (4344.6.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힘드니까 책읽기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어른들이 책을 장만해서 아이들 손에 쥐도록 하니까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어른들이 책을 장만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만드는 어른이 있기에 어린이는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어른이 만듭니다. 어른들이 읽을 책도 어른이 만듭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만들기라는 일 때문에 바쁘거나 힘듭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드는 책에만 마음을 쏟느라 다른 책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드는 책은 내가 만드는 책대로 꼼꼼히 살피거나 찬찬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책은 다른 사람이 만든 책대로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기쁘게 아로새겨야 합니다. 다른 좋은 책을 찾아서 읽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지난날대로 교사 노릇 하기 참 벅찼다고 합니다. 갖가지 공문서를 써야 하고, 아이들한테 돈을 거두어야 할 뿐더러, 남자 교사는 밤새워 학교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면서 일삯은 몹시 적었습니다.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교사 구실 하기 꽤 힘겹다고 합니다. 지난날만큼 공문서를 써야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한테 돈을 거두지 않는데다가, 이제 학교를 밤새워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면서 일삯은 꽤 많습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교사답게 일하는 터전이 안 된 지난날하고 견주어 이모저모 나아졌대서 교사 구실이 수월할 수 없습니다. 교사 구실이 수월하지 않은 까닭은 교사가 교사다움을 돌볼 수 있게끔 언제나 새로 배우거나 새로 가다듬으며 새로 태어나도록 이끄는 얼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사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몸소 보여줍니다. 입으로 떠들며 가르치지 않더라도 모든 어른은 모든 어린이 앞에서 몸소 삶을 보여줍니다.

 어른이 어린이한테 보여주는 삶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구지레할 수 있습니다. 시커먼 돈을 뿌리거나 집어삼키는 어른만 구지레하지 않습니다. 말과 삶이 다르거나 말이 거칠거나 막된 어른 또한 구지레합니다.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길하고 동떨어진 어른이라면 모두 구지레해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책을 읽으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어른들 스스로 책을 읽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조차 제대로 읽기는 읽고 나서 읽으라고 책을 내밀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일곱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며 열다섯 살이 되다가는 스무 살이 될 무렵, 이러한 나이에 걸맞게 차근차근 읽으며 받아들일 만한 책을 ‘어른으로서 먼저 살뜰히 읽’는가요. 아이들이 즐거이 읽을 만한 책을 하나하나 살피거나 가려서 알뜰히 갖추었는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힘듭니다. 바쁘고 힘들며 벅찹니다. 그래, 더없이 바쁘기 때문에 책을 읽습니다. 더없이 바쁜 터라 내 삶을 사랑하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그지없이 힘들기 때문에 책을 읽습니다. 그지없이 힘든 터라 내 삶을 아끼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면서 거듭나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 앞에서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한 어른이라 할 만합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지 않을 뿐더러 거듭나지 않는 어른이라 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나 교사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4344.6.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한테 못할 짓 2


 자가용을 몰고 텃밭으로 찾아가서 푸성귀를 뜯거나 김매기를 하는 일이란 아이한테 못할 짓이다. 자가용을 몰고 시원한 골짜기로 찾아가서 푸른 숲과 맑은 물을 누리거나 즐기는 일이란 아이한테 못할 짓이다. 자가용을 몰았으면 고기 구워 먹는 집으로 가야지. 자가용을 몰려면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가야지. 자가용을 굴리니까 높직한 아파트에 살림집을 마련해서 이런저런 학원에 아이를 넣어야지. (4344.6.5.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1.6.1.
 : 아이를 재우는 자전거



- 둘째가 태어난 뒤 첫째는 영 말썽쟁이 노릇을 한다. 둘째가 태어난 다음에는 바깥에서 나가 놀기 힘들 뿐더러, 어머니나 아버지가 바깥마실을 시키지 못하니까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첫째로서는 집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말썽을 피울밖에 없는지 모른다. 새벽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아이를 생각해서 자전거마실을 하기로 한다. 아이는 아버지가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실을 나가면 수레에서 곧잘 잠든다. 마실을 나가는 길에는 노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든다.

- 둘째 기저귀를 빨아 마당에 넌다. 기저귀가 보송보송 마르기를 바라면서 자전거와 수레를 꺼낸다. 아이를 수레에 태운다. 아이는 벌써부터 노래를 부른다. 마을 논둑길을 달린다. 마을 어귀 보리밥집에 가서 달걀이랑 통밀가루를 장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조용하다. 눈이 가물가물하다. 그렇지만 아직 잠들려면 더 있어야 한다.

- 집으로 돌아오려다가 자전거머리를 돌린다.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더 돌기로 한다. 오 분쯤 지나자 아이는 고개를 까딱까딱하더니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새근새근 잘 잔다. 잘 자는 아이가 귀여우면서 고맙다. 착하고 어여쁜 아이로 함께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 집에 닿아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 신을 한 짝씩 벗긴다. 안전띠를 푼다. 집 문을 연다. 아이를 살며시 안는다. 평상으로 데려가 가만히 눕힌다. 조금 뒤 기저귀를 채운다. 이동안 둘째가 내놓은 새 똥오줌기저귀를 빨고 아버지도 몸을 씻는다. 아이를 재우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사이를 누비면 푸른빛 바람이 시원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