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니까 책읽기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어른들이 책을 장만해서 아이들 손에 쥐도록 하니까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어른들이 책을 장만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만드는 어른이 있기에 어린이는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어른이 만듭니다. 어른들이 읽을 책도 어른이 만듭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만들기라는 일 때문에 바쁘거나 힘듭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드는 책에만 마음을 쏟느라 다른 책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드는 책은 내가 만드는 책대로 꼼꼼히 살피거나 찬찬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책은 다른 사람이 만든 책대로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기쁘게 아로새겨야 합니다. 다른 좋은 책을 찾아서 읽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지난날대로 교사 노릇 하기 참 벅찼다고 합니다. 갖가지 공문서를 써야 하고, 아이들한테 돈을 거두어야 할 뿐더러, 남자 교사는 밤새워 학교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면서 일삯은 몹시 적었습니다.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교사 구실 하기 꽤 힘겹다고 합니다. 지난날만큼 공문서를 써야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한테 돈을 거두지 않는데다가, 이제 학교를 밤새워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면서 일삯은 꽤 많습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교사답게 일하는 터전이 안 된 지난날하고 견주어 이모저모 나아졌대서 교사 구실이 수월할 수 없습니다. 교사 구실이 수월하지 않은 까닭은 교사가 교사다움을 돌볼 수 있게끔 언제나 새로 배우거나 새로 가다듬으며 새로 태어나도록 이끄는 얼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사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몸소 보여줍니다. 입으로 떠들며 가르치지 않더라도 모든 어른은 모든 어린이 앞에서 몸소 삶을 보여줍니다.

 어른이 어린이한테 보여주는 삶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구지레할 수 있습니다. 시커먼 돈을 뿌리거나 집어삼키는 어른만 구지레하지 않습니다. 말과 삶이 다르거나 말이 거칠거나 막된 어른 또한 구지레합니다.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길하고 동떨어진 어른이라면 모두 구지레해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책을 읽으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어른들 스스로 책을 읽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조차 제대로 읽기는 읽고 나서 읽으라고 책을 내밀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일곱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며 열다섯 살이 되다가는 스무 살이 될 무렵, 이러한 나이에 걸맞게 차근차근 읽으며 받아들일 만한 책을 ‘어른으로서 먼저 살뜰히 읽’는가요. 아이들이 즐거이 읽을 만한 책을 하나하나 살피거나 가려서 알뜰히 갖추었는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힘듭니다. 바쁘고 힘들며 벅찹니다. 그래, 더없이 바쁘기 때문에 책을 읽습니다. 더없이 바쁜 터라 내 삶을 사랑하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그지없이 힘들기 때문에 책을 읽습니다. 그지없이 힘든 터라 내 삶을 아끼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면서 거듭나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 앞에서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한 어른이라 할 만합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지 않을 뿐더러 거듭나지 않는 어른이라 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나 교사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4344.6.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