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비싸더라도 2025.11.8.흙.



즐겁게 짓고 다루며 쓰는 살림이라면, 돈으로 얼마짜리인지 안 따지게 마련이야. 안 즐겁게 사거나 빌리거나 얻은 살림이기에, 자꾸 돈으로 얼마짜리인지 따진단다. 너는 1만 원짜리나 100만 원짜리나 1억 원짜리를 짓거나 마련하거나 쓰지 않아. 너는 오롯이 ‘살림’을 짓거나 마련하거나 쓸 노릇이란다. 돈이나 금이나 값을 따질 적에는 ‘돈·금·값’에 마음을 기울이느라 ‘살림’을 쉽게 잊어. 네가 늘 살림을 건사하거나 다루거나 쓸 적에는, 그야말로 ‘살림’이라는 말씨를 온마음에 담는단다. 왜 비싸다고 여기겠니? 살림을 안 보거든. 왜 싸다고 여길까? 살림을 짓겠다는 마음을 잊거든. 비싸더라도 사거나 써야 하지 않아. 써야 하니까 기쁘게 맞이해서 즐겁게 쓰기에 살림살이로 자리를 잡아. 집에 들일 적부터 비싸다고 여기는 마음인 채, 내내 “비쌌어!” 하고 여기느라, 살림이 아닌 ‘비싼것’으로 뿌리내리면서 그만 못 쓰거나 잘못 쓰거나 쉽게 버리고 만단다. 늘 ‘제것’을 제대로 쓰면 될 일이야. 값은 안 대수롭지. 돈이야 벌어서 대면 어느새 다 갚고 메우고 아물지. 곁에 무엇을 어떻게 둘는지 헤아려 보렴. 너는 네 손끝에 무엇을 담거나 놓고서 하루를 어찌 누릴는지 살피렴. 즐겁기를 바라면, 어떤 돈·금·값이건 즐겁게 장만해서 기쁘게 편단다. 더 싸기를 바라니까, 돈·금·값은 이대로 잔뜩 들이면서도 삶이 헛돌다가 그만 무너지지. 햇볕에, 비에, 바람에, 별에, 꽃에, 숲에, 바다에 누가 돈을 매기니? 해바람비에 값을 매기면, 이 별이 사라진단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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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핵잠수함  2025.11.9.해



바다밑으로 숨듯 잠겨서 다니는 배라서 ‘잠수함’이라는데, 이 ‘물밑배’는 바다를 읽거나 느끼거나 알려고 뭇지 않아. 남몰래 파고들어서 펑펑 터뜨릴 셈으로 뭇는단다. 물밑에서 더 오래 버티며 옆나라로 파고들려는 뜻으로 ‘핵잠수함’을 뭇지. 어깨동무나 이웃사랑이란 한 줌조차 없기에 잠수함·핵잠수함을 뭇는데, 이곳에 드는 돈이 엄청나. 이런 물밑배를 거느리는 돈도 엄청나고. 너는 헤아릴 수 있을까? 얼마나 어깨동무·이웃사랑(평화·민주)을 안 바라기에, 이토록 목돈을 들여서 멍텅구리를 자꾸 뭇고 거느리고 자랑하려 할까? 전쟁무기와 군대를 늘릴수록 사람들 모두 가난에 허덕이고 굶주리는데, 힘꾼(권력자)과 똑똑이(지식인·과학자)와 벼슬아치는 오히려 떼돈을 벌어. 어느 살림살이에도 못 쓰는 ‘쓰레기 쇠붙이’를 무으려고 돈·짬·품·땀·빛(전기)·물을 끝없이 써대며 푸른별을 더럽히고 망가뜨린단다. 나라를 지키려면 핵잠수함·핵미사일·핵폭탄·핵발전소가 있어야 할까? 아무래도 ‘나라’가 아닌, 또 ‘나라지기·나라일꾼’도 아닌, 힘꾼·똑똑꾼·벼슬아치·돈꾼·이름꾼이 우쭐대며 우두머리로 서려는 속셈으로 벌이는 짓이야. 쓸모없는 짓이 마치 뜻있고 값지기라도 하다고 눈속임을 하지. 넌 생각을 해야 해. ‘살림살이’가 아닌 ‘불장난’을 하려는 속뜻을 읽어내고 알아차려야 하고, 이런 불장난이 아닌 ‘살림짓기’를 하자고 목소리를 내야겠지. 네가 손수 살림짓기를 하면서 멧새노래마냥 들려주는 작은 목소리가 온누리를 바꿀 수 있어. 살림을 안 짓는 무리는 멍청한 목소리를 높일 만한데, 너는 그저 웃으면서 살림노래를 부르기를 바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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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동구 인문학당 (2024.7.24.)

― 광주 〈동명책방 꽃이피다〉



  우리말에는 ‘사춘기’가 없고, 우리나라에는 ‘사춘기’라 이를 만한 때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푸른별 온나라가 마찬가지인데,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즈음”은 “철드는 나이”요, 철드는 때란 따로 ‘봄나이(봄빛을 바라볼 줄 알고 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숱한 나라는 ‘봄나이’로 무르익을 아이를 굴레(제도권입시지옥)에 가두느라 웬만한 아이는 몸앓이랑 마음앓이가 겹쳐서 지치고 앓아요.


  스스로 철들며 스스로 바라보며 스스로 해보려는 무렵에 스스로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넘어지고 다치기에 비로소 봄나이를 이루면서 어른이라는 길에 접어들어요. 셈겨룸(입시)이란 아주 조그만 디딤돌입니다. 이 디딤돌 건너에서 삶과 살림과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보금자리를 이루자면, 아이랑 어버이는 늘 이야기하고 늘 함께 일하고 늘 숲을 마주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광주 〈동구인문학당〉에서 마련하는 ‘손바닥책 보임자리’에 곁들이처럼 ‘손바닥에 피어난 꽃과’라는 줄거리로 이야기를 폅니다. 일본말 ‘문고본(문고판)’이나 영어 ‘미니북·페이퍼백’이 있습니다만, 우리말로는 ‘손바닥책’에 ‘주머니책’에 ‘작은책’이요 ‘씨앗책’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바라보려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 길이 다릅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마치고서 〈동명책방 꽃이피다〉에 살짝 들릅니다. 산수동에서 동명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책집이름도 ‘동명책방’으로 갈아입습니다.


  이 삶을 이루는 수수께끼로 스며들 수 있다면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사랑을 받지 못 했다고 여기면서 힘(권력)만 주워담은 길에 얽매이면 비틀비틀 절어서 절뚝절뚝하다가 쓰러지지요. 아이한테는 바보스런 몸짓이 아닌, 오늘 우리가 오늘 짓는 즐거운 하루를 이야기하면 넉넉하다고 느껴요.


  글책이건 그림책이건 오래오래 지켜보고 마음에 담은 숨빛으로 새롭게 여미기에 반짝입니다. 섣불리 목소리부터 앞세우면 다 망가지고 흩어져요. 봄에는 봄빛으로, 여름에는 여름빛으로, 갈겨울에는 갈빛과 겨울빛으로 물들며 씨앗을 맺으면 됩니다. 함께 노래하는 글꽃은 어디서나 피어날 수 있습니다. 혼자 노래하는 그림꽃도 언제나 돋아날 수 있어요.


  작은사람은 작은손에 작은책을 작은씨앗으로 삼아서 작게 쥡니다. 작은몸에 책꾸러미를 큰등짐으로 메지만 다시금 작은걸음으로 걸어서 작은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멋져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촐히 꿈꾸면 느긋합니다.


ㅍㄹㄴ


《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11.24.)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조선남, 삶창, 2024.3.29.)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장재연, 동아시아, 2019.5.14.)

《호호호》(윤가은, 마음산책, 2022.2.5.)

《가불 선진국》(조국, 메디치, 2022.3.25.)

《섬에서 부르는 노래》(손세실리아, 강, 2021.11.3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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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바보와 얼간이



  ‘바보’는 아직 잎갉이를 하는 작은벌레를 가리킨다. 애벌레와 같은 사람이 천천히 꿈을 그리며 나아갈 삶을 노래하는 이름이다. ‘얼간이’는 예나 이제나 안 배우고 안 지으면서 남눈에 스스로 휘둘리는 몸짓을 나타낸다. 사람으로서 사람빛을 잊기에 딱하게 바라보는 이름이다.


  모든 ‘알’은 애벌레를 거쳐서 고치를 지나고는 찬찬히 나비로 깨어나려고 이곳에 태어난다. 모든 ‘씨’는 흙한테 포근히 안겨서 제때와 제철을 읽는 날까지 하늘바라기로 자라나려고 이곳에 맺는다. 모든 ‘사람’은 살림을 짓는 삶을 몸소 일구는 사이에 사랑을 배우고 익혀서 나누려는 뜻으로 이곳에 온다.


  내가 지내는 전남 고흥 도화면인데, 2011년에 처음 깃들 즈음, 면소재지 어린배움터는 200 어린이가 넘고 우글우글했다. 면소재지 푸른배움터도 여러 칸(학급)에 바글바글했다. 그무렵 이 시골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사라질 줄 내다본 사람은 아주 드물거나 없었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젊은이도 아기도 없는 마을이 수두룩했다. 나는 서른여섯 살에 이 시골에 깃들었다. 둘레에서 놀랐다. “한창 젊은데 왜 서울에 안 있고 이 막장까지 왔수? 애까지 둘이나 데리고? 서울에서 사고쳤나?” 같은 소리를 거의 모두라 할 시골사람한테서 들었다. 나는 뿌리내리는 나무로 살아가서 숲을 이루려고 곁님과 아이들하고 스스로 시골로 찾아왔다. “시골아이를 서울로 등떠미는 낡은 배움틀을 얼른 버리고서, 이곳 아이들이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만 마친 뒤에 이 시골에서 조촐히 즐겁게 작게 보금자리를 짓고 일구는 길을 함께 새로 배우고 나눌 일입니다.” 하고, 고흥서 만나는 누구한테나 말했으나, 다들 한결같이 비웃거나 흘려넘겼다. “작가 양반은 젊어서 그런지, 참 쓰잘데없는 걱정만 하는구만. 그래서 작가 양반인가?” 같은 소리를 실컷 들었다.


  다가올 2026년에 도화면 어린배움터와 푸른배움터 모두 ‘입학예정자’가 ‘0’이라고, ‘위기’라고 시끌하다. 이제서? 이제서야? 지난해에는 아마 ‘1명 입학’인 줄 안다. 지난해에는? 그러께는? 바글대던 여러 칸이 “한 칸 열 아이”도 안 될 만큼 줄어드는 동안에는? “한 칸 두세 아이”로 확 줄어든 때에는? 여태 손놓고 팔짱끼고 등돌리면서 “뭐, 몇 해 있으면 딴 데(학교) 가니까 걱정없지.” 하던 그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러니까 그들(교사)은 다섯 해마다 자리를 옮기니까, 시골배움터가 아슬하든 벼랑끝이든 닫을 판이든 쳐다볼 까닭도 일도 없다. 시골 할매할배는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가 닫든 말든 까맣게 모르는데다가 아예 아무 마음이 없다. 면장이나 군수나 공무원도 다른 자리로 곧 옮길 테니까 그들과 나란히 아무 눈길도 마음도 없다.


  여태 “서울로!”를 외치면서 “인서울 탈고흥” 푸름이한테 목돈을 장학금이랍시고 잔뜩 쏟아부은 굴레를 누가 꾀하고 누가 길미를 챙겼는지 뉘우치는 빛이 없다. 이 작은 시골 고흥에서는 몇 해 앞서까지 “서울대 합격 1000만 원, 연고대·이화여대 합격 500만 원, 그럭저럭 인서울 대학교 300만 원, 서울권 대학생은 4년 동안 기숙사 무료제공”이라는 장학금을 오래도록 펴왔다. 시골에서 나고자라서 푸른배움터까지 마치고서 논밭짓기를 하겠다는 젊은이한테는 10원조차 베푼 적이 없다. 그나저나, 지난 열 해 즈음에 걸쳐서 고흥을 비롯한 ‘인구소멸예정지’에 흘러든 나라돈은 2000억을 훌쩍 넘는 줄 안다. 어쩌면 1조쯤 들어왔을 수 있다. 이 돈은 어느 주머니로 쏙쏙 들어갔을까? ‘태양광·풍력 보상금’도 오지게 많은 줄 아는데, 다 누구 뒷주머니와 앞주머니에 숨었을까?


  새길찾기는 아주 쉽다. 모든 어린씨 푸른씨가 “졸업장 없는 학교”를 누리면 된다. “교과서 안 쓰는 하루”를 살림짓기로 갈아엎으면 된다. 모든 급식실을 닫고서 도시락을 싸거나 손수 밥짓기를 하면 된다. ‘학교 주차장’을 논밭으로 바꾸면 된다. 교육부를 통째로 닫고서, 시골은 시골대로 서울과 큰고장은 서울과 큰고장대로 ‘손수짓기(자급자족)’를 배우고 익히며 나누는 새판을 짜는 데에 목돈과 품을 들이는 얼거리를 짤 노릇이다.


  바보는 벼랑끝에 서면 드디어 눈을 뜬다. 벼랑끝에서 스스로 날아오를 길을 연다. 얼간이는 벼랑끝에서도 얼뜬 짓과 말로 노닥거리다가 슥 미끄러지고 나서야 “나 살려!” 하고 운다. 얼간이는 죽을 판에도 얼을 못 차리다가 죽는다.


  ‘오늘’은 도화면이지만, ‘모레’에는 고흥읍과 도양읍이다. ‘글피’는 전라남도요, 이레 뒤에는 온나라가 되겠지. 우리는 국회의원에 군의원·시의원·도의원·구의원 따위를 뽑을 까닭이 없다. 모든 ‘의원’은 제비뽑기로 그 고장 17살 푸른씨한테 맡겨야지 싶다. 돈·이름·힘을 거머쥔 늙고 낡은 꼰대를 싹 벼슬판에서 솎을 노릇이다. 군수와 시장도 뽑을 까닭이 없다. 면장과 구청장이 돌아가면서 맡으면 된다. 국회의원이라면, 그 고을 20살 젊은이 가운데 제비뽑기로 한 해씩 맡기면 된다.


  참으로 쓰잘데없는 뽑기를 확 줄이고서, 고을마다 마을마다 어린배움터하고 푸른배움터를 제대로 돌보면서 고을사람과 마을사람이 더 작고 조촐히 스스로 하루짓기를 하도록 이바지하면 된다. 밑돈(기본소득)이란, 이렇게 “마을 스스로 살림짓기”를 이루어 가면서 펴면 된다.


  오늘 이른아침에 부산으로 일하러 길을 나선다.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은 마을과 집에서도 또 먼길을 나서면서도 배우고 가르칠 노릇이라고 본다. 2025.11.2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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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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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3.

다듬읽기 283


《눈물 상자》

 한강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2008.5.22.



  꿈과 길이란 늘 스스로 빚고 짓고 가꾸면서 일으킬 테니, 어느새 천천히 이루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도 아이로 자라던 나날은 몸마음에 나란하고, 어릴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모든 하루는 새롭게 어울려서 흘러가는구나 싶습니다.


  꿈을 그리는 글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와 달리 ‘꿈시늉’을 하거나 ‘눈물짜기’나 ‘웃음짜기’를 하는 글은 여러모로 허울스럽습니다. 굳이 시늉글을 쓰거나 ‘짜내기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부리려고 쓰는 글이라면 덧없습니다. 목소리만 높이려는 글이라면 부질없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할머니가 있어서, 스웨덴 어린이한테 이야기꽃을 듬뿍 베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원수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한나라(한국) 어린이한테 이야기밭을 넓게 베풀었습니다. 스웨덴 할머니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꽤 철없이 굴고 놀았습니다만,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천히 철들며 사랑을 지피는 길을 느껴서 글을 일구었습니다. 한나라 할아버지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참 철없이 굴고 바보글(친일시)도 썼습니다만, 1945년을 맞이한 뒤 크게 뉘우치고서 1980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군사독재자하고 맞서서 어린이를 지키는 보금자리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고 안 돌본 분은 이원수 할배가 쓴 〈햇볕〉이라는 노래를 거의 모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았어도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를 모르는 분도 수두룩합니다. 이원수 할배는 ‘뉘우침글(참회록)’을 글꽃(동시·동화)으로 지폈습니다. 이이가 온삶이 뉘우침글이었기에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 같은 노래뿐 아니라 〈불새의 춤〉 같은 어마어마한 글까지 써낼 수 있었습니다. 〈불새의 춤〉은 전태일 님이 온몸을 불살라 박정희한테 맞선 지 석 달이 채 안 되어 선보인 글인데, 이 나라는 1987년까지 ‘빨간글’이라고 여겨 아무도 못 읽게 막은 바 있습니다.


  《눈물 상자》를 읽고서 한숨이 나왔고, 여러 달 한숨을 가다듬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글이라는데 왜 이다지도 일본말씨에 옮김말씨가 춤추어야 할까요? 왜 ‘무늬한글’을 써야 할까요? 우리는 한글을 이렇게 미워해도 될까요? 우리는 한글과 한말과 한빛과 한넋과 한얼을 이렇게 싫어하고 내치고 짓밟고 따돌리고 들볶아도 될까요?


  아무나 철들지 않으나, 누구나 철들 수 있습니다. 아무나 글을 쓰면 안 되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어마어마하고 엄청나게 사랑이라는 빛을 베풀 줄 아는 엄마요 어머니에 한어미(할머니)이기에 어질면서 얼찬이로 어울리며 서게 마련입니다. 엄마와 어머니와 한어미는 엄지(으뜸)이기도 합니다.


  조선 오백 해 내내 ‘암클’이라는 이름을 받은 우리글입니다. ‘수클’이라는 중국글(한문)을 붙잡은 꼰대와 힘꾼(권력자)은 조선이 무너진 뒤에는 곧장 일본말씨로 갈아탔고, 1945년 뒤에는 영어로 갈아탔습니다.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는 바로 ‘조선 오백 해 가부장권력자 + 일본부역자·조선총독부 + 군사독재자 꼰대말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글꽃을 받은 분이라면, 이제는 “어진 어른으로 어울리는” 숨빛으로 철들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쓴 모든 부끄러운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를 말끔하게 우리말씨로 가다듬어서 새로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강 씨가 쓴 글을 읽을 적마다 이 무늬한글이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ㅍㄹㄴ


《눈물 상자》(한강, 문학동네, 2008)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 어느 마을에 아이가 있다

→ 어느 마을에 사는 아이가 있다

5쪽


아이에게 특별한 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이가 남다른 줄 알아차린다

→ 아이가 다른 줄 알아본다

5쪽


누군가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 누가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 남이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6쪽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 갓 돋아난 푸른잎이 햇빛에 반짝이자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 갓 돋아난 잎이 햇빛에 반짝이니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6쪽


아빠는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버럭댄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발칵댄다

8쪽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 크고 검은 가방을 들었다

9쪽


꾸벅 목례만 남기고 돌아섰다

→ 꾸벅하고서 돌아선다

→ 목절을 하고서 돌아선다

9쪽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 눈시울이 뜨겁다고 느낀다

→ 눈시울이 뜨겁다

11쪽


무엇인가가 아저씨의 외투 속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뭐가 보인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뭐가 동그랗게 부풀어오른다

11쪽


아이는 문득 자기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그 파란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 아이는 문득 하루 가운데 파란때를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한 얼굴이다

→ 아이는 문득 하루에서 파란무렵을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하다

13쪽


이것들을 모두 수집하는 데 무려 이십 년이 걸렸단다

→ 이 모두를 모으는 데 스무 해나 걸렸단다

→ 이렇게 모두 모으느라 꼭 스무 해 걸렸단다

14쪽


자신이 우는 이유가 순수함이나 아름다움보다는 막막함에 가깝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맑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먹먹하기 때문에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 깨끗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갑갑해서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24쪽


한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 그냥 부끄럽다

→ 그저 부끄럽다

→ 너무 부끄럽다

24쪽


순수한 눈물에 대해서 더 얘기해주세요

→ 맑은 눈물을 더 들려주셔요

→ 깨끗한 눈물을 더 얘기해 주셔요

24쪽


담요 속에 얼굴을 묻고

→ 담요에 얼굴을 묻고

36쪽


눈물들을 모두 삼킨 뒤

→ 눈물을 모두 삼킨 뒤

45쪽


울음이 격해지자

→ 흐느끼자

→ 몹시 울자

45쪽


투명하고 미묘한 빛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 물방울 같고 고운 빛이 햇빛에 반짝인다

→ 맑고 눈부신 빛이 해를 받아 반짝인다

6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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