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 다시 읽는 사진, 거듭 찍는 사진

 


  2012년에 다섯 살을 누리는 아이하고 글씨 쓰기를 합니다. ㄱㄴㄷ부터 하나하나 함께 쓰며 놉니다. 깍두기 공책을 가득 메우는 아이는 오래지 않아 한글을 싱그럽게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이곳저곳에 적힌 글월을 읽을 수 있을 테며, 어느 날에는 제 삶이야기를 짤막하게 글로 옮길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렇게 아이가 글월을 읽거나 제 삶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는 퍽 먼 일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이와 글씨 쓰기를 함께 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사진을 찍습니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새삼스레 들여다보고, 오늘 새삼스레 거듭 찍으며, 하루가 지나면 또 예전 사진을 들여다볼 테고, 다시금 새삼스레 새롭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길 걷는 다른 분은 어떠할는지 잘 모릅니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과 사람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꾸준히 찍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사랑하는 짝꿍이 있다 할 때에 사진을 어떻게 찍을는지 헤아려 보셔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아마 날마다 새롭게 만나면서 새롭게 사진을 찍을 테지요. 사랑하는 나날을 누리는 햇수가 늘수록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사진첩 몇 권이 되도록 두툼하게 늘 테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 아니라 할 만한 모습까지 사진으로 찍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두 사람한테는’ 서로 믿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한 자락 싣는 사진이거든요. 좋아하는 마음을 담으니 늘 다시 들여다보는 사진이 되고, 언제나 거듭 찍는 사진이 됩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이녁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날마다 새롭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랑 오늘이 얼마나 다르겠느냐 말할 분이 있을 터이나,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내 마음은, 어제는 어제요 오늘은 오늘이에요. 어제와 같은 놀이를 오늘 똑같이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새롭게 노는 삶이에요. 새삼스럽게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아이가 손에 힘을 꽉 주며 깍두기 공책 메우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봅니다. 사진기 떨리지 않도록 잘 붙잡고는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이제 그만 찍자 싶지만, 사진기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열 장 스무 장 잇달아 찍습니다. 하루 지나 이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느 사진 하나 버릴 수 없다고 느낍니다. 며칠 지나 또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어느 사진이든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서 사진길 걷는 분 가운데 최민식 님은 부산 자갈치 저잣거리에서 벌써 쉰 해 넘도록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저잣거리 일꾼’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최민식 님으로서는 ‘늘 새로운 길’을 걷는 마음일 테고, ‘언제나 다른 삶결’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느낄 테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될 때에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운다면, 사진학교를 못 다니고 사진강의를 못 들었다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즐길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곱게 건사한다면, 사진이론이나 사진비평을 모른다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사진을 읽는 하루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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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피아노 밑에 들어가

 


  키가 아직 1미터 안 되는 동생 산들보라는 누나가 피아노를 칠 때에 옆에서 얼쩡얼쩡거리다가 겨우 손을 뻗어 건반 몇 누르곤 한다. 밥 잘 먹고 씩씩하게 놀며 바지런히 걷기를 해 보며 너도 누나 곁에 올라 앉아 피아노를 함께 치며 놀 날을 기다린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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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21 07:32   좋아요 0 | URL
피아노도 있네요?부럽~
산들보라 머리 여러 번 찍었겠어요?ㅋㅋ
마지막 장면 사름벼리 손자세 아주 좋군요.

파란놀 2012-06-21 07:43   좋아요 0 | URL
석 달 지난 사진인데, 이제서야 들여다보고 갈무리했답니다 @.@
이제 둘 다 피아노 갖고 잘 놀아요.

도시 떠나 시골로 가면서 장만한 피아노예요.
시골에서는 마음껏 칠 수 있거든요~~~ ^^
 

[함께 살아가는 말 100] 하나 둘 셋

 

  이웃에 놀러온 여섯 살 아이가 우리 집 다섯 살 아이와 함께 놉니다. 둘은 달리기 놀이를 합니다. 여섯 살 아이가 우리 집 다섯 살 아이한테 “준비, 땅!”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우리 집 아이는 언니가 하는 대로 “준비, 땅!” 하고 똑같이 말합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내 어릴 적에도 “준비, 땅!” 하는 말을 썼고, “요이, 땅!”이라는 말도 썼어요. 중학생이 될 무렵 ‘요이’는 일본말이니 안 써야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내 오랜 동무들은 ‘요이’가 일본말인 줄 잘 모르기도 하고, 일본말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했더라도 여태 이 일본말을 씁니다. 그런데, “요이, 땅!”을 안 쓰고 “준비, 땅!”을 쓴다 하더라도 한국 말투라 하기 어렵습니다. 껍데기만 살짝 입힌 어설픈 말투예요. 일본사람은 ‘자리에 가만히 서’며 ‘요이’라 하는데, 이 대목을 ‘준비’라는 한자로 바꾼다 한들 한국 말투가 되지 않고, 일본사람이 총 소리를 흉내내어 적은 ‘땅’을 그대로 쓰니, 더더욱 얄궂어요. 한국사람은 총 소리를 ‘탕’으로 적거든요. 한국사람은 한숨 소리를 ‘후유’로 적고, 일본사람은 한숨 소리를 ‘휴’로 적어요. 신나게 놀고 들어온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아버지하고도 더 놀고 싶습니다. 아이는 아버지한테 “준비, 땅!”이라 말합니다. 아버지는 “싫어, 난 ‘준비 땅’ 안 할래. 난 ‘하나 둘 셋’ 할래.” 하고는 “하나, 둘, 셋!” 하고 말하며 달립니다. 살짝 헷갈려 하던 아이는 이윽고 아버지 말투를 따라 “하나, 둘, 셋!” 하면서 달립니다. 나중에 다른 동무가 마을에 찾아와 놀 적에도 우리 집 아이는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며 달립니다. (4345.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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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장 - 임성용 시집 삶의 시선 24
임성용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생각을 지으며 삶을 사랑하기
[시를 노래하는 시 21] 임성용, 《하늘공장》

 


- 책이름 : 하늘공장
- 글 : 임성용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7.7.10.)
- 책값 : 6000원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 뒤에도 아버지는 잠들지 못합니다. 온몸이 찌뿌둥한데다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아픈지 입을 열어 말 한 마디 꺼내기조차 벅찹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하며, 첫째 아이 곁에 누워 가슴을 토닥이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겨우 내어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부르는 동안 뜻밖에 내 몸이 한결 나아진다고 느낍니다. 내 마음도 조금은 맑아진다고 느낍니다. 나는 몸이 힘들어 말조차 하기 힘들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말을 한 마디라도 톡톡 내뱉든, 또는 말을 두어 마디 서너 마치 차근차근 읊으면서 스스로 몸을 나아지게 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새근새근 자다가 쉬 마렵다며 일어난 첫째 아이 쉬를 누입니다. 다시 자리에 눕혀 이불을 여밉니다. 나는 맹맹한 코를 흐르는 물에 풀고 씻습니다. 머리는 아직도 어지럽습니다. 방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잠이 언제 올는지 모르나, 아무튼 이불을 안 덮고 그냥 눕습니다.


  생각에 잠깁니다. 내 머리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가 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 머리속에 좋은 생각이 있는지, 궂은 생각이 있는지, 어지럽게 얽힌 생각이 있는지 하나하나 짚습니다. 나 스스로 내 머리에 궂거나 어지럽게 얽히거나 힘든 생각을 가둘 때에 내 마음과 몸 모두 힘들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내 머리에 좋거나 밝거나 홀가분한 생각을 마음껏 춤추도록 할 때에 언제나 내 마음과 몸 모두 가뿐하면서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 그는 장화를 벗으려고 했다 / 비명소리보다 먼저 복숭아뼈가 신음을 토하고 / 으드득, 무릎뼈가 튀어올랐다 / 부러진 홍두깨처럼 아무런 감각도 없는 발을 / 어떻게든 장화에서 꺼내려고 / 그는 안간힘을 썼다 ..  (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이 되고 싶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한테 어떤 몸짓으로 말을 건네고 싶은지, 두 아이한테 어떤 낯빛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제도권학교 아닌 집에서 좋은 사랑과 꿈과 믿음을 누리도록 하자면, 어버이인 나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돌아보고 이듬날 새 하루는 어떻게 맞이할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빛내는 생각을 생각해야 한다고 거듭 생각합니다. 생각을 빛내지 못한다면 ‘생각’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고, 참으로 좋은 밥이 내 몸에 깃들도록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곧, 밥과 말과 넋 모두 가장 좋을 때에 내 하루가 가장 좋습니다. 밥이며 말이며 넋을 모두 가장 좋도록 추스를 때에 내 삶을 가장 아름다이 돌볼 수 있구나 싶습니다.


  환하게 생각할 노릇입니다. 해맑게 생각할 노릇입니다. 아이들만 환하거나 해맑게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환하거나 해맑게 생각할 수 있어요. 아이들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아요. 어른들 누구나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어요. 아이들만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지 않아요. 어른들 누구라도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어요.


.. 영치금을 넣는 동안 / 접시꽃보다 키가 작은 딸은 /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꽃들에게 속삭였다 ..  (접견)


  등허리를 반듯하게 펴며 누운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꽃을 키워 본 사람은 누구라도 ‘날마다 꽃을 바라보며 아이 예쁘구나 하고 말하면 꽃이 더욱 예쁘게 핀다’는 일을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이 아닌 참말입니다. 날마다 입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몸으로 꽃 한 송이 환하고 해맑은 웃음빛으로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고 따사로이 쓰다듬는 손길일 때에, 꽃은 더욱 환하고 해맑게 자랍니다.


  논에서도 밭에서도 이와 같아요. 예부터 소 앞에서 소를 나무라거나 깎아내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했어요.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는 듯 보이더라도, 모든 소를 똑같이 아끼고 사랑할 노릇이라고 했어요. 소가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했어요.


  논도 밭도 다 알아듣겠지요. 논을 일구는 흙일꾼이 사랑을 담아 땀을 흘리는지, 밭을 매만지는 흙일꾼이 믿음을 실어 땀을 들이는지, 논도 밭도 모두 알아보겠지요. 좋은 땀 흘린 사람한테 좋은 열매 돌려주고, 좋은 꿈 키우는 사람한테 좋은 씨앗 맺어서 내놓겠지요.


..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들, 피 흐르는 것들 /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  (하늘공장)


  어버이와 아이 사이라 한다면, 사람과 꽃 사이와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더 깊이 사랑하며 아낄 노릇이로구나 싶습니다. 나와 옆지기 사이에서도 꼭 같아요. 한결 사랑하며 아낄 노릇이에요. 먼저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을 나눌 노릇이에요. 입으로도 들려주는 사랑을 주고받을 노릇이에요. 손길로 눈길로 생각길로 나란히 사랑을 나눌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이란 좋은 사랑 담은 좋은 밥이어야 해요. 한솥밥 먹는 살붙이가 누릴 삶이란 좋은 사랑 꽃피우는 좋은 삶이어야 해요. 비가 새는 지붕이건, 조그마한 방 한 칸이건, 즐겁다고 느끼며 누릴 때에는 그야말로 즐겁다고 느껴요. 번쩍거리는 큰 집이건, 널따란 방 여러 칸이건, 갑갑하다고 느끼며 옥죄일 때에는 그야말로 갑갑하다고 느껴요.


  사랑을 살아가는 사람일 테니까요. 믿음을 살아가는 사람일 테니까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어요. 어른들도 사랑을 받아먹어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 한 줄에 사랑을 실어요. 글을 읽는 사람은 글 한 줄에서 사랑을 읽어요. 모두들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랑을 살면서 가장 좋은 사랑을 눈길에든 손길에든 글길에든 어디에든 살포시 나누는구나 싶어요.


.. 오른손에 휘감은 붕대를 보고 / 아빠, 또 손 다쳤어? / 아홉 살 딸애가 걱정스레 묻는다 / 그래, 손가락이 부러진 것 같구나 / 흘려 대답한 말에, 왜 다쳤어? / 이번엔 눈을 크게 뜨고 다그친다 / 음, 누구하고 싸웠다 / 아이, 왜 싸워? 싸우면 안 돼! / 시무룩하게 엎드린 아이의 등을 / 아빠는 잔잔하게 두드려준다 ..  (그림일기)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논개구리가 노래합니다. 멧새가 노래합니다. 들판과 멧자락에서 베푸는 밤노래를 가만히 듣다가 생각합니다. 내가 이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이 시골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내 생각뿐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언제부터였는지, 이 세 가지 노래를 골고루 듣는 좋은 시골에서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생각을 꽃피웠어요.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가게도 손전화도 아닌 숲속 벗님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내 삶과 옆지기 삶과 아이들 삶을 보살핀다면 참 좋으리라 생각했어요.


  스스로 즐겁게 생각할 때에는 참말 어느 때부터인가 아주 흐드러지면서 흐뭇하게 삶을 누리곤 합니다. 스스로 즐겁게 생각하지 못할 때에는 참말 언제라도 아주 고단하거나 갑갑한 삶이라고 느끼곤 해요.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노래는 영 듣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는 글은 영 읽지 못합니다. 더없이 몹쓸 짓을 하는 아무개라 하더라도 이런 이들을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못 듣겠습니다. 그런데, 나도 예전에 이런 글, 이를테면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는 글을 썼어요. 누군가를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을 일삼기도 했어요. 스스로 겪어 보며 하루하루 지나고 보면, 내가 꺼낸 내 슬픈 말은 누구보다 내 삶을 슬프게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깎아내리려 하면 ‘누군가라 하는 사람’이 아닌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내’가 깎이거나 내려갑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 내 옆지기가 스스로 이녁 삶을 사랑하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아이들 삶을 사랑하는 길을 찾도록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 나는 아내의 손을 가만 붙잡았다 / 손톱살이 갈라져 피멍울이 잡힌 손 / 나는 그날 처음으로 / 깎지 않아도 저절로 닳아 없어지는 아내의 손톱을 / 정성스레 깎아주었다 ..  (손톱깎기)


  삶을 아름다이 노래할 적에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부터 아름다운 꿈을 키웁니다. 삶을 아름다이 노래하는 사람 곁에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천천히 아름다운 꿈을 생각합니다.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이 덧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이 가장 빛날 때에는, 바로 어떤 목소리를 내기보다 스스로 살아낼 때예요. 내가 선 자리에서 살아내고, 나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삶을 일굴 때에 가장 좋습니다.


  즐겁게 흘린 땀이 배어든 맛난 감알을 이웃한테 나누어 줍니다. 이 감알은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참 훌륭하다는 일을 하는 사람도 먹고, 우리 사회에서 참 몹쓸 짓을 한다는 사람도 먹습니다. 감알은 누구한테나 맛납니다. 이 사람이 먹으니 맛이 안 나고, 저 사람이 먹으면 쓰지 않아요. 누구한테나 달디달아요.


  돈이 있대서 먹을 수 있는 감알이 아니에요. 돈이 있건 없건, 배고픈 이 누구하고라도 나누는 감알이에요. 천만 원을 주니까 감알을 열 알 보내 줄 만하지 않아요. 빈털털이라서 감껍질만 핥으라 하지 않아요. 모두들 똑같이 맛보고 똑같이 먹으며 똑같이 좋은 맛을 누려요. 모두들 좋은 맛을 느낄 때에 ‘그렇구나, 좋은 맛이네.’ 하고 생각하면서, 저마다 살아가는 곳에서 스스로 일구면서 좋아할 ‘좋은 삶길’을 찾을 수 있으면 돼요.


.. 앵두꽃 어루만지고 / 잘 익은 앵두를 먹고 자란 아이는 ..  (봄을 깎는 사람)


  동냥하는 거지한테 밥을 주는 사람은 ‘동냥꾼’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묻지 않아요. 물을 까닭이 없어요. 배고파 하니 스스럼없이 내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나눕니다. 추운 겨울날 손발 얼어붙은 길손을 불러 불가에 앉으라 얘기합니다. 불을 지핀 사람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는 대수롭지 않아요. 손발 얼어붙은 길손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또 책을 많이 읽었는지 학교를 오래 다녔는지 대수롭지 않아요. 모두 같은 사람이요, 모두 같은 목숨이며, 모두 같은 사랑이에요.


  난 어릴 적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옛말을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왜 미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준담, 하면서 투덜거렸어요. 예쁜 아이야말로 떡을 하나 더 받을 만하지 않담, 하면서 종알거렸어요.


  그런데 말예요, 예쁜 아이는 언제라도 떡을 마음껏 받아요. 미운 아이는 언제라도 떡을 하나도 못 받아요. 미운 아이라는 손가락질이 찍히면, 이 아이는 그만 ‘좋은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며 자꾸자꾸 ‘슬픈 미운 짓’으로 휩쓸려요. 우리가 예쁜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주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면 이 예쁜 아이는 틀림없이 미운 아이를 불러 얘, 네가 이 떡 더 먹으렴, 하고 내밀겠지요. 어른이 예쁜 아이한테 떡을 더 주든, 어른이 먼저 나서서 미운 아이한테 떡을 더 주든, 언제나 미운 아이가 떡을 더 먹으면서, 시나브로 ‘좋은 사랑’을 깨달아 좋은 꿈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리라 느껴요.


.. 어린 모는 땅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 흙 묻은 손에 먼저 뿌리를 뻗는구나 ..  (흙 묻은 손)


  아이들과 살아가며 아이들한테 더 따숩고 더 좋으며 더 살가운 말과 눈빛과 손길을 못 내밀곤 하는 내 모습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내가 한 짓을 생각하고, 참으로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생각하면, 나야말로 어린 나날부터 ‘떡 하나 못 얻어 먹으며 미운 짓을 하는 아이’로 살지 않았느냐 싶으나, 나는 내가 못 느낄 뿐 ‘떡 넉넉히 받아먹으며 예쁜 아이’로 살았지만, 이런 좋은 삶을 또렷하게 못 깨달으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좋은 떡을 즐겁게 나누어 주는 어버이 길에서 자꾸 엇나가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어린 나날 떡을 못 먹고 자랐으면, 이런 지난날은 참 슬퍼요. 그러나, 어린 나날 떡을 못 먹었으면 오늘 떡을 먹으면 돼요. 오늘부터 떡을 먹으며, 오늘은 내가 좋은 어버이로 살아내어 우리 아이들이 좋은 아이들로 자라도록 떡을 실컷 나눌 수 있으면 돼요.


  모든 좋은 꿈은 바로 오늘 이루고, 모든 좋은 사랑은 바로 오늘 누리며, 모든 좋은 삶은 바로 오늘부터 비롯해요.


.. 어머니가 막대기로 깻대를 톡톡 치면 영악한 그놈, 깨벌레는 / 잔뜩 약이 올라 대가리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우는 것이었다 / 배가, 배가, 배가 ……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저것 봐라 / 저 숭악한 이빨을 몇 쌍이나 가진 입을 두고 지가 먹지 않았단다 ..  (깨벌레)


  임성용 님 시집 《하늘공장》(삶이보이는창,2007)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임성용 님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가 도시로 돈 벌러 떠나야 하던 숱한 시골아이 가운데 하나였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좋은 기운을 살려, 좋은 시골어른이 될 수 있으면 훨씬 좋으며 즐거울 삶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이 나라 제도권학교는 시골아이를 시골어른 되도록 놓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시골아이가 시골 떠나 도시어른 되도록 내몹니다. 시골아이 스스로 흙을 사랑하고 햇볕을 아끼며 물과 바람을 믿으며 한삶 누리도록 하지 않아요. 시골아이 누구나 도시어른 되어 돈벌이에 얽매이도록 내몰아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더 사랑을 누리며 즐겁게 살아야 할 사람인데, 이 나라 제도권학교는 시골아이와 도시아이 모두를 슬픈 굴레를 뒤집어쓰도록 그예 내몰기만 해요.


  하늘에 공장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무엇을 만들까요. 하느님이 공장을 세운다면, 하느님은 무엇을 만들까요.


  공장에서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요. 공장 일꾼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어떤 공산품을 쓸 때에 즐거울까요. 공장 일꾼은 어떤 공산품을 만들면서 보람차거나 뿌듯한 삶을 누릴 만할까요.


  석유만 먹는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 일꾼은 보람찰까요. 전투기나 잠수함 같은 군사무기에 쓰일 볼트나 너트를 만드는 공장 일꾼은 뿌듯할까요. 살림집 아닌 부동산으로 사고팔리는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건설회사 일꾼은 즐거울까요.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누구나 돈을 번다지만, 막상 삶을 누리거나 빛내면서 사랑을 짓는 사람은 자꾸자꾸 사라지거나 밀려나거나 짓밟히는구나 싶어요. 부디, 삶짓기 사랑짓기 꿈짓기로 아이들을 아끼는 어른들 모두 좋은 이야기 건사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이 나라 아이들 누구나 해맑은 눈빛을 빛내는 어버이와 함께 좋은 보금자리를 씩씩하게 다스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5.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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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이마

 


  둘째 아이가 사흘 앞서 몸앓이를 한다. 저녁나절 마당에서 누나랑 놀며 물놀이를 하다가 옷을 흠뻑 적신 채 한참 돌아다니느라 그만 몸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일찍 옷을 갈아입혔어야 했는데 잘못했다. 이러고 이틀이 지나면서 첫째 아이한테 둘째 아이 몸앓이가 옮는다. 첫째 아이가 아침부터 밍기적거릴 뿐 아니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더니 자꾸자꾸 바닥에 드러눕는다. 낮밥을 먹고 나서 스스로 자리에 눕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놀면서 자꾸자꾸 떠드니까 그만 깬다. 잠을 더 자야 하는데 깬 아이 몸은 불덩이 같다. 내 몸도 이에 못지않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침 일찍부터 끝방을 치우고, 풀물을 갈아서 내놓으며, 밥을 차려서 먹이고 먹는다. 이렇게 하고 빨래와 설거지, 또 둘째 똥바지 빨래까지 새로 하고 이불을 빨아서 널기까지 보내고 시계를 본다. 한 시 삼십구 분. 참 잘 견딘다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이렇게 여러 가지 집일을 맡고자 생각하며 살아가니까 몸이 후끈후끈 달아올라도 이런 일 저런 일을 쉼없이 하지 않느냐 싶기도 하다. 이럭저럭 할 일을 마쳤다 싶으니, 이제 첫째 아이하고 나란히 누워서 두 시간 즈음 끙끙 앓고 싶다. 끙끙 앓고 나서 첫째 아이가 벌떡 일어날 수 있기를 빈다. 첫째 아이 몸이 찬찬히 식으면서 따순 물로 말끔히 씻고 서로 즐거이 놀 수 있기를 빈다. (4345.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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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1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