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아가며 쓰는 글
나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서 늘 바라보는 여러 가지를 내 글에 담습니다. 이를테면, 처마 밑 제비들을 글로 담고, 대문을 열면 펼쳐지는 마을 논자락과 밭자락을 글로 담습니다. 새벽 네 시 오십 분부터 이듬날 새벽 두 시 반까지 울리는 멧새 노랫소리를 글로 담습니다. 여름날 논개구리 노랫소리를 글로 담고,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글로 담습니다. 자동차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고요한 시골마을에서 듣는 모든 풀소리와 바람소리를 글로 담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를 내 글에 안 담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을 뿐, 바로 오늘 도시에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나는 도시를 모릅니다.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르며, 대통령이 일하거나 지낸다는 푸른기와집이랑 우리 시골마을 보금자리랑 끝없이 멉니다. 그러니, 나는 정치 이야기이든 경제 이야기이든 사회 이야기이든 스포츠 이야기이든 연예인 이야기이든 내 글에 안 담습니다. 우리 시골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으니,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온갖 이야기라든지, 이를테면 방송국 파업 이야기도 내 글에 담길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요, 나하고는 아주 멀찌감치 떨어진 이야기인걸요.
그런데 나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이야기도 내 글에 안 담습니다. 중앙정부가 맺은 무역협정은 시골사람 삶하고 아주 동떨어진걸요. 시골사람 삶을 헤아리지 않으며 중앙정부끼리 맺는 무역협정은 생각할 값어치도 글로 쓸 보람도 없습니다. 시골마을 냇물까지 파헤치는 4대강사업도 이와 같아요. 우리 작은 시골마을 냇물에조차 시멘트를 퍼붓는 짓을 하는데, 나는 늘 내가 바라보는 자리에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글로 담을 뿐입니다. 곧,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자동차한테 치여 죽은 들참새 이야기를 글로 담습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던 자동차한테 밟혀 죽은 논자락 우렁이 이야기를 글로 담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아이들이 노상 듣는 바람소리와 새소리와 벌레소리를 글로 담아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웃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 이야기를 굳이 나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딸아들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돈만 벌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당신 딸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꿈을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니까, 비록 당신들이 낳은 딸아들이라 하더라도 당신 딸아들 삶을 참말 하나도 몰라요. 하나도 모르니까 얘기할 수 없어요. 얘기할 만한 얘기란, 서로서로 들판에서 허리 굽혀 하는 논일과 밭일 얘기입니다. 날씨 얘기를 하고, 바람 얘기를 합니다. 풀과 나무 얘기를 합니다. 제비와 까마귀 얘기를 해요.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글을 씁니다. 나는 내가 발 디딘 보금자리를 사랑하며 글을 씁니다. 나는 내가 숨을 쉬고 생각을 빛내는 터전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글을 씁니다. 내가 쓰는 글은 내 삶이고,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면, 그이는 내 삶과 사랑과 꿈을 읽는 셈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꿈과 사랑 담은 얘기를 읽는 셈이에요. (4345.6.24.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