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다 그림

 


  깍두기공책에 한글을 몇 적는다. 아이더러 따라 써 보라고 얘기한다. 아이는 한두 차례 따라 써 보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그림을 그린다. 깍두기 칸마다 얼굴을 동그랗게 그리고 머리카락을 까맣게 입힌다. 누나(동생한테 큰아이가 누나라는 뜻), 어머니, 아버지, 보라(동생 산들보라),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아줌마, …… 이렇게 줄줄 읊는다. 음, 큰아버지는 없네? 아무튼, 그림이 더 좋으면 그림을 그리렴. 글도 쓰고 싶으면 글도 써 보렴. (4345.7.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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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e (Hardcover)
Ralph Gibson / Taschen UK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사진책 《days at sea》는 1974년에 나온 오래된 책이라 뜨지 않습니다. 다른 책에 이 느낌글을 붙여, 랄프 깁슨 님 사진삶을 읽는 도움글로 삼으려 합니다.

 

..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사진은 어디에서나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0] 랄프 깁슨(Ralph Gibson), 《days at sea》(Lustrum press,1974)

 


  아름다움이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미움이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은 내가 밉다고 느끼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낄 때에는 무엇을 바라보든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가득할 때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든 아름다운 사랑이 감도는 눈길이 됩니다. 내가 밉다고 느낄 적에는 무엇을 바라보든 마냥 밉다고 여깁니다. 내 마음이 미운 슬픔으로 꽉 찼을 적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든 미움과 슬픔으로 촉촉히 젖은 눈길이 됩니다.


  렘브란트가 그려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닙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며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이중섭이 그렸든 박수근이 그렸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좋다고 느끼며 바라볼 때에는 좋은 그림입니다. 내가 즐겁다고 느끼며 바라볼 적에는 즐거운 그림입니다.


  내 마음에 아무것도 없는 채 바라보면 어느 그림을 바라보더라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그림입니다. 곧, 내 마음에 아무것도 없는 채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 앞서 나 스스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진만 찍습니다.

 

 


  마음이 있고서야 그림이 있고, 마음이 있은 뒤에야 사진이 있습니다. 그림은 아름다움을 담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은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에 비로소 ‘그림이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담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려는 사람 스스로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으며 살아갈 때에 비로소 ‘사진이 아름답게 새롭게 태어납’니다.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여행을 다녀야 아름다움을 담는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조그마한 시골마을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얼마든지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사진을 날마다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곳은 따로 없습니다. 관광지에 보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푯말이 서기도 합니다만, 사진 찍기 좋은 곳은 따로 없어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사랑’을 담을 수 있으면 어디에서라도 좋은 사진을 찍습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거나 깨닫지 않을 때에는, ‘뭔가 그럴싸한 모습’이 감도는 곳에서라도 사진 한 장 얻지 못해요.


  랄프 깁슨(Ralph Gibson) 님 사진책 《바다에서 보낸 나날(days at sea)》(Lustrum press,1974)을 읽습니다. 바다에서 보낸 나날을 스스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예쁘게 생각하기에 《days at sea》라는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랄프 깁슨 님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로 이 느낌을 담아냈을 테고, 흙을 일구는 사람이라면 텃밭 푸성귀나 열매나무 꽃송이로 이 느낌을 담아냈을 테지요.

 

 


  사진이기에 남달리 나타내거나 보여주는 모습은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되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사진으로 나타내거나 보여줄 뿐입니다. 곧, 나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삶을 읽거나 사랑을 읽거나 꿈을 읽을 수 있는 한편, 풀 한 포기를 바라보거나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거나 매미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삶을 읽거나 사랑을 읽거나 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습니다. 바다에서도 사진을 찍고 뭍에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라도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아가씨 궁둥이를 바라보면서도 사진을 찍고, 코주부 아저씨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이녁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줍니다. 문지방을 찍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손에 쥔 뒷모습을 찍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활짝 웃는 얼굴을 찍어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습니다. 손가락이나 손바닥을 찍어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습니다. 알몸과 맨몸은 무엇이 다를까요. 텅 빈 손과 살짝 놓은 손은 어떻게 다를까요. 눈을 뜨고 듣는 이야기와 눈을 감고 듣는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요. 사랑하는 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하고 거웃을 만지작거릴 때하고 어떻게 다를까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얼굴을 볼 때하고 잘 닦은 주전자를 들여다보며 내 얼굴을 볼 때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참빗으로 빗질을 할 때하고 손가락으로 빗질을 할 때하고 어떻게 다를까요.


  빌려서 타는 자전거로도 길을 달립니다. 목돈을 모아 장만한 자전거로도 길을 달립니다. 두 다리로도 길을 달립니다. 버스를 타고도 길을 달립니다. 그예 길을 달립니다.


  가만히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쪼그려앉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해도 달도 별도 구름도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내가 엉거주첨 서서 올려다본들 해가 달라지지 않아요. 내가 실눈을 뜨고 올려다본들 달이 달라지지 않아요. 내가 깨끔발을 뛰며 올려다본들 별이 달라지지 않아요.

 

 


  바람도 냇물도 멧자락도 노상 그대로 있습니다.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한결같이 그대로 있습니다. 바람을 느끼거나 사랑을 생각하는 내 매무새가 달라질 뿐입니다. 냇물을 받아들이거나 꿈을 맞아들이는 내 몸짓이 달라질 뿐입니다. 멧자락을 오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몸가짐이 달라질 뿐입니다.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면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됩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지 않고서야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지 못합니다. 사진길을 걷고 싶다면 기쁘게 삶길을 갈고닦을 노릇입니다. 삶길을 갈고닦지 않고서야 사진길에 씩씩하고 다부지게 서지 못합니다.


  랄프 깁슨 님 사진을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습니다. 랄프 깁슨 님 사진을 보아도 좋고 안 보아도 좋습니다. 내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도록 삶을 보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내 눈길이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록 하루하루 즐거이 누리면 됩니다. (4345.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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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곰팡이 (도서관일기 2012.7.2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집하고 서재도서관은 가깝다. 그러나 얼마쯤 떨어졌다. 집 바로 옆이 아닌 만큼 창문을 모두 닫아걸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장마철을 지나 무더위가 푹푹 찌면서 바람갈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마땅히 곰팡이가 핀다. 아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서재도서관으로 나오니,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 내음이 확 풍긴다.


  창문을 연다 해서 냄새가 빠질까. 창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곰팡이 내음이 가득하지 않을까. 한 번 곰팡이가 핀 책꽂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궁금하다. 이 책꽂이를 버릴 수는 없고, 겉에 무언가를 발라야 할까 싶다. 꽂은 책을 다시 꺼내어 책꽂이를 햇볕에 말린 다음 무언가를 발라야겠지. 일손은 곱으로 들고 여러모로 번거로울밖에 없다. 책을 시골마을에 두면 이렇게 곰팡이하고 씨름을 해야 할까. 책은 시골 아닌 도시에 깃들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팔만대장경 같은 나무책이 오래오래 고이 이어가는 모습을 본다면, 책이 있어야 할 자리는 시골이든 도시이든 대수롭지 않다. 외려 시골일 때에 책을 잘 살피거나 아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책을 두려면 바람이 잘 들고 아주 좋은 나무로 책꽂이를 짤 뿐 아니라, 날마다 찬찬히 보듬으며 아끼는 사람 손길이 있어야 하리라. 날마다 사람 손을 타면 어느 책에도 곰팡이가 필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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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좋아진다
이태성 지음 / 낭만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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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좋은 삶에 좋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08] 이태성, 《사진이 좋아진다》(낭만북스,2009)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삶일 때에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글을 씁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하루를 누릴 때에 내 아이 또한 아이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하루를 누릴 수 있습니다. 좋다고 느끼는 사랑을 나누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빛냅니다. 좋다고 느끼는 꿈을 키우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보살핍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며 아름답게 가다듬는 사랑일 때에는, 내 손에 연필을 쥐면서 아름답구나 싶은 글을 쓰거나 아름답구나 싶은 그림을 그립니다. 어여쁘게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며 어여쁘게 북돋우는 꿈일 때에는, 내 손에 호미를 쥐면서 어여쁘다 싶은 논밭을 일구거나 어여쁘다 싶은 풀과 나무하고 이웃합니다.


  생각이 삶으로 되고, 삶이 고스란히 글이나 그림이나 흙이나 푸나무로 스밉니다. 내가 여느 삶자리에서 누리는 넋이 바로 내 글이요 그림입니다. 내가 여느 삶터에서 가꾸는 얼이 바로 내 밭흙이요 푸나무입니다.


  사진을 찍는 이태성 님이 《사진이 좋아진다》(낭만북스,2009)라는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이태성 님은 “정신없이 이어진 촬영 끝에 온 깨달음은 아주 분명했다. 감정에서 시작된 열정적인 촬영의 반대편에는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를 냉정하게 조작해야 하는 것이 사진만의 독특한 매력인 것이다(28쪽).” 하고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든 차분하게 사진을 찍든 조리개와 셔터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자동으로 맞추고는 정신없이 찍을 수 있어요. 완전자동으로 맞추면서도 차분하게 찍을 수 있어요. 사진은 사진기를 움직여 빚는 삶입니다만, 사진기라는 기계를 어떻게 다루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세발이를 받치고는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을 텐데, 누군가는 세발이 없이도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어요. 누군가는 세발이를 받쳤어도 흔들렸구나 싶은 사진을 찍거나 초점이나 무언가 어긋나게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그저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어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 가운데에는 작품이라 할 사진이 있을 터이나, 사진찍기는 작품찍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는 빛이나 조리개를 어찌저찌 맞추거나 어느 사진기나 필름을 쓸 때에 한결 돋보인다고 말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과 마음이 모두 달라요. 누군가는 놀이사진기(토이카메라)로 이런 느낌을 찾는다면, 누군가는 1회용사진기로 저런 느낌을 찾아요.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담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계로 똑같이 찍을 까닭이 없어요. 사진은 그저 사진이에요. 내가 살아가는 나날을 담는 사진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삶을 담는 사진이에요. 내가 그리는 꿈을 담는 사진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담는 사진이에요.


  사진이 좋아진다면, 내 삶이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내 삶이 좋아지지 않고서야 내 사진이 좋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삶을 좋아지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작품만 빚는 이가 꼭 있습니다. 아마, 삶은 안 좋아지고 사진도 안 좋아지지만, 작품 하나만은 돋보이도록 하는 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삶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눈부신 작품이나 빛나는 예술이나 훌륭한 문화를 빚는다고 하는 사진쟁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삶은 무너지면서 문학은 세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삶은 흔들리면서 판화는 우뚝 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삶은 어두우면서 작품은 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태성 님은 “강원도에서라면 특별할 것이라 믿었던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에게도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이 특별한 기분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 정작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동그랗고 귀여운 태양이 공산성 너머로 지는 자극적인 풍경이었다(50쪽).” 하고 말합니다. 서울에서도 슬프다면 서울 바깥에서도 슬픕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슬픈 빛을 스스로 털며 서울을 벗어난다면, 서울에 있든 서울 바깥에 있든 내 마음은 가장 홀가분하면서 더없이 싱그러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 불러들이는 슬픔입니다. 스스로 맞아들이는 기쁨입니다. 스스로 꾀하는 어두움입니다. 스스로 바라는 밝음입니다. 스스로 망가뜨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아끼는 삶입니다.


  곧,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누군가는 작품을 합니다. 누군가는 삶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꿈을 이룹니다.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얻어야 사진을 하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책을 펴내야 뜻을 이루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은 ‘작품’을 비싼값에 팔아야 꿈이 펼쳐진 셈이 아닙니다.


  사진기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연필이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이태성 님도 “어쩌면 우리가 가진 눈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이고, 우리가 가진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필름이 아닐까(102쪽).” 하고 말합니다. 참으로 옳습니다. 사람은 두 눈으로 언제나 사진을 찍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언제나 사진을 건사합니다. 그런데, 이태성 님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정작 “방앗간 주인 할아버지와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은 왜 찍으려고 하는 거냐고 할아버지께서 물었다. 그냥 내 앞에 주어진 풍경들이 사랑스럽고 예쁘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들이 조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102쪽).” 하고 덧붙입니다.


  이태성 님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용기가 안 나서 말을 못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이태성 님 삶이 아니’기에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아직 이태성 님한테는 ‘이태성 님 앞에 주어진 모습이 사랑스럽거나 예쁘’지 않으니, 이렇게 말하지 못할 뿐이에요. 책에 글 몇 줄 적바림한대서 ‘내 삶’이나 ‘내 넋’이나 ‘내 길’이 되지 않아요. 책에 적바림하는 몇 줄 글은 그저 ‘내 바람’입니다. 내가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몇 줄 적는대서 내 삶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스스로 이와 같이 살며 좋아할 때에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말이 삶이 되고 삶이 말로 드러날 때에, 바야흐로 내가 바라보는 그대로 내 사진이 될 수 있어요.

 

 


  이태성 님은 “여행이란 이방인이 되어 낯선 도시를 걸을 때 이해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며 나와 남을 구별하는 방식을 배워 나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도 없는 대지에서 자연과 마주서는 느낌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164쪽).” 하고 말합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삶이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태성 님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참말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참말 이러한 결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른대서 바보가 아니요, 모르기에 아무것도 못하지 않아요. 누구나 스스로 아는 만큼 하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누리면 돼요. 오늘 이곳에서 “여행이란 이방인이 되어 낯선 도시를 걸을” 때에 누리는 빛이라 여기면, 이대로 누리면 됩니다. 굳이 딴 모습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내 모습이 아닌 탈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이 아닌 껍데기를 뒤집어쓸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만 잘 아로새기면 돼요. 좋은 삶에 좋은 사진이에요. 예쁜 삶에 예쁜 사진이에요. 웃는 삶에 웃는 사진이에요. 슬픈 삶에 슬픈 사진이에요.


  사랑하는 삶에 사랑하는 사진이기에, 사랑스레 바라보는 눈길과 매무새로 사랑스레 느끼거나 나눌 사진 하나 찍습니다. 길손이 고작 하루 머물다 지나가며 찍는 사진이기 때문에 사랑스레 나눌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나그네가 아주 살짝 다리쉼만 하고 지나가는 결에 찍는 사진이라서 사랑스레 느낄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경주 토박이라서 경주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부산 토박이라서 부산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그러니까, 서울 토박이라서 서울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스튜디오를 꾸린대서 스튜디오 사진을 잘 찍지 않을 뿐 아니라, 패션사진가라는 이름을 붙였기에 패션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이와 같은 얘기가 될 텐데, 다큐사진가라는 이름을 붙일 때에도 다큐사진을 잘 찍는다 할 수 없어요. 오직 한 가지예요. 좋은 삶에 좋은 사진이고, 궂은 삶에 궂은 사진입니다. 참다이 빛내는 삶에 참다이 빛나는 사진이며, 검은 속셈으로 얼룩진 삶에 검은 속셈이 환히 드러나는 얼룩진 사진입니다. (4345.7.29.해.ㅎㄲㅅㄱ)

 


― 사진이 좋아진다 (이태성 글·사진,낭만북스 펴냄,2009.12.30./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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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이야기에서 1번으로 나올 만한 책이지만, 9번으로라도 나오니 반갑다. 농부가 없으면 도시사람 누가 밥을 먹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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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란다- 농부
이윤엽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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