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글쓰기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살기에, 글을 쓰려 하면 숲살이 이야기를 쓴다. 숲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이 속삭이는 꿈을 들으며 살기에, 사진을 찍으려 하면 숲사랑 이야기를 찍는다.


  오늘날은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도, 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모두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사람(시민)’ 되기에, 오늘날 글쟁이와 사진쟁이는 내남없이 도시살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도시사랑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는다. (4345.10.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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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가 지켜보다

 


  네 식구 함께 맑고 밝은 가을날 한껏 누리려고 천등산 나들이를 간다. 밥을 먹이고 빨래를 마무리지은 다음 감 여덟 알이랑 물이랑 옷가지를 챙긴다. 낮잠이 살짝 모자란 아이들은 대문을 나서며 조금 걸을 때부터 이리 칭얼 저리 종알 힘들다 노래한다. 그러게, 잠 넉넉히 자고 일어난 다음, 밥 알뜰히 먹으면 얼마나 좋니, 자라 할 때 안 자고 먹으라 할 때 안 먹으니까, 이렇게 나들이 나올 적에 벌써 힘들다 소리 나오지.


  달래고 어르고 업고 안고 하면서 멧기슭 쉼터까지 오른다. 냇물에 낯을 씻고 감을 먹으며 쉰다. 작은아이가 한 시간 남짓 달게 자고 나서 멧길을 내려온다. 가을일로 바쁜 논배미를 지날 무렵, 가을걷이 끝내고 볏짚을 묶는 큰차를 지켜본다며 작은아이가 우뚝 선다. 작은아이 곁에 큰아이도 함께 선다. 두 아이는 한참 물끄러미 지켜본다. 큰아이는 이내 까르르 웃으며 다른 데로 달린다. 작은아이는 마냥 서서 바라본다.


  물끄러미 지켜보는 작은아이 가슴에 어떤 이야기가 스며들까. 작은아이가 받는 가을볕은 어떤 기운일까. 파랗디파란 하늘이 아이들 머리 위에서 춤춘다. 언뜻선뜻 비질을 하다 말다 그림 같은 구름이 하얗게 물든다. 온 들판과 마을에는 나락내음이 물씬 풍긴다. 들에서 일을 하건 들길을 걷건, 모든 마을사람은 온몸에 나락내음이 깊이 밴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을 바라보며 자란다. 어버이는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들 바라보며 나날이 새삼스레 넋과 얼을 북돋우며 함께 자란다. (4345.10.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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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책》 4호와 《사진빛 1》 나왔습니다. 어제(10.23)부터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적어 우체국으로 가져가서 부칩니다. 집안일을 하면서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적고 책을 싸서 부쳐야 하기에, 여러 날 걸쳐 천천히 부칩니다. 누군가는 오늘이나 모레에 책이 닿을 테고, 누군가는 금요일쯤 책이 닿을 테지요. 때때로 한 주 건너 다음주 월요일에 책이 닿을 수 있어요.


  《삶책》 4호는 ‘전남 고흥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소식지입니다. 《사진빛 1》은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가 개구지게 부대끼며 뛰어노는 여섯 달 삶자락을 무지개사진으로 담으면서 이야기 한 자락 펼치는 사진책입니다.


  《삶책》 4호와 《사진빛 1》은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 함께살기’가 튼튼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돈을 보내 주시는 분한테만 띄웁니다. 이 책들을 받고 싶으신 분은 언제라도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 지킴이’가 되어 주셔요.

 

 

 

● 《삶말》, 《함께살기》 한 해 받기 (☞ 도서관 한 평 지킴이)
   : 해마다 10만 원씩 (또는) 달마다 1만 원씩
  (두 평 지킴이는 20만 원 또는 2만 원씩, 세 평 지킴이는 30만 원 또는 3만 원씩)
   《삶말》, 《함께살기》 평생 받기 (☞ 도서관 평생 지킴이)
   : 200만 원 한 번 (또는) 사진책 100권 기증


● 돕는 돈은 어디로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손전화 : 011-341-7125
   누리편지 : hbooklove@naver.com
★ 도서관 자리로 쓰는 ‘옛 흥양초등학교’를 통째로 장만할 꿈을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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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삯 2000원

 


  엊그제 서울로 볼일을 보러 고속버스에 탈 무렵, 내 옆쪽에 앉은 퍽 늙은 할머니가 이녁 앞에 앉은 아주머니더러 “내가 전화 걸 줄 모르는데 이 쪽지에 적힌 곳에 전화 좀 걸어 주쇼.” 하고 말합니다. 아주머니는 할머니 손전화를 건네받고 단추를 누르려 하는데, “할머니, 이 전화기 전원이 꺼졌어요. 약이 없어요.” 합니다. “내가 전화 걸 줄 모르고 받기만 하니 전화기가 나간 줄 아나.” 하며 웃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시는 할머니한테 아주머니가 당신 손전화로 전화를 걸어 할머니가 이제 막 버스에 탔으니 때 맞추어 서울 버스역 앞으로 마중 나오십사 하고 이야기합니다. 할머니는 “고맙구마. 고맙구마.” 하면서 허리춤에서 종이돈 두 장을 꺼내 아주머니한테 건넵니다. 아주머니는 “할머니, 전화비가 2000원이나 해요? 나 부자 되겠네.” 하면서 안 받아도 된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마실거리 두 봉지를 꺼내어 아주머니한테 건넵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손전화 없어 누군가한테서 빌려야 써야 할 적에 돈 2000원을 고맙다는 뜻으로 내밀었다고 느낍니다. 고맙다는 뜻으로 500원도 1000원도 아닌 꼭 2000원을 건넵니다. (4345.10.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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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10-24 19:50   좋아요 0 | URL
500원도 아닌 1000원도 아닌 2000원!
참 의미있는 삯이네요.^^

파란놀 2012-10-25 08:46   좋아요 0 | URL
둘레에서 사람들이 삶을 빚으면서
서로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구나 싶어요.
참말... 2000원이더라구요...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 - 개정판 작은책마을 31
딕 킹 스미스 지음, 데이비드 파킨스 그림, 엄혜숙 옮김 / 웅진주니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내 마음을 따뜻하게 돌보고 싶어
 [어린이책 읽는 삶 25] 딕 킹 스미스,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웅진닷컴,2003)

 


- 책이름 :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
- 글 : 딕 킹 스미스
- 그림 : 데이비드 파킨스
- 옮긴이 : 엄혜숙
- 펴낸곳 : 웅진닷컴 (2003.12.15.)
- 책값 : 9000원

 


  나는 도시에서 살 적부터 학교라는 데에 아이들을 보내고픈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 마음은 아이들만 학교라는 데에 안 보내겠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나부터 내가 ‘어른 아닌 아이’로 살아간다 할 적에 학교라는 데에 가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곧, 내가 ‘아이 낳아 어른으로 지내는 오늘’에 맞추어 되뇌는 말이 아닌, 내가 ‘어린이와 푸름이로서 학교를 다니던 어제’에 비추어 읊는 말입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는 여섯 해 동안, 학교에서 동무들과 뛰놀면서 학교가 싫다고 여긴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뛰놀지 못하고 공부를 해야 하던 때에는 교사들이 으레 몽둥이를 들고 윽박지르듯 이것저것 외우도록 시키기만 하니까 학교가 달갑지 않습니다. 국민학교에서도 시험이 아주 잦고, 시험이 잦은 만큼 시험점수에 따라 매질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일기 검사나 숙제 검사나 옷차림 검사나 손톱이나 머리카락 검사나 도시락 검사 따위를 자꾸자꾸 하면서, 검사에 걸린 아이들을 마구 두들겨패며 막말을 일삼는 교사들을 치러야 할 때면, 학교에 가기란 죽기보다 싫다고 느꼈어요.


.. “달팽아, 넌 아주 작은 신을 신어야겠다. 네가 경주에서 이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는 참 예쁘구나. 네가 나의 달팽이가 되어 주렴.” … “소피야, 손에 든 게 뭐니?” 엄마가 간식 시간에 물었어요. “소피의 달팽이예요!” 매튜와 마크가 합창을 했어요. “얼른 마당에 내버리고 오렴.” 엄마가 말했어요. “안 돼요.” 소피는 작지만 야무진 목소리로 대답했지요 ..  (13∼14, 16∼18쪽)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가 학교 구실을 안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시험공부를 하는 데가 아니에요. 그러나, 한국에서 학교는 오직 시험공부만 시켜요. 학교는 아이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에요. 아이들 옷차림이나 매무새나 생각을 꽁꽁 가두거나 옭아매는 데가 학교일 수 없어요. 그러나, 한국에서 학교는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다스리기만 해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학교라야 비로소 학교라고 생각해요. 이런 지식 저런 정보를 얻는 데 아닌, 이런 사랑 저런 꿈을 서로 북돋우거나 보듬으면서 활짝 웃어야 바야흐로 학교라고 생각해요.


  학교이니까 여러 아이들이 얼크러져 놀 수 있어요. 학교이니까 널따란 운동장에서 마음껏 달릴 수 있어요. 아이들은 달려야 아이들이에요. 그러니까, 운동장에서도 달리고, 교실에서도 달리며, 골마루에서도 달려요. 달리지 않으면 아이들이 아니에요. 달리면서 이마에 땀을 송송 맺으니까 아이들이에요.


  어린이를 책상 앞에 앉혀 얌전하게 굴도록 하면서 50분씩이나 옴쭉달싹 못하게 하는 짓은 공부도 수업도 배움도 아니라고 느껴요. 아이들은 왜 책상 앞에서 옆도 못 보고 뒤도 못 보아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책상 앞에서 입을 꾹 다문 채 교사 얼굴만 바라보아야 하나요.


  중학교로 가는 길목인 초등학교일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로 가는 길목인 중학교일 수 없습니다. 대학교로 가는 길목인 고등학교일 수 없습니다. 학교라 한다면, 초등은 초등대로 중등은 중등대로 고등은 고등대로 값어치와 뜻과 보람이 있어요. 대학바라기로 흐르는 학교라 한다면, 이러한 곳은 ‘입시학원’일 뿐 학교가 될 수 없어요. 대학교조차 삶과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마당이 아니라, 취업에 목을 매다는 데라면, 이는 학교 아닌 ‘취업학원’일 뿐이에요.


.. “난 어른이 되면, 농부가 될 거야.” 소피가 아침을 먹다가 말했어요. “넌 못 해.” 쌍둥이들이 말했어요. “왜 못 해?” “농부는 다 남자야.” “그러면 난 여자 농부가 될 거야. 그럼, 되지.” … “(소를) 한 마리만 가질 거야. 그리고 꽃송이라고 부를 거야.” “그럼, 팔 우유가 얼마 안 될걸.” 아빠가 말했지요. “난 우유를 팔지 않을 거예요.” 소피가 말했어요. “어째서?” 매튜가 물었지요. “내가 다 마실 거야. 난 우유가 좋아.” ..  (24∼25쪽)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며 즐겁게 떠올리는 일이라면, 무엇보다 신나게 놀던 일입니다. 다음으로, 사육장 청소를 하고 먹이를 주던 일입니다. 다음으로, 집과 학교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다니던 일입니다. 이 세 가지 말고는 국민학교와 얽혀 즐겁게 떠올릴 만한 일이 없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적에는 즐겁던 일이 한 가지도 안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빼먹고 시내 헌책방이나 새책방에 들러 책을 읽던 일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딱히 즐거이 떠올릴 만한 일이 없습니다.


  요즈음 학교들을 돌아보면, 인문계 학교는 ‘입시학교’요, 실업계 학교는 ‘취업학교’입니다. 인문계 학교는 학생 하나라도 더 대학교에 붙여 학교이름을 드날리겠다고 용을 씁니다. 실업계 학교는 학생 하나라도 더 공장이나 회사 경리·회계부에 뽑히도록 해서 학교이름을 높이겠다고 기운을 씁니다. 어느 학교도 아이들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지 않습니다. 어느 학교도 아이들이 ‘사랑과 꿈을 넉넉히 나누는 사람’으로 크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시험점수 잘 따는 기계처럼 자라면 무엇이 되지요? 영어시험 잘 치르는 기계처럼 크면 무엇이 되지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잘 내고, 학교에서 시키는 일을 잘 하면 무엇이 되지요? 여러모로 살피면, 학교라는 곳은 초등부터 고등까지 아이들을 ‘사회에서 톱니바퀴 구실을 하도록 길들이는’ 몫을 맡는지 몰라요. 아이들이 ‘컨베이어벨트 부속품 노릇을 하도록 내모는’ 몫을 하는지 몰라요.


  생각힘을 기르는 학교는 보이지 않아요. 손수 삶을 일구도록 이끄는 학교는 보이지 않아요. 따순 사랑과 너른 믿음을 북돋우는 학교는 보이지 않아요. ‘특성화’ 학교라느니 ‘시범’ 학교라느니 허울을 붙일 뿐, 즐겁게 다니면서 즐겁게 놀고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삶길을 보여주지 않아요.


.. “소피야. 그럼, 넌 몇 살이냐?” “여섯 살요. 몇 살이세요?” 하고 소피가 말했어요. “소피야!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다!” 엄마가 말했어요. “왜요? 고모도 저한테 물어 봤는데, 그렇죠?” ..  (43쪽)


  딕 킹 스미스 님이 쓴 어린이문학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웅진닷컴,2003)를 읽습니다.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에 나오는 어린 소피는 아직 초등학교에 들지 않습니다. 한 해 더 ‘집에서 놀고’ 나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해요. 여섯 살 어린 소피인데, 소피는 스스로 “농사꾼이 될 테야!” 하고 다짐합니다. 여섯 살 소피 나름대로 농사꾼 놀이를 합니다. 여섯 살 소피 깜냥껏 흙을 만지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보듬습니다.


  소피네 어머니나 아버지가 소피를 농사꾼이 되도록 이끌지는 않습니다. 소피네 어머니나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지만, 농사꾼이 어떤 삶이거나 사랑인 줄 살피지도 않습니다. 소피 혼자 씩씩하게 농사꾼 되는 길을 생각하고 찾으며 돌아봅니다.


.. 한 시간 뒤에 엄마가 왔어요. “어머, 소피가 잘 돌보고 있네. 소피야, 넌 어른이 되면 간호사가 되겠구나.” “여자 농부가 될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  (83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소피가 일곱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간다 할 적에, 소피가 다닐 초등학교에서는 소피한테 ‘농사꾼이 될 아이가 배울 여러 가지’를 즐겁게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함께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영국에서든 프랑스에서든 일본에서든 중국에서든, 학교라는 데는 오직 ‘더 높은 학교’로 보내는 몫을 맡으면서, 더 높은 학교에서는 ‘도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는 자격증만 알려주지 않느냐 싶어요. 학교 스스로 농사꾼하고 등지는 얼거리요, 학교 스스로 농사꾼을 반기지 않는 틀거리예요.


.. 소피는 창틀에 기대어, 모르는 사이에 기어 올라온 작은 덩굴손을 만지며 놀고 있었어요. 소피는 벽을 덮은 담쟁이덩굴을 보았지요. 그런데 소피의 코 밑에서 아주 작은 달팽이가, 소피의 가운데 손가락만 한, 귀여운 노란색 달팽이가 기어 올라오고 있는 거예요 ..  (106쪽)


  내 마음을 따뜻하게 돌보고 싶습니다. 새벽에 기저귀에 쉬를 하고는 잠에서 깨어 칭얼거리는 아이를 무릎에 누여 다시 재우면서 따뜻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싶습니다. 우리 집 어린 둘째는 아버지 무릎에 누워 새근새근 잠듭니다. 나는 작은 이불로 아이를 훌훌 덮고 나즈막히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집 둘레에서는 새벽에 일어난 멧새가 노래노래 부르며 아침밥을 찾아다닙니다. 바람은 풀잎 노래와 나뭇잎 노래를 들려줍니다.


  내 생각을 너그럽게 보살피고 싶습니다. 즐겁게 밥을 차려 즐겁게 함께 먹고 싶습니다. 즐겁게 아이들과 뛰놀며 하루를 열고 싶습니다. 즐겁게 기지개를 켜고 즐겁게 자전거마실을 다니며 즐겁게 글 한 줄 쓰고 싶습니다. 큰아이는 날마다 새롭게 글씨쓰기를 익힙니다. 아이는 이제 그림책에 적힌 커다란 글씨를 따라 쓸 수 있지만, 곁에서 누가 글씨를 먼저 적바림해 주기를 더 좋아합니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바림합니다. 아이가 보고 따라서 쓸 글씨를 가장 곱게 적바림하자고 생각합니다.


  아침이 찾아오면 눈부신 햇살이 드리우면서 하늘은 온통 파랗게 물듭니다. 아침이 되면 밤새 깜깜하던 하늘에 반짝이던 달과 별은 어느덧 가물가물 스러집니다. 밤이 저물어 아침을 지나 낮이 되고, 낮이 저물어 저녁을 지나 밤이 됩니다. 새가 노래하고 벌레가 노래합니다. 풀잎이 살랑거리고 나뭇잎이 흔들거립니다. 눈으로 바라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맡습니다. 살결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합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이 모든 삶자락은 내 사랑이 피어난 모습이 아닌가 싶고, 이 모든 삶자락은 나한테 사랑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아닐까 싶으며, 이 모든 삶자락은 서로서로 사랑으로 가꾸는 모습이겠구나 싶습니다.


  숲이기를 빌어요. 시멘트로 지은 건물 아닌 나무 우거진 숲이기를 빌어요.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숲이기를 빌어요. 영어교실이나 체육관·강당·식당 아닌 풀숲과 나무숲이기를 빌어요.


  학생도 교사도 숲에서 숲바람을 쐬고 숲햇살을 누리기를 빌어요. 교장이나 교감도, 또 어버이들도, 모두모두 숲이야기를 나누고 숲삶을 일구는 따사로운 손길로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 태어난 맑은 숨결이라고 생각해요. (4345.10.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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