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안다

 


  아이들은 안다. 스스로 어엿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어른들도 안다. 어른 또한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다만,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릴 때부터 울타리 안쪽에 갇혀 지식외우기·시험공부에 얽매이면,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 어른이라 하더라도 돈벌이에 목을 매달며 하루하루 삶을 잊을 적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못 느끼고 못 보며 못 깨닫는다. 모든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만, 모든 어른들은 아이로 오랜 나날을 살았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이 사람이며, 저마다 가슴속에 푸른 숨결을 건사한다. 푸른 숨결을 읽으며 느끼고 즐길 때에 비로소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고, 푸른 숨결을 못 읽거나 못 느끼거나 못 즐길 때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책과 사탕과 손과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큰아이는 사탕 하나를 집습니다. 작은아이는 이래저래 뛰고 달리며 좋아합니다. 서재도서관에 들러 그림책 하나를 여럿이 둘러서서 읽습니다. 큰아이는 한손에 사탕을 쥐고 다른 한손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작은아이는 곁에 서서 손을 뻗지만 손에 채 안 닿습니다. 작은아이는 키도 작아 누나가 보는 그림책을 곁에 서서 함께 보지 못합니다. 옆지기는 그림책을 읽어 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재미나게 읽었다 싶은 그림책을 열 번 백 번 천 번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재미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재미가 있을 때에는 한 번도 보고 두 번도 봅니다. 재미가 없을 때에는 한 번 보기조차 어렵습니다. 살아가는 재미를 담아 그림책을 그립니다. 살아가는 재미를 느껴 그림책을 빚습니다. 살아가는 재미를 실어 그림책을 읽어 줍니다. 살아가는 재미를 누리며 그림책 이야기를 듣습니다. (4345.1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밤노래

 


귀뚜라미뿐 아니라
온갖 풀벌레
밤새도록 노래 한가득.

 

가만히 들으면,
밤을 샐 뿐 아니라
낮에도 씩씩하게 노래잔치.

 

비오는 날에
작은아이 안고 자장노래 부르며
빗소리 듣는데,
이 빗소리 사이에도
결 고운 풀벌레 노래.

 

하루 내내,
한여름부터 한가을에 이르기까지
밤노래는 낮노래 되고
삶노래 되며
사랑노래 된다.

 


4345.9.14.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새삼스레 새벽빨래

 


  작은아이가 저녁부터 밤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하며 칭얼거린다. 아이 어머니가 고단하다. 새벽 두 시 십 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작은아이가 쉬를 누었다. 바지와 기저귀를 벗긴다. 새 바지를 입히고 새 기저귀를 댄다. 졸음이 가득하면서도 자꾸 개구지게 더 놀려 하는 작은아이를 이불로 똘똘 말아서 안는다. 밤비이면서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마당으로 나온다. 오늘은 어쩐지 기운이 나지 않아 자장노래를 곱게 부르지 못한다.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내 얼굴은 어떤 빛깔일까. 내 사랑은 어떤 무늬일까. 작은아이하고 빗소리를 함께 들으며 조용히 생각에 젖는다. 찬찬히 어르지 못하고 마냥 안기만 한다. 가만히 달래지 못하고 그저 무릎에 누이기만 한다. 이래서야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먹겠나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마음속으로 사랑을 길어올리지 못한다. 좀 쉬어야 하나. 무엇을 하며 쉬어야 하나.


  가슴으로 안고 무릎에 누이며 삼십 분쯤 지나니 작은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잠든 아이를 이십 분쯤 그대로 둔 채 가슴과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이제 작은아이는 깊이 잠든다. 천천히 일어나 작은아이를 잠자리로 옮긴다. 이불을 덮는다. 이러고 나서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를 들고 씻는방으로 간다. 저녁부터 나온 옷가지 몇 벌을 빨래한다. 천천히 비비고 천천히 헹군다. 빨래하는 동안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빨래를 마치고 부엌과 방에 옷걸이로 꿰어 거는 동안에도 빗소리는 안 들린다. 이제 날이 추워지면 낮빨래만으로는 옷을 말리기 어렵겠지. 밤과 새벽에 조금씩 빨래를 나누어 하면서 차근차근 말려야겠지. 겨울에는 밤빨래를 해서 밤에 방바닥에 불을 넣을 때에 방바닥에 죽 펼쳐서 말리기도 하겠지.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아침에 내다 널면 한두 시간만에 보송보송 빨래가 마르던 여름은 아주 끝났네. (4345.1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손님맞이 (도서관일기 2012.10.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인천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여섯 살 아이랑 네 살 아이를 이끈 어머니 한 분 찾아와서 여러 날 우리 집에서 함께 묵는다. 바다에도 마실을 가고 마을 한 바퀴도 돈 다음 서재도서관에도 함께 나들이를 간다. 그런데 여러 날 함께 지내면서 서재도서관에는 꼭 한 번 나들이를 한다. 바쁠 일이 없다고 할 테지만, 코앞에 있는 곳까지 드나들지 못한다. 새삼스럽다 할 일은 아니다. 서재도서관과 집이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나부터 하루에 한 차례 들르기도 만만하지 않다. 돌이켜보면, 인천에서 서재도서관을 꾸릴 적에도 3층이 도서관이고 4층이 살림집이어도 큰아이 하나 돌보고 집살림 도맡느라 하루에 한 차례도 3층으로 못 내려온 적이 잦았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두 아이와 복닥이면서 책 한 줄 못 읽는 날이 있다. 두 아이와 부대끼면서 종이책 건드릴 엄두를 못 낼 뿐 아니라, 두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느긋하게 못 읽어 주는 날도 잦다.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왔기에 아이 넷이 복닥복닥 떠드는 서재도서관이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인 터라 다른 책보다 그림책 둘레에 모인다. 어른들이 찾아왔으면 어른들 나름대로 다른 책 둘레에 모이겠지. 사진기를 어깨에 멘 어른들이 찾아왔다면 이분들은 이분들 나름대로 다른 책 둘레에 모이겠지.


  어느 어른은 우리 서재도서관 책을 살피며 ‘값진’ 책이 많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우리 서재도서관으로 마실을 하면서 ‘넓어 뛰어놀기 좋다’고 말한다. 아마 아이들로서는 ‘도시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서는 뛰지 말라느니 시끄럽게 굴지 말라느니 하는 소리를 신나게 들었으리라.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골마루를 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걸상에 앉아 책을 읽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흙운동장을 달리며 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나무그늘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이야기꽃 피울 수 있으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빈터에서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예쁘며 아름다운 도서관살림이 되리라 느낀다. 꿈을 꾸자.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