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비

 


  별똥비가 온대서 적잖이 기다렸는데, 막상 새벽 다섯 시에 마당으로 내려서니 겨울비 조록조록 내린다. 잠자리 들기 앞서 밤하늘 올려다볼 적에는 구름 하나 없이 맑아 별빛이 흐드러지고, 별똥 하나 보기도 했는데, 밤새 구름이 찾아들어 비를 뿌리면서 별똥비를 안 보여준다. 쳇, 깍쟁이 같으니라구.


  비처럼 쏟아진다는 별똥비는 어떤 그림일까 궁금하다. 까만 밤하늘을 온통 눈부시게 밝힐 빛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그런데, 별똥비는 서울 밤하늘에서도 볼 수 있을까. 여느 별빛조차 모두 잡아먹히는 잿빛 서울 밤하늘에서도 별똥비이건 별똥이건 발자국 남겨 서울사람 가슴에도 고운 믿음씨앗 하나 남길 수 있을까. 4345.1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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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2-15 22:41   좋아요 0 | URL
ㅎㅎ 서울에선 별똥비는 커녕 별빛도 제대로 볼수 없어요ㅜ.ㅜ

파란놀 2012-12-16 05:11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요... ㅠㅜ
 
안녕, 하세요!
이상봉 글.사진 / 공간루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사진빛·사진삶·사진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43] 이상봉, 《안녕, 하세요!》

 


- 책이름 : 안녕, 하세요!
- 글·사진 : 이상봉
- 펴낸곳 : 공간 루 (2011.8.20.)
- 책값 : 12000원

 


  (1) 사진빛


  ‘장애 체험’을 해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옥 체험’도 해 보고, ‘굶주림 체험’도 해 본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몸소 겪어 본다면 ‘어려움(불편)’이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겪는(체험)’ 사람들이 썩 달갑지 않습니다. 겪는 대서 알거나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좋다 하는 책을 몇 권 읽어(경험) 보았대서 좋은 넋을 일구지 못해요. 읽은(경험) 일은 지식이 될 수 있어도 슬기가 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스스로 삶에서 슬기를 빚지 못한다면, 좋다 하는 책 열 권 백 권 천 권 읽는다 할지라도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겪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겪는 일은 그저 ‘겪음’입니다. 그래서 겪는 일을 가리켜 ‘체험 활동’이라 말하기는 하되 ‘삶’이라고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곧, 한두 차례 며칠쯤 겪는다 하더라도, 이내 ‘다른 삶’으로 돌아가요. 장애도 감옥도 굶주림도 없는 당신 다른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두 팔 멀쩡히 달린 사람더러 팔 하나 자르며 살아가라 말할 수 없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겪는’ 일도 나쁘지 않으나, 참으로 무언가 깊이 생각하거나 넓게 돌아보고 싶다면,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함께 살아’ 주기를 바랍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함께 살아’ 주지 않는다면, 수백 수천 차례 ‘겪는(체험)’ 일을 한달지라도 아무것 도움이 되지 않아요. 스스로한테도 이웃한테도 이바지를 할 수 없어요.


  내 삶을 이제와는 다른 자리로 일구어야지요. 내 삶을 이제부터 아름다우며 슬기로운 길로 접어들도록 힘써야지요.


  삶을 옳게 들여다보면서 참다이 가다듬을 때에 비로소 이웃이 돼요. 삶으로 마주하면서 어깨동무할 때에 바야흐로 동무가 돼요.


  장애인 곁에는 ‘장애인 돕기’를 할 사람이 있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돕는 누군가’보다는 ‘이웃이 되는 누군가’가 살갑습니다. ‘동무가 되는 누군가’는 사랑스럽습니다.


..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쥐어 주고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자, 직접 찍어 볼까?” 마침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시기에 셔터를 누르게 했더니 화들짝 놀라 얼굴을 가린다. “찍지 마세요.” “어머니, 희원이가 찍어 주는 첫 엄마 사진이에요. 가만히 계세요.” 말을 해 놓고 보니 가슴 귀퉁이가 먹먹하다. 희원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내 맘도 울컥하는데 엄마는 어떠실까 ..  (40쪽)


  빛이 흐릅니다. 햇살이 드리우며 빛이 흐릅니다. 빛은 20억짜리 서울 강남 아파트로도 흐르고, 보증금 없이 달삯 5만 원짜리 인천 달동네 골목집으로도 흐릅니다. 빛은 따사롭습니다. 빛은 부산 광복동 우람한 건물로도 흐르고, 목포 유달산 언저리 골목집으로도 흐릅니다. 빛은 맑습니다. 빛은 숲속으로도 맑게 흐르고, 바닷가로도 맑게 흐르며, 고속도로와 기찻길 위로도 맑게 흐릅니다.


  빛을 느끼는 사람은 숨결을 느낍니다. 포근한 빛살에 포근한 숨결이 흐릅니다.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꿈결을 느낍니다. 너그러운 빛살에 보드라운 꿈결이 흐릅니다.


  적잖은 이들은 ‘장님’들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생각이 모이니 참말 힘들밖에 없을 텐데, 무엇이 어떻게 왜 힘들까요. 장님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면, ‘장님 아닌 사람’들이 이런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고치거나 올바로 다스리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 아닌가 싶습니다.


  깊은 밤에 생각에 잠깁니다. 깊은 밤에 달빛을 누리고 별빛을 느끼며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 하더라도 내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도 깊은 밤에 ‘어두움에 익숙해’지면서 씩씩하게 숲길이나 들길을 걷습니다.


  도시사람은 시골 어두운 길에 익숙해지지 못합니다. 손전등 없이는 깜깜한 시골길을 못 걷겠다 합니다. 앞이 안 보이기도 하고 무섭다고도 합니다.


.. 이제 촬영자의 심상을 다루는 더 높은 단계의 사진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런 사진은 꼭 시각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법을 개발하여 새로운 사진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  (131쪽)


  어두운 밤에는 무엇을 보나요. 두 눈 멀쩡하다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에 시골에서 무엇을 보나요. 참으로 아무것도 안 보이나요. 참으로 아무것도 안 보이니, 깜깜한 시골길에서 걷지도 보지도 움직이지도 못해 갑갑한가요.


  장님은 어두운 시골길이 어떠할까요. 장님한테도 어두운 시골길이 ‘아무것도 안 보여 갑갑’할까요. 아무것도 안 보이니 ‘걸을 수 없’을까요.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움을 봅니다. 밝은 곳에서는 밝음을 봅니다. 곧, 누군가는 어두운 곳에서 ‘어두움’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누군가는 밝은 곳에서 ‘밝음’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밝음도 빛이요, 어두움도 빛입니다. 환하게 밝은 모양도 빛이며, 깜깜 어두운 모양도 빛이에요.


  그림자는 환한 낮에도 드리웁니다. 그림자는 깜깜한 밤에도 드리웁니다. 빛은 낮에도 밤에도 있으며, 빛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자 또한 낮에도 밤에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귀로 보고 싶은 사람은 귀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사랑으로 볼 수 있어요.


  ‘두 눈 멀쩡하다’는 사람은 바로 ‘멀쩡하다는 두 눈’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두 눈 안 보인다’는 사람은 바로 두 눈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두 눈 멀쩡하다는 사람 가운데에는 두 눈 아닌 ‘사랑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두 눈 아닌 가슴에서 샘솟는 ‘꿈을 보살피며’ 사진을 찍기도 할 테지요.

 

 


  (2) 사진삶


  삶이 있기에 글을 씁니다. 삶이 있기에 밥을 먹습니다. 삶이 있기에 사랑을 나눕니다. 삶을 드러내는 글입니다. 삶을 누리는 밥입니다. 삶을 꽃피우는 사랑입니다.


  얼굴이 예쁘다 하면 얼굴이 예쁠 뿐입니다. 돈이 많다면 돈이 많을 뿐입니다. 마음이 착하다면 그야말로 마음이 착하겠지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누리고 싶은가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셔요.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꿈을 이루고 싶은가 하고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꿈과 사랑으로 저희 삶을 빛낼 때에 어여쁠까 하고 곱씹어 보셔요.


  공무원이 되면 무엇이 좋을까요. 회사원이 되거나 사장·이사·회장이 되면 무엇이 좋을까요. 대통령이 되거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이 좋을까요.


  아버지가 되면, 어머니가 되면, 이모가 되면, 큰아버지가 되면, 외삼촌이 되면, 저마다 무엇이 좋을까요. 내가 걷는 이 길이 나한테 어떤 즐거움이자 웃음이요 사랑인가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가 누리는 이 하루가 나한테 어떤 이야기요 멋이며 보람인가 하고 되뇌일 노릇입니다.


..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 주변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들이 번듯한 문장으로 변하고, 자신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  (67쪽)


  사진은 내가 찍고 싶은 데에서 찍습니다. 글은 내가 쓰고 싶은 데에서 씁니다. 그림은 내가 그리고 싶은 데에서 그립니다.


  대학교에 가야 배우는 사진이 아닙니다. 문학강의를 들어야 익히는 글이 아닙니다. 화실을 들락거려야 깨우치는 그림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서 사진을 배우고, 글을 익히며, 그림을 깨우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이웃하고 지내는 마을에서 사진을 빛내고, 글을 밝히며, 그림을 일굽니다. 나 스스로 아끼는 동무와 살붙이하고 얼크러지는 보금자리에서 사진을 빚습니다. 글을 빚고 그림을 빚습니다.


  어떤 흐름, 이른바 조류나 사조나 유행을 따를 까닭이 없는 사진·글·그림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글로 쓰며 그림으로 그립니다. 어떤 모더니즘이나 센티멘털이나 아트나 판타지처럼 억지로 만드는 사진도 글도 그림도 아닙니다. 아무개한테서 배웠대서 아무개 느낌이 나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나는 내 사진을 찍어요. 나는 내가 먹을 밥을 짓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돌보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한식구를 이루어 한솥밥을 나눕니다.


.. 하도 손으로 만져서, 작품이 모두 삐뚤빼뚤되었지만,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특징이라서 즐겁기만 하다. 사진 아래 붙여논 점자들은 그래도 떨어지지 않았다 ..  (136쪽)


  가시내도 사내도 사진을 찍습니다. 대학생도 무학자도 사진을 찍습니다. 장님도 장님 아닌 사람도 사진을 찍습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사진을 찍습니다. 할머니도 푸름이도 사진을 찍습니다. 농사꾼도 노동자도 사진을 찍습니다. 경찰도 기자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청소부도 알바생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즐기고 싶다면, 사장님도 선생님도 사진을 찍어요.


  하루를 즐기면서 사진을 즐깁니다. 삶을 빛내면서 사진을 빛냅니다.


  사진 이론을 배워야 사진을 알지 않아요. 야구 이론을 배워야 야구를 알지 않아요. 사랑 이론을 배워야 사랑을 알까요. 살림 이론을 알아야 아이들 잘 아끼고 밥·빨래·청소를 알뜰히 할까요.


  사진을 알고 싶으면 사진으로 살아가면 돼요. 글을 알고 싶으면 글로 살아가면 돼요. 시골 흙을 알고 싶으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면 돼요. 바다를 알고 싶다고요? 바닷가에 조그맣게 집을 마련해서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살아가 보셔요. 나무를 알고 싶다고요? 숲속에 나무집을 지어서 숲속에서 지내며 나무랑 아침부터 밤까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눠 보셔요.


.. 저시력인 윤서는 전맹인 희원이와 상덕이를 자상하게 돌보아 준다. 화장실 가는 것, 세면하는 것 등 방안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것 모두 윤서 몫이다. 서로 배려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 곁에서 봐도 듬직하다 ..  (151쪽)


  오늘날 이 사회에서 학교를 다니는 까닭은 스무 살이 지난 뒤 일자리를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학교는 아이들한테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온통 대학입시에 파묻혀 ‘회사원 되는 길’로 떠밀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 가운데 인천에 있는 혜광학교에서는 살짝 비켜선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수 있는데, 아직 한국 사회 대학교 가운데 ‘장님이 즐겁게 다니며 학문을 북돋우도록 이끌려고 하는’ 데는 아주 드물어요. 장님 아닌 다른 장애인이 마음 놓고 다니면서 학문을 살찌우도록 이끌려고 하는 대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해요.


  그러나, 대학교는 장애인 아닌 비장애인한테도 그리 살갑지 않습니다. 학문보다는 취직이요, 취직 또한 도시에서 사무직 일꾼 되는 길만 보여줄 뿐이에요. 대학교 마친 다음 공장 일꾼이 되거나 시골 농사꾼 되도록 알뜰살뜰 이끌지 않거든요. 대학생한테 강의를 하면서 ‘너희 이제 시골에 가서 흙을 만져라!’ 하고 살가이 이야기꽃 피우는 교수님이 있나요? 인문계 고등학생한테 수업을 하면서 ‘너희 이제 공장에서 기계를 만져라!’ 하고 가만가만 이야기꽃 피우는 선생님이 있나요?


  교사 스스로 학교에 텃밭을 일구지 않으니, 아이들한테 흙일꾼 되는 길을 말하지 못합니다. 교사 스스로 집에서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복닥이지 못하니, 아이들한테 사랑살이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언제나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을 뿐이요, 대학입시 시험문제 풀이만 할 뿐입니다.

 

 


  (3) 사진말


  이상봉 님이 글과 사진으로 엮은 《안녕, 하세요!》(공간 루,2012)를 읽습니다. 인천 혜광학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하고 ‘사진부’ 또는 ‘사진동아리’를 꾸리며 겪고 느낀 삶을 찬찬히 적바림한 책입니다. 장님이거나 저시력자인 아이들이 앞으로 누릴 만한 일자리란 몇 가지 없다고 합니다. 혜광학교 아이들은 여느 회사원이 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안마와 침술부터 배워야 해요. 이 아이들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사회복지사 학문을 가르친다는 대학교 가운데 이 아이들이 즐거이 배울 수 있는 제도와 환경과 시설을 알차게 갖춘 곳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이 아이들은 노래를 잘 부르기도 하고, 악기를 잘 타기도 하며, 어떤 운동 솜씨가 빼어나기도 한데, 이 아이들을 받아들일 악단이나 극단이나 구단은 어디에 있을까요.


.. 학생들은 한 시간 이상을 셔터 누르는 연습을 했건만 정작 실물 촬영에 들어가자 전혀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라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 셔터를 누르면 어디 고장 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어떻게 촬영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이다 ..  (207쪽)


  《안녕, 하세요!》는 사진책입니다. 사진 이론이나 사진 실기나 사진 학문을 다루지는 않습니다만, 또 사진 작품을 보여주는 책도 아닙니다만, 사진으로 일구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누가 즐길까요. 사진은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요.


  사진역사란 무엇일까요. 사진문화는 누가 일구는가요. 사진예술은 어떤 빛으로 이루어지나요.


.. 나는 아이들에게 정상인이 보는 세계 속의 사진을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  (215쪽)


  사진빛이 사진삶이 됩니다. 사진삶에 사진말이 드러납니다. 사진말을 나누면서 사진빛이 영급니다. 인천이라는 곳 사진문화나 사진역사 가운데 한쪽 귀퉁이에 ‘혜광학교 아이들 사진’ 이야기가 실릴 만할까 궁금합니다. 한국 사진문화나 사진역사 가운데 한쪽 구석에 ‘혜광학교 아이들 사진’ 이야기가 깃들 만할까 궁금합니다.


  사진비평을 하거나 사진평론을 하는 이들은 ‘장님이 찍은 사진’을 어떻게 다룰까 궁금합니다.


  장애인도 사람이요 비장애인도 사람입니다. 디지털도 사진이요 필름도 사진입니다. 어린이도 사람이요 어른도 사람입니다. 값싼 장비도 사진이요 값진 장비도 사진입니다. 외국인도 사람이요 이주노동자도 사람입니다. 이름높은 이가 찍어도 사진이요, 여느 아이 어머니가 찍어도 사진입니다.


  빛을 읽으며 사진을 읽습니다. 삶을 찍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사진꽃을 흐드러지게 피웁니다. 4345.1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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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11.

인천 동구 송림3동.

 

 인천 동구 송림3동은 '동부동'과 '서부동'이 있었단다. 나는 이렇게 갈렸을 적 너무 어렸으니 두 갈래가 어찌 다른가를 모른다. 다만, 오늘에 이르러 골목집 문간에 조그맣게 붙은 쇠딱지나 문패에 남은 글월 한두 마디를 살피면서, 그무렵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그림을 그려 본다. 송림3동이라 하는 골목동네를 천천히 거닐자면, 하루 내내 또는 이틀 내내 걸어도 송림3동 모든 집 앞을 다 지나갈 수 없다. 참 넓고 깊다. 그러니 동부동이랑 서부동으로 나눌 만하다. 그러면, 오늘날 송림3동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환하게 훑으면서 이곳을 돌아다니려는 '마실꾼'들은 송림3동 발자국을 어떤 이야기로 되새길까. 역사는 역사책에 없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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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6] 사회읽기
― 남북녘 ‘미사일’ 또는 ‘로켓’ 또는 ‘우주선’

 


  나는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나는 방송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는 신문이 안 들어오고, 우리 시골집에는 텔레비전을 안 놓습니다. 무언가 읽어야겠으면 내 마음 따사로이 이끄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무언가 보아야겠다면 아이들과 함께 들길마실이나 멧골마실이나 바다마실을 합니다. 시골마을 벗어나 이웃마을, 이를테면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 같은 도시로 마실을 한다든지, 시골집을 떠나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음성이나 일산으로 마실을 할 적에 비로소 신문이든 방송이든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으레 묻습니다. 신문 안 읽고 방송 안 보면 사회 굴러가는 흐름을 어찌 아느냐고.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 신문이랑 방송 없이 지내면 바보가 되지 않느냐고.


  나는 빙긋빙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리나요? 방송에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요? 신문에 실린 기사 가운데 하루 지난 뒤에도 떠오르는 기사가 있나요? 방송에 나온 연속극이나 새소식이나 연예인 수다 가운데 며칠 지나서 또렷이 되새기는 모습이 있나요? 아니, 아침에 읽은 신문글이 저녁이 되면 덧없는 지식조각이 되지 않나요? 아니, 저녁에 본 방송은 이듬날 되면 고스란히 옛 것이 되거나 낡은 것 되어 새로운 방송이 자꾸자꾸 더 낯간지럽게 흐르지 않나요?


  신문을 펴면 첫 쪽부터 언제나 정치꾼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옵니다. 그런 다음 미국 이야기가 몇 가지 나오고, 주식시세표가 나오며, 운동경기 이야기가 나오다가는 연예인 이야기 얼마쯤 나온 뒤, 누가 죽고 다쳤다느니, 누가 돈을 떼어먹었거나 누군가를 괴롭힌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문은 이와 같습니다. 신문은 우리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방송도 엇비슷해요. 방송은 여기에 몇 가지 곁들이는데, 이른바 대중노래라든지 연속극이라든지 때때로 영화라든지 다큐멘타리라든지 나오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시청율 노리는 낯뜨거운 이야기가 그득그득합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 외레 사회를 모르는 채 바보가 되지 않나요? 방송을 보는 사람이 오히려 사회와 멀어진 채 멍청이가 되지 않나요? 신문에는 ‘노동자가 왜 파업까지 하게 되는가’ 하는 대목을 밑뿌리 낱낱이 캐며 밝히지 않아요. 택시회사 일꾼이 사납금 때문에 얼마나 애먹는지, 택시회사는 사납금 제도로 돈을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이런저런 속깊은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아요. 방송 새소식에서도 이와 같아요. 정치꾼 이야기를 할 적에도, 두 군데 커다란 정당 사람들 목소리만 담지, 정치를 아름다이 일구려 힘쓰는 사람들 이야기에는 귀퉁이 한쪽 자리조차 안 주기 일쑤예요.


  무엇보다, 신문이랑 방송은 온통 서울 이야기입니다.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인천 이야기조차 ‘지방 소식’으로 다룰 뿐이에요. 작은도시 이야기는 끼어들 자리마저 없고, 시골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 않아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신문이나 방송을 들출 일이 없어요.


  사회를 읽고 싶으면 사회를 읽으면 됩니다. 나 스스로 사회와 부대끼면서 내 눈썰미와 마음그릇으로 사회를 돌아보면 됩니다. 사회읽기란 나와 이웃이 지내는 마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이에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논문이나 잡지로는 사회읽기에 한 가지 도움조차 주지 못해요. 내가 사회에 있을 때에 사회를 읽고, 내가 사회를 생각할 때에 사회를 읽어요.


  고흥 시골집을 떠나 인천으로 이틀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순천 기차역에 내려 김밥 두 줄을 사는데, 분식집 텔레비전에서 ‘북녘에서 로켓을 쏘았다. 북녘 가난한 주민 삶은 걱정하지 않는다. 로켓 개발비로 쓸 돈을 민생 살리는 데에 써라. 남녘 안보를 어지럽히는 나쁜 짓이다.’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김밥 두 줄 받고 5500원을 치릅니다. 가방에 김밥통을 담습니다. 순천 버스역까지 천천히 걸어갑니다.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시외버스는 국도를 달려 고흥으로 접어들고, 고흥 읍내에서 내리니 아주 한갓집니다. 짐이 많아 군내버스 말고 택시를 탑니다. 억새풀 흐드러지고 갈대밭 어여쁜 시골길 지나 우리 마을 어귀에 닿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지개를 켭니다. 아이들 모두 잠든 깊은 밤에는 홀로 마당으로 내려와 까만 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봅니다. 쏟아지는 별을 가득 안습니다.


  남녘 대통령과 정치꾼과 기자와 지식인이 ‘걱정해 주는 북녘 민생’이란 무엇일까요. 남녘 대통령과 정치꾼과 기자와 지식인은 ‘남녘 민생 걱정’을 얼마나 하며 살까요. 남녘땅 고흥 나로섬에 지은 우주기지에서 ‘우주선에 붙일 로켓 추진장치’를 쏘려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돈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로켓 추진장치를 못 쏘고 끝났어요. 몇 조인지 몇 십 조인지 알 수 없는 돈을 우주개발 하겠다면서 쓴 남녘이에요.


  얼추 10조라고 쳐 보아요. 10조 원이라는 돈을 남녘 ‘민생’을 살펴 보듬는 데에 썼다고 하면, 우리들 남녘살이는 어떠한 모습으로 거듭날까요. 이른바 ‘4대강 살리기’를 ‘남녘사람 삶 살리기’를 하는 쪽으로 가닥잡았다면 우리들 남녘살이는 어떠한 빛깔로 환하게 빛날까요.


  이렇게 하니 잘못이고 저렇게 하니 글러먹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회를 어떻게 읽겠느냐는 소리입니다. 남녘 과학자와 공무원이 ‘러시아 기술자’ 아닌 ‘북녘 기술자’를 받아들였으면, 한결 적은 돈을 들여 더 빨리 ‘로켓 추진 장치 쏘는 일’도 ‘뜻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는 동안 남북교류라든지 남북협력이라든지 남북통일이라든지, 더 따사롭고 슬기로우며 즐겁게 이루는 길을 걸었겠지요. 남녘과 북녘이 따사로이 손을 잡으면 국방비에 터무니없는 돈을 들일 까닭이 없고, 이 국방비는 ‘대학 무상교육’이라든지 ‘병원 무상시설’이라든지 ‘출판 무상지원’처럼, 교육과 복지와 문화를 북돋우는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멋스러운 길이 되리라 느껴요. 사회를 읽으려면, 신문이나 방송이라 하는 ‘안경’을 벗고, ‘내 눈’으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눈빛을 맑게 트면 돼요. 4345.1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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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고아원 세계사 시인선 122
최문자 지음 / 세계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아이들 손에 나뭇잎 하나
[시를 노래하는 시 37] 최문자, 《나무고아원》

 


- 책이름 : 나무고아원
- 글 : 최문자
- 펴낸곳 : 세계사 (2003.11.7.)
- 책값 : 5500원

 


  숲에서는 언제나 노래가 울립니다. 숲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언제나 듣습니다. 그러나, 숲에 깃든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살며시 열어 숲이랑 하나가 되려는 몸짓이 아닐 적에는 숲노래를 못 알아채거나 못 느껴요. 숲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지내더라도 숲이랑 한마음이 되며 살아갈 적에는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숲노래를 고이 들으며 숲넋을 가슴 깊이 아로새깁니다.


  꽃밭 앞에 섰어도 꽃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 있지만, 아스팔트땅 한켠에서 씩씩하게 새잎 틔우며 자라는 조그마한 들풀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꽃밭을 가득 채운 꽃마다 향긋하게 나누어 주는 꽃내음을 못 맡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 북적거리는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매캐한 바람 부는 도시로 가늘게 풍기는 먼먼 꽃내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얼크러지면서 아이들 맑은 눈빛을 읽으며 빙그레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그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집어넣을 뿐, 막상 아이들과 기쁘게 이야기꽃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뛰노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온갖 값진 장난감을 사다 주면서 혼자 놀라고 내버려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 막다른 집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다. / 헐어빠진 나무대문들을 / 희망처럼 보이게 하려고 / 페인트로 파랗게 칠을 했었다. / 대문의 나무결은 숨을 그치고 / 그날부터 파랗게 죽어갔다 ..  (파란 대문에 관한 기억)


  꽃이 피고 집니다. 나무가 천천히 자랍니다. 꽃이 피고 지는 흐름을 살피며 삶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가 천천히 자라는 결을 느끼며 나뭇가지를 따사로이 쓰다듬는 사람이 있습니다. 꽃망울마다 서린 밝고 푸른 기운을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랑잎 하나 천천히 주워 잎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가 떨군 씨앗을 고개 숙여 살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린 한살박이 새 어린나무랑 두살박이 새 어린나무를 알아보고는 귀엽다고 톡톡 간질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 길거리를 거닐기는 하지만, 길거리에 심긴 채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알아채지 않고 갈 길만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뭇가지에 줄을 꽉 동여매어 걸개천을 내거는 동안 나뭇가지가 얼마나 아파 하는가를 안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숨을 쉽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자랍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씨앗을 내어 새 숨결을 키웁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나뭇가지 잘릴 적에 아픈 소리를 냅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찬바람과 비바람을 맞으며 춥다고 노래합니다.


  나무 곁에 서요. 나무 곁에 서서 귀를 살며시 대요. 나뭇줄기를 타고 오르는 숨소리를 들어요. 맨 밑바닥 뿌리부터 맨 꼭대기 잎사귀까지 흐르는 숨결을 느껴요. 햇살이 살찌우는 나뭇잎 하나 살살 쓸어요. 나무가 선 자리에는 어떤 흙이 있는지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냄새를 맡아요.


.. 원주, K시인을 따라 / 옻나무밭에 갔었다. / 심장은 놔두고 /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 수십 번 더 그어진 칼금 / 저건 숲이 아니다 ..  (옻나무밭)


  감나무 한 그루 마당에 있으면 겨우내 달콤한 감알 실컷 즐길 수 있도록 선물해 줍니다. 매화나무 한 그루 마당에 있으면 봄내 환한 꽃잔치를 베풀다가는, 여름내 달콤하게 즐길 동그랗고 노오란 열매를 선물해 줍니다. 능금나무가, 배나무가, 복숭아나무가, 살구나무가. 탱자나무가, 석류나무가, 포도나무가, 사람들 살림집마다 한두 그루쯤 자랄 때에는 얼마나 환하며 고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 살림집이 아파트 아닌, 너나없이 마당 있어 흙내음 물씬 나는 보금자리라면 얼마나 빛나며 예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국땅은 그렇게 좁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은 누구나 마당 있는 살림집을 누릴 만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몽땅 도시로 몰리도록 내모니까, 도시에는 땅뙈기가 비좁다고 여겨 2층 3층 20층 30층 쑥쑥 올리기만 합니다. 아파트 한 채에 5억이니 15억이니 떠들지만, 20억이 되건 30억이 되건 마당 한 뼘조차 없다면, 이러한 곳을 ‘집’이라 할 만한지 궁금해요. 흙이 없고 밭이 없어 마당이랑 꽃자리가 없다면, 이러한 곳을 집이라고 일컬을 수 없지 않나 싶어요.


  누구라도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야지 싶어요. 돈이 많은 사람만 마당 있는 집을 누릴 수 없어요. 돈이 적은 사람도 마당 있는 집을 누려야지 싶어요. 마당 한켠에는 열매 알차게 맺는 나무 몇 그루 자라고, 마당 두켠에는 여러 푸성귀 푸르게 자라며, 마당 세켠에는 장독 놓을 겨를 있는 한편, 마당 네켠에는 샘터 조그맣게 있어, 아이들 여름내 물놀이 즐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그들은 원래 강남 먹자골목에 살고 있었다. / 먹어본 기억이 깔린 유년의 골목 / 감각의 그 길을 그들은 추억한다 ..  (K게이트)


  사람이 숨을 쉬고 나무가 숨을 쉽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풀이 숨을 쉽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꽃이 숨을 쉽니다.


  자동차들이 배기가스를 내뱉으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캑캑거립니다. 공장들이 매연을 내뱉으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코며 입이며 귀며 갑갑히 막힙니다. 발전소가 춤을 추고 골프장이 노래하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시들시들해지고 맙니다. 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철길이 뒤덮이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꽁꽁 얽매인 채 뛰놀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나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나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물려주며 무엇을 사랑하도록 이끄는가요.


  내 아이한테 나무 한 그루 베풀지 못한다면 어른 구실이란 무엇일까 아리송합니다. 이웃 아이한테 나무 한 그루 나누어 주지 못한다면 어른 노릇이란 무엇일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숲이 없으면 시골이 아니요, 숲이 있는 시골이 없으면 도시는 살아내지 못합니다. 숲이 있는 시골이 있어야 도시도 살아납니다. 숲이 있는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거두어야 비로소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돈을 버는 사람들 먹을거리가 나옵니다.


.. 깊은 산에 다녀온 날은 / 머리를 감아도 감아도 풀냄새가 났습니다 ..  (당신의 풀)


  아무개가 대통령이 된다 해서 도시사람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아요. 시골에 숲이 있어야 도시사람 살림살이가 나아져요. 저무개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된들, 도시사람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아요. 도시에도 곳곳에 숲이 있어 도시사람 마음과 몸을 쉴 틈이 있어야, 도시사람 누구나 살림을 펼 수 있어요. 그무개가 판사가 되든 검사가 되든 의사가 되든 대수롭지 않아요. 병원은 없어도 되고 극장은 없어도 되며 구청이나 시청 건물을 높게 새로 지을 까닭이 없어요. 숲을 넓혀야 하고, 숲을 아껴야 하며, 숲을 보살펴야 해요.


  고속도로 넓힌다며 숲을 밀 때에는 사람 스스로 사람 목숨을 끊는 셈입니다. 더 빨리 달릴 기찻길 놓는다며 숲을 무너뜨릴 때에는 사람 스스로 사람 목숨을 꺾는 셈입니다.


  공장을 지어 공산품을 내놓고 이웃나라에 팔아치워야 경제성장율이 올라간다 하는데, 경제성장율이 올라 보았자 사람들 살림을 넉넉히 채우지 못해요. 숲이 있어 싱그러운 먹을거리를 얻어야지요. 숲이 있어 맑은 바람을 마셔야지요. 숲이 있어 시원한 시냇물을 먹어야지요. 숲이 있어 나무그늘 누리고, 숲이 있어 열매를 즐겨야지요.


.. 지금쫌 / 노을 아래 있겠다. / 그 버려졌던 아이들 / 절뚝거리는 은행나무 / 포크레인에 하반신 찍힌 느티나무 / 왼팔 잘린 버즘나무 / 길바닥에서 주워다 기른 / 신갈나무, 팥배나무, 홍단풍 ..  (나무고아원 1)


  최문자 님 시집 《나무고아원》(세계사,2003)을 읽습니다. 외톨뱅이로 태어나는 나무는 없지만, 도시사람은 나무를 외톨뱅이 되도록 닦달합니다. 외돌토리가 되고픈 나무는 없지만, 도시사람은 나무를 외돌토리가 되도록 들볶습니다.


  나무를 껴안지 않으며 살아가는 도시사람은 나무가 얼마나 아파 하거나 슬퍼 하는가를 못 느낍니다. 나무를 곁에 두며 살아가지 않는 도시사람은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한가를 모릅니다.


  나무를 볼 줄 모르기에 나무를 노래하지 못하는 도시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시골사람은 나무를 노래할까요. 시골 군·읍·면에서 펼치는 교육이나 문화 정책을 들여다보면,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를 하루빨리 도시로 보내어 돈 더 잘 벌 만한 회사원이 되도록 길들이려 할 뿐, 시골아이 스스로 나무를 아끼거나 사랑할 숲아이가 되도록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아요.


  시골아이가 시골아이답게 숲아이로 크지 못합니다. 도시아이 또한 도시아이답게 씩씩한 숲사랑을 키우지 못합니다.


.. 개발한답시고 / 생땅 갈아엎을 때 / 풀들은 뼈도 못 추리고 / 인부들은 아이 밴 나무까지 / 아스팔트 바닥으로 휙휙 집어던졌다. / 터져버린 살, 꽃, 태아 / 삐약거리는 진달래 죽지 않는 나무는 / 결코 살고 싶지 않은 곳으로 / 손목 잡혀 왔다 ..  (나무고아원 2)


  아이들 손에 손전화라 하는 기계를 쥐어 줄 때에,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아이들 손에 교과서와 참고서를 쥐어 줄 때에, 이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 손에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쥐어 줄 때에, 아이들 손에 자동차와 아파트 열쇠를 쥐어 줄 때에, 또 아이들 손에 극장표와 도서상품권을 쥐어 줄 때에, 이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릴까요.


  아이들 손에 나뭇잎 하나 들리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나뭇가지 하나 들리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나뭇줄기 따사로운 기운 스미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푸른 잎사귀 푸른 기운 감돌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싱그러이 노래하는 숲속 작은 새들 이야기 한 자락 내려앉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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