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는 빨래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너는데, 겨울바람 휭 불어 꽁꽁 얼어붙으면 쳇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요 겨울바람아, 일부러 휭휭 불면서 우리 빨래 얼렸지?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고 등허리를 펴는데, 문득 무슨 소리 들린다 싶어 방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보니, 솔솔 내리는 눈이 빨래마다 쌓인다. 새삼스레 쳇 하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큰아이는 “눈이야? 눈이다!” 하면서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에구, 빨래 걷어야겠네.” 하면서 이맛살을 찡그린다.


  아버지가 빨래 걷는 곁에서 방방 뛰며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 너는 아이야, 너는 아이답게 예쁘게 놀아라. 놀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잖니. 그러고 보면, 아버지도 빨래 걷기 앞서 조금 놀 만하겠구나. 모처럼 전남 고흥까지 찾아오는 눈을 사진으로 몇 장 담아 본다. 눈 맞으며 꽁꽁 어는 빨래 녹이기 앞서, 나도 너하고 함께 마당에서 놀아 볼래.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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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유 2013-01-23 11:42   좋아요 0 | URL
저희 아버지 고향이 고흥이에요. 저희 옛날 시골집 같네요.

파란놀 2013-01-23 13: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고흥이란 참 예쁜 시골이에요.
언제 자리와 틈이 되면
고흥으로 귀촌하셔도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눈 맞는 빨래 밑 어린이

 


  올겨울 전남 고흥에 드문드문 눈바람 날린다. 애써 빨래를 해서 해바라기를 시키다가도 갑자기 찾아든 눈구름이 흩뿌리는 눈발을 맞는 빨래를 부랴부랴 집안으로 들이곤 한다. 그러나, 큰아이는 그저 신난다. 눈바람 쐬면서 마당을 달린다. 쳇, 너희 아버지는 빨래 걷느라 바쁘거든.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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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신문

 


  서울에 있는 신문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기보다, 서울에서 터지고 깨지며 부서지는 사건이랑 사고를 다루기 일쑤입니다. 서울에서 정치권력·사회권력·경제권력·문화권력 누리는 이들 이야기라든지, 또는 이들 서울 쪽 권력자들 사건과 사고를 다룰 만하구나 싶습니다.


  나는 사건이나 사고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 일찌감치 신문을 끊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 살찌울 책을 바라고, 나 스스로 즐거이 이웃하거나 동무할 사람들 살가운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따로 신문을 읽지 않고 방송을 틀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시골바람을 쐬고 시골햇살을 마시며 시골노래를 부릅니다. 멧새가 기자요, 풀벌레가 피디입니다. 제비가 특파원이고, 후박나무가 제보자입니다. 들풀과 숲이 너른 이야기밭입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식구들 아직 도시에서 살던 때, 우리한테 기자 구실을 한 님은 골목집 나즈막한 지붕입니다. 우리 식구들 아직 도시에서 살아가던 지난날, 골목꽃과 골목나무와 골목밭과 골목하늘과 골목문패와 골목우체통과 골목고양이와 골목빨래와 골목창과 골목문과 골목골목 흐드러지는 빛살이 모두 신문이자 방송 구실을 했구나 싶습니다.


  시골에서 시골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할 신문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서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활짝 웃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 어떤 신문을 엮고 어떤 이야기를 짜며 어떤 꿈을 키울 때에 어여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삶빛은 나한테서 샘솟습니다. 삶결은 내가 손수 보살핍니다. 삶노래는 나부터 부릅니다. 삶이야기는 내 사랑이 어우러지는 춤사위로 빚습니다. 시골마을 장흥에서 새 신문 일구려 하는 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시골신문은 어떤 시골빛이고 어떤 시골꿈이며 어떤 시골사랑일까 하고 조용히 돌아봅니다. 4346.1.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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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6] 맑은빛

 


  조잘조잘 말놀이 즐기는 여섯 살 큰아이가 자꾸자꾸 묻습니다. “아버지 이거 뭐야?” “그래, 그것은 무얼까?” 여섯 살 큰아이는 눈에 보이는 대로 이름을 묻습니다. 두런두런 이름을 알려주다가 “그래, 그것은 무엇처럼 보이니? 스스로 이름을 붙여 봐. 느끼는 대로 이름을 붙이면 돼.” 하고 말합니다. 알록달록한 무언가 있으면 큰아이는 또 묻습니다. “아버지 이거 무슨 빛깔이야?” 빛깔이름 하나씩 말하다가는 “무슨 빛깔로 보여?”라든지 “무슨 빛깔이라 하면 좋을까?” 하고 되묻습니다. 아이랑 이러쿵저러쿵 말놀이를 하다가, 엊저녁 새삼스러운 ‘빛깔 묻기’를 할 적, 속이 환히 비치는 작은 핀 같은 못을 가리키며 또 “무슨 빛깔이야?” 하기에, “음, 이것은 속이 맑게 비치네. 맑은빛이로구나.” 하고 말합니다. 속으로는 ‘투명(透明)’이라는 한자말을 떠올리는데, ‘어라, 사람들도 나도 으레 ‘투명’이라 말하곤 하는데, 가만 보니 한국말로는 ‘맑은빛’이네.’ 싶습니다. 때로는 ‘물빛’이라는 낱말로 속이 비치는 느낌을 나타내곤 합니다. 물빛은 물빛대로 좋고, 맑은빛은 맑은빛대로 좋다고 느낍니다. 빨간빛이나 파란빛이라고도 말하듯, 맑은빛이라고 새로 짓는 빛깔이름 하나 곱다고 느낍니다. 어느 때에는 ‘밝은빛’을 말할 수 있겠지요. ‘고운빛’이나 ‘기쁜빛’이나 ‘웃음빛’이나 ‘눈물빛’을 노래할 수 있겠지요. 4346.1.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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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이야기꾼 글쓰기

 


  기자는 무엇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신문에 글을 쓸까 궁금합니다. 기자는 어디로 찾아다니며 신문에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기자’라고 하는 전문가 모임이 있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말로 태어납니다. 살아가며 말하는 매무새에 따라 글이 태어납니다. 꼭 어디를 찾아가서 누구한테서 지식이나 정보를 들어야 ‘신문기사’라고 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습니다. 생각이 있어야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삶이 있어야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사랑하며 즐기는 삶이 있어야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이야기로 태어나는 말이요 글입니다. 이야기 있기에 태어나는 신문이고 책이며 잔치입니다. 그러나, 신문기자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신문기자는 거의 모두 도시 한복판을 떠돕니다. 신문기자는 거의 모두 국회나 청와대나 관공서를 들락거립니다. 여느 이웃집을 찾아가는 신문기자는 거의 없습니다. 수수한 시골마을 이웃을 만나려는 신문기자는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 흙을 일구면서 하늘을 마시는 신문기자는 거의 없습니다. 집살림 꾸리며 아이들 보살피는 신문기자는 거의 없습니다.


  신문기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을 수 있을까요. 신문기자는 어떤 삶을 누리는 사람일까요. 신문을 펼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바라는 사람일까요. 4346.1.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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